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명소들을 탐방하는 <서울 그곳에 가다>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본 <서울 그곳에 가다>는 저의 주 종목인 <역사트레킹>에서 파생된 콘텐츠입니다. 기존에 작성했던 트레킹 원고들은 평균이 원고지 35매(200자 기준) 정도여서 읽는데 좀 불편했던게 사실입니다. 이에 좀 컴팩트한 분량의 원고를 작성해보기로 했답니다.

<서울 그곳에 가다>에서 탐방하는 장소들은 기존에 작성했던 트레킹 원고에서 이미 한 번 다뤄본 곳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그럼 재활용이냐? 아닙니다. 재작성했습니다. 기존 트레킹 원고도 출간해보고 싶고, 본 <서울 그곳에 가다>도 출간해보고 싶어서요. 자기 표절도 표절아닙니까.

원고지 15~20매 정도로 분량이 그리 많지 않으니, <서울 그곳에 가다>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서울의 명소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드릴테니까요~^^

 


역사트레킹을 직업으로 삼다보니 서울 곳곳을 누비게 됐다. 그러면서 깨달았던 것이 하나 있다. 아니 실감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보시다시피 서울에도 산이 참 많아요.”

수강생들에게 많이 했던 멘트다. 그렇다. 서울에는 북한산이나 관악산 말고도 산이 많다. 인왕산, 아차산, 청계산 등등... 그런 서울의 산을 찾아 떠난다. 산에 간다고 움찔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라. 필자도 산 정상부를 가는 것보다 둘레길 걷는 걸 더 선호하니까.

제목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이번에 탐방할 곳은 백사실계곡이다. 백사실계곡은 북악산의 북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 북악산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서울 안쪽에는 4개의 산이 자리 잡고 있다. 북쪽 북악산, 동쪽 낙산, 서쪽 인왕산, 남쪽 남산. 이 산들을 연결하여 성을 쌓았더니, 한양도성 18.6km가 탄생했다. 이 산들은 안쪽에 있다하여 내사산(內四山)으로 불렸다.

* 백사실계곡: 초입에 자리잡은 현통사

● 이곳에 들어서면 도시의 번잡함이 사라진다!

청와대의 뒷산이라 그런지 북악산은 많은 부분이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개발이 제한되다보니 역설적으로 서울 같지 않은 구역도 존재한다.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명승 제36호 백사실계곡이 바로 그런 곳이다. 백사실계곡에 발길을 들여놓으면 울창한 수목원을 방문한 것처럼 싱그러움이 전해진다. 서울에서도 이런 숲 향기를 느긋하게 맡을 수 있다니!

필자는 백사실계곡을 ‘비밀의 화원’이라고 표현한다. 서울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에서 불과 4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렇게 호젓한 곳이 자리 잡고 있으니,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매연과 소음, 끝없는 인파에 시달리다가도 이곳에 들어서면 갑자기 모든게 멈춰진 듯 그런 도시의 번잡함이 사라진다. 싹 다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비밀의 화원답게 백사실계곡은 물도 1급수다. 그래서인지 1급수에서만 산다는 도롱뇽이 살고 있단다. 백사실계곡은 홍제천의 상류가 되는데 그 물길을 따라가면 굵직한 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몇 가지를 알아보고 가자. 일단 유명한 세검정(洗劍亭)이 부암동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인조반정과 관련된 김류, 이귀 등이 거사를 모의한 후 이곳에서 칼을 씻으며 결의를 다졌다하여 세검(洗劍)이라는 명칭이 생겼고, 이곳에 정자가 들어서니 세검정이 된 것이다. 세검정은 백사실계곡 탐방의 도입부라고 할 수 있다.

세검정 인근에는 탕춘대성(蕩春臺城)의 어원이 된 탕춘대(蕩春臺) 터가 있다. 탕춘대는 연산군에 의해 1505년에 만들어졌는데 그는 이곳에 수각을 짓고 화끈하게 놀았다고 한다. 이때가 연산군 11년이었는데 다음해인 1506년,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된다. 과유불급이다. 놀아도 적당히 놀아야한다. 그러니 폐위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수각(水閣)은 물가에 지어진 누각 혹은 정자를 말한다.

홍제천은 모래가 많다하여 사천(沙川)이라고도 불렸고, 불천이라고도 불렸다. 보도각 백불이라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거대한 마애불 앞을 흐른다하여 불천(佛川)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정식 명칭이 옥천암 마애보살좌상인 보도각백불은 다른 마애불과 달리 호분으로 채색을 했다. 보기 드문 컬러풀한 마애불로 2014년 3월에 보물 제1820호로 승격됐다.

 

 

* 백사실계곡: 숲길의 가을

● 풍광이 수려한 백석동천

현통사 앞 너럭바위에서 멋지게 인증사진을 찍은 후 산책로를 따라 이동한다. 싱그러운 숲 향기를 맡으며 걷다보니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그렇게 걷다보면 큰 연못 자리를 끼고 있는 별서터가 나온다. 백석정, 백석실 혹은 백사실로 불렸던 이 건물은 전에는 오성대감 이항복 선생의 별서터였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2012년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곳의 주인이었다는 문서가 발견됐고, 그에 따라 부암동 별서는 이항복 선생이 아닌 추사 김정희 선생의 소유물이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그 곳이 이항복 선생 소유든 김정희 선생 소유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조선 중기 때 인물인 이항복 선생이 부암동 별서터를 잘 사용했고, 이후 조선 후기를 살았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바톤을 이어받아 잘 이용했다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숲을 거닐다보면 상상력도 풍부해진다.

이제 백석동천(白石洞天) 각자 바위를 보러가자. 예전에 이 일대는 백사골로 불렸었는데 주위에 흰 돌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천(洞天)이라는 명칭은 삼청동천, 청계동천처럼 풍광이 수려한 곳을 지칭할 때 붙는 말이다. ‘백석동천’을 거칠게 풀이해보면, 풍광이 아름다운 백석지역이라는 뜻이 된다.

어쨌든 이 일대가 비밀의 화원처럼 아름답다보니 어떤 풍류객이 ‘白石洞天’ 네 글자를 보기 좋게 각자를 해두었다. 이 백석동천 바위는 크기나 선명도면에서 다른 각자바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누구나 다 그 곳에 서면 카메라를 꺼내 든다.

“곽 작가님, 거기서 멀뚱하게 서 있지 말고 우리 사진 좀 찍어줘요.”

 

필자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다.

각자바위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능금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능금이면 사과 아닌가? 서울에서 사과를 재배했었나? 그렇다. 지금은 아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부암동 일대에는 사과밭이 많았다. 경림금(京林檎)이라고 불렸던 부암동 일대 사과는 제사상에 올라갈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았었다. 부암동은 북소문인 창의문과 맞닿아있는데 가을 수확철만 되면 경림금을 구매하기 위한 행렬로 창의문밖이 들썩들썩 거렸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맛이었기에 창의문 밖이 들썩거리기까지 했을까? 이제는 능금밭은 찾아볼 수 없기에 입맛만 다시며 다시 숲길을 거닐었다.

이렇게 하여 백사실계곡 탐방을 마쳤다. 추사 선생의 별서터와 백석동천 각자바위, 거기에 울창한 숲길이 더해지니 이곳은 정말 서울 같지 않은 곳이다. 잘 간직하고 싶은 비밀의 화원이다. 이곳에 발자국을 들이면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싱그러운 나무향이 전해진다. 그런 자연의 향취에 빠지다보면 어느 순간 어깨춤을 추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걸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하나? 숲에 가면 그렇게 좋은 기운을 받게 된다.

* 백석동천: 각자바위

 


 

 

■ 백사실계곡

1. 세부코스: 세검정(홍제천) ▶ 별서터 ▶ 각자바위 ▶ 능금마을 인근 숲길

2. 가는법: 3호선 경복궁역에서 상명대행 시내버스 탑승, 상명대 앞 하차. 약 10분 정도 소요됨.

3. 같이 가면 좋을 곳: <커피 프린스> 촬영지로 유명한 부암동 카페거리,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

 

 

* 백사실계곡 탐방지도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8편> 불암산이 부처님 산이라고? _ 불암산 역사트레킹

 

 

 

* 불암사 뒤편 마애삼존불: 12지상이 호위하듯 서 있다.

 

 

 

 

 

 

 

- 목적없이 그냥 트레킹을 하는 것이 좋으신가, 아니면 주제성이 확실한 테마트레킹이 좋으신가?

 

수강생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거의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테마트레킹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계신분들은 어떤 것이 좋으신가?

 

역사트레킹은 역사를 중심에 둔 테마트레킹이다. 역사트레킹이 거듭될 때마다 점점 더 큰 욕심이 생겼는데 테마의 강도를 더 높이고 싶은 욕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맨 처음 구체화한 것이 내사산(동: 낙산, 서: 인왕산, 남: 남산, 북: 북악산) 테마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외사산(동: 아차산, 서: 덕양산, 남: 관악산, 북: 북한산)으로 확장시켰다. 내사산, 외사산의 테마가 종료되니 새로운 주제에 대한 갈증이 일어났다. 그러다 목탁을 치듯 무릎을 쳤다. 사찰이 있었던 것이다.

 

 

 

 

 

 

* 불암사 일주문

 

 

 

 

 

 

● 부처님의 형상을 한 불암산

 

이번에는 불암사 역사트레킹이다. 불암사는 불암산에 있는 사찰로 동불암(東佛巖)으로도 불리는 서울근교의 4대 명찰이다. 4대 명찰을 알기 쉽게 정리를 해보자. 동쪽 - 불암사, 서쪽 - 진관사, 남쪽 - 삼막사, 북쪽 - 승가사.

불암산 역사트레킹은 서쪽편인 서울시 노원구에서 시작하여 동쪽편인 경기도 남양주시로 넘어간다. 그러니 불암산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는 게 먼저다.

 

필암산이라고도 불리는 불암산(해발508미터)은 이웃한 수락산과 더불어 바위가 많은 산이다. 거북바위, 해골바위, 백바위 등등... 형형색색의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불암산이라는 명칭도 바위의 형상에서 도출됐다. 정상부 바위의 모습이 마치 송낙을 쓴 부처님의 모습처럼 보인다하여 불암산이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송낙이 뭐지? 어려운 명칭이 나왔으니 잠시 정리하고 가자. 송낙은 송라립(松蘿笠)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여승들이 쓰는 모자를 말한다. 이 송낙은 소나무의 겨우살이인 송라를 엮어서 만드는데 얼핏 보면 지푸라기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양은 전체적으로 고깔모자처럼 생겼으나 맨 윗부분은 두상에 맞춰져 평평하다.

 

이렇게 설명해도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조각 피자를 생각해보시라. 먹음직스러운 조각 피자를 먹으려고 딱 준비를 했는데 누가 냉큼 한 입 베어 먹은 것이다. 조각 피자의 삼각뿔이 없어지고 마음은 아프고... 송낙을 쓴 부처님의 형상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곳은 불암산의 동쪽편이다. 그러고 보면 불암산은 부처님 자체인 거 같다.

 

“불암산, 불암산 하는데 이 산이 최불암 산이에요?”

“그럴 수도 있어요. 최불암 선생이 이 산의 명예 산 주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최불암 선생님은 좋겠어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도 하고, 산 주인도 하고요.”

“저도 정말 부러워요. 하하하”

 

 

 

 

 

 

* 불암사 가는길

 

 

 

 

 

 

 

● 불암산의 다른 이름, 필암산

 

불암산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마다 꼭 나왔던 말들이다. 물론 최불암 선생의 본명은 따로 있다. 최영한. 하지만 우리에게 최불암은 최불암이다. 송해 선생이 본명인 송복희가 아닌 송해로 우리에게 각인된 것처럼.

앞서 언급한 필암산(筆巖山)이라는 명칭도 살펴보자. 필(筆)자는 ‘붓필’인데 이 일대는 문방사우와 관련된 지명들이 나타난다. 인근에 있는 중랑구 묵동이 대표적이다.

 

묵동은 먹(墨)을 만드는 동네라고 하여 먹골로 불렸다. 먹골배가 생각나시나? 먹는다고 먹골배가 아니라 먹을 만든다고 먹골이었던 것이다.

 

노원구 월계동에는 ‘벼루연(硯)’자를 쓴 연촌(硯村)이 있었다. 이 곳은 ‘벼루말’이라고도 불렸는데 동네에 벼루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종이, 붓, 벼루, 묵. 문방사우(지필묵연) 중에 종이만 빼놓고는 다 나왔다. 기왕이면 종이와 관련된 지명까지 만들어서 완전체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일부러 완전체를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문방사우와 관련된 지명을 배치했다면 종이지(紙)와 관련된 동네 이름을 빼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가 가장 먼저 나오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필, 묵, 연의 지명을 쓴 건 이 일대의 지기(地氣)를 꺾기 위한 풍수적인 의도였다는 설도 있다.

 

 

 

 

 

 

* 불암산

 

 

 

 

 

 

 

● 숲길이 좋은 불암산

 

서론이 길어졌다. 불암산 역사트레킹은 4호선 상계역에서 시작한다. 바위가 많은 산을 골산(骨山), 흙이 많은 산을 육산(肉山)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따르면 불암산은 골산이다. 설악산이 대표주자로 많이 언급되듯이, 골산은 ‘악’자가 많이 따라붙는다. 치악산, 관악산, 월악산 등등... 이런 산들은 입에서 ‘악’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골산임에도 불암산은 어렵지 않게 탐방할 수 있다. 해발고도가 508미터로 그리 높지 않기도 하지만 딱히 ‘악’ 소리를 입에 달고 오르는 구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트레킹은 정상을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악’ 소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현재 불암산의 서쪽은 서울둘레길 1코스(수락불암)에 포함되는데 완경사를 따라 걷는 길이 참 좋은 곳이다. 숲도 울창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많은 이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 곳이다. 숲이 우거진데다 흙길도 잘 정비되어있어 명품 숲길이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숲길을 따라 걷다 둘레길 전망대에 올라 불암산 정상쪽을 바라보자. 암반면이 노출된 암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위들이 정말 매끈하지 않습니까? 저 위에서 쭈욱따라 미끄럼 타고 싶어요.”

“그래요. 말 나온 김에 시범을 보여주세요.”

 

재치 9단인 수강생들 앞에서는 농담도 조심해야한다.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저기보세요. 저 높은 바위에 뭐가 매달려있어요. 그리고 또 움직여요.”

“정말 그러네요. 저거 사람이에요? 어떻게 저길 올라갔데요.”

 

그곳은 학도암장이다. 그렇게 움직이는 이들은 암벽등반을 하는 이들이다. 로프에 몸을 싣고 암벽을 타는 이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 멋있어 보인다. 필자는 암벽을 탈 용기가 없다. 그냥 걷는 게 좋다. 그래서 트레킹을 한다. 참고로 학도암장 정상부에서 조금만 더 이동하면 신라 시대에 만든 불암산성을 만날 수 있다.

 

바위가 많은 산은 사람들을 상상의 날개를 펴게 만든다. 바위의 형상이 조금이라도 무언가와 비슷하다면 해당되는 이름이 붙게 된다. 해골바위, 거북바위, 범바위 등등... 거시기한(?) 바위도 있다. 남근석이나 여근석이 바로 그것이다. 불암산에도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는데 그 모양새가 꽤 사실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군다나 두 바위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여 음양의 조화를 제대로 펼치고 있는 모양새다. 다른 지역에는 남근석만 있거나 반대로 여근석만 있어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불암산은 그걸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천보사: 대웅전과 코끼리바위

 

 

 

 

 

 

 

 

● 하늘의 보물을 품은 천보사

 

이제 천보사 방면으로 이동한다. 불암산은 필암산 이외에도 천보산(天寶山)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천보산이라는 명칭은 세조가 지었다고 한다. 세조가 이 일대를 유람하다 아름다운 풍광에 매혹되어 천보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물음표부터 떠오른다. 불암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천보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산이 두 개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명한 회암사지가 자리 잡고 있는 양주의 천보산이고, 다른 하나는 의정부의 북쪽에 위치한 천보산이다. 이 둘은 하나의 맥으로 연결되어 있긴 한데 그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다.

 

해발고도도 다르다. 양주의 천보산이 432미터이고, 의정부 천보산이 337미터이다. 이미 기존에 천보산이라는 명칭을 가진 산이 있는데 굳이 세조가 또 천보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가람을 품고 있는 산의 명칭이 어찌됐든 천보사는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사찰이다. 하늘의 보물을 품고 있는 있다는 뜻 아닌가.

 

천보사는 천연보궁(天然寶宮)이라고 불린다. 법당 뒤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코끼리바위가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병풍바위처럼 비교적 평평한 암석면에는 마애불을 그려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창 선운사 마애불을 생각해보시라! 하지만 천보사는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암석을 부처님으로 보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천연보궁이라고 칭한다.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한 번 바라보세요. 저 바위에 부처님이 깃들어 계신데요.”

“잘 안 보이는데요.”

“마음속에 불심이 없으셔서 그런 거에요. 불심이 있으면 보입니다.”

“곽작가님은 보이세요? 설명 좀 해주세요.”

“아니... 제가 사실은 제가 시력이 안 좋아서...”

“피이... 자기도 못 알아보면서.”

 

그랬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더라도 부처님이 보이지 않더라. 물론 근래에 새겨놓은 석불좌상은 잘 보였다. 하지만 천연보궁에 깃든 부처님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필자에게는 부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불심이 없었던 것이다.

 

- 모든 돌은 그 내부에 조각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조각가의 일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말이다. 이 말에 의하면 모든 바위는 부처 바위가 될 수 있다.한낱 중생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다. 천보사 코끼리바위에서 육안으로 부처님을 찾기보다는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게 더 좋을 거 같다. 아니면 바위에 ‘자비’ 두 글자를 그려 넣어도 좋을 것이다. 조각이든 글씨든 뜻이 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코끼리 바위를 품고 있는 천보사는 그 자체로 절경이다. 그 아름다운 사찰에서 내려 보는 풍광도 아주 시원스럽다. 정말 말 그대로 하늘의 보물을 품고 있는 사찰이 맞다. 사찰을 떠나기 전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천보사 5층 석탑을 꼭 보고 오자. 천보사의 역사가 짧지 않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천보사

 

 

 

 

 

 

 

● 서울이 4대 명찰, 불암사

 

이제 마지막 탐방지인 불암사(佛巖寺)로 향한다. 천보사에서 불암사까지는 산길로 연결이 되어 있다. 좁은 오솔길을 걷는 맛이 참 좋다. 그런데 좀 위험한 구간도 있으니 발걸음을 조심하자.

 

불암사는 지증대사가 후기 신라시대인 헌덕왕 16년(824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불암사는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동불암이라고 불렸다. 서울 근교 4대 명찰은 세조의 명에 의해 지정된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재위 기간에 자신의 아들(의경세자)과 손자(인성대군)가 죽는 등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자신도 여러 가지 병치레를 했는데 금강산이나 오대산 같은 강원도 지역의 명산들에서 요양을 했기에 반드시 서울의 동쪽 지역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조가 천보사의 명칭을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세조는 그런 시련을 불심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도성밖 사방에 왕실의 발전을 기원하는 4대 명찰을 지정하게 된다. 동쪽 - 불암사, 서쪽 - 진관사, 남쪽 - 삼막사, 북쪽 - 승가사.

 

불암사에는 보물 제591호 불암사경판이 전해 내려온다. 이중 <석씨원류(釋氏源流)>라는 책을 찍은 목판이 있는데 이 <석씨원류>는 조선 후기 불교의 대중적 확산에 공헌을 했다고 한다. <석씨원류>는 중국에서 간행된 책으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일반 민중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중간에 그림을 그려 넣었던 것이다.

 

이 책은 1631년(인조9년), 정두경이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 가져왔는데 승려 지습이 1673년에 불암사에서 판각했다. 이후 <석씨원류>가 퍼져나갔고, 사찰 건물의 내외부에 부처님의 행적을 담은 불화가 그려졌다고 한다. 글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그림만큼 좋은 교화 도구도 없었을 것이다. 성당에 그려진 성화들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1989년 불암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게 된다. 태국에서 3과, 스리랑카에서 4과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진신사리보탑을 건립하게 된다.

 

- 머리에 송낙을 쓴 부처님의 형상

- 부처님의 행적을 담은 <석씨원류> 목판

- 부처님의 사리를 담은 사리탑

 

서울의 4대 명찰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귀한 것들이 많기에 동불암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하산을 할 시간이다. 제월루 앞에 있는 천보산불암사사적비도 놓치지 말고 보고 가자. 사적비는 1731년(영조7년)에 만들어졌다. 1994년에 만들어진 일주문에도 천보산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게 하여 불암산 역사트레킹이 종료가 됐다. 좋은 숲길을 걸으며 귀한 문화유산을 만나서 그런지 마치 하늘에서 보물을 선물 받은 거 같다. 덕분에 즐겁게 역사트레킹을 행했다.

 

 

 

 

 

 

* 불암사

 

 

 

 

 


 

 

 

 

 

 

■ 불암산 역사트레킹

 

1. 코스: 전망대 ▶ 남근석 ▶ 여근석 ▶ 천보사 ▶ 불암사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4시간(휴식시간 포함)

4. IN: 지하철 4호선 상계역 1번 출구 / OUT: 불암사 ☞ 202번 버스종점에서 6호선 화랑대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음.

 

 

 

 

 

* 불암산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 지족해협과 창선교

 

 

 

 

 

 

 

*** 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11월 27일. 이제 경상남도 서부권 여행의 마지막날이다. 이날은 남해읍에서 삼동면 지족리로 가는 시골버스를 탔다. 지족리는 위쪽으로는 남해군 창선면, 더 위쪽으로는 사천시 삼천포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있다. 그렇다. 삼천포는 그 유명한 삼천포다.

 

이날은 지족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삼천포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지족리까지는 사천시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남해 창선면에서 삼천포(사천)로 넘어가려면 4개의 대교를 건너야한다.

 

창선대교(340m) ☞ 늑도대교(340m) ☞ 초양대교(200m) ☞ 삼천포대교(436m)

 

보시다시피 각각의 다리들은 그리 길지 않다. 제일 긴 삼천포대교도 한강에 있는 다리보다도 더 짧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다리들을 걸어서 넘어볼까 했으나 시간관계상 시내버스를 타고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 구간은 총 3.4km로 정도된다. 섬 안쪽 지역까지 포함된 길이다. 어쨌든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시내버스를 타고 건넌다는 것이 무척 매력있지 않은가? 남해나 삼천포 주민들은 정말 좋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들을 매일 공짜로 볼 수 있으니!^^

 

언제가는 걸어서 이 다리들을 넘어볼 생각이다. 하긴 남파랑길도 이 다리를 넘어 남해군에서 사천시로 넘어가더군. 일단 버킷리스트로 잠깐 돌려놓을란다.

 

 

 

 

 

* 초양대교와 삼천포대교: 왼쪽 다리가 초양대교다. 2014년에 찍은 사진임.

 

 

 

 

 

 

대신 삼동면에서 창선면으로 넘어갈 때 창선교를 걸어서 넘어갔다. 창선교는 앞서 언급한 창선대교와는 다른 교량이다. 하여간 창선교를 걸어서 넘는데 어찌나 바닷바람이 세던지...! 아주 그냥 날라가는 줄 알았다. 덕분에 코에 바람은 제대로 넣었다. ^^

 

창선교 아래는 지족해협이 흐르고 있는데 이곳은 물살이 무척이나 빠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죽방렴(竹防簾)이라는 우리 고유의 민속 어획법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들어오는 곳은 입구를 크게 하고, 뒤로 갈수록 폭을 줄인다. 물고기들이 모이는 곳에는 대나무를 촘촘히 박아 우리처럼 만든다.

 

해류의 방향과 반대로 죽방렴을 설치하니 그 안에 있는 물고기들은 지족해협의 급류와 계속해서 맞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지쳐서 어부의 손에 낚이는 것이다. 물고기들이 계속해서 급류와 싸워서 그런지 죽방렴에서 잡힌 물고기들은 신선도가 매우 높고, 그래서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지족해협 죽방렴에는 주로 멸치가 많이 잡힌다.

 

난 죽방렴을 보면서 갯담이 생각이났다. 갯담은 큰 돌들을 바닷가에 담처럼 쌓아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업법인데 밀물 때 갯담에서 유영하던 물고기들이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고 갯담에 가둬지게 되는 것이다. 제주에서는 갯담을 원담으로도 부른다. 갯담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어업법이면 지족리의 죽방렴은 해류의 세기에 의존한 고기잡이 방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족해협 일대에는 약 20여개의 죽방렴이 있는데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8월 18일에 명승 71호로 지정되었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죽방렴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려면 창선교에서 보는게 제일 낫다. 그나저나 죽방렴을 자세히보니 삼겹살 먹을 때 쓰는 집게 같아 보이지 않는가. 집게를 좀 크게 벌려놓은 거 같다. ^^

 

남해군을 뒤로하고 사천시 시내버스를 타고 삼천포항으로 갔다. 단돈 1400원인가? 그 버스값 내고 아름다운 한려해상을 넘으니 너무 좋더라. 공짜로 버스투어 하는거 같았다.

 

삼천포에서는 유명한 코끼리 바위를 보려고 했다. 코끼리 바위는 남일대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데 몇해 전 탐방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큰 감흥을 받아서 이번에 다시보려고 갔는디...! 진입로가 공사중이었다. 올 여름에 있은 태풍으로 진입로가 망실됐다는 것이다. 코끼리바위 바로 앞까지 가려면 2021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할 거 같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안전하게 다시 탐방로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하여 6일간의 경남 서부권 여행이 종료됐다. 이번 여정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보약같은 여행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어찌나 좀이 쑤시던지... 그러다 여행을 하고나니 개운한 감이 드는게 아닌가. 나도 어쩔 수 없는 방랑자인 거 같다. 맞아, 나 여행 좋아해!^^

 

 

 

 

 

 

* 죽방렴

 

 

 

 

 

 

 

 

* 죽방렴

 

 

 

 

 

 

* 삼천포항 부근

 

 

 

 

 

 

 

 

* 창선대교: 초양대교가 아님. 2014년에 찍은 사진임.

 

 

 

 

 

 

 

* 코끼리바위: 2014년에 찍은 사진임.

 

 

 

 

 

 

 

 

 

* 보리암

 

 

 

 

 

***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11월 26일. 경상남도 남해군에서의 일정이 시작됐다. 남해에서는 보리암 탐방을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잡았다. 보리암은 상주면에 있는 금산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금산은 원효대사의 기도처였는데 원효대사께서는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는 보광산이라고 불렸다. 그러다 이성계가 이 산에서 기도하였고, 마침내 왕으로 등극을 하였다. 이성계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 이름을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금산은 산악으로서는 유일하게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금산은 빼어난 절경을 품고 있는 것이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시라. 눈이 다 즐거워진다.

 

그런 금산 정상 아래쪽에 보리암이 자리잡고 있다. 깎아질 듯한 지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지 보리암은 다른 사찰들과는 다른 가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치 기암괴석들과 하나로 혼연일체가 된 느낌이랄까? 예전에 탐방했던 도봉산 원통암이 생각이났다.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과 어우러진 원통사의 모습이 보리암 앞에서 떠올랐다.

 

원통사도 우이암 정상부 아랫부분에 자리잡고 있고, 또한 우리나라 관음사상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물론 도봉산 원통사는 보리암보다는 덜 알려져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는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홍련암, 그리고 보리암이다. 서해, 동해, 남해바다를 관음보살께서 살펴주시고 계신다. 더 정확히는 해수관음 성지다. 모두 바닷가에 면해 있으니까.

 

 

뚜벅이들은 보리암을 가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보리암을 가려면 남해읍내에서 상주면행 버스를 타야한다. 그리고는 보리암 입구(?)에서 하차한 후 약 30분 정도 복곡 1주차장이라는 곳을 향해 걷는다.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여기서 보리암의 관문인 복곡 2주차장까지 약 7km나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총 9km의 거리를 걸어가야 보리암을 탐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주차장과 2주차장 사이에 마을버스가 운행되기는 하는데 그건 성수기 때의 일이다. 배차 시간이 있는게 아니라 일정 정도 사람들이 모아져야 운행을 하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았는데 상주면행 버스에서 보리암을 가는 보살님 두 분을 만나 함께 택시에 동승했다. 9km 거리에 택시 요금이 1만원이었는데 셋이 나눠냈다. 난 3천원 냈다. ㅋ

 

 

사찰 탐방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보리암은 한 번 쯤 방문해보시면 좋을 거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암괴석과 조화를 이룬 가람이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의 모습은 정말 절경이다. 속이 다 시원해진다.

 

 

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그런가? 조금은 어수선하다. 산 꼭대기에 있는 사찰에 사람들이 붐벼서 좀 당혹스러웠다. 이런 말을 해서 좀 그런데... 마치 유원지 같았다.

 

 

 

 

 

* 보리암 3층 석탑: 왼쪽으로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마음이 거시기해서 일부러 상주은모래해수욕장으로 길을 잡고 내려갔다. 이곳은 금산 등산로로 향하는 길이기도 한데 상당히 경사가 심했다. 그래서인지 동굴인 쌍홍문 부근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 이 맛이지! 이렇게 호젓하게 탐방하려고 그 멀리 남해까지 온 거잖아!

 

보리암에서 금산 등산로 입구까지는 약 2km 정도인데 무척 가파르다. 하지만 등산에 자신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 해볼만 할 것이다. 택시 1만원이 없는 분들이라면 그쪽으로 가시는 것도... 나도 다음에는 금산 등산로로 올라가 볼 생각이다. 다리에 파스 좀 엄청 뿌리겠구먼~^^

 

상주은모래해수욕장까지 다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그냥 걷기로 했다. 어차피 해수욕장까지는 약 2~3km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도로옆을 지나가는 길이니 조심해야 한다. 참고로 금산 등산로 앞에 정차하는 버스는 복곡주자장도 지나가고 상주은빛해수욕장도 지나가는 버스다. 그 버스가 그 버스다.

 

상주은빛해수욕장에 가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렇게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결국 바다에 온 것이다. 모래사장도 어쩜 그렇게 좋은지 느긋하게 음미하면서 걸었다. 이토록 여유롭게 겨울바다를 걸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남도라서 그런지 겨울인데도 바닷바람이 살랑거린다. 그 바람결이 좋구나!

 

 

 

 


 

 

*** 뚜벅이들을 위한 금산 보리암 가는법

 

A. 복곡주차장 방면으로는 가는 방법 

 

1. 남해군 읍내에서 상주면행 시골버스 탑승. 복곡주차장 입구에서 하차. 이때 버스기사에게 꼭 보리암으로 간다고 말을 해야함. 

2. 진행방향은 이렇다.  주차장 입구 -> 제1 복곡주차장 -> 제2 복곡주차장.

3. 제1 복곡주차장까지 걸어간다. 거리는 약 2km 정도.

4. 여기서 제2 복곡주차장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탄다. 제1주자창에서 제 2주차장까지는 약 7km 정도임.

주의할 점이 있음. 문제는 해당 셔틀버스가 비수기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차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일정 정도 사람이 모이면 운행되는 버스임. 

5. 정 안되면 보리암 경내까지 걸어간다. 예전에는 비포장 임도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되었다. 총 9km 정도를 이동하면 된다. 약 3시간 정도 잡고 걸어간다. 

6. 시골버스에서 하차 한 지점에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있음. 제2 복곡주차장까지 택시비 1만원임. 

 

B. 금산 등산로로 올라가는 방법

 

1.  역시 남해군 읍내에서 상주면행 시골버스 탑승해서 금산 등산로 입구에서 하차. 이때도 금산 등산로 입구에서 내리겠다고 이야기를 해야 함. 

2. 진행방향은 이렇다. 등산로 입구 -> 도선바위 -> 쌍홍문 -> 보리암

3. 등산로 입구에서 보리암까지는 계단도 많고 가파르다. 거리는 약 2km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넉넉하게 2시간 정도 잡고 산행을 하면 좋을 듯싶다. 

4. 가팔라서 그런지 등산로 입구에서 보리암까지는 아주 한적하다. 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은 마시고. 필자도 나중에는 이 코스로 올라갈 생각이다. 올라갈 때는 화끈하게 올라가야지~^^

5. 참고로 금산의  높이는 해발 700미터다. 보리암은 금산의 9부 능선 쯤에 자리잡고 있다. 

 

 

 

 

* 금산

 

 

 

 

 

* 금산 정상 망루

 

 

 

 

 

 

* 보리암

 

 

 

 

 

 

* 쌍홍문

 

 

 

 

* 금산 전경

 

 

 

 

 

 

 

* 상주은빛해수욕장

 

 

 

 

 

 

 

* 상주은빛해수욕장

 

 

 

 

 

 

 

 

 

 

 

 

 

 

 

 

***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11월 23일. 예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거창 양평동 석조여래입상을 보러갔다. 거창군 거창읍 양평마을에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실 경남 거창은 내게 친숙한 곳이다. 거창군 고제면에 거창 귀농학교가 있는데 그 귀농학교 교장선생님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해 전에는 귀농학교에서 한동안 기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듯 거창에 많은 발걸음을 해왔지만 정작 문화재 답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양평동 석불도 전에 한 번 답사하려고 갔다가 정확한 위치를 몰라 되돌아 온 적이 있었다.

 

석불이 있는 양평마을은 거창 읍내에서 가깝다. 직선거리로 약 2~3km 정도 된다.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걸어서 약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나도 읍내에서 걸어서 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가려고 지도를 계속 주시하고 걸었다.

 

사진에서보듯 양평동 석불은 뛰어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아주 잘 표현된 얼굴 부분, 옷주름까지 신경 쓴 신체부분... 정교한 멋이 살아있는 디테일이 강한 석불이다. 밑받침인 대좌까지 합쳐 총 3.7미터에 이르는 석불은 통돌로 되어 있다.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니! 그것도 천 년도 훨씬 전인 신라 후기에 만들어졌다니!

 

사실 이 양평동 석불은 1970년대에 복원을 하였다. 그 전에는 하반신이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머리 위에 있는 천개도 같이 올렸다고 한다. 원래부터 천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실수에 의해 올려진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참고로 석불 머리 위에 얹혀진 둥근 모자 같은 걸 천개 혹은 보개라고도 부른다.

 

솜씨 좋은 석공이 만든 석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흐믓해진다. 섬세하게 잘 표현된, 거기에 보존 상태까지 좋은 석불을 보니 자연스럽게 합장을 하게 됐다. 더군다나 아주 가까이까지 가서 볼 수 있으니 그 감동이 두 배가 되더라. 마치 한 편의 완벽한 예술 작품을 보고 온 느낌이었다.

 

이렇듯 우리 문화재는 후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정말 눈이 호강한 날이었다.

 

 

 

 

 

 

 

 

 

 

 

 

 

 

 

 

 

 

 

* 농월정

 

 

 

 

***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경남 함양군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 트레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지리산 둘레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함양에는 지리산 둘레길말고도 '화림계곡 선비문화탐방로'라는 계곡트레킹을 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있다.

 

일명 선비문화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함양군 서하면부터 안의면까지 약 9km에 걸쳐 이어진 길이다. 총 연장이 총 9km면, 도보여행길 치고는 무척 짧은 편이다. 지난 10월 31일에 개통된 남파랑길을 보라. 총 연장이 무려 1470km라고 하니까.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를 논할 때, 흔히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여기서 '우 함양'을 '우 안의'로 바꿔도 될 만큼 안의 지역은 풍부한 선비문화를 창달했던 곳이다. 선비문화길이 있는 화림동(花林洞) 계곡은 용추계곡이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심진동(尋眞洞) 계곡, 거북바위로 유명한 원학동 계곡과 더불어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고 불렸다. 원학동, 화림동, 심진동이 안의 지방의 3대 계곡이라는 뜻이다.

 

안의는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으로, 면 단위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안의현이라 불리며 함양, 거창과 함께 그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한다.

 

주변에 큰 산들이 많은 이 일대는 예로부터 정자가 많기로 유명했다. 큰 산들이 뿜어내는 풍부한 유량과 평평한 너럭바위들은 풍류객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충분했을 것이다. 그때도 막걸리 잔부터 돌렸을까?ㅋ

 

사진에서 보이듯 화림동 계곡은 매우 완만하게 이루어져있다. 통상적으로 계곡이라하면 급경사와 급류가 떠오르는데 화림동 계곡은 평평한 모습이다. 그래서 선비문화길의 난이도는 '하'이다. 통상적인 계곡트레킹이 '중' 이상인 것을 생각해보시라. 큰 부담없이 계곡길을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일대는 정자가 많이 있다. 그래서 선비문화길은 정자를 따라 걷는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는 이렇게 된다.

 

거연정 ☞ 동호정 ☞ 농월정

 

이렇게 하면 약 6km 정도다. 6km 정도로는 성이 안 찼다면, 3km를 더 걸어 안의면 버스터미널까지 가면 된다. 그래서 총 연장이 9km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의 6km를 추천한다.

 

 

 

 

 

* 거연정

 

 

 

 

 

* 거연정 자연석 주초

 

 

 

 

 

트레킹의 시작은 거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번에 갔을 때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거연정의 주춧돌이었다. 사진에서보듯 거연정은 계곡의 바위 위에 지어졌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지어지다보니 통상적인 주춧돌이 쓰일 수 없었을 것이다.

 

보통 건물의 주춧돌은 잘 다듬어져 있다. 하지만 '덤벙주초'라고 해서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주춧돌로 삼기도 했다. 그러면 주초가 나무기둥에 맞혀지는게 아니라 반대로 나무기둥이 주초에 맞혀지게 된다.

 

그런데 거연정의 주춧돌은 덤벙주초를 넘어 아예 울퉁불퉁한 계곡 바위다. 그러니 나무 기둥도 그에 맞춰 생김새가 아주 독특한 것이다. 전에는 잘 모르고 넘어간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가니 눈에 확 들어왔다.

 

동호정 앞에는 차일암이라고 불리는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다. 이 차일암은 하도 커서 100명이 동시에 앉을 수도 있다고 한다. 족구도 한 판 할 수 있을 거 같이 차일암이 크긴 크더라.

 

마지막으로 농월정을 탐방했다. 선비문화길의 하이라이트 같은 곳이 바로 농월정이다. 농월정 앞은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크게 펼쳐진 곳이다. 확 트인 곳에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흐르고 있고, 큰 너럭바위들까지 펼쳐져있으니 '음풍농월' 하기에 제격이 아니던가!

 

그랬던 농월정이었지만 2003년에 큰 아픔을 겪게 된다. 누군가 방화를 해서 농월정이 전소된 것이다. 아주 천벌을 받을 놈이지! 소중한 문화재를 왜 망가뜨리냐고!

 

지금 보는 농월정은 2015년 9월 16일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다시 지어졌을 때는 칠이 칠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화려하게 단청까지 칠해져있었다.

 

무리없이 계곡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인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로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끄적이다보니 다시 가고 싶네~^^

 

 

 

 

* 거연정

 

 

 

 

 

 

* 동호정

 

 

 

 

 

 

 

*화림동계곡

 

 

 

 

 

 

 

* 소나무숲: 농월정 가는 길

 

 

 

 

 

 

 

 

 

* 농월정

 

 

 

 

 

 

 

 

 

얼굴이 두껍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꾹 참고 써본다. 내가 추천하는 브런치북은 <트레킹은 생각창고>다. 그렇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내가 쓴 작품이다. 잘나도 내 작품, 못나도 내 작품이기에 염치불구하고 추천을 해본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사연이 많은 원고다. 이 원고의 오리지널 제목은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었다. 오리지널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 원고는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행한 역사트레킹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트레킹은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라 트레킹을 행하며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아주 고급진 아웃도어 활동이다. 역사트레킹은 아웃도어에서 행해지는 터라 요즘 같이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시절에도 실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원고들에는 내 역사트레킹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있다. 처음 작성했던 원고가 2013년도였고, 브런치북으로 간행된 것이 2020년 6월이었으니 약 7년이란 시간동안 숙성이 된 원고라는 뜻이다.

 

 

 

 

 

 

 

7년 동안 자연 상태로 두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휘저었다. 서울과 경기, 그리고 에필로그인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총 20화로 엮었는데 재작성만 10번 이상을 한 꼭지도 있었다. 그렇듯 재작성도 만만치가 않았다. 글을 새로 한 편 쓰는 정도의 에너지가 들 필요했으니까. 그만큼 제대로 쓰고 싶었고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원고가 손이 많이 갔다는 건 외부적인 충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원고는 출간 제의를 3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3번 다 처참할 정도로 차였다. 그렇게 출간이 불발됐으니 이렇게 브런치북 공모전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번 공모전까지 떨어지면 도대체 몇 번을 차이는 거지?

 

- 우리출판사는 역사서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내용을 보강해주세요.

- 적어도 30꼭지는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분량으로는 부족합니다.

- 트레킹에 중점을 둔 실용서가 우리의 방향입니다. 맛집이나 주변관광지를 포함하는 건 당연하고요.

- 글 앞뒤에 있는 에세이 부분을 더 강조해주세요.

 

각기 다른 3곳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다보니 요구 멘트도 중구난방이었다. 거기에 휩쓸리듯 원고에 손을 댔던 것이다. 그러니 재작성을 10번 이상한 원고도 나오게 됐다. 제목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서 <트레킹은 생각창고>로 변경을 하게 됐다.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쓰고 고치고를 여러번 하다보니 웬만한 오탈자나 비문은 다 잡아냈다. 추가된 내용들도 원문글에 잘 녹였다. 시간이 갈수록 잘 숙성 된 듯싶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읽기만 하면 되는데...

 

10km짜리 역사트레킹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100km 이상을 탐방해야 한다. 한 번 갔던 길을 여러번 반복해서 가야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길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또 가고, 또또 가야 하는 것이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더 알찬 내용을 담기위해 눈을 비비며 글을 작성했었다.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만큼 교차검증을 철저히 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시간 이상 걸린 적도 있었다. 그만큼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못난 그림 솜씨로 지도도 그려 넣었을까! 이해도를 높이려고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만든 <트레킹은 생각창고>였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신통치가 않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게 글이 길어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설명식의 딱딱한 글이어서 그런가?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하지 않던가. 성적이 좋든 나쁘든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내게는 자식처럼 아주 소중한 존재다. 잘났든 못났든 어쨌든... 내 소중한 작품이다.

 

 

*** 브런치북을 소개하는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올 가을경에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여행플랫폼에 역사트레킹을 런칭했다. 3년 정도 5060세대들을 집중 타겟으로 트레킹을 진행했었는데 그것을 좀 탈피해보고자 그렇게 한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아 좀 놀랬다. 기존 수강생들은 대다수가 단독으로 참가를 하거나 친구끼리 참여를 했었기 때문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모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고, 일가족이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가족 단위로 트레킹을 행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좋았다.

 

오늘 마이리얼트립에서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리뷰 메일을 받았다. 내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문서 형식의 리뷰를 보니 좀 신기한 느낌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런 방식의 리뷰는 흔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잘 보시라! 성적이 꽤 괜찮지 않나? 올 A+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못하고 성적도 꽝이었는데... 역사트레킹 때문에 좋은 성적표도 받아보네~^^

 

ps. 코로나 때문에 아주 버라이어티했던 2020년도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 저런 뜻하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니 기분은 좋다. 좋은 성적 받았으니 누가 표창장 안 주나...ㅋ

 

 

 

일상을 확 바꿀 무언가가 일어났으면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무언가가 내 현실에서 확 일어났으면 했다. 큰 데미지를 입더라도 감수할 테니까 그런 일이 발생했으면 했다.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처럼 말이다.

기적, 영적체험, 마법 등등... 어떤 식으로 표현해도 상관없다.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손가락질이 뻔했지만 그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것들에 더 관심이 커져갔던 게 사실이었다. 혹세무민한 미신을 동경한다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었다.

오죽했으면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나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귀신의 멱살을 잡고 다음주 로또 번호를 딸 생각이었지. 그런데 멱살 잡은 귀신이 나보다 더 멍청하면 어쩌지?^^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고에 마음을 두었던 건 현실의 삶이 녹녹치 않아서였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현실 생활이 술술 잘 풀리고, 통장 잔고가 넉넉한 사람들이 뭐하러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것들을 동경하겠는가? 현재의 삶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데 뭐하러 혹세무민한 미신을 동경하겠는가? 로또 번호도 모르는 멍청한 귀신의 멱살을 잡고 흔드느니 자신의 자산 관리사와 글로벌 증시에 대해서 환담을 나누는 게 더 남는 장사지.

불혹이 훨씬 넘었음에도 철딱서니 없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스스로도 웃기기는 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현재의 삶은 점점 더 빈곤해졌고,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발생했으면 하는 생각은 늘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능력치를 한 번에 확 뛰어넘을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 잠재적 능력치를 확 발현시킬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이미 마법을 체험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체험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걸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이래서 사람이나 귀신이나 무식하면 안 된다니깐!

 

 

 

 

 

내가 체험한 마법은 숲길 걷기다. 숲길 걷기는 매우 손쉬운 활동이지만 내게는 큰 마법과도 같은 행위였던 것이다. 물론 한 번에 확 바뀌는 건 아니었고 역사트레킹처럼 느림보처럼 스며들었다. 역사트레킹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숲길의 매력에 빠졌었는데 예전에는 그 진가를 잘 몰랐던 것이다.

역사트레킹 코스를 세팅하면서 항상 숲길 비율에 신경을 썼었다. 아무래도 트레킹 참가자분들의 연령대가 높으니 숲길 걷기에 대한 갈망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리고 떠들썩한 것보다는 한적한 것이 좋으니 숲길로 세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인파에 밀리고 자동차 매연을 마셔가면서 걸을 거면 뭐하러 트레킹을 하시나.

 

그렇게 숲길을 우선해서 걸으니 참가자들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리딩을 하는 나도 좋았다. 이상하게 숲길을 걷고 오면 무언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업이 됐다. 숲길을 걷고 난 후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은 항상 방긋하게 웃고 있었다.

분명 내 삶은 녹녹치 않았다. 하지만 숲길에 다녀오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었던 것이다. 억지웃음이 아닌 생기가 있는 웃음이었다. 숲의 기운을 듬뿍 받은 그런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숲은 온갖 생명이 꿈틀대는 작은 우주이기에 그곳을 탐방하고 오면 생명의 기운이 내 몸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숲이 주는 이런 마법을 늦게나마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까지 괜히 엉뚱한 곳에서 멱살잡이나 하고 있었던 셈이다. 멱살 흔든다고 로또 번호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야.

 

숲에서 마법을 몸소 체험했으니 이제는 그 값을 조금이나마 하려고 한다. 복채를 낼 돈은 없으니 몸으로 해결할 것이다. 숲에 들어갈 때는 좀 더 신중하게 몸가짐을 할 생각이다. 숲을 더 아끼고 사랑할 생각이다.

숲의 정령들, 아니 한국이니까 한국식으로 하자. 산신령님의 진노를 사지 않게 숲에서는 경거망동 하지 않고 숲과 물아일체가 될 생각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산신령이라니! 혹세무민한 미신 같은 이야기를 설파한다고 욕을 해도 상관없다. 산신령이든 정령이든 숲을 지켜주는 존재는 내게는 너무나 소중할 뿐이니까.

 

 

 

 

 

 

 

 

 

 

 

 

 

11월 5일 목요일. 양평 역사트레킹 약식후기

 

고대하던 양평 트레킹을 행하는 날! 집을 나설 때는 꽤나 쌀쌀했는데 딱 트레킹을 행할 때가 되니 기온이 올랐다. 가을 트레킹을 하기에 트레킹하기 딱인 날씨였다. 처음 뵙는 분들도 오시고 해서 총 11명이 함께 걸었다. 이날 양평 역사트레킹도 벙개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벙개 치고는 많은 분들이 오셨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양평역 -> 양강섬 -> 양근성지 -> 김종환 노래비 -> 물소리길 -> 갈산공원 -> 수변길

 

양평 역사트레킹은 이런 형식으로 진행됐다. 양평 트레킹은 완경사임에도 볼거리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강을 끼고 걷는 길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코스는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있어 지루할만 하면 새로운 아이템이 나타나곤 했다.

 

섬에 입도(?)를 하기도 하고, 가톨릭 성지를 방문하고, 노래비에서 노래도 듣고, 출렁다리도 건너고... 이러니 지루한 면이 확실히 덜한 것이다.

 

기온이 봄날같이 올라 신나게 걸을 수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먹는 점심은 또 어떤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렇게 트레킹팀은 재미나게 가을 소풍을 행하고 왔다. 모든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함박 웃음이 피었다.

 

덕분에 나도 코에 제대로 바람 좀 넣고 왔다. 양평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유명한 용문산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눈도 호강하고, 코도 호강했다.

 

한편 호사마다라고 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양평 트레킹을 위해 약 반 년 정도를 준비를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준비한 걸 다 쏟아내지 못했다. 자료도 진짜 많이 준비했는데 그걸 다 못 풀어냈다. 뭐 어쩔 수 없지. 다음에 풀어내야지.

 

코로나 때문에 무척이나 어수선했던 2020년도도 이제 11월이다. 곧 있으면 송년회 시즌이 다가온다. 그넘의 코로나 땜시 트레킹 다운 트레킹을 못해 본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뭐 벙개트레킹으로 일정 부분 벌충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2021년에는 다시 정상적으로 트레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보내기에는 이 순간들이 너무 아쉽다. 정형외과 신세를 질만큼 지난 몇년간 발에 땀나도록 답사를 다녔고, 이제 슬슬 그 결실을 맺으려고 하니까 '펑'하고 코로나가 터졌던 것이다.

 

돈을 못 버는 건 그렇다치고 제대로 악셀 한 번 밟아보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1년을 낭비하니 정말 아쉬울 수밖에!

 

그럼에도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트레킹에 대한 애착이 더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울과 인근 지역에 걷기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이 고맙다. 내 두 다리로 그 곳들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맙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트레킹팀이 고맙다. 그렇게 트레킹을 하면서 '고맙다'라는 말들을 새겨볼 수 있어 고맙다.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난 야외 활동이 더 좋다. 아웃도어 활동을 통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발산하니까. 그렇게 좋은 기가 감도니 트레킹을 더 많이 사랑할 수밖에...!

 

그나저나 코로나에 때문에 방구석에만 있으면 정말 우울증 걸릴 거 같더라. 언택트 시대가 각 개인들의 정신 지수를 급격하게 떨어뜨린 것이다. 그게 정말 무서운 거다. 그럴수록 트레킹이 더 고맙다.

 

우리 함께 역사트레킹 하러 떠나요! 이 와중에도 광고 때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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