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아버지의 18년간의 기록

일기를 쓴 박일호는 '한국시사만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박재동 화백의 아버지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됐을 때, 필자는 '일기장'이라는 부분에 눈길을 두었다. 그래서 박재동 화백이 자신의 일기장을 세상에 공개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어쩌다 박재동 선생 부친 되시는 어른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은 박일호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만화가게, 분식점 그리고 문방구 주인이었고, 또한 30년간 병마에 시달린 무명인의 일상적인 기록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백할 것이 하나있다. 사실 필자는 이 책을 박일호 선생이 아닌 박재동 화백의 시선으로 읽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한 무명인의 일기를 엮은 책을, 흔쾌히 돈을 주고 구매하는 책벌레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독서 실력이 하찮은 필자 같은 독서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필자는 박일호 옆에 적힌 박재동이란 이름 석 자가 없었다면 이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기를 쓴 박일호 선생은 1929년 경남 울산 범서읍(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면)에서 태어나 언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해방 직후 교편을 잡았다. 당시에는 교사가 부족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교단에 섰다고 한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는데 군 당국이 관련 서류를 분실하여 재징집이 되어 군대를 두 번이나 가게 됐다고 한다.

제대 후에는 양사초등학교로 복직을 하게 됐고, 23세에 박재동의 모친인 신봉선 여사와 혼인을 하게 된다. 교단에 다시 선 박일호는 열정적으로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과로까지 해가며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다.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며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맡은바 소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수업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과로가 쌓이다보니 폐결핵이 발병했고, 그 폐결핵 때문에 교단까지 떠나야 했다. 그렇게 병치레를 하다 간경화까지 얻게 된다. 그렇다. 박일호의 젊은 시절은 설상가상처럼 불운의 연속이었다.

 

 

 

 

 

* 두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아버지의 일기장>은 닮은 구석이 많은 책들이다. 둘 다 극한의 상태에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했던 책들이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03년도판이다.   

 

 

 

 

 

 

질병과 가난을 극복하게 해 준 가족사랑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다보면 건강, 질병, 병간호에 대한 언급이 꾸준히 나타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돈이 많이 드는 법! 더군다나 박일호는 교편을 떠나야 하지 않았던가. 산 입에 풀칠을 할 수 없었기에 박일호와 신봉선은 팔을 걷어 붙여야 했다.

부산으로 이주한 그들은 연탄배달, 풀빵장사, 팥빙수장사에 손을 댔다. 그러다 집주인이 하던 만화방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을 탄생시킨, '천국의 도서관'인 그 만화가게를 넘겨받은 것이다. 이렇듯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1970~1980년대 한 가난한 도시 서민의 삶의 투쟁(?)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 책의 한 축이 박일호의 투병이었다면, 또 한 축은 생활고였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필자가 나열한 두 축을 기본으로 삼으면 이 책은 그저 '글루미 선데이'같은 우울한 기록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겹고, 익살스러운 박재동의 삽화와 코멘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그랬기도 했지만, 그보다 투병과 생활고를 뛰어넘는 세 번째 축이 굳건히 서있었기에 필자는 즐거운 기분으로 책장을 사뿐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럼 그 세 번째 축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애(愛)였다.

오늘 재동이가 군복무 중 화실에 나가 받은 보수(월 4만원)를 내 약대(藥代)로 내놓았다. 난생처음 자식에게 받은 돈에 얼떨떨하다. 불효자인 내가 자식의 효심에 새삼 감동한다. 부디부디 재동에게 서광이 비치길 빌고 또 빈다. '자식에게 받은 돈' 1976년 6월 14일자, 78페이지.


 

 

 

 

* 박재동 화백: 오마이뉴스에서 강연 중인 박재동 화백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청년 박재동이 등장한다. 1976년 당시 방위 복무를 했던 박재동은 낮에는 자택 인근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밤에는 화실에 나가 학생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약값에 보태라고 내놓으니 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특했겠는가.

이외에도 책 곳곳에서는 가족애가 넘쳐났다. 박일호 선생은 어버이날 딸(명이)이 달아준 카네이션에 환한 미소를 지었고, 둘째 아들(수동)이 달라는 동문회비를 주지 못해서 가슴을 쳐야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장서방(명이의 남편)의 칭찬에 침이 마를 정도였고, 큰 며느리(박재동의 부인)와 작은 며느리(수동의 부인)의 정성에 감동했다. 그렇다. 병치레의 고통과 저조한 매상 같은 암울한 기록들도 책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행복한 기록들이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만발하고 있었다.

 

 

 

 

 

 

 

 

 

 

 

 

 

 

 

 

 

 

 

 

 

 

 

 

 

 

 

 

 

 

 

 

 

 

 

 

 

 

 

 

*** 최근 5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만들어진 도보여행길에 대한 서울신문 보도입니다. 급조되고, 행정편의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길은 도보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기 어렵지요. 그러다보면 탐방객 수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고... 이제 트레킹 코스의 개설도 정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도태되고 사라질 운명의 길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사라질 것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트레커들의 외면을 받는 길이 무슨 도보여행길이겠습니까?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거기에 투입된 국민의 혈세는 누가 보전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 아까운 세금이 그렇게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는데, 그 책임을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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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시장·구청장 바뀌면 길 새로 내고 청정 숲 파헤쳐 말썽 빚기도…쓸데없는 데크·계단 설치도 문제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2007년 걷기 열풍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둘레길은 500개가 넘는다. 200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는데 체계적인 관리가 안 되다 보니 탐방객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특히 둘레길의 관리 주체도 틀리고 통합적인 정보관리 시스템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윤문기 길과 문화 사무처장은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산림청 등 여러 정부 부처와 각 지자체가 서로 경쟁하듯 둘레길을 만들다 보니 정보를 통합하는 홈페이지 등이 없고 관리도 엉망”이라면서 “이제는 새로운 둘레길 조성보다는 문화적 콘텐츠를 입히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둘레길 조성에만 신경 쓰고 기존 둘레길 관리에 소홀한 측면도 많다. 관리예산 부족으로 몇 년 전에 조성한 둘레길이 황폐화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방의 한 공무원은 “단체장이 바뀌면서 둘레길 예산이 대폭 줄거나 아예 사업을 중단한 곳도 많다”면서 “둘레길 관리 예산삭감→둘레길 황폐화→방문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금강송을 뽑아내고 굴착기로 진입로를 만드는 등 둘레길 공사로 청정 숲이 파괴되는 일도 있다. 손성일 아름다운 도보여행 대표는 “둘레길이 단체장의 치적 사업으로 변하면서 무리하게 공사를 벌이기도 한다”면서 “전남 누릿재, 갈재옛길은 쉼터 정자를 만들면서 옛길이 없어져 포장도로같이 변했다”고 말했다. 즉 둘레길에 필요 없는 시설이나 데크와 계단 등을 만들어 예산 낭비뿐 아니라 환경 훼손도 잦다는 것이다.

 

길을 연결하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157㎞에 달하는 서울 둘레길에 쉼터나 숙소도 없다. 서울시는 길 연결에만 바쁘다 보니 둘레길을 걸을 외국인이나 다른 지역 관광객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손 대표는 “서울 둘레길은 평균 6~7일 동안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면서 “그러면 중간마다 외국인과 내국인을 위한 숙소는 필수”라고 말했다. 인근 폐가 등을 이용해 유스호스텔 등을 둘레길 중간에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지판과 명칭 중복부터 통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윤 사무처장은 “고성의 한 둘레길 이름이 모두 9개나 된다”면서 “명칭과 지도 등 알림판 통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Q.역사트레킹? 이 말이 좀 생소합니다. 오지트레킹이나 숲길트레킹은 들어봤는데요...?

A. 그렇죠. 조금 생소하실 겁니다. 하지만 역사트레킹은 익숙한 것들의 결합입니다. '역사'와 '트레킹'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트레킹을 통해서 역사를 익히는 것이죠!

 

 

Q. 트레킹을 통해서 역사를 배운다고요? 그것 참 흥미롭군요!

A. 그렇죠.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안다'고 현장에서 직접 문화유산을 관찰하면 그것만큼 좋은 학습이 없으니까요.

 

 

Q. 그럼 역사트레킹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 되나요?

A. 일단 문화유적이 있는 곳에서 마스터가 해당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는 트레킹이 이어집니다.

 

 

Q. 기존의 문화탐방과 역사트레킹의 차이가 있나요?

A. 기존의 문화탐방은 이동을 할 때 주로 차량을 많이 이용합니다. 어떻게 보면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 지요. 하지만 역사트레킹은 그런 '편한' 방식에서 탈피하자고 합니다. 역사지식과 아웃도어를 함께 함양하자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입니다. 그래서 우리카페의 별칭은 <역사트레킹 지덕체>입니다. 

 

 

Q. 트레킹은 거리는 정도 되나요?

A. 일단 10km 정도가 가장 표준입니다. 즉 문화유산 탐방 이후에 10km 정도 트레킹이 이어지는 것이죠. 그래야 운동효과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꼭 10km를 못 박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줄어들 수 있고, 더 늘릴 수도 있지요.

 

 

Q. 트레킹의 강도는 어떻습니까? 등산 식으로 하나요?

A. 기본적인 체력만 있으면 충분히 완주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판단됩니다.

 

 

Q. 역사트레킹의 리더를 마스터라고 부르던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역사트레킹에서 마스터의 역할을 무척 중요합니다. 역사유물 앞에서는 관련 설명을 해야 하고, 트레킹코스에서는 리딩을 해야 합니다. 또한 준비운동과 응급처치도 마스터의 몫입니다.

 

 

Q. 마스터의 역할이 과중한 것 아닌가요?

A. 외형적으로 보면 그런데 실질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겁니다. 해당역사 유물에 대한 사전 공부와 트레킹을 리딩할 수 있는 체력만 있으면 누구나 다 마스터가 될 수 있답니다. 물론 아웃도어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필수적으로 있어야겠지요!

 

 

Q. 그럼 역사트레킹의 당면 과제는 무엇입니까?

A. 일단 트레킹 코스의 지정입니다. 역사유물이 있고, 풍광이 유려한 트레킹 코스를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 필자는 역사트레킹 마스터


필자는 삼남길 개척단 이외에도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역사트레킹 마스터가 바로 그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최근에 카페(http://cafe.daum.net/historytrekking)도 하나 개설했다.

역사트레킹? 숲길트레킹이나 오지트레킹이란 말은 들어보셨어도 역사트레킹이라는 용어는 생소하실 것이다. 하지만 역사트레킹은 익숙한 것들의 결합체이다. '역사'와 '트레킹'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형태라는 것이다. 즉, 유물답사를 한 후에 10Km 정도 되는 거리를 걷는 것이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문화재를 관람하면 편리하다. 느긋하게 맛집 탐방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역사트레킹은 그런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를 자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해당 문화재를 방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보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넉넉히 살찌우자는 것이 역사트레킹의 대원칙이다.

하지만 필자가 역사트레킹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기까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능력도 없는데 괜히 나섰다가 트레킹에 나선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고등학생의 뉴스 인터뷰를 보았고, 그 이후 필자는 역사트레킹의 마스터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야스쿠니 신사요? 야스쿠니 젠틀맨을 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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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현무암 이진 항구에는 저렇게 제주산 현무암이 즐비했다. 이 돌들은 제주도에서 군마를 실어올 때 배에 함께 실린 돌들이라고 한다. 항해에 익숙지 않은 말들이 요동을 치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배의 중량을 늘이려고 저런 돌들을 갑판 아래에 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 현무암들은 중심돌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해남에 와서 역할을 다한 현무암은 이진 항구의 갯벌에 버려졌다. 그래서 이진항 일대는 제주도가 아닌 육지 항구에서 가장 많은 현무암들이 발견된다.
ⓒ 곽동운

 

 

 

 


자신이 TV에 나온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떴는지 그 학생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하지만 필자의 마음은 무척 어두웠다. 아무리 역사 교육이 내팽겨 쳐졌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 중, 또 하나가 걸그룹 시크릿의 멤버인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이었다. '민주화'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알고 있고, 또한 '농락'거리로 내뱉었던 그녀의 언사에 경악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 말이 부정적인 말이라면, 민주화를 요구하며 피를 흘렸던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은 무엇이었나? 또한 얼마전에 방한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91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민주화'라는 부정적인 일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노벨상이 수여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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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성터 이진성터는 현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한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된 옛 이진성은 해안방어 기지로 이용되었다. 이 담장은 성의 일부였다고 판단되는 석축인데 지금은 농가의 돌담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왼쪽처럼 석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역사트레킹은 이런 현장들을 탐방한다.
ⓒ 곽동운

 

 

 

 

 


#역사트레킹의 예시: 삼남길 '해들길'에서



문화재 앞에서는 역사해설가가 되고, 트레일에서는 대장 역할을 해야 하는게 마스터의 주된 임무다. 또한 준비운동이나 응급처치도 마스터의 몫이다. 이렇듯 역사트레킹 마스터의 어깨는 무척 무겁다. 하지만 제일 곤혹스러운 것은 트레킹 코스의 개발이다. 필드가 있어야 역사트레킹이 가능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삼남길은 필자에게 좋은 필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왜? 현재 삼남길은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창지대였던 삼남(전라, 경상, 충청)지역이 조선왕조 물산의 중심축 역할을 했듯, 한양에서 해남 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그렇게 때문에 옛 삼남대로 인근에는 역사적인 유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렇다. 현재의 삼남길은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고 있기에 느긋하게 트레킹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역사공부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삼남길은 역사트레킹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남길에서 역사트레킹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짤막한 예를 들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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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들길 해들길은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의 애칭이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600Km에 걸쳐 조성되는 국토종단형 트레킹 코스로 도보여행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걷기여행길이다.
ⓒ 곽동운

 

 

 

 

 


전남 해남군 북평면에는 이진성터가 있다. 현재 이진성터는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에 놓여 있다. 옛 이진성은 이진항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된 방어기지였는데 항구는 제주도를 향하는 배가 출항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진 항구 위쪽으로는 남창이라 하여 제주도에서 수취한 공물들을 축적하는 창고가 있었다. 현재의 지명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이다.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점은 옛 이진성이었다. 땅끝 전망대가 있는 땅끝마을이 삼남대로의 종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땅끝 개념은 근래에 들어선 개념이다. 해남 사람들은 땅끝을 갈두리로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굳이 땅끝 개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진항이 더 좋은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진항 바로 옆으로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가 있고, 그 뒤쪽으로는 완도 본섬이 있기 때문이다. 완도로 내왕하기도 편했고 제주도로 나아가기에도 수월했던 곳이 바로 옛 이진항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착점도 이진항이었던 것이다. 옛 이진성은 그런 전략적 요충지인 이진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됐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에 수군만호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러다 제주도로 출발하는 배가 수심이 더 깊은 목포항 쪽으로 바뀌고, 완도에 다리가 놓이게 되니 이진항의 위상은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역사공부도 되고, 느긋하게 트레킹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거리가 10Km 남짓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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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구가방을 두른 필자 지난 3월 16일자 기사에 쓰인 사진이다. 사진 왼쪽이 손성일 대장이고, 오른쪽이 필자다. 허리에 공구가방을 두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계속된 작업에 지쳐서 그랬는지 뒷모습이 좀 '껑뚱'하다. 방송은 이런 길을 만드는 '하드웨어 작업'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어떤 방식으로 길이 개척되고, 어떻게 작업이 진행되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럴만도 한게 우리나라에 도보여행 길이 600개가 넘지만 '하드웨어 작업' 자체가 소개된 길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개척하는 주체도 관리하는 주체도 불분명하여 개통 이후 방치된 트레킹코스가 많은게 우리의 현실이다.
ⓒ 곽동운

 

 

 

 

 

 


# 오마이뉴스에 기사 썼다, 방송물 먹었다!

 

이런 삼남길에 대한 역사성과 개인적인 작업 참여 등을 종합하여, 필자는 지난 3월 16일에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이라는 기사를 작성했었다. 당시 기사는 개척이 아닌 보수작업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냈었다. 그 기사에서 필자는 일부러 사람 얼굴이 나오지 않은, 등 돌린 사진만 게재를 했었다. 제목처럼 무척 힘든 작업이 연속됐기에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었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니 얼굴이 정면으로 응시된 사진도 쓸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다시 그 기사를 읽어봤을 때는 좀 낯선 감이 있었다. 필자의 예전 기사들이 사물에 근접하게 포커스를 맞췄다면, 그 기사는 좀 멀찍이 떨어져서 초점을 맞춘 셈이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사안을 바라보니 작성 범위도 넓었던 것 같았다. 분량이 무려 원고지 34매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노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은 메인탑, 즉 오름기사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필자가 작성한 그 기사를 보고 <MBC 시사매거진 2580> 측에서 손성일 대장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내 기사가 디딤돌이 되어 또 하나의 콘텐츠가 생성됐고, 덕분에 '바람잡이'였지만 필자도 나름대로 TV에 등장했던 것이다.

삼남길 관련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 메인톱에도 게재가 됐고, 또한 거기에 더해 '방송물'도 먹었더니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자리 잡는다.

'이 기사도 메인에 오르면, 다른 방송국에서 섭외 들어오는 거 아니야? 푸하핫!'

 

 

 


# 도보여행길 개척이 토목공사?



글을 마치기 전에 걷기 열풍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00여 개에 달하는 도보여행길이 있다. 제주 올레의 열풍을 타고 전국 각지에 트레킹 코스가 앞 다투어 개설된 것이다. 최근에 한 풀 꺾였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개설중인 길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길들 중에는 명품 코스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도보여행에 적합하지 않은 길들도 부지기수다.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거나 아스팔트 비율이 높은 곳들이 바로 그런 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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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재 삼나무 숲길 아스팔트를 계속 걷는다면 도보여행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여름에 아스팔트의 열기를 느끼며 트레킹을 한다면 자칫 일사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트레킹은 숲길을 걷는게 제격이다. 사진은 삼남길 전남구간 6코스 점재다. 저 길을 걸으면 그윽한 삼나무 향을 느낄 수 있다.
ⓒ 곽동운

 

 

 

 


한편 '친환경 사업'이라고 불리는 트레킹 코스 개설에 너무 많은 예산이 소요된 사례도 있다. 해파랑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연결된 해안걷기 길인데 그 거리만도 770Km에 이를 예정이라고 한다. 해파랑길은 2014년, 완전 개통을 목표로 개척되고 있다.

아웃도어 여행가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해파랑길 개척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냈다. 삼남길과 같이 국토종단형 도보여행길이 개설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무려 770Km에 이르는 대장정이 아닌가? 하지만 필자는 해파랑길의 예산 투입 금액을 보고 경악했다.

'무슨 4대강 사업하나? 도보여행 길 개척에, 왜 170억원이란 엄청난 거금이 집행돼야 하지?'

삼남길 전라도 구간(228Km)과 경기도 구간(91Km) 개통에 총 3억 남짓한 돈이 든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삼남길 600Km 개척에 채 8억도 안 드는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도보여행 길 개척이 삼남길처럼, 개척단의 희생을 발판 삼아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엄청난 혈세가 트레킹 코스에 투입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해파랑길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해안누리길과 거의 일치하여 예산의 중복투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파랑길은 '낭만가도'라고 불리는 7번 국도를 기반 삼고 있기에 특별하게 수백억의 예산이 집행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도보여행길 개척이 또다른 형식의 토목공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 지론이다. 돈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 도보여행을 바라보는 필자의 기본 시각인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필자가 삼남길 개척단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돈은 아주 적게 들면서 여행의 효과도 있고, 역사트레킹도 할 수 있으니까.
 

 

 

 

 

 

 

 

 

 

 

 

 

 

 

 

 

 

 

 

 

 

 

 

 

 

▲ 강진 다원 월출산을 뒷배경 삼은 강진 다원. 5월에 촬영한 사진이라 녹차밭도 푸르고 월출산도 푸르다. 강진 다원은 삼남길 전남구간 8코스(산내들길)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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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 다원 같은 강진 다원 사진인데도 계절에 따른 색감이 다르다. 녹차밭도 월출산도 녹음이 들지 않은 모습이다. 2월에 찍은 사진이라서 그런지 월출산에는 잔설이 남아 있기까지 했다. 이렇게 같은 장소지만 자연이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삼남길이다.
ⓒ 곽동운

 

 

 

 

 

 


# 필자도 한 때 '전문 대타'였다

필자도 한 때 '방송물'을 먹은 적이 있었다.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공중파 고정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다고 매주 '꽃단장'을 하며 '오빠 피부'를 만들어야 했다. 명색이 공중파 출연인데 신경 좀 써야 하지 않겠나?

100분 토론이었다. 필자가 매주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100분 토론이었던 것이다. 물론 필자가 패널로 참여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방청객으로 자리를 지켰다.

처음에는 아는 지인 분께서 '언론 개혁'과 관련된 토론에 패널로 참가하셔서 얼떨결에 그 뒷자리를 지켰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매주 MBC를 방문해야 했는데 이유인 즉, 방청객들 중에서도 종종 '펑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공간을 필자가 '대타'로 채워 넣었던 것이다. 100분 토론이 워낙 늦은 심야 시간에 종료가 되니 패널 섭외만큼 방청객 섭외도 어렵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쥐꼬리만한 방청료를 가지고 심야의 택시 할증을 방어할 수 있는 일반인들이 거의 없었기에 필자 같은 사람이 '전문 대타' 역할을 해야 했던 것이다. MBC가 있는 여의도에서 집이 있는 신도림까지는 걸어서 갈 만했다. 또 쥐꼬리만한 방청료지만 그렇게 모아두니 쓸 만 했다. 그렇다. 그렇게 심야 프로그램을 채워줄 필자만한 '대타'가 없었던 셈이다.

당시는 손석희씨가 진행을 했던 초창기였으니, 한 10년도 더 넘은 일인 듯싶다. 가끔은 그 때가 그리워진다. 방송 나온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다녔으니까...

그러다 얼마 전에 진짜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MBC 시사매거진 2580>에 필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19일 방영분, 세 번째 꼭지인 <삼남길을 아십니까?>편에 당당히 얼굴을 내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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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바가지를 든 필자 우물 물을 한 바가지 들이키는 설정 샷! 좀 껑뚱하게 나온 듯싶다!
ⓒ MBC화면캡처

 

 

 


물론 필자가 해당 꼭지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삼남길을 필자가 주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삼남길 개척의 주도자인 손성일 대장 뒤편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바람잡이'를 잘해야 방송이 산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명품 조연'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잠깐! 여기까지 기사를 읽으신 독자들 중에서는 필자에게 이런 의문을 표시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싶다.

'겨우 바람잡이 역할 한 거 가지고 이렇게 왈가왈부 하나? 그리고 삼남길은 또 뭐야?'

 

 



# 서울에서 해남까지 삼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삼남길? 해당 방송을 시청하지 못하신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삼남길 개척단>이라는 직함을 가진 필자가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딱 반이 지났다. 지난 5월 25일 개통한 경기도 구간으로 인해 삼남길은 이제 딱 절반 구간이 정식으로 얼굴을 내밀게 됐다. 2012년 4월 전라도 구간 개통(228Km)과 경기도 구간(91Km) 개통으로 삼남길 전체 구간 중 319Km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충남구간과 전북 구간이 연결되면 서울에서 해남까지 장장 600Km에 이르는 도보여행길이 개설된다. 

그렇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한국에는 삼남길이 있다. 서울 숭례문에서부터 해남 땅끝 마을까지 트레일(trail:오솔길) 코스가 개설되고 있다. 그 머나먼 도보여행길이, 민간단체인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에 의해서 개척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삼남길은 전남과 경기도 구간이 개통됐고, 2014년 후반기에 완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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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성일 대장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
ⓒ MBC화면캡처

 

 

 


이 작업의 선봉에는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 서 있다. 2008년부터 삼남길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길에 미친 사나이'라고 칭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는 분명 '미친 사나이'였다. 도보여행에 넋이 나가지 않고서야 5년이 넘는 기간을 온전히 트레일 코스 개척에 다 쏟아 부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매일같이 텐트 생활을 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개척 초기 인고(忍苦)의 시절도 그런 열정으로 버텼던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괄시나 당했던 그 서러운 시절을 미치지 않고 어떻게 극복했겠는가?

그런 '미친 사나이' 대열에 필자도 뒤늦게 합류했다. 필자가 처음 삼남길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0년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개척에 참여한 것은 올 초부터다. 자동차도로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보여행 길도 개설만큼 유지․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척과 보수 둘 다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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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성터 옛 이진성은 구릉지대를 이용하여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해남에서 제주도로 들어가는 항구였던 이진에 성을 축조했던 것이 이진성이었던 것이다. 뒤쪽으로 보이는 섬은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다.

ⓒ 곽동운

 

 

 

 

 

 

 

 

 

 

 

 

 

 

 

 

 

 

 

 

 

 

 

 

 

 

경기도 군포시는 수리산이 있어 듬직합니다. 그런 터라 트레킹 코스도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는 군포 수릿길 지도입니다. 지도에서도 보이듯, 코스들이 전철역과 잘 연결이 되어 있어서  

접근성이 참 편리합니다. 우리가 매번 남도나 백두대간을 갈 수 없잖아요.

그럴 때는 가까운 곳으로 발걸음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드디어 경기도 삼남길 개통식이 개최 되는군요. 그래서 관련 기사를 한 번 가져 와 봤습니다.

경기도 삼남길은 저도 개척 작업에 참여를 해서 그런지 애착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삼남길은 전남 구간(228km)과 경기구간(90km)가 개설되었습니다. 딱 반을 이루었고,

이제 딱 반이 남았습니다. 충남 구간과 전북 구간이 남은 절반입니다.

 

역사트레킹을 하는 곽작가 입장에서는 삼남길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큽니다.

삼남길을 걷다보면 풍부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좋은 점들 때문에 제가 삼남길을 계속 주시를 하고, 삼남길 개척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남구간과 경기구간이 잘 개척된 만큼 충남구간과 전북구간도 잘 개척이 되어, 삼남길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레일 코스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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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삼남길 전 구간 개통기념, 함께 걷기 대회 열려

[중앙일보] 입력 2013.05.24 15:51

25일 오전 9시 과천시청 후문 광장에서 삼남길 전체구간 개통식 개최
개통식 후 과천시청에서 남태령까지 약 4Km 함께 걷기 행사 예정
길을 걸으며 역사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는 수도권의 테마 도보코스로 자리 잡을 전망

 

 

 

 

 

 


 


삼남길 경기지역 전 구간 개통을 기념하는 개통식이 25일 열린다.

경기도는 과천?안양?의왕?화성?오산?평택시, 경기문화재단, (사)아름다운도보여행, 코오롱스포츠와 함께 오는 25일 오전 9시부터 과천시청 광장에서 경기도 삼남길 전체구간 개통식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삼남길은 한양에서 경기도를 거쳐 각각 충청수영과 해남 땅끝마을, 통영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이었던 삼남대로를 기본 원형으로 한 도보길이다.

지난해 10월 수원과 화성, 오산 구간 33.4.km를 우선 개통한 이후 과천∼안양∼의왕∼수원 24.8㎞ 구간과 오산∼평택 31.9㎞ 전 구간을 연결하는 노선확정을 최근 끝내고 표지부착 등 마무리작업을 벌였었다.

 
전 국민적인 걷기 열풍 속에 조성한 삼남길 경기도 구간은 온온사, 인덕원터, 임영대군 묘역, 사근행궁터, 지지대비, 용주사, 독산성, 진위향교, 대동법기념비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보행조건만을 고려했던 기존의 도보길과는 달리 역사문화 체험과 교육 효과도 곁들일 수 있는 도보길로 평가받고 있다.

25일 열릴 삼남길 개통식은 광개토사물놀이패와 한뫼국악예술단이 펼치는 길놀이, 축연무에 이어 삼남길 전체 구간 영상 소개, 이광수 명인의 비나리, 개통 축하 퍼포먼스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개통식에 이어 자원봉사자와 함께하는 ‘장애우와 함께걷기 프로그램’ 및 일반 참가자들의 함께 걷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행사장부터 온온사, 과천향교 입구 등을 거쳐 남태령 옛길 표석까지 약 4km의 삼남길 구간(한양관문길)을 함께 걸을 예정이다. 사전 신청한 함께걷기 참가자 및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코오롱스포츠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할 예정이며, 남태령까지 완주하면 인증 스탬프도 발급된다. 이 외에도 건강관리센터와 함께 체지방, 혈압, 혈당 등을 체크하는 코너나 도보여행 관련 용품을 전시하는 코너도 마련된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조선시대 교통과 물자이동의 간선로였던 옛 삼남대로가, 역사문화가 숨 쉬는 도보길 ‘삼남길’로 다시 태어났다”고 밝히고, “역사성을 갖춘 이 길을 걸으며 건강도 찾고 옛 사람들의 정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기도는 2017년까지 삼남길 외에도 의주대로, 영남대로 등 경기도 지역의 옛길을 고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도보길 개발을 연차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삼남길의 경우 경기도 외의 다른 광역지역에서도 조성되거나 조성이 검토되고 있어 국내 최초의 전국 단위 도보길로 거듭날 전망이다.

참가신청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or.kr)를 통해 할 수 있으며, 경기도 및 각 자치단체, 유관기관 홈페이지에서도 연결이 가능하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이 외에도 경기도 옛길의 역사와 문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답사하는 ‘경기도 옛길 아카데미’(연 4기 개설), 경기도 옛길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클린 옛길 자원봉사’(연 4회 개최), 각계 전문가를 초빙하여 진행하는 ‘멘토와 함께 걷는 옛길’(매월 1회 개최), 매월 주어진 테마에 맞춰 인증샷과 후기를 응모하면 우수작을 선정해 소정의 상품을 지급하는 ‘테마가 있는 옛길 365’(상시), 경기도 옛길 종주 프로그램(수시) 등을 진행 중이다. 경기도 옛길 프로그램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나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청소년은 경기문화재단이 운영 중인 ‘경기도 옛길’ 카페(cafe.naver.com/oldroad)나 (사)아름다운도보여행이 운영 중인 ‘삼남길’ 공식 블로그(blog.naver.com/samnamgil)을 통하면 된다.

 

 

 

 

 

 

 

 

 

 

 

 

 

 

 

 

 

 

 

 

 

 

 

 

 

 

 

* 곽작가: 우물 물을 한 바가지 들이키는 설정 샷! 좀 껑뚱하게 나왔네요!ㅋ

 

 

 

 

 

 

* 삼남길: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삼남길에 대해서 방송을 했답니다. 사진에 등장한 분은 강나림 기자인데 이 분도 삼남길을 직접 걸었답니다.

그러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더군요. 사진에 등장한 숲길은 전남 강진의 백운동 숲길입니다. 직접 걸어보면 화면보다도 더 큰 감흥이 있을 것입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삼남길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을 걸고 삼남길에 대해서 방송을 했습니다. 약 13분간 진행된 방송은 기승전결이 명확히 떨어지더군요. 삼남길에 대한 소개, 삼남길이 주목받는 점, 삼남길을 만드는 사람들, 삼남길의 과제 등등...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진행된 방송에서 삼남길은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더군요.

 

이렇게 진행된 방송에 저도 출현을 하였기에 포스팅을 한 번 해봅니다. 사실 생각보다 제가 화면에 많이 등장해서 좀 놀라기도 했답니다~ㅋ

한가지 흡족한 점은 제가 예전에 삼남길과 관련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를 한 적이 있었는데, 2580측에서 그 기사를 보고 손성일 대장에게 접촉을 했다고 하더군요. 뭐 저도 나름대로 삼남길 발전에 기여를 한 셈이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 __ ^

 

이 사진들은 동영상 화면을 캡처한 것이라 화질이 떨어졌네요. 그게 안타깝습니다.

 

    

 

 

 

 

 

 

 

 

 

 

 

* 삼남대로: 삼남길은 조선시대 옛 삼남대로를 표본으로 개척되고 있는 도보여행 코스입니다. 아쉽게도 현재 삼남대로는 그 원형을 잃어버리거나 훼손된 곳이 많답니다. 산업화와 도로교통의 발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요. 삼남길에게도 이런 시대적 흐름 뿐아니라 도보여행길이라는 본질에 걸맞은 변화의 옷이

필요하겠지요. 즉, 옛 삼남대로를 기계적으로 삼남길에 옮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도보여행을 위한 트레킹 코스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스팔트를 걸으며 매연을 먹는 도보여행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 곽작가: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 해들길에서 한 컷. 해들길은 해남군 북평면 옛 이진산성을 지나갑니다.

제가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건가요? 저것도 연출인 듯~ㅋ

 

 

 

 

 

 

*우물: 이 우물은 옛 이진성 안에 있었던 것인데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우물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드셨다고 하네요.

화면에 저를 포함한 손성일 대장 및 삼남길 개척단원들이 등장합니다.

 

 

 

 

 

 

* 함박골: 함박골은 현대식 한옥으로 만들어진 팬션입니다. 너무 예쁘게 치장하려고만 하는 현대식 팬션과는 격조가 다른 곳입니다. 이 곳에 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고, 저렇게 흰둥이들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함박골 한옥팬션은 삼남길 전남구간 4코스 첫 시작점인 차경마을에 위치해 있답니다.

 

 

 

 

 

 

* 텐트: 손성일 대장과 함께 텐트를 세팅 중.

 

 

 

 

 

* 손성일 대장: '저는 몰라도 삼남길은 분명히 남을 거다'는 멘트가 의미심장합니다!

 

 

 

 

 

 

 

* 삼남길

 

 

 

 

 

* 삼남길: 맨 뒤에서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곽작가. 배낭에 뭘 저렇게도 많이 짊어지고 계신가?ㅋ

 

 

 

 

* 이진성터: 이진성터는 현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한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된 옛 이진성은 해안방어 기지로 이용되었다.

이 담장은 성의 일부였다고 판단되는 석축인데 지금은 농가의 돌담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왼쪽처럼 석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 이진성터: 옛 이진성은 구릉지대를 이용하여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해남에서 제주도로 들어가는 항구였던 이진에 성을 축조했던 것이 이진성이었던 것이다.

 

 

 

 

 

 

 

 

역사트레킹의 마스터로서 본인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트레킹 코스의 개발이다.

필드가 있어야 역사트레킹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문화재를 검색한 후 서로 서로간의 지점을 연결하여 자동차로 이동을 하면 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트레킹은 그런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를  자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해당 문화재를 방문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도보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넉넉히 살찌우자는 것이

역사트레킹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지덕체가 골고루 함양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문화유산과 함께 좋은 트레킹 코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백년의 세월을 이겨낸 장엄한 문화유산과 함께 탄성을 자아내는 유려한 풍광의 도보여행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좋은 역사트레킹 길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1. 유려한 풍광

2. 안전성

3. 접근성

4. 명확한 IN_OUT(타 교통편과의 연계)

5. 이용성

 

이 외에도 몇가지 사항이 있으나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생략한다. 또한 역사유물 존재 유무도 생략한다. 역사유물이 없는

역사트레킹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제주의 현무암: 이진 항구에는 저렇게 제주산 현무암이 즐비했다. 이 돌들은 제주도에서 군마를 실어올 때 배에 함께 실린 돌들이라고 한다. 항해에 익숙지 않은 말들이 요동을 치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배의 중량을 늘이려고 저런 돌들을 갑판 아래에 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 현무암들은 중심돌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해남에 와서 역할을 다한 현무암은 이진 항구의 갯벌에 버려졌다.

그래서 이진항 일대는 제주도가 아닌 육지 항구에서 가장 많은 현무암들이 발견된다.

 

 

* 이진성 우물: 이 우물은 옛 이진성에 식수를 공급했던 우물이었다. 옛 이진성터에는 이 우물을 포함해서 2개의 우물이 있다.

 

 

 

 

 

 

역사트레킹의 코스가 10Km 정도이다. 필자는 그 10km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싶다. 해당 문화재는 물론 걷기에 안전하고 풍광이 유려한

길을 소개하고 싶다. 숲길도 있고, 바다도 보이고, 계곡도 보이는 그런 명품길으로 역사트레킹을 떠날 생각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기왕하는 트레킹, 안전하고 풍광이 수려한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나?

 

아스팔트 길을 걸을려면 트레킹을 할 필요도 없다. 바퀴가 열 개 달린 24톤 짜리 트레일러와 '맞서 싸우며' 걷기 여행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목숨 내놓고, 또는 매연을 들어 마시며 도보여행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도변에 널부러진 로드킬 당한 야생동물의 시체들을 보는 것도 고역이다. 내장이 터지고, 안구가 튀어나온...-_-

 

명품 역사트레킹 코스를 개발하는 것은 마스터인 필자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코스를 개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한가지 아이템이 떠올랐다. 바로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를 탐방한 후에

이거다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도보여행 길이다. 현재는 전남구간이 개통되어 있고, 다가오는 2013년 5월 25일에 

경기도 구간이 개통된다. 조선시대 8대 대로 중에 하나였던, 옛 삼남대로를 기본축으로 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삼남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많은 역사적 유물을 담은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 역사트레킹도 삼남길을 많이 걸을 것 같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해남 이진성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현재 이진성터는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에 놓여 있다.

옛 이진 나루는 제주도를 향하는 배가 출항하는 항구였다. 그래서 이진 항구 위쪽으로는 남창이라 하여 제주도에서 수치한

공물들을 축적하는 창고가 있었다. 현재의 지명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이다.

 

 

 

 

 

 

* 해들길: 해들길은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를 지칭하는 애칭이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600Km에 걸쳐 조성되는 국내 최장거리 트레킹 코스다.

 

 

 

 

 

 

 

옛 삼남대로의 종점은 옛 이진성이었다. 땅끝 전망대가 있는 땅끝마을이 삼남대로의 종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땅끝 개념은

근래에 들어선 개념이다. 조선시대에는 굳이 땅끝 개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진항이 더 좋은 지리적인 잇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항 바로 옆으로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가 있고, 그 뒤쪽으로는 완도 본섬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완도로 내왕하기도 편했고

제주도로 나아가기에도 수월했던 곳이 바로 옛 이진항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착점도 이진항이었던 것이다.

옛 이진성은 그런 전략적 요충지인 이진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됐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에 수군만호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역사트레킹은 이렇게 역사유물을 직접 답사하고, 이후에는 트레킹을 통해 즐거운 도보여행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인 해들길에는 시원한 바다 풍광과 함께 숲길이 펼쳐진다. 역사유물을 직접 탐방하고

즐겁게 해안길과 숲길을 걷는 것이다.

역사지식도 쌓고 트레킹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단순한 도보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 이진성터: 옛 이진성터는  1999년에 일부 구간이 복원됐을 뿐이다.  

 

 

 

 

 

 

 *이진성터

 

 

 

 

 

 

 

* 현무암: 이진항에 있는 제주산 돌들

 

 

 

 

 

 

 

 

 

 

 

 

 

 

 

 

 

 

 

 

 

 

 

 

 

 

 

 

 

 

 

 

 

 

 

 

* 나무들: 이 얼굴을 지난 20년 가까이 부착하고 다녔답니다. ㅋ 고딩때는 영감 소리를 들었는데 요즘은 간간이 동안 소리를 듣는답니다!ㅋ 

백운대 정상에서 한 컷!

 

 

 

 

 

 

 

* 멋지다: 정말 멋진 두 분입니다. 여유님과 멋진여행가님! 배경도 멋지고 자세도 멋지네요!

 

 

 

 

 

 

 

 

 

7주 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마스터클래스 11차 'again 서울 7대 명산'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예비 모임을 포함해서 8주 동안이나 이어진

일정들이 이제는 후기로 남게됐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등산의 난이도는 어려워졌고 소요시간은 늘어났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는 멤버들도 있었고, 무릎에 통증이 생긴 멤버들도 있었습니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부리에 찧이고, 내리막에 엉덩방아를 찧고... 저도 많이 넘어졌고 많이 상처가 생겼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서로 상처를 보다듬는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상처가 난 멤버에게 반창고를 붙여 주고, 파스를 뿌려주고, 배낭을 들어주고...

 

그렇게 서로 산우가 되어갔습니다. 고어코리아라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이벤트, 즉 행사로 만난 인연이지만 무언가 모를 남다른 점이

피어오르더군요. 단독산행에서는 모를 무언가를, 또한 그저그런 산악회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다양한 연령대, 차이나는 등산 실력이 융화력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이 서로 보완 관계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이제 고어코리아에서 주최하는 마클활동은 종료됐습니다. 하지만 끝이 서로 간의 작별은 아니겠지요.

제 2라운드가 있을 테니까요. 이제 주최가 마클11로 넘어 왔으니 판세는 예전하고는 많이 다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멤버십은 언제나 같겠죠.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그런 멋진 멤버십!

 

지난 7주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글로 제 마클 11차 후기도 종료입니다!

후기의 압박에서 벗어났당~ㅋㅋㅋ

   

  

 

 

 

 

 

 

 

 

* 삐수니님: 이달의 회원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열렬히 환영해 달라는 의미로 두 손을 번쩍 든 포즈를 취하시는 듯~

 

 

 

 

 

 

 

* 조아라님: 믹님과 파워블로킹님, 조아라님이 무언가를 응시하는 장면을 한 컷 찍었습니다. 무엇을 보시고 계신 걸까요?

 

 

 

 

 

*사페티이거님: 이렇게 찍으니 폼이 나는 듯~ 오른발 등산화까지 다 나왔으면 더 좋았을 걸!

 

 

 

 

 

 

* 별님: 코딩님이 별님에게 넥타이를 묶어 주는 것 같네요. 사실 목에 쿨맥스를 두른 걸 코딩님이 도와주셨답니다.

이 장면을 보고 계신 경천님과 영원님의 표정이 재밌습니다.

 

 

 

 

 

*영원님: 영원님 무엇을 하시나요? 사진을 확인하시는 듯~

 

 

 

 

* 룸바황제님과 김 부장님: 서로 비스무리한 커플티 인듯~ㅋ 김 부장님 감사했습니다!

 

 

 

 

*도깨비님: 황소처럼 힘차게 산을 오르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 최 마스터님: 1993년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신 여성 산악인.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산꾼들: 윤 대표님, 경천님 같은 베테랑 산꾼들과 이제 기지개를 켜는 류바님, 수진님, 코딩님. 이제 서로 어우러져 산에서 만날 일만 남았습니다.

 

 

 

 

 

* 성냥팔이소녀: 라라님이 성냥팔이 소녀 컨셉을 하셨답니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인증샷을 찍으셨네요.

성냥팔이 소녀와 쥔장님, 쿠기님, 윌로우님, 샤페티이거님 등이 인증샷에 동참하셨습니다.

 

 

 

 

 

* 마클11: 우리 멤버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에릭님, 나이스미님, 다솜님 등등... 뒤쪽을 보니 인드로맨님, 자유의지님, 동기님의 모습도 보입니다.

 

 

 

 

* 투어쿡님: 그러고보니 우리 멤버들이 투어쿡님의 릿지 하는 모습을 지켜본 듯합니다!

 

 

 

 

 

* 투어쿡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백운대에서 한 컷!

 

 

 

 

 

* 공중부양: 이렇게 마클11 멤버들이 백운대를 점령했답니다. 무엇이 좋은지 저렇게 다들 해맑게 웃고 있네요.

오른쪽 뒷면에 계신 선우아빠님도 복면 안에서 웃고 계실듯~

 

 

 

* 경천님: 윤대표님을 찍고 계신 경천님. 뒤로는 인수봉이 보입니다.

 

 

 

 

 

* 쿠니님: 캠핑의 대가이신 쿠니님. 캠핑 정보 좀 많이 알려주세요. 뒤로는 다솜님. 근데 다솜님 모자가 바뀐 듯~

 

 

 

 

* 선우아빠님: 나무와 꽃들을 뒤로하고, 열심히 오르고 계십니다.

 

 

 

 

 

 

* 우노님: 윤대표님의 릿지를 보시는 우노님. 우노님의 등산 실력도 만만치가 않지요! 뒤로는 손 마스터님도 보입니다.

 

 

 

 

* 파워블로킹님: 오늘도 제 후기의 대미는 파워블로킹님이 장식해 주셨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바위틈은 호랑이굴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예전에 그곳에 무장공비들이 나타나 은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굴 입구를 막았습니다. 분단된 현실이 북한산에도 스며있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후기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이그 이 새벽에 무슨 일인감! 내일 할 일이 태산인데...ㅋ

제 후기 대미를 장식해주신 파워블로킹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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