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일간스포츠 박상언]
꼭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분위기다. 환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고, 주식은 끝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등 외환위기가 몰아친 1998년 가을과 영락없이 닮은 꼴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상황에는 먼 길을 나서는 것도 두렵다. 그렇다고 만추의 고적함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 이럴 때에는 자동차 대신 '뚜벅이'를 감수한 채 자연의 싱그러움 속으로 몸을 내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여느 해보다 고왔던 단풍의 흔적이 남아있는 늦가을의 정취가 낭만적인 산을 찾는다면 잠시나마 시름을 덜어버릴 수 있을 듯 싶다. 다행히 지하철과 전철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거미줄처럼 이어져 약간의 발품만 투자한다면 하루 걸이의 훌륭한 나들이가 되겠다. 지하철과 전철을 이용해 가볼 만한 수도권 산행 코스를 소개한다.

철마가 가는 길 끝까지-경원선

지하철 1호선과 연결되는 경원선은 휴전선 인근 최북단인 경기 연천군의 신탄리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로 적지 않은 산들이 늘어서 있어 주말이면 산행을 즐기려는 나들이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룰 지경이다.

대표적인 산행지는 도봉산(739m)이다. 최고봉인 자운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도봉산은 끝에서 끝까지 종단하려면 8시간 내외의 산행 일정을 잡아야 할 만큼 큰 산이다. 하지만 굳이 종단이 아닌 정상을 밟고 내려올 요량이라면 다양한 산행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경원선에서는 도봉산역·망월사역·회룡역 등에서 도봉산 산행이 가능하다. 우선 자운봉 동쪽에 자리한 도봉산역에서 출발하면 자운봉까지 왕복 두 시간 30분이면 가능하다. 망월사역과 회룡역에서는 자운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포대능선을 지나야 하는 까닭에 1시간 정도 더 필요하다.

의정부를 지나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 양주역에서 하차하면 양주의 진산 불곡산을 만난다. 해발 460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암릉과 경사진 능선이 많고, 암봉 위에 얹혀진 바위 틈을 빠져나가거나 로프에 의지한 채 통과해야 하는 등 아기자기한 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의정부와 동두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불곡산은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호젓한 산행에 제격이다. 동두천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5㎞ 올라가면 닿는 소요산역에서는 작은 규모에도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소요산(536m)과 곧바로 연결된다.

그리고 경원선의 종착지인 신탄리역에서는 고대산(832m)이라는 봉우리가 숨어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산의 정상은 북쪽 휴전선을 넘어 북녘의 철원평야와 한국전쟁 때 격전지인 백마고지, 금학산과 지장봉·향로봉은 물론 한탄강 기슭의 종자산까지 바라보이는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북으로 향하는 철로의 끝임을 알리는 녹슨 철마를 잠시 감상한 후 역사를 나서면 곧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한강 따라 달리는 가을여행- 중앙선

지난해 말 개통된 중앙선 전철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팔당 인근의 산에 대한 접근성을 훨씬 높여줬다. 그 동안 버스를 제외하곤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극심한 교통체증을 감수하지 않으면 언감생심이었던 곳이다.

예봉산(683m)과 검단산(650m)이 가까운 팔당역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서울에서 산행을 즐기려 찾아드는 나들이객으로 항시 북적이고 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면 한 시간 이내로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특히 남양주시 양정역을 지나면 전철이 한강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마치 강변 드라이브를 즐기는 듯한 느낌까지 전해준다.

팔당역에서 내리면 북쪽으로 예봉산, 남쪽 강 건너편에 검단산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짙은 산림으로 우거진 두 산은 수도권에서 가벼운 산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예봉산 산행은 팔당역에서 팔당2리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마을회관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면 된다. 왕복 3시간 코스이지만 1.5㎞ 정도 떨어진 적갑산(561m)을 거쳐 하산하면 40분 정도 더 소요된다. 정상에 오르면 팔당호는 물론 하류로 흘러드는 한강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예봉산에서 한강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검단산(650m)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광주목의 진산이라 일컬을 정도로 특이한 산새를 자랑한다. 산행 시작 지점에서는 산세가 가파르지만 이를 지나면 완만하게 정상까지 안내한다. 곳곳에 철지난 억새풀이 바람따라 이리 저리 휘날리며 늦가을 정취를 더해준다.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면 맑은 날 북한산·도봉산 줄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세종대왕의 능을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는 바람에 닦아놓은 능터가 남아 있으며, 구한말 '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의 묘가 있다.

수도권 전철역과 인접해 당일 코스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도 많다. 도봉·도봉산·의정부역(1호선)과 수락산역(7호선)에서 가까운 수락산, 태릉입구역(7호선)에 인접한 불암산, 구파발역(3호선)에서 가까운 북한산, 서울대입구역(2호선), 과천역(4호선)에서 가까운 관악산, 양재역(3호선) 인근의 청계산 등도 당일 일정에 알맞는 수도권 산행지이다.

박상언 기자 [s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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