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암마을: 외암마을은 설화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을 마을 안쪽으로 끌어왔다.

 그렇게 끌어들인 물은 연못이나 빨래터로 사용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진은 물래방아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 외암마을: 연자방아

 

 

 

*외암마을: 돌담길은 외암마을의 또다른 자랑이다. 전통가옥과 어우러진 돌담은 산책 동반자다.

 

 

 

 

 

* 외암마을: 유명한 외암마을의 참판댁이다.

 

 

 

 

* 외암마을: 외암마을 참판댁

 

 

 

 

 

* 외암마을: 외암마을 참판댁. 참판을 지낸 이정렬에게 조선 고종이 사액한 고택이다.

외암마을 참판댁은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등재되어 있다.

 

 

 

 

* 마루: 요즘은 기와집 자체를 보기 힘든터라 저렇게 마루에 걸터 앉은 모습도 보기가 쉽지 않다.  

 

 

 

 

 

* 외암마을: 멍석과 물지개

 

 

 

 

 

* 설화산: 설화산이 감싸고 있는 외암마을은 '잘 생긴' 동네다.

 

 

 

 

* 외암마을: 설화산과 어우러진 초가집. 사진 중간 하단에 있는 누렁바둑이는 외암마을의 감시견(?)이라고 한다.  

 

 

 

 

* 두부만들기: 아이들은 어처구니를 열심히 돌리며 두부를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고 노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 준비가 되어 있다!

 

 

 

 

* 핸드폰가방: 필자가 만든 핸드폰 가방. 나름대로 수작이라고 자평해본다.

공작 시간에 들었던 '손 재주 없다'라는 말을 극복할 정도로 수작인가? 독자들의 후덕한 평가를 기대해본다.

 

 

 

 

 

 

 

 

 

 

 

 

 

골짜기

 

당신과의 만남은 그저 작은 인연

 

난 선을 그었고 파내서 골에 내었지

 

골은 깊어졌고 난 두더지가 되었네

 

어둠 속에서도 향기는 스미는 법

 

꽃 향기가 내 눈을 뜨게 했지

 

온 골짜기에 봄꽃이 만발했다네

 

당신이 몰래 뿌려놓은 씨앗이

 

너와 나의 인연의 꽃이 되었네

 

 

 

 

 

 

 

 

 

 

 

 

 

2013년도 서울시에서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게시될 시를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 제가 시에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시민들이 내가 쓴 시를 보고 어떤 느낌을 가질까, 하는 호기심이 들어 그날로 응모를 했었지요.

 

다행히 합격해서 당당히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 게시되는 영광을 느리게 됐답니다.

 

제목은 '골짜기'입니다. 아웃도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 대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저런 시를 작성하였답니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보니 운문이 아니라 산문 같네요~ㅋ 다른 공모작들은 짧게짧게 쓰여있던데...

 

그나저나 스크린도어에 제 모습이 반사가 되서 자연스럽게 셀카가 되었네요.

 

그럼 자신이 쓴 시를 앞에 두고 셀카를 찍은 건가요?ㅋ

 

 

게시장소: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 종합운동장 방면(외선순환) 3-3

 

 

 

 

 

 

 

 

 

소셜다이닝 <집밥>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시간 관계상 대면이 아닌 서면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여간 집밥은 무척 기특하단 말야~^^;

 

 

 

 

 

 

소셜 다이닝 사이트인 <집밥> 블로그에 역사트레킹에 대한 소개글이 게재됐네요!

겨우 2번 밖에 개최를 하지 않았었는데... 고맙게도 좋은 게시글을 올려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힘받아서, 더 열심히 달려볼랍니다!

 

 

 

 

 

 

*남태령, 우면산 역사트레킹: 남우 역사트레킹에 참가한 멤버들

 

 

 

* 우면산 길

 

 

 

 

 

일시: 2014년 2월 22일 오후 1시

장소: 남태령, 우면산 일대

참여인원: 마스터를 포함한 7명 ---> 소셜다이닝'집밥'에서 모객을 하였음.

기상: 아직은 겨울이었지만 포근한 날씨였음.

특이사항: 각자 나름대로 아웃도어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오셔서 즐거운 트레킹을 할 수 있었음.

광고: 3월 8일에는 <관악산 역사트레킹>이 예정되어 있음.

 

 

 

 

 

 

 

 

* 남태령 옛길: 남태령 옛길을 알리는 비석

 

 

 

 

 

 

남태령: 남태령에 있는 벙커. 아쉬운 남북 분단의 현실.

 

 

 

 

 

 

* 남태령: 남태령의 오솔길

 

 

 

 

 

 

 

 

 

 

 

 

우금티에 세워진 동학 장승들

- 우금티 장승제이야기

 

14.02.19 14:09l   최종 업데이트 14.02.19 14:0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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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티 장승제 금강 풍물패가 사물놀이를 하고 있다. 한편 왼쪽 장승은 웨이브가 져서 무척 독특한 형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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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티 실제로 동학군들이 살육을 당한 곳은 우금티 고개 아래쪽이다. 사진에서 버스와 트럭이 다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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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으로 불리는 장승은 마을 입구와 같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세워졌다. 역병 같은 액운을 막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던 것이다. 즉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이자 지킴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공주 우금티 고개에 세워지는 장승들은 그런 교과서적인 의미의 장승들과는 '임무'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왜? 우금티는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동학군들이 결사항전을 벌인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동학군들의 한, 민초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기에 그곳에 세워지는 장승들도 남다른 '스토리'를 갖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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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장승작업은 나무 껍질을 벗기는 것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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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김작업 장승의 얼굴과 복부 부분의 틀을 잡기 위해 전기톱으로 깎고 있다. 장승은 남녀 쌍으로 제작하기에 사진에서처럼 동시 작업을 할 수 있다. 사진 오른편에서 나무 껍질을 벗기고 있는 사람들은 공주대학교 학생들이다. 공주대 이명희 교수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여해 식민지 근대화를 역설했지만 정작 나이 어린 공주대 학생들은 우금티에서 동학 정신을 기리는 장승을 깎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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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 충남 공주시 우금티 고개에서는 우금티 장승제가 거행됐다. 우금티 장승제는 공주민주단체협의회와 우금티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매년 정월대보름 주간에 열렸다. 벌써 2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제례라고 한다.

장승제라고 해서 매년마다 장승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렇게 장승을 깎지 않았던 해는 제례만 드렸다고 한다. 제례를 통해 공주 지역의 무사태평과 함께 동학 정신을 기렸던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간상의 한계 때문에 미리 제작된 거대한 장승이 세워지는 것으로 장승제가 진행된다. 하지만 우금티 장승제에서는 현장에서 장승이 직접 제작되어 참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또한 참관객들이 장승 제작에 직접 손발을 보태기도 했다. 필자도 힘을 보탰다. 땔감을 날랐고, 다듬기 작업도 했다. 하지만 크게 일한 티가 나지 않았다. 역시 내가 잘하는 걸 해야지!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기사를 쓰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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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역시 공주대학교 학생이 글씨가 새겨지는 부분을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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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윤여관 우금티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께서 끌과 망치로 장승의 얼굴 부분을 정교하게 입체화 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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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제작의 첫 단추는 나무껍질 벗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장승에 쓰이는 나무는 밤나무와 같은 목질이 단단한 것들이 선호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야산에서 구하기 쉬운 소나무가 주로 쓰인다. 껍질이 제거되면 나무는 '알몸'을 드러낸다. 이제 본격적인 장승 제작이 시작되는 것이다.

몸통이 매끈하게 드러난 목재에 전기톱을 이용하여 기본스케치를 하는 것이 두 번째 작업이다. 얼굴 부분과 글씨가 새겨질 복부 부분에 기본스케치를 하게 된다. 이후 얼굴 부분과 몸통부분은 좀 다르게 작업된다.   

얼굴 부분은 끌과 망치로 깎아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마치 조각가가 조각을 하듯이 정교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복부 부분은 낫으로 다듬기 작업을 한다. 글씨가 새겨질 곳이기 때문에 평탄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세 번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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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장승의 밑둥을 불로 그슬리고 있다. 밑둥은 흙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쉽게 부식될 수 있다. 그래서 목질의 내구성을 강화시킬 목적으로 밑둥 부분을 불로 그슬린다. 사진 중앙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이 한준혜 공주민주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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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장승의 복부에 글을 적는다. 보통의 장승들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란 글씨들이 새겨지지만 우금티 장승들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구들이 쓰여진다. 그래서인지 음각을 하지 않고 즉석에서 먹으로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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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나무 밑동을 불로 그슬리는 것이다. 밑동 부분은 땅 속에 묻히기 때문에 쉽게 부식될 수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불로 그슬리는 것이다. 그렇게 불로 그슬리면 목질이 단단해지고, 벌레들이 덜 침투하게 된다. 

이제 글씨를 새기는 작업이다. 칼로 음각을 새기고 그 위에다 먹칠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우금티 장승들은 음각을 하지 않고 그냥 먹으로 글씨를 적었다. 왜? 우금티 장승들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같은 통상적인 문구를 가진 장승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작업은 장승 세우기였다. 미리 준비한 솟대와 함께 장승을 세우는 것으로 장승 작업은 종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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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세우기 예전에는 직접 삽으로 땅을 파서 장승을 세웠지만 요즘은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고 장승을 세운다. 이렇게 하여 장승제작과 장승세우기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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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제 장승세우기가 끝나고 이제 제례가 시작됐다.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원하 사무국장이 제례의 사회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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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 장승 세우기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가 움직여야 가능한 작업이다. 그렇게 마을 주민들의 공동의 염원과 기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승들이 떡~하고 마을 앞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보시라.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세콤'이 달린 것보다도 훨씬 더 든든할 것이다.

우금티 장승들에는 '시민교통노조화합'과 '살림·나눔·모심' 같은 문구들이 새겨졌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과 같은 일반적인 문구들이 아니라 지역 단체들의 염원과 기원이 새겨졌던 것이다. 현안에 맞춰 더 디테일한 문구들이 장승에 새겨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금티에는 한 쌍의 장승들이 더 자리 잡게 되었다. 120년 전, 못다핀 동학군들의 열망이 서려있는 우금티에 농민군들의 뜻을 이어받은 장승들이 더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동학군들의 장승들이 더해지니 우금티가 든든해 보였다.  

장승제가 무사히 끝난 후, 필자도 나름대로 장승에 새겨질 문구를 떠올려보았다. 만약 필자에게 먹과 붓이 주워졌다면 이런 문구를 새겨 넣었을 것이다.

'친일매국노 교과서 축귀'
'국정원 댓글 조작 축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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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한쪽편만 있던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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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 왼쪽에 새로운 장승이 세워졌다. 우금티 고개가 더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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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 책자에 실릴 저의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곽작가도 이번 여행책자에 공저자로 참여를 한 것입니다. 아직 변변한 여행서 하나 출간 하지 못했지만 이번 책자 발간을 기점으로 저도 한발짝 도약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원래는 이 책자가 작년에 나오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발간되지 않았네요.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참 저는 강진과 해남을 중심으로, 트레킹에 대한 내용을 기고했답니다. 삼남길 전남 구간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하였답니다. 남도 이야기를 하니 또 남도에 내려가고 싶네요!ㅋ

 

 

 

 

 

 

 

 

 

 

 

 

 


 


   백두대간의 의미와 유래는?    

 

           
숲에서 만난 세상 / 감성드林 

2014/01/06 15:00

 

                                                                            

 

 

지난해 6월에는 의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1925년 일제에 의해 끊어진 '백두대간 육실령 생태축'이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복원되었거든요.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산림 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이 복원사업으로 끊어진 생태축이 이어지면서 야생동물들의 생명의 길도 함께 열렸답니다. ^^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국토의 등줄기로서 남과 북을 잇는 주축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핵심 축을 이루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백두대간보호지역을 지정하여 백두대간 주변 자연환경 및 생태계를 보호하고 이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을 막고 있어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지리인식체계인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뻗어 있는데요, 생태적인 측면을 넘어 인문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총길이만 약 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따른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구분되어 있죠. 분수계는 비가 내렸을 때 흘러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일 경우 그 경계를 표시하는 선을 말하는데요, 인접한 지역의 하천 경계라 할 수 있어요. ^^ 

 



 

백두대간은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개념으로,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고려한 인식이 나타난 지리관이에요. 백두대간의 개념은 오래 전부터 전해져 왔지만, 조선후기 실학자 신경준의 ‘산경표’를 통해 그 개념이 체계화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백두대간 지형도] (이미지 : 산림청)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맥은 1개 대간과 1개 정간, 그리고 13개 정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동·서로 흘러가는 강을 구분 짓는 큰 산줄기를 대간과 정간, 거기서 갈라져 나와 다른 강들을 구분 짓는 산맥을 정맥이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이러한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어요. ^^

■ 1대간 

백두대간(백두산 - 두류산 - 금강산 - 설악산 - 오대산 - 태백산 - 속리산 - 덕유산 - 지리산)

■ 1정간 
장백정간(원산 - 서수라곶산)

■ 13정맥
청북정맥(낭림산 - 미곶산)
청남정맥(낭림산 - 광량진)
해서정맥(개연산 - 장산곶)
임진북예성남정맥(개연산 - 풍덕차)
한북정맥(분수령 - 장명산)
한남정맥(칠현산 - 문수산)
한남금북정맥(속리산 - 칠현산)
금북정맥(칠현산 - 안흥진)
금남정맥(마이산 - 조룡산)
금남호남정맥(장안치 - 마이산)
호남정맥(마이산 - 백운산)
낙동정맥(태백산 - 몰운대)
낙남정맥(지리산 - 분산)
산이름으로 된 것(2개) 백두대간,장백정간
지방이름으로 된 것(2개) 호남정맥, 해서정맥
강이름으로 된 것(11개)

■ 10대강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요? 개념을 체계화 한 건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신경준이지만, 그 시작은 우리민족 고유의 성산인 백두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백두산은 고대단군신화에서부터 언제나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고, 민족의 정기가 서린 산으로 사람들의 숭배대상이 되어 왔죠. 

 



백두대간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문헌은 10세기 초 고려의 승려였던 도선이 지은 ‘옥룡기’인데요,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끝났으며 물의 근원, 나무줄기의 땅이다"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어요. 

또한 1751년 만들어진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대간은 끊어지지 않고 옆으로 뻗었으며 남쪽으로 수천 리를 내려가 경상도 태백에 까지 통하여 하나의 맥령을 이루었다"는 문장에서 ‘대간’이라는 단어가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죠. 

 



이밖에도 백두대간과 백두정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으로, 백두산을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이자 대간의 시작 산으로 보았어요.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산맥의 전체적인 모습도 제시했죠. 그 다음에 실학자 신경준이 ‘산경표’를 통해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을 연결하여 알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답니다. 


백두대간은 우리나라의 핵심 산줄기로 민족정기의 상징이자 다양한 동식물군이 서식하는 자연유산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생태 문화적으로 잘 보존되고 보호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백두대간에 대해 조금씩만 더 관심을 기울여 보도록 해요. ^^ 

 

 

 

 

오랜만에 포스팅을 해봅니다. 거의 3주 만에 하는 것 같네요. 블로그 친구분들 잘 지내시고 계시죠?

오늘은 설 명절입니다. 차례를 지낸다, 고향을 다녀온다 무척 분주하셨을 것 같네요.

아무쪼록 명절 잘 보내시고, 다시 귀경하실 때에는 안전운전 잊지 마세요!

 

2014년, 청말띠에 맞춰서 포스팅을 하려고 말 사진을 넣어 봤습니다. 아쉽게도 청색 말은 아니네요.

더군다나 말들이 힘차게 발길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에서 졸고 있네요!ㅋ

 

사실 청말은 상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청말을 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갈색말, 검정말, 흰말, 얼룩말...ㅋ

 

청말이 상상의 동물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닐 겁니다.

그저 힘차게 발길질을 하는 말의 모습에 삶의 활력을 얻으면 그걸로 좋은 일이니까요!

 

먼지를 휘날리며 달리는 기운찬 말들처럼

여러분들도 2014년에는 크게 성대하시길!

 

 

-2009년 1차 국토종단여행 때,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 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선돌

다음 목적지는 선돌이었다. 선돌은 서강 강변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다. 선돌은 그 자태가 오묘하여 예로부터 '신선암'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런 기묘한 모습 때문에 선돌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예전에는 전망대에 올라 선돌에서 서강을 내려다 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래쪽에서 선돌을 올려다 볼 생각으로 수풀을 헤집고 나갔다. 선돌 옆으로는 서강이 동강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인적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없으면 길도 사라지는 걸까? 선돌로 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잡초가 무성하여 길을 잡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보람이 있었다.

"이야 정말 멋지군! 위에서 볼 때랑은 또 완전 다르네. 봐봐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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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돌 여름날의 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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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돌 여름날의 선돌. 화면 중앙에 있는 것이 선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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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돌 선돌의 겨울. 서강이 꽁꽁 얼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선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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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선돌을 내려 볼 때하고는 또다른 맛이었다. 큰 기암괴석이 눈 앞에 떡 하고 서 있으니, 그  모습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한편 전에는 서강이 꽁꽁 언 겨울 풍경을 내려다 봤는데 이제는 푸른 강물과 조화를 이룬 선돌을 보게 됐다. 그것도 역시 색다른 맛이었다.  

청령포 터널이 숨어(?)있는 방절산 탐방으로 영월에서의 일정은 마무리가 됐다. 방절산은 청령포 선착장 뒤편에 있는 작은 야산인데 이곳에 올라서면 청령포 일대는 물론 영월읍내도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또한 멀리 동강과 서강이 합수되어 남한강을 이루는 곳도 보인다. 이 곳 역시 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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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기차터널 청령포 기차터널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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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기차터널 청령포 기차터널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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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방절산 탐방까지 마치니 3일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며칠 더 영월에 머물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베이스캠프를 해체해야 했다. 갈 길이 구만리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예상했던 이동거리는 진작 파기했다. 일정 정도 감안을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속도가 너무 안 나왔다. 장거리 자전거여행만 5년째인데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됐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속도가 안 나오는 만큼, 또 나름대로의 재미도 있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여행이나 인생살이나 비슷한 거 같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지만 예상외의 것에서 재미와 위안을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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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절산 방절산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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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절산 방절산의 겨울. 영월읍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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