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천 암수바위: 다랭이논 탐방로 중간에 있었다. 남근석은 그 형상이 독특하여, 여성 탐방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 가천 다랭이논: 명승 지정 이후, 다랭이논 주변으로 산책로와 휴게시설이 정비 되었다.

 

 

 

 

# 피와 땀, 그리고 똥으로 일군 가천 다랭이논

다랭이논과 같은 계단식 경작지는 널찍한 평야가 없는 지역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고산지대나 도서지역에 주로 분포되고 있다. 산의 비탈면을 깎고, 돌 축대를 쌓아 한 뼘이라도 더 농작물을 심을 수 있게 옛 농부들이 피땀을 흘렸던 것이다. 세찬 바닷바람을 견디며 돌이 박힌 척박한 땅을 고르고, 또 골랐던 것이다.

특히 염분이 많이 함유된 도서 지역의 토양 성분 때문에 일부러 육지에서 똥을 퍼 나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육지의 똥을 실은 '똥배'까지 운항을 했을 정도로 가천 다랭이논에는 남해사람들의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토양 속에 스며들어가 있던 것이다.

비록 똥지게를 메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갔겠지만 남해 사람들은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척박한 땅을 옥토로 개간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현재 가천 다랭이논의 농업 생산성을 잘 모른다. 그 땅이 소출이 넉넉한 '금싸라기' 땅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천 다랭이논은 옥토가 맞다. 왜? 연평균 20만 명 이상이 그 곳을 다녀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경작지가 연평균 2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가?

 

 

 

 

 

* 가천 다랭이논: 명승 지정 이후, 다랭이논 인근에 현대식 설비를 갖춘 팬션이나 민박집도 많이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농가를 리모델링 해서 팬션으로 개조한 집들도 여러채 있었다.

 

 

* 가천 다랭이논: 다랭이 논의 외형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공중에서 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항공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노릇이니, 뒷산인 설흘산에 올라가서 다랭이논을 내려다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 다랭이논 하나 지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비탈이 져서 그런가, 다랭이논에서의 농사일은 일반 논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또한 지형적인 한계상 기계영농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농사지을 사람이 노인들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놀고 있는 땅도 많다고 한다. 이렇듯 다랭이논을 지키는 것이 힘든 일이다.

인분을 실고 오던 '똥배'들이 오갔던 뱃길에는 거대한 컨테이너선과 유조선들이 푸른 물결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저멀리 건너편 여수 앞바다에는 여수항 입항을 기다리는 큰 배들이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렇듯 남해바다는 그간 많이 변해왔다.

무엇이든 변하기 마련이고, 또 변해야 하겠지만 변하지 않고 우리곁에 계속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가천 다랭이논은 그냥 그대로 있어 주었으면 한다. 그냥 그렇게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

 

 

 

 

 

 

 

 

 

* 달품 게스트하우스: 가천 다랭이논과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월포 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주인장께서 문화 활동을 하시다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했다고 한다. 여행에 대한 주인장의 마인드가 참 좋아서 추천해 본다. 비용도 무척 저렴해서 좋다.

 

 

 

 

 

▲ 뱀: 본 기사와는 상관없지만 계사년 뱀띠의 해를 맞아 뱀 사진을 하나 올려본다. 이 사진은 필자가 2011년 여름,

충남 서산시 아라메길 탐방중에 촬영한 것이다.녀석은 누가 지나가던지 말던지, 그냥 저렇게 누워 있었다.

마치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뱀꼬리 부근에 똥파리가 한마리 앉아 있다는 것이다. 사진 왼쪽 하단부를 보시라

 

 

 

 

 

* 가천 다랭이논: 다랭인논 앞쪽은 푸른 남해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 남해군 가천 다랭이논: 층층이 쌓아 올려진 모습이다.

 

 

 

 

옛말에 벼농사는 '팔십팔(八十八)', 즉 88번의 손이 간다고 할 만큼 번거로운 작업이었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영농의 기계화로 말미암아 그 수고가 훨씬 덜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벼농사는 막걸리와 줄담배를 떠올리게 하는 고된 작업이다.

벼농사는 그동안 우리 땅에서 농업의 근간으로 받들어져 왔다. 하지만 형편없는 식량 자급률과 그보다 더 형편없는 농협 수매가가 말해주듯 그 근간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화 현상, 농촌 인구의 감소, 농업 생산성 저하 등. 이런 누구나 다 아는 내용들을 필자까지 나서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한 가지는 언급할 부분이 있다. 필자는 여행 프리랜서이기에 그동안 많은 지역을 탐방해 왔고, 현지에 있는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에는 귀농하신 분들도 많았다.

그렇게 귀농자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벼농사를 짓겠다는 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존부터 농촌을 지켜오던 분들은 물론 신규 진입을 원하는 분들도 벼농사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도시가 변해가듯, 농촌도 변해가기 마련이다. 쌀이 주곡으로 자리 잡아 농업의 중심을 이루기 시작한 건 조선 후기부터였지만, 지금은 주곡의 개념부터가 완전히 바뀐 시대다. 탐관오리들이 놋그릇 하나까지도 수탈해 가던 시대는 역사책으로 존재할 뿐, 지금은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각 지자체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시대다.

그렇듯 변화의 물결은 농촌에도 불어 닥쳤고, 그 변화로 인해 벼농사 감소 추세는 더욱 더 가팔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변화의 추세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가천 다랭이논의 명승지 지정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농사를 짓던 땅을 명승지로 지정하여 보전해야 될 만큼 이제 벼농사는 그 입지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 가천 다랭이논: 돌 축대를 쌓아 층층이 계단 식으로 논을 만들었다.

 

 

* 가천 다랭이논: 농한기라서 그런지, 다른 밭작물을 심었다. 파를 심은 것 같다. 아니면 마늘인가? 남해군은 마늘로 유명한 곳이다.

 

 

 

 

 

# 계단식논과 남해바다가 어우러진, 가천 다랭이논

필자가 다랭이논을 방문했을 때는 지난 1월 27일이었다.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논(국가지정 명승 15호)은 우리가 보아왔던 통상적인 육지 논과는 다른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비탈진 경사면에 층층이 이어진 계단식 논과 푸른 남해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은 그 자체가 명승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다랭이논은 미국 CNN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3위'에 선정했다. 물론 외부적 권위를 끌어와서, 우리 명소의 경중을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판타스틱'한 풍광에 대한 감흥은 미국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동일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CNN이든, BBC든, NHK든 세계 각국의 유수의 언론들이 많이 몰려와서 다랭이논을 비롯한, 우리의 명소와 문화재에 대해 다각도로 취재를 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바로 돈 안들이고 한류를 퍼트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필자가 한겨울에 그곳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논에 벼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계절에 갔으면 더욱더 생생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녹색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는 다랭이논과 쪽빛 남해바다가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준다는 여름에, 다시 한번 남해군을 방문해볼 생각이다.   

 

 

 

* 다랭이논: 논에서 벼들이 파릇파릇하게 자라는 계절에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겨울에 가니, 다랭이논도 농한기였다.

녹색의 색감이 없어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다시 한 번 방문할 생각이다.

 

 

 

▲ 청량산 청량폭포: 등산로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량폭포가 있었다.

 

 

 

 

▲ 청량사: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 어제는 물귀신, 오늘은 고기귀신의 유혹에 넘어가다!

즐겁게 청량산 산행을 마치고 난 후, 필자가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경이었다. 그런데 내 베이스캠프 옆쪽에 승용차와 함께 작은 텐트가 하나 쳐져 있었고, 수염을 기른 어떤 아저씨가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겹살을 굽는지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내 코를 자극시켰다. 어제는 물귀신이 나를 유혹하더니만 오늘은 고기귀신이 나를 유혹하나?

"자전거여행 다니시나 봐요? 여기 와서 같이 식사 하시겠어요?"

서울에서 봉화군으로 귀농을 하셨다는 분이셨다. 자신도 젊었을 때 자전거여행을 많이 다녔던 터라 자전거 여행족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아참, 아까 저 아래에서 쓰레기를 줍던데..."
"그거요. 제가 먹은 건 아니고요. 그냥 보기 흉해서 제가 환경미화 좀 했죠."
"아, 역시 그랬구나! 진짜 자전거여행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야."

별 뜻 없이 쓰레기를 주었을 뿐인데, 그 덕에 난 푸짐하게 삼겹살과 술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착한 일을 해서 내가 상을 받았던 것일까? 그 귀농아저씨도 그날 같이 캠핑을 했다. 젊은 시절 캠핑을 자주했던 분이라 귀농 이후에도 종종 캠핑을 해오셨다고 한다.

 

 

 

 

 ▲ 청량산 도립공원 주자창: 필자가 청량산을 방문했을 때는 장마철이라 그랬는지 주자창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최고의 캠핑을 즐길 수가 있었다.

 

 

 

 

 

 

 * 청량사: 청량사는 경사면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계단이 많은 사찰이었다. 한편 청량사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잘 정돈된 사찰이라고 할까?

 

 

 

 

 

# 명당자리였던 청량산 베이스캠프

 

"그 팔각정 명당자리에요. 그 자리 내가 좋아하는 자리인데..."

알고 보니 내가 아저씨의 명당자리를 '선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량산 등반에서 오는 피로감에다 푸짐한 저녁 식사까지 대접받았더니 노곤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은 자리에 눕자마자 그냥 눈이 감겼던 것 같다.

다음날.
그토록 예쁘게 안개가 낀 산을, 난 난생처음 보았다. 낙동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청량산 봉우리들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장관중의 장관이었다. 마치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맛에 강변 캠핑을 하는 거구나!

그렇게 진기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뒤로 하고 나는 계속 자전거여행을 이어갔다. 외롭고 힘든 길이었지만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으니, 난 행운아였던 셈이다.

 

 

 

 

▲ 차 한 잔: 청량사 같은 고즈넉한 사찰에서 느긋하게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  

 

 

 

 

 ▲ 청량사 청량사 석탑

 

 

 

 * 청량사 전통 찻 집: 저런 곳에서 풍경 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 청량사: 청량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 사찰 한 가운데에는 석탑과 함께 부처님이 계셨다.

 

 

 

 

 

* 청량사: 보기만 해도 시원한 곳에 부처님이 계셨다!

 

 

 

 

 

# 청량산 베이스 캠프 완성

 

 

그러면서 손수 커피 한 잔을 타서 내게 건네주었다. 역시 아웃도어를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다르긴 다른 듯싶었다.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자칫하면 숙소도 못 잡고 노숙을 할 판이었는데 말이다. 시골 인심에 아웃도어 인심까지 더해진 행운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의존하여 그 직원이 알려준 곳을 찾아갔다. 그 곳은 팔각정 같은 곳으로 나무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해두고 있었다. 좋은 풍광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장소인 듯싶었지만 내 시야는 가로등 불빛 너머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주위 풍광만 지레짐작 할 수밖에 없었다. 난 서둘러 의자와 테이블을 한 쪽으로 몰아 텐트 칠 공간을 마련했다. 그것들이 돌처럼 무거워서 힘을 좀 쓴 후에야 그럭저럭 비가 들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드디어 나의 '청량산 베이스캠프'가 완성될 수 있었다.

 

 

▲ 청량산 하늘다리: 저 하늘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스릴이 넘친다.

다리를 건널때 강력한 횡풍이 불면 그 스릴감은 공포감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 청량산 하늘다리: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고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의 계곡'에 하늘다리를 걸어놓은 셈이다

 

 

 

 

청량산 하늘다리에서 스릴을 즐기다!

다음날.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 있었는지 늦잠을 잔 것이다. 세면을 하고 난 후에 어제 내가 '물아일체'를 했던 곳을 찾아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그 곳을 찾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기는 좀 움푹 파인 곳처럼 보였다. 선녀탕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충의 틀은 나왔다. 그래서 난 내식대로 이름을 지어보았다. 신선탕으로.

그런데 신선탕 주변에 쓰레기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누군가가 먹다 남은 술병과 안주거리들을 그대로 놓고 간 것이다. 어제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난 좀 짜증이 났다. 자연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와서 '유명관광지 티'를 내고 갔기 때문이었다. 어떤이들이 '유명관광지 티'를 내던 곳에서 난 좋다고 물아일체를 했던 것이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청량산까지 와서 등산을 하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와 텐트를 잘 놓아두고 등산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등산을 하기 전에 신선탕 근처에 있는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갔다. 내가 전날 물아일체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풍기문란도 했기에 그 벌로 환경미화를 자청했던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즐겼던 만큼 남들도 재밌게 놀 수 있게 뒷정리를 깨끗이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청량산도 국립공원 클럽의 물망에 오를 정도로 절경을 뽐내는 산이다. 낙동강 상류와 어우러진 청량산의 모습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또한 산 중턱에 있는 청량사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도 만나 뵐 수 있다.

한편 청량산에는 하늘다리가 있다. 그 곳에 서면 자신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산바람이 세게 분다. 스릴을 느끼고 싶지만 번지점프를 할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은 청량산 하늘다리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구름다리를 통과할 때, 갑작스럽게 돌풍이 불었는데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다리가 요동을 쳤다. 스릴 만점이었다.

 

 

▲ 래프팅: 낙동강 상류는 물살이 급해 래프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청량산 도립공원 인근에는 래프팅 업체들이 산재해 있었다.

 

▲ 청량사 산들이 병풍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부처님이 계신 곳은 주위가 확 트여 있어, 풍광이 시원스럽다.

 

▲ 낙동강 낙동강은 청량산을 굽이쳐 흘러간다.

 

 

 

 

▲ 낙동강과 청량산: 필자가 봉화를 방문했을 때는 장마철이라 그랬는지 무척 유량이 풍부했다. 물소리가 아주 거세게 들렸다.

 

 

 

 

 

 

강변을 바라보면서 잠이 드는 것처럼 로맨틱한 '굿나잇'이 또 있을까? 나는 바다도 좋아하지만 강변에서의 하룻밤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강변이 갖고 있는 아기자기함 때문이다. 난 광활한 망망대해를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 주는 각성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독여 주는 입체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강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강촌으로 친구들과 즐겁게 모꼬지를 가고, 캔 맥주 하나 들고 홀로 한강에 나가 실연의 아픔을 강물에 실어 보내고...

이런 강변에 산이 어우러지면 그 입체성은 더욱더 강조될 것이다. 경쾌하게 흐르는 강물 소리에 산 새 소리가 어우러지면, 최소한 사운드면에서는 이미 무릉도원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이번 여행기는 강변 캠핑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매일같이 텐트를 쳤다. 한계령 도로 정상에서 텐트를 쳤고, 울릉도 북면 천부항에도 쳤다. 또 수많은 초등학교와 폐교, 개활지에도 쳤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최고의 캠핑지에 대한 순위가 매겨졌다. 그럼 최고의 캠핑지 1순위는 어디일까.


 

 

 

 

▲ 청량산 베이스캠프: 낙동강가에 세운 청량산 베이스캠프. 청량산을 병풍 삼고, 낙동강 끌어 안을 수 있었던 최고의 캠핑지였다!

한편 저렇게 정자 아래에 텐트를 치니 밤새 비가 내려도 물난리를 겪을 일이 없었다.

 

 

 

 

*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필자가 방문을 했을 때는 방문객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주차장에서 베이스캠프를 칠 수 있었다.

 

 

 

 

 

# 청량산에 만난 도립공원 직원

 

당시 나는 경북 봉화를 거쳐 안동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강원도 태백을 통해 봉화군으로 입성을 했는데, 내가 보기에 봉화는 행정상으로는 경상북도이지만 지형적으로는 강원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험준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봉화지역은 '심산유곡'의 절경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명소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명호면에 있는 낙동강시발지공원에서부터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까지의 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병풍처럼 서 있는 청량산을 따라 낙동강이 시원하게 내달리는 모습은 장관 중에 장관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근처에 캠핑장이 있나요?"

나는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청했다. 낙동강과 청량산이 뽐내는 절경을 카메라로 담아내느라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그러다 덜컥 일몰 시간을 맞았기 때문. 설상가상이라고 그때 빗줄기가 한 두 방울씩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 여기는 근처에 캠핑장이 없는데... 여유가 있으면 민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비수기라 민박 요금이 비싸지는 않을 텐데요."

자신도 아웃도어를 무척 좋아한다고 밝힌, 관리사무소의 한 젊은 직원은 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비수기에는 민박 요금이 비싸지 않다고 하지만, 내게는 비쌌다. 하루를 만 원으로 버텼던 내게 5만 원 짜리 펜션 숙박은 사치였기 때문이었다.

"아참,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여기에서 쭈욱 가다보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비를 막을 수 있는 오두막이 있거든요. 거기다가 텐트를 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장마철이라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요."

 

 

 

 

* 청량산: 청량산의 최고봉인 장인봉에 올라 한 컷! 청량산은 유력한 국립공원 후보지 중에 한 곳이라고 한다. 


 

 

 

 

▲ 청령포와 청령포 나룻터: 단종이 겨울철에 유배를 왔으면 저 얼음을 넘어서 다시 한양땅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단종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단종의 유배기간도 자신의 운명처럼 무척 짧았던 셈이다.

 

 

 

 

▲ 청령포 터널 청령포에서 방절산(야산)을 넘어가면 청령포역이라고 간이역이 나온다. 그 길 중간에 저 터널이 있었다.

산 중간에 배꼽처럼 뚫린 터널 속으로 기차가 오가는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 걷기 열풍의 빛과 그림자

행정도 유행을 타는 걸까. 제주 올레길의 인기를 벤치마킹한 길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그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 놓은 트레킹 코스들을 많이 탐방해봤다. 물론 좋은 길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도보여행길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부실한 곳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화장실이나 안내판 같은 기본적인 편의 시설 부족은 둘째 치고, 자동차들이 쌩쌩 다니는 도로를 횡단해야 다음 코스로 진행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도 여러 곳 만날 수 있었다.

다른 형식의 여행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보여행의 기본 덕목은 안전이다. 목숨을 내놓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도보여행은 비교적 아웃도어에서 소외되었던 이동권 약자들이 더 많이 선호하는 여행이 아니던가. 남성보다는 여성, 젊은층보다는 장년·노년층이 선호하는 아웃도어 방식이 걷기 여행이라면, 그에 걸맞은 안전시설과 편의시설들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기승전결이 잘 맞아떨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필자는 이 지면에서 '단종 유배길'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길을 기반이 확실히 잡힌 도보여행 코스에 빗대서 비판을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영월군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왕 좋은 길을 만들었으면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편의 시설도 갖추어서 도보꾼들의 발걸음을 불러들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동차 없이도 영월 지역에서 부담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버스편 증편 등 제반 시설 확충에 힘써 달라는 말이다.

 

 

 

 

 

 

* 빨간다리: 영월읍에서 청령포 나룻터까지는 약 2Km 정도 걸린다. 얼마전 청령포 입구쪽에 저류지 공사가 있었다.

저류지에는 각종 운동시설이 들어섰는데, 난 개인적으로 저 빨간다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동강 철로길: 동강 위로 철로길이 놓여 있었다. 이 철로길은 영월역과 청령포역(무인역, 기차 정차 안 함) 사이에 놓여 있었다.

뒤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은 태화산이다. 상당히 멋진 산이라는데...

 

 

 

 

 

 

# 단종이 겨울에 유배를 왔었다면 저 얼음을 넘어 한양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덧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도달하게 됐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배후면에는 가파른 산이 놓여 있는 곳이라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그래서 청령포는 배가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지난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필자도 배를 타고 청령포에 입장했다. 

다시 영월을 방문했던 1월 중순께에는 '얼음 트레킹'이라는 말에 걸맞게 청령포 앞을 흐르는 서강이 얼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음 위를 걸어가 청령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배가 오갔던 서강 강물이 강추위로 꽁꽁 언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미끄러지듯 그 얼음 위로 청령포를 오가는 방문객들의 모습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단종은 청령포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했다. 1457년 6월 하순에 청령포에 왔다 그해 여름 홍수를 피해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 갔고, 그해 10월 하순에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사됐다. 그러고 보면 단종의 유배기간도 자신의 운명처럼 짧았던 셈이다.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관풍헌을 오가는 탐방객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종이 겨울에 유배를 왔으면 저 얼음을 넘어서 다시 한양 땅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태백산에서는 산신령으로 만났던 단종 임금을 영월 얼음 트레킹을 통해 다시 만났던 것은 뜻 깊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필자는 청령포를 넘어가는 방절산(야산)과 동강 철로길을 탐방했다. 방절산에는 청령포역이라고 지금은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작은 간이역이 있는데 그곳도 탐방하고 왔다.

약 12km 정도 되는 비교적 짧은 트레킹이었지만 겨울철에 하는 아웃도어라 만만치는 않았다. 눈 속에 발이 파묻히기도 했고, 얼음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도 여러 번 찧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영월 얼음 트레킹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 동강대교: 현재 영월군에서는 '영월 동강 겨울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1월 11일부터 시작된 축제는 2월 3일까지 계속 된다고 한다.

필자가 영월을 방문했을 때는 축제 준비로 동강 일대가 분주했었다. 한편 사진에 나온 동강 대교는 영월의 또다른 자랑 거리이다.

확 트인 동강 둔치와 그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이 동강대교와 어우러진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 서강: 서강 뚝방길은 단종유배길 11코스다. 단종유배길의 종점은 청령포가 된다.

 

 

 

 

▲ 서강 고라니길: 서강은 동강에 비해 개발이 덜 된 곳이었다. 그래서 고라니들이 뛰어놀 만큼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겨울철을 맞아 고라니들이 먹이가 없어서 마을로 내려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동네 개들이 고라니들을 보고 안 짖는 걸 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필자를 보고 엄청나게 짖어 댔다.

 

 

 

 

 

 

# 저 고라니를 잡아다 루돌프를 시켜볼까?

 


그 길이 동물 전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 길을 걷는 사람은 필자 혼자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필자의 모습이 무척 신기했는지 고라니 녀석 하나가 계속 내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고라니들은 겁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독 그 녀석은 겁도 없이 내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 마치 원거리 경호를 하듯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내 앞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고라니 녀석의 '원거리 경호'를 받으며 길을 걸었던 곳은 영월읍 방절리 일대 뚝방길이었다. 몇 해 전 서강 일대에는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제방 공사를 했는데, 그 위로 길을 닦았다. 그 길을 필자는 홀로 호젓하게 걸었던 것이다.

필자가 영월을 방문했을 때는 동장군이 위세를 부렸던 1월 중순이었다. 그래서 서강의 물길은 꽁꽁 얼어 있었다. 강 옆으로 펼쳐진 야트막한 기암괴석들과 농한기의 한적한 농촌 풍경들이 꽁꽁 언 서강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을철 단풍산행이 형형색색의 '비주얼'을 감상하는 재미라면, 겨울 눈꽃 산행은 흰색으로 단일화된 설국(雪國)을 걷는 오묘한 맛이 있다. 그 말에 빗대서 생각해보면, 서강 '얼음트레킹'은 흰 색 물감이 좀 덜 칠해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흰색이 덜 채색된 부분에 얼음이 얼어 있다고나 할까. 그런 서강길을 고라니와 함께 걷고 있자니 엉뚱한 상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저 고라니를 잡아다 루돌프를 시켜봐? 그럼 내가 산타클로스가 되는 건가?'

 

 

 

 

 


* 방절산(야산): 방절산에는 청령포역이 있다. 예전에는 청령포역에서 하차 한 후 걸어서 청령포 나룻터까지 갔다고 했는데,

지금의 청령포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무인역사다. 이 사진은 방절산 정상 부근에 올라 영월읍 지역과 함께 동강철로길을 찍은 것이다. 

 

 

 

 

# 동네 주민도 모르는 '단종 유배길'

한편, 전국에 불어 닥친 걷기 열풍은 서강 뚝방길에도 영향을 미쳤다. 필자가 걸었던 길이 바로 단종 유배길 11코스였기 때문이다. '단종 유배길'은 영월군에서 단종의 유배 행선지를 모티프로 삼아 트레킹 코스로 개척된 도보여행길이다. 유배라는 테마를 중심에 둔 트레킹 길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강진군의 '정약용 남도 유배길'과 경남 남해군의 '남해 바래길'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남해 바래길'은 <구운몽>으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과 관련된 길인데, 그중 3코스가 서포의 유배지였던 벽련 마을을 통과한다.   

조선시대 중앙정치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눈물을 머금고 걸어야 했던 비운의 유배길이, 오늘날에는 '스토리'가 있는 도보여행길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건 참 역설적인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인물을 중심에 놓은 길이 풍광을 앞세운 길보다 역사 공부에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 여행 전후로 해당 역사인물의 삶의 궤적과 당시의 시대상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트레킹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으니 1석 2조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단종 유배길'은 걷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단종 유배길'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단종 유배길'은 전체 구간이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난해 9월). 하지만 '단종 유배길'은 현지 주민들이 길 개통에 대한 존재 자체를 모를 정도로 전혀 홍보가 안 된 상태였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영월군 누리집에도 '단종 유배길'에 대한 상세한 안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단종유배길'에는 화장실이나 벤치·식수대와 같은 기본적인 편의 시설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 청령포역: 청령포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무인역사다. 2005년 경에 무인 역사가 됐다고 한다.

 

 

 

 

 

▲ 선돌: 기묘한 형상의 선돌은 예로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 청령포 조선조 6대 임금이었던 단종은 청령포에서 2달 간 유배 생활을 했다. 단종은 1457년 6월 하순에 청령포에 왔다,

그 해 여름 홍수를 피해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러다 그 해 10월 하순에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사됐다.

 

 

 

 

 

#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불편한 영월 여행

 

강원도 영월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비운의 왕인 단종과 관련된 유적지부터 래프팅으로 유명한 동강, 가난뱅이 여행자들의 아이콘인 김삿갓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습을 닮은 한반도 지형까지…. 이렇게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니 영월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했다. 지난 10일, 설렘을 안고 영월로 향했다.

하지만 자동차 없이 '뚜벅이'로 여행을 다녀야 하는 필자 같은 여행객에게 영월은 다른 지역처럼 불편한 곳 중 하나다. 왜? 군내 버스편이 드문드문 있으니까. 동강 어라연이 있는 문산리행 버스는 읍내에서 하루 다섯 번만 운행한다. 김삿갓 문학관행도 마찬가지로 다섯 편만 운행된다. 그러나 문산리행이나 김삿갓행은 양반에 속한다. 한반도지형행은 하루에 단 두 편밖에 없다. 이런 대중교통편의 미비로 인해 영월 여행도 자동차 여행이 주를 이룬다. 실제적으로 영월 읍내에 있는 관광 안내도도 자동차 여행을 기준으로 작성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필자는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았음에도 아주 재밌게 영월 지역을 탐방하고 왔다. 영월 읍내 지역을 중심으로 '얼음 트레킹'을 하고 왔는데, 겨울 눈꽃 산행하고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고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숨어 있는 진주와도 같은 서강의 모습을 발견하는 큰 수확도 얻었다.  

 

 

 

 

* 동강: 동강과 서강은 영월읍 방절리 부근에서 서로 합쳐져 남한강을 이룬다. 필자가 영월을 방문했을 때, 서강과 마찬가지로 동강도 꽁꽁 얼어 있었다.

 

 

 

 

 

 

 

# 유배가는 단종도 선돌의 기묘함에 감탄하지 않았을까


영월 얼음 트레킹은 선돌에서부터 시작됐다. 선돌은 영월 읍내에서 약 4.5km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서강 강변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다. 본 바위에서 툭 튀어 나온 듯이 서 있는 선돌은 그 높이가 70m에 달한다.

선돌은 그 자태가 오묘하여 예로부터 '신선암'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기묘한 모습 때문에 선돌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비운의 임금이라고 불리는 단종 임금도 그들 중에 포함된다. 단종 임금의 유배지는 영월 땅 청령포였다. 한양에서 청령포로 가기 위해서는 소나기재라는 곳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고개 정상 부근에 선돌이 있다. 단종도 선돌을 볼 때만큼은 고된 귀양길에서 오는 피곤함을 잠시 내려놨다고 한다.

소나기재에 올랐던 단종은 기묘한 모습의 선돌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종대왕의 피가 흘러 어릴 적부터 영민했던 단종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다시는 한양 땅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자신의 불후한 운명을 말이다.

선돌 탐방을 마친 후, 산길을 1km 정도 내려오면 본격적으로 서강 강변을 트레킹할 수 있다. 어라연을 품고 있는 동강과 한반도 지형을 품고 있는 서강은 영월읍 부근에서 서로 만나 남한강을 이룬다. 같은 영월 땅을 흐르고 있지만 서강은 동강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서강 주변은 개발의 손길에서 비켜나 있었다. 동강 주변을 따라 각종 리조트들과 래프팅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느껴질 정도.

역설적으로 그렇게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 그런지, 서강은 고라니들이 뛰어놀 만큼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가 직접 서강길을 탐방했을 때, 곳곳에서 고라니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눈길 곳곳에 찍힌 야생동물들의 발자국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람 발자국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야생 동물들의 발자국들만 가득하니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이 길은 동물 전용 노선인가? 사람이 발을 들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 선돌과 서강: 선돌 옆을 유유히 흘렀던 서강이 겨울 동장군에 의해 꽁꽁 얼게 됐다.

 

 

 

 

▲ 선돌: 꽁꽁 언 서강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오른 선돌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 태백산 캠핑장: 숲이 우거져 있는 태백산 캠핑장

 

 

 

 

 

▲ 태백산 베이스캠프: 저렇게 태백산캠핑장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참 단출했다.

 

 

 

 

 

 

# 캠핑장에 템플스테이 식문화를 이식시키자

 

 

한편 그 음식물 찌꺼기는 필자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음식물을 왜 남기는가? 넉넉히 먹고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캠퍼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숨 가쁜 도시생활을 벗어나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의 안락함을 캠핑에서까지 이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필자는 답답함부터 느낀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주말 섹션에 겨울캠핑과 관련하여 전기장판에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됐다. 필자는 그 기사를 보고 혀를 찼다.

 

'과연 이 엄동설한에 뭐 하러 전기장판까지 준비해서 캠핑에 나서는가? 전기 꼽을 곳은 있나? 그렇게 갖출 거 다 갖추고 싶으면, 동네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는 게 최고일 텐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캠핑시장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그런가?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캠퍼들이 기본적인 캠핑 매너도 안 지키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같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캠핑장을 애용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캠핑장 사용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다음 일정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먹고, 마시자, 죽자'라는 캠퍼들의 소음에 새벽까지 잠을 설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최첨단 장비에 걸맞게 캠핑문화도 최첨단으로 향상 시킬 때가 됐다. 성숙한 캠핑문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할 때가 됐다. 이제 캠핑장에서는 좀 덜 먹고, 덜 마시는 분위기가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 같아서는 '템플스테이'와 같은 식문화와 정숙함이 전국 캠핑장에 만발했으면 좋겠다. 이건 너무 급진적인 생각인가? 

 

 

 

 

 

 ▲ 대형텐트: 내 텐트와 비교하면 저 텐트는 궁궐 같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나도 저런 멋진 텐트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

 

 

 

▲ 골든보이: 캠핑장에 가면 색다른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골든보이' 이 친구도 태백산캠핑장에서 만났다.

 그는 3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여행했다고 한다. 3개월 동안 강원도를 돌아다닌 터라 그의 허벅지는 튼튼했다.

 

 

 

 

 

# 캠핑장에서 사기꾼을 극복하려면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다. 캠핑장에서 수금 징수원을 가장해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기꾼들이 있으니 주의를 요망한다. 대규모 캠핑장 같은 경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기에 사기꾼들의 좋은 활동처가 되곤 한다. 그들은 캠핑장 직원과 동일한 복장과 동일한 영수증 용지를 들고 다니며 캠퍼들을 현혹시킨다. 그런 사기에 넘어간 캠퍼들은 사기꾼과 정식 수금요원에게 두 번 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캠핑의 낭만은 사라지고 불쾌지수만 높아질 것이다.

 


텐트비를 받아서 얼마나 남겠냐고, 의문을 표시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텐트의 경우는 통상 2만 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한다. 그런 텐트가 10동 이상 있다고 생각해보시라. 한 시간도 안 되서 사기꾼들은 수십 만원을 챙길 수가 있는 셈이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캠퍼 자신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가지 팁을 제시해 본다.

 

1. 영수증을 꼭 확인한다.


2. 징수원의 직원증을 확인한다.


3. 쓰레기봉투를 요청한다.

 

2번 직원증 확인의 경우는 쉽지 않다. 수금요원이 직원증이 없는 단순 아르바이트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사전에 캠핑장 관리사무소의 전화번호를 메모해뒀다가 전화를 걸어 수금 요원의 신분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요즘은 웬만한 대형캠핑장은 사용료를 지불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발행한 쓰레기봉투를 지급하니, 쓰레기봉투 지급여부도 잘 확인을 해보면 가짜 징수원들의 사기 행각의 덫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캠핑장 요금도 안 내고 도망간 주제에 말이 많다고, 아직도 필자를 질책할 분이 있을지 모른다. 여행이 다 그런 거지 뭐. 여행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리고 캠핑장 팁도 알려드렸으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캠핑 적기에 맞춰 이런 팁을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엄동설한에 이런 글을 쓰니, 필자도 그게 참 아쉽다.

 

 

 

 

 

 

▲ 백캠핑: 대형오토 캠핑도 좋지만 요즘은 호젓하게 백캠핑을 하는 캠퍼들도 많이 늘어났다.

백캠핑은 배낭에다 캠핑장비를 짊어 지고 다니며, 캠핑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백캠핑의 관건은 짐의 경량화에 달려 있다. 필자가 행한 캠핑도 백캠핑이다.

 

 

 

 

▲ 태백산은 참 복받은 산 등산 중에 배수로 작업을 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도립공원 직원이 아니었다. 그냥 자진해서 등산로 배수로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그냥 태백산이 좋아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작업을 하신다고 했다. 극구 사진 찍는 걸 원하지 않으셨지만 난 살짝 '몰카'를 찍었다.

그러고보면 태백산은 참 복 받은 산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분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 천제단: 천제단의 옆모습

 

 

 

 

 

필자는 태백산캠핑장에서 3일을 머물렀다. 이번편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 물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는 태백산 캠핑장

 

"야영비 받으러 왔습니다."

 

태백산 산신령님이 달콤한 잠을 내려 단잠에 빠져 있는데, 아침부터 누가 돈 타령을 하고 있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내일 받으러 와요."
"..."

 

나는 당골매표소 아래쪽에 위치한 태백산캠핑장(일명 당골야영장)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당시가 장마철이라서 그랬는지 캠핑장에는 야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화장실 문을 잠가 놓고 샤워를 했다. 원래는 캠핑장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놈의 돈이 원수지!

 

필자가 보기에 태백산 캠핑장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내부는 숲이 둘러싸고 있고, 외부는 산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말 그대로 숲 속에서 캠핑을 하는 식이었다. 또 캠핑장 옆으로 당골천이 흐르고 있어, 밤에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잠자리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작은 소음에도 잠을 뒤척일 수 있지만 태백산 캠핑장은 당골천이 소음을 중화시키기에, 민감한 사람도 비교적 편하게 취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밤에 산 새 소리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핑장이라면, 정말 좋은 캠핑장이 아니겠는가?  물론 갈수기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태백산캠핑장: 일명 당골캠핑장이라고도 불린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바라보는 태백산의 전경이 일품인 곳이다.

 

 

 

 

 

▲ 태백산 캠핑장: 필자가 손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끄집어 낸 식수대. 그 뒤로 필자가 몰래 샤워를 한 화장실이 보인다.

 

 

 

 

 

 

그렇게 좋은 태백산 캠핑장에서 필자는 3일을 머물렀다. 하지만 돈 한푼 안냈다. 처음 수금하러 온 이후에는 징수원들이 다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규칙을 위반하고,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는 등 민폐를 끼쳤다고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필자는 민폐를 끼쳤으면 그만큼의 값을 한다.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했고, 캠핑장 식수대를 말끔히 치웠다.

어느 캠핑장을 가나 식수대는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퇴수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찌꺼기들을 손으로 직접 다 끄집어내, 퇴수가 잘 되도록 하고 나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태백산 캠핑장: 캠핑장에서 만난 분이다. 부산에서 여행을 오셨다고 했는데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당골천: 캠핑장 바로 옆으로 당골천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 본인이 캠핑을 한 시기는 장마철이라 유량이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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