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철썩... 파도를 따라 걷는 속초해변트레킹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

 

 

 

 
▲ 속초해수욕장 황토빛 모래사장과 푸른 동해바다가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주는 모습이 장관이다. 외옹치에서 바라본 속초해수욕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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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 외옹치에는 약간의 경작지가 존재한다. 두 노부부가 경작하는 이 고구마밭은 가을걷이가 끝났다. 고구마밭을 넘어 펼쳐진 속초해수욕장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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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가 보이는 속초로 가자!

 

서울 - 춘천간 고속도로의 개통, 미시령터널의 개통 등으로 이제 속초는 서울에서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해안 도시가 되었다. 속초시 관광안내 책자에는 '1시간 40분'이라고 적혀 있다. 그만큼 강원도 해안 도시로의 접근은 용이해졌다. 너무 서울 중심적인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속초나 강릉 같은 도시들은 서울의 근교 바닷가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속초에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있다. 일명 속초해변길!

속초해변트레킹의 시작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외버스터미널→ 속초관광수산시장(입구)→ 아바이마을→ 속초해수욕장→ 외옹치→ 대포항

속초해변트레킹은 이런 곳들을 통과하는데 거리는 약 8km 정도 되며,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약 3시간 정도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시내를 중심으로 속초는 남쪽과 북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속초해변트레킹은 속초시 남쪽에서 이루어진다.

 

 



아바이마을과 갯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유명한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방향을 잡고 가면 아바이 마을 있는 청호동이 나온다. 아바이 마을은 1·4 후퇴 때 남하했다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이다. 정착 초기에 함경도 사람들, 특히 노년층이 많았는데 함경도 방언으로 '아바이'가 할아버지란 뜻이기에 아바이 마을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됐다고 한다.

속초는 38선 이북에 있던 지역으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 쪽에 속해 있었다. 휴전이 됐을 때, '동쪽의 38선'은 북상했다. 그러나 '서쪽의 38선'은 하강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38선 이북이었던 속초는 현재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2시간이지만, 38선 이남이었던 개성은 아무나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실향민들은 조금이라도 고향에 가까운 곳에다 삶의 터전을 잡았던 것이다. 함경도 도민들이 집단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그곳에는 전통적인 속초지역의 문화와는 다른 음식문화와 언어문화가 자리잡게 됐다. 그런 음식문화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다.

동네 떡볶이집에서 파는 일반적인 순대는 돼지 창자 속에 당면을 넣지만 아바이순대는 찹쌀과 선지 등을 넣어 독특한 맛을 낸다. 오징어순대도 마찬가지다. 옛날부터 강원도를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서는 돼지가 귀해 오징어를 이용하여 순대를 만들어왔다. 그런 방식의 오징어순대가 아바이마을에서는 함경도식으로 변형이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입가에는 군침이 흐르고 있다. 아바이마을에서 맛 본 오징어순대가 입가에 맴돌아서...

 
▲ 갯배 배 삯이 200원인 갯배. 시내 중심부와 아바이 마을을 연결해주던 갯배는 이제 속초의 또다른 명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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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마을이 있는 청호동은 트레킹을 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그냥 동네 주택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초에 가면 한 번쯤은 꼭 가볼 곳인데다 청호동과 중앙동을 이어주는 설악대교에서 바라보는 속초 시내의 모습이 장관이기에 속초해변트레킹 코스에 포함시켰다.

한편 아바이마을에는 '갯배'라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갯배는 중앙동과 아바이 마을이 있는 청호동을 이어주는 무동력 선을 말한다. 양쪽 선착장에 걸려 있는 밧줄을 끌어 당겨 그 힘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아바이마을은 육지 속의 섬과 같은 형상이다. 그래서 이 갯배가 없었다면 5분 정도 걸릴 거리를 30분 정도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설악대교(2003년 개통)와 금강대교(2013년 7월 임시개통)가 건설되어 이 갯배가 없어도 시내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전에는 이 갯배가 아바이마을 사람들의 다리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한편 이 갯배의 배 삯은 200원이라 부담이 없어 좋다.

 

 
▲ 조도 속초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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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해수욕장과 조도

 


아바이마을을 빠져나오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인 해변 트레킹이 시작된다. 거기서부터가 속초 제일의 명소라고 불리는 속초해수욕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속초 해수욕장은 황토빛 모래사장이 인상적인 곳이다. 약 1km 정도에, 질 좋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새들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조도(鳥島)가 두둥실 푸른 동해바다에 떠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더구나 바다 반대편에는 우뚝 솟은 설악산이 내려다보고 있어 여느 바닷가 해우욕장과는 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사실 속초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다. 느릿느릿 걸어도 30~40분 정도면 끝부분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해운대나 경포대 같은 '광대역' 백사장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성이 안 찰 수도 있다. 하지만 광대역보다는 아기자기함을, 더불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속초해수욕장에 더 높은 점수를 줄지도 모른다.

속초해수욕장의 끝자락에는 외옹치라는 작은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속초해수욕장 일대와 속초 중심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푸른 동해바다의 물결과 황토빛 모래사장이 서로 서로의 배경색이 된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 외옹치 외옹치는 해안가로 툭 튀어나온 형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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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옹치와 외옹치항

속초해수욕장에서 외옹치를 바라다보면 마치 어떤 산 하나가 바닷가를 향해 뛰어들려는 형상이다. 평평한 해안가가 계속 이어지다 외옹치 부근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 나온 모습이라는 것이다. 외옹치(外瓮峙)라는 명칭도 바깥(外)으로 튀어 나온 항아리(瓮) 같은 언덕(峙)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외옹치에는 짧기는 했지만 숲길도 있었다. 속초시 지형도를 보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동쪽 방면으로 내려온 줄기는 주봉산을 타고 내려오다 바다를 앞에 두고 외옹치가 된다. 즉 외옹치에서는 동해바다와 설악산이 서로 만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형적인 특색 때문인지 외옹치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된 것이다. 사실 외옹치 해변은 2005년 전까지만 해도 군사용 철책이 들어서서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한편 같은 해에 동쪽에 주둔하고 있었던 군부대도 철수하게 되어 지금의 외옹치의 모습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외옹치 일대에는 해안 방어를 위해 군 초소가 남아있다.

 

 

 

 

 

 

 

 
▲ 외옹치항의 야경 철책선 위로 불빛이 비취고 그 반대편에는 보름달이 떠올랐다. 동해바다와 어루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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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해변트레킹 코스 빨간색으로 그려진 부분으로 이동한다. 이동거리는 약 8km 정도다.

 


● 도움말
1. 서울 동서울터미널 기준으로 속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속초에는 고속버스터미널도 있는데 그 곳은 속초해수욕장 입구 부근에 있다.

2. 대포항에서 트레킹을 마친 후에는 7번 국도쪽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올 수 있다. 버스 노선이 많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3. 춘천에서 속초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춘천 같은 강원도 서부 내륙지역도 속초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가 않다.

 

 

 

 

다툰 연인들에게 특효약인 '단풍천국길'

 

오대산 선재길을 걸으며 얻은 깨달음

 

14.10.22 09:22l최종 업데이트 14.10.2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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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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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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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일로 기억한다. 당시 필자는 여자 친구와 심하게 다투었고, 화가 난 나머지 도망치듯 강원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분이 풀리지 않아 버스 안에서도 '씩씩' 거렸다.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에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평창군에 있는 오대산이었다. 그 전부터 오대산에 가려고 단단히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그런 준비과정이 무색할 정도로 필자는 '멘탈 붕괴' 상태로 월정사 부근에 도착했던 것이다. 사찰에 들어서도 씩씩거렸던 걸로 기억한다. 산행을 하면서도 씩씩거렸다.

서로 다툴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게 사랑 아닌가? 갈등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주거리'도 안 될 만큼 사소한 다툼이었지만 당시는 상당히 심각했다.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방향을 잡을 때까지도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길을 터벅터벅 걸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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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원사 상원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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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까지 와서 티격태격하다니!


지난 12일. 정말 오랜만에 다시 오대산을 방문했다. 10월 중순을 향해가고 있던 시기라 그런지 오대산은 온통 오색찬란한 단풍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날씨도 화창해서 푸른 하늘과 울긋불긋한 산들이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주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단풍놀이하기에 제격이었다. 그래서인지 월정사부터 상원사 입구까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산악회 버스들과 승용차, 등산객들까지 서로 뒤엉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찰에서 사찰로 연결되는 도로인데 그 길을 사람과 차로 막아선 느낌이었다. 그렇게 붐비다 보니 다툼도 일어났다. 주차 문제로 서로 삿대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오대산 하면 문수보살 신앙의 중심지이고, 문수보살하면 깨달음의 지혜를 품고 있는 분인데. 사람들 참 적당히 좀 하지! 여기까지 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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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 푸른 하늘과 잘 어우러진 단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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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들이 걸었던 옛길, 선재길

 


도시에서 봤던 주차 문제를 오대산까지 와서 지켜보자니 저런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곧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선재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선재길은 2013년 가을에 개통된 도보여행길로 월정사와 상원사를 연결하는 트레일(오솔길)이다. 선재길은 스님들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갈 때 다니던 옛길이었다. 월정사가 643년, 상원사가 724년에 창건됐으니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길인 셈이다.

'선재'라는 말도 불교용어다. 동자인 선재는 지혜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표상으로 <화엄경>의 중심인물이다. 월정사를 창건한 자장은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뒤뜰에 53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53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만난 선지자의 숫자였다. 정리를 해보면, 옛 스님들이 오가던 선재길을 걸으며 '나를 찾아보는' 깨달음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안내문에도 선재길을 걸으며 선재동자처럼 깨달음을 얻어 보라고 적혀 있었다.

 

 


 

 

 
▲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 선재길은 2013년 10월에 개통된 길이다. 오래전 스님들이 오가던 옛길을 되살려, 일반인들도 걷기 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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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재길 계곡길을 따라가는 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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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천국 선재길, 여기가 혹시 무릉도원?

 


선재길을 걸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걷다보면 오색찬란한 단풍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며 집착과 번뇌를 잊어버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섶다리, 징검다리 같은 정겨움을 더하는 구조물들이 있었지만 선재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계곡이다. 시원스레 물줄기를 뿜는 상원사 계곡길 주위로 울긋불긋하게 펼쳐진 단풍나무 숲을 지날 때의 매력이란! 그 매력에 빠지며 걷다보면 무아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맑은 계곡물 위로 붉은빛을 머금은 단풍잎 하나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니까.

오대산 선재길은 약 9km 정도에 달하는데, 계곡을 끼고 있는 길치고는 경사도가 상당히 완만했다. 그래서 넉넉히 휴식시간을 갖는다고 해도 3시간이면 완주가 가능하다. 대신 계곡길이란 한계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에는 폐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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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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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관계는 깨달음의 영역이 아닌가?

 


10년 전 필자는 선재길을 걷지 않았다. 그때는 선재길은 없었으니 걸을 수도 없었다. 어쨌든 월정사 쪽에서 상원사로, 또한 그 넘어 비로봉으로 올라가다보니 무언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는 봄날이었는데 상원사 계곡물에 봄꽃들이 흘러가는 모습에 무언가 큰 감흥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도 계속 씩씩거린다면 오대산에 올 자격도 없지!"

문수보살의 깨달음이 전해졌는지, 서울로 올라가자마자 여자친구에게 '백기투항'을 했다. 그 덕택인지 애정 전선에는 평화가 깃들었다. 하지만 영구적인 평화는 없는 것인가? 어느 순간 그녀는 떠나버렸고, '전선'을 펼칠 대상조차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남녀 관계는 깨달음의 영역이 아닌가... 이 부분은 문수보살님도 어찌 하시지 못하는 건 아닌지...

10년 전 봄날과 올 가을을 빗대서 생각해 보니, 선재길은 가을도 좋고 봄에도 좋은 길인 듯싶다. 가을에는 단풍 트레킹, 봄에는 봄꽃 트레킹을 향유할 수 있으니까. 그럼 내년 봄 트레킹 목록에 선재길은 맨 앞쪽에 등재되겠군! 내년 봄에는 선재길을 걸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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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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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오대산 선재길: 약 9km / 예상이동시간 3시간 정도.

 


2. 동서울터미널에서 평창군 진부면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음. 배차간격 1시간. 소요시간 2시간 20분.

 


3. 진부면 공용터미널에서 상원사 입구까지 군내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음. 하루 6편 운행. 월정사행은 하루 12편 운행.

진부에서 상원사까지 약 55분 소요됨.

4. 월정사행이 버스편이 많음으로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함.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라고 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 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선돌

다음 목적지는 선돌이었다. 선돌은 서강 강변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다. 선돌은 그 자태가 오묘하여 예로부터 '신선암'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런 기묘한 모습 때문에 선돌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예전에는 전망대에 올라 선돌에서 서강을 내려다 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래쪽에서 선돌을 올려다 볼 생각으로 수풀을 헤집고 나갔다. 선돌 옆으로는 서강이 동강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인적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없으면 길도 사라지는 걸까? 선돌로 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잡초가 무성하여 길을 잡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보람이 있었다.

"이야 정말 멋지군! 위에서 볼 때랑은 또 완전 다르네. 봐봐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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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돌 여름날의 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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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돌 여름날의 선돌. 화면 중앙에 있는 것이 선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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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돌 선돌의 겨울. 서강이 꽁꽁 얼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선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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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선돌을 내려 볼 때하고는 또다른 맛이었다. 큰 기암괴석이 눈 앞에 떡 하고 서 있으니, 그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한편 전에는 서강이 꽁꽁 언 겨울 풍경을 내려다 봤는데 이제는 푸른 강물과 조화를 이룬 선돌을 보게 됐다. 그것도 역시 색다른 맛이었다.  

청령포 터널이 숨어(?)있는 방절산 탐방으로 영월에서의 일정은 마무리가 됐다. 방절산은 청령포 선착장 뒤편에 있는 작은 야산인데 이곳에 올라서면 청령포 일대는 물론 영월읍내도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또한 멀리 동강과 서강이 합수되어 남한강을 이루는 곳도 보인다. 이 곳 역시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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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기차터널 청령포 기차터널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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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기차터널 청령포 기차터널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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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방절산 탐방까지 마치니 3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며칠 더 영월에 머물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베이스캠프를 해체해야 했다. 갈 길이 구만리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예상했던 이동거리는 진작 파기했다. 일정 정도 감안을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속도가 너무 안 나왔다. 장거리 자전거여행만 5년째인데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됐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속도가 안 나오는 만큼, 또 나름대로의 재미도 있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여행이나 인생살이나 비슷한 거 같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지만 예상외의 것에서 재미와 위안을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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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절산 방절산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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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절산 방절산의 겨울. 영월읍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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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내륙자전거여행 5편: 강원도 영월의 여름과 겨울

 

 

14.01.07 14:06  최종 업데이트 14.01.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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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지형 영월군 서면 선암마을 부근의 한반도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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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강 기암괴석들이 열을 지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얼핏보면 물 속에 괴물이나 악어떼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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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6일째: 2013년 8월 20일


겨울 다르고, 여름 다른 우리나라! 기후 온난화로 뚜렷한 4계절이라는 말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봄·여름·가을·겨울이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나라! 그래서 누구는 이런 말을 한다. 방문한 여행지를 제대로 알려면 4계절을 다 맛(?)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일상에 쫓기는 생활인들이라면, 제대로 마음 놓고 여행하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지역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곳이 계절마다 '패션너블'한 옷을 갈아입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철마다 달라진 옷 색깔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분주히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런 '패션쇼'를 경탄의 눈으로 감상하며 여행자들은 이런 말을 내뱉을 지도 모른다.

"계절 바뀌고 나서 또 와야지."

 

 


# 철이 바뀔 때마다 오고 싶은 영월

강원도 영월은 필자에게 그런 곳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고 싶은 곳이 바로 영월인 것이다. 봄에는 꽃들이 만발해서 좋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서 좋고, 가을에는 단풍여행 해서 좋고, 겨울에는 얼음놀이 해서 좋은 곳이다.

이전까지 영월에서는 주로 트레킹을 했었다. 영월은 유명한 동강 뿐아니라 서강과 주천강 등도 흐르고 있는데 이런 강들은 하나 같이 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필자는 이런 곳에서 강변트레킹을 했었다. 꾸불꾸불한 강변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꼭 '철 바뀔 때마다' 다시 올 것을 다짐했었다. 그래서 중부내륙 자전거여행에서도 일부러 영월을 코스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트레킹을 했던 곳을 자전거여행으로 다시 찾았을 때의 그 느낌이란 참으로 묘했다.  감정이 오묘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다시 왔군. 다시 왔어. 이번에는 혼자 오지 않고 자전거랑 같이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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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강 강물에 누군가가 돌로 금을 그은 것 같다. 멀리서보면 괴물의 등지느러미나 악어떼처럼 보이는데 자세히보니 차별침식을 받은 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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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강이 흐르는 주천면에서 1박을 한 후, 물길을 따라 한반도 지형이 있는 선암마을 부근에 도착했다. 주천강은 태기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한반도면에서 평창강과 합수되어 서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다시 서강은 영월읍내에서 동강과 합수되어 남한강을 이루어 충북 단양으로 물길을 잡는다.

한편 주천강은 기이한 풍광을 품고 있었다. 물 속에 잠겨 있는 암석들이 일렬로 늘어진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등지느러미 같이 생긴 것들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강물 속에 엄청난 괴물(?)들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네스호에 괴수가 살 듯... 혹시 주천강에도?

 

 



#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어느덧 필자는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도달하게 됐다. 청령포 선착장 인근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24시간 개방되는 화장실도 있고 텐트를 칠 공간도 넉넉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청령포 베이스캠프에서 삼 일을 머물면서 본격적인 영월 탐방에 나섰다.

청령포는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배후면에는 가파른 산이 놓여 있어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그래서 청령포는 지금도 배가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1457년 6월 초순, 단종을 복위시키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단종도 그 사건에 연류된다. 불똥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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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청령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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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청령포의 겨울. 이렇게 강물이 꽁꽁 얼 때는 배가 운항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음 위를 걸어서 청령포에 간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 바로 청령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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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에서 졸지에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청령포로 유배를 오게 된다. 하지만 단종은 청령포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해 여름 홍수를 피해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해 10월 하순에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사됐다. 그때는 그나마 있던 '노산군'이라는 지위도 박탈되고 서인 신분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넉 달 정도 밖에 안 되는 단종의 유배생활. 그의 짧은 생애만큼 유배생활도 아주 짧았던 셈이다.


단종의 탄식과 절규가 곳곳에 베어 있는 청령포지만 그 모습은 절경중의 절경이다.
깎아질 듯 급경사를 이룬 육륙봉과 청정한 서강의 모습이 어우러진 청령포의 모습은 누가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다. 350도로 청령포를 휘돌아 나가는 서강의 물줄기 또한 힘이 넘친다. 이런 모습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고 생각해 보시라! 그 모습은 분명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광경일 것이다.

 

 


 

 

 

 

 

 

 

속이 쓰려도 여행은 계속된다!___ 2부

 

[중부내륙자전거여행 4] 종북 딱지 붙이기 놀이 그리고 말로만 '안보'

 

 

 

 

종북 딱지 붙이기 놀이, 그리고 말로만 '안보'

이런 진지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맨 마지막 문제 같은 경우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현재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있는 김용갑이라는 분이 있다. 이 분에게는 '안보의 첨병'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만큼 강경파였다는 것이다. 안기부 출신이었던 김용갑 전 의원은 1989년 정계에 출사표를 내던지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보수들은 다 죽었는가?'

당시 국회는 여소야대를 이루었고 그것에 대한 반발격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추측된다. 국회입성 이후 김용갑 의원은 줄기차게 햇볕정책을 비롯한 남북화해 정책에  반대를 표명해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안보의 첨병 슬하에 있는 3명의 아들은 다 현역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명은 아예 면제고, 그나마 한 명은 공익근무를 했다. 뚱딴지같지 않은가? 진정한 안보의 첨병이라면 자신의 핏줄부터 현역복무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해야 하지 않은가? 국방과 안보는 말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자신의 혈육은 국방의 최일선에서 쏙 빼놓고, 다른이들에게 목청 높여 안보를 외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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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이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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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터 강원도 횡성군에서 영월군으로 넘어갈 때 넘는 곳이 바로 도깨비도로다. 그 도깨비 도로 옆을 가고 있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저렇게 빨래를 하시고 계셨다. 요즘은 보기 힘든 장면이라 한 컷 찍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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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의원도 마찬가지다. 현재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맡고 있는 윤상현의 병역 이행 유무를 살펴본 필자는 경악했다. 1988년 5월 14일에 입대해서 당일날에 전역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군복무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징병제를 도입한 근대 국민국가 중에, 입영대상자가 단 하루만의 복무로 전역을 했던 일례가 있었던가? 필자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아예 화끈하게 면제를 받던가.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윤 의원은 군번이 있으신가?'
'총기 및 총번을 부여받으셨나?'
'사격과 수류탄 투척 등 기초 군사훈련을 받으셨는가?'
'하루만 군복무를 했다면, 스스로 창피해서라도 안보를 목청껏 높이기 어렵지 않은가?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선거로 일어선 자, 선거로 망하나?

최첨단 IT시대에도 아직까지 3대 세습을 통한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북한을 보면 짜증이 확 난다. 필자는 일본의 아베 총리를 싫어하는데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도 싫어한다. 아베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꿔서 싫다. 김정은은 그냥 싫다. 뭐 준 거 없이 싫다. 좋아할 이유도 없으니까.

어쨌든 그런 북한정권에 맞서 안보의 기치를 높이 세우려면 스스로가 당당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반대편만 보면 다 김정은이라고 생각되는지 다짜고짜  '종북 딱지붙이기 놀이'부터 하는데, 혹시 자신이 당당하지 못하기에 그렇게 앙칼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 분들은 쓸데없는 딱지붙이기 놀이로 사람들을 몰아세우지 말고 자신이 과연 안보나 국방에 대해서 당당하게 발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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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흥면 안흥찐빵 안흥찐빵은 횡성군 안흥면의 명물이다. 사진에 등장한 곳은 면사무소 앞에 있는 빵집이다. 외벽에 그려진 빵집 아줌마의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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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보자. 얼마전에 군 사이버사령부 선거 개입에 대한 중간발표가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발표 내용은 이랬다고 한다.

"군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행위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대선에 개입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과연 그런가? 노골적인 여당 후보 편들기와 야당후보 흠짓 내기를 한 댓글이 증거 자료로 나왔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중립의무를 위반했는데 대선 개입은 아니라는 발언은 '밥은 먹었으나 식사는 하지 않았다'와 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말장난을 아웃도어식으로 바꿔서 해보면 이렇게 된다.

'텐트를 쳤으나 캠핑은 하지 않았다!'

국정원이나 군 사이버사령부 선거 개입을 주변 강대국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국내외 정보수집을 맡고 있는 고급엘리트들이 댓글이나 달고 있고, 국방의 의무를 맡고 있는 군인들이 선거 개입 SNS나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나 대한민국을 업신여겼겠는가!

이 사태에 책임은 분명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박근혜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게 쉽게 해결될 거 같지 않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댓글로 도움을 받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을 것이다. 선거의 여왕이 겨우 댓글 따위에 의탁했다니!

그냥 모른척 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랑스런 불통'이라고 위안을 삼고 싶겠지. 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어리석은 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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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박 강원도 횡성군과 영월군 접경지대에 있는 한 공사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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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쓰려도 여행은 계속된다!

여행 4일째: 8월 18일

이런 웃지못할 촌극들 때문에 필자의 속은 계속 쓰릴 것 같다. 여행할 때나 이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이나... 하지만 여행은 계속됐다. 할 건 해야지.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횡성군 안흥면에 도착한 필자는 안흥찐빵으로 배를 채우고 강원도 영월군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가려면 도깨비 도로라는 곳을 넘어야 했다. 그곳의 입간판에는 '신기하고 재미난 도깨비 도로'라고 적혀있었지만 필자에게는 그저 힘들고 어려운 도로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도깨비 도로에서 지체를 하다보니 이미 세상은 어두워졌다.

또 텐트를 칠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3일째인데 3일 내내 텐트를 제때 쳐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마나 달빛이 밝아 운치는 있었다. 그 달빛을 벗삼아 나름대로 시를 읊어봤다.

달에 있는 옥토끼 잡아다
이 수풀들 찧게 해야지
평평하게 다져지면 그곳에다
침낭깔아 대자로 누우리라!

그렇게 실없는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었는데 야영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널찍한 곳에 땅이 평평하게 잘 다져진 곳이었다. 이게 웬 횡재냐! 자세히보니 그 곳은 바로 공사가 중단된 공사장이었다. 다짜고짜 들어갔다. 공사가 중단됐으니 하룻밤 신세를 진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테지! 필자는 그 곳에서 상당히 낭만적인 하룻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텐트를 치지 않는 방식, 즉 비박으로 낭만적인 밤을 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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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에서의 비박 비박이란 야외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 취침을 하는 것을 말한다. 텐트를 설치하면 캠핑이 되는 것이고, 사진에서처럼 그냥 침낭만 깔고 자면 비박이 되는 것이다. 처음 달빛에 봤을 때는 팬션이나 마을회관을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인 집이었다. 어쨌든 남의 집 공사장에서 비박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신 잠은 무척 맛있게 잘 잤다. 모기가 걱정이었는데 모기도 안 물리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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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쓰려도 여행은 계속된다!___ 1부

 

[중부내륙자전거여행 4] 종북 딱지 붙이기 놀이 그리고 말로만 '안보'

13.12.24 17:42  최종 업데이트 13.12.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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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와 자전거 횡성 읍내에서 찍은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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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일째: 8월 17일


전날 119의 도움으로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 일대에서 무사히 캠핑을 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밤을 지새울 수는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그건 아주 쓰라린 신호였다.

"우읍~~~ 꺼억"

 


쓰린 속을 붙잡고 여행을 이어갔다!

뱃속을 부여잡고 텐트에서 한 바퀴 굴렀다. 쓰린 속을 두 손으로 문질러댔다. 위산과다였다. 목구멍에 무언가 턱하니 하고 걸린 느낌 때문에 새벽에 몇 번이나 잠을 야 했다. 서울에서부터 기미가 보이더니만 결국은 수면 위로 올라와 '나이트메어'가 됐던 것이다.

화장실에서는 넉넉히 일을 잘 봤기 때문에 별 일 아니라고 여겼고, 그래서 위장병을 치유하지 않고 그냥 출발을 강행했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그저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장운동이 잘되어 위장도 튼튼해질 줄 알았다. 자전거여행으로 몸을 '치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짓! 어쭙잖은 자가 진단으로 몸을 막 굴려댔던 것이다. 다리에 무리가 많이 갈 거 같아 그에 맞는 비상약은 준비했지만 위장약은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행이고 뭐가 다 귀찮아졌다.

'이 쓰린 속을 붙잡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냥 여기까지만 갔다 남은 구간은 나중에 도보여행으로 채울까?'

이러저런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해졌고 몸은 축 늘어졌다. 한참을 그냥 텐트 속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쫑 낼 수는 없잖아. 그래 일단 읍내에 가서 약국을 찾아보자. 해볼 건 다 해보고 포기하자고!'

여기서 여행팁이 하나 생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에는 필요한 구급약을 챙겨가야 한다. 진통제, 반창고, 소화제는 필수품목이다. 또 에어파스도 꼭 챙겨야한다. 이 에어파스는 유사시에 호신용 무기로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들개들이 공격할 때 안면부에 분사를 하면 위험한 순간을 모면할 수 있다. 후각이 예민한 야생동물을 잠시나마 교란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여름이었지만 필자는 핫팩도 하나 가져갔다. 갑자기 산 중에서 폭우를 만나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속쓰림을 다스리는 위장약은 챙기질 못했다. 다른 건 다 있었는데 딱 그것만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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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 성당 횡성성당은 1950년대 지어진 성당이다.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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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있는 라면, 피자, 통닭, 삼겹살을 포기하라고요?


"라면, 피자, 통닭, 삼겹살... 등등...  뭐 이렇게 기름진 건 드시지 마시고, 식사는 정기적으로 하세요. 소식으로요."
"라면, 피자, 통닭, 삼겹살... 그거 다 제가 좋아하는 건데요. 그리고 저는 아웃도어 하는 사람이라 밥을 많이 먹어야 되는데..."
"병은 고치셔야죠. 안 그러면 그게 위궤양이 되고, 그러다 위암이 되는 거에요."
"예? 위암이요?"

횡성군 읍내에 있는 약국에서 오간 대화다. 약사님은 음식물 조절을 강조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약사님이 미웠다. 그 맛있는 것들을 내게서 떼어 내려고 하다니!

"약사님. 혹시 자전거나 트레킹을 열심히 해서 장운동이 활성화 되면, 위액 분비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장이 활성화되면 좋기는 하지만 위하고 장은 투약되는 약이 달라요. 둘이 붙어 있지만 다른 거죠."

필자의 자가진단은 보기 좋게 뭉개지고 말았다. 하긴 위하고 장하고 한 몸도 아니지 않은가? 장이 좋다고 위궤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는 법이니까.

아무리 하찮더라도 병을 달고 가는 여행길은 유쾌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허리도 반응을 하는지 찌릿찌릿 거렸다. 이빨도 문제였다. 돈이 없어 치과에 가지 않았던 게 치통으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위장병, 허리통증, 치통까지... 이렇게까지 삼중고(?)에 시달릴 정도면 여행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가는게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계속 페달을 굴렸다.

일단 장거리 여행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 삼중고가 상당히 어중간했다는 것이다. 아예 팍 아파버리면 '옳거니' 하고 그냥 집으로 되돌아갔을 테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약발로 버텨보기로 했다.

'약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고씽이다~!' 

1950년대에 세워진 횡성성당 답사 등, 잠시나마 횡성군 읍내 일대를 돌아본 후 남행을 계속했다. 한우 식당들이 밀집해 있는 우천면에 도착한 후 네덜란드 참전기념공원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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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참전 기념탑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에 기념탑이 있다. 날씨가 흐려서 그랬는지 좀 어둡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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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전투와 네덜란드 참전 기념공원


횡성군 우천면에 있는 네덜란드 참전 기념공원은 횡성전투에 참가해서 전공을 세운 네덜란드 군인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곳이다. 1951년 2월 경에 있은 횡성 전투에서 국군 8사단은 중공군의 맹공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당시 8사단은 구축된 방어선보다 돌출된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적의 기습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물밀 듯이 밀려 내려오는 중공군의 공세에 8사단은 큰 타격을 입게 됐고 부대는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퇴각이라도 순조로웠으면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부대간 연락 체계의 붕괴, 후방지원의 미비 등으로 상황은 더욱더 악화됐던 것이다. 더구나 8사단을 지원하기 달려온 미군과 국군도 중공군의 포위망에 걸려 큰 희생을 치루게 됐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 장군은 전황을 보고받고 크게 격노를 했다고 한다.

그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네덜란드군은 퇴각로를 방어하여 국군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희생도 컸다. 대대장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아군과 적군을 합쳐 1만 5천명이 넘는 인원이 희생된 횡성전투를 두고 미군측에서는 '학살의 계곡'이라고 칭했다. 그런 명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횡성 지역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쓰디쓴 아픔의 자리에 네덜란드 참전 기념관이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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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전기념탑 6.25참전기념탑과 베트남참전기념탑. 네덜란드 참전기념탑 옆 쪽에 건립되어 있다. 이 사진 역시 좀 어둡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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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모양을 한 네덜란드 군인상이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 늦은 저녁을 지어 먹었다. 전날 먹지 못한 특식으로 3분 요리 카레를 해서 먹었다. 차를 한 잔 마신 후 어두워진 공원 일대를 할 일 없이 누볐다. 공원에는 네덜란드 참전비 외에도 6.25참전 기념탑과 베트남참전 기념탑이 나란히 서있었다. 장거리여행을 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전쟁기념탑들! 거기에 적혀 있는 서릿발 같은 반공문구들! 그런 전쟁 조형물들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왜 아직도 우리는 분단되어 있는가?'
'휴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는 없는가? 왜 60년이 넘게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는가?'
'분단의 고착화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종북, 종북거리는데... 종북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진짜 반공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안흥면 안흥찐빵: 안흥찐빵은 횡성군 안흥면의 명물이다. 사진에 등장한 곳은 면사무소 앞에 있는 빵집이다.

외벽에 그려진 빵집 아줌마의 모습이 이채롭다.  

 

 

 

* 빨래터: 강원도 횡성군에서 영월군으로 넘어갈 때 넘는 곳이 바로 도깨비도로다.

그 도깨비 도로 옆을 가고 있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저렇게 빨래를 하시고 계셨다. 요즘은 보기 힘든 장면이라 한 컷 찍어봤다.

 

 

 

 

* 비박: 비박이란 야외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 취침을 하는 것을 말한다. 텐트를 설치하면 캠핑이 되는 것이고,

사진에서처럼 그냥 침낭만 깔고 자면 비박이 되는 것이다. 처음 달빛에 봤을 때는 팬션이나 마을회관을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인 집을 짓고 있었다. 어쨌든 남의 집 공사장에서 비박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신 잠은 무척 맛있게 잘 잤다. 모기가 걱정이었는데 모기도 안 물리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았다.    

 

 

 * 비박

 

 

 * 네덜란드 참전 기념탑: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에 기념탑이 있다.

 

 

 

* 참전기념탑: 6.25참전기념탑과 베트남참전기념탑. 네덜란드 참전기념탑 옆 쪽에 건립되어 있다.  

 

 

 

 

 

 

▲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이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 횡성 성당: 1950년대 지어진 성당이다.

 

 

 

 

 * 횡성 성당: 횡성 성당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횡성 한우: 한우와 자전거. 횡성 읍내에서 찍은 사진임.

 

 

 

 

 

 

 

 

 

 

 

 

 

 

 

*횡성군 섬강: 섬강에서 느긋하게 피서를 즐기고 있는 횡성 군민들

 

 

 

 

 

 

 

 

[중부내륙자전거여행 3편] 아웃도어 스펙 조작하기__2부

여행 후기, 걸러서 보세요

 

 

 

 

---> 전편에 이어서

 

 

 

 

# '날벼락 치는데 이 와중에 잠 자는 사람이...'  

오후 4시경.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다. 맞으면 쓰라린 굵은 빗줄기가 천둥, 번개와 함께 쏟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필자는 게릴라성 집중호우를 예감했다. 그래서 홍천군청 앞에 있는 팔각정에 몸을 숨겼다. 바람에 휘날리는 빗줄기가 얼굴을 세게 때려댔지만  그 와중에도 필자는 큰 대(大)자로 뻗어서 잤다. 팔각정에는 급작스럽게 내린 폭우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그냥 잤다. 왜? 피곤하니까!

"날벼락 치는데, 이 와중에도 잠을 자는 사람이 있네."
"그러게요. 대자로 뻗었네요. 낮술 먹었나?"

잠결에 들리는 소리였다. 이런 비판에 반론(?)을 하고 싶었으나 필자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팔각정은 텅 비어 있었다.

'낮술은커녕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언제 어디서 게릴라성 집중 호우와 마주칠지 모른다. 그렇게 집중호우를 국도 주행 중에 만난다면? 아주 큰 낭패다. 몸을 숨길 수 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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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군 군청 홍천 군청에 있는 팔각정에서 소나기를 피한 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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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충남 홍성을 여행하고 있었을 때다. 김좌진 장군 기념관 부근에서 큰 소나기를 만났다. 당시 기념관 앞에서는 부스를 차려놓고 무슨 기념행사 같은 것을 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잠시 몸을 피할 생각으로 부스 안으로 쏙 들어가 있었다. 갑작스런 폭우로 행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진행요원도 아니면서 자리를 잡고 있기에 '거시기'했지만 관계자들은 별 신경을 쓰지도 않는 듯 싶었다.

오히려 한 자리라도 채워준  모습이 기특했는지 잔치국수와 떡을 건네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국수와 떡을 먹었다. 또 거기서도 한숨을 잤다. 피곤했으니까. 하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김좌진 장군 기념관 앞에서 두어 시간을 대기해야만 했다.

이렇듯 여름 여행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양이 적은 비는 그냥 그렇게 맞을 수도 있지만 온 몸이 싹 다 젖는 폭우는 맞아서는 안 된다. 비를 맞고 주행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119에 SOS를 요청하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난 야영지를 찾지 못했고 계속 페달을 밟아야 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미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오늘은 기필코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치고 자겠다고? 캠핑 특별식으로 김치찌개를 해 먹겠다고? 이래가지고?'

아침에 한 다짐들은 이미 물 건너 간 상태였다. 소나기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또 일정이 어그러진 것이다. 한우로 유명한 횡성에 왔으니, 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콧노래를 불렀건만! 그저 탄식만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죄송하지만 근처에 텐트 칠 만한 곳이 있을까요?"

횡성군 공근면에 도착한 후 이리저리 헤매다 소방서를 찾아들어간 것이다. 소방서에는 야간근무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은 필자를 보고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필자를 불청객으로 봤던 거 같다. 하지만 119는 119였다.  

"음… 아, 맞다. 거기 가시면 되겠네요. 여기서 한 3km 정도 위쪽으로 올라가면 캠핑할 때가 있을 거예요."
"사람이 많은 곳인가요?"
"아니요. 너무 사람이 안 와서 탈이죠. 가면 깜깜해서 무서울지도 모르는데…."
"괜찮습니다. 저는 차라리 한적한 곳이 좋더라고요."
"근데 문제가 있어요. 거기 가려면 좀 헤매실 수 있을 텐데요…."

문제가 있긴 있었다. 그곳은 동네 주민 분들만 아는 곳이었다. 그래서 길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더군다나 불빛 하나 없는 곳이라 방향잡기가 난감했다.

"이거 보면서 하면 되겠네. 와보세요. 여기 모니터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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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천 119분들 덕택에 하룻밤 느긋하게 야영을 할 수 있었다. 사진은 횡성군 공근면을 흐르는 금계천이다. 금계천은 대관대천과 합수되어 섬강을 이룬다. 섬강은 원주를 휘돌아 나가다 경기도 여주에서 남한강에 합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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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19는 119였다. 고맙게도 지도 보기를 통해 필자가 가야하는 곳을 일일이 찍어주었던 것이다.

"여기 보세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은 그냥 지나치시고 앞으로 쭈욱~ 직진하시다보면 그곳이 나올 겁니다."

그냥 말만 들었으면 한참을 헤맸을지 모르지만 위성지도를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훨씬 이해가 빨랐다. 119가 응급환자만 이송하는 것이 아니었다. 필자 같은 난관에 봉착한 여행자도 '응급구조'를 한 것이다. 정말 감사했다.

염치불구하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신 후에 소방서에서 빠져 나와 목적지로 향했다. 지도를 숙지해서 그랬는지 어렵지 않게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는 불빛 하나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은밀함을 즐기는 연인들이 이용하기 딱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주위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어쨌든 그렇게 여행의 이틀째가 마무리됐다. 텐트를 치고 김치찌개를 떠올리며 콘플레이크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내리 4끼를 행동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러다 병나지! 한 두 끼도 아니고. 그러다 진짜 병이 났다.

병이 난 이야기는 다음편에….

 

 

 

 

 

 

 

 

 

 

 

[중부내륙자전거여행 3편] 아웃도어 스펙 조작하기

여행 후기, 걸러서 보세요

13.12.16 15:40   최종 업데이트 13.12.16 15:4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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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에서 캠핑을 했을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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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째 : 2013년 8월 16일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을 출발한 필자는 홍천을 거쳐 횡성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낮 12시에 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전날 야간주행의 여파로 너무 밤늦게 잠이 든 게 원인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몸상태가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적합할 정도로 달아오른(?) 것도 아니었으니 삭신이 다 쑤실 정도였다. 그래서 필자는 묘한 신음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아~ 정말 적응 안 되네. 몇 년을 달렸어도 여행 첫날이랑 그 다음날은 죽음이란 말이야! 오늘은 기필코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치고 자야지. 오늘 저녁은 두부 송송 썰어서 김치찌개 해먹어야겠다. 푸하핫! 오늘은 캠핑 특별식이다!'

 

 

#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라는 소리다. 그렇다. 이 속담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깊게 새겨 들여야 하는 격언일 것이다. 그건 자전거 여행이든 도보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체력, 장비의 한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 진격"만 외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여행을 통해 하나라도 배워가야지 여행이 '중노동'으로 변질된다면 곤란해진다.

스스로에게 적합한 일일 적정 주행거리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이동을 한다면 보다 더 즐겁고 재밌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일일 적정 이동거리는 자전거 여행일 때는 50~60km, 도보 여행일 때는 20~25km이다. 둘 다 취사와 캠핑장비로 완전무장한 상태를 가정한 것이다.

자전거 여행일 때는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 수 있어서 상황이 좀 낫다. 하지만 도보 여행일 때는 거의 2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배낭을 온전히 자신의 신체만으로 버텨야 한다. 그래서 장거리 도보 여행을 떠날 때는 5~6일을 이동했으면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좀 더 여유롭게 여행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기울어져 있다. 필자의 경험과 아웃도어 선배들의 의견들을 한 데 모아서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의 체력이 좋으면 하루에 100km 이상을 주행할 수도 있고, '천리행군' 빰칠 정도로 수십 킬로를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고유의 특색이 중노동으로 변질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타협책이 바로 일일 적정 이동거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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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골터널 홍천군 북방면에서 홍천 읍내를 향해 갈 때 이용했던 잿골터널.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한쪽에 보행자 통행로가 있다. 방음벽까지 갖춘 보행자 통로가 인상적이어서 한 컷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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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어 '뻥튀기'의 유혹


전에 어떤 유명 여행 블로그를 눈팅하면서 혀를 찬 적이 있었다. 4개월 동안 무려 1800km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여름인 6월에서 9월 사이에 그랬다는 것이다. 억지로 하면 할 수도 있을 듯싶지만 그래도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다.

'이 분은 장맛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트레킹을 하셨나? 한 여름에는 제대로 아웃도어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신규 진입을 하는 여행판. 더 정확히는 여행작가판에서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의 스펙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려고 무진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한 곳이라도 여행지를 더 다니려고 발품을 팔고, 글감을 뽑아내려고 에피소드 찾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런 와중에 유혹도 생긴다. 커리어를 '뻥튀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웃도어 스펙을 조작하는 것이다. 500km짜리 도보여행을 했는데 거기에 한 300km를 더 붙여서 800km 정도로 늘려 잡는 것이다. 딱히 검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500이 고무줄처럼 800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500보다는 800이, 5000보다는 8000이 더 장사가 잘 되는 법이다. 5000을 뛴 것보다는 8000을 뛰었다고 하면 방송이나 언론에서 더 주목을 받지 않겠는가? 카메라는 조금이라도 더 드라마틱한 그림을 요구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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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강 강원도 홍천군을 흐르고 있는 홍천강. 이 강은 북한강의 지류이다. 앞쪽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띄어서 한 번 찍어보았다. 그러고보면 이곳도 강변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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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원웨이(편도) 티켓만으로 세상을 누볐다는 이야기도 필자는 물음표를 붙인다. 이런 식으로.


'여비나 생활비는 그렇다 쳐도, 비자 받을 때도 공짜로 받을 수 있나?'

누군가는 필자에게 이렇게 질책을 하실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 넌 네가 주장하는 커리어가 딱 일치하냐? GPS로 다 찍어봤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GPS로 다 찍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의 GPS는 싸구려라서 그런지 기록이 고무줄로 나온다. 간간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는 필자가 왜 이런 제살 깎아먹기(?)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가. 커리어 '뻥튀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필자가 왜 이런 동업자 정신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는가. 이런 주문을 드리고 싶어서다.

'걸러서 보세요. 너무 액면 그대로 믿지 마시고! 아웃도어도 따라쟁이 식으로 하지 마시고 주체적으로 하자고요!'

 

 

 

 

 

 

 

---> 1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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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도 속초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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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해수욕장과 조도

아바이마을을 빠져나오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인 해변 트레킹이 시작된다. 거기서부터가 속초 제일의 명소라고 불리는 속초해수욕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속초 해수욕장은 황토빛 모래사장이 인상적인 곳이다. 약 1km 정도에, 질 좋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새들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조도(鳥島)가 두둥실 푸른 동해바다에 떠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더구나 바다 반대편에는 우뚝 솟은 설악산이 내려다보고 있어 여느 바닷가 해우욕장과는 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사실 속초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다. 느릿느릿 걸어도 30~40분 정도면 끝부분까지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해운대나 경포대 같은 '광대역' 백사장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성이 안 찰 수도 있다. 하지만 광대역보다는 아기자기함을, 더불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속초해수욕장에 더 높은 점수를 줄지도 모른다.

속초해수욕장의 끝자락에는 외옹치라는 작은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속초해수욕장 일대와 속초 중심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푸른 동해바다의 물결과 황토빛 모래사장이 서로 서로의 배경색이 된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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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 외옹치는 해안가로 툭 튀어나온 형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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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와 마도로스 리

속초해수욕장에서 외옹치를 바라다보면 마치 어떤 산 하나가 바닷가를 향해 뛰어들려는 형상이다. 평평한 해안가가 계속 이어지다 외옹치 부근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 나온 모습이라는 것이다. 외옹치(外瓮峙)라는 명칭도 바깥(外)으로 튀어 나온 항아리(瓮) 같은 언덕(峙)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외옹치에는 짧기는 했지만 숲길도 있었다. 속초시 지형도를 보면, 설악산 대청봉에서 동쪽 방면으로 내려온 줄기는 주봉산을 타고 내려오다 바다를 앞에 두고 외옹치가 된다. 즉 외옹치에서는 동해바다와 설악산이 서로 만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형적인 특색 때문인지 외옹치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된 것이다. 사실 외옹치 해변은 2005년 전까지만 해도 군사용 철책이 들어서서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한편 같은 해에 동쪽에 주둔하고 있었던 군부대도 철수하게 되어 지금의 외옹치의 모습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외옹치 일대에는 해안 방어를 위해 군 초소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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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 외옹치를 배경으로 촬영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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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군사시설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외옹치의 안쪽은 덕산이라고 불렸는데 그 곳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산 봉수대는 북쪽으로는 간성 남쪽으로는 지금의 양양으로 봉화를 연결해주는 곳이었다. 그렇게 오솔길을 타고 가다보면 '마도로스 리' 선생이 살고 있는 집이 나온다. 그 마도로스 선생 뒤편으로는 외옹치항이 있다.

마도로스 선생은 홍게잡이 어선을 타는 분인데 한 번 출항할 때마다 일 주일 정도는 해상에서 보낸다고 한다. 홍게는 심해 1000미터 부근에서 서식하는 터라 어획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또 한 번 조업에 나서면 하루 20시간 이상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무척 세다. 오죽하면 홍게 잡이가 극한직업으로까지 분류될 정도일까! 실제로 '마도로스 리' 선생은 극한 직업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여러번 출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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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로스 LEE 외옹치와 대포항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그 힘들다는 홍게 잡이 배를 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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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아담한 외옹치항

외옹치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는 마도로스 선생은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자신의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차 대접을 아끼지 않는 분이다. 외옹치 숲길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집이 있는데 외옹치항으로 길을 잡으려면 반드시 마도로스 선생의 집을 지나쳐야 한다. 그렇게 필자도 차를 대접받았는데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옹치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현재 외옹치 마을은 바닷가 쪽이 아닌 도로와 인접한 곳에 밀집되어 있었다. 어촌 마을이라면 조금이라도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집을 지어야 이치에 맞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1984년에 있었던 수해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984년에 있은 수해로 인해 산사태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 이후 마을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당시 수해는 외옹치 마을의 어로 활동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1984년 이전에는 '뗀마'라고 불리던 무동력선을 타고 문어를 잡는 재래식 어로 작업을 많이 했다. 하지만 수해복구와 함께 항구도 현대식으로 탈바꿈했고, 무동력선도 동력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재래식 어로 활동도 자취를 감추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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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항의 야경 철책선 위로 불빛이 비취고 그 반대편에는 보름달이 떠올랐다. 동해바다와 어루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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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외옹치항에는 어선들이 입출입을 하지 않는다. 외옹치항을 입출입하는 어선들은 항구 앞에 꾸려진 난전 식당들에 싱싱한 수산물을 공급했는데 그만 그 식당들이 올 겨울에 화재로 다 소실됐기 때문이다. 약 10채에 달하던 외옹치 난전들이 싹 다 소실될 정도로 큰 화재였다고 한다. 수산물의 판로가 없으니 항구에 배들은 인근 지역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1984년에 있은 큰 수해를 극복했던 외옹치이기에 이번에도 그런 곤경을 잘 극복할 것이다. 실제로 화마의 상처가 깊던 식당가는 올 겨울 재개장을 앞두고 한창 공사중에 있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고깃배가 직접 잡아온 싱싱한 수산물을 바로 맛볼 수 있는 외옹치 난전이 다시 개장할 것이다. 그러면 작고 아담한 외옹치 항구는 예전처럼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 유명한 대포항 수산시장

외옹치에서 유명한 대포항까지는 약 1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실제로 행정구역 상 외옹치는 대포동에 속한다. 대포항은 어시장이 잘 발달되어 속초 최고의 항구로 손꼽힌다. 최근에 현대화 공사가 끝나 대포항은 항구와 어시장이 확 바뀌었다. 싱싱한 횟감이 즐비한 어시장과 말끔하게 정비된 접안 시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구경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해안트레킹에서 어시장탐방 트레킹으로 변형이 되는 것이다.

대포항 일대를 다 걸어보려면 1시간 이상이 소요될 정도로 항구와 어시장은 큰 규모를 자랑한다. 깔끔하게 단장된 식당들에는 싱싱한 수산물들을 맛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북적인다. 이렇듯 작고 아담한 외옹치 항구와 큰 규모의 대포항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속초해변트레킹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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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항 오토바이 오징어. 오토바이에 걸려 있는 오징어의 모습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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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항과 어시장 탐방을 마치면 약 8km에 달하는 속초해변트레킹이 종료가 된다. 사실 8km는 트레킹을 하기에는 짧은 거리이다. 2시간 정도면 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시간 만에 속초해변트레킹을 마무리 짓기는 힘들 것이다. 멋진 풍광과 함께 힘차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취하다보면 자꾸 발걸음이 멈춰지기 때문이다.

그런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도보 여행객의 상처와 시름은 어느 순간 동해바다에 실려 멀리멀리 사라졌을지 모른다. 물론 도시로 돌아와 일상에 찌들면 그 상처와 시름들이 다시 몰려올 수도 있겠지. 그럼 그때마다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설악산의 상록수, 외옹치를 감싸는 푸른 동해바다...

아직 후배는 속초행 고속버스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은근히 필자와 함께 가길 원하는 것 같다. 기회가 닿는다면 함께 가도 좋을 것이다. 그럼 속초해변 역사트레킹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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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해변트레킹 코스 빨간색으로 그려진 부분으로 이동한다. 이동거리는 약 8km 정도다.


● 도움말
1. 서울 동서울터미널 기준으로 속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속초에는 고속버스터미널도 있는데 그 곳은 속초해수욕장 입구 부근에 있다.

2. 대포항에서 트레킹을 마친 후에는 7번 국도쪽 나와서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돌아올 수 있다. 버스 노선이 많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3. 춘천에서 속초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춘천 같은 강원도 서부 내륙지역도 속초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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