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녀탕: 보다시피 선녀는 없고 아저씨만...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 여행 3일차

 

전날 오전에 양양 낙산사를 방문한 후 오후에는 선림원지를 탐방하려고 했다. 선림원지는 유명한 미천골에 자리잡고 있는 폐사지인데... 가보니 미천골 휴양림이 일대 공사중이었다. 휴양림을 통과해야 선림원지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선림원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덕분에 터벅터벅 한 15km 정도 걸은 것 같다.

 

늦은 시간에 양양 읍내로 돌아왔는데 돈도 아낄겸 2만 5천원 짜리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휴~ 눈이 높아진 건가? 전에는 실내에서만 자도 감지덕지한 적이 있었다. 뭐 가난뱅이 여행자들은 그 말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2만 5천원 짜리 여관은 정말 딱 그 수준이었다.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우울하고... 성인방송도 안 나오고...ㅋ

 

전날 선림원지 답사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울한 마음을 씻겨줄 장소가 필요했다. 그렇게해서 오색약수로 유명한 남설악산 주전골 계곡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오색약수 입구

 

 

 

 

 

 

 

양양 읍내에서 오색약수로 향하는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데 시골버스치고는 배차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25분 가량 이동을 하는데 차창밖 풍광이 아름다워 지루하지가 않다. 그냥 시내버스만 타도 신나는 여행이 된다. 사실 이 길은 국도 44호인데 이 길을 따라 가면 한계령을 넘어 인제군에 닿을 수 있다. 그러니 차창밖 풍광이 아름답지! 버스에서 내리면 우뚝 솟아있는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여러분의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 온 몸을 감싸듯 강렬하게 전해지는 돌산의 딴딴한 기운! 그 기운에 흠뻑젖어 보는거다!

 

그렇다. 설악산은 누가뭐래도 우리나라 제일의 골산이다. 바위산이다. 독특한 형상을 자랑하는 바위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그만큼 설악산이 발산하는 아우라가 굉장하다는 것이다.

 

오색약수터 -> 성국사(오색석사) -> 독주암 -> 선녀탕 -> 용소폭포 -> 용소폭포탐방로

 

약 3.2km 로 정도되는 코스인데 지형특성상 원점회귀를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약 6.4km로 정도된다. 돌산, 즉 '악'자 들어가는 산은 보기는 멋있는데 직접 탐방하려면 겁부터 난다. 하지만 이 코스는 길이 순하다. 정식 명칭이 <오색주전골 자연관찰로>인데 둘레길 수준이다.

 

트레커는 오색약수를 가장 먼저 만난다. 주전골 계곡은 잘 모르더라도 오색약수는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래전 이 인근에 오색석사(五色石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사찰은 성국사로도 불렸다. 그 사찰의 승려가 계곡 너럭바위 위에서 용출되는 샘물을 발견했기에 오색약수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경내에 다섯 가지 색의 나무가 있다하여 오색석사라는 이름을 가졌다는데 아무래도 알록달록한 단풍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색약수가 있는 곳은 단풍으로 유명한 설악산이니까!

 

계곡 너럭바위 위로 뿜어져나와서 그런지 오색약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약수터의 모습이 아니다. 경사면 한쪽에 배관 같은 구멍이 있고, 그 사이로 졸졸졸 물이 흘러나오는 통상적인 약수터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가지도 걸려있고, 주인대신 석유통 같은 물통이 줄을 서 있는...ㅋ

 

계곡과 구별되지 않는 구조라서 그런지 오색약수는 비가 많이 오면 계곡물에 잠기게 된다. 실제로 2006년도에 비가 많이 와서 오색약수가 훼손됐다. 지금의 모습은 그 이후에 복원한 것이고, 2011년도에는 천연기념물 제529호로 지정된다. 참고로 오색약수는 두 개의 구멍에서 뿜어져나온다. 또 인근에는 오색온천이 용출되어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선녀들처럼 노천에서 즐길 수는 없고, 욕실을 갖춘 숙박시설에 들어가야한다.

 

눈이 많이 와도 오색약수의 형태는 구별이 안 될 거 같다. 설악산도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눈이 많이 왔을 때 오색약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 주전골계곡

 

 

 

 

 

 

* 주전골계곡

 

 

 

 

 

 

 

이제 본격적인 주전골 탐방에 나선다. 초입부터 돌산의 계곡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거북바위. 공룡알 바위 등등... 형태도 제각각인 바위들이 트레커들을 반긴다. 원시림 같은 때묻지 않은 계곡의 숲이 있어 더 기분 좋은 길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성국사에 도달할 수 있다.

 

성국사는 오색약수의 어원이 되어준 오색석사의 다른 이름이다. 주전골의 어원도 이 사찰에서 나왔다고 한다. 오색석사에 있던 어떤 중이 엽전을 위조했다하여 이 일대가 '주전골'이라고 불리게됐다는 것이다. 오색약수도 그렇고 이 사찰에서 많은 것들이 뻗어나왔던 거 같다.

 

성국사는 도의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도의선사는 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가지산문을 창시했던 고승이다. 구산선문은 경전 위주의 교종과는 달리 수행에 중심을 둔 선종의 9개 선문을 말한다. 한마디로 신라 말기에 9개의 선종 문파가 산을 중심으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중 도의선사는 장흥의 가지산문에서 선종 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썼다는 것이다.

 

사실 울산 언양에 있는 가지산이 훨씬 더 유명하다. 영남알프스에 포함되니까. 하지만 도의선사가 세운 가지산문은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다. 착오가 없으시길.

 

숲길에서 잠깐 벗어나 성국사 경내로 들어가보자. 계곡 안쪽에 있는 성국사는 작은 사찰로 좀 허전해보인다. 살짝 폐사지의 느낌도 전해진다. 이런 성국사에 양양 오색리 3층 석탑이 우뚝 서 있다. 3층 석탑은 전형적인 신라 말기시대 석탑으로 한적한 경내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보물 제497호로 지정된 3층 석탑은 무너져있던 것을 1971년에 복원을 했다.

 

2중 기단 위에 3층짜리 탑신석이 올려진 석탑은 상층 기단부분과 1층 탑신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모양새다. 아래쪽에 네모난 택배 상자 같은 부분은 상층 기단이다. 탑신이 아니다. 4층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2층 탑신은 급격히 줄어들어 상승감이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다. 오래된 탓인지 옥개석의 모서리 부분은 훼손된 부분이 많다. 그리고 3층 위쪽 상륜부도 훼손되어 있다.

 

양양 오색리 3층석탑의 가장 큰 매력은 주위의 산들과 어우러져있다는 것이다. 빽빽하게 숲이 들어선 산 중에 공터처럼 성국사가 자리잡고 있고, 그 한쪽편에 3층석탑이 있으니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에 사람의 인공미가 가미된 모습이다. 이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원래 둘이 하나였던 거 같다.

 

이 밖에도 성국사에는 돌사자 같은 석재들이 남아 있다. 한쪽 편에는 또다른 탑의 잔해물들이 있다. 예전에는 다른탑도 서 있었던 것이다.

 

 

 

 

 

* 양양 오색리 3층석탑

 

 

 

 

 

 

 

* 독주암: 가운데 있는 바위가 독주암이다. 한 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경내를 벗어나 걷다보니 계곡 한쪽편에 독주암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보인다. 혼자 앉아 있기도 비좁다하여 독주암이라 불리는데 이 바위는 주전골 최고의 비경이라고 불린다.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듯 계곡 옆에 우뚝 서 있는 독주암은 그 자체로 절경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곳에 이렇게 멋진 풍광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다. 우뚝 솟아있는 바위들에 넋을 잃었다. 장가계 부럽지 않을 정도다.

 

아무리 완경사라고 하지만 계곡길은 계곡길이다. 바위도 많고 잔돌도 많다. 이 길을 걸으시려면 운동화보다는 트레킹화 이상을 신으셨으면 한다. 어떤 분들은 구두를 신고 오시기도 하던데 좀 위태로워보였다. 계곡이니만큼 미끄러운 구간이 많다.

 

길을 계속가다보니 선녀탕이 보였다. 선녀탕은 탐방로에서 벗어나 그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선녀가 있을까 하고 바로 앞까지 갔지만... 사진에서 보이듯 어떤 아자씨만 있었다. 분풀이는 나뭇꾼에게 해야겠다. 요즘은 나뭇꾼도 가스보일러 때나?ㅋ

 

물감을 풀어놓은 듯 에머랄드색의 물빛이 참 매력적으로 보인다. 선녀들이 은밀하게 노닐만 하다. 그런 에머랄드 빛깔은 마지막 탐방지인 용소폭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수가 귀를 정화시켜준다. 용이 노닐만한 곳이다.

 

이렇게하여 주전골 계곡 탐방을 마쳤다. 눈이 호강하고, 귀가 맑아지는 트레킹이었다. 또 공기는 얼마나 좋은가. 한 1년쯤 젊어진 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3.2km를 걷는동안 필자는 계속 어깨춤을 추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속 미친놈처럼 어깨를 들썩였던 것이다. 이런 느낌은 인근에 있는 천불동계곡에서도 느껴본 적이 있다.

 

- 어떤 느낌?

- 신선이 된 느낌!

 

 

 

 

 

 

 

* 용소폭포

 

 

 

 

 

 

 

*만경대: 사진 중앙 상단에 있는 것이 만경대다. 설악산에는 여러 만경대가 있다. 이 주전골 만경대는 47년동안 페쇄됐다 2016년에 다시 개방됐다. 하지만 가을철에만 개방한다고 하니 탐방을 원하시는 분들은 꼭 확인을 하셔야한다.

 

 

 

 

 

 

 

 

* 주전골: 만물상

 

 

 

 

 

 

 

*** 남설악 주전골 가는법

 

1. 서울 경부터미널에서 양양행 고속버스 탑승. 약 2시간 소요됨.

2. 양양버스터미널에서 오색약수행 시내버스 탑승. 약 25분 정도 소요됨. 배차시간은 1시간에 1대 정도임.

3. 코스는 3.2km이나 지형 특성상 왔던 길을 다시 와야하는 왕복 코스임. 그래서 6.4km 정도됨. 정류장에서 이동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총 7km 정도 예상함.

4.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오색약수행 시외버스도 있음. 하지만 편수가 많지 않음.

 

 

 

 

 

 

 

 

 

* 낙산사 홍련암: 의상대에서 바라본 홍련암.

 

 

 

 

 

 

 

 

2021년 5월 20일 목요일 / 여행 2일차

 

어제는 밤 11시를 넘어 속초에 도착했으니 실질적인 여행의 시작은 이날부터였다. 이날 탐방한 곳은 양양에 있는 낙산사였다. 낙산사는 속초해수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다.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속초에서 양양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빗방울이 좀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쯤이야.

 

일주문을 통과한 뒤 숲길이 나왔다. 소나무 숲길이었는데 습한 날씨 때문이었는지 솔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거대한 규모의 낙산사와 마주하게 된다. 잘 정돈된 길, 수많은 참배객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낙산사의 화려한 면모만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하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국내 유명 사찰중에 낙산사만큼 큰 부침이 많은 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화재와 파괴, 약탈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곤경이 있었음에도 폐사가 안 된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비교적 근래인 2005년까지 고초를 겪었을까나!

 

2005년도에 발생한 산불 때문에 낙산사가 전소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봤던 것이다. 강풍에 날라온 불씨가 화마로 변해 귀중한 가람들을 싹 다 태워버린 것이다. 당시 뉴스 화면으로 그 장면을 봤었는데 필자도 큰 충격을 받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온 국민이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었다.

 

 

 

 

 

 

* 해수관음입상

 

 

 

 

 

 

 

* 낙산사 가는길

 

 

 

 

 

 

 

 

671년(신라문무왕 11),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낙산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유명한 곳이다. 낙산사일주문에는 '오봉산낙산사'라고 적혀있는데 이 오봉산이 낙산이라고도 불린다. 낙산은 샨크리스타어인 보타락가(補陀落伽)의 준말인데 관음보살이 정주하는 산이라고 한다. 낙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스리슬쩍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이 생각난다. 낙산사가 낙산(洛山)이고 서울의 좌청룡 낙산(駱山)이다. 한자가 다르다.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였고, 관음보살의 명에 따라 관음상을 빚게되는데 그것이 낙산사의 기원이 된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한 과정을 보면 좀 의아할 정도다. 기도를 하는 중에 용궁의 무리와 하늘의 무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했고, 동해의 용이 솟아올라 여의주를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낙산사가 3대 관음성지라면 이런 스토리텔링 정도는 품고있어도 상관없을 거 같다.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는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 경남 남해군 보리암, 그리고 낙산사이다. 그러고보니 서해, 남해, 동해에 3대 관음성지가 있다. 이를 두고 더 정확히는 해수관음 성지라고 하는데 관음보살이 사는 곳이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하여 우리나라의 관음성지도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사찰 탐방을 해보자. 낙산사의 중심인 원통보전과 그 앞에 있는 7층석탑을 살펴보자.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통보전은 근래에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2005년 산불로 인해 본당인 원통보전은 전소가 됐다. 하지만 빠르게 복구하여 2007년에 다시 복원을 하게 된다.

 

대화재가 휩쓸고갔지만 불행중 다행인 점도 있었다.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던 보물 제1326호 건칠관음보살좌상이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인근에 있는 설악산 영혈사에서 모셔온 관음상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려 후기 양식을 잘 지니고 있다하여 2003년에 보물 1326호로 지정된다. 여기서 건칠은 옻나무 칠을 말한다.

 

원통보전 앞에는 7층 석탑이 우뚝 서 있다. 7층이라서 그런지 높이가 무려 6미터를 넘는다. 6미터 20센티다. 원통보전이 전소됐을 때 석탑도 고열로 인해 큰 충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단단한 돌이기 때문에 그 원형이 훼손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폐사지에 우뚝 선 석탑들처럼 7층 석탑은 끝까지 낙산사를 지켰던 것이다. 7층 석탑은 애초 3층석탑으로 만들어졌다가 낙산사가 대대적으로 중창됐던 1467년(세조13)에 지금처럼 7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3층을 7층으로 높였다는 것인데 참 특이한 경우다.

 

1468년 경에 낙산사는 대대적으로 중창된다. 그 1467년에 세조가 낙산사를 방문했는데 그에 대한 결과로 중수가 이루어진 것이다. 7층 석탑을 비롯하여 낙산사에는 그 때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별꽃무늬 담장과 홍예문이 바로 그것들이다. 별꽃무늬 담장은 처음에는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기와와 진흙을 쌓아 올렸는데 담장 자체가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일 정도로 인상적이다.

 

담장이라고 하면 안과 밖을 나누는 분리의 의미인데 별꽃무늬 담장은 그 모습이 정겨워서 그런지 안과 밖을 서로 조화시켰다고나 할까? 물론 근래에 복원을 해서 너무 반듯한 모습이지만 도시의 공구리만 보다 정겨운 토담을 보니 정말 반갑더라. 별꽃무늬 담장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곽의 문루가 연상되는 홍예문은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했을 때 절 입구에 만든 문이다. 홍예문은 26개의 큰 돌로 이루워졌는데 당시 강원도가 26개의 고을로 이루어졌고, 그에 맞게 각 고을에서 석재를 가져와 돌로 무지개문을 만들었다. 문루는 1963년에 만들어졌는데 대화재 당시에 타버렸고, 최근에 다시 복원을 했다. 홍예문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도 세조와 관련된 문화재로 낙산사 동종이 있다. 1469년 예종 1년에 제작된 동종은 조선 초기 형식을 잘 담고 있어 보물 479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대화재 당시에 용해가 되어 문화재에서 지정해제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참고로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인데 재위 기간이 불과 1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해수관음입상을 보러가자. 사실 많은 이들이 이 해수관음상을 뵈러 낙산사를 방문한다. 비교적 근래인 1977년에 세워진 관음상은 그 무게가 무려 270톤에 높이가 16미터에 달한다. 전라북도 익산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석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규모가 있다보니 만드는데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확트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우뚝하게 서 있는 관음상 앞에 서니 저절로 합장을 하게 됐다. 내륙쪽으로는 명산인 설악산이 보이고 관음상 주위로는 파도가 넘실대고 있으니 이 아름다운 풍광 자체만으로도 관음보살의 자비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도 자리를 깔고 삼배를 올렸다. 간절하게 기원을 하면서... 무슨 기원을 올렸을까?^^

 

이후 조선 후기에 세워진 해수관음공중사리탑(보물 제 1723호)과 홍련암, 의상대 탐방을 끝으로 낙산사 탐방을 종료했다. 홍련암과 의상대는 명승 제27호로 지정될 정도로 너무 유명하기에 놓치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은 메인 탐방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사리탑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보물 찾기하듯 사리탑을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이렇게하여 낙산사 탐방은 종료가 됐다. 그냥 간단하게 스케치 형식으로 여행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또 분량이 넘쳤다. 하긴 낙산사를 그냥 단순하게 훑고 지나간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볼려면 제대로 보고 작성할려면 제대로 작성해야지!

 

 

 

 

 

 

* 원통보전과 7층석탑

 

 

 

 

 

 

 

 

* 원통보전

 

 

 

 

 

 

 

*7층석탑과 별꽃무늬 담장

 

 

 

 

 

* 해수관음상: 필자의 배낭이 인증샷을 대심해 줌.

 

 

 

 

 

 

 

* 낙산사: 2005년 화재 피해를 곱씹어 보는 전시장.

 

 

 

 

 

 

 

* 낙산사 홍예문

 

 

 

 

 

 

 

 

* 해수관음공증사리탑

 

 

 

 

 

 

 

 

 

 

 

 

5월 19일 목요일. 여행1일차

 

이날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부처님의 자비가 만방에 퍼지던 이날, 난 속초로 떠나는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 난 야간에 속초 해수욕장 일대를 배회했다.

 

올 봄은 이상하리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나쁜 일들만 생긴 것도 아니었다. 어려운 와중에 성북50플러스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또 간간이 마이리얼트립을 통해서도 트레킹을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아할 정도로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의무감으로 하고, 그렇게 시간을 떼운다는 느낌이었다.

 

거의 똑같은 강의 준비, 토씨 하나 정도가 다른 비스무리한 해설 등등...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하나? 강의가 그러니 생활 자체도 재미가 없지! 꼭 코로나 때문만도 아니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 진이 빠질 정도로 당시 내 머리는 엉켜있었다. 이러다가는 숨이 넘어갈 거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게 굴복할 수는 없는 법! 인생의 파도가 칠 때는 진짜 파도를 보러가야 한다. 그래서 심야 버스를 타고 속초 해수욕장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항상 짊어지고 다니는 낡은 배낭을 메고서...

 

그렇게 나의 강원도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삶이 힘들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누구는 술부터 찾을 수도 있다. 또 누구는 사우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제일 먼저 숲이 떠오른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를 맡다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 나무들 사이로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축축한 흙 냄새가

전해져 얼굴에 생기가 감돈다.

 

녹색의 싱그러움이 가득찬 숲길은 현대인들에게 인간 본원의 감정들을 요동치게한다.

도시의 단절된 공간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근원적인 물음 혹은 관념들이 숲길에서는

어렵지 않게 마주치게 된다.

 

-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당신도 자연의 일부다.

- 마지막으로 손에 흙을 묻힌 적이 언제인가. 흙 냄새를 제대로 맡아본 적이 언제인가.

 

인간이 점점더 탐욕스러워질수록 도시문명은 점점더 분할되고 단절된다. 카드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해진다. 회원이 아니면 접근도 안된다. 도시인들은 자신이 해당 장소에 접근이 가능한지 항상

자문을 해야한다. 스스로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원래 그랬었나? 파티션 치듯이 나누고 가르고 제한하고...

 

숲은 나누지 않고 품는다. 잘났든 못났든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숲에서는 꾸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공간에서 굳이 나눌 필요가 있겠는가, 굳이 꾸밀 필요가 있겠는가...

 

그 어떤 향수보다도 더 향긋한 피돈치드 덕분에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세레나데를 흥얼거리는 새들의 울음 소리도 정겹다. 몸과 마음이 싹 다 씻겨내려가는 느낌이다. 한 1년쯤 젊어졌다고나 할까?

 

다시 이 숲길을 벗어나면 또 번뇌가 그림자처럼 따라오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 생생한 기운을 누구도 못 뺏아가지!

 

그래서 난 삶이 힘들 때 숲으로 들어간다!

 

 

 

 

 

 

 

 

 

 

 

5월 11일 화요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지난 8주간 진행되었던 성북50플러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의 마지막 강의(8강)가 실시된 날이었다. 마지막 강의 백사실계곡 역사트레킹이다.

 

성북50플러스에서 진행했던 이번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은 좀 어렵게 잡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코로나의 여파로 오프라인 강의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기회였기에 좀 더 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발동이 안 걸렸다고나 할까?

 

강의 평가는 잘 나왔지만 스스로에게는 불만이었다. 내 자신에게 학점을 매기자면... B학점 정도 될까?

백사실계곡 역사트레킹의 이동 노선은 이렇다.

 

홍제천 -> 세검정 -> 백사실계곡 -> 별서터 -> 능금마을 -> 북악스카이웨이 -> 북악팔각정 -> 성북동

 

백사실계곡은 가을이 가장 예쁘다. 하지만 여름날의 백사실계곡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졸졸졸 계곡물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울창한 숲터널에서 피톤치드를 팍팍 맡다보니 몸이 확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 날은 좀 더웠다. 거의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직사광선이 내려쬐고 있었다. 하지만 전날 비가 내리고 해서 대기는 무척 맑았다. 가시거리가 좋아서 사진 찍기에도 딱이었다. 북악팔각정에서 북한산 일대의 사진을 찍으니 바로 일품 풍경 사진이 되더라.

 

백사실계곡 역사트레킹은 무사히 종료가 됐다. 더불어 성북50플러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도 종강이 됐다. 사고없이 무사히 잘 완료가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종강은 했지만 우리들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우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길을 걸을 것이다! 아주 힘차게!

 

 

 

 

 

 

 

 

 

 

 

 

 

 

 

 

 

 

5월 4일 화요일.

 

- 우르릉쾅쾅쉐쉐쉐

 

집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요란한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성북50플러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일곱번째 강의가 실시된 날인데 날씨가 이걸 어쩌나!

 

7강은 아차산 역사트레킹이다. 이상스럽게 아차산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마다 비가 내렸다. 물론 맑은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비가 온 적이 더 많았다. 그래도 어쩌랴! 비가 와도 강의는 진행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트레킹팀이 모였을 때는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불순한 날씨 때문에 세 분이나 결석을 하셨다.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좋았을 것을... 아차산 역사트레킹의 이동순서는 이렇다.

 

아차산생태공원 -> 아차산성 -> 아차산보루군(정상) -> 긴고랑길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트레킹을 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아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아차산 코스는 정상부에서 그늘이 없는 개활지를 만난다. 그래서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아야 한다. 하지만 이날은 직사광선 걱정없이 아주 느긋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다른 등산객들도 별로 없었다. 아차산 코스는 서울둘레길 2코스에 속하는데 그 풍광이 아름다워 주중에도 사람들이 아주 많이다닌다. 주말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 하지만 아침에 비가 와서 그랬는지 인적이 확 끊긴 느낌이었다. 또 평소에는 못보던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비가 온 후라 물안개가 피어났는데 그 광경이 아주 멋있었다.

 

- 우리가 아차산을 전세낸 거 같아요!

 

하행 코스인 긴고랑길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그렇다. 우리는 아차산을 전세낸 듯 마음껏 아차산을 즐겼다. 비 온 후, 신선함이 가득한 아차산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긴고랑길에서 그렇게 했는데 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니 가슴이 확트이는 느낌이었다.

 

- 이렇게 좋은 곳에서 숨을 크게 쉬니까 우리 몸이 젊어지는 거 같지 않나요? 한 1년쯤 젊어진 거 같아요!

 

 

 

 

 

 

 

 

 

 

 

 

 

 

 

 

 

 

 

* 문인석: 방치된 문인석들을 모아놓았음.

 

 

 

 

 

 

 

4월 27일 화요일.

 

성북50플러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여섯번째 강의가 실시된 날이다. 6강은 삼천사 역사트레킹이다.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에서 집합한 후 실시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좀 소동이 있었다. 가보니 2번 출구가 공사중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현장에서의 일은 항상 변수가 발생한다. 그런 돌발상황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고 생각해야 속이 편하다. 그게 현장의 특성이니까...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구파발역 바로 옆에 있는 이말산부터 탐방하는데 이동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말산 -> 진관사 입구 -> 은행나무숲 -> 삼천사

 

이말산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곳에는 내시와 상궁들의 무덤들이 아주 많다. 후손이 없다보니 무덤들은 방치되고, 훼손됐다. 서울 강북에 있는 초안산 내시분묘군과 딱 판박이다. 어떤 문인석은 머리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초안산에 있는 문인석처럼 말이다. 여기서 '이말'은 재스민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말산은 재스민산이라는 뜻이다.

 

그런 이말산에서 트레킹팀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곱씹어보았다. 그리고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카르페디엠!!!

 

661년도에 창건된 삼천사는 고려시대 마애불이 있는 곳이다. 정교함이 돋보이는 고려시대 초기 마애불을 보려고 삼천사에 갔더니만... 무슨 행사를 하는지 경내가 좀 들썩들썩 거렸다. 무슨 탄신제를 한다고 하던데... 삼천사는 이웃한 진관사와 달리 좀 한적한 맛이 있는 곳인데 그날 갔을 때는 아주 들썩들썩거렸다.

마애불도 건성으로 알현하고 서둘러 삼천사계곡 쪽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그래도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잘 종료가 됐다. 현장 상황이라는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잖아. 그게 바로 현장일의 묘미 아니겠는가!^^

 

 

 

 

 

 

 

* 삼천사

 

 

 

 

 

 

 

 

* 트레킹팀

 

 

 

 

 

 

 

 

* 트레킹팀

 

 

 

 

 

 

*** 삼천사 역사트레킹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brunch.co.kr/@historytrekking/208

 

20화 막걸리를 못 마시게 해서 그런가?

<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19편> 삼천사 역사트레킹 | 역사트레킹 리딩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불만 섞인 지적을 받게 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필자에게 쏟아내는 욕구들도 다양했던

brunch.co.kr

 

 

 

 

 

 

 

 

* 소금산 출렁다리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이전 흥법사지 탐방에 이어서... 흥법사지에서 소금산 출렁다리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4km 정도에 달한다. 하지만 중간에 간현관광지를 만나는터라 실제 체감되는 거리는 그만큼 길지는 않다. 간현관광지에서 화장실도 가고, 식사도 하고...

 

흥법사지에서 간현관광지까지는 농로길을 따라가거나 섬강 수변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다. 산길도 이용할 수 있는데 좀 길이 정비되지도 않았고, 표지판도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소개하지 못한다. 사실 필자는 산길을 따라갔는데 중간에 가시덤불에 찔리고, 사나운 개에 쫓기는 등 아주 쇼를 했다. ㅋ

 

그래도 나중에 트레킹팀과 함께 갈 때는 산길로 이동을 해야쥐! 뭐 약간 모험도 하고 그러는 거잖아~ㅋ

 

2018년 1월 11일에 개통된 소금산 출렁다리는 원주의 대표적인 관광 명물이 됐다. 원래 소금산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했었다. 이미 소금산 아래에 간현관광지가 조성되어 있을만큼 원주의 명물중에 한 곳이었다. 그러다 출렁다리가 개통되고 나니 관광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빼어난 자연경관에 스릴을 즐길 수 있는 인공시설물이 등장하니 서로 상승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지상 100미터 높이에 길이 200미터로 만들어진 소금산 출렁다리에 서면 주위 일대가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누구는 출렁다리가 무섭다고 하는데 필자는 느긋하게 통과했다. 좀 바람이 세게 불고 해야 무서우려나...^^

 

입장료 3천원 값을 탈탈 뽑으려고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다. 소금산과 간현산이 협곡을 이루고 그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섬강이 흐르고 있으니 찍는데마다 명품 사진이었다.

 

매표소에서 출렁다리까지는 약 500여개에 달하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다리운동 좀 제대로 하실 것이다.

500계단을 올라야 할 정도로 출렁다리는 그 값어치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거리도 있다. 자연에 어디까지 인공시설물을 받아들일 것인가? 돈이 된다고 무턱대고 인공 시설물들을 만들 것인가?

 

자연미로 승부가 가능한 곳이면 자연미로 승부를 했으면 좋겠다. 인공미는 최대한 줄이는게 맞다.

 

 

 

 

 

 

 

 

 

* 간현관광지

 

 

 

 

 

 

* 여행정보

1. 소금산 출렁다리 입장료: 3천원 -> 이중 2천원은 원주상품권으로 돌려받는다.

2. 간현관광지에서 서원주역으로 이동하여 기차를 탈 수 있음. 시내버스로 약 10분 정도 소요.

서원주역은 2021년 1월 5일에 상업운영을 시작했음.

3. 간현관광지에서 서원주역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음. 두 곳은 약 3km 정도 떨어져있음.

 

 

 

 

 

 

 

 

* 의민공사우: 하늘이 예뻐서 한 컷

 

 

 

 

 

 

 

 

 

* 소금산 출렁다리

 

 

 

 

 

 

 

* 출렁다리에서 본 모습

 

 

 

 

 

 

 

* 출렁다리에서 본 모습

 

 

 

 

 

 

 

 

* 배낭: 본인대신 배낭이 인증샷을 해줌.

 

 

 

 

 

 

 

 

 

 

 

* 흥법사지 3층석탑

 

 

 

 

 

 

 

 

2021년 4월 2일 금요일.

이날은 원주에 있는 흥법사지를 탐방했다. 이전 포스팅에도 언급했듯이 강원도 원주 일대에는 큰 폐사지들이 여러개가 있다. 원주시 부론면에 자리잡고 있는 거돈사지와 법천사지에 이어 흥법사지에 대한 포스팅을 해본다.

 

여기서 잠깐 의문이든다. 왜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여주에 큰 폐사지가 많은지에 대해서... 이곳은 남한강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뿐만아니라 고려시대에도 남한강 수계는 무척이나 중요한 교통로였다. 고려는 이곳에 흥원창이라는 조창을 설치하여 세곡을 거두어들였다. 이곳은 현재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해있다.

 

다시 흥법사지 이야기로. 흥법사지는 원주시 지정면에 자리잡고 있는데 뒤쪽으로는 영봉산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다. 영봉산은 소금산과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데 소금산에는 유명한 출렁다리가 놓여 있다.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소금산 출렁다리는 주중에도 사람들이 티케팅을 하더라.

 

신라 말에 창건된 흥법사는 고려 개국시기에 크게 중창된다. 흥법사에 주석한 진공대사 충담이 태조 왕건의 왕사였기 때문이다. 신라의 귀족 출신인 충담은 당나라에 유학가서 불법을 연구하는데 충담이 귀국하자 왕건은 그를 극진히 대접하며 왕사로 임명했던 것이다. 왕건이 그를 얼마나 극진히 대접했냐면, 진공대사가 열반에 이르자 탑비에 들어가는 비문을 왕건 자신이 직접 지었다는 것이다. 탑비의 비문은 고위 학자들이 짓는게 일반적인데... 왕이 직접 짓다니!

 

흥법사지도 여느 폐사지처럼 주변에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뚝 서 있어야 할 당간지주가 없기에 그 역할을 삼층석탑이 대신해주고 있다. 흥법사지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3층석탑인데 1층 탑신부에 문고리를 조각해 부처님의 사리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사진에도 보이듯 흥법사지 3층석탑은 여러부분의 석재들이 파손됐다. 옥개석은 끝단이 잘려나갔고, 하부 기단도 금이 갔다. 탑신 전체도 약간 기울어진 모습이다. 나중에 해체복원도 필요해보인다. 이렇게 훼손된 민낯을 드러낸 흥법사지 3층석탑이지만 그래도 당당히 보물 46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3.7미터 달하는 3층 석탑이 없었다면 흥법사지의 모습은 무척 쓸쓸했을지 모른다.

 

 

 

 

 

 

 

 

* 진공대사탑비: 중간에 비가 없고,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있다.

 

 

 

 

 

 

 

 

 

* 진공대사탑비: 머리 부분에 네모난 홈이 있다. 무언가 별도의 장식이 있었을 것이다.

 

 

 

 

 

 

 

 

 

눈길을 돌려 드디어 진공대사탑비를 바라보았다. 3층 석탑과 아주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 구조를 보니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석탑은 사찰 가람의 중심이잖아. 통상적으로 무슨무슨 대사 탑비나 부도는 사찰 외곽에 조성하지않나?'

 

그만큼 진공대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공대사가 열반에 든 건 940년이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것이 936년이었으니 한참 고려의 국운이 뻗어나갈 때 진공대사탑비가 만들어지고 흥법사가 크게 중창된 것이다.

 

사찰의 중심부에, 그것도 태조 왕건이 비문을 작성했으니 흥법사를 방문한 사람들은 당연히 진공대사탑비를 보려고 했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한자 실력이 낮지만 그래도 봐야쥐~

 

이게 뭐야! 비좌 역할을 하는 귀부와 머리장식인 이수만 있는 것이다. 왕건이 작성한 비문을 보고 싶단 말야! 내 한자 실력을 만방에 알리고 싶단 말야!^^

 

귀부와 이수 사이에 긴 막대처럼 있어야 할 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반출됐다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세파에 시달렸는지 비는 4조각으로 짤려나갔다고 한다. 무슨 조각피자도 아니고 말야.

 

중간에 있어야 할 비가 타향에 있지만 귀부와 이수만 있는 현재의 모습도 그 자체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현재의 모습이 완성품이었나 할 정도로 귀부와 이수가 서로 딱 맞아떨어져 보인다. 그래서 보물 4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얼핏봤을 때 작은 장갑차처럼 보였는데 그걸 타면 수륙양용으로 달릴 수 있으려나?

 

보시다시피 용인지 거북이인지 정말 정교하게 잘 조각을 해놨다. 발톱과 갑옷도 보시라. 하나하나 부족한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장식을 한 머릿돌인 이수도 보시라. 용이 날아갈 거 같지 않은가?

 

이렇게 귀중한 문화재가 있지만 흥법사지는 방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위가 논밭이라 그런지 인근에는 농업 쓰레기들이 많이 보였다. 탑비 옆에는 담배꽁초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흥법사지가 유명하지 않아서인지 마땅히 주차할 곳도 없어보였다.

 

흥법사지를 사적지로 지정하자는 한 시민단체의 현수막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직선거리로 20km도 안 떨어져 있는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와 거돈사지는 사적지로 지정되어 잘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흥법사지는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은 발길이 쉽게 가지 않을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보물 2점이 있고, 인근에 소금산과 연동하면 많은 이들이 탐방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 유산인데 말야.

 

예산 쏟아부어서 이상한 조형물 만드는 것보다 있는 문화재 잘 활용하면 그것 자체가 문화재 힐링 여행이 되는 것이다.

 

 

 

 

 

 

 

 

* 흥법사지 3층석탑

 

 

 

 

 

 

 

 

* 흥법사지: 주위는 논밭으로 변했다.

 

 

 

 

 

 

 

 

 

 

* 흥법사지: 방치된 석물들. 왼쪽 연꽃 받침돌은 석등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 흥법사지: 국가사적 지정 청원 현수막

 

 

 

 

 

 

 

 

 

 

 

 

 

 

 

 

4월 20일 화요일.

성북50플러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다섯번째 강의가 실시된 날이다. 5강은 남산 역사트레킹이다.

"남산에 뭐 볼게 있다고, 거창하게 역사트레킹까지 하냐!"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많이들었다. 남산이야 뻔한 곳이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남산 역사트레킹을 행하고 나면 이런 반응으로 바뀌었다.

"남산에 이렇게 걷기 좋은 곳이 있었어요? 이렇게 이야기거리가 많았어요?"

남산에도 2015년도에 개설된 남산둘레길이 있다. 트레킹팀은 이 길을 주요 탐방지 삼아 걸었다. 자세한 이동경로는 이렇다.

버티고개역 -> 남산둘레길(남측구간) -> 팔도소나무단지 -> 남산성곽 -> 남산둘레길(북측구간) -> 남산한옥마을

둘레길 남측 구간 중에는 옛날 식물원 자리가 있는데 말그대로 식물원 자리라서 그런가, 조경에 힘 좀 썼더라. 덕분에 꽃 구경을 제대로 했다. 인공적인 면이 있었지만 다양한 종류의 꽃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남산 역사트레킹은 생각보다 좀 많이 걷는다. 다른 프로그램보다 약 1km 정도는 더 걷는 거 같다. 하지만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훅 지나간다. 이번에도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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