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 곧 겨울이 코 앞입니다.
이렇게 아쉬워만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함께 양수리 일대 트레킹을 해보는 겁니다!

정확히는 정약용 역사트레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산 생가가 있는 조안면 능내리 일대를
탐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산 선생은 따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우리들의 큰 스승이겠죠.
그런 다산 선생을 만나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으로 가보는 겁니다.

지난 10월 13일에 행한 한강역사트레킹은 도심지에서 이동을 하다보니 조금은
지루한 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산 생가가 있는 두물머리 지역은 평지를 걸어도
상당히 매력적인 지역입니다. 오죽했으면 다산 선생께서 말년을 이 곳에서 보내셨겠습니까?
물론 이 곳이 생가라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11월 초순에 행하는 트레킹이라 많이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꺼운 외투나 장갑, 목도리 같은 방한 용품을 챙기시면 더 즐거운 트레킹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동식 같은 간식을 싸오는 센스도 잊지 마시길~ㅋ

 









일시: 2013년 11월  3일 일요일 오후 1시

집결장소
: 중앙선 팔당역 -> 중앙선은 용산에서 출발을 합니다. 서울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중앙선 팔당역에서 집결하오니 착오 없으시길! 또한 팔당역에서는 시내 버스를 타고 다산 삼거리까지 이동할 예정입니다.

이동경로: 팔당역 ▶(버스 이동) 다산삼거리 ▶ 다산 생가 탐방 ▶ 연꽃 공원 ▶ 능내역  ▶ 운길산역

이동거리: 약 9km / 약 4시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준비물
: 여분의 옷, 간식

주의점
: 트래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하이힐 NO! 트래킹화 YES!

팔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다산 삼거리로 이동할 예정이오니 지각 no!

기타
: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참고사항: 강바람이 차가울지 모르니 방한 용품을 꼭 챙겨오세요. 저도 핫 팩을 가져갈까 생각중입니다. ㅋ 30대분들도 부담없이 참여를 해주세요. 저도 30대입니다. 그것도 후반^^;

비용: 비용은 5천원입니다. 물, 이온 음료, 간단한 먹거리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청명한 가을날에 떠난 한강 역사트레킹

13.10.17 14:10l최종 업데이트 13.10.17 21:43l
곽동운(artpunk)             

 

---> 1편에 이어서

 

 

 

# 자신을 아낌없이 다 내주었던, 선유봉

과연 그럴까? 정말 한강에 볼거리가 없을까? 한강역사트레킹의 첫 번째 도착지는 선유도 공원이었다. 원래 선유도는 선유봉이라고 불렸던 해발 40m 정도의 봉우리였다. 강가 바로 옆 쪽에 우뚝 선 모습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중국 사신들도 조선에 오면 꼭 선유봉이 있는 양화 일대를 유람하고 돌아갔다고 할 정도였다.

겸재 정선도 선유도를 사랑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겸재는 양천 현감으로 있었던 1741년에 <양화환도> <금성평사> <소악후월> 등 3편의 진경산수화를 그려, 지금의 선유도 일대의 한강 유역을 사실감 넘치는 필치로 담아내었다.

특히 <양화환도>에서는 선유봉과 함께 잠두봉이라고 불렸던 지금의 절두산이 등장하고, 또한 그 잠두봉 아래에는 양화진(지금의 합정동)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선유봉과 잠두봉 사이의 강물길을 느긋하게 나룻배로 건너고 있는 뱃사공의 모습도 화폭에 담겨 있어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자신도 그 그림 속에 뛰어들어 신선놀음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 정도다.

그렇다. 선유봉(仙遊峰)은 신선이 노닌다는 봉우리였다. 그럼 왜 선유봉은 졸지에 선유도로 내려앉았는가? 선유도는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주었다. 일제에 의해 여의도에 비행장이 들어설 무렵, 활주로를 닦고 제방을 쌓는다며 선유봉에서 채석을 한 것이다. 그렇게 선유봉은 채석장이 되어버렸고 봉우리는 점점 더 낮아져 갔다. 해방 이후에도 선유봉은 계속해서 채석장으로 이용되었는데 선유봉에서 캔 돌들은 지금의 강변북로 공사 등에 이용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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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강생태공원 한강 역사트레킹팀이 활기차게 걷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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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깎이다보니 선유봉은 납작하게 되었고, 이후 한강이 개발되어 강폭이 넓어졌을 때 영등포 쪽과 분리되어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1978년에는 서울 서남부권에 식수를 공급하는 정수장이 선유도에 들어서게 됐고, 그 정수장이 지난 2000년에 폐쇄되어 지금의 선유도 공원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선유도는 참 사연이 많은 섬이다. 깎이고, 부서지고, 졸지에 섬이 되어버리고.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선유도가 그렇게 아낌없이 내주었기에 지금이 서울 시민들은 느긋하게 '신선놀음'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선유도에서 느긋하게 강바람을 맞으며 가을소풍을 즐겼다. 우리 역사트레킹팀도 간식을 먹으며 즐겁게 선유도를 탐방했다.

 

 



# 잠두봉이 왜 절두산으로 개명했나?

선유도를 이야기하면서 절두산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안 될 것이다. 절두산은 한강역사트레킹의 루트는 아니었지만 그 중요성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설명을 했다. 앞서 말한 <양화환도>에서 절두산, 즉 잠두봉은 선유봉과 짝을 이루고 있다. 뽕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잠두봉은 그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고 하여 용두봉이라고도 불렸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왔을 때 꼭 들렀다는 잠두봉이, 겸제 정선이 화폭으로 담아낼 정도로 비경을 자랑하던 잠두봉이 왜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을까? 그것도 머리가 잘린다는 의미의 절두산(切頭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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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두산 성지 당산역 방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절두산 성지 뒤로 북한산이 보인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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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이루어진 병인박해 때문에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죽음을 당한다. 이때 주교인 베르뇌를 포함한 9명의 프랑스인들이 처형을 당했는데 그들은 절두산이 아닌 새남터(현재의 용산구 이촌동)와 충남 보령 갈매못 등지에서 죽었다.

이 병인박해가 원인이 되어 병인양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자국의 선교사가 처형됐다는 소식에 중국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의 로즈 제독은 함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프랑스 함대는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정찰선을 파견하는데 그 정찰선이 한강 깊숙이까지 올라온 것이다. 양화진을 넘어 서강까지 침범을 하고 돌아간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대원군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아주 격분을 했다. 그러면서 '사악한 서양 세력의 흔적들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씻어내겠다'며 잠두봉에 새로운 처형지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뽕나무들이 우거졌던 잠두봉은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는 뜻의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약 150년 전, 그렇게 절두산은 수천 명의 천주교인들의 목이 잘려나간 비극의 땅이었다. 또한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감시견처럼 서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갔다. 그 흐름은 흥선대원군도 어쩌지를 못했다. 현재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는 절두산 한쪽에 꿔다둔 보릿자루 마냥 껑뚱하게 서 있지만 절두산은 그 자체가 우리 천주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성지 중에 성지가 됐다.

서양제국주의 세력에 대한 흥선대원군의 반대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사람들의 피로 그 흔적을 닦아낸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무슨 공포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사람 피로 무엇을 닦는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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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화비 절두산 성지 한 쪽 편에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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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병인양요에 대해서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불어 그 콧대 높은 프랑스 함대가 왜 다시 조선을 침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시대사적인 유추를 해보았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통치기였다. 그 시절 전 유럽은 신흥강국으로 발돋움한 프로이센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 중 프랑스는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 중에 하나였다. 아니나다를까 몇 년 후 프랑스와 프로이센간에는 전쟁이 벌어졌고, 그 파장으로 독일 지방은 통일된 국가를 이루게 됐다. 즉 1866년경, 프랑스는 동방의 조선에 물리력을 집중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 숨어 있는 진주,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이런 필자의 설명을 뒤로하고 한강역사트레킹팀은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샛강생태공원은 1997년 9월 경에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트레킹 코스나 자전거도로가 닦인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앞쪽의 한강이 보기 좋게 정비가 됐다면, 뒤쪽의 샛강은 그렇지 못했다. 생태탐방로나 나무데크 같은 시설이, 또 자전거 도로 같은 인프라가 갖추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S라인을 강조하며 여의도와 신길역을 연결하는 샛강도보교가 개통된 지도 겨우 1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2011년 4월 12일에 개통했다고 한다. 역으로 말하면 샛강의 접근성은 최근에 와서야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샛강생태공원이 무슨 대단한 절경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샛강은 상당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여의도의 고층건물과 습지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여의도라는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첨단 구역에 샛강생태공원이라는 허파와도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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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강생태공원 샛강생태공원은 억새가 많은 곳이다. 그 억새들을 배경으로 한 컷 찍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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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합시다, 역사트레킹! 

한강 역사트레킹의 다음 탐방지는 중지도에 있는 노들 텃밭이다. 한강대교가 걸터 있는 중지도에 도시형 텃밭이 들어섰는데 그 곳이 우리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노들텃밭이었다. 그곳은 2012년에 첫 농사를 지었는데 63빌딩을 비롯한 여의도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농사를 짓는 이색적인 곳이다. 도심지 한복판에 한가롭게 허수아비들이 들어서 있는 모습도 흥미롭다. 노들 텃밭에는 오두막도 많은데 그곳에서 먹는 새참과 간식은 꿀맛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강 역사트레킹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무슨 여복(?)이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를 빼고는 모두 젊은 처자들이 이번 트레킹에 참여를 했다. 그것도 5명씩이나. 그런 5명의 재기발랄한 젊은 처자들과 함께 4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아주 상쾌했다. 물론 그들을 리딩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마스터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감수를 했다. 

앞으로도 역사트레킹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역사트레킹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주말에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 애꿎은 방바닥만 긁지 말고 필자와 함께 역사트레킹에 나서 보는게 어떤가? 필자가 유머 감각이 뛰어나지는 않다. 그래서 '이승만은 세종대왕과 같다'와 같은 '빵' 터지는 개그콘서트를 펼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일본 우익의 주장을 고스란히 담은 후소사 역사교과서나 요즘 한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보다 훨씬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것을 확실히 보장한다. 말만 잘하면 필자가 밥도 사줄 수 있다.

 

 

 

 

 

 

 

 

 

 

청명한 가을날에 떠난 한강 역사트레킹

13.10.17 14:10l최종 업데이트 13.10.17 21:4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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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고층건물들과 습지가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 상당히 이채로운 곳이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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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다리

"그게 정말이에요? 저 한강대교가 폭파됐었다고요? 그게 언젠데요?"

누군가 놀란 듯 큰 목소리로 필자에게 물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필자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끊은 주체가 인민군이 아닌 우리 국군이었다는 점입니다. 인민군의 남하를 막겠다고 다리를 폭파시킨 거죠. 전쟁 때는 일부러 시설물을 파괴해서 적군의 행군 속도를 늦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강대교 폭파는 문제가 아주 많았어요. 다리 절단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죠."

 


"무슨 피해가 있었는데요?"

 


"사전 예고 없이 폭파가 실시돼서 당시 다리를 건너던 피난민들이 많이 죽었어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더 황당한 일은 다리가 끊기기 몇 시간 전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힘찬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는 겁니다."
"그럼 대통령이 서울에 남아 있었는데 다리를 끊었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 없었어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들은 멀리 대전까지 피난을 간 상태였습니다. 미리 녹음했던 음성으로 계속 돌려 됐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 그 방송 내용을 믿고 피난을 안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웃기는 거죠.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간 건 그렇다 쳐도 왜 거짓말을 합니까? 서울에 있지도 않으면서 서울에 있다고 구라쳐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고."

필자의 설명이 끝나자 분위기는 한층 더 가라앉았다. 그래서 영화 이야기로 방향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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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의 코스 당산역 ->선유도공원 -> 샛강생태공원 -> 노들텃밭(한강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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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 기억나시죠? 그 영화에서 신하균이 육군 소위로 나오잖아요. 영화에서 신하균은 탈영을 하고 자살까지 시도를 했는데 그게 다 죄책감 때문에 그랬더라고요. 피란민들이 몰려든 다리를 폭파시켰는데 담당자가 신하균이었던 거죠. 그래서 신하균은 죄책감에 시달렸던 거고요. 그 부분은 한강대교 폭파에서 모티브를 따온 게 아닌가 하네요."

씁쓸한 적막감이 바람에 실려 온 듯 우리 한강 역사트레킹팀을 크게 흔들고 지나간 듯싶었다. 누군가 소리 낮춰 이야기 내뱉었다.

"아픈 우리 현대사네요."

 


"그렇죠.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니까 마치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연상되더군요. 상판이 떨어져 나가서 강물에 둥둥 떠 있고요…."

 


# 한강에 뭐 볼 게 있는가?

10월 13일 오후. 가을날의 한강은 청명함이 더해가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의 느긋함을 만끽하려는 듯 한강시민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우리 한강역사트레킹 팀의 얼굴 표정에서도 그런 청명한 가을 날씨가 살아 숨쉬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팀은 진지함까지 묻어 있었다.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는 듯 필자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런 진지함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필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거 괜히 버벅대서 팩트 전달이 꼬이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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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 여복이 터졌나? 필자만 뺴고 모두 젊은 처자들이었다. 이 분들 덕분에 재미난 역사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뒤에 보이는 곳이 선유도와 양화대교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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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역사트레킹 마스터다. 이 직함은 우리나라에서는 필자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즉,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한 직함이라는 것이다. 역사트레킹 마스터는 역사 유물 앞에서는 유홍준 선생이 되어야 하고, 필드에서는 엄홍길 대장이 되어야 한다. 또 직접 트레킹 코스도 개척해야 하기에 손발이 무척 분주한 직업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게 무척 대단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지적인 면과 아웃도어적인 면이 동시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동안 그 직함에 어울리는 활동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역사트레킹 마스터라고 그냥 폼만 잡고 다녔던 것이다.

그랬다. 그간 필자의 손발은 무척 한가했다. 또한 필자가 주인장으로 있는 역사트레킹 카페도 파리만 날렸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얼마전 위즈돔이라는 지식 공유 사이트에 <한강역사트레킹>이라는 코너를 하나 개설했다. 운이 좋았는지 코너는 매진이 되었고, 10월 13일에 역사트레킹의 첫 항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강에 무슨 볼거리라 있다고, 거창하게 '역사트레킹'을 하냐는 비아냥거림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강이야 산책하고, 운동하는 그러는 곳이잖아. 그렇게 친숙한 곳에 '한강역사트레킹'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이는 거 오버 아니야? 괜히 있어 보이려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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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화대교 선유도공원에서 바라본 양화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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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역사트레킹의 코스: 당산역 ->선유도공원 -> 샛강생태공원 -> 노들텃밭(한강대교)

 

 

 

 

 

* 척화비: 절두산 성지 한 쪽 편에 있었다.

 

 

 

 

 

* 절두산 성지: 당산역 방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절두산 성지 뒤로 북한산이 보인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고층건물들과 습지가 서로 어우러진 모습이 상당히 이채로운 곳이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노들텃밭: 노들텃밭에는 저렇게 오두막이 많다. 올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한강 역사트레킹: 샛강생태공원을 걷고 있는 모습.

 

 

 

 

 

 

 

 

* 샛강생태공원: 샛강생태공원은 억새가 많은 곳이다. 그 억새들을 배경으로 한 컷 찍었다.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 한강역사트레킹: 여복이 터졌나? 필자만 뺴고 모두 젊은 처자들이었다. 이 분들 덕분에 재미난 역사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 선유도에서 바라본 양화대교

 

 

 
 
 
 
 
 

 

 

 

 

 

 

 

 

 

 

 

 

 

 

 

 

 

 

 

 

 

안녕하세요?

저는 역사트래킹 마스터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한강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위즈돔을 개설해 봅니다.

 

저는 몇 해 전부터 아웃도어 여행을 꾸준히 해왔답니다. 총 5번에 걸쳐 국토종단, 국토횡단을

행했고 수 천 킬로 미터의 거리를 이동을 했습니다. 그것도 무동력(no-moter)으로 이동을 했지요.

무동력여행? 무동력여행은 자동차나 기차 같은 동력 운송 수단을 탑승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만 이동을 하는 여행을 말한답니다. 한마디로 무척 고단한 여행이지요.

 

매일같이 텐트를 쳤고, 직접 밥을 지어 먹었고, 공동묘지에서 잠을 자야했고, 지리산에서

태풍을 만났고, 속리산에서 다시 또 태풍을 만났고... 

 

그렇게 무동력 여행 기록이 쌓이다보니 어느새 6,500km가 되었더군요.

적지 않은 기록이지요. 그러다보니 첨부사진에서도 보듯 공중파 TV에도 나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그런 숫자놀음식의 기록은 별 의미가 없어보이더군요.

겨우 '나 잘났오!' 하는 자기 자랑이나 떠벌이는 제 자신이 보이더군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아웃도어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고심 끝에 역사트래킹(http://cafe.daum.net/historytrekking) 카페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트래킹을 통해 몸과 마음을 살 찌우고, 역사를 통해 머리를 채우자는 의미로 역사트래킹을 개설하게 된 것입니다.

 

TV뉴스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야스쿠니 젠틀맨'이라고 부르던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굳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개탄스러운 인터뷰가 역설적으로 저에게 큰 동력을 준 셈입니다.

제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자각심을 주게 됐으니까요!

 

현장에서 배우는 역사만큼 제일 좋은 게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문화답사 기행 프로그램도 많이

생겨 났지요. 하지만 그런 답사 기행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에 속도전 하듯 여러 답사지를 다니더군요.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와 다를 바 없는 형식이 되는 것이지요. 

 

역사트래킹은 그런 식의 '버스 투어'를 지양합니다. 역사트래킹 코스를 개척할 때 고려 사항 중

하나가 대중교통 친화성입니다. 즉 대중교통만으로도 역사트래킹을 즐길 수 있게 코스를 짜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역사트래킹은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10km 정도 걷기가 수반된 아웃도어 활동입니다.

역사트래킹 마스터는 문화유적 앞에서는 유홍준 선생이 되어 해당 유적을 설명하고, 트래킹에서는

엄홍길 대장이 되어 도보꾼들을 리딩합니다.

 

 

 

 

 

 

 

 

서설이 좀 길어졌네요. 역사트래킹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번에 만나볼 역사트래킹은 <한강 역사트래킹>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여의도 샛강을 지나 한강대교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약 8km 정도의 거리로 3시간 10분 정도 한강과 여의도 일대를 걸으며 트래킹을 할 생각입니다.

 

느긋하게 한강과 여의도를 산책하면서 그 곳에 관련된 역사이야기를 듣는 것이죠.

평소에 하는 산책보다 조금 더 먼 거리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트래킹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걷다보시면 여의도 주변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드실지 모릅니다.

 

 

트래킹을 하다보면 허기가 질 수 있으니 간단한 간식 같은 것을 싸오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 강바람이 추울 수 있으니 여분의 옷을 준비하는 센스도 잊지 마시길!

 

 

일시: 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모임장소: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  번 출구

이동경로: 당산역 ▶ 선유도 ▶ 샛강(여의도) ▶ 한강대교 ▶ 한강텃밭

준비물: 물과 간식, 여분의 옷

주의점: 트래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하이힐 NO! 트래킹화 YES!

기타: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PS. 숲길 같은 곳을 걸어야지 트래킹이지, 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한강 역사트래킹>은

시티워킹입니다. 제대로 오프로드를 걷고 싶은 분들에게는 좀 약할 수 있지요.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역사트래킹은 무궁무진합니다. 지금도 역사트래킹 코스는 계속 개척중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코스를 개척하고 있답니다. 제가 괜히 마스터라는 칭호를 쓰는 게 아니죠!^^;

 

 

 

 

 

 

 

 

 

 

 

 

 

 

 

 

 

 

 

 

 

기사 관련 사진
<산케이신문>이 지난 21일자에 실은 칼럼.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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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케이신문>이 "한국의 교학사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도입했다"면서 <후쇼샤 교과서>를 비판해 온 "한국의 반성"을 촉구하는 칼럼을 실은 사실이 24일 확인됐다. 교학사 교과서를 무기로 한국의 반성을 촉구한 셈이다. 일본의 주요 신문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칭찬하는 기사를 실은 것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신문은 지난 21일자에 구로다 가츠히로 서울지국장이 쓴 "'한국판 새 역사 교과서'에 압력"이란 칼럼을 실어 교학사 교과서 논란을 소개하면서 일본 보수파의 생각을 대변했다.



구로다 "'한국판 후쇼샤 교과서'가 세상을 시끄럽게..."


구로다는 칼럼에서 "일본에서 일어난 것은 한국에서도 반드시 일어난다"면서 "한국에서도 좌익 편향 역사 교과서에 대항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거기에서 태어난 '한국판 후쇼샤 교과서'가 지금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 한국의 상황을 전했다.

이어 구로다는 "교학사판 새 교과서는 일본 지배 하에서도 한국인은 자기 계발에 힘 써왔으며 한국 사회는 발전했다는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는 등 좌파를 비롯한 (한국의) 공식 사관이 가장 싫어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도입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교학사 교과서 필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강하게 부인해왔다.

그러면서 구로다는 "(한국의) 보수는 좌파 주도의 기존 교과서를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것도 일본에서의 논쟁과 비슷하다"면서 한국의 뉴라이트 사관에 힘을 실어줬다.

구로다는 결론 부분에서 "사실은 한국 좌파가 교학사 교과서에 가한 압력과 협박처럼 한국이 일본의 새로운 교과서에도 가해왔다"고 주장하면서 다음처럼 글을 맺었다.

"한국에서 이번 '새로운 교과서 소동'은 일본의 교과서 문제에 대한 한국에서의 지나친 개입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이신철 교수 "교학사 지지자들 어떻게 답할지 궁금"

이 칼럼에 대해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산케이신문>은 전교조와 기존 교과서들을 비판하고, 교학사 교과서를 은근히 응원한다"면서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일본 보수파들의 태도를 바탕으로 한국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한국의 교과서 소동을 후소샤 교과서에 대한 한국 태도를 반성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제안에 대해 교학사 지지자들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경향신문>은 지난 9일자 기사에서 "일본의 영자신문 재팬타임스가 지난 4일 '한국 교과서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한다(South Korean text lauds Japan colonial rule)'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교학사 교과서가) 일제강점기가 한반도 근대화를 도왔는지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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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인지 식인종 군대화론인지, 별 같지도 않은 이론들이 역사교과서에 등재된다는 것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교육이란 것이,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인가? 도대체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 조선이 무엇이 발전했다는 것인가?

그렇게 일본 제국주의 시절이 좋으신가? 그 시절이 그리우신가? 정말 웃기는구먼~!

 

 

 

 

 

 

 

 

 

 

 

 

사설.칼럼

렌즈세상

[렌즈세상] 죽방울놀이

등록 : 2013.08.26 18:12수정 : 2013.08.26 18:12

 

 

 

 

 

 

 

 

 

 

 

 

 

 

 

 

 

 

 

 

 

 

 

 

 

 

 

우리문화연구소 이원하 소장이 아이들 앞에서 죽방울놀이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소장은 충남 공주에서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에 대한 연구와 보존에 힘쓰고 있는데요. 죽방울놀이는 보부상단의 볼거리 문화에서

 

전해 내려왔다고 합니다.

 

8월2일 ‘거창아시아1인극제’에서 찍었습니다.

 

곽동운/ 여행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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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7일자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란에 필자가 찍은 사진이 게재됐다. 죽방울놀이라고,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놀이에 대한 사진이 게재된 것이다. 이 사진에 등장한 이원하 소장은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에 대한 애정이 강한 분이다. 이 소장과 잠깐 인터뷰를 했을때 필자는 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우리나라 전통놀이 문화를 통해 제 삶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제 얼굴이 많이 험상 궂잖아요. 그런데 우리 놀이문화를 알고, 접하고, 연구하다보니 어느새 제 얼굴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더군요~"

 

이 소장의 얼굴에서 부드러움이 묻어 나오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전통놀이 문화에 대한 이 소장의 신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제가 충남 공주의 한 아파트에서 사는데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도 흙이 없어요. 아이들이 다친다고 놀이터에 우레탄을 깔아 놓은 겁니다. 공주시에 사는 아이들이 이 정도인데 다른 대도시의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도대체 유년기에 흙이나 땅을 만지고 놀 기회가 없는 거에요.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면서 얻는 정서적인 느낌들이 애초부터 박탈 당하는 것이죠.'

 

그렇다. 이 소장의 말처럼 흙 장난을 하면서 얻는 정서적인 감흥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 유년시절의 경험과 느낌들은 소리소문 없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크게 각인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경험과 느낌들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것들이다. 황혼에 잠긴 어르신들이 50~60년도 더 지난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미소를 띄우며, 바로 엊그제 이야기처럼 떠올리는 것을 보면 그 유년시절의 기억들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귀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학원에 쫓겨, 스마트폰에 쫓겨 어른들보다 더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흙을 되돌려주자. 흙에서 놀다 무릎팍이 좀 까진다고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상처나면 소독연고 좀 발라주면 되지 뭐. 자신의 아이가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고 자라기를 원하시나? 왠만한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실 것이다. 그럼 아이들에게 숨 쉴 공간을, 또한 정서의 공간을 내주시라. 그냥 흙에서 재밌게 놀 수 있게 짬을 주시라~!    

 

 

 

 

 

 

 

 

 

***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주최하는 <신문논술대회>에 참여를 했었다. 예전부터 언론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어쩌면 당연한 참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금에도 눈독을 들이고...ㅋ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신문논술대회는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공모전 중에 하나다. 그래서 지원자들도 많고 경쟁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공모전이 바로 신문논술대회라고 한다. 하긴 이런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다면 입사 원서 쓸 때 상당히 유리할 수 있지~

 

그나저나 필자는 당시 은상을 수상했었다. 대상 - 금상 -은상 순이기에, 필자는 3등을 했다. 응모할 때 필자는 내심 대상을 생각했었다. 다른이들이 쓰지 않는 외신에 대한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상작들을 살펴보니 외신에 대한 이야기는 필자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3등상. 은상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상에 대한 미련은 남는법! 그래서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꼭 다시 참여를 할 생각이다. 대상 한 번 먹어봐야지! 그래서 상금 받아서 소고기 한 번 구워 묵어야지~ㅋㅋㅋ 

 

 

 

 

 

 

 

 

 

 

 

 

 

 

* 거창귀농학교: 거창귀농학교를 배경으로 한 컷

 

 

 

 


 

* 앤젤리: 홍콩에서 온 앤젤리. 귀농학교 황토방을 혼자 차지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안녕하세요?emoticon

저는 자칭 거창귀농학교의 미디어 담당인 곽작가라고 합니다.

가을비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9월 14일 오전에,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있어 이렇게 홈페이지에 글을 남겨봅니다.

우프코리아라를 통해 홍콩에서 온 젊은 처자가 거창귀농학교에
약 4일간 머무르고 갔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합니다.

아참 우프가 무엇이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우프(WWOOF: Willing Workers on Organic Farms) 는 세계 각국의
유기농 농가들이 가입되어 있는 전세계적인 모임입니다.

한국 유기농 농가나 서구의 유기농 농가나 일손이 딸리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사람의 손발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그런 부분을 우프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프 지원자들은 4~6시간 정도의 노동력을 투여하고, 그에 대한 댓가로
농가들은 지원자들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노동의 댓가로 임금을 받는 워킹홀리데이하고는 다른게 우프는 원칙적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답니다.  뭐 일을 잘한다면 농장주가 차비 같은 거마금 정도는 주지 않을까요???ㅋ

지금까지 많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거창귀농학교를 다녀갔답니다.
우프를 통해서요. 가까운 아시아 뿐아니라 미국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고,
심지어 동유럽인 불가리아에서 온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들은 우프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하더군요.
지금 소개하는 앤젤리도 한국의 문화와 농촌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에 왔고, 이곳 거창 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고 하더군요.



* 앤젤리: 귀농학교에 와서 앤젤리는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하고 갔답니다. 효소 담기 작업, 풀베기 작업 등을 잘 해주더군요.



* 사과작업: 앤젤리가 귀농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한참 홍로 사과 수확 작업으로 바쁠 때였습니다.
한편 앤젤리는 고제 사과가 맛있다고 '아삭아삭' 거리며 맛있게 잘 먹더군요



 


더불어 거창귀농학교와 관련된 소식이 하나 더 있어 이 자리에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추석을 코 앞에 앞 둔 9월 14일 오전 9시,
거창귀농학교에서는 경사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둠반 14기 수료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곳 거창군 고제면은
홍로 사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홍로는 붉은 빛깔이
일품인 품종으로 추석 차례상에 올려 지는 좋은 사과입니다.

그 홍로를 추석을 앞두고 수확하는 터라 9월 초순이 되면
고제면은 전체가 정신이 없을 정도가 됩니다.
오죽하면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렇게 바쁠 시기에 모집된 기수라서 그런지
14기분들은 매일같이 사과농장에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사과를 따고, 선별을 하고, 포장을 하고...

이번 기수들은 이론적인 면보다는 과수 농가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수료를 한 셈입니다. 한마디로 현장 교육을 제대로 수행한 셈입니다.

이번 모둠반 14기는 총6명이 입교하여 아무러 사고 없이 6명 전부가
수료를 했답니다. 이제는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구체적인 귀농에 대한
설계도를 그리실 겁니다. 그 설계도가 잘 그려져서 성공적인 귀농, 귀촌을
이루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안녕하세요? 곽작가입니다.

더운 여름, 어떻게들 보내시고 계시나요? 열대야 때문에 잠도 들기 어려운 이 시기! 저도 무척 괴로웠답니다. 왜? 여름 정기 투어가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같았으면 벌써 여행을 다녀와서 뒷마무리 작업 중이었을 텐데... 그렇게 해야 할 일을 못했더니 몸에 좀이 쑤시더군요. 역시 계획한 일은 해야 하는게 순리인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이 발행될 시점에 저는 춘천행 ITX를 타고 있을 겁니다. 작년 백두대간자전거여행에 이어 올해 여행의 시작점도 춘천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은 춘천에서 시작하여 계속 남진을 할 예정입니다. 서부 강원권과 충청북도를 중심으로 이동해 지리산 부근에서 남해바다쪽으로 핸들을 돌릴 예정입니다. 즉, 백두대간과 남해바다 탐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름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이라고 명칭을 붙였습니다.

 

 

 

대충 헤아려보니 거의 1,500km 정도 이동할 것 같네요. 만만치 않은 거리죠. 그래서 시일도 한 40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겠죠!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치고 와서 열심히 후기를 남기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길!

 

 

 

 

ps. 이번 여행에서는 새로운 도보여행길 개척을 위한 사전작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새로운 도보여행길은 남해바닷길입니다. 일명 '남바다'라고 불릴 예정입니다. 전남과 경남, 부산까지 약 400km의 국토횡단 도보여행길을 개척 준비중입니다. 영호남의 화합을 담은 도보여행길을 만드는 것인 만큼 아주 잘 만들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일정이 변경되서 14일이 아닌 15일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8월 15일에 출발하는 셈이니 광복절 기념 자전거여행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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