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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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별의별 일들을 다 겪는다. 그렇다. 여행이 우리 스케줄대로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여행자들은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매번 짜증을 낼 것인가, 아니면 ‘문제없다며’ 쿨하게 넘길 것인가?
몇 해 전. 서울 촌놈인 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난생 처음 유럽에 가는 길이라 ‘유럽스타일’ 좀 낸다고 옷도 사고, 신발도 사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또 한 푼이라도 아낀다는 생각에 수수료가 저렴한 곳을 골라 환전을 하기도 하고, 여행 정보를 얻는다고 10시간 동안 꼼짝 않고 웹서핑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누구는 ‘유럽여행 두 번 가면 어디 실려 가겠다’고 질책을 하기도 했다. 하긴 그 말도 맞았다. 여행 준비에 골몰하는 바람에 난 두통약까지 복용해야 했으니까.
가을 하늘이 유난히도 청명했던 10월의 어느 날, 난 인천공항에서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새로 산 옷과 신발을 신고 영자 신문을 넘기며 폼을 좀 잡아봤다. 또 목에 힘주며 환전한 유로화도 꺼내서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폼 잡는 것도 잠깐 그 순간이었다. 왜?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동안 기내에 갇혀 비행을 한다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인가!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 몸은 계속 축 늘어져갔다.
승무원들이 음료카트를 끌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음료 서비스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술을 잘 못하지만 그날만큼은 음료카트에 실린 위스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냥 한 잔 제대로 마시고 잠을 청하고 싶었다.
“음로 하씨게써요?”
좀 어눌한 한국말로 내게 음료를 권하는 스튜디어스는 베트남 출신 여승무원이었다. 한국말은 어눌했지만 자태가 고운 미인이었다.
“이쓰키로 할까요?”
덜컹. 난기류를 만났는지 비행기가 잠시 흔들렸다. 그래서 그 승무원의 말이 더 어눌하게 들렸다.
다시 덜컹. 나는 좀 겁이 났지만 승무원들은 그런 난기류들이 익숙한 듯 각자 자신의 일에 집중을 하는 듯했다.
“오, NO!"
하지만 이 말과 함께 그 승무원 손에 들려 있던 위스키 잔이 내게 엎어졌다. 앞서보다 더 큰 난기류에 기체가 더 심하게 요동쳤고, 그녀는 중심을 잃고만 것이다.
잔에 가득 담긴 위스키가 내 얼굴에 쏟아졌고, 난 상반신이 다 젖어버렸다. 옷 상의는 물론 팬티까지 싹 다 젖었다. 난 안경을 쓰는데 우산 없이 길거리에서 비를 맞듯, 내 안경 위로 위스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잠시 멍하게 지켜봐야 했다. 한마디로 난 위스키 샤워를 한 것이다.
“미안해”
당혹스러웠는지, 그 승무원은 어찌할 줄을 모르게 내게 반말을 했다.
“내가 할게”
그녀는 또 반말을 하며, 음료 카트 아래쪽에서 수건을 꺼내 내 얼굴에 들이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수는 실수를 부르는 법이다. 수건을 들이대는 순간 그 승무원은 또 중심을 잃고 내 쪽으로 몸이 쏠렸는데, 그 틈에 수건이 들린 손이 내 얼굴을 강타하고 말았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연속된 실수로 고객의 소중한 여행을 망쳐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운이 좋았다. 왜? 나 같은 너그러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비행 중에 만난 난기류를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 베트남 승무원이 일부러 실수를 하고 싶어서 실수를 했겠는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위스키에 혀를 살짝 다시어, 익살스럽게 맛보기를 할 정도로 난 큰 문제가 없었다.
“No, Problem!"
그렇게 난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그녀에 손에 들린 수건을 빼앗아 얼굴과 상의를 구석구석 닦았다. 그런 나의 침착한 모습에 그녀도 안도가 됐는지, 잔뜩 경직됐던 얼굴이 좀 풀렸던 것 같았다.
내 몸 구석구석을 한참동안 닦고, 안경도 닦았더니 나도 좀 정신이 들었다. 수건을 돌려줄 때 자세히 보니 그 수건 밑단에 고추장이 좀 묻어 있던 게 눈에 띄었다. 경황이 없던 승무원이 사용안한 마른 수건을 준다는 걸 이미 사용한 걸레를 준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난 그것조차 쿨하게 넘겼다.
그런 우여곡절을 넘기며 난 샤를 드골에 무사히 도착했다. ‘위스키 샤워 사건’ 이후, 그 베트남 승무원이 내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최고급 위스키를 건넸는데 그걸 한 잔 마셨더니 내내 좀 ‘알딸딸’했다. 내게만 제공된 특별한 술이었는데, 미녀 승무원이 권한 술잔이라 더 취기가 올랐던 걸까? 아니면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일까? 드골 공항에서 들려오는 프랑스어가 제대로 내 귀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마치 여기저기서 랩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출발부터 그런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랬는지, 당시의 유럽여행은 정말 재미있었다. 어차피 여행을,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여행을 떠난다면 애초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마다 짜증을 내고, 언성을 높일 것인가? 한 가지라도 더 느끼고 배운다는 자세로 여행길을 떠난다면 잠시 잠깐의 불편은 지혜롭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언성 높이지 말고 이렇게 한 번 외쳐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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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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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정리하다가 2012년에 간행된 <하늘사랑 수기공모전> 모음집이 보이더군요. 몇 페이지를 넘기니 그 속에 제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최우수상! 제목은 No problem!
학교 다닐 때는 상장 하나 못 받아봤는데... 나이가 들고, 글을 쓰다보니 저렇게 상도 받아보네요. 그것도 가작이나 우수상이 아닌 최우수상이라니! 정말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 바닥을 기었었는데... ㅋ
이제껏 공모전에서 여러번 상을 받았는데 아직까지는 1등은 못 해봤답니다. 물론 우수상이나 가작도 매우 훌륭한 것지요. 하지만 평생 1등을 한 번 못 해봐서 그런지 대상 한 번 타보는 것이 정말 소원 중에 소원이랍니다.
만약 1등상을 받는다면, 기왕이면 상금이 큰 대회에서 받고 싶네요. 짭잘하게 상금을 챙기게요. ^^;
4년에 발간된 책자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옛날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위에 글은 원문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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