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브롤터암벽: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재미난 스페인 2편> 지브롤터

신화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먹방적 상상력!

 

 

지브롤터 VS 세우타

둘 중 어느 곳이 더 익숙한가? 당연히 지브롤터일 것이다. 지브롤터해협이란 지명이 워낙 유명하니까. 이에 비해 세우타는 새우탕과 발음만 비슷하지 처음 접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세우타보다는 지브롤터를 앞세우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본 매거진의 명칭이 명색히 <재미난 스페인>이 아닌가? 아무리 인지도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더라도, 스페인 땅이 아닌 지브롤터를 앞쪽에 배치할 수가 없었다.

세우타가 모로코 땅에 있는 스페인령 비지라면, 지브롤터는 스페인 땅에 있는 영국령 비지이다. 지브롤터는 우뚝 솟아있는 암벽이 인상적인데 이를 두고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칭한다. 이외에도 '자발 타리크'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타리크의 산'이라는 뜻으로 지브롤터의 어원이 됐다.

지브롤터에서 건너편 아프리카까지는 채 20km도 되지 않는다. 폭이 협소한 지브롤터해협을 두고 북쪽으로는 지브롤터, 남쪽으로는 세우타가 위치해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고대시대부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1700년, 스페인왕 까를로스 2세(Carlos II, 재위 1665-1700)가 사망한다. 그는 4살에 재위에 올랐는데 어려서부터 병약했고, 왕위를 이을 자식도 없었다. 카를로스 2세는 루이 14세의 손자인 앙주공 펠리페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루이 14세는 카를로스 2세의 매형이었다. 유명한 펠리페 2세를 포함한 16~17세기 스페인왕들은 합스부르크 혈통이었지만 이제 부르봉 왕가로 왕위가 넘어갈 판이었다. 프랑스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든 태양왕 루이 14세! 루이 14세의 혈통이 스페인땅도 통치할 기세였다.

그러나 당시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황제의 아들인 카를 대공이 왕위 계승권을 요구했다. 레오폴트 황제도 역시 카를로스 2세의 매형이었다. 정리하자면 첫번째 누이는 루이14세, 두번째 누이는 레오폴트 황제에 시집을 간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가 더욱더 강성해지는 걸 두려워한 유럽의 주요국들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를 두고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1701년부터 1714년까지 이어졌다.

 

 

 

 

* 넬슨제독상: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스페인-프랑스 함대에 맞서 큰 승리를 거두웠다. 트라팔가 해전은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 아니라 나폴레옹과의 전쟁 중(1805년)에 벌어졌다. 트라팔가와 지브롤터는 약 60km 정도 떨어져 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영국은 어느 편에 섰을까? 프랑스-스페인 연합의 반대편에 섰다.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1704년에 영국은 지브롤터를 점령하게 된다. 유럽을 뒤흔든 전쟁은 1714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인해 일단락 됐고 스페인은 큰 영토의 손실을 입게 됐다.

왕위는 어떻게 됐을까? 루이 14세의 손자 앙주공이 스페인왕 펠리페 5세가 됐다. 대신 프랑스왕을 겸임할 수 없다는 조건이 걸렸다. 루이 14세가 간절히 원했던 프랑스와 스페인이 결합되는 연합왕국은 탄생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이때부터 스페인 왕실은 부르봉 왕가가 된다.

가까이에서 바라다보니 지브롤터 암벽은 삼각뿔 형태로 암반면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왕산 역사트레킹이 생각났다.

"인왕산 치마바위쪽을 보세요. 암반면이 잘 노출됐죠? 계속 보시다보면 에너지 넘치는 돌산의 기운이 느껴질 겁니다!"

강의에 집중시키기 위해 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히려 더 떠들썩해졌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돌산의 강한 기운 때문인가? 이곳 지브롤터는 세우타와 함께 헤라클레스(Heracles)가 괴력을 발휘했던 곳이다.

힘의 상징인 헤라클레스는 서양에서는 허큘리스라고도 불린다. 그는 제우스가 바람을 펴서 낳은 아들이라 제우스의 정실 부인인 헤라의 시기를 태어날 때부터 받게 된다. 헤라의 저주는 헤라클레스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됐는데 급기야는 그가 광기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미쳐버린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손으로 부인과 아이들을 죽이고 만다.

처자식을 죽인 죄를 씻기 위해서 그는 12가지 과업을 이행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서쪽 바다에 있는 에리페리아라는 섬에 가서 게리온의 소를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게리온은 머리가 3개, 몸통도 3개인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고 하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게리온이 사는 에리페리아는 가기도 험난했다. 가는 길목에 험준한 아틀라스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괴력이 발휘된다. 아틀라스 산맥의 산줄기를 지워버린 것이다. 이때 바다를 막고 있던 산맥이 둘로 갈라지면서 새로운 바닷길이 열린다. 그 바다가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지브롤터해협이었다. 둘로 갈라진 산 기둥은 하나가 유럽쪽 지브롤터이고, 또 하나가 아프리카쪽 세우타이다. 그 두 기둥은 스페인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을 때려잡았고, 그의 소를 끌고 갔다. 이후 나머지 과업들도 잘 마무리했는데 죽어서는 승천하여 올림포스의 신이 된다.

 

 

 

* 지브롤터 헤라클레스 기둥: 세우타에 있는 기둥상보다 못하다.

 

 

 

한편 그리스 신화를 통해 옛 그리스인들의 지리적 세계관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들은 서쪽으로는 아틀라스 산맥, 동으로는 캅카스 산맥까지를 인식 범위로 두고 있었다. 캅카스 산맥은 코카서스 지방에 있는데 그곳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있다고 전해진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해줘 제우스의 미움을 사게 됐고, 벌로 독수리에 의해 심장이 쪼이는 형벌을 받게 된다. 나중에 헤라클레스가 그 독수리를 때려잡아 프로메테우스를 자유롭게 해 준다.

아틀라스 산맥에는 아틀라스가 우주를 떠받드는 형벌을 받고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과업중에 아틀라스의 딸들이 지키는 황금사과를 얻어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이에 아틀라스는 우주를 떠받드는 일을 잠시 헤라클레스에게 맡기고 황금사과를 얻어온다.

케이블카를 타고 지브롤터 암벽 정상부에 올라섰다. 푸른빛의 지중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왜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인지 알 수 있었다. 바다건너 북아프리카 모로코가 보였다. 스페인령 세우타도 보였다.

모로코가 세우타의 반환을 요구하듯이 스페인도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한다. 프랑코 정권 시절인 1969년에는 경제적 고립을 노리고 국경을 봉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2002년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영국령 잔류에 대한 비율이 98%가 나왔다. 지브롤터 주민들은 스페인의 정치적 혼란, 경제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들어 잔류에 표를 던진 것이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지브롤터 갈등이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말하는 브렉시트로 다시 부상했다. 지브롤터 주민들은 본국과는 달리 95%가 유럽연합 잔류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공동주권을 주장하며 'EU 잔류'를 회유책으로 제시했다. 영국정부는 당연히 반발했다.

스페인 땅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모로코 땅에 있는 스페인령 세우타를 보고 있자니 묘한 감정이 든다. 자신의 기둥이 박힌 두 도시가 모두 영유권 분쟁에 휩싸여 있다니! 헤라클레스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이건 신화적 상상력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일일테지...

답사를 열심히했더니 배가 고프다. 지브롤터 암벽이 삼각김밥처럼 보인다. 신화적 상상력은 빈약하더라도 먹방적 사고가 넘쳐나는 순간이다.

 

 

 

* 지브롤터해협 일대 지도

 

 

 

 

* 헤라클레스기둥: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다. 왼쪽에 바다 건너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지브롤터다.

 

 

 

<재미난 스페인 1편> 세우타

매운맛일줄 알았는데 섞인맛이었네!

 

'세우타? 새우탕이 아니고?'

처음 세우타(Ceuta)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평소에 워낙 새우탕 사발면을 좋아해서 저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입맛을 다시며 스페인이 포함된 이베리아 반도 지도를 찾아보았다. 마드리드, 바로셀로나, 세비야, 빌바오 등등...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팀들의 연고지 위주로 찾아보았다. 없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서 찾아보았다. 팜플로냐, 부르고스, 레온 등등... 역시 없다. 옆나라 포르투갈까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니가 거기 왜 있어. 그러니까 찾기가 힘들지!'

세우타는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히는 모로코 땅 한 켠에 섬이 아닌 섬처럼 고립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영토이지만 다른나라 안에 있는 땅을 두고 비지(飛地)라고 부른다. 한자 '날비(飛)'가 쓰인 것처럼 본국과는 떨어져 있는 영토다. 참고로 비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다.

세우타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지브롤터(Gibraltar)해협에 위치해 있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쪽으로는 영국령 지브롤터가 있고, 북아프리카쪽으로는 세우타가 있는 것이다. 지브롤터 해협은 좁은 곳은 폭이 20km가 안 될 정도다. 대서양과 지중해가 교차하고, 유럽과 아프리카가 손에 닿을 듯 바라다보이니 지브롤터해협 일대가 얼마나 중요하겠나! 지정학적인 눈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딱보면 알 정도일 거다.

그런 세우타에 항구를 건설한 이들은 카르타고인들이었다. 카르타고인들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로마와 전쟁을 벌이는데 그게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는 그 유명한 한니발이 활약한다. 한니발이 기세를 올렸지만 카르타고는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다. 세우타도 로마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된다.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문명의 교차점이어서 그랬나? 세우타는 반달족들이 쳐들어 오기도 했고, 비잔틴제국이 점령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가 이슬람화가 된 이후에는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더불어 711년, 이베리아반도에 이슬람 무어인들이 침공하여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때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그리스도교 왕국들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불리는 국토회복운동에 나선다.

15세기가 됐고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먼저 돛을 높이 달고 대서양으로 향한 건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이었다. 당시 스페인 남부에는 이슬람 무어인들의 나라가 계속해서 항전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그라나다 왕국이 바로 그것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으로 향한 때가 1492년이었다. 이 해에 그라나다 왕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레콩키스타도 종료된다.

1415년 세우타는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된다. 세우타 공략에는 항해왕 엔히크(Henrique)가 앞장섰는데 그는 포르투갈왕 주앙 1세의 셋째 아들이었다. 포르투갈은 세우타를 통해 북아프리카에서의 세력 확장에 나서게됐다. 대항해시대의 서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참고로 엔히크는 '항해왕'이었지만 진짜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다음 왕위는 첫째 아들인 두아르테가 이어받았다.

 

 

 

* Royal Walls: 직역하면 '왕립장벽'이 될 것이다. 애초 이 성벽은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스페인이 세우타를 점령했고, 왕립장벽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계속 보강되었다. 성체에 여기저기 탄환의 흔적들이 있다. 보기만해도 참 치열하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카르타고는 왜 나왔고, 레콩키스타는 또 무엇인가? 더군다나 스페인 땅이라면서 포르투갈 항해왕은 왜 또 불쑥나왔는가?

익숙지 않은 지명에 낯선 이름까지... 세계사 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값을 제대로 치르고 있다. 그래도 세우타로 가는 여객선은 지브롤터 해협을 시원스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객실밖으로 나갔더니 그 유명한 지브롤터 암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1578년이었다.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 1세(Sebastião I)가 모로코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당시 세바스티앙 1세의 나이가 24살이었는데 결혼을 하지 않아 왕비도 없었고, 후사도 없었다.

1580년, 이런 권력 공백을 틈타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을 병합하기에 이른다. 이후로 세우타는 스페인의 통치하에 놓인다. 60년간의 합병을 뒤로 하고, 1640년에 포르투갈이 스페인에서 독립했을 때도 세우타는 계속 스페인령으로 남게 된다.

미끄러지듯 여객선이 세우타항에 들어선다. 그런데 방파제 끝단 부분을 보니 기둥 두 개를 들고 서있는 헤라클레스(Heracles)상이 보였다. 좀 작았다. 이게 전부인가? 육중한 몸매에 천하장사의 기운을 가진 헤라클레스의 동상을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알고보니 세우타의 중심지역에 큰 동상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국기를 보면 기둥 두 개가 들어가있는데 그게 바로 헤라클레스가 들고 서 있는 기둥들이다.

세우타말고도 모로코땅에는 멜리야(Melilla)라는 스페인의 비지가 하나 더 있다. 멜리야도 지정학적으로 무척 중요한 곳에 위치해있다. 스페인이 영국으로부터 지브롤터의 반환을 요구하듯이 모로코는 스페인에게 세우타와 멜리야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까지 세우타에 대해서 이야기해봤다. 처음에는 새우탕면처럼 얼큰한 맛을 기대했는데 온갖 재료가 뒤섞인 잡탕면을 먹은 느낌이다. 대륙이 교차하고 해양이 연결된 문명의 십자로여서 그런 풍미가 발현됐을 것이다. 매운맛이든 섞인맛이든 맛나게 즐겨보자 배고프면 여행도 잘 안되는 법이니까!

 

 

 

 

* 세우타 헤라클레스 기둥: 이게 진짜 헤라클레스 기둥 조형물이다. 세우타항 방파제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 이베리아반도 지도: 글씨를 제외하고 직접 손으로 그렸다.

 

 

 

 

 

 

 

 

 

* 아야소피야: 성소피아 대성당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아야소피야: 그리스정교회 성당 시절에 설치된 모자이크. 모스크로 개조된 뒤에는 모자이크 위에 회칠을 해서 모자이크가 보이지 않게 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 회칠은 벗겨졌고, 모자이크는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43일차 / 흐림

- 전날에는 블루모스크만 탐방했고 그 맞은편에 있는 아야소피아를 탐방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날은 마음먹고 아야소피아를 향해갔다. 그런데 입장료가 무려 25유로였다. 우리돈으로 약 3만 7천원 정도였다. 탐방 시간이 1시간 남짓인 거에 비해 비싼 편이다. 더군다나 녹색카페트가 깔린 1층에는 갈 수도 없었다. 그곳은 무슬림 신자들만 갈 수 있다고 했다.

- 아야소피야는 처음 그리스정교회 성당으로 지어졌다. 이후 모스크로 개조를 하게 된다. 또 박물관으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다시 모스크 기능을 하고 있다. 아야소피아는 '성소피아 대성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 아야소피아는 애초 동로마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그리스정교회 성당이었다. 첫 삽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인 326년에 떴다. 하지만 큰 돔 형식의 기하학적으로 뛰어난 건축물로 태어난 건 537년, 유스티아나누스 1세 황제 시절이다.

- 이후 1453년 경, 투르크가 이스탄불을 정복하자 성소피아 성당은 모스크로 개조된다. 이때 내부 장식물들에 회칠이 칠해진다. 당시 성당 내부에는 뛰어난 모자이크 장식들이 있었는데 그 모자이크들이 회칠로 덮혀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그 회칠도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칠이 벗겨지니 긴 세월동안 잠들어 있었던 모자이크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아무리 덧칠을 한다고 해도 아름다운 작품들은 언젠가는 다시 빛을 내기 마련이다.

- 아야소피아 탐방 이후로는 궐하네공원을 누볐다. 궐하네공원(Gülhane Park)은 직역하면 '장미집 공원'이라는 뜻이다. 장미가 예쁘게 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떠들썩한 이스탄불에서 한가롭게 산책할 수 있는 딱 좋은 곳이다. 궐하네공원 바로 담장 넘어가 톱카프궁전이다. 톱카프궁전은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입장료가 무려 45유로... 우리 돈으로 6만 7천원! 에잇~ 돈 없어!ㅋ

- 그 궐하네공원 끝부분에 가면 고트 기둥(column of goths)이 있다. 543년 유스티아누스 1세 때 만들어진 고트 기둥은 고트족에 대한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유스티아누스 1세? 그렇다. 아야소피아를 만들게 한 그 유스티아누스 1세다. 유스티아누스는 법전을 만들고, 영토확장에 나서는 등 옛로마의 부활을 꿈꾸던 동로마제국의 황제였다.

- 475년경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다. 그러니 543년이면 서로마 제국 멸망 후 60년도 훨씬 더 넘는 세월이 지난 것이다. 하지만 유스티아누스는 고트족과의 전쟁을 벌이며 옛 로마 영토의 회복을 꿈꾸었다. 참고로 그 고트족 중, 서고트족은 스페인의 민족적 근간이다.

- 궐하네공원 탐방을 끝으로 이스탄불 명소 탐방도 거의 끝이 났다. 26일 금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면 된다. 이제 여행도 끝이나는구나. 그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지!

 

 

 

*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의 맞은편에 있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는 다른 건물이다.

 

 

 

* 블루모스크: 블루모스크의 돔형 천장.

 

 

 

 

*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44일차 / 흐림

- 진짜 마지막날이다. 그런데 비행기 시간이 오후 9시 50분경이었다. 그래서 이스탄불 대학교로 향향했다. 검색을 해보니 캠퍼스 안에 바예지드탑이 있던 것이다. 이 바예지드탑은 화재감시탑으로 이용됐고, 이제는 날씨를 알려주는 조명 시설이 설치됐다고 한다.

- 바예지드탑을 본 후 바로 옆에 있는 그랜드바자르를 향해갔다. 역시 갔더니 우리나라 재래시장 같은 곳이었다. 대신 규모는 상당한 거 같았다. 미로처럼 얽혀있어서 출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굳이 오래있을 이유가 없어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스태프들과 인사를 하고 공항버스를 타러 Aksaray역 부근으로 이동했다.

- 공항버스를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1월의 튀르키예는 정말 우기가 맞나 보다. 6일 있으면서 비를 안 맞은 날이 딱 하루였으니...

- 이스탄불 공항이 신공항이라서 그런가? 보안검색이 대단히 까다로웠다. 비행기를 탈 때까지 총 3번에 걸쳐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 이제 진짜 여행이 끝날 때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해프닝이 많았다. 왕물집, 감기몸살, 바가지, 교통사고, 가스누출... 그런 것들을 겪었지만 퉁하고 넘겼다.

- 그것도 여행의 일부니까!

앞으로 냉혹한 현실이 내 앞을 가로막겠지. 그때마다 이런 말을 하며 퉁하고 넘길 것이다.

- 그래 그것도 삶의 일부야!

*** 1월 27일 오전 11시경 인천공항 도착함. 여행 종료.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다시 비행기표 검색하고 있는 나...ㅋ

 

 

 

* 고트기둥: 543년, 유스티아누스 1세 때 만들어졌다.

 

 

 

 

* 바예지드탑: 이스탄불 대학교 안에 설치되어 있다. 술탄마호메트광장에서 이스탄불 대학교가 있는 베야지드광장까지는 약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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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포루스 해협: 보스포루스 대교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여객선에서 바라본 보스포루스 해협

 

 

 

* 2024년 1월 23일 화요일: 41일차 / 맑음

- 숙소를 옮겼다. 술탄 광장 인근에 있는 cheer hostel. 큰 순둥이 개가 떡하니 반겨주는 곳이었다. 개 이름은 '저먼'이었다. 이곳에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스태프가 있다는 후기가 있어서 옮긴 것이다. 진짜 경기도 의정부에서 생활을 했다는 스태프가 있었다. 덕분에 한국어로 썰 좀 풀었다. 물론 그 스태프가 한국어를 잘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식 포함 15유로에 순한 개도 있고, 한국어도 쓸 수 있으니 잘 옮긴 듯하다.

- 이스탄불 구도심의 중심 지역은 술탄 광장이다. 술탄 광장에는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콘스탄틴 오벨리스크, 뱀형상 청동상 등등... 수많은 문화 유산이 산재해 있다. 새로 옮긴 호스텔에서 술탄 광장까지는 걸어서 5분도 안 걸렸으니 잘 옮긴 셈이다.

- 전날에는 10분 짜리 정기선을 타고 보스포루스해협을 일대를 누볐지만 이날은 아예 여객선을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 안쪽으로까지 가보기로 했다. 요금이 65리라로 생각보다는 저렴했다. 시간은 왕복 2시간 정도였는데 보스포루스 대교 뿐만 아니라 파티흐 술탄 메흐메트 다리까지 가는 여객선이었다.

- 이날은 날씨가 좋았다. 이스탄불에 올 때부터 계속 비를 맞았는데 이날은 하늘이 청명했다. 그래서 사진도 잘 나왔다. 진짜 예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보스포루스 해협 일대를 잘 둘러본 거 같다.

- cheer hostel은 도리토리 호스텔이었다. 그런데 밤에 추운 것이다. 그 전에 홀에서 여행일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가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스태프에게 지금 가스 배관에서 가스가 세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갑자기 가스 냄새가 확 올라오는 것이다. 인근 공사장에서 가스관을 잘못 건드렸다. 아니 왜 밤중에 공사를 하며, 또 한다면 조심히 잘하지 왜 가스배관을 건드려서 동네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것인가?

덕분에 이날은 아주 춥게 잤다...ㅋ

- 갑자기 가스폭발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내가 묵는 방에 들어가 위험상황임을 알리고 가방을 챙겨나왔다. 다른 호텔, 호스텔 사람들도 잠옷 차림으로 밖으로 나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동네에 가스 누출 사고라니...!

 

 

 

*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

 

 

 

* 콘스탄틴 오벨리스크

 

 

 

 

*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42일차 / 흐림

- 숙소가 아야소피아와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이날은 아야소피야를 보러갔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이다. 분명 입장료가 있는 걸로 아는데 공짜로 들어간 것이다. 알고 보니 그곳은 아야소피아가 아니라 블루모스크였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블로모스크의 정식 명칭인데 내외관 모두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였다. 옆에 있는 블루모스크를 아야소피아로 착각해 열심히 탐방했던 것이다.

- 시간이 남아서 해안가로 다시 한 번 나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식당을 찾고 있었는데 뭔가 뒤에서 '빡'하고 내 왼쪽팔을 때렸던 것이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팔짱을 낀 자세를 하고 있었고, 옷을 두껍게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스탄불 구도심의 교통상황은 엉망 그 자체다. 자동차, 트렘, 오토바이, 사람이 뒤엉켜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 그런 혼란스러운 곳에서 제대로 당한 것이다. 운전자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고 가벼렸다. 확 사이드미러를 부셔버릴까 보다! 바가지에, 가스누출에, 교통사고까지...! 이스탄불이 이렇게 익사이팅한 곳인가?

- 호스텔에 돌아오니 한국말을 하는 현지 스태프가 대신 사과를 하더라. 그 스태프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말야...

 

 

 

* 보스포루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는 러시아 국기를 단 화물선.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빼앗은 크림반도가 있다.

 

 

 

* 치어스 호스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스태프가 숙박객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순둥이 개, 저먼이 그 모습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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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탄불의 노을: 금각만에서 촬영했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마르시안기둥

 

 

 

* 2024년 1월 21일 일요일: 39일차 / 맑음

-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맞는 두번째 날이다. 호텔 조식이 맛있었다. 28유로에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었다. 대신 샤워실이 배수가 잘 안 됐다. 배수구가 좀 높게 있어 발로 쓸어대야 물이 빠져나갔다. 발 세척을 그런 식으로 했다.

- 호텔에서 나와 이스탄불의 명소인 갈라타탑(Galata tower)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동하다 우연히 마르시안기둥(column of Marcian)을 보게 되었다. 서기 450년경에 동로마 황제 마르키아누스를 위해 세워진 기둥이었다. 탐방 첫날부터 귀한 문화유산을 만나다니!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거 같다.

- 가다가 또다른 문화유산을 만났다. 콘스탄틴노플 시절에 만들어진 테오도시우스성벽이었다. 동로마제국의 황제인 테오도시우스의 이름을 딴 이 성벽은 서기 413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3중으로 만들어진 이 성벽은 콘스탄티노플이 요새의 이미지를 갖게 해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실제로 테오도시우스성벽은 1453년 투르크의 침공 때까지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다.

- 그렇게 천 년의 세월을 버틴 난공불락이었지만... 지금의 테오도시우스성벽은 흉하게 방치되어 있다. 도시의 확장으로 인해 곳곳이 잘려나갔다. 날씨가 추울 때는 그 앞에서 모닥불도 피우고 있었다. 문화유산에 대한 대접이 완전 꽝~이었다.

- 아타튀르크 다리를 넘어 갈라타탑을 향해갔다. 아타튀르크 다리는 유명한 보스포루스 해협에 위치해 있지는 않고 그 옆에 있는 금각만(Golden horn)이라는 내해에 위치해 있었다. 갈라타탑을 가는 길은 좀 정신이 없었다. 더럽고 정돈이 안된 골목을 지나야 했다. 갈라타탑에 가니 더 정신이 없었다. 사람이 왜그리 많은지! 일요일이라서 그랬나?

- 날씨가 변덕히 심했다. 이슬비도 내리고 무척 쌀쌀했다. 배가 고팠다. 따뜻한 음식이 간절했다. 그래서 갈라타탑 아랫동네, 선착장 부근 식당에 들어갔다. 삐끼로 보이는 호객원이 불을 피우고 있었는데 잠시 그 곁불을 쬐었다. 그게 연이 되어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 그 곁불을 쬐지 말았어야 했다. 바가지를 썼기 때문이다. 음식값으로 총 2,400리라가 나왔다. 음식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서비스도 좋았다. 하지만 2,400리라는 우리돈으로 10만원이 넘는 돈이다. 거기다 팁까지 줬다. 된통 당한 셈이다. 4~5만원 정도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는데...ㅋ

초기 수업료를 비싸게 치른 셈이다. 그 막강한 로마에서도 안 당한 바가지를 이스탄불에서 당할 줄이야! 역시 삐끼가 붙고, 과도하게 친한척 하는 곳은 가지 말아야 한다.

- 이스탄불 교통카드를 구매해서 충전을 했다. 트램이 17리라, 약 750원 정도다. 이스탄불의 대중교통 요금은 꽤 저렴했다. 대신 환승은 되지 않는다. 교통카드 개통 기념으로 트램을 타고 악사라이역 근처에 내려 호텔로 들어갔다.

 

 

 

 

* 테오도시우스성벽: 성문인데 많이 훼손됐다. 기둥의 한쪽이 떨어져 나가 철제빔을 거취시켜놨다.

 

 

 

* 테오도시우스성벽: 십자군의 공격도 끄떡없이 버텨냈던 성벽이지만 도시의 확장으로 인해 곳곳이 훼손되어 버렸다. 방치된 성벽을 보자니 우리 한양도성이 얼마나 정돈이 잘 됐는지 세삼스레 깨닫게 됐다.

 

 

 

 

* 2024년 1월 22일 월요일: 40일차 / 약한비

- 이날은 전부터 보고 싶었던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고 왔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말그대로 무척 좁은 바닷길이다. 전에 탐방한 지브롤터 해협이 좁은 곳은 약 16k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보스포루스 해협은 지브롤터보다 훨씬 더 좁다. 진짜 좁은 곳은 폭이 600미터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 보스포루스 해협을 중심으로 위쪽은 흑해, 아래쪽은 마르마라해가 있다. 흑해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빼앗은 세바스토플이 있고, 그 세바스토플 항에는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 그런데 튀르키예에는 보스포루스 해협 말고도 좁은 해협이 또 있다. 바로 다르다넬스 해협이다. 다르다넬스 해협도 마르마르해에 있다. 한마디로 마라마라해 위쪽으로 보스포루스 해협, 아래쪽으로는 다르다넬스 해협이 있는 것이다.

- 사실 이날은 교통카드를 찍고 정기선을 탔었다. 정기선은 겨우 10분 정도를 운행했는데 그 정도로 보스포루스 해협 일대는 좁아보였다. 한강보다 좀 더 큰 규모라고나 할까?

-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콘스탄티누스 기둥을 보았다. 트램 선로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진짜 이스탄불은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 갈라타탑: 갔더니 외관 공사중이었다. 예전 이 탑에 오르면 이스탄불 시내는 물론, 보스포루스 해협과 금각만 일대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설이다보니 부침도 많았다. 4차 십자군 전쟁 때는 크게 파괴가 됐었다. 이후 여러번에 걸쳐 개축을 했다. 주로 감시용 타워로 쓰였는데 한때 죄수를 잡아두는 공간으로도 이용됐다고 한다.

 

 

 

* 콘스탄티누스기둥: 트램이 바로 옆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마르시안기둥과는 다른 기둥이다.

 

 

 

* 이스탄불 댕댕이: 이스탄불은 송아지만한 떠돌이 개들이 많다. 느긋하게 한 숨 자고 있다.

 

 

 

 

 

 

*로마극장과 신전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로마원형경기장

 

 

 

 

* 2024년 1월 19일 금요일: 37차 / 비

- 아침부터 또 비가 쏟아졌다. 메리다에서는 계속 비를 만났다. 이날은 메리다 로마극장(Teatro Romana de Merida)을 방문했다. 메리다 로마극장은 메리다 탐방의 클라이막스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입장료가 13유로나 됐다. 통합권이 17유로였으니 그 비중을 가늠할 수 있었다.

-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거추장스러운 우비를 쓰고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방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비가 세차게 내렸다. 빗물 때문에 렌즈 촛점이 잘 안 잡혀 손가락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닦고 또 닦았다. 비가 와서 사진 찍는데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그림자 없이 나름 잘 찍은 거 같다.

- 메리다 로마극장은 신전과 극장이 한 공간에 있었다. 극장도 탐방하고, 신전도 탐방하고...

- 세차게 내리던 비가 탐방이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딱 그쳤다! 이거 참 웃긴다. 메리다성 앞에 있는 로마교를 통해 다시 메리다 터미널로 갔다. 이제 마드리드로 갈 시간이다.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는데 요금은 약 33유로였다. 좀 비싼 편이다.

- 메리다 탐방을 끝으로 공식적인 스페인 도시 투어는 종료됐다. 나름 많이 잘 다닌 거 같다. 이제 비행기를 타도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떠날 시간이다. 여행이 끝나가니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느낌이다. 숙제가 있으면 해내면 그만이지!

 

 

 

* 로마신전

 

 

 

 

* 2024년 1월 20일 토요일: 38차 / 마드리드: 맑음, 이스탄불: 비

- 마드리드 호스텔에서 일찍 체크아웃을 했다. 오전 11시 50분 비행기라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조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15유로로 알아들었다. 알고보니 5.50유로였다. 스태프의 발음이 안 좋은 거야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거야?

- 이런 실수는 공항에서도 또 했다. 마드리드 공항은 공항이용료 3유로를 따로 내야 한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다 삽입을 해서 한참을 헤맸다. 뒤에서 줄 선 사람이 비웃지 않았을까?

- 11시 50분경에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떠나는 터키항공을 탔다. 비행시간은 4시간 정도였지만 시차 -1시간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약 3시간 정도였다. 저가항공이었으면 수하물도 추가해야 했고, 기내식도 안 줬을텐데... 대형 항공사라 그런지 수하물 무료에 기내식도 먹을만 했다.

- 이스탄불 신공항에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근래에 개장한 이스탄불 신공항은 세계 최대규모의 공항이라고 불린다. 그런 이름에 걸맞게 이스탄불 신공항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 터키의 통화인 리라를 ATM기에서 뽑았다. 1,000리라(TL)를 뽑는데 수수료가 8%다. 뭐 이러냐! 170리라를 주고 공항버스를 탔다. 구도심 인근인 Aksaray 지하철역까지 운행하는 버스였다. 거대한 신공항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신공항-구도심간의 거리차가 무려 40km 정도다. 전에는 10~20km 정도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인천공항-서울간의 거리는 거의 60km에 달하니 이스탄불 신공항에 이긴 것인가?

- Aksaray역에 내리니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그냥 인근에 있는 숙소로 들어갔다. Best house hotel이었다. 별 3개짜리 3성급 호텔이었다. 그래 호텔에도 묵어보고 그래야지!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조식 포함 28유로. 이렇게 이스탄불에서의 일정이 시작됐다.

 

 

 

 

* 로마신전: 오른쪽부터 황제 아우구스투스, 군인 드루소, 황제 티베리우스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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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라그로스수도교(Acueducto de los Milagros): 유명한 세고비아 수도교와는 달리 많이 파괴가 됐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메리다 로마교(Puente Romano de Merida): 유유히 흐르는 과디아나강 위에 놓여 있다. 과디아나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하류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 2024년 1월 17일 수요일: 35일차 / 소나기

- 몸이 슬슬 회복되는 느낌이다. 역시 여행하면서 얻는 병은 쉬면 거의 다 낫더라. 역시 여행하면서 얻는 병은 쉬면 거의 다 낫더라. 이제 세비야를 뒤로 하고 메리다(Merida)로 떠날 시간이다. 메리다는 세비야에서 북쪽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 세비야에서 메리다로 가려면 아르마스(estacion de autobuses plaza de armas) 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 예전 리스본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내린 그 터미널이다. 터미널을 가기 전에 황금의 탑(Torre del oro)을 보러 갔다. 1220년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세비야 구도심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돌풍을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진 것이다. 겨울비가 세차게 내렸다. 정말 짧은 순간에 비바람이 몰아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결국 비를 쫄딱 다 맞았다. 겉옷은 그렇다쳐도 배낭까지 젖으니 당혹할 수밖에... 황금의 탑 인근에 있는 바르(bar)로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온 몸이 다 젖은 상태였지만...ㅋ

- 터미널에 가니 따로 메리다로 가는 티켓을 파는 곳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안내실에 물어보니 메리다행 버스는 기사한테 직접 현금을 주고 타라고 했다. 메리다로 가는 버스편도 많지 않고 티켓 창구도 따로 없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세비야 - 메리다행은 인기가 없나 보더라.

- 오후 1시 30분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구글 지도상에는 표시되지 않는 버스였다. 구글에서는 알사버스 위주로 표시됐다.

- 메리다 터미널에 내리니 큰 다리가 보였다. 과디아나강(Rio Guadiana)에 놓인 루시타니아(Lusitania Bridge)라는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 구도심쪽으로 향했는데 남쪽을 보니 메리다 로마교(Puente Romano de Merida)가 보이는 것이다. 그 로마교가 끝나는 지점에는 메리다성(Alcazaba de Merida)도 보였다. 감기는 낫지 않고 배낭은 젖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답사를 해야 할 때는 답사를 해야 한다!

- 열심히 메리다 로마교 일대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왕복으로 로마교를 걸었다. 생각보다 로마교는 꽤 길었다. 과디아나강의 폭도 넓었다. 그 옛날에 이렇게 넓은 강물에 돌다리를 건설하다니... 로마인들도 참 대단했다!

- 메리다에는 도미토리 호스텔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일반 호스텔로 예약을 했다. 호스텔 이름은 La Flor de Al-Andalus였다. 메리다는 안달루시아 지역이 아닌 중부지역으로 분류되는데 , 왜 안달루시아가 들어가지?

- 원래는 스페인 탐방을 마치면 그리스-튀르키예를 여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 여건상 그리스를 건너 뛰고 터키로 가기로 했다. 막판에 감기몸살만 아니였다면 그리스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런면에서 참 아쉬웠다. 하지만 어차피 이것도 여행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 메리다성: 성 안에 물 저장소가 있다. 처음에는 무슨 목욕탕인 줄 알았다.

 

 

 

* 2024년 1월 18일 목요일: 36일차 / 소나기

-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이슬비 정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래도 전날의 기억이 있어 별로 맞고 싶지 않았다.

- 중심가에 있는 바르에 가서 아침을 먹는데 가격이 정말 저렴했다. 바게트샌드위치와 커피를 함께 주문해서 먹었는데 겨우 2.4유로였다. 다른 곳 같으면 4~5유로가 나왔을 것이다. 이때 쓰이는 스페인어가 있다. 바라타(barata)이다. 저렴하다는 뜻이다. 참고로 스페인식 샌드위치는 보카디요(bacadillo)라고 부른다. 바게트빵에 토마토, 치즈, 베이컨 등을 넣은 후에 먹는 것이다. 가벼운 식사로 딱이다.

- 어제 누볐던 과디아나강 주변을 다시 거닐었다. 밀라그로스수도교(Acueducto de los Milagros)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밀라그로스 수도교도 메리다성처럼 로마시대 다리와 인접해 있었다. 이 다리는 알바레가스 다리(Puente Romano sobre El Albarregas)이다. 알베레가천(Arroyo de Albarregas) 위에 놓였다하여 알바레가스 다리다. arroyo는 스페인어로 하천을 말한다. 도림천, 중랑천 등을 연상하면 된다. 알베레가스천은 알바레가스 다리에서 서쪽으로 500미터를 더 흐른 후에 과딜아나강에 합수된다.

- 밀라그로스 수도교도 많이 훼손이 됐다. 상부 수로 구간은 거의 다 망실되고 기둥들만 남은 상태였다. 덜하기는 했지만 기둥들도 파손된 곳들이 많았다. 그런 상태라도 남아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 밀라그로스 수도교 탐방 이전에 메리다성을 먼저 탐방했다. 메리다성도 많이 파괴가 됐다. 그냥 폐허 상태로 있는 걸 안전장치를 한 후 관람을 시키는 형식이었다. 그런데도 6유로나 받았다.

- 처음에는 티켓 창구에서 17유로 짜리 통합 티켓을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통합 티켓에 포함된 장소들을 다 둘러보지 못할 거 같아 메리다성 단일 티켓만 구매한 것이다.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된다면 퉁합티켓을 구매해서 다 둘러보면 좋을 거 같다.

- 메리다성은 훼손이 심했다. 로마시대부터 무어인시대까지 중개축을 여러번 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메리다성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물 저장고였다. 계단을 다라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데 처음에는 목욕탕인 줄 알았다. 과디아나강의 물을 끌어와 필터링을 한 후 저장한 것이다. 강물을 끌어오니 물이 마르지 않았을 것이다.

- 이후 로마 신전인 디아나신전(Temple of Diana)를 찾아갔다. 골목을 도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신전을 만난 것이다. 역시 메리다는 작은 로마가 맞는 듯하다. 여기가 스페인인지 로마인지 헤깔릴 정도였다.

- 디아나 신전 옆 골목으로 빠지니 그 저렴한 바르가 나왔다. 늦은 점심, 혹은 저녁을 배불리 먹었다.

 

 

 

* 메리다성: 성 내부 시설물들. 망실된 채로 전시되어 있다.

 

 

* 밀라그로스교와 알바레가스다리

 

 

 

* 디아나신전

 

 

 

 

* 세비야대성당: 오른쪽에 히랄다(giralda)탑이 보인다. 무어인들의 통치 시기에 모스크의 첨탑(minaret)으로 만들어졌다가 이후 기독교인들이 세비야를 탈환한 후에 성당의 종탑으로 변형된다. 약 100미터 높이로 처음에는 르네상스식으로 만들어졌다 뾰족뾰족한 고딕 양식으로 변경된다. 탑 최정상부에 풍향계를 든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히랄다(giralda)는 스페인어로 '바람개비' 혹은 '풍향계'를 뜻한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은 마리아루시아 공원 안에 있다. 1929년 라틴아메리카 박람회가 열렸던 곳에 큰 광장이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는 세비야대성당의 히랄다탑을 본 떠 만든 탑이 양 옆으로 두 개가 있다. 안쪽에 수로가 있어 뱃놀이도 즐길 수 있다.

 

 

 

*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32일차 / 맑음(춥다)

- 전날 카디스에서 버스를 타고 세비야 세바스티안터미널(estacion de autobuses prado de san sebastian)에 하차했다. 세비야에는 이곳 말고도 아르마스터미널(estacion de autobuses plaza de armas)이라는 곳도 있다. 생각해보니 2019년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넘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르마스터미널을 이용했다.

- 세바스티안터미널에서 스페인광장(plaza de Espana)까지는 가까웠다. 어차피 세비야에 온 이유도 전에 못봤던 스페인광장을 보기 위해서였기에 그냥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했다. 가보니 왜 스페인광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지 알겠더라. 거대한 단일 건물이 곡선을 그리고 서 있는데 그 모습 자체가 큰 장관이었다.

- 몸이 안 좋았다. 사실 카디스 때부터 감기몸살 기운이 있었다. 특히 목감기에 몸살이 같이 왔다. 공용도미토리에 있어서는 안 될 거 같아 호텔 싱글룸으로 옮겼다. hotel patio de cruces였는데 말만 호텔이지 호스텔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37유로에 그 정도면...

- 목감기가 심한 거 같아 약을 사라갔다. 일요일인데도 약국이 문을 연 곳이 있었다. 약사가 스트렙실을 주었는데... 역시 약값이 비싸더라. 약 12유로였다. 9유로 정도를 주고 빨래방에서 빨래를 했다. 이날은 그냥 쉬기로 했다.

 

 

* 세비야알카사르(Real Alcázar de Sevilla): 스페인과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무데하르(mudéjar)양식으로 만들어진 궁전. 스페인에서는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을 대상으로 한 국토회복운동이 벌어지는데 그 시기 가톨릭 왕조 안에 사는 이슬람인들을 '무데하르'라고 칭했다. 세비야 알카사르는 원래 무어인들의 방어 요새였던 곳이었다. 그런데 카스티야왕 페드로 1세가 그 요새에 화려한 장식의 문양과 회랑 등을 만들어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물을 만들게 된다.

 

 

 

* 2024년 1월 15일 월요일: 33일차 / 맑음

- 호스텔을 다시 도미토리로 옮겼다. U-sense for you hostel sevilla였는데 이 호스텔에 딱 들어서니 꽤 눈에 익은 것이다. 알고보니 2019년 초 세비야 여행을 할 때도 딱 이곳에서 숙박을 했었다. 그때 좋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좋은 기억이 있길 바라며!

- 목감기가 더 심해지는 거 같다. 쉴 때는 셔줘야 한다!

 

*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34일차 / 비

- 목감기에 몸살에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아서 이날도 호스텔에서 그냥 쉬기로 했다. U-sense for you hostel sevilla는 도미토리이기는 했지만 침대가 벙커침대라 그런대로 사생활이 유지가 됐다.

- 슬슬 스페인 여행을 정리하고 그리스나 튀르키에로 넘어가야 해서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었다. 항공권을 알아본다고 노트북을 꺼냈다. 지난 30일 동안 한 번도 안 열어보다 이제서야 꺼냈다. 이 무거운 걸 들고 순례길도 걷고, 버스 여행도 했다니...!

 

* 세비야대성당과 세비야알카사르

 

 

 

.* 황금의탑(Torre del Oro): 1220년대 만들어진 탑. 과달키비르강에 딱 붙어 있다. 강 주변을 감시하는 탑으로 이용됐다. 이후 행정사무소, 감옥, 해군사령부 등등... 꽤 다양하게 쓰였다. 탑의 둘레가 4각이나 8각이 아닌 12각이다. 과달키비르강은 안달루시아 지역을 동서로 흐르는 강으로 그 길이가 657km에 달한다. 세비야에서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코르도바가 나오고, 하류로 내려가면 카디스가 나온다. 과달키비르강은 카디스에서 대서양으로 합수된다. 스페인어로 oro는 황금이란 뜻이다.

 

 

 

* 플라멩고: 플라멩고 거리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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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즈만엘부에노성(castillo de Guzeman el Bueno)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구즈만엘부에노성 내부: 훼손된 형태를 그대로 남겨두었다.

 

 

 

* 2024년 1월 12일 금요일: 30일차 / 맑음(강한 바람)

- 타리파에 있는 La cocotera boutique hostel & coworking에서 진짜 체크아웃을 했다. 타리파는 그저 거쳐가는 곳으로만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3박을 하게 됐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이다!

- 타리파항에서 가까운 구즈만엘부에노성(castillo de Guzeman el Bueno)를 탐방했다. 이 성은 외형적으로 많이 훼손됐다. 그래서 '답사할 꺼리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입장하기로 했다. 입장료도 4유로라 부담이 없었다.

- 역시 안으로 들어가니 구즈만부에노성의 훼손된 부분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안전을 고려한 동선을 그리기는 했겠지만 일부 구간은 성채가 무너져 내릴 거 같았다. 그래도 성의 타워에 오르니 타리파항구 일대를 비롯해 타리파섬까지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었다. 정말 시원하게 바람이 세게 불었다.

- 타리파터미널에서 카디스행 버스를 탔다. 카디스(Cadiz)까지는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정도였다. 카디스 대성당을 지나 예약한 숙소를 향했다. 숙소 이름은 planeta Cadiz hostel.

 

 

 

 

* 구즈만엘부에노성: 이 성도 일부 구간이 겹성 형태이다. 그래서 이 문은 중문으로 사용되었다.

 

 

 

* 타리파섬: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출발한 페리가 타리파항으로 입항하고 있다. 저 등대가 있는 곳이 유럽의 최남단이다.

 

 

 

*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31일차 /맑음

- 카디스에서 가장 탐방하고 싶은 곳은 1812헌법제정탑(monumento a la constitucion de 1812)이었다. 1812년에 카디스 헌법이 공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물로 카디스 성당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사실 1812년헌법제정탑은 전날 밤에 탐방을 했었다. 숙소랑 가까운 곳에 있어서 사전 탐방을 한 것이다. 조명 속에 비친 기념탑은 묘한 웅장함을 발산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1812년 카디스 헌법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한 후 카디스카를로스장벽(Murallas de san Carlos)을 보러갔다. 역시 카디스가 항구 도시이기에 장벽은 바다에서 침입하는 세력들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다른 해안 도시처럼 시커멓고 길쭉한 옛날 대포들이 바다를 향해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안가를 중심으로 탐방했고, 마지막으로 전통시장인 카디스 중앙시장(mercado central Cadiz)을 방문했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수산물과 농산물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랬는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 이제는 세비야로 갈 시간이다. 카디스에서 세비야까지는 약 12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버스로는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이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매표소는 다 닫았다. 그래서 기사에게 직접 요금을 내야했다. 약 15유로.

- 세비야 남쪽터미널에 내리니 그 유명한 스페인광장과 무척 가까웠다. 그래서 숙소로 바로 가지 않고 스페인 광장을 탐방했다.

 

 

 

* 카디스1812헌법제정탑: 야간에 촬영하여 선명하게 나오지 못했다.

 

 

 

* 카디스카를로스장벽: 초소와 대포가 나란히 있다.

 

 

 

* 카디스대성당: 뒤쪽에서 본 모습

 

 

 

* 카디스 중앙시장

 

 

 

 

 

 

* 지중해: 지브롤터해협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지브롤터해협: 뒤로 타리파 도심과 항구가 보인다.

 

 

 

 

*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28일차 / 맑음

- 어제는 비가 엄청내렸지만 이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쇼를 했다. 개인 사물함에 카메라를 넣고 잠궈두었는데 열쇠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저기 계속 찾았는데도 없는 것이다. 패킹한 배낭을 싹 다 다시 꺼내 주머니마다 검사를 했다. 침대 주변을 비롯해 손이 닿는 곳을 전부 다 뒤졌다. 하지만 없는 것이다. 결국 스태프에게 '절단기가 있냐'고 물을 지경까지 됐다. 하지만 절단기가 없다고 했고, 공구상에 가서 구매를 해야할 판이었다.

-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인 곳이 뻔한데 더군다나 내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있는가? 마지막으로 침대 아래부분을 찾아보려 매트리스까지 들어보았다. 그냥 공구상에 가서 절단기를 사야겠다 하고, 다시 매트리스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무언가 손에 닿았다. 잃어버린 열쇠였다. 이거 찾느라, 정말 이거 찾느라 1시간을 허비했다. 그런 내 모습에 스태프들이 좀 한심하게 보더라~ㅋ

-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 로마시대의 신전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탐방하기로 했다. 왕복 1시간 정도 거리인 듯해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호스텔에서 벗어나 해안길로 접어 들었다. 순례길 표식이 있어 그걸 길잡이 삼아 이동했다. 잠시 숲길을 지나니 멋진 풍광이 펼쳐진 해안길이 나타났다. 푸른 바다를 벗삼아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깎아질듯한 해안 절벽 위로 길이 이어졌는데 바다 너머로 북아프리카 모로코 땅이 가깝게 보였다. 직선거리로 대충 20킬로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는 듯했다.

- 해안가 절벽 위를 걷다보니 여수 금오도 비렁길도 생각나고, 제주 올레길도 떠올랐다. 이곳이 지브롤터해협 일대이다보니 곳곳에 벙커들이 산재해있었다. 전략적으로 엄청 중요한 곳이다보니 그런 시설물들이 있던 것이다. 오래된 군사보호구역 표지판도 보았는데 예전에는 이곳을 민간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막아 놓았을 것이다. 옛 유물처럼 군사시설물들은 방치되고 훼손됐다. 지브롤터해협 일대의 중요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감시시스템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 열쇠 소동 때문에 정신없이 체크아웃을 해서 그런지 준비가 소홀했다. 생수도, 행동식도 챙기질 못했다. 1월이었는데 스페인 남부의 햇살은 뜨거웠다. 마시지 못하고, 먹지 못한 상태로 2시간 이상을 걸으니 좀 아니다 싶었다. 배낭 무게도 무시 못했다. 줄인다고 줄였어도 순례길 구간 때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아니 기념품 사느라 더 무거워진 듯했다.

- 신전 건물 찾는 것은 일단 접고, 다시 타리파 호스텔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호스텔에 연박을 하고, 배낭도 두고 올 걸... 열쇠 소동부터 신전 건물 못 찾는 거까지 이날은 좀 일정이 꼬였다. 내일은 좀 좋아지려나?

 

 

 

* 지브롤터해협: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곳곳에 해안 벙커가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용을 하지 않음. 바다 멀리 보이는 곳이 북아프리카임.

 

 

 

* 2024년 1월 11일 목요일: 29일차 / 맑음

- 전날 해안가 길을 가다가 중단한 것이 영~ 찜찜했다. 준비 소홀로 가던 길을 되돌아 간 게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지브롤터 해협을 위시한 지중해 일대를 마음껏 둘러보기로 했다.

- 전날 탐방을 중단한 '개조심'집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호스텔에서 개조심 집까지는 꽤 멀었다. 약 4~5km 정도 떨어져 있는 듯싶었다. 자세히보니 이 길은 윗길, 아랫길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랫길은 말그대로 좁은 소로길로 절벽 바로 옆을 걷는 길이다. 이에 비해 윗길은 자전거는 물론 자동차도 운행이 가능한 길이었다. 대신 비포장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산악자전거를 타는 자전거족들이 많이 보였다.

- 윗길은 예전에 군사작전도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해안 벙커를 비롯한 시설물들은 폐쇄됐고, 도로도 관광, 레저용으로 그 기능이 변형됐다. 푸른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 옛 군사시설물 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평화로운 풍광 속에 숨은 그림처럼 군사실설물들이 숨어 있는 모습이었다.

- 이 해안길은 트라팔가(Trafalgar) - 타리파(Tarifa) - 알헤시라스(Algeciras)로 연결된다. 그 중 타리파에서 알헤시라스 구간을 걸었던 것이다. 트라팔가에서 타리파가 약 60km, 타리파에서 알헤시라스까지가 약 25km 정도다. 트라팔가는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 스페인 연합함대를 패퇴시킨, 그 트라팔가 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 날씨가 좋아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중에서 과달메시탑(Torre de Guadalmesi)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두드러지게 잘 나오더라. 지중해를 향해 늠름하게 서있는 과달메시탑을 보니 첨성대가 생각이 났다. 과달메시탑은 수백년간 지중해의 해풍을 묵묵히 다 맞으면서도 보존 상태는 꽤 좋았다. 그런데 출입구가 안 보이는 거다. 있긴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정도로 높이 있었다.

- 과달메시탑 이후로는 해안가에서 벗어나 산길로 들어섰다. 전날 준비소홀을 만회하려고 음료수, 행동식을 듬뿍 준비했더니 배낭이 뚱뚱했다. 그 뚱뚱한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르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파이팅이다.

- 역시 20km가 넘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알헤시라스로 진입할 무렵 해가져 세상이 컴컴했다.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 이상 산길이 이어졌다. 그나마 포장도로였다. 불빛 하나없는 산길을 1시간 이상 걸으니 눈이 감길 정도로 피곤해졌다. 그렇게 피곤한 상태였지만 열심히 걸었고, 결국은 알헤시라스 도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충 8시간 정도 걸은 거 같다. 물론 사진을 찍으며 느릿느릿 걸어서 그렇게 오래 소요된 거 같다.

- 알헤시라스에 있는 호스텔로 갈까하다가 그냥 타리파행 버스를 탔다. 8시간 동안 걸었던 거리를 버스를 타니 약 40분 만에 도달하더라. 읔~ 허탈함!ㅋ

- 그냥 스쳐갈 거라고 생각했던 타리파에서 3박을 하게됐다. 타리파 호스텔 스태프가 또 왔냐는 식으로 씨~익 웃더라!

 

 

 

* 과달메시탑: 1588년 경에 만들어진 과달메시탑. 해안 감시용 망루로 만들어졌다. 오래됐지만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해안경비시설

 

 

 

* 지브롤터해협: 과달메시탑이 보인다.

 

 

 

* 지브롤터해협: 저 배낭을 메고 27킬로 정도를 걸었으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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