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표참관인증: 공직자 이름을 가렸다.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을지 모르니까... 








*고제면 투표소: 고제면 체육회관에 마련되었다.










* 목련: 필자가 좋아하는 목련. 저 흰 목련처럼 우리 정치도

더 맑고 고와졌으면 좋겠다. 고제중학교 분교 앞.









4월 8~9일은 사전 투표를 하는 날입니다.

저는 그 사전투표가 잘 진행되는지 감시(?)하러 왔답니다. 사전투표 참관인 자격으로 기표소에서 매의 눈(?)을 뜨고 있죠. 이 곳은 경남 거창군 고제면 투표소입니다.

사전투표는 기존 부재자투표제도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4년 지자체 선거 때부터 제도화 됐다고 합니다.

부재자투표는 사전에 등록을 해야하는 등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사전투표는 그런 절차가 생략되어 좀 더 편하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참관인인 저도 서울에 주소를 가지고 있지만 특별한 절차 없이 바로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신분증과 지문 확인절차로 전국 어디서나 투표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한가지! 여기가 농촌지역이라 그런지 지문이 없으신 노인분들도 계시더군요. 농사짓느라 손을 많이 써서 그렇게 된 것이죠. 그런 분들은 따로 이름을 적게 해서 확인을 하는 방법을 쓰더군요.

사전투표는 13일, 단 하루에 이루어지는 투표일을 늘려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즉 8일, 9일, 13일이 투표일이 되는 것이죠.

특별한 등록 절차가 없으니 선거권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무 기표소나 들어가서 투표행위를 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는 겁니다. 선거일 당일날의 번잡함도 피할 수 있어서 좋구요.

시골버스 기사님 같은 경우는 버스 운행을 잠시 멈추고 투표를 하시고 갔습니다. 투표소가 번잡하지 않으니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죠.

지금 이 글은 오후 2시 경에 작성하고 있고 사전투표 종료시간은 오후 6시니, 아직 4시간 정도 남은 셈입니다.

사전투표가 필요한 분들은 좀 서두르셔야겠습니다.

단 신분증은 꼭 가져가세요!!!










이번 413 총선때, 거장군에서는 군수 선거도 함께 합니다. 보궐선거지요. 작년에 전임 군수가 대법원 확정판결로 군수직을 박탈됐기에 보궐선거가 시행되는 겁니다.

그래서 첫번째 사진처럼 거창군 일대 선거벽보는 두 줄로 나열됐지요. 윗줄은 국회의원 입후보자, 아랫줄은 군수 입후보자.

요즘 거창군의 핫 이슈는 교도소 문제입니다. 이 지역 시민단체들은 학교 앞에 들어서는 교도소에 일제히 반대하고 있죠.

이에 대해 거창군은 그 교도소를 법조타운이라고 명명하더군요. 교도소와 법조타운... 동일한 사항인데도 찬반측이 받아들이는 네이밍이 완전 다르다는 겁니다.

이걸 두고 네이밍 플레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쟁에서 민간인들을 살상했을 때 이런 어려운 말을 하잖아요. 비전투적인 행위에 의한 부가적인 피해. 이 런 말들이 난무하다보면 해당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직시가 어려워집니다.

이제 선거가 코 앞입니다. 자신의 한 표가 지역현안에 대해 본질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행사되어야겠습니다.


















20대 총선을 8일 앞 둔 어제(4월 5일).


경남 거창에서 함양 안의면까지 갈 일이 있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 거창지역에 출마한 총선 후보자들의 걸개그림이 있어 찍어봤습니다. 더민주당 권문상과 새누리당 강석진, 유력주자 두 명의 사진만 찍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저 두 사람의 걸개그림이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버스를 타고 함양군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도착했습니다. 군 경계지역을 넘은 셈이죠. 세 번째 사진은 안의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후보자를 담은 선거 벽보지요.

어! 그런데 여기도 아까 봤던 후보자들이 보이네요. 그렇습니다. 이 곳은 경남 거창 함양 합천 산청이 하나로 묶였답니다. 그래서 합천에 가도 산청에 가도 동일한 선거 벽보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곳도 요즘 한창 바쁘답니다. 비료주고 풀매고... 농번기라 손이 많이 필요하죠. 실제로 선거운동원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농사 짓기도 바쁜데 무슨 선거냐!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농번기니까 많이 바쁘죠. 그래도 할 건 해야겠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아닙니까? 아무리 바쁘더라도 꽃을 피울 건 피워야겠죠.

마지막 사진은 화림동 계곡에 있는 농월정이라는 정자입니다. 멋진계곡을 품고 있는 정자 옆에 예쁜 벚꽃이 피어있네요.




 

공공장소에 울려퍼진 친일파 옹호론

 

 

높아진 목소리... 온라인 논쟁을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듯

 

15.08.14 16:58   최종 업데이트 15.08.14 16:58

 

 

 

 

 

 

 
▲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에 걸린 대형 태극기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그 사람들이 친일을 하고 싶어서 한 거겠어. 상황이 그래서 그런 거지."
"그건 아니죠. 시대상황으로 돌리기에는 친일파들이 나쁜 짓을 많이 했잖아요."
"상황을 이해해야지! 만약에 ○○씨가 일제시대에 살고 있어, 먹고 살아야 하잖아. 그럼 어떻게 하겠어? 일본놈들이랑 등 돌리고 살겠어? 그때 살았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거야. "
"선배님 말씀은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친일파가 되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그런데 그때 독립군은 뭐지요? 항일운동한 사람은 뭐가 되는 거죠?"

 


제가 집필실(?)로 이용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한 대학교의 휴게실이 바로 그곳입니다. 글 쓸 공간이 없어 도서관으로, 카페로 옮겨 다녀야 하는 글쟁이들보다는 제 처지가 훨씬 나을 겁니다. 와이파이도 빵빵 터지고, 에어컨도 시원한 공간에서 물건들을 '쫘악' 펼쳐놓고 글을 쓰니까요.  

하지만 휴게실은 휴게실입니다. 통닭 시켜 먹는 이들,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이들... 식사 시간이 되면 휴게실은 맛있는 음식 냄새로 채워집니다. 그러면 글이 잘 안 써집니다. 저도 배가 고프니까요. 그래도 후각을 혼란시키는 음식 냄새는 그나마 낫습니다. 문제는 역시 청각을 혼동시키는 것입니다.

 

 

 

나의 '집필실'인, 어느 대학의 휴게실에서

 

 

이 대학은 오픈 대학교입니다. 그래서 학우들의 연령대가 아주 다양합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살부터 백발이 성성한 분들까지... 주축은 50~60대 학우들이 이루더군요. 그래서 대화의 내용도 일반 대학생들이 하는 말들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일반 대학생들이 스펙과 취업 걱정으로 대화 내용을 채운다면, 이곳의 학우들은 자신의 아파트 값이 어떤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에 대한 문제들을 입에 올립니다.

부동산이나 건강 문제들은 거의 비슷한 결론으로 달려가는 가더군요. 딱히 첨예하게 부딪힐 부분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하나라도 더 정보공유를 하려고 '코드'를 맞추더군요. 하지만 정치 문제가 나오면 양상은 달라집니다. 서로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서로 갈등을 빚고 얼굴을 붉히기까지 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그런지 요즘에는 광복, 일제청산, 이승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더군요. 하여간 그렇게 첨예한 이야기들이 대화 테이블에 오르면 저도 본의 아니게 그 대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휴게실이 지하에 위치해 있어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그 소리가 다 제 귀에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는 제 몸은 노트북 앞에 있지만 마음은 그 대화 테이블에 앉게(?) 됩니다. '동석'하기 싫은데 '동석'하게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글쓰기 작업은 잠시 중단을 하게 되는 것이죠.

"요즘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뭐라뭐라 안 좋게 이야기를 하지만, 난 이승만에 대해서 달리 봐야 한다고 봐. 그때 정부를 안 세웠으면 어떻게 되겠어. 한반도가 적화가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지."
"그럼 이승만 세력이 친일파 중용한 거랑 반민특위 해산한 거랑은 어떻게 보십니까?"

 

 

 

 

 

 


온라인 논쟁을 옮겨 놓은 것 같은 휴게실 논쟁

 
▲ 소녀상 위안부소녀상. 일본대사관 앞.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글 서두에 언급한 대화는 그렇게 계속 이어졌습니다. 총 네 분이서 이런 대화를 나누셨는데 나이가 많으신 분은 이승만과 친일파에 대해서 옹호를 하는 입장이었고, 상대적으로 젊은 분은 그에 대해서 반박을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는 나라가 새로 세워졌어. 당연히 인재가 필요하잖아. 그럼 누가 그 일을 하겠어? 일제시대에 일 좀 했다고 그 사람들을 안 쓸 수 있겠어."
"그게 바로 친일파들이 주로 주장하는 내용 아닙니까..."
"위쪽으로는 공산당이 꽈리를 틀고 있었고, 그래서 실제로 전쟁도 났잖아. 그런데 인재는 필요했고.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니깐!"
"그게 바로 전형적인 그들의 주장이라니까요!"

 


이미 서로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주장은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대화에 깊숙이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당장이라도 몸을 이끌고 그 테이블에 가서 식민지근대화론과 같은 친일 옹호론을 격파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친일 문제를 반박하는 분에게는 좀 더 내공을 쌓아 친일 옹호론을 꼼짝 못하게 하라고 조언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마음만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요.

이 분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일제 잔재청산과 관련하여 온라인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댓글들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휴게실에서의 대화들은 온라인에서 오가는 논쟁들을 오프라인으로 옮겨놓은 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실제로 나이가 많았던 분의 논리는 인터넷에서 친일을 옹호하는 댓글의 내용과 거의 일치했으니까요. 대신 잘 아는 동아리 멤버들이었기에 서로 예의는 지키는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는 2학기 수강신청에 대해서 서로 '코드'를 맞추더군요.

 

 


원죄론과 친일론

전 그 대화를 보면서, 친일을 옹호하는 측이 '우리안의 친일', 즉 '친일의 범위 확장'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생계형 친일과 악질 친일을 하나로 묶어버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생계를 꾸리던 모든 이들에게 '원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일제 잔재는 전부 아니면 전무 형식으로 프레임이 형성되겠지요. 당연한 일이겠지만 신생 독립국에서 전무가 가능하겠습니까?

이렇듯 '친일 범위의 확장'은 악질 매국노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이죠. 윤동주도 창씨개명을 했고, 북한도 정권 수립 초기에 친일파가 몇몇 요직에 기용됐다, 그러니  일왕에게 혈서를 쓰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 되겠냐?, 하는 식이 되어 버립니다.

휴게실에서 어깨너머로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신다고 질책하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나이 드신 분이 큰 의중 없이 흘린 말에 과도한 해석을 한다고 타박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보고자 합니다. 친일매국노들의 뿌리가 깊은 만큼 자신들을 지키는 논리도 상당하다는 것을요. 그 논리가 타당한지 개연성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파급력이 중요한 것이겠죠. 그 파워가 중요한 것이겠죠. 대학교 휴게실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친일매국행위를 옹호하는 논리들이 입에 오르고 있다면 그 파워는 상당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추신) 지난 12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습니다. 전직 총리라는 한계가 있지만 분명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는 일본 우익들이 좋아할 말들을 일본에서 쏟아내고 왔습니다.

 

두 사람의 행위를 보면 참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동생이 망동된 행동을 했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는 대통령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사태의 경중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어쨌든 15일은 광복절입니다. 이날만큼은 태극기를 가슴에 새겨보고, 경건하게 보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은밀해지고 치밀해진 ‘몰카’의 계절

 

프로필이미지  곽동운

 Date 2015.06.18 11:39

 

 

 

 

본문내용

신도림역 경찰센터

 

 

 

여름! 뜨거운 계절이 돌아왔다. 과감한 노출을 감행하며 한껏 자신을 뽐내는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노출이 과감해질수록 그것을 노리는 몰카범들의 시선은 은밀해지고 치밀해진다.

 

몰카 범죄는 주로 지하철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 벌어지는데 그 증가세가 매년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에 따라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 경찰대’에서는 4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를 지하철 성범죄 집중 단속기간으로 정해놓고 중점단속에 나서고 있다.

 

 

몰래카메라 촬영 주의 지역 안내

 

 

몰카 범죄가 늘어나게 된 원인 중에 하나는 스마트폰 카메라 기술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능가할 정도로 고화질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몰카 범죄에 이용되기까지 이른 것이다. 범죄로의 악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스마트폰은 출시될 때 카메라 셔터음이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카메라 ‘무음’ 앱을 내려 받으면 셔터 음이 제거된 상태로 촬영이 가능하기에 성범죄의 도구로 악용되는 것이다.

 

스마트폰 이외에도 다양한 카메라가 몰카에 이용된다. USB형, 만년필형, 신발형 등 첩보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초소형카메라들이 여성의 치마 속을 노리고 있다. 이렇게 기기들이 소형화, 은밀화 되니 적발하기도 어려워진다.

 

 

몰카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에스컬레이터

 

 

문제는 이런 몰카 범죄를 일으키는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몰카 범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적용되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벌금형 이상을 선고 받으면 신상공개까지 되는 등 처벌이 엄격하다.

 

몰카 범죄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만큼 피해자가 인지하기도 쉽지 않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방에 있다. 예를 들어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몸을 엇각(45도)으로 틀어 후방을 주시하면서 이동을 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몰카 범죄에 노출이 됐다 싶으면 지체 없이 112나 1366(여성긴급전화)에 신고를 한다. 몰카 특성상 촬영자가 해당 파일을 삭제하면 범죄 사실을 적발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 포스터: 지하철 성범죄 집중단속

 

 

 

'헬도림'에 작은 숨통이 트이게 됐다!

 

신도림역 선상 역사 개통을 바라보며

 

15.05.30 15:34   최종 업데이트 15.05.30 15:34

 

곽동운(artpunk)

 

 

 

 

 

 

 
▲ 신도림역 선상역사 테크노마트 방면에서 바라본 신도림역 지상역사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뭐 찍으세요? 사무실에 허가는 맡으셨나요?"

"예... 역내 공간을 촬영하는데 허가까지 맡아야 하나요?"
"일단 역무실에 가서 말씀 한방만 해 주시면 되는데..."
"납득이 좀 안 되네요. 폐쇄된 곳을 찍는 것도 아니고 오픈된 역사 안을 촬영하는데요. 시청역이나 서울역에서 촬영을 할 때도 허락받으라는 소리는 없잖아요. 더군다나 저는 여기 홍보해주려고 왔는데..."
"말씀 잘 알겠는데... 그래도 역무실에 가서 말씀 한방만..."

 


지난 5월 24일, 선상역사(철로 위에 건설된 역사)가 개통된 신도림역에서 필자는 어떤 역무원과 작은 언쟁(?)을 벌였다. 개통 당일 날인 23일에는 같은 이유 때문에 사회복무요원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 했다. 연이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진 촬영이 원활하게 되지 않자 좀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무장한 보완요원이 활보하는 인천공항에서도 마음껏 사진촬영을 하는데... 전철역에서 사진을 허락을 맞고 찍어야 된다고? 더군다나 역사가 새로 개통됐다고 홍보할 목적으로 찍은 건데..."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국철 1호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번뜩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신도림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스트레스 많이 받나 보네. 지상역사를 만드는데 450억이나 들였다고 욕 먹고, 한편으로는 혼잡도를 줄이지 못했다고 욕 먹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저렇게 민감하지!'

 
▲ 신도림역 6번 출구 선상역사 개통으로 이제 신도림역은 총 6개의 출구를 갖게 됐다. 예전에는 3개 뿐이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하루 이용객 50만 명 중 국철 승객은 '겨우 5만'


그렇게 연유를 따지다보니 꼬인 실타래가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신도림 선상역사와 관련된 뉴스들은 부정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신도림역의 근본적인 문제는 환승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선상역사가 들어서는 게 그 치유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하루 이용객 50만 명 중 국철 승객은 불과 5만 명 남짓이기에, 선상 역사 개통이 혼잡도 개선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JTBC는 23일 방송에서 기존 지하 역사를 이용했을 때보다 선상역사로 직접 이동할 때가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는 것을 리포터가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역무원들이 '카메라'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신도림역 4번 출구 신도림역 4번 출구.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헬도림'에 자신의 발걸음을 보탠 국철 승객들

      
지난 30년 동안 신도림역은 지상으로 직접 연결되는 길이 없었다. 국철 플랫폼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하를 거쳐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야 했다. 국철 승객들은 물밀 듯 몰려오는 환승객들의 틈에 끼어, 떠밀리듯 발걸음을 내디디며 해당 플랫폼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탁한 지하 공기를 들이쉬며 지하까지 내려가 '헬도림(신도림역을 지옥으로 빗댄 명칭)'에 자신의 발걸음을 보태야 했던 것이다.

국철 승객들이 '헬도림'에 일조를 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선상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84년 4월 22일에 개통된 신도림역은 애초 탄생할 때부터 지하역사만 있었다. 지상 역사가 존재한다면 국철 승객들은 탁한 지하 공기를 마셔가며 '헬도림'에 일조를 할 필요가 없다. 국철과 지하철 7호선이 교차되는 상봉역처럼, 곧장 출구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쪽에서 바라본 신도림역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지상 역사 개통은 이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


이렇듯 선상 역사의 개통은 국철 이용객들의 편의를 향상시킬뿐더러 지하 환승공간의 혼잡도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근래에 들어 신도림역 일대는 상전벽해를 이룰 정도로 많이 변했다. 연탄공장, 철근공장 등이 있었던 공장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들과 대규모 상업시설들이 채워졌다. 신도림역과 직접 연결되는 테크노마트와 디큐브시티 같은 상업시설들로 출퇴근하는 인구도 많이 생겼다. 그에 따라 국철 이용객들의 수도 많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필자는 지난 23일에 개통된 신도림 선상 역사의 개통을 누구보다도 더 환영했다. 선상 역사 개통은 우리 지역의 숙원 사업이기도 했다. 지난 30년간 선거철만 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약방의 감초처럼 '신도림역 선상역사'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루 5만 명의 이용객이 있는 시설이 지금에서야 개통됐다면 오히려 너무 늦은 것이다.

공사에 투입된 450억 원이라는 예산이 커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예산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편익이 결과물로 도출되는 사회 인프라는 어떤 식으로든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같이 불이익이 도출되는 사업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2조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됐지만 '녹조라떼'라는 기이한 결과물이 쥐어진다면 그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 신도림역 신도림역 지상역사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내 손 안에 서울>에 기고한 글을 대폭, 수정 재작성하여 송고한 기사입니다.


 

 

 

 

 

이제 ‘헬도림역’이라고 놀리지 말아요~

 

 

신도림역, 선상 역사 개통으로 변화를 꾀하다! | 곽동운 시민기자

 

 

지난 30년 동안 그 곳에는 지상으로 직접 연결되는 길이 없었다. 목적지인 플랫폼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하를 거쳐야 했다. 물밀 듯 몰려오는 환승객들의 원치 않는 환대(?)를 받으며, 그들의 보폭에 자신의 걸음을 맞춰야만 해당 플랫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30년 동안 국철 1호선 승객들은 환승객들과 원치 않는 조우를 해야 했다.

 

 

지난 23일 경부선 신도림 선상 역사가 개통했다

 

 

지난 5월 23일에 ‘선상 역사(철로 위에 건설된 역사)’가 개통된 신도림역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신도림역은 엄청난 혼잡으로 인해 ‘헬도림(신도림역을 지옥으로 빗댄 명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국철 승객들과 지하철 2호선의 승객들이 서로 환승을 하기 위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탓에 그런 오명이 붙여진 것이다. 실제로 출퇴근 시간의 신도림역은 사람에 떠밀려 이동할 정도로 혼잡함이 극심하다.

 

그런 혼란을 가중시켰던 원인 중에 하나로 선상 역사의 부재가 꼽혔다. 1984년 4월 22일에 개통된 신도림역은 태생적으로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지상 역사가 없었기에 국철 1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반드시 지하를 거쳐 다시 지상 플랫폼으로 올라와야 했다. 예를 들어 국철을 통해 용산역으로 간다면 이런 식의 동선이 그려진다.

 

 

지상▶ 지하이동(환승객들과 함께 이동)▶ 지상플랫폼(1호선)

 

 

하지만 지상 역사가 존재한다면 지하를 통해 환승객들과 혼잡함을 공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국철과 지하철 7호선이 교차되는 상봉역처럼, 곧장 출구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상 역사의 개통은 국철 이용객들의 편의를 향상시킬뿐더러 지하 환승공간의 혼잡도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근래에 들어 신도림역 일대는 많은 주거시설들이 들어섰고, 테크노마트와 디큐브시티 같은 상업시설들로 출퇴근하는 인구도 많이 생겼다. 그에 따라 국철 이용객들의 수도 늘어났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선상 역사에 대한 평가절하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신도림역 6번 출구 앞(좌), 신도림역 테크노마트 방면(우)

 

 

필자는 지난 23일에 개통된 신도림 선상 역사의 개통을 누구보다도 더 환영했다. 실제로 개통되기 전부터 선상 역사 일대를 돌며 취재용 사진을 찍었고, 개통되자마자 이용해보기도 했다. 이용한 날이 석가탄신일 연휴여서 그랬는지 아직 선상 역사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신도림역에 선상 역사가 들어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은 듯싶다.

 

‘헬도림’이 ‘천국도림’으로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도림역은 계속 변화를 하고 있다. 그 변화의 계단들이 꾸준히 놓이다보면 언젠가는 신도림역도 ‘헬도림’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

 

 

 

 

지옥의 신도림역, 1호선 지상역사로 피해가자 | 김건탁 시민기자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신도림역. 경기 남부 수도권 지역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환승객들만 하루 35만 명이고, 신도림역 자체 이용인원도 13만 명이나 되어 하루 이용인원만 약 50만 명에 달하는 역이다. 이로 인해 신도림역은 출퇴근 시간에 예로부터 높은 혼잡도로 악명 높았던 지하철 역 중 하나다. 덕분에 환승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어 ‘헬도림’ 이라는 별명도 생겼을 정도.

 

지금까지는 1호선만을 이용하고자 하는 승객들도 1호선에 별도의 역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2호선 대합실을 경유해서 1호선을 탑승해야만 하는 약간 불편한 구조였다. 이는 1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승객들의 동선과 자연스레 만날 수밖에 없어, 신도림역의 혼잡도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

 

 

지난 23일 새롭게 개통된 1호선 지상역사

지난 23일 새롭게 개통된 1호선 지상역사

 

 

이로 인해 코레일은 신도림역의 혼잡도를 조금이나마 감소시키고자 지난 2011년, 1호선 지상역사를 착공하였다. 따라서 신도림역에서 처음으로 1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2호선 역사를 거치지 않고 1호선 열차를 바로 탈 수 있게 되었다.

1호선만을 이용하는 승객과 2호선만을 이용하는 승객 및 1-2호선 간 환승객을 분리시키는 것이 가능해져 혼잡도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4~6번 출구가 새로 생겨났다

4~6번 출구가 새로 생겨났다

 

 

 

새롭게 지어진 1호선 지상역사는 3개의 출구가 있어, 신도림역에는 4번부터 6번 출구가 새로 생겼다. 허나 약 450억을 투입하여 지어진 새 역사는 출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바로 새로 생긴 4번과 5번 출구가 기존의 2호선 1번 출구와 방향이 완벽하게 똑같을 뿐더러, 1호선만을 이용하는 승객도 기존의 2호선 대합실을 이용할 때가 1호선 지상역사를 이용할 때 보다 2분정도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4~6번 출구가 새로 생겨났다

4~6번 출구가 새로 생겨났다

 

 

 

그럼에도 분명한 장점은 있다. 새로 지어졌다 보니 기존의 역사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노약자, 장애인들을 위하여 11대의 에스컬레이터와 5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서 경부선 철도로 인해 남북으로 단절된 구로 지역을 연결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아직까지 여러 보완점이 필요한 신도림역 지상역사. 하지만 출근 시간에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출근하고 싶은 시민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야사가 빠진 곳에 또아리를 튼 '임나일본부'설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기

 

15.04.23 11:39   최종 업데이트 15.04.23 11:39

 

 

 

 

 

 

 

그 이야기가 다시 돌아왔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타고 당당히 다시 역사교과서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것이 무엇이냐? 임나일본부설이다.

철지난 유행가 같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이 다시 현안으로 떠오른 건, 4월 6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때문이었다.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 8종 중 4종에서 임나일본부에 대해서 기술됐고, 이에 우리 정부는 총리까지 나서 해당 교과서의 주장을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독도나 위안부, 혹은 난징대학살 같은 문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일본 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하고, 이에 한국이나 주변국들이 반발하는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임나일본부 문제는 우리의 고대사를 왜곡할 뿐더러,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진출'의 역사적 근거로 악용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경각심을 갖고 주시를 해야 한다.  

 

 



남선경영론이라고 불린 임나일본부설

그럼 일단 임나일본부설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남선경영론(南鮮經營說)이라고도 불리는 임나일본부설은 고대시기인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통치기관을 두고 직접 지배를 했다는 설이다.

그 설의 중추적인 근거로 제시되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공왕후가 몸소 군대를 이끌고 삼한지역을 정벌했는데 그 원년이 369년이라고 한다. 정벌이 끝난 후에는 임나 지역에 일본부를 설치하니 그것이 바로 '임나일본부'가 됐고, 562년 신라에 의해 망할 때까지 200년간 존속되었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일본은 광개토대왕릉비도 이론적 근거로 끌어 쓴다. 이런 내용들을 일본 우익들이 주장했고, 이번 역사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임나'는 가야지역을 말하는데 우리도 임나라는 지역명칭을 사용했다. 일본만 독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의 영역은 가야지역의 세력권을 넘어 전라도 남부지역과 경상도 서부권까지 포괄한다. 사실상 한반도 남부에서 삼국과 동일한 지위를 누리며, 삼국과 경쟁체제에 있었다는 것이다.

 



 
▲ 일본 역사교과서 임나일본부를 표시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가야국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 일본역사교과서

관련사진보기


 

 

 

 

 

임나일본부는 무역대표부?


욱하지 않는가? 하지만 감정보다는 논리와 객관성을 앞세우자. 일본 우익들의 역사왜곡을 합리적인 시각으로 격파해보자. 그들의 말대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한반도 남부의 통치기관이었다면 조세징수, 군사징발, 노역동원, 구휼활동 같은 기록이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전혀 없다.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의 외교적 활동만 언급이 되어 있을 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혼신을 기울일 때, 임나일본부는 군사도 징발하지 않고, 조세징수도 하지 않는 등 느긋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의문점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굳이 가야지역일까'라는 의문이다. 차라리 전라도와 충청도의 곡창지대에다 설치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덧붙여질 수도 있다. 당시 왜(倭)는 철 생산지인 가야지역과의 통상에 큰 주안점을 두었다. 철의 매입과 수입에 사활을 걸었던 것이다. 변변한 제철 기술이 없었던 왜국이 철기무기 획득을 위해 가야국과 외교·통상을 중시했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럼 이렇게 정리가 될 수 있다.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제철 무기의 획득을 국정 목표로 삼았던 당시의 왜는 가야지역에 사신들을 파견, 주재시킨다. 그런 사신들의 수도 늘어나고 주재하는 기간도 늘어나니, 그들만의 자치규약이 필요했고 나름대로 교통정리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자리 잡은 것이 임나일본부가 된 것이다. 즉 임나일본부는 가야 지역 백성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이 아닌 그저 무역대표부였을 뿐이다. 무역대표부 혹은 외교공관이 들어섰다고 그 곳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미국 워싱턴에 주미대사관이 있는데 우리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 역사저널 그날 KBS의 <역사저널 그날>에서 방송한 '일본,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임나일본부'편. 가야사 전공자인 인제대학교 이영식 교수가 패널로 나와 임나일본부의 허구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시청을 하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2015년 4월 19일 방송분임.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가야사가 빠진 자리를 치고 들어온 임나일본부설


4세기에 쓰인 일본부(日本府)라는 명칭도 역사적인 객관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일본(日本)이라는 국호가 7세기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객관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첨언해본다. 앞서 신공왕후가 몸소 선봉장이 되어 한반도를 침공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그때 신공왕후는 만삭의 몸이었다. 뱃멀미는 그렇다 치고 말을 타기도 어려웠을 텐데... 혹시 신공왕후는 슈퍼우먼이 아니었을까?

가야사가 빠진 삼국사는 임나일본부설이 똬리를 틀기에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실제로 가야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이 됐다면 지금과 같은 논란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로 현재의 임나일본부설 논란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활발한 연구로 가야사에 '빗장'을 걸어 두었다면 일본의 역사가들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설'이 외교적 현안으로까지 부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임나일본부설은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적인 문제라고 판단한다. 일제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시키는 데 동원된 임나일본부설이 이제는 집단자위권 문제에 동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때 그 대상영역이 어디가 될 것 같은가? 한반도다.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필자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일본의 우익화를 염려한다면 뜨거운 가슴과 함께 차가운 머리도 필요하다. 차근차근 반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글을 마치며 하는데 뒤가 자꾸 켕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대해서 뭐라고 그럴 수 있겠어? 친일매국을 한 사람을 이달의 스승으로 지정하고 아이들에게 널리 알린 게 누군데!'

 

 

* 역사저널 그날: 소품으로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이 등장했다. 이 탁본은 실물을 1/2 크기로 줄였다고 한다. 이걸 감안하더라도 광개토대왕릉비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중동발 훈풍, 한반도에도 불 수 있을까?

 

[주장] 오바마의 광폭 행보와 북한 핵협상

 

15.04.07 11:40  최종 업데이트 15.04.07 11:40

 

 

 

 

 

 

 

악의축과 불량국가

 

'악의 축'도 '불량국가'도 이제 하나만 남았다. 그렇게 무대에 단독으로 서 있는 '주인공'은 바로 북한이다. 지난 2일 이란 핵협상의 타결로, 이제 무대는 북한의 독차지(?)가 된 것이다. 이란의 퇴장으로 인해 소련 붕괴와 911테러 이후로 만들어진 악의 축과 불량국가들은 미국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실상 그 목표(소멸)에 도달하게 된 셈이다. 

일단 용어를 정리해보자. 불량국가(rogue state)는 소련의 붕괴 이후로 만들어진 것으로 냉전 이후 새롭게 등장했다기보다 기존에 '눈엣가시'같던 국가들을 묶어, 소련이 행했던 역할로 자리매김했다. 그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평화에 역행하고, 테러를 자행하거나 방조하는 국가들이 그 리스트에 올려졌다. 북한,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이 올랐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이스라엘이나, 쿠르드족을 탄압한 터키가 빠져 있는 등, 불량국가 리스트는 온전히 미국의 국익적 관점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악의 축(axis of evil)은 2002년 1월 29일,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 문서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란, 이라크, 북한이 그 대상이었다. 불량국가 중에서도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몇 나라를 추려낸 것이다. 911테러가 있은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인 시점에 발표된 것이라 그 파장은 상당했다. 정권 교체에 군사행동까지 포괄적으로 포함된다는 것으로 알려지자 해당 국가들은 크게 반발했었다.

악의 축 지정과 관련하여 북한은 무척 억울했을 것이다. 북한은 911테러가 있은 후, 테러에 대해 반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동지역에 쏠린 것을 중화시키기 위해 북한이 구색 갖추기 용으로 포함됐다는 후문이 있었다. 실제로 초안에는 북한이 빠져있었다.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에 창안되고, 혹은 공고화된 악의 축과 불량국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흘러간 유행가처럼 빛이 바랬다. 가다피 정권 시절에 이미 미국과 화해의 손을 잡은 리비아는 재스민 혁명의 여파로 내전 중에 있다. IS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시리아도 내전 중에 있다. 수단은 2011년 수단과 남수단으로 분리됐다. 쿠바는 작년 12월에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섰다. 이라크는 굳이  언급을 안 해도 사정을 잘 아실 것이다.

 

 

적과도 악수를 하겠다


 
▲ 오바마 대통령 이란 핵협상과 관련된 문서를 열람하고 있는 오바마. 옆에 있는 사람은 벤 로즈,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 백악관 홈페이지 자료사진 캡처.
ⓒ 백악관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전에 '적과도 악수를 하겠다'라는 큰 포부를 밝혔다. 이번 이란 핵협상 타결과 지난 쿠바와의 관계 개선은 그 포부가 결과물로 도출된 것이다. 2012년, 오랫동안 관계가 단절되었던 버마를 전격적으로 방문한 것도 결은 다르지만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오바마의 광폭 행보는 이란이 마지막 종착지가 아닐 수도 있다. 중동발 훈풍이 한반도에도 전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런 국내외 예측에 대해서 미 국무부는 이란과 북한의 경우는 사안이 다르다고 차이를 강조했다.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수준이 엄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번 협의에서 이란은 원심분리기를 1만 9000개에서 6104개로 줄이고, 저농축 우라늄 비축 분을 1만kg에서 300kg으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내용에서도 보이듯 시험기기나 실험실 차원의 핵물질이 이번 합의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3번에 걸쳐 핵실험을 했다. 이란과 달리 상당 수준의 핵무기 제조에 접근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벤 로즈(Ben Rhodes)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은 2013년 9월 23일에 이런 발언을 했다.

"실제로는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획득했고 2006년 초 시험도 했다. 그러나 이란은 핵무기를 아직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벤 로즈의 발언에 입각하자면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벤 로즈가 오바마의 '남자'로 불릴 정도로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당시 그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의 벤 로즈의 발언은 현재 미 국무부가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고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비핵화 단계냐, 아니면 비핵화 단계를 넘어섰느냐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적인 면에서 그 '액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핵화 단계인 이란은 실험실을 '문 닫으면' 되지만 비핵화 단계를 넘어선 북한은 '더 큰' 것을 넘겨주어야 한다. 북한측에서도 '초대장'을 받았다고 순순히 그 '초대'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난제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란과 달리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것이다.

 

 

한반도발 훈풍을 기대하며


그렇다면 한반도발 봄바람은 아예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이란 핵협상도 이스라엘의 강한 반대를 극복해야 했다. 이스라엘 총리인 베나민 네타냐후는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하원에서 이란 핵협상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시아파 이란의 부상을 꺼리는 나라 중에 하나가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였던 것이다.

이렇듯 이란 핵협상 이면에는 주변국들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북한 핵과 관련된 난제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들이었다. 다음 대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오바마이기에 마지막 악수를 북한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편 오바마는 할아버지의 나라였던 케냐도 방문할 예정이다. 그간 오바마는 케냐 출신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래서 이제껏 자신의 뿌리였던 케냐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외교행보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협상이라는 건 난제가 있기 때문에 꾸려지는 것이다. 고스톱이나 치려고 협상테이블에 앉는 게 아니다. 북한은 오바마를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임기 종료가 가까울수록 자신의 외교적 업적에 큰 방점을 찍으려고 하는 오바마는 협상 파트너로서 제격일지 모른다.

오바마가 물러나면 또 이상한 사람이 그 테이블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00년 615공동성명,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과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 북미공동코뮤니케 등등... 2000년 하반기에 일어난 한반도발 훈풍이 조지 W. 부시의 등장으로 일순간에 삭풍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소중한 가족'의 역습

 

개들은 사람처럼 '가족'을 버리지 않습니다!

 

15.04.05 16:11    최종 업데이트 15.04.05 16:11

 

곽동운(artpunk)

 

 

 

 

 

 

산티아고 순례길의 들개들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동네 개. 들개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재한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그때는 정말 소름 끼쳤어요. 여기까지 와서 개떼한테 습격을 당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작년 11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한 젊은 여성인 K씨, 그녀는 필자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하였다. 단독으로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던 K씨는 인적이 뜸한 숲길에서 들개들의 습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개들이 저를 그냥 경계를 하는 것 같던데... 그런데 제가 개를 좀 무서워하거든요. 그래서 지팡이로 몇 번 휘저으니까 개들이 공격을 하더라고요."

천만 다행으로 뒤쪽에서 순례자들 여럿이 달려와 개들을 쫓아냈다며, 그녀는 바지를 걷어 개한테 물린 부위를 확인시켜주기까지 했다.

"스페인 땅까지 와서 병원에 갈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잘 해주셔서 그나마 다행이었죠."

산티아고 순례길은 편의성이 높은 도보여행길이다. 안내표지와 숙소 등의 제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단독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순례길은 인적이 뜸한 구간이 많아 홀로 걷는 것보다는 그룹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러나 K씨는 그날 단독으로 일정을 소화하다 그만 들개들의 습격을 받았던 것이다.

K씨를 공격한 개들은 버려진 개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순수한 의미의 들개는 아니었다. 어떤 개는 목줄도 있었고, 또 어떤 개는 크기가 고양이만한 애완견 정도였다고 했다. 추측을 해보건대 그 개들은 순례길 인근 농가에서 흘러들어 와, 그 후 들개화 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농촌도 고령 인구가 많다. 주인이 사망을 하면 개들은 떠돌이가 되고, 그런 개들이 모여 들개가 된 것이라 여겨진다.

 

 

 


북한산의 들개들

 
▲ 백구 북한산 인근에서 만난 백구. 역시 주인이 있는 동네 개다. 들개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재한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필자는 K씨에게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들개가 있어요. 북한산 들개들이죠. 정확히는 버려진 유기견들이지만..."

그렇다. 북한산에도 들개가 있다. 실제로 북한산 국립공원 측은 60여 마리의 들개가 북한산에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북한산뿐 아니라 서울 근교 산에도 들개들이 있다. 실제로 필자는 관악산에서 진돗개로 보이는 들개와 마주친 적이 있다. 심지어 도심지와 아주 가까운 인왕산 부근에서도 직접 목격을 했었다. 이렇듯 들개 문제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겪을 수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현실을 구체적으로 좀 더 살펴보자. 얼마전 아웃도어 모임에서 만난 A씨는 둘레길을 걷다 위험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고 했다. 젊은 여성인 A씨는 트레킹 마니아인데 주말에는 시간을 낼 수 없어 주중에 주로 둘레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날도 단독으로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유기견으로 보이는 들개들과 마주쳤다는 것이다. 유기견들은 위협했고, A씨는 그 길로 도망을 쳤다고 했다.

한참을 내달려 다른 등산객들을 만난 이후에야 들개들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필자는 개들이 몇 마리였는지, 견종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봤지만 A씨는 경황이 없어 알 수 없었다고 답했다. 대신 이런 말을 남겼다.

"분명 한 두 마리는 아니었어요."

다른 사례도 짚어보자. 필자가 '수학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선배가 있는데 이 분은 자전거 마니아다. 근무지 문제로 경남 양산에 약 1년 간 머무르던 선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한적한 임도길 오르막에서 유기견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송아지만한 개 있잖아. 시베리아 허스키인가 하는... 나랑 같이 눈이 마주쳤는데 오싹하더라고. 만약 내가 중간에 내렸으면 공격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냥 계속 페달을 밟았어. 그 지역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일대에 버려진 개들이 좀 있다고 하되."

앞서 K씨가 스페인에서 당한 경우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팩트가 있다. 우리나라의 들개는 주인들에게 버려진 유기견이라는 것이다. 버려진 개들이 들개가 되고, 그 들개들이 사람들을 위협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1월 16일자, <EBS> '하나뿐인 지구, 북한산 들개'편을 보면, 최근 5년 사이에 북한산 일대에서 포획된 들개들 중 320마리가 안락사를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 개들은 분명 누군가에게 '소중한 가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개들은 버려졌고, 들개가 되어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필자는 아웃도어를 즐겨하는 입장이라 북한산에 자주 간다. 그때마다 종종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하지만 지금은 '안락사' 대상인 존재들을 마주쳤고, 마주칠 것이다. 개 좀 버리지 말자. 좋다고 기를 때는 언제고, 나이 들고 병들었다고, 또한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그렇게 함부로 버리는가! 그렇게 '소중한 가족'을 버리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인간보다 못한 개들이지만, 개들은 일부 사람들처럼 '소중한 가족'을 버리지 않습니다."

 

 

덧붙임: 들개를 만났을 때 대처법


들개를 만났을 때는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지팡이를 휘두르면 개들은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한다고 여기고 공격성을 드러낸다. 가급적 정숙함을 유지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다. 에어파스를 뿌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에어파스를 휴대해야 하는 불편도 있고, 파스를 맞은 견공은 큰 해를 당할 수 있으니 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자.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