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궁삼거리: 여기서 직진을 하면 성삼재가 나오고, 우회전을 하면 정령치가 나온다.

 

 

 

 

# 성삼재에서 여행 자랑을 해야겠다!

 

7월 27일 오후 7시

드디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진입했다. 유명한 달궁 삼거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관통도로의 경사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보통 산행을 할 때 자신의 에너지 중 30%는 비축해놔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행 가이드'는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젖 먹던 힘까지 내뿜어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그냥 등산 배낭을 메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든데 40kg 정도 되는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올라가야 하다니…. 어느 구간은 너무 경사도가 심해서 자전거가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내 에너지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너지 30% 비축론은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성삼재로 향했고, 지리산은 어둠으로 덮였다. 이제 슬슬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도 보이기 시작했다.

'푸하핫, 드디어 내 여행도 끝이 보이는구나. 성삼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인사하고 여행 자랑 좀 해야지!'

내 발걸음과 블루야크의 바퀴질도 더 분주해졌다. 빨리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노고단이 눈앞에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성삼재: 드디어 성삼재에 도달했다. 어두운 시각에 도착했던 터라 사진도 잘 안 찍혔다.

 

 

 

 

7월 27일 오후 8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드디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난 해냈다. 결국 여행의 끝을 본 것이다. 어둠 속 성삼재는 고요했다.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성삼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성삼재 이곳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쳤습니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뵙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차관리소에서 급히 나오셨다.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칭찬은커녕 꾸지람부터 듣다!

 

"안녕하세요."
"아니 이 밤에 여기는 뭐하러 올라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는, 서둘러 쇠사슬로 자동차 진입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뭐해요. 당장 가요."
"……."

역시 또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당혹스러웠다. 힘든 여행을 종결짓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소리가 퉁명스러운 꾸짖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런 괄시나 당하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리산에 왔단 말인가? 내 여행이 이렇게 멸시를 당할 정도로 하찮았단 말인가?'

2011년에 태풍을 맞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억울했다. 그나마 태풍을 맞았을 때는 관리소 직원이 직접 커피를 타주며 필자의 '무사귀환'을 염려해줬다. 그런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일부러 국립공원 직원분을 찾아 먼저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소망은 퉁명스러운 꾸짖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렇게 혼자 오버 하냐. 뭐 대단한 여행이라고…. 대충 정리하고 빨리 서울 갈 생각이나 해야겠다.'

심신이 다 지쳤다. 그냥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심야고속버스라도 있으면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지리산 관통도로를 타고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동이 좋은 자동차도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는 '죽음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그곳을 내려간다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야 했다. 그 직원이 퇴거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멸시를 당했더니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가긴 가야 하는데, 내려갔다가는 바로 골로 갈 텐데….'

 

 

 

 

 

 

* 노고단 탐방소: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저렇게 노고 할매가 반겨주었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내 자전거는 해발 1,380m까지 올라갔다.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참 멀리도 간 셈이다.

 

 

 

 

 

# "이러다 과태료 딱지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면 되지 않던가? 그냥 노고단으로 가면 되지 않던가?

현재 노고단-성삼재 구간은 임도로 돼 있다. 그래서 1톤 트럭도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는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일몰 후 야간에는 산행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개의 규칙을 어기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한밤중 지리산은 고요했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랜턴을 끄고 달빛에 의존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봤다. 한밤중 지리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가니 노고단에서 빛나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어떤 젊은 국립공원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간 산행에, 자전거까지…. 이러시면 안 돼죠. 과태료 딱지를 맞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규칙을 꼭 지켜주십시오. 어쨌든 여행이 완료된 건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무사히 종료됐다. 성삼재에서 빰 맞고 노고단에서 화풀이 한 경우이지만, 어쨌든 지리산에서 무사히 여행을 종료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 육십령: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 고개. 육십령도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개이다.

 지리산까지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선 개념으로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산까지 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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