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개척단 첫빠따 멤버, 나무드리의 후기 



들어가면서: 굉장히 오버한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는데, 저는 최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보면서, ‘아, 이제 우리나라도 서서히 탈근대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흔히 학자들은 한국사회를 근대, 전근대, 포스트모던(탈근대)이 혼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포스트모던에 대한 징표들은 엘리트층에서만 통용되었다는 게 사실이었거든요. 그런 형이상학적 사상의 조류들을 일반 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해체 담론이니, 탈구조화니 하는 것들이 산행을 즐기는 일반 사람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 골치 아픈 거 생각하느니 그 시간에 오징어 뜯어 먹는 게 훨씬 남는 장사지.

 

‘느림’을 기본으로 하는 걷기여행은 속도 경쟁을 우선시 하는 근대사회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게 개념입니다.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개념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빨리빨리를 외쳐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뭐 느림? 걷기? 니가 배가 불렀구나?” 과거 성장우선주의 시대에서는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200km가 넘는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올레길 투어가 가족단위 관광 상품으로 등장하는 요즘에는 그런 속도 경쟁적인 사고보다 동행과 보폭을 맞출 수 있는 더불어 숲과 같은 생각이 우리사회에도 확산된 게 사실입니다.

 

 

 

 

그만 그만! 제가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요? 후기 쓰는데 서설이 왜 이렇게 기냐고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며칠 전 한겨레신문(2010년 10월 18일자 12면)을 보니 걷기 열풍을 타고 100여개 가량의 길이 개척되었다는 소식이 실려 있더군요. 또 앞으로도 더 개척될 예정이라고도 하고요. 이 기사를 읽고 있자니 우리가 개척한 삼남길은 걷기 열풍에 가장 정점에 위치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사에 소개된 길들은 개별 지역을 중심으로 개척되었다보니 해당 지역에 국한된 루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그쪽 안에는 촘촘한데 그쪽 밖에는 끊겼다고 해야 할까요? 개별지역의 걷기 길이 일반적인 의미의 산이라면 1000리 삼남길은 백두대간과 같이 큰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국토를 종단으로 연결하는 의미가 강한 것이죠.

 

 

 

선조들이 한양을 가기 위해 걸었던 옛 길. 그런 의미에서 삼남길 루트 개척단은 역사적인 길을 복원한다는 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삼남길 루트 개척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뜻 깊은 족적을 남겼다고 자화자찬을 해도 괜찮을 겁니다.


 

 


참가인원: 한소절님, 정감독님, 마스코트님, 연경님, 무영님, 삼공빠님, 마루금님, 사이다님, 나무드리(나) + 손성일 대장님, 정 실장님, 김기동 주임님 그 외 스텝 분들



이동경로: 광주역 집결 후 버스로 해남 땅끝 관광지로 이동



해남 현지에서의 이동: (첫날) 땅끝 마을→송호 해수욕장

(둘째날) 송호해수욕장→영전


날짜: 2010년 10월 16~17일


 



개척활동: 12인 삼남길 루트 개척단은 활동은 단순히 길 걷기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개척단’이었습니다. 안내자를 따라 길을 걷다가 중요 포인트에서 멈춰 서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통상적인 여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걷기 코스로 생각하고 루트 개척단에 참가를 하셨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1기 멤버들이 주로했던 활동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1. 표지 리본 달기

2. 루트 나무판 달기

3. 방향 화살표 달기

4. 길에 스프레이로 화살표 표시하기

5. 낫 작업으로 보행로 잡풀 제거하기


위에 나열된 작업들을 손성일 대장님, 스텝 분들과 함께 진행해 나갔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같은 1기 멤버인 삼공빠님과 함께 스프레이 작업을 했는데 손 대장님이 주요 포인트를 찍어주시면 그 곳에 스프레이로 화살표 표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스프레이 작업을 할 수 없는 구간, 즉 산림지대로 진입했을 때는 한소절님을 따라 낫으로 잡풀을 제거했습니다. 낫 작업은 벼베기를 할 정도의 큰 근력을 요구하는 건 아니고 벌초 작업정도의 스킬만 있으면 되겠더군요. 한소절님은 백두대간을 세 번이나 완주하실 정도로 대단하신 분인데 그 때문인지 역시 필드에 강하시더군요. 덕분에 낫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답니다.

 

루트 나무판 설치는 개척단 일과 중에 가장 중점을 둔 작업이었습니다. 나무판 자체의 제작 단가가 비싸고, 수량도 얼마 되지 않아 정말 중요 포인트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만 설치를 했답니다. 각 개인마다 3개의 나무판을 전달받아서 그 뒷면에 자신이 소망하는 글귀를 적었답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지요. 저는 ‘행복한 길, 삼남길 걷기’ 이런 문구를 적어봤답니다. 아쉬운 것은 광주에서 해남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미리 나무판과 관련된 공지를 전달받았다면 더 멋진 문구를 생각했을텐데... 해남 현지에서 발대식 이후에 문구를 적으라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하게 적었답니다. 다음 기수부터는 좀 더 멋진 문구를 많이많이 적어주시길!

 

 

 

 

 


개선점: 이 부분은 16일 첫날 일정이 끝난 후 간담회 자리에서 마루금님과 다른 멤버분들이 날카롭게 지적하셔서 제가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지만 제 나름대로 보충적인 의견을 개진해 보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동의를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이번 1기 루트 개척단은 좀 정신없이 진행된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런 혼동은 ‘첫빠따’인 1기의 숙명일 수밖에 없을 노릇이겠죠. 그런 초기 혼란 비용을 하루라도 빨리 틀어막는 게 손성일 대장님이나 코오롱 측에도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나름대로의 개선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부분은 다른 멤버들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1. 신속한 일정공지: 홈페이지 상의 공지가 너무 늦었을 뿐더러 개인 이메일 공지도 출발 하루 전날에 도착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시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2기는 10월 30일에 출발하오니 최소한 25일 정도에는 관련 공지가 공고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겠습니다.


2. 버스 이동시간 활용하기: 버스에서의 이동 시간은 참 소중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광주역에서 해남까지 버스로 무려 2시간가량을 이동했는데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삼남길 관련 영상물이나 루트개척단의 작업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게도 필요없이 15분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반복학습을 위하여 출발 직후에 한 번, 도착 즈음에 또 한 번 상영하면 더 좋겠네요.

아참, 앞서도 언급했듯이 버스에서 개척단에게 미리 나무판 실물을 보여주고 거기에 담을 문구도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 문구를 남기는 거 좀 ‘뽀대나게’ 문구를 기재하면 좋잖아요!☺


3. 기장 선정 및 소집단 선정: 개척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열성적인 분들이실 거라는 생각이 들기에 굳이 기장이 필요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기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기장은 멤버들 중 가장 연령이 많은 분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막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소집단을 꾸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스텝진에서 기계적으로 나누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해당 소집단이 바로 작업조로 변형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4인 1개조 형식으로 하면 총 3개 팀이 나오겠네요. 그럼 해당 팀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한 팀은 나무판 작업팀, 다른 한 팀은 스프레이 팀, 또 다른 팀은 낫 작업팀 등등...

표지 리본 작업은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작업이니 모든 팀들의 공동 임무 사항으로 삼으면 될 듯 합니다.


 

 

 

 


4. 공구함 만들기: 루트 개척단이 단발성에 그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꼭 시정이 됐으면 좋을 듯싶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리본 작업 같은 경우는 가슴 앞쪽으로 맬 수 있는 투명 비닐팩 가방을 준비하여 거기에 리본들을 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장시간 리본들을 들고 가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투명 비닐 팩에는 니퍼도 넣을 수도 있겠네요. 아참 니퍼는 4개 이상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각 팀마다 최소한 한 개 이상씩 지급하는 것이죠. 니퍼가 없어서 대기하는 시간이 생기면 안 되겠죠.

 

또 스프레이 작업이 계속된다면 스프레이 작업 전용 공구함도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가수 싸이가 맥주상자를 들고 ‘씩스팩, 씩스팩’ 그러는데 그 외형으로 만들면 좋겠네요. 대신 주형틀 나무를 끼워 넣는 공간도 확보를 해야겠지요. 조그마한 비닐봉지에 여러 개의 스프레이통과 주형틀을 넣고 다녔더니 완전 고역이었습니다.


 

마치며: 참 장문이네요. 뭐하느라 이렇게 길게 후기를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제가 할말이 많았나 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만약 제가 통상적인 인솔자가 주도하는 산행이나 트래킹에 참여했다면 이렇게 장문의 후기를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이번 루트 개척단에서 받은 느낌이 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삼남길의 얼리 어댑터가 됐기 때문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고 해야겠네요.


자 여기까지는 삼남길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그럼 루트 개척단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이 되어서 쓴소리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현재도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단독이나 소규모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고 대규모 팀을 꾸려 떠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소규모라고 하면 통상 열명 이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고 대규모라고 하면 모 제약회사의 국토순례단 같은 단체들이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아스팔트 길을 걷고 있을 소규모 도보여행객들을 삼남길로 끌어오는 것은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이상의 대규모 집단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거냐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가 다닌 길에서는 대규모 도보 순례단을 맞을 인프라가 전혀 없었습니다. 화장실은커녕 식수를 받을 장소도 없었습니다. 또 소규모로 이동한다고 해도 그들이 텐트나 취사도구 같은 캠핑장비로 중무장 하지 않는 이상 여행 종착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삼남길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순례단도 맞을 수 있고, 소규모 여행자들의 배낭의 무게도 줄여주어야 삼남길이 본 궤도에 들어설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제주 올레길의 전례를 참고로 삼을 수는 있지만 삼남길이 올레길의 판박이는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제주도는 이전부터 관광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기존의 인프라가 존재했기에 올레길이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는 삼남길의 장기과제가 되겠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닐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따로 사진에 대한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풍경 사진외에는 작업 사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진에서도 나와 있듯이 1기 멤버들이 다녀온 삼남길은 그 자체가 출사지였습니다. 정말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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