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산사 홍련암: 의상대에서 바라본 홍련암.

 

 

 

 

 

 

 

 

2021년 5월 20일 목요일 / 여행 2일차

 

어제는 밤 11시를 넘어 속초에 도착했으니 실질적인 여행의 시작은 이날부터였다. 이날 탐방한 곳은 양양에 있는 낙산사였다. 낙산사는 속초해수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다.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속초에서 양양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빗방울이 좀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쯤이야.

 

일주문을 통과한 뒤 숲길이 나왔다. 소나무 숲길이었는데 습한 날씨 때문이었는지 솔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거대한 규모의 낙산사와 마주하게 된다. 잘 정돈된 길, 수많은 참배객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낙산사의 화려한 면모만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하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국내 유명 사찰중에 낙산사만큼 큰 부침이 많은 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화재와 파괴, 약탈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곤경이 있었음에도 폐사가 안 된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비교적 근래인 2005년까지 고초를 겪었을까나!

 

2005년도에 발생한 산불 때문에 낙산사가 전소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봤던 것이다. 강풍에 날라온 불씨가 화마로 변해 귀중한 가람들을 싹 다 태워버린 것이다. 당시 뉴스 화면으로 그 장면을 봤었는데 필자도 큰 충격을 받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온 국민이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었다.

 

 

 

 

 

 

* 해수관음입상

 

 

 

 

 

 

 

* 낙산사 가는길

 

 

 

 

 

 

 

 

671년(신라문무왕 11),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낙산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유명한 곳이다. 낙산사일주문에는 '오봉산낙산사'라고 적혀있는데 이 오봉산이 낙산이라고도 불린다. 낙산은 샨크리스타어인 보타락가(補陀落伽)의 준말인데 관음보살이 정주하는 산이라고 한다. 낙산 이야기가 나왔으니 스리슬쩍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이 생각난다. 낙산사가 낙산(洛山)이고 서울의 좌청룡 낙산(駱山)이다. 한자가 다르다.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였고, 관음보살의 명에 따라 관음상을 빚게되는데 그것이 낙산사의 기원이 된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한 과정을 보면 좀 의아할 정도다. 기도를 하는 중에 용궁의 무리와 하늘의 무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했고, 동해의 용이 솟아올라 여의주를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낙산사가 3대 관음성지라면 이런 스토리텔링 정도는 품고있어도 상관없을 거 같다.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는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 경남 남해군 보리암, 그리고 낙산사이다. 그러고보니 서해, 남해, 동해에 3대 관음성지가 있다. 이를 두고 더 정확히는 해수관음 성지라고 하는데 관음보살이 사는 곳이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하여 우리나라의 관음성지도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사찰 탐방을 해보자. 낙산사의 중심인 원통보전과 그 앞에 있는 7층석탑을 살펴보자.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통보전은 근래에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2005년 산불로 인해 본당인 원통보전은 전소가 됐다. 하지만 빠르게 복구하여 2007년에 다시 복원을 하게 된다.

 

대화재가 휩쓸고갔지만 불행중 다행인 점도 있었다.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던 보물 제1326호 건칠관음보살좌상이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인근에 있는 설악산 영혈사에서 모셔온 관음상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고려 후기 양식을 잘 지니고 있다하여 2003년에 보물 1326호로 지정된다. 여기서 건칠은 옻나무 칠을 말한다.

 

원통보전 앞에는 7층 석탑이 우뚝 서 있다. 7층이라서 그런지 높이가 무려 6미터를 넘는다. 6미터 20센티다. 원통보전이 전소됐을 때 석탑도 고열로 인해 큰 충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단단한 돌이기 때문에 그 원형이 훼손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폐사지에 우뚝 선 석탑들처럼 7층 석탑은 끝까지 낙산사를 지켰던 것이다. 7층 석탑은 애초 3층석탑으로 만들어졌다가 낙산사가 대대적으로 중창됐던 1467년(세조13)에 지금처럼 7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3층을 7층으로 높였다는 것인데 참 특이한 경우다.

 

1468년 경에 낙산사는 대대적으로 중창된다. 그 1467년에 세조가 낙산사를 방문했는데 그에 대한 결과로 중수가 이루어진 것이다. 7층 석탑을 비롯하여 낙산사에는 그 때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별꽃무늬 담장과 홍예문이 바로 그것들이다. 별꽃무늬 담장은 처음에는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기와와 진흙을 쌓아 올렸는데 담장 자체가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일 정도로 인상적이다.

 

담장이라고 하면 안과 밖을 나누는 분리의 의미인데 별꽃무늬 담장은 그 모습이 정겨워서 그런지 안과 밖을 서로 조화시켰다고나 할까? 물론 근래에 복원을 해서 너무 반듯한 모습이지만 도시의 공구리만 보다 정겨운 토담을 보니 정말 반갑더라. 별꽃무늬 담장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곽의 문루가 연상되는 홍예문은 세조가 낙산사에 행차했을 때 절 입구에 만든 문이다. 홍예문은 26개의 큰 돌로 이루워졌는데 당시 강원도가 26개의 고을로 이루어졌고, 그에 맞게 각 고을에서 석재를 가져와 돌로 무지개문을 만들었다. 문루는 1963년에 만들어졌는데 대화재 당시에 타버렸고, 최근에 다시 복원을 했다. 홍예문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도 세조와 관련된 문화재로 낙산사 동종이 있다. 1469년 예종 1년에 제작된 동종은 조선 초기 형식을 잘 담고 있어 보물 479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대화재 당시에 용해가 되어 문화재에서 지정해제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참고로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인데 재위 기간이 불과 1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해수관음입상을 보러가자. 사실 많은 이들이 이 해수관음상을 뵈러 낙산사를 방문한다. 비교적 근래인 1977년에 세워진 관음상은 그 무게가 무려 270톤에 높이가 16미터에 달한다. 전라북도 익산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석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규모가 있다보니 만드는데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확트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우뚝하게 서 있는 관음상 앞에 서니 저절로 합장을 하게 됐다. 내륙쪽으로는 명산인 설악산이 보이고 관음상 주위로는 파도가 넘실대고 있으니 이 아름다운 풍광 자체만으로도 관음보살의 자비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도 자리를 깔고 삼배를 올렸다. 간절하게 기원을 하면서... 무슨 기원을 올렸을까?^^

 

이후 조선 후기에 세워진 해수관음공중사리탑(보물 제 1723호)과 홍련암, 의상대 탐방을 끝으로 낙산사 탐방을 종료했다. 홍련암과 의상대는 명승 제27호로 지정될 정도로 너무 유명하기에 놓치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은 메인 탐방로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사리탑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보물 찾기하듯 사리탑을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이렇게하여 낙산사 탐방은 종료가 됐다. 그냥 간단하게 스케치 형식으로 여행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또 분량이 넘쳤다. 하긴 낙산사를 그냥 단순하게 훑고 지나간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볼려면 제대로 보고 작성할려면 제대로 작성해야지!

 

 

 

 

 

 

* 원통보전과 7층석탑

 

 

 

 

 

 

 

 

* 원통보전

 

 

 

 

 

 

 

*7층석탑과 별꽃무늬 담장

 

 

 

 

 

* 해수관음상: 필자의 배낭이 인증샷을 대심해 줌.

 

 

 

 

 

 

 

* 낙산사: 2005년 화재 피해를 곱씹어 보는 전시장.

 

 

 

 

 

 

 

* 낙산사 홍예문

 

 

 

 

 

 

 

 

* 해수관음공증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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