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서 만난 목사님, '전두환 코드'로 통했네

[중부내륙자전거여행②] 춘천에서 만난 센스쟁이 목사님

13.11.25 10:17l최종 업데이트 13.11.25 10:57l
         
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홍천→횡성→영월→충북 단양→제천→경북 문경→경남 거창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여행 1일째 : 2013년 8월 15일

용산역에서 ITX 열차를 탄 후, 한 1시간 가량을 달려 남춘천역에서 하차했다. 북한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춘천까지 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편하게 ITX로 이동을 했다. 일명 '청춘열차'라고도 불리는 ITX는 영업 속도가 시속 180km에 이른다. KTX 다음으로 쾌속 질주를 한다.

 



# ITX와 동서고속철도

경춘선의 복선화와 그에 따른 전철화로 '춘천 가는 기차'식의 낭만이 많이 사그라진 게 사실이다. 복선화 이후 터널이 많아져 창문 밖 경치 구경도 '끊김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복선화가 경춘선의 신비감을 떨어뜨렸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나도 일정 정도 그 푸념에 동의를 한다. 분명 단선일 때, 경춘선은 터널도 적었고, 역사(驛舍)도 아담했다. 옛 김유정역 같은 경우는 아담하다 못해 앙증맞을 정도였다.  

그런 시각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낭만을 따지기에는 강원도 지역의 SOC(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단선철도 시절,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거리가 80km 정도인 춘천까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가 약 90km 정도이고 무궁화호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춘천까지 얼마나 거북이 걸음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이 이런 상황인데 다른 곳은 어땠겠는가.

 


기사 관련 사진
▲ ITX ITX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칸이 있다. 그나저나 왼쪽에 있는 자전거와 필자의 자전거가 너무 비교된다. 필자의 자전거는 뒤태가 너무 구리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최신 역사에 들어선 장애인, 노약자 편의 시설들은 기존의 옛 역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철도 건널목을 건너듯 맞은편 플랫폼으로 이동을 해야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이 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야 철로를 건너 맞은편으로 느긋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횡단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맥락에서 나는 춘천에서 속초까지 이어지는 동서고속철도를 찬성한다. 동서고속철도는 강원도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으로, 선거철만 되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거의 30년 동안이나. 이렇게 오랫동안 동서고속철도가 활로를 찾지 못했던 건, 이 사업이 경제 타당성이 낮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악산이 수도권의 '외곽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원도 지역은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수도권과의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간의 동서고속화철도에 대한 박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낡은 경제 방식이지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현상을 경춘선 복선화와 중앙선(용산-용문) 전철화로 확인을 이미 한 바 있다.

북한-중국-러시아를 잇는 환동해권 물류 '파이프라인'으로도 동서고속화철도가 이용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선적된 물류들이 속초항을 거쳐 수도권으로 직접 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북 교류뿐 아니라 극동아시아 물류 운송 등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동서고속화철도를 찬성하지만 그건 조건부다. 백두대간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조건 말이다. 허울뿐이지만 그래도 필자가 명색이 역사트레킹 마스터인데 백두대간이 다치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있겠는가.

기사 관련 사진
▲ 다랭이논 다랭이논은 경작지가 협소한 산촌이나 섬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남해군, 청산도, 지리산에 있는 다랭이논들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 다랭이 논은 좀 규모가 작지만 경작구간과 비경작구간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춘천에서 홍천으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이장님 같은 목사님


남춘천역에 하차했을 때가 오후 6시께였으니 많이 달려봐야 2시간 정도를 주행할 수 있을 터. 애초 첫날 계획은 춘천 시내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벗어나 홍천 부근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춘천의 도심부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보다는 군이나 읍 단위가 야영하기에 더 느긋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 자전거가 '거북이'였다는 것이다. 180km가 아니라 그저 시속 18km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 텐데... 현실은 8km였다. 그나마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보다 끌고 가는게 더 많았다. 그리고 춘천-홍천 간에는 왜 그리 고개들이 많던지!

결국 야간주행을 하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고심이 앞섰다. 통상 3일 정도는 페달을 굴려줘야 다리가 풀리는데 아직 다리가 덜 풀린 상태에서 행하는 야간주행이었기 때문이다. 갓길이 거의 없는 도로 사정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공친 거 같다. 빨리 마을회관 같은데 가서 텐트나 쳐야겠어!'

당시 나는 제대로 공을 쳤다. 농로길로 들어섰다 공동묘지로 빠져나왔고 논두렁에 자전거가 엎어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야간주행이라 적응이 안됐던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다. 그저 하룻밤 캠핑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적시해 줄 그런 고마운 손길.

"실례하지만 이 동네 이장님이세요?"
"아니에요. 저는 저쪽에 있는 교회 목사예요."
"예... 아... 그러세요."

영락없는 동네 이장님 같은 분이셨는데 교회 목사님이란다.

"오늘은 손님들이 많네."
"손님이요?"
"좀 전에도 대안학교 학생들이 도보 순례를 한다고 왔어요. 숙소가 없다고 해서 우리교회 1층에 자리를 마련해 줬어요."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분은 춘천시 동산면에서 교회 사역을 담당하고 계신, 전 목사님이셨다.

"텐트 칠 자리가 필요하다고요? 우리 교회에 앞마당이 있는데..."
"그건 제가 좀 불편하고요. 저기 마을회관 앞에다 텐트를 좀 칠게요."
"여기는 바로 앞에 차들이 다녀서 좀 정신없을 텐데요."
"그게 좀 걸리긴 하네요."
"그럼 제가 차를 앞쪽에다 댈게요. 그럼 차가 방패막이 역할을 할테니까."
"그럼 저야 감사하죠. 앞이 뻥 뚫린 것보다 훨씬 낫죠."

 

 

 

 

 

 

 

 

이런 동학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나라와 일본은 기어코 조선땅에 군대를 파병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청나라는 조선 정부의 파병 요청을 받고 진압군을 보냈다. 이에 일본도 텐진 조약을 빌미 삼아 조선땅에 군대를 급파하게 된다. 청나라야 요청을 받았다지만 일본군의 파병은 뚱딴지같은 처사였다. 조선 정부의 공식 파병 요청도 없었을 뿐더러 전주화약 이후에 조선 땅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남부지방이 아닌 한성으로 진격을 했다. 동학도들이 한성에다 집강소를 차린 것도 아닌데.

그랬다. 일본군들은 이미 그릇된 야욕을 품고 조선땅을 침략했던 것이다. 그래서 1894년 6월 하순에 경복궁을 공격했고, 곧이어 청나라와 청·일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런 거듭된 일본의 침략 야욕에 동학군들은 크게 반발하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서게 된다. 그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충청도 공주로 진격을 하게 된다. 당시 공주는 충청 감영이 있던 곳으로 호서 지방의 중심지였다. 공주성을 함락시킨다면 호서 지방도 동학군들의 세력 범위 안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주성으로 나아가려는 동학군과 이를 진압하려는 관군, 일본군 사이에 큰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금티 전투였던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 동학농민운동 겉면에는 주제가 나가고, 날개를 들어 안쪽을 보면 그 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재된 작품. 충남 천안여고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제작한 것이다. 역시 여고생들이 제작해서 그런지 꼼꼼함이 돋보였다. 설명 부분에 기재된 내용도 상당히 심도가 있었다. 웬만한 성인들도 잘 모를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히 잘 기재하였다. 우리 청소년들이 역사를 잘 모른다고 걱정들을 하시는데 이런 작품들을 보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책망할지 모른다. '읔, 고딩들보다 내가 더 모르네...' 하면서!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일본군은 죽창으로 무장했던 동학군들에게 개틀링 기관총과 야포를 난사했다. 일본군과 관군의 우수한 화력 앞에 동학군은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 약 1만 5000명 정도 되는 동학농민군들이 우금티에서 비통한 최후를 맞았고 동학군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당시 일본은 동학군의 진압에 심혈을 기울였다. 우금티 전투가 일어날 무렵, 일본군은 청·일 전쟁 중이었는데 압록강을 건너 남만주와 요동반도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학군의 봉기를 후방을 교란하는 심각한 사태로 판단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 국립 공주대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는 공주대가 아닐까? 저자 중에 한 사람인 이명희 교수가 공주대 역사교육과에 재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 교수는 총대를 매듯 이번 사태에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비판의 화살이 이 교수를 넘어 공주대 전역으로까지 퍼져나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공주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무척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자기와는 관계 없는 인물 때문에 괜히 자신들까지 도매급으로 팔려나갔으니까. 하지만 걱정마시라! 필자가 만나본 공주대 역사교육과 재학생들은 패기가 넘쳤고, 무척 똘똘했다. 도매금으로 팔려나갈 인물들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교수보다 더 낫더라!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보다 학생들이 더 낫네

본격적인 우금티 추모제에 앞서 사전 행사인 역사 축제가 공주대학교 산학협력관에서 개최됐다. 공주대학교? 혹시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주요 필진 중의 한 명인 이명희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는 그곳?

그렇다. 교학사 교과서 문제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이명희 교수는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에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번 역사 축제는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재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었다. 단순히 장소 제공을 넘어 전체 진행을 주도적으로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금티 역사축제는 충남 관내에 있는 고등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 전시와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발표회,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 꼼꼼한 손길로 제작된 전시물들에는 동학뿐만 아니라 독도, 위안부 강제 동원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담겨져 있었다. 작품 의도가 무엇이냐는 필자의 물음에 학생들은 똑 부러지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해당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당찬 모습에 '요즘 애들은 역사를 너무 모른다'고 몰아세우는 편에 섰던 한 사람으로서 좀 부끄럽기까지 했다.

 

 


 

 


기사 관련 사진
▲ 넋전 넋전을 직접 땅에 꽂고 있는 청소년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이번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으로 인해 공주대학교는 본의 아니게 큰 불똥을 맞게 됐다.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명희 교수가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애꿎은 공주대학교의 재학생·졸업생·교수들까지 도매금으로 묶여 질책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만나본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학생들은 무척 합리적이었고 쾌활한 젊은이들이였다. 해당 학과의 교수 한 명 때문에 다수의 청춘들이 싸잡혀서 욕을 먹는다? 이거 정말 불합리하지 않은가?

우금티 추모제는 오후 3시 우금티 고개에서 행해졌다. 참가자들이 죽은이의 넋이 담겨져 있는 넋전이라는 종이 인형을 제단 앞쪽에 꽂으면서 추모제는 시작됐다. 추모제는 해원무 공연, 사물 놀이 공연 등으로 이어졌는데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게, 조촐하게 치러졌다. 공동집행위원장인 지수걸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런 인사말을 했다.



"여기서 북쪽으로 3km 정도만 올라가면 금강이 나옵니다. 만약 동학군들이 우금티를 넘고, 금강을 건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기사 관련 사진
▲ 우금티 추모제례 119년 전 우금티 고개에서 유명을 달리한 동학농민군들의 넋을 달래는 추모제례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많이 변했을 것 같다. 적어도 일제강점이라는 치욕적인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분단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그저 허무한 일이라지만 그래도 이런 유쾌한 상상력은 삶에 활력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교학사' 이명희 교수, 공주대 제자들에게 배우시길

공주에서 '우금티 전투' 추모제례·역사축제 열려

13.11.06 13:47l최종 업데이트 13.11.06 15:42
곽동운 기자

 

 

 

 

 

 

 

기사 관련 사진
▲ 키 작은 외계인? 이것은 넋전이다. 넋전은 죽은이의 넋을 담은 종이 인형을 말한다. 이 넋전에는 우금티 전투에서 비통하게 눈을 감은 동학농민군들의 혼이 담겨져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우금티 캐릭터 이제 동학농민전쟁 기념식도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젊은층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캐릭터 이벤트는 청년층에 대한 참여와 관심을 이끌 수 있다. 한편 위의 캐릭터에 새겨진 초코릿 복근이 무척 인상적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우금티냐, 우금치냐

지난 10월 27일. 옛 백제의 도읍이었던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하나 개최됐다. 119년 전 공주 우금티에서 비통한 최후를 맞은 동학 농민군들에 대한 추모 제례와 역사 축제가 행해진 것이다.

일단 용어 정리가 필요하겠다. '우금치'는 알겠는데 '우금티'는 무엇이냐고 반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또 '치'나 '티'나 비스무리한데 굳이 왜 우금티를 내세우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고개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티'나 '재'였다. 칡이 많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충북 충주의 '갈티고개', 노루들이 출몰한다는 경북 봉화의 '노루재'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고개를 뜻하는 우리말에도 왜곡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일제는 지도를 제작하면서 고개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고개를 뜻하는 한자 '티'자가 없었기에 손쉬운 대로 '언덕 치(峙)'자를 가져다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금티'가 '우금치'로 개명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지 공주 지역에서는 우금치가 아닌 우금티로 더 많이 불리고 있었다.

옛 고지도를 살펴보면 '언덕 치(峙)'를 쓴 지명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곰치재'나 '웅치' 같은 곳들이 그런 곳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굳이 우금티라는 명칭을 소리 높여 부른다고 오히려 질책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금티가 어떤 곳인가?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동학농민군들이 학살에 가까운 몰살을 당한 곳이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결합되었기에 '우금치'가 아닌 '우금티'로의 제 이름 찾기는 분명 의미가 있는 발걸음으로 평가될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지수걸 교수 지수걸 교수는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학과장이자 이번 <우금티 추모제례 및 역사축제>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얼마전 같은 학과에 있는 이명희 교수의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꼼꼼하게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1894년 11월, 공주 우금티 고개


그럼 119년 전인 1894년에 도대체 우금티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모르시는 독자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해보겠다.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동학군은 그 기세를 몰아 정읍을 점령하고 전주로의 진격을 결행한다.

전주가 어떤 곳인가? 당시 전주는 전라도의 핵심 지역으로 관찰사의 소재지였다. 한마디로 전라도의 심장부가 동학군에 의해 점령되었던 것이다. 이에 당황한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구원 요청을 한다. 이에 외국 군대의 국내 입성에 대한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모아져 동학군과 정부 사이에 전주화약(6월 11일)이 맺어졌다.     

전주화약 이후 동학군의 세력 범위에 있던 지역은 점차 안정화를 찾아갔는데 그 중심에서는 집강소 제도가 있었다. 동학농민군이 휩쓸고 간 지역은 치안과 행정이 마비됐는데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동학군의 대척점에 서 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가, '가렴주구'를 행한 장본인들이 누구였는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유추가 될 것이다. 동학군에 의해 탐관오리들이 처형됐으니 해당 고을의 치안과 행정은 마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전봉준과 전라도 관찰사 김학진은 전라도 지역의 안정화를 도모하고자 민간자치 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한다. 그렇게 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집강소였다. 집강소는 자치 기구였으나 사실상 지방행정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실질적인 지역 통치기구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기사 관련 사진
▲ 병뚜껑으로 만든 우리나라 우리나라 외교에서 쟁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병뚜껑에 기재하여 제작한 병뚜껑 한반도. 충남 예산 여고 학생들이 급우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독도나 위안부를 적은 병뚜껑이 많이 눈에 띄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시작은 백두대간 종단이었으나 끝은 대폭 수정

[중부내륙자전거 여행 2편] 실패(?)한 여행의 기록들___ 2부 

 

 

 

 

 

 

 

 

 

나는 춘천 도심지를 떠나 홍천으로 길을 잡았다. 역시 첫 날이라 그런지 몸이 풀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춘천에서 홍천가는 길에는 왜그리 오르막이 많던지!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오후 8시에 원창고개 도착, 오후 9시 40분 모래재 도착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래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위는 암흑으로 변한 뒤였다. 달빛도 없어 한 치 앞도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갓길도 없는 춘천-홍천간 국도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달빛도 없어 적막한데...'

콘플레이크를 두유에 말아 저녁식사를 했다. 서울에서부터 품고 왔던 그 우쭐함과 시건방은 이미 어둠속으로 사그러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근사한 야영지에서 멋진 '파티'를 벌이겠다는 계획도 이미 암흑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자칫하면 캠핑은커녕 야산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장거리 여행 경력이 풍부한 나에게 노숙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모기였다. 모기와 정면 승부를 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벽에 강원도 모기와 맞대결을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웬만한 공포영화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소름이 돋을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 중부내륙자전거여행 시작은 우쭐했으나 끝은 쪼글아 들었다. 백두대간-남해바다횡단이 중부내륙자전거여행으로 축소 변경되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경북 문경에서 경남 거창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점핑'을 했다. 라이더로서 반칙을 한 셈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무언가 많이 잘못됐어. 첫날부터 꼬여버렸어. 완전 꼬여버렸어!'

그랬다.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지니 마지막까지 엉켰던 것이다. 여정도 대폭 축소가 되었고, 몸도 종합병원으로 변하고 말았다. 실제로 여행 중에 나는 허리가 아파서 드러누웠고, 위장병 때문에 밤잠을 설쳤으며, 이빨에 이상이 생겨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로 이동을 해야 했다. 한마디로 여행 내내 약봉지를 달고 살았던 셈이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건 여정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여행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중간에 경남 거창에서 사과작업을 했는데 그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졌던 것이다. 사과작업을 하느라 에너지도 많이 허비됐고, 추석은 코 앞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되다보니 중간 기착지가 종착지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결국 여행 명칭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에서 '중부내륙자전거여행'으로 바뀌게 됐다.

 

 

기사 관련 사진
▲ 강원도 영월 영월의 서강이다. 영월 지역은 자전거여행이 아닌 도보여행으로 많이 방문을 한 지역이었다. 트레킹 여행을 했던 곳을 자전거여행으로 다시 왔으니 그 감회가 새로웠다. 이 서강은 그 유명한 동강과 합수되어 남한강을 이룬다. 남한강은 단양을 거쳐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로 향한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내가 가지고 있는 퍼즐 조각

그러고보면 여행도 우리들의 인생살이처럼 딱, 딱 안 떨어진다. 그런면에서 우리들의 손에 들린 건 네모가 반듯한 벽돌이 아니라 모양도 제각각인 퍼즐이 아닌가 싶다. 차곡차곡 반듯하고 미끈하게 나의 성을 쌓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외형이 울퉁불퉁한 퍼즐 조각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 퍼즐 조각을 긁어모아다 하나하나 끼워 넣기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그렇게 고생해서 맞춘 퍼즐의 최종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대박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끼워 맞췄는데 쪽박을 찰 수도 있고, 쪽박만 면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끼웠는데 예상치 못한 대박으로 '해피엔딩'을 맞을 수도 있는게 우리들의 인생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이번 여름 정기 투어는 쪽박이었다. 엉뚱한 퍼즐 조각들을 긁어모아 가지고 와서 대박이 나올 것처럼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쪽박을 찼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심히 여행기를 작성해서 문제점을 찾아야지! 그래야 다음에는 대박을 칠 수 있지!

기사 관련 사진
▲ 녹조라떼 녹조가 일어났다는 것은 수질이 개선됐다는 것'이라는 MB 말씀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 말대로 녹조가 수질 개선의 징표라면 깊은 산 속 청정계곡에도 녹조가 발생하길 간절히 기원해야 할 판이다. 8월 하순경, 충북 단양군 고수교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남한강 남한강 단양군의 고수교. 필자는 강원도 영월을 거쳐 단양으로 입성했다. 한편 바로 위에 사진처럼 녹조가 낀 남한강은 흉물스럽다. 같은 강인데 왜 4대강 사업이 진행된 남한강은 '녹조라떼'가 되고,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영월 서강은 푸른 물결을 드러내고 있을까? 둘 중에 어느 강이 더 수질이 좋은가?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덧붙임: 사실 이 여행기는 이미 한 달 전 쯤에 작성된 것이다. 처음 기사를 작성했을 때는 바로 송고를 할 셈이었는데 중간에 계속 일이 생겨 송고시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인생사 타이밍'이라고 기사 작성도 타이밍이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필자는 허송세월을 보내다 그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본 기사와 이후에 나올 후속 여행기들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굳이 좋은 이야기 거리를 사장시킬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시기를 놓쳤든 아니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물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하겠지만...        

 

 

 

 

 

 

 

 

시작은 백두대간 종단이었으나 끝은 대폭 수정

[중부내륙자전거 여행 1] 실패(?)한 여행의 기록들

13.10.31 17:23l최종 업데이트 13.11.03 08:34l
곽동운(artpunk)             

 

 

 

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 -> 홍천 -> 횡성 -> 영월 -> 충북 단양 -> 제천 -> 경북 문경 -> 경남 거창을 자전거로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기사 관련 사진
▲ 강원도 영월군의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옆으로 관광용 뗏목선이 지나가고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2013년 8월 15일 오후 4시.

나는 우쭐해 있었다. 왜? 여름 정기 투어에 나서려고 용산역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몰골은 '우쭐'하지 못했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중고자전거에 짐을 잔뜩 실었는데 그나마 패킹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것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뒤에서 보면 자전거의 뒤태가 완전히 껑뚱했던 것이다.

나의 신발도 문제였다. 어차피 장거리 여행을 끝내고 나면 새로 산 신발도 망가지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나는 자전거만 타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트레킹과 등산을 병행한다. 그래서 2012년에 행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때에도 신고 갔던 트레킹화는 서울로 복귀하자마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그런 점을 잘 알기에 나는 아예 '빵구' 난 트레킹화를 신고 갔던 것이다. 자전거 뒤태는 껑뚱하지, 신발은 옆면이 터져 양말이 보이지...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관련기사:
흥미진진했던 56일, 나는 '백두대간'을 달렸다)

"자전거... 노숙자...?
"정말...?"

 


광복절을 맞아 시작한 자전거여행

기사 관련 사진
▲ 뒤태가 구린 여행자전거 내 여행자전거의 이름은 블루야크. 모 아웃도어 회사의 이름을 빗대서 네이밍을 해 본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여행 자전거가 저렇게 뒤태가 안 이쁜가? 패킹을 잘못해서 그런지 짐이 한쪽 편으로 쏠려 있다. 사고 나기 딱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사고가 안 났다. 필자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홍천군 방면으로 길을 잡을 때 찍은 사진.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나는 그런 괄시를 쿨하게 받아넘겼다.

'난 지금 백두대간을 종단하고 거기다 남해를 횡단할 거다. 푸하핫! 이거 아무나 못하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쉽게 못 덤빌걸. 억만장자 워런 버핏도 쉽게는 못 덤빌 거야!'

워런 버핏도 못할 일을 시작한다고 그렇게 한참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행의 시작일이 또 8·15 광복절이 아닌가? 광복절 맞이 국토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백두대간을 횡단하고 남해바다를 횡단할 테니 이름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이라고 붙이면 되겠군! 푸하핫!'

백두대간 종단과 남해바다 횡단? 호기는 좋았으나 내 앞에 놓인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횡단에 1200Km 이상, 남해바다 횡단에 흑산도까지 입도하려면 600Km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약 1800km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자전거를 다 떨어진 트레킹화로 페달을 굴리며...

 

 

 

기사 관련 사진
▲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이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1000㎞가 넘는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도 내가 느긋할 수 있었던 건 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첫 장거리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런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태풍도 맞아봤고, 공동묘지에서도 홀로 밤을 지새웠는데 겁날 게 뭐있겠어. 한두 번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이런 시건방은 아웃도어 여행에서는 독이다. 철저한 준비와 다부진 마음가짐을 갖고 떠나도 될까 말까인데, 시건방부터 떤다면 여행의 성공 여부를 떠나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악사고도 보면 초심자들보다는 '산 좀 탔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당한다. 네팔도 다녀오고 했는데 해발고도가 낮은 우리나라 산 쯤이야, 하다가 큰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여간 나의 시건방은 열차 출발 시각에서도 표출됐다. 여행의 시작점을 춘천으로 잡기 위해 용산역에서 ITX를 탔는데 그 시간이 오후 4시였던 것이다. 남춘천역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첫 페달을 굴린 시각이 오후 6시 경이 되고 말았다. 여름에는 해가 길다고 하지만 그래도 오후 6시가 가까이 된 시각에 여행을 시작하면 그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시건방은 장거리여행의 독(毒)

기사 관련 사진
▲ 터널 자전거여행 중에 가장 난감할 때는 터널을 통과할 때다. 강렬한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질때의 그 느낌이란! 강원도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이 터널은 극히 교통량이 적었기에 이와 같은 사진 촬영이 가능했음을 밝혀 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터널 중간에 정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키 작은 외계인?: 이것은 넋전이다. 넋전은 죽은이의 넋을 담은 종이 인형을 말한다.

이 넋전에는 우금티 전투에서 비통하게 눈을 감은 동학농민군들의 혼이 담겨져 있다.

 

 

 

* 병뚜껑으로 만든 우리나라: 우리나라 외교에서 쟁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병뚜껑에 기재하여 제작한 병뚜껑 한반도. 충남 예산 여고 학생들이 급우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다. 독도나 위안부를 적은 병뚜껑이 많이 눈에 띄었다.   

 

 

 

 

 

* 학생 작품: 겉면에는 주제가 나가고, 날개를 들어 안쪽을 보면 그 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재된 작품. 충남 천안여고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제작한 것이다. 역시 여고생들이 제작해서 그런지 꼼꼼함이 돋보였다. 설명 부분에 기재된 내용도 상당히 심도가 있었다. 왠만한 성인들도 잘 모를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히 잘 기재하였다. 우리 청소년들이 역사를 잘 모른다고 걱정들을 하시는데 이런 작품들을 보면 오히려 자신을 책망할지 모른다. '읔, 고딩들보다 내가 더 모르네...' 하면서!   

 

 

 

 

 

 

 

* 국립 공주대: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는 공주대가 아닐까? 저자 중에 한 사람인 이명희 교수가 공주대 역사교육과에 재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 교수는 총대를 매듯 이번 사태에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비판의 화살이 이 교수를 넘어 공주대 전역으로까지 퍼져나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공주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무척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자기와는 관계 없는 인물 때문에 괜히 자신들까지 도매금으로 팔려나갔으니까. 하지만 걱정마시라! 필자가 만나본 공주대 역사교육과 재학생들은 패기가 넘쳤고, 무척 똘똘했다. 도매금으로 팔려나갈 인물들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교수보다 더 낫더라!

 

 

 

* 우금티 캐릭터: 이제 동학농민전쟁 기념식도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젊은층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캐릭터 이벤트는 청년층에 대한 참여와 관심을 이끌 수 있다. 한편 위의 캐릭터에 새겨진 초코릿 복근이 무척 인상적이다.  

 

 

 

 

 

* 넋전: 넋전을 직접 땅에 꽂고 있는 청소년들.

 

 

 

 

 

* 지수걸 교수: 지수걸 교수는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학과장이자 이번 <우금티 추모제례 및 역사축제>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얼마전 같은 학과에 있는 이명희 교수의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꼼꼼하게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 우금티 추모제례: 119년 전 우금티 고개에서 유명을 달리한 동학농민군들의 넋을 달래는 추모제례

 

 

 

 

 

 

뒤태가 구린 여행자전거: 내 여행자전거인 블루야크다. 모 아웃도어 회사의 이름을 빗대서 네이밍을 한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여행 자전거가 저렇게 뒤태가 안 이쁜가?

패킹을 잘못해서 그런지 짐이 한쪽 편으로 쏠려 있다. 사고 나기 딱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사고가 안 났다.

필자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홍천군 방면으로 길을 잡을 때 찍은 사진.

 

 

 

 

*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도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 중부내륙자전거여행: 시작은 우쭐했으나 끝은 쪼글아 들었다. 백두대간-남해바다횡단이 중부내륙자전거여행으로

축소 변경되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경북 문경에서 경남 거창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점핑'을 했다. 라이더로서 반칙을 한 셈이다.

 

 

 

 

 

*강원도 영월군의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옆으로 관광용 뗏목선이 지나가고 있다.  

 

 

 

 

* 터널: 자전거여행 중에 가장 난감할 때는 터널을 통과할 때다. 강렬한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질때의 그 느낌이란!

강원도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이 터널은 극히 교통량이 적었기에 이와 같은 사진 촬영이 가능했음을 밝혀 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터널 중간에 정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 강원도 영월: 영월의 서강이다. 영월 지역은 자전거여행이 아닌 도보여행으로 많이 방문을 한 지역이었다. 트레킹 여행을 했던 곳을 자전거여행으로 다시 왔으니 그 감회가 새로웠다. 이 서강은 그 유명한 동강과 합수되어 남한강을 이룬다. 남한강은 단양을 거쳐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로 향한다.  

 

 

 

* 녹조라떼: '녹조가 일어났다는 것은 수질이 개선됐다는 것'이라고 MB 말씀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 말대로 녹조가 수질 개선의 징표라면 깊은 산 속 청정계곡에도 녹조가 발생하길 간절히 기원해야 할 판이다.  

8월 하순경, 충북 단양군 고수교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남한강: 단양군의 고수교. 필자는 강원도 영월을 거쳐 단양으로 입성했다.  

 

 

 

덧붙임: 이 사진들은 지난 8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행한 중부내륙권 여행에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차후에 여행기 형식으로 작성할 예정입니다.

 

 

 

 

 

 

트레킹을 하다보면 이 길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나만 알고, 나만 즐겼으면 하는 곳이 생기는 것이죠.

한마디로 그런 길들은 절경 중에 절경입니다. 정말 아름다워서 누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곳이죠.

 

강원도 영월에 그런 곳이 있습니다. 서강을 끼고 걷는 코스인, <영월강변 둘레길>이 바로 그곳입니다.

유명한 동강 말고도 영월에는 서강이라는 강이 흐릅니다. 물론 서강이 동강보다는 경치가 덜합니다.

하지만 워낙 동강의 경치가 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동강의 위세에 서강이 좀 눌렸을 뿐이지

서강 주변도 정말 비경인 곳입니다.

 

저만이 알고 있는 그런 곳을 여러분들과 함께 걷고 싶어서 이렇게 공지글을 올려봅니다.

이 코스에는 유명한 선돌과 청령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곳들은 예능프로인 <1박 2일>에서도 탐방을

했던 곳이죠.

 

게시된 사진들은 제가 올 1월 경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 촬영한 사진들이라

강물도 꽁꽁 얼어 있고, 눈도 두껍게 덮혀 있었지요. 우리가 탐방에 나설 시기는 11월 중순이라

사진과 같은 풍경은 볼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서강 일대는 4계절이 다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초겨울에 실시하는 트레킹이라 좀 무리가 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영월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면 트레킹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만큼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지요. 장갑이나 목도리, 핫팩 같은 방한 장구들을

챙겨오면 더 즐거운 트레킹이 될 수 있겠네요.

 

 

이 곳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가보시면 정말 후회는 안 하실 겁니다.

대신  서울에서 출발하시는 분들은 아침부터 서두르셔야 할 것입니다. 또한 비용도 적지 않게 들겠네요.

하지만 그런 수고와 비용들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영월강변둘레길은 정말 명품길이랍니다!

 

 

 

 

일시: 2013년 11월  16일 토요일 낮12시


집결장소
: 강원도 영월군 시외버스터미널 ---> 서울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영월군 영월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집결합니다. 이 점 착오 없으시길!

 또한 영월읍에서는 시내 버스를 타고 선돌까지 이동할 예정입니다.

이동경로: 영월 시외버스터미널 ▶(버스 이동) 선돌 ▶ 서강 뚝방길 ▶ 청령포 ▶ 방절산  ▶ 청령포역(무인역) ▶ 영월역 

이동거리: 약 12km / 약 5시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난이도 : 중 


준비물
: 여분의 옷, 간식

주의점
: 트래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하이힐 NO! 트래킹화 YES!

영월 읍내에서 시골 버스를 타고 선돌로 이동할 예정이오니 지각 no! 선돌은 읍내에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타
: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참고사항: 강바람이 차가울지 모르니 방한 용품을 꼭 챙겨오세요. 저도 핫 팩을 가져갈까 생각중입니다.

30대분들도 부담없이 참여를 해주세요. 저도 30대입니다. 그것도 후반^^;

비용: 비용은 8천원입니다. 물, 이온 음료, 간단한 먹거리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외계인인가요? 아닙니다. 저것은 넋전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죽은 자의 넋을 담은 종이 인형입니다.

그럼 저 넋전들에는 어떤 죽은이들의 혼이 스며 들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래 현수막 문구에도 나와 있듯이

119년 전, 충남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유명을 달리한 동학 농민군들의 넋이 담겨져 있답니다.

10월 27일 우금티 고개에서 개최된 <2013년 우금티 추모제례 역사축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