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똥에 그만 '철퍽'하고 넘어졌다 2편

[공모- 더러운 이야기]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벌어진 일, 그만 웃어버렸다

 

 

 

 

 


 

 
▲ 자전거여행 2009년 여름에 행한 1차국토종단 자전거여행. 면도를 안 해서 지저분하다. 무릎쪽에는 그날에 난 그 상처때문에 큰 거즈가 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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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이어서

 

 

 

 

무릎은 깨졌지, 다리는 풀렸지, 그래서 뒤로 넘어갔지!

상처부위를 직접 눈으로 보니 아픈 게 더 크게 느껴졌다. 잠시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통증에 다리도 더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 때 때마침 무언가가 제 앞을 휙~ 지나가는 것이었다. 귀신인가?

"악!"

머리는 띵하지, 다리는 풀렸지, 귀신인지 뭔지 때문에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 그렇다. 그냥 뒤로 넘어졌다. 이번에는 '꽝'이 아니라 '철퍽'하고 넘어졌다. '철퍽'하고 소리가 우렁차게 난 만큼 다 묻었다. 그 날 제주산 똥돼지 먹었다고 크게 일을 봤었는데 그게 다 필자의 엉덩이로 옮겨왔던 것이다.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지 엉덩이에는 철퍽하고 다 묻었지! 정말 난감했다. 이러려고 자전거 여행을 한 게 아니었는데.

'이게 다 뭐냐! 제주도에서 한 밤 중에 뭐하는 짓이냐!'

그래도 별 수 있는가, 이미 다 묻어버렸는데. 빨리 빡빡 닦아내야지. 정신을 가다듬고 뒤처리에 나섰다. 그리고는 크게 한 번 웃었다. 뭐가 좋아 웃었냐고, 묻지 마시라! 그 상황에서 울음을 터뜨릴 수도 없지 않은가?

덕분에 아주 시원하게 샤워도 하고 비데도 하게 됐다. 그것도 전신으로 하게 됐다. 저녁을 해먹은 코펠통으로 물을 받아 시원하게 내려 부었다. 깨진 무릎팍이 쓰라렸지만 참았다. 아주 빡빡 문질렀는데도 냄새가 잘 안 지워졌다. 코펠통으로 수없이 물을 뿌려댄 후에야 겨우 샤워를 끝낼 수 있었다. 그때서야 무릎의 피도 어느 정도 지혈이 됐다.

여행을 하다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있지 않던가. 어쩌면 그렇게 지저분한 일들을 당하는 것도 여행의 일부일지 모른다. 한라산 중턱 이름 모를 야영장에서 홀로 샤워 겸 비데를 마음껏 즐겼으면 그만 아닌가! 또 덕분에 이렇게 '더러운 이야기' 공모에 쓸 '꺼리'도 생기지 않았던가! 이런 것도 다 여행의 재미다. 더러워서 문제지만.

 

 

 

 
▲ 제주도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보시며, 필자의 더러운 이야기 때문에 지저분해진 눈과 마음을 정화하시길!

 

 

 

 

 

 

 

 

 

 

내 똥에 그만 '철퍽'하고 넘어졌다 1편

 

[공모- 더러운 이야기]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벌어진 일, 그만 웃어버렸다

 

14.08.10 14:54  최종 업데이트 14.08.10 14:54
 

 

 

 

 

 

 

 
▲ 화장실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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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여름.


당시 필자는 1차 국토종단 자전거여행을 행하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여행은 목포를 찍고 제주까지 이어졌다. 무려 17일 동안 계속된 여행이라 재밌는 일도 힘든 일도 많았다. 그래서 에피소드도 넘쳐났다. 특히 그날의 에피소드는 정말 '거시기' 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지저분한 일이었다.

장기간의 여행이었지만 식사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똥'이었다. 평소에는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았었는데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여행 중에는 무척 자주 가게 됐다. 자전거 타기가 장운동에 좋아서 그런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주 넉넉하게 일을 처리했다. 변기가 막혀 조마조마한 적도 있었다. 자전거 타기가 숙변제거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골에는 화장실 시설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야산에다 일을 처리 한 적도 있었다. 야삽으로 터를 잡고 일을 처리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일을 볼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제주산 똥돼지로 배를 채웠던, 그날 밤

제주도의 한 아영장.

문제의 사건은 여행의 끝무렵이었던 제주도에서 발생했다. 필자는 그날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있는 한 야영장에다 텐트를 쳤다. 야영장이라고 하지만 폐쇄가 됐는지 시설은 다 노후화 된 곳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몸을 씻을 수 있을 정도의 수도 시설은 있었다.

그 날 그 곳에는 필자 혼자였다. 달빛이 있었지만 어두웠다.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좀 쓸쓸한 밤이었다. 한라산 중턱 부근에 홀로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쓸쓸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문제의 그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낮에 '똥돼지'로 불리는 제주산 돼지를 배불리 먹었더니 신호가 오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아주 큰 녀석이 배출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욱신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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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여행 2009년에 행한 1차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주렁주렁 매달고 지저분하게 하고 다녔다. 정신이 없었는지 뒤쪽 받침대도 안 올리고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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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뭐야!'


화장실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건 화장실이 아니었다. 그 곳은 귀신도 줄행랑을 칠 정도로 아주 최악의 화장실이었다. 냄새는 그렇다 치고 두 발로 자세잡기도 힘든 곳이었다. 아영장에 왜 사람이 없었는지, 왜 그렇게 시설이 낙후됐는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자연을 벗 삼아 일을 치르기로 결심 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데 이게 딱 그거네. 오늘 따라 무척이나 비데있는 좌변기가 그리워지는구나!'

서둘러 땅 팔 곳을 찾았다. 허겁지겁 일을 치를 곳을 물색했는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만 '쾅'하고 돌에 부딪혀 오른쪽 무릎이 크게 다치게 된 것이다. 야영장이 어두웠던 데다 장기간의 여행 여파로 피로가 누적됐는지, 그만 다리 힘이 풀렸고 바위를 들이 받은 것이다.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엄청 세게 다쳤지만 아파도 별 도리가 없었다. 그저 빨리 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당시 필자는 인간의 배설욕구가 외상의 고통 정도는 쉽게 불식시킨다는 것을 온 몸으로 습득하였다.

그렇게 볼일을 봤다. 정말 시원했다. 그렇게 원초적인 순간이 지나가니 자연스럽게 무릎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출혈이 심했던 것이다. 상처 부위도 상당히 넓었다. 그렇게 큰 상처가 났을 줄은 정말 몰랐다.

 

 

 

 

 

 

▲ 제주도의 푸른 바다 제주도 구좌읍의 바닷가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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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그 섬에 다녀오다!__ 2편

2014 이어도 해양아카데미를 다녀와서 2번째 이야기

14.08.01 13:11l최종 업데이트 14.08.01 13:21

 

 

 

 

 

초토화작전으로 사라진 곤을동 마을

제주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곤을동 마을이란 곳이 있었다. 이 곤을동 마을은 화북포구 서쪽에 있었는데 멸치잡이로 유명한 곳이었다.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살았던 곤을동 마을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곤을동 마을이 사라진 날은 제주 4·3사건이 한창이었던 1949년 1월 4일이었다. 그날 오전 무장대와 군인들 간에 교전이 있었는데 무장대 중 한 명이 곤을동 마을 쪽으로 도망을 친 것이다. 곤을동으로 도망 온 무장대는 곤을동 마을 주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인들은 곤을동을 '폭도의 마을'로 지목하고, 주변을 포위한다. 군인들이 마을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학살이 일어났고, 곤을동은 불태워졌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4·3사건 당시, 군경의 초토화 작전은 중산간 지역에서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곤을동 마을처럼 해안지역도 초토화 작전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워낙 중산간지역의 피해가 커서 그렇지 해안지역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 곤을동 제주 4.3사건 때 군경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곤을동 마을.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돌담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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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만 남아 있는 곤을동 마을을 보고 있자니 폐사지에서나 느껴졌던 황량함이 밀려왔다. 집채는 온데 간데 없고 마당을 둘렀던 돌담들만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화로운 마을이 한 순간에 사라질 정도로 곤을동 마을 주민들이 큰 잘못을 한 것일까? 인간의 내면에는 자비심보다 파괴욕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인가?'

 


다크 투어리즘과 제주도

돌담을 타고 오른 넝쿨들과 마당 자리에 피어난 잡초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안타까운 감정만 들었다. 곤을동 마을 탐방처럼 전쟁이나 학살, 천연재해를 당한 곳을 방문하는 것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부른다. 다크 투어리즘은 아픈 기억을 가진 지역을 탐방함으로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인데, 19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테마 여행의 한 형태다. 아우슈비츠, 체르노빌 같은 곳을 탐방한다면 다크 투어리즘 여행을 하는 것이다.

다크 투어리즘에 빗대서 생각해보면 제주도 곳곳이 다 탐방지에 속할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진행된 옥쇄 작전,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4·3, 한국전쟁 당시 때 일어난 예비검속 등등...

 

 

 
▲ 곤을동 돌담들이 이 곳이 집 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사진 중앙의 오른편에는 곤을동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거욱대가 보인다. 곤을동 사건은 1949년 1월 4일 오후 3시경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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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만 그러겠는가? 육지도 다크 투어리즘 천지다. 5·18, 노근리, 서대문형무소 등등... 동학농민군이 몰살을 당한 공주 우금티도 다크 투어리즘의 최적지일 것이다.

밀물 때는 들어갈 수 없는 구좌읍 세화리 갯것이 할망당(해신당) 방문 등 제주해양문화유적 탐방은 짧았지만 무척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주강현 박사의 입담과 강은정 박사의 꼼꼼함이 잘 결합되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더군다나 한 여름 제주의 바다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잠의 림프' 따위가 찾아올 틈이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돌아오는 비행기는 창문측에 앉을 수 있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제주도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제주도를 떠난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그렇게 하여 산 사나이의 제주도 해양문화 나들이는 무사히 종료가 됐다.

 

 


 

 
▲ 제주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제주 시내. 용두암 일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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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그 섬에 다녀오다!__ 1편

 

2014 이어도 해양아카데미를 다녀와서 2번째 이야기

 

14.08.01 13:11l최종 업데이트 14.08.01 13:21

 

 

 

 

 

 

 

 
▲ 우도 제주 우도의 명소. 검멀레동굴과 검멀레 해수욕장. '검멀레동굴'은 검은 모래가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자세히보면 동굴과 해수욕장의 모래는 검은빛을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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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들썩였다. 아무리 이어도 해양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강연들이 흥미로웠다지만 좀이 쑤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도어(indoor)보다는 아웃도어(outdoor)에 강한 필자에게, 어떤 강연은 지루하다 못해 '잠의 림프'까지 만나게 해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주강현, 강은정 박사가 진행한 제주해양문화유적 탐방은 필자의 눈에 붙은 '잠의 림프'를 내쫓아주기에 충분했다. 푸른 바다에 위치한 탐방지들을 시원하게 둘러보았기 때문이다.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인 주강현 박사는 인문학, 민속학, 해양학 등 전방위적인 지식인으로 유명한 분이고, 연구원인 강은정 박사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천연재해를 당한 곳을 탐방하면서 역사적인 반성과 성찰을 해보는 새로운 형식의 테마여행을 말한다.

 

 

섬 속의 섬, 우도


제주해양문화유적 탐방의 첫 번째 목적지는 '섬 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우도였다. 우도는 소가 드러누운 형상이라 하여 우도(牛島)라고 불린다. 여의도보다 조금 더 큰 우도는 '우도 8경'이 있다. 작은 섬이지만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해양아카데미 탐방단은 유명한 우도 등대에 올라가 우도와 바다건너 성산 일출봉 일대를 조망하였다. 우도 등대는 섬의 남쪽 쇠머리오름에 있는 등대로 1906년에 처음으로 점등되었다. 2003년에 새롭게 개축하였고, 일대를 등대공원으로 만들어 지금은 우도를 찾는 이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 우도 우도 등대에서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제주대 명예교수 주강현 박사. 사진 중간에 물병을 든 이가 주강현 박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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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등대 앞에서 주강현 박사는 우리나라의 등대 문화에 대해서 문화해설을 하였다. 초기 등대는 일제가 우리해양을 수탈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당시 등대 관리자들은 전부 일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칼을 차고 근무를 했어요. 관헌들이었죠. 그만큼 일제는 등대를 전략 시설로 본 것입니다."

우도 제일의 명소인 검멀레 동굴 탐방이 이어졌다. 우도봉 아래에 있는'검멀레동굴'은 검은 모래가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옆에 있는 검멀레 해수욕장은 검은빛을 띄는 모래사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검은색의 현무암이 오랜 세월 깎이고 깎여 검은색 모래로 변한 것이다.  

 


 

신이 내린 황금그물, 갯담


탐방단은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로 향했다. '신이 내린 황금그물'이라는 갯담을 보기 위해서였다. 갯담은 밀물과 썰물의 차를 이용하는 재래식 어로작업을 말한다.

바닷가에 빌레(너럭바위)로 둑을 쌓아 놓으면, 밀물 때 밀려 들어온 물고기들이 썰물 때에 못 빠져나가고 그 둑 안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갇힌 물고기를 걷어 들이는 방식이다. 원시적인 어업형태지만 가장 친환경적인 어로 형태가 바로 갯담인 것이다. 

 


 

 
▲ 갯담 갯담은 재래식 어로방식이다. 제주에서는 갯담을 원담이라고 불렀다. 밀물을 타고 온 물고기들이 갯담(돌)에 막혀 썰물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을 어획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업 형태다. 충청지역에서는 독살이라고 불린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무두망개 갯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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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담을 두고 제주에서는 원담이라고 불렀다. 원담에는 다양한 물고기들이 어획됐는데 그 중에서 멸치가 가장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멸치를 '멜'로 부르는데 이 '멜'은 식용 뿐아니라 토지의 거름으로도 쓰였다. 척박한 현무암 토양에 밑거름으로 뿌려진 것이다.


탐방단이 찾은 구좌읍 하도리 무두망개 갯담은 넘실대는 제주의 푸른 바다와 잘 어우러져 있었다. 자연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인공미였다. 만약 주강현 박사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바다쪽에 쌓여진 돌무더기 정도로만 인식했을 것이다. 그만큼 무두망개 갯담과 거기서 이루어진 어로작업은 자연 그 자체였던 것이다.

주강현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탐방단은 운이 좋았다. 밀물일 때는 갯담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인생이든 여행이든 '때'를 잘 맞춰야 하는 것 같다. 밑바닥이 보이는 청정 제주바다 위에 올려진 무두망개 갯담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열대지방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이가 이런 말을 했다.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아요. 뭐 몰디브나, 남태평양 같은데요..."

 

 

 

 
▲ 무두망개 갯담 한 참가자가 갯담 밖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얼핏보면 남태평양의 한 휴양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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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도: 우도 등대 가는 길

 

 

 

 

 

 

 

 

 

 

 

◆ 우도: 성산포항에서 우도행 배를 기다리며...

 

 

 

 

 

 

<제주> 3일간의 제주도 둘러보기___ 사진이야기

 

 

 

 

 

지난 7월 21~23일까지, 2박 3일간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사단법인 이어도 연구회와 한겨레 교육문화센터가

주최하는  <2014년 이어도 해양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다녀온 것이지요.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이어도 해양아카데미에는 새내기 대학생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분들까지, 각계 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60여명의 분들이 참가를 했답니다.

이어도 문제에서부터 제주도의 해양문화와 생활방식까지... 강연과 현장답사로 이루어진 이번 아카데미에서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예전에는 그냥 스쳐지나갔던 것들도 설명을 들으며 관찰을 하니 새롭게 보이더군요.

이 포스팅은 그런 해양 아카데미의 맛보기입니다. 

 

 

 

 

 

 

 

◆ 우도: 우도 등대에서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제주대 명예교수 주강현 박사.

사진 중간에 물병을 든 이가 주강현 박사임.

 

 

 

◆ 우도 등대

 

 

 

 

◆ 우도: 우도 올레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우도: 제주 우도의 명소. 검멀레동굴과 검멀레 해수욕장.

'검멀레동굴'은 검은 모래가 있는 동굴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자세히보면 동굴과 해수욕장의 모래는 검은빛을 띄고 있다.

 

 

 

 

◆ 갯담: 갯담은 원담이라고도 불리는 재래식 어로방식이다.

밀물을 타고 온 물고기들이 갯담(돌)에 막혀 썰물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여 어획을 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업 형태다.

충청지역에서는 독살이라고 불린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무두망개 갯담.

 

 

 

◆ 무두망개 갯담: 한 참가자가 갯담 밖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얼핏보면 남태평양의 한 휴양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같다.

 

 

 

 

곤을동: 제주 4.3사건 때 군경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곤을동 마을.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돌담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 곤을동: 돌담들이 이 곳이 집 터였음을 알리고 있다. 사진 중앙의

오른편에는 곤을동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거욱대가 보인다.

곤을동 사건은 1949년 1월 4일 오후 3시경에 발생했다.  

 

 

 

 

 

◆ 제주공항: 제주공항에서 대기실에서 바라본 제주공항 활주로.

 

 

 

 

◆ 제주도를 떠나며: 제주도를 떠나며 한 컷.

운이 좋았는지 서울로 올라오는  좌석은 비즈니스급(?)이었다.

또한 창측에 앉을 수 있었다. 창측에 앉아 열심히 사진을 찍어봤다.

 

 

 

 

 

 

 

 

  

 

 

▲ 배 우리는 해양강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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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 섬 '이어도' 보고 목숨 잃었던 이유___ 2편

 

 

---> 전편에 이어서

 

 

신비의 섬 이어도와 이어도해양과학기지

이어도는 국토의 최남단인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에 위치한 수중암초다. 가장 위쪽으로 솟아 오른 부분이 해수면에서 -4.6m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10m 이상의 높은 파도가 일어나야 이어도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지만 옛날의 뻔한 선박기술로는 10m짜리 집채만한 파도를 견딜 수 있었던 고깃배가 없었고, 그래서 난파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즉 옛날에 이어도를 보았다는 것은 자신이 탄 고깃배가 큰 파도에 휩쓸렸다는 뜻이다. 큰 파도가 일어나야 이어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파도가 제주 어부들의 목숨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곳. 가려면 이승의 삶을 내려놓아야 하는 곳. 그런 곳이 이어도였다. 남겨진 이들은 파도에 휩쓸려 이 세상을 등진 이들에게, 이어도가 안식처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자연사보다는 해난사고가 많아 시신을 찾지 못했던 제주도의 장례 문화 특성이 이어도 전설에 고스란히 스며들어간 것이다. 한마디로 제주도민들에게 이어도는 해원(解寃)의 장소였다.

 

 

 

 

▲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국립해양조사원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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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환상의 섬으로만 인식됐던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가 들어섰다. 이어도 수역은 명량해전이 있었던 울돌목만큼이나 조류가 심한 곳이라 해양기지를 만드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집채만한 큰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쳤지만 당시 건설진들은 그런 난관들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인 지난 2003년, 드디어 이어도해양과학기지는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도 기지는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기 8∼12시간 전에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어도 수역은 우리나라 해상 운송의 대동맥과 같은 곳이다. 그런 중요한 곳에 이어도 과학기지가 들어선 것이다.

 

이어도기지와 한국 방공식별구역의 확장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어도 해양기지의 건립은 순탄하지 않았다. 작업공간의 한계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의 반대도 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쑤옌자오(이어도의 중국명)가 전통적으로 자국의 관할에 속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실제로 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에는 이어도가 포괄되고 있다. 참고로 한국과 중국간에는 해상경계 조약을 맺지 않고 있다.

2012년 11월.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제18차 당 대회에서 중국 정부는 '해양강국 건설'을 천명하였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역설했던 시진핑의 담화는 2013년에는 중국 공군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현실화 됐고, 2014년에는 남중국해 시사군도에서의 석유시추로 강행됐다.

현재 일본과 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제쳐놓더라도, 중국이 해상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건 주변국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하하다는 뜻일 것이다. 황해바다부터 동중국해, 남중국해까지. 중국과 인접국들은 바다를 두고 서로 얽히고 설켜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거친 파도 위에 우뚝 서 있는 이어도 해양기지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다. 태풍의 진로를 미리 파악하여 육지에서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고, 우리나라 해상물류의 대동맥에서 등대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대항하여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재설정 됐을 때도 이어도해양과학기지는 큰 역할을 해주었다. 만약 이어도 기지가 없었다면 방공식별구역의 확장도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어도 해양아카데미 이어도 해양아카데미 참가자들. 우도 등대를 탐방한 후 우도 올레길을 걷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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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해양강국인가

이와 같이 해양아카데미에서는 이어도 문제와 우리의 해양문화에 대한 강연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명확히 개념이 잡히지 않았던 이어도 문제와 제주지역의 해양문화에 대해 스스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큰 도움을 받은 시간이었다.  

대다수의 강의는 흥미진지해서 한 시도 강연자의 말을 놓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강의는 필자를 깊은 '졸음의 심연'으로 인도하기도 하였다. '졸음의 심연'에 빠지기 않으려고 빰을 때리고, 허벅지를 꼬집고. 그런 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난 인도어(indoor)보다는 아웃도어(outdoor) 체질이야!'

글을 마치기 전에 독자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다.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인가?"

예전 같았으면 필자는 우리가 해양강국이라고 말을 했을 것이다. 세계에서 몇 개국 밖에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고, 축구장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유조선도 척척 만드는 나라이기에 당연히 해양강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세월호 때문이다. 엄청난 해양사고가 일어난 지 100일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사고에 대해서 명쾌하게 밝혀진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인가. 엄청난 해양사고가 일어났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해양강국인가.

 

 ◆ 이어도의 위치
 
   

 

◆ 배타적경제수역(EEZ): 한국과 중국, 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이

서로 차이가 난다.

 



 

 

 

옛 사람들, 섬 '이어도' 보고 목숨 잃었던 이유___ 1편

2014 이어도 해양아카데미를 다녀와서

14.07.30 13:51 최종 업데이트 14.07.30 14:13

 

 

 

 

 

 

 

 

▲ 여객선 제주 성산포항에서 우도로 향해가는 여객선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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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나이 바다로 가다


필자는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바다보다는 산을 더 자주 방문한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전에도 계룡산에 있는 갑사를 탐방하고 왔다. 그렇다면 산 사나이가 왜 산이 아닌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필자는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제주도 일원에서 개최된 '2014년 이어도 해양아카데미'에 참석했다. '2014년 이어도 해양아카데미'는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공동주최하는 행사로 이어도 문제뿐아니라 우리나라의 해양문화 전반에 대해서 고찰해 보는 행사였다. 

해양아카데미는 실내 강의와 제주도 해양문화유적 탐방으로 나뉘어 실시됐다. 실내 강연에서는 이어도 문제에 대한 주변국들과의 갈등이 설명됐다면, 실외 탐방에서는 제주도 곳곳을 방문하여 해양문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문화해설자'는 민속학자이자 해양학자로 유명한 주강현 박사였다. 입담이 좋은 주강현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제주도의 해양문화를 둘러보니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예전 단독으로 올레길을 걸었을 때는 그냥 스쳐지나갔던 물체들이 주강현 박사의 설명에 얹히니 새롭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래서 답사여행을 할 때는 어떤 문화해설자와 함께 가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 해양아카데미 2014년 이어도 해양아카데미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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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방공식별구역과 이어도


'이어도가 진짜 섬인가. 그런데 왜 이어도를 가봤다는 사람이 없지? 그 섬이 무슨 아틀란티스 제국이야?'

철모르던 시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어도가 섬이라는데 도대체 가본 사람도 심지어 본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어도의 대략적인 위치를 단번에 짚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제주도 출신들에게 물어봐도 명쾌하게 답을 내놓은 사람들이 없었다. 그저 신비의 섬, 이상향, 돌아올 수 없는 섬 등등.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빠뜨리는 답들만 내놓았을 뿐. 지금이야 이어도가 어떤 곳인지, 또한 국제법상으로 어떤 지위에 있는지 깨닫게 됐지만 그때는 무척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렀고 이어도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듯 필자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졌다. 2003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준공으로 잠깐 부양을 했으나 다시 희미해졌다.

 

 


 
▲ 한국 방공식별구역 제주도의 서남단인 이어도 수역 부근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된다.
ⓒ 이어도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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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던 이어도가 다시 고개를 내밀게 된 건 작년 11월경이었다. 2013년 11월, 중국 공군이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했는데 그 선에 이어도 수역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대한민국 정부는 12월에 이어도 수역을 포괄한 새로운 방공식별구역(KADIZ)을 선포하게 된 것이다. 2013년 12월에 선포된 확장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의거하면, 이어도 수역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삼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게 된다. 지도상에 그어진 선들만 놓고 보면 이어도 수역은 동북아의 새로운 화약고처럼 보인다. 

 

 

 

 

 

* 천지연 폭포: 비가 온 뒤라 유량이 아주 풍부했다. 낙수 소리가 우레와 같이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뒤쪽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도] 빗물로 지은 밥

한편 제주도에서는 추자도 때와는 다른 경험을 했다. 제주도에서는 입도하는 첫 날부터 비를 맞기 시작했다. 워낙 비가 많이 내려 주행을 포기한 날도 생길 정도였다.

천지연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서귀포시 외곽의 한 공원. 유량이 풍부해져서 그랬는지 천지연 폭포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폭포는 꽤 먼 곳에 있었지만 그 낙수 소리는 세상을 울리는 듯, 쩌렁쩌렁했다. 엄청난 유량을 자랑하는 천지연 폭포를 감상하는 것은 좋았지만 난 비가 싫었다. 정말 싫었다. 제주도에서 비를 하도 많이 맞아서 이제 비라면 신물이 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텐트를 간이 팔각정 밑에 칠 수 있다는 것.

시간이 지나도 빗줄기는 잦아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거세졌다. 라디오에서도 서귀포지역 일대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꼼짝없이 팔각정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빗줄기가 멈추길 기원하면서 점심을 지어먹으려 식수를 찾았다.

 

 

 

 

 

* 꽃이 핀 야영지: 사진에서처럼 지붕이 달리고, 바닥에 데크가 깔린 나무 정자가 가장 이상적이다.

강한 폭우도 막아주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도 막아주니 가난뱅이 여행객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곳이 바로 저런 곳이다.

2011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뿔싸! 이걸 어째!'

아침에 식사 준비를 하면서 식수를 다 써버린 것이다. 누가 점심 때까지 팔각정에 갇혀 있을 줄 알았나! 생수 한 통을 사오는 것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대비를 뚫고 마트까지 갔다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필자는 장대비를 맞을 몸 상태가 아니었다. 장기간의 여행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우비도 구멍이 뻥뻥 난 상태라 입으나마나였다. 우산은 아예 없었다.

하늘이 뚫린 듯, 빗방울이 거세게 내렸지만 정작 내게는 밥 해 먹을 식수가 한 방울도 없는 상황이었다. 추자도에서는 바닷물을 앞에 두고 씻을 물이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제주도에서는 장대비를 바라보면서 밥 해 먹을 물을 갈구하다니! 세상을 집어 삼킬 듯 천지연 폭포에서는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정작 난 밥 해먹을 물이 없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니! 그러고보면 그 상황은 정말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 방도가 필요했다. 무슨 수가 없을까?

 

 

 

 

 

 

 

 

* 한계령 창고에 친 텐트: 아무리 여름이라고 하지만 한계령은 한계령이었다. 원통리에서 출발했을 때가 낮 12시였는데 한계령에 도착했더니 밤 10시였다.

안개가 가득찬 한계령에서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밤안개처럼 당시 내 처지는 우울했다. 설악산에서 노숙할 판이었으니까. 그러다 저 창고를 발견했는데,

 한 겨울 제설장비 차량 차고로 쓰이는 곳이었다. 덕분에 하룻밤 잘 지냈다. 2012년 백두대간자전거여행 당시의 사진이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푸하핫!'

얼마 후 묘안이 떠올랐다. 생각을 달리하니 금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랬다. 그 빗물을 받아서 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팔각정 처마 밑에다 코펠을 펼쳐 놓았다. 어차피 며칠간 계속된 비로 대기는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그건 팔각정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그곳은 청정지역 제주도 서귀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런가, 빗물로 지은 밥은 정말 맛있었다. 꿀맛이었다. 서귀포의 청정한 빗물로 밥을 지어 먹었으니 꿀맛일 수밖에!

사실 필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필자가 아웃도어 여행을 많이 했어도 빗물로 밥을 지어 먹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여행이 아니겠는가. 언제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게 여행이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필자는 돈이 없는 관계로 가난뱅이 여행을 해야 하니 더욱더 그럴 수밖에!

몇 시간 후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이던 공원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우산을 받쳐 들고 나오고 있었다. 필자는 저 멀리에 있는 한라산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으로 휘감긴 한라산은 무언가 모를 영험함을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는 깨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저기 봐. 서귀포에서도 노숙자가 있나 봐요."
"그러게요. 근데 요즘 노숙자는 텐트도 치고 자나 봐요. 밥도 해먹고. 그나마 서울보다는 낫네."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들이었다. 필자를 노숙자로 본 것이다. 하긴 당시 나는 노숙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말들을 그냥 웃어 넘겼다. 왜? 청정수 빗물로 밥을 해 먹었으니까! 이런 경험은 아무나 못하는 거니까!

 

 

* 대통령의 자전거와 내 자전거: 고 노무현 대통령이 타고 다녔던 자전거다. 필자의 자전거만큼이나 싸구려 철TB였다.

대신 내 자전거는 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대통령의 자전거는 아주 단출하다. 그 분이 생전에 계셨다면 필자에게 쌀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불쌍하다고.

 생각해보니 당시 봉화 마을에서 통김치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한동안 김치 걱정은 안했다. 2010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수해복구: 텐트가 망가져 임시방편으로 저렇게 모기장 텐트를 쳤다. 하지만 모기장 텐트 쳤다 폭우를 만났다.

침낭 양 옆으로 물고가 생겼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를 만났었다. 2011년 전북 완주에서 찍은 사진이다.

 

 

 ▲ 청량산 베이스캠프: 낙동강가에 세운 청량산 베이스캠프. 청량산을 병풍 삼고, 낙동강 끌어 안을 수 있었던 최고의 캠핑지였다!

한편 저렇게 정자 아래에 텐트를 치니 밤새 비가 내려도 물난리를 겪을 일이 없었다. 이 사진은 2012년에 행한 백두대간자전거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 충남 천안: 2009년, 천안에 있는 풍세천이란 곳에서 캠핑을 했을 때의 모습이다.

장거리 여행이 익숙지가 않아서 그랬는지 모든 것이 어설펐을 때다.

위험천만하게 하천변에 텐트를 쳤을 정도로 어설펐다. 이 풍세천을 따라가면 호두나무 산지로 유명한 광덕산이 나온다.

광덕산 입구에는 천년고찰인 광덕사가 있다.

 

 

 

 

2010년 여름. 필자는 단독으로 L자형 자전거여행을 행하고 있었다. 이동한 지역을 선으로 이어보면 알파벳 L자와 비슷한 형상이 나와서 L자형 여행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짐을 앞·뒤로 주렁주렁 매달고, 한 여름 뙤약볕 속에서 질주를 한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옷은 싹 다 젖었다. 티셔츠는 등짝에 척 붙었고, 팬티까지 흥건했다.
다음은 필자가 추자도와 제주도에서 겪은 이야기들이다. 둘 다 물과 관계된 에피소드들이다.

필자는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을 때가 제일 싫었다. 매일같이 야영지를 확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캠핑장은 갈 수가 없었다. 물론 이동 경로에 캠핑장이 없기도 했다.

야영지 확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었다. 바로 밥 지을 물과 씻을 물을 확보 하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다보면 온 몸은 땀으로 범벅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씻을 물을 확보하는 것은 먹는 물을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전라남도와 제주도 사이에 있는 추자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서해안 노선을 타고 가느라 바다는 언뜻언뜻 바라보았다. 그런데 추자도에 도착할 당시까지 바다에 발 한 번 담그질 못했다. 그게 좀 억울했다. 여름여행이라 수영복도 준비를 해갔는데….

 

 

 

 

* 추자도: L자형 여행 당시 방문했던 추자도. 추자도는 제주 본섬이나 전남지역과는 다른 멋이 있었다. 한편 이곳은 상추자도 지역의 고개마루였는데

어떤 주민 한 분이 아침에 쓰윽 오시더니, 우려섞인 눈빛으로 '전날 잠을 잘 잤냐'고 물으셨다. 귀신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오싹한 말을 하면서...  

 

 

 

 

 

 

[추자도] 몸을 벅벅 긁으면서 잔 이유

여객선에서 내려 자전거로 추자도 일대를 내달렸다. 추자도에 입도하는 날 안개가 짙게 끼어 좀 불안했지만 주행을 하는 데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추자도의 바닷물은 육지 해수욕장에서 보던 바닷물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정말 깨끗했다. 

넋을 잃고 섬 구경을 했다. 그러다 서쪽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추자도 구경 삼매경에 빠지다가 야영지를 잡을 시간을 놓친 것이다. 조바심이 났다. 추자도 바닷바람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해풍을 맞으며 노숙할 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 해수욕장 근처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씻을 물이 없었다.

수도시설이 있을 줄 알고 일부러 야영지를 해수욕장으로 정했는데… 요즘은 웬만한 해수욕장은 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추자도의 해수욕장은 화장실은커녕 수돗가도 없었다. 왜냐? 추자도는 아직도 제한급수를 할 만큼 급수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하도 물 부족에 시달리니 몇 해 전에 빗물을 보관하는 저장시설을 완공했다 한다.

어쩌겠는가? 씻을 물이 없는데. 땀에 찌든 몸으로 그냥 잘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눈앞에는 시원한 바닷물이 출렁거리는데 내 한 몸 씻을 물이 없어, 필자는 그냥 바닷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바닷물에 빠져보자. 페트병에 물이 좀 남아 있으니까 그걸로 몸 좀 닦아내고.'

그래서 그냥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하지 않나? 땀으로 범벅 된 몸보다는 바닷물로 범벅된 몸이 낫다는 생각에 그냥 뛰어들었다. 그날 밤 필자는 자다가 벅벅 긁었다. 염분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고 잤더니 자는 내내 너무 가려웠던 것이다. 정말 샤워물이 간절한 밤이었다.

 

 

 

 

* 한옥집과 텐트: 요즘은 한옥 펜션이 많다고 하는데... 저런 펜션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전남 순천에서 2011년에 찍은 사진이다.

 

 

 

 

 

 

 

 

* 수해복구: 싸구려 텐트를 치고 다녔던 터라 비가 오면 항상 물날리를 겪었었다. 그래서 비온 뒤에는 항상 저렇게 수해복구를 해야했다.

2011년에 충남 서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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