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교: 청계천에 있다.
청계천이야기 1편
청계천(淸溪川)은 똥물이었습니다. 맑을청(淸)자를 품고 있는 명칭과는 달리 진짜 똥물이었습니다.
“예전에 그만큼 더러웠다는 뜻이죠? 똥물처럼 탁하다는 뜻이요?”
저렇게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은 청계천이 똥물처럼 오염된 하천이라고 판단하셨을 겁니다. 워낙 오폐수로 뒤덮이다보니 똥물만큼 더럽다고 생각하신 것이겠죠.
청계천이 똥물이었다는 말은 진짜 청계천에 똥이 둥둥 떠다녀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혼탁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진짜 똥이 흘러흘러 떠내려가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청개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습니다. 청계천이란 명칭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사용되었지요. 태종은 자연 상태에 놓여 있던 개천을 준설합니다. 퇴적이 심각했던 터라 큰 비만 내리면 일대가 다 침수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1411(태종11)년이었는데 그 전 해에 큰 홍수가 나서 목교가 떠내려가는 등 도성 일대가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 광교: 석각신장이 뒤로 누워 있다. 필자가 일부러 사진을 돌린 것이 아니다.
이 시기에 광교가 만들어집니다. 석교로 만들어진 광교는 나무다리로 만든 목교들과는 달랐습니다. 튼튼한 돌다리이기에 물살에 휩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튼튼하게 만들어진 광교의 석재들은 신덕왕후의 능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태종은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을 지금의 자리(성북동)로 옮기고 석각신장 같은 석물들을 광교 건설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처음 정릉은 지금의 덕수궁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능의 석물들을 다리를 만드는데 사용했을까요? 왜 태종 이방원은 망자를 욕되게 했을까요? 신덕왕후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로 첫 번째 왕세자인 이방석의 어머니였습니다. 이방원과는 대척점에 있었던 인물이었지요.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부정해야 했을 겁니다. 왜? 자신이 신덕왕후의 소생 이방석을 죽였으니까요.
청계천변의 다리들은 백성들이 많이 이용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광교를 오갔을 겁니다. 짚신이든 가죽신이든 그 발걸음들이 신덕왕후 능에서 가져온 석물들을 밟고 갔습니다. 그렇게 걸음걸음이 오가는 것 자체가 신덕왕후를 욕보이게 하는 것이겠지요.
똥물이야기하다 갑자기 광교이야기를 하니 좀 혼란스러우시죠? 본격적인 똥물이야기는 다음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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