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순해지게 만드는 옥정호



2010년 6월 23일-여행 5일째

 

 


당시 나는 자전거여행 중이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여정은 목포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이날은 전북 익산을 거쳐 전주, 임실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했다. 아름다운 전라북도의 내륙을 탐방할 생각에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아시다시피 전라북도 내륙에는 덕유산, 마이산, 모악산과 같은 이름난 명산들이 많다.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고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도 잠시 뿐이었다. 당시 난 자전거여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앞뒤로 짐을 가득 싣고 가는 터라 자전거 속도는 꽝이었다. 더군다나 전라북도의 내륙은 노령산맥의 영향으로 산악지형이 잘 발달이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야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간보다 끌고 가는 시간이 많았다. 무거운 자전거를 낑낑거리며 산등성이를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사실 전북 내륙 부분은 자전거를 타기에 적당한 코스가 아니다. 통상적으로 서울에서 목포까지 가는 국토종단코스는 전북의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익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 고창지역을 지나가는 것이다. 해안가지역은 고도가 낮을뿐더러 간간이 바다도 볼 수 있어 자전거를 달리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난 왜 해안가 코스를 가지 않고 왜 사서 고생을 하며 내륙코스를 택했는가? 사실 난 작년에도 장거리 여행을 했는데 그때는 전북의 해안가코스를 지나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 마음먹고 내륙코스를 여행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또 아는 지인의 조언도 있었다. 임실이나 순창지역에 가면 볼거리가 많다는 조언이었다.

 

도대체 무슨 볼거리가 있기에 임실,순창 코스를 강추한 것일까? 정말 제대로 된 볼거리가 있기는 한걸까? 그 지인의 조언을 반신반의 하면서 난 힘든 여행을 계속했다. 그런데 그렇게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보니 무언가 ‘Feel'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여행을 좀 많이 하신 분들은 그런 느낌을 한두번씩 가져보셨을 것이다. 이 코너를 돌면 무언가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이 고개만 넘으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 같은데... 이 고개만...


“와!”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산 정상부에 다다르니 큰 호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호수는 산들로 둘러싸여 넉넉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호수는 바로 옥정호였다.

옥정호는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한 인공호수다. 일제시대에 건립된 다목적 댐에 의해 조성된 옥정호는 전북의 대표적인 농업용수 공급용 저수지로 손꼽히고 있다. 이 부분은 문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작성한 부분이다. 사실 옥정호를 농업용수 공급용 저수지로만 인식을 한다면 그건 여행을 만끽할 자격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처음 옥정호에서 받은 인상은 소양호 이미지였다. 옥정호가 산에 둘러싸여 있어 춘천의 소양호가 연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소양호와는 좀 다른 면이 많았다. 소양호가 웅장한 이미지라면 옥정호는 아기자기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옥정호에는 숨어 있는 비경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옥정호는 국내 사진사들에 의해 출사 장소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옥정호는 주변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순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부지역을 탐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길을 걷고 싶었지만 일정 관계상 그만두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옥정호의 풍광을 두고 그냥 가기가 아까워서 옥정호에서 한 숨 자기로 했다. 어차피 다음 여행일정을 위해서라도 체력회복을 해야 했으니까. 옥정호가 한 눈에 펼쳐지는 곳에 자리를 깔고 눈을 감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왔고 산새 소리가 들렸다.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인지 나는 솔솔 단잠에 빠져들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 호수를 앞에 두고 잠을 청할 수 있다니....

 

 


 

전북 임실이나 옥정호를 그냥 한 번 방문했다고 그 지역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히 오버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나는 어쩌면 오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씨가 왜 임실 땅을 못 떠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예전에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으며, 작품 활동을 하려면 출판사들이나 문인단체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의문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임실 지역을 방문해보니 왜 시인께서 섬진강을 못 떠나는지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나라도 안 떠날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들을 놔두고 무엇 하러 각박한 서울살이를 하겠는가.


옥정호에서 잠이 깼을 때 난 잠깐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매일 회색의 콘크리트 건물들만 보다가 몽롱한 상태에서 옥정호를 바라다보니 정말 딴 세상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착각은 이내 곧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오래 지속되었다. 그렇게 사람을 UP시켜주는 착각이라면 그 속에 빠져드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여행 5일째 전체평: 옥정호, 섬진강 상류. 나도 이 곳에서 살고 싶다. 이 곳에 오니 사람이 순해지네! ^^;


 

사진설명: 상단의 사진 두 개는 섬진강 상류를 찍은 사진이고, 나머지는 옥정호를 배경으로 한 사진임. 시간상으로는 옥정호-> 섬진강 순으로 이동을 했으나 글을 다이나믹하게 꾸미기 위해 순서를 바꾸어 놓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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