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산봉우리의 걸린 흰구름을 보니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해지더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배 맛 탱크보이가 그리웠었다.

 

 

 

* 장수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설악전투의 전승을 기념하고, 설악산을 찾은 탐방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지은 'ㄱ' 형태의 한옥집.

 

 

 

 

---> 전편에 이어서

 

 

 

#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어찌하리요!

 

인제군 원통리의 지형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북쪽으로는 명당산(764m)이 있긴 하지만 동쪽으로는 소양강을 향해 가는 북천이 흐르고 있어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원통리에는 원통체육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차라리 한계령을 품고 있는 한계리의 지형이 험하면 더 험한 듯싶었다.

 

원통(元通)은 원래 원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넘으면 바로 원산이니 그런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인 의미의 명칭은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군사도시로 변모한 인제군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마음속에 ‘슬픈 아리랑’ 한 곡조씩을 품고 사는 강원도 군번들에게 ‘인제’와 ‘원통’이란 명칭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푸념거리의 소스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원통에 대해서 왜그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냐고 필자에게 질책을 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인지 ‘명칭 따라 삼천리’를 하는 것인지 혼동스럽다고 비판의 화살을 내게 발사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필자는 원통을 보면서 한국전쟁과 뒤이은 분단으로 인해 해당 지역 명칭이 일반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각인되는지에 대해서 주목을 해본 것이다. 예를 들어 지리산 피아골 같은 경우도 원래는 곡식인 피가 많이 재배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골짜기가 피로 넘쳐 났다는 변형된 의미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 설악산: 구름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 설악산

 

 

 

 

# 달려라 블루야크

 

한계령의 초입에 해당되는 한계교차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12시 경이었다. 40Kg 달하는 자전거를 끌고 한계령을 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행동식은 준비가 됐는가? 식수는 몇 통을 챙겼는가? 만약 밤샘 이동을 한다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등등의 물음들에 대한 답을 충족시키려면 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계령이 어떤 곳인가? 설악산을 가로질러 동해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높디높은 고개가 아니던가!

 

한계교차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고, 44번 국도를 타면 한계령에 다다를 수 있다. 인제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인접 도시인 속초로 갈 때 주로 미시령 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다. 미시령은 터널로 연결됐기 때문에 보다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꼬불꼬불한 한계령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서울에서 속초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주로 미시령을 이용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아갔지만, 설악산의 속살을 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난 콧노래를 부르며 나아갔다. 더군다나 차가운 개천이라는 뜻의 한계(寒溪)로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노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확실히 자동차 여행과 자전거여행은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계령이 험하다고 하지만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반대편 양양군에 입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을 빨리 이동할수록 인간의 두뇌가 ‘패스’시키는 지리적 장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긴 운전에 집중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수많은 자연풍광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지켜보겠는가.

 

비록 중고자전거지만 엄연히 내 자전거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블루야크. 내 자전거가 푸른색이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 명칭을 빗대서 그렇게 지어본 것이다. 내 자전거가 무적 철TB라 히말라야 야크들처럼 튼튼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네이밍을 붙여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니까.

 

산중에서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차피 야간 이동을 각오했지만 밤이 되니 덜컥 무서운 것이었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시간이 더 지체됐던 것이다. 나도 블루야크도 지쳐갔다. 이전의 여행들을 통해 많은 경험이 쌓였지만, 한밤중 산중에서의 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 장수대

 

 

 

* 설악산

 

 

 

 

* 설악산: 한계령을 지나 양양 오색약수 방면으로 향하는 길

 

 

 

 

 

 

 

 

 

 

 

 

 

 

 

 

 

 

 

 

 

 

 

 

 

 

 

 

 

 

 

 

 

 

 

 

 

 

 

*한계령: 한계령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 인제군 북면 원통리 북천: 북천은 남쪽으로 흘러가다 소양강과 합수된다. 가운데 멀리로 설악산이 보인다.

 

 

 

 

 

2012년 6월 18일 수요일

 

나는 강원도 양구와 인제에 있는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입성을 했다. 광치령은 660고지였는데, 역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힘든 기색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 곧 한계령을 넘어야 했으니까!

 

"실례하지만, 여기 읍사무소가 어디에요?"

 

힘들게 광치령을 넘었던 터라, 읍사무소에서 물도 얻어 마시고 인제군 여행지도도 얻어갈 생각이었다.

 

"읍사무소는 남쪽으로 한참가야 하고, 저쪽으로 좀만 가면 면사무소가 있어요."

"예? 여기가 원통읍이 아닌가요?"

"원통은 원통리이고, 여기는 읍이 아니라 북면이에요. 인제군 북면."

 

읔! 원통읍이 아니라 원통리였다니! 원통의 정확한 행정상 지명이 인제군 북면 원통(元通)리였다니!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국내여행을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원통이 행정구역상 '리' 단위였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은 내 얇은 지식이 들통이 나서 더 창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칭 아웃도어 여행가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 원통종합복지타운: 저 곳에는 도서관, 공공회의실, 보건지소 등 공공시설이 입주해 있는데 우리동네에 있는 곳보다 시설이 더 좋았다.

저 사진은 복지타운의 담당자님이 찍어 주셨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인제군 북면은 인구가 8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면단위 인구 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다.

 

 

 

* 인제군: 양구에서 인제군으로 진입할 때 작은 조형물 공원이 하나 있어서 사진을 좀 찍어 보았다.

여행을 자주 하다보니 내 자신의 트렌드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농기구들이 요즘에는 눈에 확 들어온다.

더불어 목공예나 짚신공예를 배워서 '한 몫 단단히 챙겨볼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가끔 든다.

 

 

 

 

 

우리나라에서 '읍'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군' 단위와 차별화 되어 자체적 ‘네이밍’ 파워를 가진 곳이 몇 군데 있다. 가야, 강경, 광천, 삼랑진, 벌교 등이 그곳이다. 강경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광천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삼랑진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벌교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공식적인 행정 지명이다. 고대연맹 국가인 가야국에서 지명을 따온 가야읍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속해 있는 곳으로 굳이 따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벌교도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였으니 잘 아실 것이다.

 

강경과 삼랑진은 조선후기 대동법 시행 이후, 쌀의 집산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강경은 금강을 통해, 삼랑진은 낙동강을 통해 바다로 출항할 수 있는 곳인데, 그만큼 내륙 수운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광천은 광천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1년 자전거여행 당시 난 그곳에 들러 광천김을 한가득 샀었다.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여행자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밥도둑들을 데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광천김은 A급 밥도둑이었다.

 

이렇듯 읍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나 군만큼 입에 자주 언급되는 경우는 종종 봐왔지만 리단위의 지명이 군단위의 '브랜드 파워'와 필적하는 경우는 원통리가 유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 여기서 필자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원통리가 인제군과 짝을 이루어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애절한 슬로건의 대명사를 낳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원도 군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리랑 곡조보다도 더 애절한 이 말의 출현시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사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에도 원통리가 있다. 하지만 인제군의 원통리와 비교하면 그 존재감이 덜해서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청원 가서 원통하다!’라는 말은 없으니까.

 

 

 

* 설악산

 

 

* 한계천: 북천보다 상류에 있는 한계천에서 본 설악산

 

 

 

*설악산: 산봉우리에 흰 구름이 걸려있다.

 

 

*인제군의 공원

 

 

 

 

 

 

 

 

 

 

 

 

 

 

 

 

 

 

 

 

 

*홍로: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린 홍로

 

 

 

* 8월 초순의 홍로: 9월 초순이면 홍로는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을 드러내지만 8월 초순의 홍로는 아직 여물지도 않은 그런 모습을 나타낸다.  

 

 

 

---> 2편에 이어서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나는 여러농장을 다니면서 사과작업을 했는데, 여러명의 농장주분들이 이구동성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달라는 그 말에 농부님들이 바라보는 사과에 대한 애착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봄부터 계속된 고된 작업의 결실이 가을 추수 기간에 사과라는 아기로 그들 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농장주 분들의 피와 땀이 대변된 말이 내게는 좀 부담이었다. 투박한 내가 사과를 아기처럼 다루어야 하다니!

사과 수확 작업은 단순했다. 일단 사과 나무에서 색이 제대로 든 녀석을 골라 사과가위로 잘라내고, 무작위로 프라스틱 콘테이너에 담았다. 그런 후 선별장에서 '과'라는 단위로, 크기별로 골라낸다. 통상 선별장에서는 10과에서부터 20과까지 걸러내는데, 10과가 가장 큰 녀석이고 20과 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얼핏보면, 10과 짜리 홍로는 빨간색 호박처럼 보일 정도로 상당히 컸다.

 

 

 

 

 

* 사과나무: 아래에 깔린 은박지는 반사 필름이다. 사과 하단면에도 태양빛을 받게 하기 위해 반사 필름을 까는 것이다. 태양빛을 잘 받지 못하는 부분은 홍로 특유의 붉은 빛이 감돌지 않게 된다. 위쪽은 새빨갛게 붉은 빛이 잘 영글었지만 아래쪽은 히물건한 홍로들이 가끔 발견되곤 했다.

 

 

 

* 컨테이너에 담긴 사과: 사과나무에서 떼어낸 사과를 이렇게 무작위로 담아 선별장으로 나간다.

 

 

 

 

그렇게 과별로 선별된 사과들은 박스 포장이 되어 영농조합으로 넘겨지거나 택배로 도시민들에게 직접 배송이 된다. 이렇듯 사과 수확 작업은 무척 단순한 진행 과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행 과정이 단순하다고 노동 강도도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난 거창 귀농학교에 2주 동안 머물렀는데, 16호 태풍 산바가 들이닥친 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사과작업을 했고, 잘 때마다 계속 파스를 발라대야 했다. 한마디로 '파스빨'로 버틴 것이다. 나는 '파스스타일'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사과작업을 하다보니 농부님들의 피와 땀이 저절로 내게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B급으로 분류된 홍로도 난 무척이나 맛있게 먹었다. B급은 점이 있거나 멍이 든 사과를 말하는데 상품성이 떨어질 뿐 맛과 품질에는 하등 문제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점있는 거 점빼서 먹고, 멍든거 멍파서 먹고. 아삭아삭, 얼마나 맛있던지!

 

내가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섬세하게 사과작업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욕은 안 먹으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내가 모난 짓을 하면, 거창귀농학교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긴장감 있게 작업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하여 2주간의 나의 거창 고제면 사과작업은 무사히 마무리 됐다. 평소에 안쓰는 근육을 썼던 터라 온 삭신이 다 쑤셨지만 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에는 나도 사과를 아기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말을 내 입에서 스스럼 없이 하게 되었다. 허리가 욱씬거리기는 했지만, 농촌 사과체험을 제대로 했던 것이다.  

   

 

 

 

* 사과농장: '사과를 애기 다루듯이 해달라'고 하셨던 농장주 분이다.

두 분 다 거창귀농학교 출신으로 대도시에서 거주하다 최근에 귀농을 하신 분들이다.

 

 

 

 

* 사과작업: 사과작업을 하는 와중에 곽작가도 한 컷 찍어봤다.

 

 

 

* 구절초: 거창 귀농학교 운동장에 피어 있어서 한 컷!

 

*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해발고도가 높은 고제면에는 이렇듯 탐스러운 홍로가  재배된다.

 

 

 

 

 

* 홍로: 빨갛게 잘 영근 홍로가 탐스러워 보인다. 색깔만큼이나 맛도 좋다.

 

 

 

 

 

내게 경상남도 거창은 무척 흥미로운 지역으로 각인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과 맞닿아 있어 조금만 이동을 하면 도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서울로 복귀할 때, 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무려 4개나 되는 도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였다.

 

경남 거창 ->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또다시) 전북 무주 -> 충북 영동 

 

실제로 서편으로는 덕유산, 동편으로는 합천 가야산, 남쪽으로는 함양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듯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거창이지만 읍내 만큼은 쑥 내려앉은 지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창 외곽은 해발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거창의 다운타운(?)은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창에 난 베이스캠프(?)가 하나 있다. 그곳이 어디냐? 바로 고제면에 있는 거창귀농학교이다. 거창귀농학교는 1996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하여 귀농학교로 탈바꿈을 시켰는데 현장 위주의 노작 활동이 강점인 곳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 면소재지에서도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만큼 실제 농업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창귀농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나에게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다.

 

 

 

* 황토방: 거창귀농학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방이 있다. 저 곳은 왠만한 고급 폔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시설과 전망을 자랑한다.

 

 

 

여기서 잠깐! 베이스 캠프를 언급하다 갑자기 뚱딴지 같이 귀농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질책을 가하실 분도 있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거창귀농학교가 내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거창 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해 있다. 거창귀농학교는 삼봉산 예술학교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 지역명에서 네이밍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또 거창귀농학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대덕산이 있다. 이렇게 아웃도어 접근성이 강한 곳인데 어떻게 내가 그곳을 베이스캠프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베이스캠프 선언은 개인적으로 거창귀농학교 교장선생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골인심이 좋다지만 뚱딴지 같이 불쑥 '베이스캠프 선언'을 한다면, 그 지역분들에게 볼기짝을 훅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런 거창귀농학교를 난 지난 9월 중순경에 방문을 했다. 왜? 사과작업을 하려고! 아웃도어는 잠시 접어두고 말야.

귀농학교의 정확한 위치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이다. 고제면은 읍내에서 북서방면으로 2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무주군의 무풍이 어떤 곳인가? 덕유산의 무주 구천동을 끼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 덕유산의 기운이 넘쳐 흐르는 백두대간에 고제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제면도 해발이 높은 곳이다.

 

그렇게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기에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거창 읍내는 해발고도도 낮고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고제면보다는 더 기온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볼 일이 있어 잠시 읍내에 다녀온 후 다시 고제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도 변화를 피부적으로 체감했을 정도다. 그런 지형적인 특성 때문인지 고제면 지역은 고랭지 농업이 잘 발달되었다. 과수원과 밭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고랭지 사과 재배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큰 일교차가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듯싶었다. 그런 고제 사과 중에서도 홍로 품종이 농가 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추석 차례상에 올려지는 사과로 9월 초순경에 수확을 한다. 그렇다. 홍로는 '홍동백서'할 때 쓰이는 그 사과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올려지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하는 것이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삼봉산과 사과농장: 앞쪽에 보이는 산이 삼봉산이다. 사진에 등장하신 분들은

당시 거창귀농학교에서 본격적인 귀농교육을 받으시는 귀농희망자 분들이었다.

 

 

 

 

* 강물이 범람한 거창 읍내: 16호 태풍 산바는 15호 태풍 볼라벤과 달리 한반도에 폭우를 뿌리고 갔다. 

산바가 지나간 후 거창 읍내를 흐르는 위천이 수위가 높아져 범람하고 있다.

 

 

 

*수위가 높아진 거창군의 위천

 

 

 

* 홍콩 아가씨들:  '우프'를 통해 전세계에서 한국의 농촌문화를 탐방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거창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  우프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가에 집적 가서 일손을 돕는 국제 조직을 말한다. 우프지원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농장주는 식사와 숙소를 제공한다.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임금을 받지 않는 관계로 워킹홀리데이와는 차별화가 되는 것이다. 거창귀농학교도 우프에 조직되어 있어 이렇게 홍콩아가씨들도 멀리 거창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도깨비: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린 도깨비들이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친근한 감정까지 들 정도다.

 힘든 사과작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저 녀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거창 귀농학교

 

 

 

 

 

*박수근과 자전거: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무언가 하나 작품을 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는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 번 설치미술(?)을 해보았다. 박수근 선생은 내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박수근 화백 작품: 박수근 화백이 이런 작품도 그렸다. 박수근 화백에게서는 서양 화풍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 전편에 이어서

 

 

 

난 양구읍내로 진입했다.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다. 그래서 호반의 도시로 보이기도 한다.


양구 읍내에서 가까운 곳에 박수근미술관이 있었다. 양구 읍내에서 걸어갈 수도 있을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좋은 감흥을 받고 왔다.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가 접목되고, 또 미술관 탐방까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박수근(1914~1965)은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에서 출생을 했다. 가난했던 그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런 성장배경은 박수근의 작품들에 오롯히 스며들게 된다. 그는 화강암처럼 두툼하고 거친 풍의 질감으로 작품들을 많이

제작을 했는데 그런 작품들은 서민적이면서도 소박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수근 공원 박수근 미술관 앞에 있는 박수근 공원. 산책하거나 사색하기 제격이다.

 

 

 

〈농악〉(1932),〈나무와 여인〉(1950년대),〈행인〉(1964), <할아버지와 손자〉(1964) 등등... 작품명만 봐도 한국적이지 않은가?

그런 박수근미술관은 선생의 작품들과 함께 일대기를 기록한 공간이었다. 2002년에 개관한, 비교적 최근에 개관한 곳이라 그런지

전시공간과 편의시설도 합격점을 줄만 했다. 

 

박수근 선생 생가 터에 200여 평 규모로 건립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은 그 자체로 문화공간이었다. 앞산이 보이는 확 트인 공간에

위치한 미술관은 전면에 공원과 함께 야외전시장이 있었다. 그냥 얼핏 봐도 산책하기도 좋고, 사색하기도 좋은 공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나는 공원에 앉아 야외전시물들을 감상하며 식사를 했다. 왜 이상하게, 난 그렇게 멋진 문화공간에 들어서면

허기가 지는지 모르겠다. 야유회를 가면 도시락부터 챙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긴 잘 먹어야지. 그래야 구비구비 돌아가는 한계령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 박수근 공원

 

 

 

 

박수근 미술관 탐방을 마친 후 나는 야영지를 찾아야 했다. 전날 너무 늦게 텐트를 치는 바람에 몸이 많이 피곤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리저리 좋은 야영지를 찾다가 난 어느 섬에 들어가게 됐다. 그곳은 한반도 섬이었다. 앞서 포스팅에서 양구는 한반도의 정중앙임을

브랜드화 했다고 기술했다. 한반도 섬도 양구의 그런 점을 부각시켜 놓은 인공섬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섬에는 북쪽의 백두산에서부터 남쪽의 제주도까지 미니어처 형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울릉도와 독도도 있었다.

나는 이런식으로 한반도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백두산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제주도까지 마실을 갔다왔고,

다음날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살펴본 후 한반도섬을 떠나왔다. 그러고보면 난 그날 한반도를 다 품에 앉고 잠이 들었던 셈이다.

 

 

 

 

 

* 박수근 미술관 외부 설치예술품

 

 

 

*박수근 미술관과 자전거: 이것도 설치 미술???

 

 

 

*박수근 선생 좌상: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다 

 

 

 

 

*박수근 미술관: 박수근 미술관은 시원한 전망을 가지고 있다.

 

 

 

* 박수근과 자전거: 박수근 선생께서 내 자전거를 보고 계시다. 

 

 

 

*고구려이야:기 가난했던 박수근 화백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역사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감옥에서 역사편지를 썼던 인도의 네루 총리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 박수근 미술관

 

 

* 박수근 미술관

 

 

*한반도 섬: 한반도 섬 내부의 지리산에서 한 컷

 

 

 

*한반도 섬: 한반도 섬 내부의 제주도에서 한 컷

 

 

 

*한반도 섬

 

 

* 북한강의 자전거도로: 화천에서 양구를 향해 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시원하게 강변을 질주했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4편> 국토의 정중앙 양구를 가다!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강원도 화천에서 행한 <평화안보백일장>의 쓰라린 패배를 뒤로 하고 나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내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 방문을 접목하는 방식은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몸은 많이 축났다. 그저 방문객의 입장에서 보고 즐기는 축제에 참가했으면 모르겠는데, 스스로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글쓰기 대회에 참여를 했으니, 예상치 못한 체력의 소진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난 1등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1등은커녕 가작에도 못 들어, 인건비도 못 건졌으니 강원랜드에서 '한 판 땡길' 이유도 없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념으로 정선에도 가보고, 가리왕산도 탐방할 생각이었는데 애초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그래서 여행 경로를 수정했다.

 


화천 -> 양구 -> 인제 -> 양양 -> 강릉 ->울릉도

 

 

 

* 파로호 전망대: 파로호라는 명칭은 한국전 때 이 곳에서 중국 공산군, 즉 호로군을 격파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이 코스로 길을 잡았고, 실제로 이 코스로 주행을 했다. 그런데 이 코스에는 중간에 한계령이 자리잡고 있다.

한계령! 그 이름만으로도 아웃도어 여행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설악산 한계령!

일단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을 넘는다는 것이 무척 '환상'적인 일인데, 게다가 다른 고개도 아닌 한계령을 넘어간다는 것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화천에서 한계령으로 가려면 양구를 거쳐 가야 한다.

 


'국토중앙 양구'

 


위의 명칭은 양구군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지역을 두루 다니다보면 각 지자체마다 자신들의 특색을 슬로건화 해, 네이밍 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천시는 '대한민국 생태도시 순천', 거창군은 '거창한 거창', 장흥군은 '정남진 장흥'

등으로 브랜드화 했다. 거창군의 '거창한 거창'이야 지역 명칭을 브랜드화 시켰음을 단 번에 알아낼 수 있지만 장흥군의 '정남진'이나 양구군의 '국토중앙 양구'는 쉽게 그 뜻이 와닿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남진은 장흥군이 서울에서 정남쪽으로 있다하여 정남진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했는데, 정동진을 빗대서 생각해보니 그 뜻을 쉽게 이해하게 됐다.

그럼 국토중앙 양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양구군은 DMZ를 끼고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북한인데...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남한, 북한을 뛰어넘는 한반도적인 슬로건이다. 휴전선 남쪽이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양구는 철책선에 갖힌 변방에 불과하지만 철책선을 걷어낸 후의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미래지향적이고 통일지향적인 구호라고 할 만 하다.

 

 

 

*국토중앙 양구: 한반도 중앙에 양구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

 

 

 


남쪽만 나와 있는 교통지도와 남쪽지역 날씨만 알려주고, 북한 지역은 '언저리'로 알려주는 날씨방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죽비소리와도 같은 일침을 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구글 어스에는 북한지역 정보가 나오지 않지만 옛날 <대동여지도>에는 남북한의 구분이 없지 않았던가? 지리적으로 남과 북을 구분하는 사고도 극복해야 할 분단고착적인 사고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려있다고 하지만 백두대간이 갈렸는가? 남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고, 북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겠는가? 다 똑같이 소중한 우리의 백두대간이지 뭐!

 


국토의 정중앙이라서 그런가? 양구를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 양구는 도로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다. 올 봄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됐기 때문이다. 5.1Km라는 국내 최장거리 터널이 개통이 되어 양구와 화천을 오가는 길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기존의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어 도로교통이 무척 불편했었다. 그 두 호수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길이 그 곳을 '뼁~'하고 돌아가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차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되었으니 화천과 양구에 사시는 분들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난 왜 양구를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말을 했나? 이율배반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5.1Km나 되는 터널을 통과한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거 정말 못할 짓이다. 400~500m 짜리 터널을 지나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인데 무려 5.1km에 달하는 터널 구간을 지날 때의 고통이란! 내 고막을 도려낼 것 같은 자동차의 소음은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그나마 뒤에서 오는 차가 승용차면 다행이지, 22톤짜리 바퀴 8개 달린 덤프트럭이 뒤따라온다고 생각해봐라!

 


그 긴 장거리 터널을 지나고 나니, 탈진할 정도로 온 몸에 기운이 빠졌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어둠속에서도 야영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여행일지를 보니, 난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사명산 양구학생캠핑장에서 텐트를 쳤었다. 도착 시간을 보니 23시였다.

 

 

 

 

 

 * 소양호: 화천에서 양구로 가는 길에 한 컷

 

 

 

 

 

 

 *파로호 화천에서 양구로 넘어가기 위해서 파로호 인근을 지나야 했다. 멀리 파로호댐이 보인다

 

 

 

 

 

 

 

 

 

 

이외수 작가와 필자 이외수 작가님의 패션 감각은 남달랐다. 파란색 바지가 상당히 눈에 띄었다. 필자의 파란색 티셔츠와 묘하게 매치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당시 내 자전거에는 태극기와 함께 영국 국기인, 유니온잭이 걸려있었는데 한국 대표팀의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전을 기원하며서 달아본 것이다.

 

 

* 세계평화안보문학백일장에 참석한 외국인 대학생: 문학축전에는 각국에서 온 외국인 대학생들이 많이 참여를 했다.

웃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인 외국인 여대생이다. 이 분이 수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3편> 이외수 작가님은 나랑 잘 어울리셔!

 

 

 

 

---> 2편에 이어서

 


 

첫째 날인 15일에는 사전 행사로 '평화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기획자 탁현민 씨가 사회를 맡았는데 오프닝 멘트로 이런 말을 했었다.


" 이외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외수한테 빚진 사람들은 다 화천으로 와라!"


그렇게 이외수 선생님에게 빚진 사람들이 많았는지 16일에 있은  '평화의 종 콘서트'에는 김제동, 김C, YB 등 국내의 유명 뮤지션과 방송인이 출현을 하여 축제의 밤을 불태웠다. 달리 보면 이것이 소설가 이외수의 힘인 것 같다. 강원도 화천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학을 테마로 하여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지 않았던가?

 

 

 

 

 

* 이것이 그 유명한 평화의 댐이다. 북한 임남댐의 담수 능력을 엄청나게 부풀려, 북한의 수공 위협을 가공하여 자신의 정권 보위에 이용한 대단한 전두환 정권! 당시 임남댐이 대규모 방류를 하면 63빌딩의 허리까지 물이 찬다며 국민성금을 거두어들였는데... 당시 나도 돈 천원을 내야 했다. 내 돈 돌려줘라! 29만 7천원 밖에 없으신 분이라 골프장 갈 돈 밖에 없으시겠지 

 

  

 

 

 

문학축전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세계평화안보백일장'은 화천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평화의 종 공원 일대에서 진행됐다. 평화의 종 공원은 2009년도에 평화의 댐 바로 옆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그 곳 중심부에는 평화의 종이 걸려있었다. 평화의 종은 높이 4.7미터에 무게가 무려 35톤에 달하는 거대한 종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든 무척 특별한 종이다. 현재도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지구촌을 위해 그 평화의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백일장을 치르고 있을 때 종을 치니까 그건 별로였다. 전날 붕어섬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잤던 터라 집중이 안 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땡~'하고 종을 치니, 어쩌란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나는 원고를 제출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하지만 1등이 아니더라도 2,3등 정도만 되도 여행비가 빠지고도 남으니, 한편으로는 느긋해 있었다.


'2등 상금이 기백만원 정도 되니까, 남은 여행을 좀 풍족하게 보낼 수 있겠군! 시간되면 정선에 있는 카지노에서 한판 땡기고 가야겠어! 푸하하!'

 

 

* 평화토크에서 사회를 맡은 공연기획자 탁현민

 

 

 

개뿔, 땡기길 뭘 땡겨! 결과는 꽝이었다. 붕어섬에서 벌벌 떨며 버텼던 지난 시간이 너무나 허무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승복을 해야지. 재미나게 화천 구경도 하고 했으니,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십 몇 년 전의 약속을 깨고 다시 와서 화천과 재회를 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실 난 강원도 화천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그래서 아웃도어를 하면서도 화천 쪽은 계속 누락을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화천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화천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천국이었던 것이다. 아참, 공연기획자 탁현민씨도 화천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고 한다.

 

 

 

* 김C와 뜨거운 남자 평화의 종 콘서트에 오프닝을 맡았던 밴드 뜨거운 감자. 뜨거운 감자에서 김C는 기타 겸 리드보컬이다.

 

 

 

그렇게 <2012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마무리 됐다. 하지만 처음 시작되는 행사라 그런지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수상자들에게 미리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는지 상을 수여받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덤덤했다. 하물며 천 만 원의 상금을 받는 1등 당첨자의 모습은 덤덤하다 못해 무척 차분해보였다. 명색히 수상식이라면  '와!'라는 함성과 '어머 어떡해'라는 놀라움이 교차해야 하는데, <세계평화안보 백일장>의 수상식은 긴장감은커녕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입선자들이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것을 우려한 주최측이 미리 수상자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 같은데, 다음 대회부터는 그런 편법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본인은 백일장에 떨어졌다는 충격과 수상식에서 받은 허무감 때문에 화천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고 말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게 컸기에 그냥 화천에서 하루를 더 보내며 체력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백일장이 꽝이 됐어도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계속해야 하지 않겠나! 

 

 

 

* 평화토크 왼쪽부터 공연기획자 탁현민, 작가 이외수, 개그맨 전유성씨다.

 

 

 

 

* 부다리터널: 춘천에서 화천을 넘어갈 때 넘어야 할 곳이다. 사실 터널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소음이 소음이 정말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수 있는가?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지!

 

 

 

 

* 춘천 사북면: 춘천 사북면에서 저렇게 캠핑을 했다. 나는 버팔로 텐트를 구매해서 사용했는데

차후에 그와 관련하여 리뷰를 한 편 쓸 생각이다.

 

 

*평화의 댐 부근: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땅이 왜 남북으로 갈려야 하는가? 왜 아직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가?

평화안보 교육장으로 많이 이용되는 평화의 댐 부근은 정말로 평화로웠다.

 

 

 

 

 

 

 

 

 

 

*평화의 종: 평화의 종은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든 종이다. 2009년 평화의 종 공원의 개장식에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방문을 하여 화재를 낳은 바 있다.

 

 

 

 

 * ITX 객실 내부에 있는 자전거 거치대: ITX는 경춘선이 복선화 되면서 새롭게 도입된 준 고속열차이다.

서울 용산역이 첫 시발역인데 이렇게 자전거 거치대가 있어 편리하다.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2편:

화천에서 세계평화안보 축제에 참석하다!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드디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강원도 화천이었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6월이라 좀 이르긴 했지만 당시 강원도 화천에서는 <2012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이라는 문화 행사가 하나 개최되었다. 평화와 안보? 현재의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상 '평화'와 '안보'는 서로 접합 점을 찾을 수 없는 각 세력들이, 대표적으로 부르짖는 '프로파간다'처럼 보인다. 소위 진보와 보수, 각 진영에서 그 낱말들을 중심으로 구심점을 삼아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고 피력한다는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쉽게 섞일 것 같지 않은 두 명칭을 내걸고 문화행사를 한다고 했으니 나도 처음에는 의심부터 품었다. 더군다나 문학축전의 메인 행사는 <2012세계평화안보 백일장>이었는데 통상적인 백일장 행사는 반 나절치기로 족하지 않던가?  그런데 2박 3일 동안 행사가 진행된다고 하니, 그것 또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것들 사짜 아니야?'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그저 그런 행사가 아닌, 꽤 의미 있는 행사였다. DMZ을 끼고 있는 최전방 강원도 화천이라면 평화와 안보가 공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결정적으로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기획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다. 난 '이외수'라는 이름 석자를 믿고 화천으로 나아갔다. 백일장 최고 상금이 천만 원인 터라 잘하면 여행비용 충당은 물론 유럽 여행까지 '한방에' 해결될 수도 있었다. 또 난 자전거로 화천까지 왔고,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초반부를 문학축전에서 보낸 만큼 적어도 지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두고 1타 3피라고 해야 할까?

 

 

*산천어와 수달: 화천의 상징은 산천어와 수달이다. 수달이 낚시대를 들고 산천어를 어획하는 모습이 상당히 흥미롭다.

 


<2012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은 6월 15일(금요일)부터 2박 3일간 '평화의 종' 공원과 붕어섬 일원에서 진행됐다. 강원도 화천은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산천어 축제는 한겨울에 진행되는 대표적인 얼음낚시 축제인데 군부대로 둘러싸인 화천의 이미지를 좀 더 활기차고 밝게 바꾸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붕어섬은 화천 읍내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야외무대 및 편의시설이 있어 산천어 축제의 부대행사도 이 곳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붕어섬은 서울의 선유도 공원 정도의 규모였다. 그런데 거기에 야외공연장, 공원, 운동시설, 수상레포츠,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강원도 화천을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산보 삼아 붕어섬을 탐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북한강의 시원한 풍광을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소풍을 즐기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실제로 인근 군부대에서 외박을 나온 군인 아저씨들과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분들이 붕어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포착됐다.

 

 

*붕어섬: 북한강을 뒷배경하여 붕어섬에서 한 컷 찍어봤다. 이렇듯 붕어섬은 상당히 좋은 출사지인 듯싶다.

 

 

그런 붕어섬에서 난 3일을 캠핑을 하며 보냈다. 지갑이 얇은 관계로 숙소를 잡는 것은 내게 사치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2박 3일을 펜션이나 민박집에서 보냈다면 바로 여행 예산이 바닥났을 것이다. 한편 화천은 군부대가 몰려 있어 주말에는 외박 나오는 군인들 때문에 숙소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문학축전에는 500명의 예비문학인과 그 가족들이 참관하는 터라 가뜩이나 수용력이 한정된 화천의 숙소 문제를 더욱더 가중시켰을 것이다. 나도 그런 의문이 들어 행사 스태프들이나 군청 관계자분들에게 관련 사항을 문의를 해보았다.

 

나의 '민원'이 잘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원래 붕어섬은 야영과 취사가 금지된 곳이지만 나는 행사 기간 내내 캠핑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다. 북한강의 시원한 풍광을 바라보며 낭만의 섬, 붕어섬에서 캠핑을 하는 그 맛이란!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나를 무척 부러워하실지 모른다. 아담하고 예쁜 붕어섬에서 '합법적'으로 캠핑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러워하실 거 없다. 6월 중순이었지만 붕어섬의 밤은 무척이나 추웠다. 새벽에는 얼어 죽는 줄 알았다.

 

 

 

 

 

 

* 배후령을 넘는 자전거: 강원도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려면 배후령을 넘어야 한다.

명색히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서 그랬는지, 이번 여행에서는 고개를 무척 많이 넘었다.

 

 

 

 

 

 

 *북한강가의 캠핑장: 숙박 시설이 부족한 화천에서는 이렇게 군청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 있었다.

붕어섬의 맞은편에 있는 캠핑장인데 군청에서 운영하는 터라 비용이 무료였다. 그날 캠핑장에는 나 혼자였다. 무척 쓸쓸하고 추운 밤이었다.

 

 

 

 

 

 

 

 

 

 

 

 

 

 

 

 

 

 

 

 

 

 

 

 

 

 

 

 

 

 

 

 

 

 

 

 

 

 

 

 

 

 

 

 

 

 

 

 

 

 

 

 

 

 

 

 

 

 

* 그린웨이: 보기만 해도 걷고 싶고, 달리고 싶은 길이다.

 

 

* 그린웨이: 모내기가 끝난 논. 그리고 그 넘어 있는 아파트들.

 

 

 

 

일시: 2012년 6월 3일 일요일

코스: 경기도 시흥시 그린웨이

인원: 단독 여행(자전거여행)

날씨: 맑았음

 

 

주의점: 그린웨이에 진입하면 따로 물이나 식량을 구할 곳이 마땅치가 않음. 왠만하면 물과 간식거리를 넉넉히 가져가는 것도 좋을 듯함.

중간에 라면이나 커피를 파는 노점상은 있음.

교통편: 본 포스팅은 도보여행을 위한 것이지만, 나는 당시 자전거로 이동을 하였음. 나는 신도림에서 안양천 자전거 도로를 따라 물왕저수지(그린웨이 초입)에 진입하였음. 안양천 자전거도로에서 물왕저수지에 도달하는 방법이 쉽지가 않음. 그래서 중간에 길도 잃어버렸음. ㅋ 그린웨이를 도대체 몇 번 째 갔는데 말야. ㅋ

 

대중교통편: 안양역(안양 1번가 방면) -> 시흥시 목감동 -> 물왕저수지 -> 그린웨이 -> 시흥시 신천동 -> 부천(소사역이나 부천역)

안양에서 물왕저수지까지 버스로 이동 => 그린웨이 탐방 => 시흥시 신천동에서 버스를 타고 부천 지역으로 이동. 포스팅 하단부에

관련 시내버스 노선도 사진을 게재했음.

도보여행자라면 이 방법을 추천함. 물왕저수지in, 갯골 탐방, 신천동out

 

 

*** 그린웨이는 자전거여행도 좋지만 도보여행도 할 만 하다. 그린웨이가 거의 8Km 정도 되는 거리이니 느긋하게 3시간 걷은 후에

대중교통을 타고 귀가하는 것도 좋겠다.

 

 

 

 

 

* 그린웨이: 갯골 생태공원 쪽에서 찍은 사진임. 가마우지로 보이는 녀석들이 모내기가 끝난 논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여행에도 궁합 같은 것이 있을까? 남여간의 사랑의 척도를 가늠하는 궁합이

여행지와  여행자간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괜히 이상하게 끌리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이 유명한 관광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전에 난 양수리에 대한 포스팅을 했는데, 어떻게보면 양수리가 내게는 무척 끌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포스팅을 하게 될, 경기도 시흥시 그린웨이도 그런 곳 중에 한 곳이다.

 

그린웨이가 개통된 이후 대여섯번 정도 방문을 한 것 같은데 그때마다 상쾌한 기분을

받고 왔다. 한마디로 그린웨이와 나는 좀 궁합이 맞는 것 같다.

 

경기도 시흥시는 시 권역의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시흥시의 시청도

좀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남도지역의 시청이나 군청도 관청 소재지 일대는 좀 활기가 넘친다.

그런 곳에도 유흥주점이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시흥시청은 수도권에 위치에 있지만 주위가 좀 휑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다.

 

물론 정왕동이나 오이도 같은 곳은 사람이 넘쳐나지만 말야...

 

 

 

 

*그린웨이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서남부 일대에서 시흥시처럼 벼농사 비율이 높은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린웨이도

오프로드인 농로를 포장한 것이다. 그래서 그린웨이 곳곳에는 농사용 차량에 우선권을 주라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경운기와 자전거, 그리고 트레킹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그린웨이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가을에 그린웨이를 트레킹하다보면, 벼가 익고 있는 논을 넘어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조금은 낯설은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 풍경에 휩싸이다보면 여기가 혹시 남도땅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질 수도 있다.

 

그러고보면 그린웨이는 참 소중한 곳이다.  농촌과 도시가 서로 잘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 좋기 때문이다.

 

 

 

 

 

*물왕저수지: 안양쪽에서 진입하면, 그린웨이의 초입에 해당하는 곳. 가뭄 때문에 수위가 높지 않다. 

 

 

 

* 갯골 생태공원 입구 

 

 

 

 

 *갯골 생태공원 입구

 

 

 

 

 

 * 그린웨이와 자전거: 안양천 자전거도로에서 빠져나와 물왕저수지쪽으로 오기가 힘들었다.

 

 

 

 * 그린웨이와 오두막: 최근에 저런 휴게공간이 많이 늘어났다. 

 

 

 

 

* 그린웨이: 그린웨이를 달리다보면, 문뜩 '여기가 남도의 어디 아니야?'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 그린웨이

 

 

 

 

 

* 그린웨이 이정표: 상당히 투박해 보인다. 그리고 일자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좀 삐뚤하게 세워져 있다.

좋은 길에 어울리지 않는 이정표다. 좀더 세련된 이정표가 됐으면 좋겠다. 캐릭터 같은 것이 팍팍 들어간 것으로 말이다.  

 

 

 

 * 그린웨이 안내도: 갯골 생태공원을 탐방한 후, 신천동 방면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한다.

 

 

 

 * 버스 안내: 그린웨이 초입(물왕저수지)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 한 컷 찍었다.

도보여행자들은 버스로 그린웨이까지 와서 직접 트레킹을 하고, 탐방이 다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

 

 

 

 

* 버스 정류장

 

 

 

 

 

 

 

 

 

 

 

 

 

 

 

 

 

 

 

 

 

 

 

 

 

 

 

 

 

 

 

 

 

* 도림천: 도림천의 짝퉁 징검다리_ 신도림역 부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최근 신도림역 부근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런 징검다리와 고층건물이 동시에 등장한 사진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 안양천의 흙길: 한겨울에 자전거를 탈 수 없었을 때, 난 항상 이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아웃도어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사실 제목이 좀 거창합니다. 괜히 제목으로 사람들을 낚아내는 포스팅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네요!ㅋ

 

사실 예전에도 저는 도림천이나 안양천과 관련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포스팅은 예전 포스팅에 재탕에 불과한 것일까요? 뭐 그럴수도 있겠지만...

 

제가 아웃도어에 발을 들여 놓은지도 벌써 10년째가 되네요. 그래서 요즘은  제가 다녀온 곳을 꼼꼼히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더군요. 물론 해당 지역에 가서 열심히 걷고, 느끼고, 사진 찍고 하는 행위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들을 기록으로 담아내는 후속 작업도 무척 중요한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요.

기록으로 담아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분명 다르겠지요. 해당 아웃도어가 기록이 됐다면 나중에도 디테일하게

기억이 될 수 있을 듯하네요.

 

 

 

 

* 도림천: 예전에는 정말 지저분했었다. 냄새도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에게는 앞마당과 같은 곳이다.

 

 

* 안양천: 한강에 가까워지자 하천 폭이 넓어졌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이대 목동 병원과 목동 열병합 발전소다.

 

 

 

 

<도림천_안양천_한강, 그 환상의 삼각주>라는 거창한 제목이 달린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고개를 저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메콩강 삼각주니, 양쯔강 삼각주니 하는 건 들어봤어도 '도림천,안양천,한강 그 환상의 삼각주'라는 말은 너무 작위성이

강하다고 질책을 하실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저한테는 도림천,안양천,한강이 삼각주와 같이 정말 소중한 곳입니다. 삼각주라는 곳은 강이나 하천의 하류

부근에 퇴적층이 생겨서 이루어지는 곳이지요. 상류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부유물이 퇴적되었으니 삼각주의 토양은

영양 덩어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삼각주는 세계적인 곡창지대를 이루는 곳이 많지요.

 

물론, 도림천,안양천,한강이 지리적으로 삼각주 형태를 띄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그곳이 제게 아웃도어의

비타민과 같은 곳이라는 의미로 삼각주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입니다.

 

 

 

* 안양천의 꽃 길: 꽃 길을 걷다보면 눈이 다 시원해진다.

 

 

 

 

 

제가 아무리 아웃도어를 좋아하고, 즐겨한다지만 매일 같이 제주 올레길을 갈 수는 없겠죠. 또한 매일 같이 지리산을

올라갈 수는 없을 겁니다. 입으로는 매일 같이 백두대간을 외치지만 제 몸은 일상의 사슬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답니다.

그것이 도시인들의 한계일 겁니다. 포털 뉴스에서 아웃도어와 관련된 기사를 보면 엔돌핀이 팍팍 솟구치지만, 정작

모니터만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것은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실 겁니다.

 

그래서 도시에서 아웃도어를 즐기시는 분들은 자신의 앞마당과 같은 곳을 지정해 두어야 합니다. 4계절을 다 돌릴 수 있는

그런 아웃도어의 앞마당이 필요한 것이지요. 태풍 같은 악천후는 제외하더라도 한겨울에도 다닐 수 있는 그런 곳이 필요합니다.

 

 

 

 

 

* 도림천: 도림천은 비교적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잘 구분되어 있다. 자전거도로와 보행로의 구분은 안전문제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저한테는 도림천,안양천,한강이 제 앞마당과 같은 곳입니다. 태풍이나 수해 같은 악천후를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그곳에서 아웃도어를 즐겼으니까요. 그렇게 아웃도어의 내공이 쌓이니까 자전거전국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던

것이고요. 그렇게 내공이 쌓이다보니까 무동력 여행 4200km를 다녀올 수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도림천, 안양천, 한강은 제게 아웃도어의 영양을 듬뿍 가져다 준 곳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도림천_안양천_한강, 그 환상의 삼각주>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걸고 블로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 4~5년 사이에 도림천과 안양천의 수변 공간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신도림 지역의 토박이인데... 저 어렸을 때는

도림천, 안양천은 말 그대로 똥물이었습니다. 워낙 지저분해서 그 곳에 한 번 빠지면 피부병이 발병될 정도였죠.

하지만 요즘은 그 곳은 지금 물세떼들의 서식지가 됐을 만큼 친환경적인 하천으로 탈바꿈하게 됐습니다.

한여름에는 동네 꼬맹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놀더군요.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죠.

 

 

 

 

 

* 안양천의 오프로드: 흙 길이 걷기에 좋지...

 

 

 

 

 

왜가리인가요? 백로는 아니었는데... 제가 조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ㅋㅋㅋ 하여간 덩치가 큰 흰 새 녀석이 도림천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두 번씩이나요.

그렇게 수질이 좋아지고 수변 공간이 정돈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도시 트레킹 코스로 자리를 잡더군요. 참, 격세지감이지요!

예전에는 똥물이라고 외면받았던 곳이 이제는 저한테 아웃도어의 영양분을 팍팍 불어넣어주는 삼각주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도림천, 안양천,한강의 삼각주를 꾸준히 애용할 생각입니다. 이곳에서 열심히 아웃도어의 내공을

쌓은 후에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영양을 듬뿍 받았으니 열심히 움직여야겠지요!

 

 

TIP) 나의 이동경로: 도림천(신도림역 부근에서 출발)  -> 도림천_안양천 합수지점 -> 안양천_한강 합수지점

1. 도림천 루트: 약 1.5km

2. 안양천 루트: 약 5.5km

3. 이동시간: 약 2시간 정도(도보 기준)

 

 

 

 

 

 

 

 * 한강 합수지점: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가양대교와 행주대교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지하철 2호선 합정역과 여의도가 나온다.

 

 

 

 * 안양천

 

 

 * 안양천

 

 

 

 * 안양천

 

 

 

 * 도림천의 안내판

 

 

* 안양천

 

 

* 도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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