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역사트레킹 합니다! 함께 하고 싶은 분들 클릭클릭!!!^^;


북악산 역사트레킹은 비밀의 화원’ 같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의 별서터가 있었던 백석동천그 백석동천을 흐르고 있는 백사실 계곡또한 북악산의 수려한 산세 등등... 누군가 꼭꼭 숨겨 놓은 화원을 걷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북악산 팔각정에 서면 앞으로는 서울 시내가 뒤로는 북한산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특히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일품 중에 일품입니다북한산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한 번 그 풍광 앞에 서 보세요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팔각정에서 성북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군인들의 보초로입니다그 길을 걷다보면 지금 자신이 서울 중심부에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게 될지 모릅니다그만큼 그 길 주변은 때 묻지 않은 자연 경관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 광교: 청계천에 있다. 






청계천이야기 1


청계천(淸溪川)은 똥물이었습니다맑을청()자를 품고 있는 명칭과는 달리 진짜 똥물이었습니다.


예전에 그만큼 더러웠다는 뜻이죠똥물처럼 탁하다는 뜻이요?”


저렇게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저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은 청계천이 똥물처럼 오염된 하천이라고 판단하셨을 겁니다워낙 오폐수로 뒤덮이다보니 똥물만큼 더럽다고 생각하신 것이겠죠.


청계천이 똥물이었다는 말은 진짜 청계천에 똥이 둥둥 떠다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혼탁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진짜 똥이 흘러흘러 떠내려가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청개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습니다. 청계천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사용되었지요태종은 자연 상태에 놓여 있던 개천을 준설합니다퇴적이 심각했던 터라 큰 비만 내리면 일대가 다 침수가 됐기 때문입니다이때가 1411(태종11)년이었는데 그 전 해에 큰 홍수가 나서 목교가 떠내려가는 등 도성 일대가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 광교: 석각신장이 뒤로 누워 있다. 필자가 일부러 사진을 돌린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 광교가 만들어집니다석교로 만들어진 광교는 나무다리로 만든 목교들과는 달랐습니다튼튼한 돌다리이기에 물살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그렇게 튼튼하게 만들어진 광교의 석재들은 신덕왕후의 능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태종은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을 지금의 자리(성북동)로 옮기고 석각신장 같은 석물들을 광교 건설에 사용했던 것입니다처음 정릉은 지금의 덕수궁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능의 석물들을 다리를 만드는데 사용했을까요왜 태종 이방원은 망자를 욕되게 했을까요신덕왕후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로 첫 번째 왕세자인 이방석의 어머니였습니다이방원과는 대척점에 있었던 인물이었지요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부정해야 했을 겁니다자신이 신덕왕후의 소생 이방석을 죽였으니까요.


청계천변의 다리들은 백성들이 많이 이용했습니다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광교를 오갔을 겁니다짚신이든 가죽신이든 그 발걸음들이 신덕왕후 능에서 가져온 석물들을 밟고 갔습니다그렇게 걸음걸음이 오가는 것 자체가 신덕왕후를 욕보이게 하는 것이겠지요.


똥물이야기하다 갑자기 광교이야기를 하니 좀 혼란스러우시죠본격적인 똥물이야기는 다음편에... ^^;












9월 10일 오후.


제가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을 기획 했을 때 주 타깃층으로 잡은 연령대는 20~30대였습니다. 취업준비, 사회적응 등으로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헬조선'이라는 말들이 오가는 우리사회에서 힐링이 제일 필요한 사람들이 청년층으로 판단했으니까요. 그래서 청년층에 걸맞는 해설과 멘트를 준비하곤 했지요.  

하지만...!!! 꼭 기획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겠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역사트레킹의 주 타깃층은 50~60대로 변해 있었습니다. 

타깃 연령층 변화는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제가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트레킹을 즐기려면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해외여행이 아닌 만큼 큰 돈이 드는 것도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지만 일정 정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청년들은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서 트레킹에 가장 최적화된 연령층은 50~60대 여성들입니다. 그 분들은 여유가 있는 분들입니다. 특히 시간 여유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 가장 많이 오시는 거겠죠.

그럼 청년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 나이 때는 친구 좋아 하고, 애인 만나기에 바쁘고 하니 홍대나 강남, 신촌 같은 번화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겠죠. 화끈하게 청춘을 불태워야죠! ^^;

서설이 길어졌습니다. 9월 10일 이날은 남산 역사트레킹을 행한 날입니다. 사진에서도 보듯 이날은 참가자들이 청년층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청년들과 함께 트레킹을 행하니 기분이 새롭더군요.

"연령층이 젊으니 제가 쓸데없이 아재 개그도 안 해도 되고 좋네요!"

저 말대로 저는 이전 트레킹에서 간간이 아재개그를 날려야 했습니다. 저보다 연장자였던 참가자들을 위해서 립서비스용 아재개그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 웃기니 그게 문제지!!!^^; 

이날 남산 역사트레킹에 참여하신 분들은 한국지역개발원에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사진은 남산타워 밑에 있는 한양도성에서 찍은 것입니다. 

남산은 조선시대 때 목멱대왕이라는 칭호가 내려질 정도로 무척 중요한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함부러 나무도 베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남산을 뒤덮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 가사에 나올 정도로 남산의 소나무는 우리민족의 정기를 담아내는 하나의 표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남산의 소나무들은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소나무를 함부러 잘라내고 그 자리에 아카시나무를 심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남산은 일제강점기 때 엄청난 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 시초는 구한말로 올라갑니다.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 정부는 일본인 거류지로 남산 일대를 지정해 줍니다. 궁궐에서 한 치라도 먼 곳을 지정하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렇게 남산 일대는 일본인들이 자리를 잡게 됐고, 결국에는 조선 신사도 만들어지게 됐답니다. 

신사참배로 유명한...

트레킹팀은 남산 일대를 둘러본 후 유명한 남산 돈가스로 저녁식사까지 했답니다. 함께 남산을 걸으며 이것저것 많은 대화를 나눠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함께 재미나게 트레킹을 해요~!!!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이말산에서 시작됩니다. 재스민을 한자로 풀면 '이말'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이말산은 재스민이 만발한 산이라는 뜻이죠. 이말산에 재스민이 많이 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산에는 무언가가 확실히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바로 무덤입니다. 

특히 이말산에는 내시들의 무덤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지산인 이말산은 한양도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저십리 밖이라 무덤을 쓸 수 있었던 곳입니다. 북한산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말산은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무덤을 쓰기에 적당했을 겁니다. 도성에서도 가깝고 하니... 

푸근한 동네 뒷산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현재 이 산의 무덤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러진 문인석, 뒹굴고 있는 묘비, 잘려나간 망주석 등등... 자신들의 '씨앗'을 남길 수 없었던, 그래서 후손들을 둘 수 없었던 그들이기에 그런 황량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예전 내시들 중에는 양자를 들여 자신의 제사를 받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양자도 고자였기에 한계가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죠. 

이말산을 탐방한 후 트레킹팀은 삼천사로 향합니다. 천년고찰인 삼천사는 아주 시원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계곡 안쪽에 자리잡은 삼천사 뒤쪽으로 북한산의 고봉들이 트레킹팀을 반겨줄 것입니다. 장군봉, 나한봉, 나월봉, 보현봉 등등... 이웃한 진관사와는 또다른 느낌을 전해줄 것입니다. 

*** 삼천사 역사트레킹 공지 올립니다. 추석연휴가 10일 정도라 올 가을은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적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9월 달에 한 번 더 트레킹을 해보려고 합니다. 올 여름에 진행하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던, 하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삼천사 역사트레킹을 9월 달에는 꼭 실시했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8월 25일부터 서울시 재능나눔학교라는 곳에서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슬쩍 언급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서울시 재능나눔학교는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는데 누구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열린학교입니다. 저는 역사트레킹이라는 재능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평생교육 행하고 싶어서... 교육에 뜻이 있어서... ㅋㅋㅋ

뭐 그런 이타심, 혹은 숭고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내교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강의를 개설했답니다. 이번 포스팅에 나온 사진들은 제가 강의를 하는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1강 때 모습인데, '서울의 동서남북'이라는 내용으로 강의를 했답니다. 잘 했는지 모르겠네요. 끝날 때 박수 소리가 컸는데 제가 강의를 잘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끝나서 후련해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

실내강의의 매력은 야외수업에서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을 시청각 자료들을 활용하여 풀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저도 열심히 ppt를 만들었는데... 수강생분들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셨는지 모르겠네요.

자화자찬일지 모르지만 실내강의도 저는 재밌게 행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저는 실외 강의에서 제 역할이 두드러집니다. 

실외강의, 특히 트레킹 강의는 세상 누구보다도 더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올 가을에는 더 재미나게 역사트레킹 강의를 할 생각입니다. 강의가 재밌어야죠. 당연한 이야기!





















지난 일요일 오후 1시 30분경.


경복궁역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습니다.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을 하기 위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카페 회원 분들이 모인 것이죠.


두 달 만에 다시 트레킹을 행하느라 제 마음도 좀 셀랬답니다. 여름 동안 답사는 많이 다녔어도 다시 프로그램을 행하려고 하니 좀 두근거렸답니다. 더군다나 이 날은 새로 제작한 우리 카페의 명찰과 깃발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날이었으니...ㅋ


경북궁역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몇 방울씩 빗방울이 내리더군요. 그래서 몇몇 분들은 우비를 준비하느라 급하게 다이소를 다녀오시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후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답니다. 다이소에 다녀오신 분들은 비상용 우비를 준비했다고 생각하심이...^^


트레킹팀의 첫 번째 탐방지는 탕춘대성과 홍지문이었습니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서로 연결하기 위한 익성이었습니다. 약 4km 정도 되는 성인데 도성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성이라고도 불렸답니다. 홍지문은 그 탕춘대성의 성문이었습니다. 성이 있으면 당연히 성문이 있어야 하잖아요. 성문이 없으면 그냥 성벽을 뛰어넘어야 했나... ㅋ


홍지문 옆으로는 사천이라고 불리는 홍제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탕춘대성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설명을 하지요.


"인왕산에서 내려온 성벽이 사천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북한산 줄기를 따라 급하게 올라갑니다."


홍지문 아래로는 오간수문이 있는데 트레킹팀은 오간수문 통과하여 홍제천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이동을 하니 보도각 백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도각 백불! 한마디로 흰 부처님을 만난 것입니다. 보도각 백불은 자연 암반에 부처님을 새긴 것으로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답니다. 다른 마애불과는 달리 보도각 백불은 조개껍질에다 흰 색 성분이 섞인 안료로 바위에 칠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보도각 백불은 '백불'이지만 살짝 회색빛을 띄고 있답니다. 


이 백불은 예로부터 유명한 기도처 중에 한 곳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도 이 곳에서 기원을 많이 드렸습니다. 우리 트레킹팀도 각자 기원을 올렸습니다. 무슨 기원을 올렸을까요? 좋은 기원? 로또 대박? ㅋㅋㅋ


이후 트레킹팀은 탕춘대성 암문을 탐방했습니다. 탕춘대성 암문은 한양도성 암문과 달리 좀 폐허로 방치된 느낌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직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트레킹은 계속됐습니다. 산책로가 좋다고 칭찬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리딩자로서 기분이 좋더군요...ㅋ


트레킹팀은 장군바위(?)에 올라서서 인생사진(?)들을 찍었습니다. 풍광이 너무 좋아 셔터를 누르면 바로 명품사진이 되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있겠습니까! 사진이 다 말을 해주는데!


그렇게 하여 탕춘대성 역사트레킹은 무사히 잘 종료가 됐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트레킹을 행한 것이 좋았고, 맛나게 저녁 식사를 한 것도 좋았습니다. 커피도 맛있었고요. 


이 맛에 트레킹 하는 것 같습니다~! 





일시: 2017년 8월 27일 

참가자: 우보님, 도토리님, 봄맞이님, 심스틸러님, 곽작가

이동거리: 약 8km

이동시간: 약 4시간




























* 한양도성: 남산구간.







이전 포스팅에서 체성 구간의 돌과 문루 구간의 돌이 다르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똑같이 돌이라는 재료를 쌓아 올렸지만 문루 구간에 있는 돌들이 훨씬 더 격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런데 문루 구간은 체성 구간과 또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


일단 한양도성이 어떻게 축조됐는지, 어떤 식으로 토목공사가 행하여 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한양도성은 편축법이라는 방식으로 축조됐답니다. 편축법은 한쪽 면만 쌓는 방식인데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 합치되는 축조 방식입니다. 


밖에서 성곽을 보십시오. 5~6미터 이상 되는 성벽이 우뚝 서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성 안에서의 눈높이는 여장 정도 잖아요. 이것이 바로 편축법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한쪽만 쌓았다는 겁니다. 


편축법으로 성벽을 쌓는다면 일단 산을 깎아내야 합니다. 이를 삭토법이라고 합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적당하게 산을 깎아 성돌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할 테니까요. 


삭토법을 할 때는 맨 아래부분(시작점)과 맨 윗부분(종료점)의 위치는 달라집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뒤로 비스듬이 깎아낸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시작점과 종료점이 수직으로 일치한다면 그 성벽은 드립다 무너질 겁니다. 그럼 공사 책임자는 유배가고...ㅋㅋㅋ


그렇게 비스듬이 삭토하고, 또 비스듬이 성돌을 올리다보니 맨 아래와 맨 윗 부분의 각도 차이가 생긴답니다. 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약 15도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편축법은 한쪽만 쌓으니 그만큼 공력이 덜 듭니다. 물자와 인력을 아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사산을 둘러쌓은 한양도성은 편축법의 전형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산과 어우러졌기에 한양도성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편축법 말고 협축법이라는 방식이 있는데 고거이는 다음편에... ㅋ







* 여장: 한양도성 안쪽에서 바라보면 여장이 우리의 시야를 꽉 채운다. 여장의 위치가 우리가 보는 위치다. 여장 앞쪽의 평평한 공간을 내탁부라고 한다. 이 공간에서 전투와 경계가 이루어진다. 









* 성벽: 밖의 순성로에 보는 성은 우뚝 선 성벽이다. 






* 서울성곽: 여장 옆 내탁부를 걷고 있는 참가자.









* 숭례문: 도미노 블럭을 옆으로 쌓은 듯 하다. 필자는 저 돌을 지우개처럼 생겼다 하여 지우개 돌이라고 불렀다. 벽돌을 쌓아 올린 면장은 여장보다는 높이가 낮아 성 밖을 보기에 용이하다. 2008년에 방화에 의해 불탄 숭례문은 2013년에 복원되어 시민의 품으로돌아왔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을 행하다보면, 흔히 성곽길을 따라 걷다 대문 혹은 소문으로 쏙 들어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낙산 역사트레킹을 한다고 가정해 보죠. 트레킹팀은 낙산 성곽길을 유유자적 하게 걷다 동소문이라고 불리는 혜화문을 만나게 됩니다. 그 길로 쏙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성곽길을 걸을 때 한 번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 성체라 불리는 체성 구간과 문 구간의 차이점을. 체성 구간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보는 성곽 구간입니다. 우리는 그 옆에 난 순성로를 따라 성곽과 나란히 걷는 것이죠. 


문 구간은 앞서 언급한 혜화문이나 사진에 등장한 숭례문(남대문), 창의문을 말합니다. 

첫번째 숭례문 사진을 보십시오. 같은 돌로 쌓여져 있는 듯하지만 체성 구간의 돌 하고는 차이점이 있지요? 잘 보세요. 여러분들의 센스를 믿어요...ㅋ


숭례문과 창의문에 쌓여진 돌들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장대석들입니다. 얼핏보면 블럭들을 차곡차곡 쌓아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이 부분을 육축이라고 합니다. 그 육축 위에 벽돌로 올려진 부분은 면장이라고 불리지요. 체성 구간의 여장이 문 구간에서는 면장이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면장은 여장보다는 키가 낮아서 안에서 밖을 관망할 수 있다는 점이 있지요. 아무래도 문루에서는 장수들이 지휘를 하다보니 밖이 보여야 하잖아요. 여장처럼 키가 크다면 밖이 안 보일테고, 그러다보면 적군이 왔는지 산타클로스가 왔는지 모를테니까요...ㅋ


하지만 체성 구간의 돌들은 육축 구간의 돌들처럼 잘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시기마다 다르잖아요. 태조 시기의 돌, 세종시기의 돌, 숙종시기의 돌, 영정조 이후 시기의 돌. 


그렇게 보면 문 구간에 있는 육축은 그냥 시기구분이 없어서 참 좋네요. 구분할 필요가 없어서 머리가 아프지 않아...ㅋ  


한양도성과 관련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생각이 나서 올려봤습니다. 다음에 또 관련 이야기를 올려볼게요!









* 체성: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 창의문: 홍예문이 잘 드러나 있다. 면장이 여장보다 확실히 낮아 보인다. 










* 체성: 문 구간의 육축과는 돌이 다르다. 


















안녕하세요?

달마가 서쪽으로 간 이유를 아시나요? 모르신다고요? ㅋㅋㅋ 뜬금없는 선문답이네요.
달마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잘 모르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달마사 역사트레킹을 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달마사는 서달산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달산은 서울 동작구에 있는 야트마한 산이지요.
사실 달마사도 서달산도 생소하실 겁니다. 그 존재조차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동작동 국립묘지를 감싸고 있는 산이 서달산입니다."

지금 고개 끄덕이셨죠? ^^; 달마사는 그 서달산에 위치해 있는 사찰입니다. 
달마사가 한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터라 그곳에 올라서면 확 트인 한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답니다.

달마사를 가기 전에도 좋습니다. 트레킹팀은 양녕대군 묘역을 거쳐 국사봉에 오르게 될 것인데 이 국사봉에는 무학대사가 창건한 사자암이라는 사찰이 있답니다. 이 사찰은 관악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지어진 비보 사찰로 이 곳 역시 전망이 확 트인 사찰이랍니다. 특히 사자암은 울창한 숲길을 품고 있어 탐방의 멋을 더 풍부하게 해 줄 것입니다.

주택가와 밀접한 곳에 위치해 있고, 더군다나 큰 빌딩들이 바로 앞에 보이는 곳에 고즈넉한 암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트레킹팀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큰 빌딩들이 우뚝선 여의도를 앞에 두고 숲길을 따라 사찰을 찾아간다는 것이 '달마사 역사트레킹'의 큰 매력이라는 겁니다. 

그 매력적인 길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탐방하고 싶습니다. 9월 23일 가을이 무르익는 시기에...





























제가 요즘 하고 있는 놀이(?)입니다. ㅋ

재능나눔학교에서 실내 강의를 준비하려니 좀 막막하더라고요. 뭐 야외 강의는 어떤 식으로든 할 수 있지만 아직 실내강의는 내공이 부족한 터라... 어쨌든 준비를 잘하면 그나마 덜 버벅거릴거 같아서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사진 자료도 잘 정리하고, 옛 지도도 잘 편집하고.


그렇게 하여 요 사진들이 탄생하게 됐답니다. 사진에 등장한 고지도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제작하신 
수선전도입니다. 옛 한양의 지도라는 것이죠. 도성과 성저십리 부분이 잘 그려진 지도입니다. 지도 상단 중앙 부분을 보시면 봉우리 세 개가 검정색으로 칠해진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삼각산을 나타낸 것입니다. 김정호 선생께서 독특하게 표현을 하신 듯합니다. 


아래 사진은 '수선전도'를 임의로 편집한 사진입니다. 낙서한 게 아닙니다...ㅋ 
전에 아차산 트레킹에서 '산태극 수태극'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었잖아요. 고거이를 지도상에 그려봤답니다. 산태극 수태극 기억나시죠? 안 나신다고요? 그럼 다음 트레킹에서 알려 드릴게요~ ㅋ


그나저나 지금 그림을 보니까 무슨 부적 같네요. 달팽이 같은 것을 그려 넣은 부적? 

그럼 부적을 그려냈으니 이제 대박날 것만 남았나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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