<코오롱 스포츠 히스토리 갤러리 오픈>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최근 10년 사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아웃도어 시장의 급성장은 아웃도어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변화가

큰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냥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려 입고

산에 올라간다는 게 고작이지 않았습니까? 아웃도어라는 개념이 자리잡은 것도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잖아요.

 

코오롱스포츠에서 이승기, 이민정 같은 젊고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 브랜드 광고를

하고 여타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도 장혁이나 천정명 같은 젊은 인기 스타들을 내세워

마케팅을 하듯 앞으로도 아웃도어 시장은 계속해서 발전을 할 것 같습니다. 20~30대 젊은 고객층들이 계속해서 유입될 테니까요.

 

 

 

 

 

하지만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국내 아웃도어 시장의

떡고물은 국내 브랜드가 아닌 외국 브랜드가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나마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가 선전을 해준 것은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제품의 고급화와 디자인 개선에 힘을 쓰면 국내 브랜드도 외국 브랜드의 공세에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코오롱스포츠에서 히스토리 갤러리를 오픈했네요.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토종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가 걸어온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고 하네요.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하고 있다는데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한 번 방문해도 좋을 듯합니다.

 

 

 

 

 

 

 

 

 

 

 

저 자전거를 보라.

 

뒷 안장에는 짐이 잔뜩 실려있고, 앞 핸들에는

빨래가 걸려있다. 저게 자전거인가? 아니면 집인가?

 

여행길에서 자전거는 내 집이자, 내 친구였다.

 

짐들이 볼품없고 지저분하게 걸려있지만...

그게 여행중의 내 모습이었다. 자전거도 그 주인을

따라가는 것 같다.

 

이 사진은 2009년 7월 경에 했던 국토종단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다. 충남 천안시 풍세면 부근에 있는

풍세천에서 찍었다.

 

 

자전거가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는건가?

 

 

 

 

 

  

 

 

 

 

 

 

 

 

 

 

 

 

 

 

 

 

 

 

 

나같이 단독 여행가에게 사진은 나를 담아내는 하나의 도구일 수 있다. 

최소한 여행할 때는 나의 분신 역할을 해준다고 할 수 있다.

 혼자 떠난 여행이기에 나를 피사체 삼아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없기에...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모아보면 내가 평소에 마음을 두었던 이미지들이

도출되는 듯싶다.

이 사진은 충남 천안시 광덕면에 위치한 천년 고찰인 광덕사이다.

천안시 광덕면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천안 삼거리, 그 교통의 요지인

천안이 아니었다. 높지 않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산촌이었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좀 마음이 경건해진다. 길이나 도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드립다 달리고 싶은데...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108배라도 올리고 싶다.

 

최소한 이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만큼은 나도 구도자가 되련다.

 

 

 

2009년 7월에 있은 자전거 국토종단여행에서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 만나서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추출해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이미지? 무슨 이미지?

그래. 더 정확히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호감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에게 부처님 얼굴을 대비시켜보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이다.

 

신격에 대한 모독은 둘째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얼굴을 부처님 얼굴이란 특정 이미지에 꿰어 맞춘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 얼굴을 한 사람들이 꼭 선한 이미지만 내게 선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부처님 얼굴에 누군가를 투영시키는 버릇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내 나름대로의 관상법이니까!

 

그나저나 내 얼굴은 부처님 얼굴상인가? 탐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남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기대하려면 내 자신부터 자비로워져야 할테지.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ㅋㅋㅋ

 

 

사진은 설악산 입구에 있는 사찰에서 찍었다. 2005년 가을 경으로 기억하는데...

 

 

 

 

 

 

 

 

 

 

 

 

 

 

 

 

 

 

 

 

삼남길 개척단 첫빠따 멤버, 나무드리의 후기 



들어가면서: 굉장히 오버한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는데, 저는 최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보면서, ‘아, 이제 우리나라도 서서히 탈근대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흔히 학자들은 한국사회를 근대, 전근대, 포스트모던(탈근대)이 혼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포스트모던에 대한 징표들은 엘리트층에서만 통용되었다는 게 사실이었거든요. 그런 형이상학적 사상의 조류들을 일반 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해체 담론이니, 탈구조화니 하는 것들이 산행을 즐기는 일반 사람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 골치 아픈 거 생각하느니 그 시간에 오징어 뜯어 먹는 게 훨씬 남는 장사지.

 

‘느림’을 기본으로 하는 걷기여행은 속도 경쟁을 우선시 하는 근대사회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게 개념입니다.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개념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빨리빨리를 외쳐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뭐 느림? 걷기? 니가 배가 불렀구나?” 과거 성장우선주의 시대에서는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200km가 넘는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올레길 투어가 가족단위 관광 상품으로 등장하는 요즘에는 그런 속도 경쟁적인 사고보다 동행과 보폭을 맞출 수 있는 더불어 숲과 같은 생각이 우리사회에도 확산된 게 사실입니다.

 

 

 

 

그만 그만! 제가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요? 후기 쓰는데 서설이 왜 이렇게 기냐고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며칠 전 한겨레신문(2010년 10월 18일자 12면)을 보니 걷기 열풍을 타고 100여개 가량의 길이 개척되었다는 소식이 실려 있더군요. 또 앞으로도 더 개척될 예정이라고도 하고요. 이 기사를 읽고 있자니 우리가 개척한 삼남길은 걷기 열풍에 가장 정점에 위치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사에 소개된 길들은 개별 지역을 중심으로 개척되었다보니 해당 지역에 국한된 루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그쪽 안에는 촘촘한데 그쪽 밖에는 끊겼다고 해야 할까요? 개별지역의 걷기 길이 일반적인 의미의 산이라면 1000리 삼남길은 백두대간과 같이 큰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국토를 종단으로 연결하는 의미가 강한 것이죠.

 

 

 

선조들이 한양을 가기 위해 걸었던 옛 길. 그런 의미에서 삼남길 루트 개척단은 역사적인 길을 복원한다는 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삼남길 루트 개척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뜻 깊은 족적을 남겼다고 자화자찬을 해도 괜찮을 겁니다.


 

 


참가인원: 한소절님, 정감독님, 마스코트님, 연경님, 무영님, 삼공빠님, 마루금님, 사이다님, 나무드리(나) + 손성일 대장님, 정 실장님, 김기동 주임님 그 외 스텝 분들



이동경로: 광주역 집결 후 버스로 해남 땅끝 관광지로 이동



해남 현지에서의 이동: (첫날) 땅끝 마을→송호 해수욕장

(둘째날) 송호해수욕장→영전


날짜: 2010년 10월 16~17일


 



개척활동: 12인 삼남길 루트 개척단은 활동은 단순히 길 걷기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개척단’이었습니다. 안내자를 따라 길을 걷다가 중요 포인트에서 멈춰 서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통상적인 여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걷기 코스로 생각하고 루트 개척단에 참가를 하셨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1기 멤버들이 주로했던 활동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1. 표지 리본 달기

2. 루트 나무판 달기

3. 방향 화살표 달기

4. 길에 스프레이로 화살표 표시하기

5. 낫 작업으로 보행로 잡풀 제거하기


위에 나열된 작업들을 손성일 대장님, 스텝 분들과 함께 진행해 나갔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같은 1기 멤버인 삼공빠님과 함께 스프레이 작업을 했는데 손 대장님이 주요 포인트를 찍어주시면 그 곳에 스프레이로 화살표 표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스프레이 작업을 할 수 없는 구간, 즉 산림지대로 진입했을 때는 한소절님을 따라 낫으로 잡풀을 제거했습니다. 낫 작업은 벼베기를 할 정도의 큰 근력을 요구하는 건 아니고 벌초 작업정도의 스킬만 있으면 되겠더군요. 한소절님은 백두대간을 세 번이나 완주하실 정도로 대단하신 분인데 그 때문인지 역시 필드에 강하시더군요. 덕분에 낫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답니다.

 

루트 나무판 설치는 개척단 일과 중에 가장 중점을 둔 작업이었습니다. 나무판 자체의 제작 단가가 비싸고, 수량도 얼마 되지 않아 정말 중요 포인트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만 설치를 했답니다. 각 개인마다 3개의 나무판을 전달받아서 그 뒷면에 자신이 소망하는 글귀를 적었답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지요. 저는 ‘행복한 길, 삼남길 걷기’ 이런 문구를 적어봤답니다. 아쉬운 것은 광주에서 해남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미리 나무판과 관련된 공지를 전달받았다면 더 멋진 문구를 생각했을텐데... 해남 현지에서 발대식 이후에 문구를 적으라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하게 적었답니다. 다음 기수부터는 좀 더 멋진 문구를 많이많이 적어주시길!

 

 

 

 

 


개선점: 이 부분은 16일 첫날 일정이 끝난 후 간담회 자리에서 마루금님과 다른 멤버분들이 날카롭게 지적하셔서 제가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지만 제 나름대로 보충적인 의견을 개진해 보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동의를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이번 1기 루트 개척단은 좀 정신없이 진행된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런 혼동은 ‘첫빠따’인 1기의 숙명일 수밖에 없을 노릇이겠죠. 그런 초기 혼란 비용을 하루라도 빨리 틀어막는 게 손성일 대장님이나 코오롱 측에도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나름대로의 개선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부분은 다른 멤버들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1. 신속한 일정공지: 홈페이지 상의 공지가 너무 늦었을 뿐더러 개인 이메일 공지도 출발 하루 전날에 도착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시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2기는 10월 30일에 출발하오니 최소한 25일 정도에는 관련 공지가 공고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겠습니다.


2. 버스 이동시간 활용하기: 버스에서의 이동 시간은 참 소중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광주역에서 해남까지 버스로 무려 2시간가량을 이동했는데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삼남길 관련 영상물이나 루트개척단의 작업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게도 필요없이 15분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반복학습을 위하여 출발 직후에 한 번, 도착 즈음에 또 한 번 상영하면 더 좋겠네요.

아참, 앞서도 언급했듯이 버스에서 개척단에게 미리 나무판 실물을 보여주고 거기에 담을 문구도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 문구를 남기는 거 좀 ‘뽀대나게’ 문구를 기재하면 좋잖아요!☺


3. 기장 선정 및 소집단 선정: 개척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열성적인 분들이실 거라는 생각이 들기에 굳이 기장이 필요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기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기장은 멤버들 중 가장 연령이 많은 분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막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소집단을 꾸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스텝진에서 기계적으로 나누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해당 소집단이 바로 작업조로 변형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4인 1개조 형식으로 하면 총 3개 팀이 나오겠네요. 그럼 해당 팀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한 팀은 나무판 작업팀, 다른 한 팀은 스프레이 팀, 또 다른 팀은 낫 작업팀 등등...

표지 리본 작업은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작업이니 모든 팀들의 공동 임무 사항으로 삼으면 될 듯 합니다.


 

 

 

 


4. 공구함 만들기: 루트 개척단이 단발성에 그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꼭 시정이 됐으면 좋을 듯싶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리본 작업 같은 경우는 가슴 앞쪽으로 맬 수 있는 투명 비닐팩 가방을 준비하여 거기에 리본들을 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장시간 리본들을 들고 가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투명 비닐 팩에는 니퍼도 넣을 수도 있겠네요. 아참 니퍼는 4개 이상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각 팀마다 최소한 한 개 이상씩 지급하는 것이죠. 니퍼가 없어서 대기하는 시간이 생기면 안 되겠죠.

 

또 스프레이 작업이 계속된다면 스프레이 작업 전용 공구함도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가수 싸이가 맥주상자를 들고 ‘씩스팩, 씩스팩’ 그러는데 그 외형으로 만들면 좋겠네요. 대신 주형틀 나무를 끼워 넣는 공간도 확보를 해야겠지요. 조그마한 비닐봉지에 여러 개의 스프레이통과 주형틀을 넣고 다녔더니 완전 고역이었습니다.


 

마치며: 참 장문이네요. 뭐하느라 이렇게 길게 후기를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제가 할말이 많았나 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만약 제가 통상적인 인솔자가 주도하는 산행이나 트래킹에 참여했다면 이렇게 장문의 후기를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이번 루트 개척단에서 받은 느낌이 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삼남길의 얼리 어댑터가 됐기 때문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고 해야겠네요.


자 여기까지는 삼남길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그럼 루트 개척단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이 되어서 쓴소리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현재도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단독이나 소규모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고 대규모 팀을 꾸려 떠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소규모라고 하면 통상 열명 이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고 대규모라고 하면 모 제약회사의 국토순례단 같은 단체들이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아스팔트 길을 걷고 있을 소규모 도보여행객들을 삼남길로 끌어오는 것은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이상의 대규모 집단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거냐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가 다닌 길에서는 대규모 도보 순례단을 맞을 인프라가 전혀 없었습니다. 화장실은커녕 식수를 받을 장소도 없었습니다. 또 소규모로 이동한다고 해도 그들이 텐트나 취사도구 같은 캠핑장비로 중무장 하지 않는 이상 여행 종착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삼남길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순례단도 맞을 수 있고, 소규모 여행자들의 배낭의 무게도 줄여주어야 삼남길이 본 궤도에 들어설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제주 올레길의 전례를 참고로 삼을 수는 있지만 삼남길이 올레길의 판박이는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제주도는 이전부터 관광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기존의 인프라가 존재했기에 올레길이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는 삼남길의 장기과제가 되겠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닐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따로 사진에 대한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풍경 사진외에는 작업 사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진에서도 나와 있듯이 1기 멤버들이 다녀온 삼남길은 그 자체가 출사지였습니다. 정말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까? 

 

 

 

 

 

 

 

 

 

 

 

 

 

 

 

 

 

 

 

 

 

 

 

 

 

 

사람을 순해지게 만드는 옥정호



2010년 6월 23일-여행 5일째

 

 


당시 나는 자전거여행 중이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여정은 목포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이날은 전북 익산을 거쳐 전주, 임실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했다. 아름다운 전라북도의 내륙을 탐방할 생각에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아시다시피 전라북도 내륙에는 덕유산, 마이산, 모악산과 같은 이름난 명산들이 많다.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고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도 잠시 뿐이었다. 당시 난 자전거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앞뒤로 짐을 가득 싣고 가는 터라 자전거 속도는 꽝이었다. 더군다나 전라북도의 내륙은 노령산맥의 영향으로 산악지형이 잘 발달이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야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간보다 끌고 가는 시간이 많았다. 무거운 자전거를 낑낑거리며 산등성이를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사실 전북 내륙 부분은 자전거를 타기에 적당한 코스가 아니다. 통상적으로 서울에서 목포까지 가는 국토종단코스는 전북의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익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 고창지역을 지나가는 것이다. 해안가지역은 고도가 낮을뿐더러 간간이 바다도 볼 수 있어 자전거를 달리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난 왜 해안가 코스를 가지 않고 왜 사서 고생을 하며 내륙코스를 택했는가? 사실 난 작년에도 장거리 여행을 했는데 그때는 전북의 해안가코스를 지나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내륙코스를 여행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또 아는 지인의 조언도 있었다. 임실이나 순창지역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는 조언이었다.

 

도대체 무슨 볼거리가 있기에 임실,순창 코스를 강추한 것일까? 정말 제대로 된 볼거리가 있기는 한걸까? 그 지인의 조언을 반신반의 하면서 난 힘든 여행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보니 무언가 ‘Feel'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여행을 좀 많이 하신 분들은 그런 느낌을 한두번씩 가져보셨을 것이다. 이 코너를 돌면 무언가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이 고개만 넘으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 같은데... 이 고개만...


“와!”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산 정상부에 다다르니 큰 호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호수는 산들로 둘러싸여 넉넉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호수는 바로 옥정호였다.

옥정호는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한 인공호수다. 일제시대에 건립된 다목적 댐에 의해 조성된 옥정호는 전북의 대표적인 농업용수 공급용 저수지로 손꼽히고 있다. 이 부분은 문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작성한 부분이다. 사실 옥정호를 농업용수 공급용 저수지로만 인식을 한다면 그건 여행을 만끽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처음 옥정호에서 받은 인상은 소양호 이미지였다. 옥정호가 산에 둘러싸여 있어 춘천의 소양호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소양호와는 좀 다른 면이 많았다. 소양호가 웅장한 이미지라면 옥정호는 아기자기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옥정호에는 숨어 있는 비경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옥정호는 국내 사진사들에 의해 출사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옥정호는 주변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순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부지역을 탐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길을 걷고 싶었지만 일정 관계상 그만두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옥정호의 풍광을 두고 그냥 가기가 아까워서 옥정호에서 한 숨 자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 여행일정을 위해서라도 체력회복을 해야 했으니까. 옥정호가 한 눈에 펼쳐지는 곳에 자리를 깔고 눈을 감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왔고 산새 소리가 들렸다.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인지 나는 솔솔 단잠에 빠져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 호수를 앞에 두고 잠을 청할 수 있다니....

 

 


 

전북 임실이나 옥정호를 그냥 한 번 방문했다고 그 지역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히 오버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나는 어쩌면 오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씨가 왜 임실 땅을 못 떠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전에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으며, 작품 활동을 하려면 출판사들이나 문인단체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의문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임실 지역을 방문해보니 왜 시인께서 섬진강을 못 떠나는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나라도 안 떠날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들을 놔두고 무엇 하러 각박한 서울살이를 하겠는가.


옥정호에서 잠이 깼을 때 난 잠깐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매일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들만 보다가 몽롱한 상태에서 옥정호를 바라다보니 정말 딴 세상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착각은 이내 곧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오래 지속되었다. 그렇게 사람을 UP시켜주는 착각이라면 그 속에 빠져드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여행 5일째 전체평: 옥정호, 섬진강 상류. 나도 이 곳에서 살고 싶다. 이 곳에 오니 사람이 순해지네! ^^;


 

사진설명: 상단의 사진 두 개는 섬진강 상류를 찍은 사진이고, 나머지는 옥정호를 배경으로 한 사진임. 시간상으로는 옥정호-> 섬진강 순으로 이동을 했으나 글을 다이나믹하게 꾸미기 위해 순서를 바꾸어 놓았음.


 

 

 

 

 

 

 

 

 

 

 

 

 

 

 

 

 

 

[나의 오래된 물건] 단물 빠진 영어사전



[한겨레] “너희들, 여기서 단물 쪽쪽 다 빨아먹어야 한다.” 고1, 첫 수업시간에 영어선생님은 사전을 흔들며 그런 말씀을 하셨다. 쪽쪽 다 빨아먹기 위한 방편으로 난 형광펜을 준비했다. 한 색이 아닌 여러 색을 사용했다. 시험에 잘 나오는 어휘는 노란색, 적당히 나오는 어휘는 녹색 등등. 단어집과 필기노트를 거친 어휘들은 영어사전을 통해 숙성됐다. 영어사전은 오직 대입 준비만을 위해 존재했다.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던 영어 단어들. 그렇게 외운 단어들은 돌아서면 다 까먹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전은 ‘걸레’가 되어가고 있었다.

복학을 해서도 내 가방에는 항상 사전이 들어 있었다. 토익과 토플을 위한 사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청년 실업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할수록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학 점수만 좋으면 먹고는 살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무조건 외워댔다.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럴수록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그래도 단물은 확실히 빼먹었다. 취침용으로. 복잡해진 머리는 내 눈을 감기게 했고, 사전이 베개로 안성맞춤 아닌가! 침도 많이 흘렸다. 그게 푹 잤다는 소리 아닌가? 최근에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저 호기심으로 몇번 접속했던 영국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 홈페이지에 매일같이 방문하고 있다. 외신 읽기가 쉽지 않은 만큼 영어사전을 들춰보는 횟수도 많아진다. 어떻게 보면 진짜 단물은 요즘에 다 빨아먹는 것 같다. 전날 외신에서 본 기사들이 오늘자 신문 국제면에 실리는 걸 보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하다. 단맛나는 재미있다.

곽정훈(자유기고가)/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의 오래된 물건] 따뜻한 밥이 어디랴

▣ 곽정훈(자유기고가)

 


사실 이 물건의 주인은 우리 어머니다. 하지만 이 보온밥통을 매일 쓰는 사람은 바로 나다.

 

이 녀석으로 마지막 식사를 했을 때가 고3이었으니, 이 밥통은 10년 이상을 우리 집 찬장 안에 처박혀 있던 셈이다. 이 보온밥통의 ‘초라한 컴백’은 어느 가을날에 이루어졌다.

 

사실 난 취업준비생이다. 말이 취업준비생이지 매일같이 도서관을 전전하며 취업 공부를 하고 있는 백수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전에는 ‘쌍팔년’이라는 어감 때문에 더욱더 꺼렸던 88만원 세대들이 부럽기까지 할 정도다. 왜? 비정규직이라도 88만원 세대들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달력상으로는 늦가을이지만 얼음이 얼었던 저녁이었다. 마침 매점 문도 닫아 도서관 계단에 쪼그려 앉아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그날따라 계단의 불도 나갔다. 가뜩이나 비참한 신세를 더욱더 비참하게 한 건 싸늘하게 식은 밥이었다. 낮에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는데, 계단에 쪼그려 앉아 찬밥을 먹으려니 왈칵 울음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군대에서 전투식량 먹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얼마나 서럽던지!

 

이 보온밥통 덕분에 그나마 찬밥 신세는 면할 수 있게 됐다. 얼핏 보면 원자력발전소 같은 곳에서 위험물질 운반용으로나 쓰일 것 같은 투박한 외형이지만, 보온도 꽤 된다. 저녁 때도 밥에 온기가 가득하게 남아 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다.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해본다. 그나마 더운밥 먹는 게 어딘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라 퇴사는 엄두도 못 내면서 숨죽여 공무원 교재를 펼쳐보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하지 않던가. 그에 비하면 난 학습에 전념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 이 보온밥통으로 더운밥 먹고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천지에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트는데, 내 인생에도 봄기운이 스며들어 희망의 싹이 텄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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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애이불비_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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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찍어놓았던 사진...정말로 영리했다능 ㅠㅠ

 

 

출처 : ★9꿈사★9급공무원을꿈꾸는사람들
글쓴이 : 내일은 출근 원글보기
메모 : 이쁜 진돗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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