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트레킹으로 밥먹고 삽니다_ 1편

- 나를 가이드라고 부르는 사람이 싫었다!

- 역사트레킹마스터(historytrekkingmaster)

내 스스로에게 붙인 명칭이다. 초창기에 붙인 명칭이니 거의 십 년 정도 된 거 같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저 명칭을 기술했는데 인사담당자들은 거의 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역사트레킹은 대충 알겠는데 ‘역사트레킹마스터’는 감이 잘 안 온다는 뜻이었다. 하긴 나도 담당자에게 전화를 할 때는 이랬다.

“안녕하세요? 트레킹 강사 곽동운인데요.”

‘대장’이라는 명칭은 피하고 싶었다. 기존 산악회에서 통용되는 명칭을 쓰면 첨언할 필요 없이 다른 이들을 쉽게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일이 대장이라는 명칭과는 어울리지도 않았을뿐더러 내가 누군가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도 좀 닭살 돋았다.

어쨌든 난 역사트레킹마스터라는 낯설고도 긴 명칭을 직업란에 기재를 해왔다. 그리고는 항상 역사트레킹마스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러쿵저러쿵 말을 덧붙여야 했다. 그 덧붙이는 말의 총량은 초창기 때와 비슷하다. 요즘도 사람들이 잘 모르니깐...

마스터(master), 아시다시피 ‘주인’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숙달하다’, ‘~통달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역사트레킹마스터는 ‘주인’이라는 뜻보다는 ‘숙달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마스터는 전반적인 리딩은 물론, 적재적소에서 해설을 해야 한다. 입담이 좋아 청산유수처럼 해설을 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꼭 해설을 해야 한다. 왜? 역사트레킹이니깐! 돈을 받고 하는 트레킹이니깐!

 

* 인왕산 기차바위 인근에서 찍은 사진. 뒤쪽에 서대문 안산이 보인다.

역사트레킹마스터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로 둘레길을 걷지만 역사트레킹도 엄연히 아웃도어 활동이다. 만 보 이상 걷고, 4시간 정도 소요되는 야외활동이다. 그래서 스트레칭이나 호흡법 같은 피지컬적인 요소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또한 야생동물로부터 수강생들을 보호하는 것도 마스터의 임무이다. 산책로에 뱀이 있으면 스틱으로 뱀을 치워버리고, 앞에 멧돼지가 나타나면 자신의 몸으로 ‘몸빵’을 해야 한다.

이것 말고도 상당히 중요한 임무가 있다. 피식 웃을 수도 있지만 무척 중요하다. 무엇이냐? 바로 화장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중트레킹을 향유하는 주요 계층은 40~60대 여성들이다. 실제로 내 강의인,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의 수강생 대부분은 중년 여성들이다. 그러다보니 화장실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남자라 그런지 남성 수강생분들에게는 ‘알아서 하시라’고, 그냥 맡긴다. 실제로도 알아서 잘들 하신다. 하지만 여성 수강생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난 트레킹 중에 물을 많이 마시자는 주의다. 수강생들에게 물을 많이 들이켜게 했으니 응당 그에 대한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답사를 갈 때 꼭 화장실 위치부터 체크한다. 화장실이 없는 곳은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코스에서 제외시킨다.

리딩과 해설, 그리고 야생동물과 맞서기와 화장실 체크까지... 주인이 아니라 무슨 마당쇠같다. 그렇다. 난 수강생들에게 주인이 아니라 마당쇠 역할을 한다고 힘줘서 이야기한다.

이런 모습은 여행가이드와 외형적으로 같아 보인다. 여행가이드가 고객이 편하게 여행에 몰입할 수 있게 서포터를 해주듯, 역사트레킹마스터인 나는 수강생분들이 편하게 트레킹에 임할 수 있도록 마당쇠 역할을 해준다. 명칭만 다를 뿐 내용상으로는 많은 부분이 겹친다. 지금도 종종 나를 ‘가이드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는 가이드라는 이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개의치 않는다. 마스터든, 강사든, 가이드든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트레킹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다.

난 계속 직업란을 역사트레킹마스터(historytrekkingmaster)로 기재할 것이다. 그리고는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을 상대방에게 그 역할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덧붙일 것이다. 그런 첨언의 과정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이 연재를 시작한 건 그 과정을 줄여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도 있다.

하지만 내 직업을 제대로 기록해보자는 것이 본 연재의 가장 큰 목적이다. 어찌 보면 내 직업은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업무 분장이 명징하게 기재된 메뉴얼이 있는게 아니라 매뉴얼을 직접 만들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심정으로 내 일에 대해서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풍광이 수려한 트레킹 코스를 알고 싶어 이 글을 클릭한 분들에게는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추신. 그런 의미로 트레킹 코스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다. 트레킹 코스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은 링크를 클릭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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