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면 오동나무, 아들이면 잣나무를 심었다 


내 나무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의 옛 선조들

 





우리 선조들에게 나무란 어떤 존재였을까? 너무 막연한 질문일까? 그럼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민들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이 두 개의 질문의 답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두 질문의 답의 간극이 무척 멀다는 것을 말이다. 꼭 답을 말하지 않더라도 질문 자체만으로도 그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숲 생태 공부는 나무와 관련된 옛 선인들의 생활방식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학습의 장이 된다. 현대인들보다는 나무와 교감을 훨씬 더 많이 했던 옛 조상들이기에 훨씬 더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무 옆에 서 있는 선조들과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도끼를 들고 있는 이들도 있을 거고, 바구니를 들고 임산물을 채취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 소나무 서울성곽 옆에 있는 소나무. 잣나무와 소나무가 아들나무로 심겨졌다.

                                                                      ⓒ 곽동운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딸나무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이다. 예전에는 딸을 낳으면 집 앞에다 오동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오동나무를 두고 딸나무라고 칭했다. 딸나무가 있으면 아들나무도 있을 터! 그렇다. 아들나무도 있었다. 딸나무에 비해 많이 회자되지는 않지만 분명 아들나무도 있었다. 아들나무는 잣나무였다.

일단 오동나무에 대해서 알아보자. 오동나무는 생장이 빠른 것이 특징이다. 심은 지 1년 만에 사람 키만큼 자란다. 그래서 15년 정도가 되면 이미 15미터가 넘을 정도로 키가 커져 있다.

지금이야 1인 가구들이 넘쳐나고, 결혼도 늦추는 추세라 30대가 훌쩍 넘어 결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하지만 예전에는 다들 일찍 시집장가를 가지 않았는가. 그렇게 시집을 갔던 나이가 15~16살 경이었다. 꽃가마 타고 떠나갈 딸을 위해 집안 식구들은 오동나무를 베었다. 오동나무로 장롱이나 반닫이 같은 가구를 만들어 혼수로 보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혹시 나무가 생장이 빠르면 내구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일반적으로 생장이 빠른 나무는 단단하지 못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오동나무는 다르다. 그렇게 빨리 생장하지만 가구 제작에 적합할 정도로 튼튼하다. 또한 습기에 강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구 제작은 물론 악기제작에도 널리 쓰이는 것이 오동나무다.
  


 

▲ 장롱 오동나무는 습기에 강하고 내구성이 좋아 가구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사진에 보이는 장롱은 반닫이장이다.             

       ⓒ 곽동운

                                                                             




아들나무는 관으로 짜였다

딸나무로 오동나무를 15년 정도를 바라보고 심었다면, 아들나무인 잣나무는 60~70년을 바라보고 심겨졌다. 기대수명이 짧았던 그 옛날에 60년 이상 나무를 길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렇다. 일생을 같이 한 후 그 아들나무를 잘라 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아들이 죽으면 그 아들나무도 일생을 마치게 됐던 것이다.

딸나무는 '실용성'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이에 비해 아들나무는 '운명체'라는 표현과 어울린다. 나무의 주인과 일생을 함께하다 죽을 때 함께 죽고, 관이 되어 함께 흙에 묻히니까.

한편 아들나무로 꼭 잣나무가 심기지는 않았다. 잣나무의 사촌인 소나무도 아들나무로 심겼다. 얼핏 보면 소나무나 잣나무나 비슷하게 생겨서 쉽게 구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둘을 구분하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소나무는 잎이 둘이고, 잣나무는 잎이 다섯이다.

이렇듯 옛 선조들은 딸을 낳았을 때는 딸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았을 때는 아들나무를 심었다. 옛날 이 땅에 태어난 아가들은 그렇게 태어나자마 자신의 나무를 갖고 태어났던 것이다. 이름을 갖듯 내 나무를 가졌던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가? 자신의 나무가 있는가? 없을 것이다. 아니 나무에 눈길을 제대로 준 적도 거의 없을지 모른다. 이렇듯 현대인들은 나무와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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