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목요일. 여행1일차

 

이날은 부처님오신날이었다. 부처님의 자비가 만방에 퍼지던 이날, 난 속초로 떠나는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 난 야간에 속초 해수욕장 일대를 배회했다.

 

올 봄은 이상하리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나쁜 일들만 생긴 것도 아니었다. 어려운 와중에 성북50플러스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또 간간이 마이리얼트립을 통해서도 트레킹을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아할 정도로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의무감으로 하고, 그렇게 시간을 떼운다는 느낌이었다.

 

거의 똑같은 강의 준비, 토씨 하나 정도가 다른 비스무리한 해설 등등...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하나? 강의가 그러니 생활 자체도 재미가 없지! 꼭 코로나 때문만도 아니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 진이 빠질 정도로 당시 내 머리는 엉켜있었다. 이러다가는 숨이 넘어갈 거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게 굴복할 수는 없는 법! 인생의 파도가 칠 때는 진짜 파도를 보러가야 한다. 그래서 심야 버스를 타고 속초 해수욕장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항상 짊어지고 다니는 낡은 배낭을 메고서...

 

그렇게 나의 강원도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뚜껑없는 박물관', 서울역사도보여행    

  


우리에게 3월은 봄의 시작이자 삼일절이라는 역사적인 날이 있는 달이다. 야외활동을 시작하기 좋은 이 봄에, 역사도보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멀리 떠날 필요도 없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에서 서대문형무소까지 이어지는 길로 역사도보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과 사직단

 

일명 광화문-서대문형무소 코스로 불릴 수 있는 이 도보여행의 시작점은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인 광화문에서 시작된다.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이었던만큼 광화문은 다른 궐문보다 훨씬 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궁궐은 ‘궁’과 ‘궐’이 합쳐진 말인데 ‘궐’은 높은 석대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을 말한다. 지금은 경복궁 돌담과 떨어져 있는 동십자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궁궐의 의미에 빗대어 보자면 광화문은 조선시대 궁궐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

 

 

 

일제의 마수는 광화문에도 미치게 된다. 일제는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광화문을 헐어 동쪽으로 옮겨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한용운 선생이 ‘돌집’이라고 불렀던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다.

해방 이후 광화문은 여러 차례 중수를 하게 됐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광화문은 2010년 8월에 완공한 것이다.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광화문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수문장 교대식 때문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큰 깃발과 화려한 복식을 한 수문장들의 박력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큰 관광 상품이 되었다.

 

경복궁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서촌에는 사직단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도보로 10분 정도 이동을 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례를 올리기 위해 마련된 장소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종묘, 서쪽으로는 사직단이 자리 잡은 것이다.




토지와 곡신의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는 뜻의 `사직단` 제례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직단은 종묘에 버금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직단도 일제시대에 큰 몸살을 앓게 된다. 경내가 크게 훼손되고, 그 영역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슈가 됐던 사직단 복원 문제도 그 근원에는 일제의 마수가 있었던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


도보여행은 인왕산 서울 성곽으로 이어진다. 겸재 정선이 사랑했던 돌산 인왕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찬찬히 살펴보고 마지막 탐방 장소인 서대문형무소로 이동해보자.

서대문 형무소에 대형태극기가 걸려 있다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피눈물을 흘렸던 서대문 형무소는 역사도보여행의 절정부이자 종료 지점이다. 서대문형무소는 1996년 성역화 사업 이후 역사공원으로 탈바꿈했는데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아직도 이곳에는 유관순 열사가 옥사했던 여감방, 강인규 열사(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짐)가 처형당한 사형장 등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복역을 했던 독방들이 전시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가 봐도 좋다

 

 

 

이제 도보여행을 하기 좋은 봄이 왔다. 춘삼월에는 배낭을 꾸려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유적들을 탐방해보자. 도보여행을 통해 빛나는 역사뿐 아니라 그늘진 역사도 배워보자. 알고 보면 서울도 뚜껑 없는 박물관인 정도로 풍부한 역사유적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 역사도보여행 제안 코스
 1. 광화문-서대문형무소 코스:
    광화문(경복궁) ▶사직단(서촌) ▶ 인왕산(서울성곽) ▶ 서대문 형무소(독립문)
 2. 교통편: 출발 –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이용 / 종료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이용
 3. 이동거리: 약 5km / 서대문형무소 관람을 포함,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
 

 

 

대서양에 작은 다짐을 실어보내며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8]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15.01.22 08:25 최종 업데이트 15.01.22 08:28
곽동운(artpunk)

 

 

 

 

 

 

 

 
▲ 피스테라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바위 위에 철로 만든 신발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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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2일, 여행 10일째.


이전 여행기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페인의 땅 끝 마을인 피스테라(Fisterra)의 길은 확실히 개발이 덜 된 느낌이었다. 황무지 같이 방치된 곳들도 있었고, 간간이 버려진 집들도 눈에 띄었다. 스페인의 농어촌도 도시로의 인구 유출이 심각해 보였다.

그렇게 개발도 안 됐고 인적도 드물다 보니,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중 인상적인 지형도 눈에 띄었다. 아침에 올베이로아(Olveiroa)에서 출발을 한 후, 1시간 정도 이동했을 때였다. 길 옆쪽으로 살라스 강(rio xallas)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는데 감입곡류 형태였다.

 

 

 


 
▲ 살라스 강 감입곡류형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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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입곡류는 하천이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감겨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감입곡류 일부 구간에서는 강물이 350도로 휘돌아 나가기도 한다. 그런 살라스 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 예천의 회룡포가 생각났다. 사실 한반도 지형을 담은 서강과 회룡포를 만든 내성천에 비하면 살라스 강의 꾸불꾸불함은 새발의 피였다. 이렇게 남의 것을 바탕삼아 우리 것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해외 도보여행의 장점 중에 하나다. 


뱀처럼 휘감겨 흐르는 살라스 강처럼, 강은 있는 그대로 흐르게 해야 한다. 괜히 직선화를 한다, 보를 세운다 하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럼 강은 역습을 하게 된다. 지금의 4대강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360도 전체를 보는 도보여행

 


 
▲ 피스테라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 피스테라, 묵시아(Muxia), 산티아고 콤푸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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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걷고 또 걷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되듯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수그려서 걸으니 정면만 응시했다. 시야가 무척이나 좁아진 것이다. 그날 여행수첩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도보여행은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사방 360도 전체를 보고 가는 것이다. 길을 가다 잠시 멈춰 서서 꽃과 나무를 감상하고, 시냇물 소리도 듣고, 바람도 느끼는 것이 진정한 도보여행이다."

 


여행수첩에는 "도보여행은 360도"라고 적어 놓았지만 정작 필드에서는 시야각이 겨우 45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자신이 적어 놓은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결국 목적지인 피스테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보여행의 마지막을 아주 화끈하게 불태운 듯싶었다. 발바닥이 불이 난 듯 아주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본 대서양에 발을 담가 열을 식히고 싶을 정도였다.

4년 전 행한 국토종단 여행도 무척 힘들었다. 해남 땅끝 마을을 방문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태풍을 만나고, 텐트가 망가지고... 하지만 결국에는 국토종단 여행을 무사히 종료 됐다. 그렇게 고생스러운 여정 때문이었는지 아직까지도 그 여행은 필자의 뇌리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피스테라 길을 포함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도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고 또한 많이 배운 여행이라서 그런지 여운이 아주 길게 갈 것 같다. 

 

 



피스테라와 야고보는 관련이 없다?

 

 


 
▲ 오레오 곡물 창고인 오레오. 습기와 설치류들을 피하기 위해 기둥을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은 끝 마무리를 둥글게 했다. 기둥 마무리 부분이 둥그니 아무리 쥐들이 기둥을 타고 올라와도 끝 부분에서 떨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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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대개 그곳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피스테라를 소개하는 일부 책자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피스테라는 필자가 반복해서 기술한 대로 스페인의 땅끝이지 유럽 대륙의 땅끝은 아니다.


정확히 유럽 대륙의 땅끝은 호카 곶(Cabo de Roca)이다. 호카 곶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깎아질 듯한 해안절벽이 일품인 곳이다.

 

 



 
▲ 피스테라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에 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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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테라에 대한 환상(?)을 한 가지 더 깨보자. 앞선 여행기 2편
(관련 기사 : "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다고?")에도 언급했듯이, 야고보 성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야고보의 시신이 담긴 배가 예루살렘에서 피스테라까지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의 항해 기술은 둘째 치고, 사역을 하지도 않은 곳에다 자신의 시신을 묻어 달라는 전도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스테라가 왜 야고보와 연결이 됐을까? 아무래도 야고보의 존재를 더욱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스테라가 동원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로마인들은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끝에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도착하여 별들의 들판이라는 산티아고 콤프스텔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정리될 수 있다. 이런 전개 과정 자체가 여행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익사이팅'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 챔피언 이 스페인 사람은 피스테라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에게 큰 감흥을 주어서 이번 여행기에 사진을 올려본다. 이 분의 왼쪽 다리를 보시라. 의족이다. 저런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더 당당했다. 저 자전거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론 이베리아 반도 순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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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깨졌다고는 해도, 피스테라는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넘실대는 파도와 해안절벽들을 따라 가다보면 땅끝 등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모습은 일품 중에 일품이다. 특히 이곳의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행한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것들을 산화 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등대 근처 곳곳에는 순례자들이 태운 신발과 옷가지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피스테라는 그런 장소였다. 무언가 의식을 행하거나 다짐을 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마치 해남 땅 끝에 가면 무언가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필자도 대서양 바다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 유럽대륙을 자전거로 피스테라에서 만난 한국 여대생. 터키에서부터 스페인 피스테라까지 무려 5000km 넘는 거리를 단독으로 여행 했다고 한다. 앳된 얼굴이었지만 진짜 강철같은 에너지를 가진 청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전거로도 순례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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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보는 대서양 앞에서 다짐을 한 말치고는 무척 소박한가? 그래도 상관없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도 못한다는 것이 평소 필자의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허상과도 같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일들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과거를 괴롭게 되새기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억지로 끌어와서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는 뜻이기 하다. 대신 너무 현실적으로 살지는 말자. 가능한 꿈은 얼마든지 꾸자!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도보여행은 끝이 났다. 도합 200km 정도를 걸었는데도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래서인지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작성해 송고할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당장 배낭을 꾸려서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꾹 참아야 했다. 그만큼 순례길은 필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남북한 순례자들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

글을 마치기 전에 순례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본다.

순례길은 화합의 길이었다. 지역감정으로 유명한 마드리드, 카탈로니아, 바스크 사람들이 서로 정답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 순례길이었다. 스페인 내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앙숙이었던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발트3국) 청년들이 서로 의지를 하며 걷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었다.

도보여행을 하는데 국적이니 지역이니 하는 것들은 다 소용이 없다. 순례자의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열심히 즐기며 도보여행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도 일본인 친구들과 짧게나마 즐겁게 걸었다. 니가타 출신이라는 처자는 필자에게 한국말로 '오빠'라고 칭해 주었다. 필자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응답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재미다.

산티아고 카미노에서 북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순례길을 걷는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일일 것이다. '통일대박' 시대에 자연스러운 남북한의 인적교류가 이루어지는 거니까!

순례팀은 차량을 통해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바닷가 마을 묵시아(Muxía)로 이동을 했다. 묵시아도 풍광이 무척 아름다운 어촌 마을 중에 하나였다. 묵시아 여행을 끝으로 필자는 개인 배낭여행 형식으로 스페인 중부권 일대를 탐방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

 

 



 
▲ 묵시아 묵시아는 풍광이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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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밥 처먹고 할일 없어서"... 걷다 보면 이런 소리도 듣네요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6편] 도보여행자 반기는 산티아고 주민들은 달랐다

 

15.01.11 19:42  최종 업데이트 15.01.12 08:22

 

곽동운(artpunk)

 

 

 

 

 

 

 

 

 

 

 

 
▲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구시가지. 사진 중앙에 있는 첨탑이 바로 산티아고 대성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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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hola)."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보면 저런 말들을 숱하게 듣게 된다. '올라'는 스페인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인데 'h'가 묵음이 되어 '홀라'가 아닌 '올라'가 됐다. 부엔 카미노에서 '부엔'은 '좋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직역하면 '좋은 길'이 된다.

이런 말들은 순례자들은 물론이고 현지 주민들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순례객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인사말을 건넸다. 그런 모습들은 그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얼마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현지인들의 자부심은 순례길을 걷기 위해 다른 지방에서 온 스페인 자국민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 자원봉사자 알베르게 자원봉사자. 공립 사리아 알베르게의 자원봉사자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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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문지는 환대를 받은 곳과 일치한다

국내에서 도보여행을 하다보면 간혹 이런 소리를 듣곤 한다.

"밥 처먹고 할 일들이 없으니 저렇게 다니지!"

현지인들의 태도에 의해 그 동네에 대한 친밀도가 요동치기 마련이다. 현지분들이 환대를 해주었으면 그 동네에 대한 호감 지수가 급상승하고 차후에 다시 방문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재방문 예정지는 환대를 받았던 곳과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저런 소리를 들으면 여행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 그곳을 다시 방문할 여지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제는 단련이 됐지만 처음 저런 소리를 들었을 때는 무척 서운했었다. 나름대로 민폐를 끼치지 않고 여행을 다닌다고 자부를 했었던 터라 그 서운함의 강도는 좀 심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잔상들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무척 부러웠다.

 

 


 
▲ 공립 알베르게 이모님 알베르게의 이모님. 저 이모님이 필자한테 판초우의를 건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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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자부심은 단순히 말로 그치지 않았다. 행동으로 이어졌다. 여행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는 크게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는데, 공립 알베르게는 보통 6유로 정도에 이용할 수 있다. 1박을 하는 데 겨우 8000원 정도 밖에 들지 않는 셈이다. 아무리 순례객을 위한 시설이라지만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숙박을 할 수 있다는 건 누군가의 헌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공립 알베르게의 관리자들이 그렇게 헌신을 했는데 그들은 무급을 원칙으로 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무급인데도 공립 알베르게 자원봉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 구간 순례를 마친 사람들만이 봉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후배 순례자들을 위해 선배 순례자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순례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오전 8시경, 그들은 침대를 정돈하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외관상 숙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작업을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았다. 조금이라도 더 후배 순례자들을 챙겨주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돈도 안 생기는 작업을 하면서도 그렇게 너그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들의 순례길을 방문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 순례객들을 잘 거두어 보내겠다는 자부심. 그런 자부심은 그곳을 재방문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11월 9일, 여행 7일째. 순례팀은 페드로조(O Pedrouzo)에 있는 한 공립 알베르게를 출발하였다. 페드로조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는 약 17km 남짓 떨어져 있다.

그날도 역시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필자는 순례팀을 다 보내고 알베르게에서 제일 늦게 나올 생각이었다. 후미 대장을 자처한 탓도 있지만 '빨리 가서 뭐하냐'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 어차피 도보여행이라는 건 속도보다는 방향이 아니겠는가. 속도를 내서 빨리 가려면 그냥 자동차를 타고 가면 되지 굳이 배낭을 짊어 메고 걸어갈 필요가 없다는 게, 도보여행에 대한 필자의 강한 신념이다.

 

 



 
▲ 스페인 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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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욕'을 하며 눈물을 보였던 마드리드 처자

꾸물꾸물한 스페인의 11월 날씨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이미 순례자들은 거의 다 떠나고 없어 알베르게에는 정적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필자도 배낭을 둘러메고 문을 나서려고 했는데 젊은 처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자신의 침대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무척 부자연스러웠다. 마드리드에서 왔다는 이 처자를, 사실 전날부터 유심히 지켜봤었다. 예뻐서(?) 지켜 본 것도 있었지만 발목에 큰 붕대를 메고 있어서 한 눈에도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페드로조에서 순례길의 종료점까지는 반 나절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 알베르게에 머무르는 순례객들은 들떠 있었다. 이제 곧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설 수 있다는 설렘이 그들 표정에서 묻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척 슬픈 표정을 지었고 눈물까지 보였다.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순례 여행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눈물이 되어 흘러 내렸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녀는 이런 말까지 내뱉었다.

"Fu*****"

스페인의 젊은 처자에게 저런 '욕'을 들으니 귀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욕'을 들어먹었지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배낭을 들어 아래층까지 내려주기로 했다. 그녀와 필자가 함께 있던 룸은 2층이었고, 절뚝거리는 다리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래층까지 오기에는 좀 버거웠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나름대로 착한 일을 한 것이다. 참고로 알베르게는 남녀 공용이다.

 

 



 
▲ 스페인 사람들 이 스페인 친구는 길을 걷는 내내 우리 순례팀과 동선이 겹쳤다. 이 친구는 비고(vigo) 출신인데 축구선수 박주영을 좋아한다며 셀타비고 유니폼을 뽐내고 있었다. 셀타비고는 비고를 연고지로 한 축구클럽이다. 잠시 박주영 선수가 뛰기도 한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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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전날처럼 영락없이 몸이 젖을 판이었다. 우비를 가지고 가긴 했지만 다 찢어진 상태였다. 안일하게 1회용 우비로 준비한 게 패착이었다. 이미 우비는 비닐봉지보다도 더 못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착한 일을 해서 그런가? 누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바로 ARCA 알베르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이모님(그냥 한국에서 잘 쓰는 호칭을 써봤다) 이 판초 우의를 하나 건네주신 것이다. 전날 신발이 젖었다는 필자의 몸짓에 이모님은 수더분한 미소를 보내며 직접 신발 말리는 장소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는 필자가 따로 요청한 것도 아닌데 흔쾌히 판초 우의를 건네주셨던 것이다.

선배 순례자로서 후배 순례자를 잘 챙겨준 셈이다. 물론 그 판초 우의는 누군가가 두고 간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새 것 이상으로 고마운 물품이었다. 덕분에 그 이후부터는 비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

 

 



 
▲ 십자가 길을 걷다 목숨을 잃은 순례객들을 위해 세워진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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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결국 사람이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씨가 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 스페인 산티아고 편>을 보면, 다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지은이를 독일인인 아그네스 아줌마가 치료를 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치료를 마친 후에 아그네스 아줌마는 김남희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를 도울 수 있어서 정말 기뻐."

필자는 배려와 친절도 순례길의 일부분이라고 판단한다. 필자도 그런 배려와 친절을 듬뿍 받고 왔다. 또한 할 수 있는 대로 받은 만큼 베풀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답다. 주위 풍광이 아름답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아름답다. 그래서 그 길 위에는 좋은 기운들이 넘쳐난다. 저토록 사랑과 인심이 넘쳐나기에 나쁜 기운이 스며들 틈이 없다.

그래서인지 순례길 곳곳에는 십자가들이 세워져 있다. 길을 걷다가 죽음을 맞이한 순례객들을 추모하기 위해 후배 순례자들이 세운 십자가들이다. 볼거리, 먹거리, 쇼핑거리를 다 거쳐 온 여행의 최종지점에는 항상 사람이 서 있었다. 앞에 것들이 다 좋아도 마지막에 사람이 별로면 그 동네의 친밀도도 별로가 된다. 반면 앞에 것들이 미진해도 사람이 좋으면 그럭저럭 다 무마가 된다. 그러고 보면 여행도 결국 사람이다.

"밥 처먹고 할 일들이 없으니 저렇게 다니지!"

웬만하면 이런 발언들은 삼가주셨으면 한다. 대신 이렇게 바꿔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밥 맛있게 드시고, 우리 고장도 좀 다녀가세요. 우리 고장에도 좋은 것들이 많아요. 대신 여행자의 매너는 잊지 마시고요!"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문하는 나라들의 국기를 그려 넣은 그림. 우리나라는 맨 아래쪽에 있는데 'korea'가 아닌 'corea'로 기재되어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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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추석 예초 앞두고 '말벌' 조심하세요 2편

과민증 여부 미리 확인하고, 벌에 쏘이면 즉시 119 연락

 

 

 

구급차 접근이 용이한 곳으로 즉시 하산


그렇다면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있는 사람이 말벌에 쏘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벌침을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벌침은 손이나 핀셋으로 뽑으면 침낭에 담긴 독소가 체내로 주입되므로 카드 같은 모서리가 단단한 물체로 긁어내는 것이 좋다. 통상 1분 안에 벌침 속의 독이 체내로 주입되므로 신속하게 손을 써야 한다.  

또한 지체 없이 119에 신고를 해야 한다. 1분 안에 벌침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안전을 위하여 119에 신고해야 한다. 이때 환자는 구급차 접근이 용이하도록 포장도로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아웃도어 활동이나 제초작업 등은 통상 산 속에서 행해지므로 사고 발생지점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말벌에 쏘였을 때의 골든타임은 20분에서 60분 사이이다. 이 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한다면 생존 확률은 크게 높아진다. 하지만 그 시간을 놓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주위 사람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단 환자 옷의 단추나 지퍼 등을 풀어줘야 한다. 이미 환자의 몸은 퉁퉁 부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환자를 똑바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환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환자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땅바닥에 드러누우면 호흡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얼음주머니를 대거나 물을 뿌려 환자가 의식을 잃지 않게 계속 일깨워야 한다.

 

 

 


 

 

 
▲ 포장도로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말벌에 쏘였을 때 즉시 하산을 하여야 한다. 구급차 진입이 용이한 곳으로 이동을 하여야 한다. 산 중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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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알레르기 증상이 있는지 사전에 파악해야...


앞서도 언급했듯이 말벌에 의한 아나필락시스 증상은 골든타임을 지켜주면 치유가 가능하다. 문제는 자신이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파악하고 있느냐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벌에 의한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봉침을 놓는다. 벌침에 있는 봉독(蜂毒)을 정제하여 주사기로 환부에 주입하는데, 봉침은 강력한 항염증 작용이 있어 척추치료에까지 이용된다고 한다. 이런 봉침 시술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바로 벌침 알레르기 테스트다. 봉침 시술을 받다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봉침 시술에 필요한 벌침 알레르기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봉침 시술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일부러 한의원에 들러 벌침 알레르기 테스트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한 의술차원에서 정제된 봉침을 맞는 것과 말벌, 특히 독성의 강도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야생 말벌에 의한 벌침 공격은 그 정도의 차이가 크다. 

자신이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 인지하는 가장 최후의 수단은 이전에 벌에 쏘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복기해 보는 것이다. 꿀벌이든 말벌이든 벌에 쏘였을 때 알레르기 반응이 몸 전체적으로 일어났다면 중증 알레르기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손성일 대장은 자신이 벌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전에도 벌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그 사건이 있기 2주 전에도 꿀벌에 물려 통원치료를 받았었다. 그런 '학습' 효과가 있었기에 손성일 대장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산 중 깊은 곳에서 작업을 했던 그는 당시의 말벌 공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 즉시 구급차 접근이 용이한 장소로 하산을 했던 것이다.  

이번 여름은 마른장마로 인하여 벌 개체 수가 증가했다. 일찍부터 말벌주의보가 발령된 상태다. 그래서 추석을 앞두고 예초 작업을 할 때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작은 곤충이라고 벌을 낮잡아 봐서는 안 된다. 그 작은 벌의 침 하나가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벌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벌에 의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팁들이 있다. 아래를 참고해서 벌에 의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자.

1. 산에 오를 때에는 진한 향수나 화장품을 쓰지 말자. 진한 향기 때문에 벌들이 몰려올 수 있다.  


2. 단맛이 나는 음식물을 곁에 두지 않는다. '꿀'인줄 알고 벌들이 몰려들 수 있다.


3. 벌침에 쏘였다면 손으로 잡아 빼지 말고, 교통카드 같은 끝 면이 단단한 물체로 긁어내듯이 제거하자. 손으로 침을 잡아 빼면, 치약이 짜이듯 침낭 안에 있는 독소가 체내로 주입되게 된다. 


4. 벌침은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1분 안에 제거해야 침 안에 있는 독소가 우리 신체로 주입되지 않는다.  


5.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에피네프린(epinephrine) 성분이 있는 '자가 에피네프린 펜' 주사를 휴대하고 다니는 게 좋다. 에피네프린 주사는 처방전이 있어야 하고, 가격이 비싸다는 게 흠이다. 전 세계적으로 아나필락시스 증상을 가진 사람이 드물어 대량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6. 에피네프린 주사를 주입했다고 하더라도 119에 연락을 해야 한다. 주사는 단지 증상을 늦춰줄 뿐,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다.

 

 

 

 

 

 

추석 예초 앞두고 '말벌' 조심하세요 1편

 

과민증 여부 미리 확인하고, 벌에 쏘이면 즉시 119 연락

 

 

14.08.21 10:06
l최종 업데이트 14.08.22 11:38

 

 

 

 

 

지난 12일,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은 잠시나마 '황천길'을 경험했다. 그가 개척한 도보여행길인 삼남길 보수 작업을 하다 말벌에 쏘였던 것이다. 말벌에 쏘였다고 해서 모두가 다 '황천길'을 경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급차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목숨을 잃을 뻔 했을 정도로 그는 위급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겨우 말벌 한 마리 때문에 생(生)과 사(死)의 기로에 서게 됐던 것이다.

 

 


 
▲ 말벌집 말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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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민증이라 불리는 아나필락시스

살면서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벌침에 쏘인 적이 있을 것이다. 야외 활동을 하다 쏘일 수도 있고, 제초 작업을 하다 쏘일 수도 있다. 필자도 트레킹을 하다 여러 번 벌침에 쏘였다. 그렇게 벌침에 쏘였지만 하루 정도 욱신거리다 말았다. 따로 약물치료를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상처 부위가 가라앉았다.

대다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말벌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쏘인 부분, 국소 부위에만 이상 증상을 나타낸다. 따로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자연치유가 가능하다.

하지만 손성일 대장처럼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벌침은 치명적이다. 온 몸이 부어올라 기도가 좁아져 호흡곤란 증세가 발생하고, 더불어 심장마비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다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고 부른다. 과민증이라고도 하는 아나필락시스는 벌이나 독개미 같은 곤충뿐만 아니라 땅콩이나 새우 같은 음식물을 통해서도 발병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인구 10만 명당 3~4명 정도다.

 

 

 


 
▲ 산 길 아웃도어 활동이나 제초작업은 통상 산 중에서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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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접근이 용이한 곳으로 즉시 하산

그렇다면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있는 사람이 말벌에 쏘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벌침을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벌침은 손이나 핀셋으로 뽑으면 침낭에 담긴 독소가 체내로 주입되므로 카드 같은 모서리가 단단한 물체로 긁어내는 것이 좋다. 통상 1분 안에 벌침 속의 독이 체내로 주입되므로 신속하게 손을 써야 한다.  

또한 지체 없이 119에 신고를 해야 한다. 1분 안에 벌침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안전을 위하여 119에 신고해야 한다. 이때 환자는 구급차 접근이 용이하도록 포장도로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아웃도어 활동이나 제초작업 등은 통상 산 속에서 행해지므로 사고 발생지점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말벌에 쏘였을 때의 골든타임은 20분에서 60분 사이이다. 이 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한다면 생존 확률은 크게 높아진다. 하지만 그 시간을 놓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주위 사람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단 환자 옷의 단추나 지퍼 등을 풀어줘야 한다. 이미 환자의 몸은 퉁퉁 부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환자를 똑바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환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환자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땅바닥에 드러누우면 호흡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얼음주머니를 대거나 물을 뿌려 환자가 의식을 잃지 않게 계속 일깨워야 한다.

 

 

 


 

 

 

 

 

 

어느덧 1주년이 됐습니다. 사진에 있는 관촉사 은진미륵불에 삼 배를 올릴 때가 벌써 1년 가까이 됐네요.

그렇게 절을 올리며 다짐을 했었죠. 역사트레킹을 하겠다고... 아웃도어를 하돼, 무언가 지적으로도 채울 수 있는

트레킹을 하겠다고... 그렇게 하여 역사트레킹 카페를 개설했고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작년 4월 22일의 일입니다.

 

냉정히 말해 우리카페는 아직 걸음마도 못 뗐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흔히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고 하지요. 우리 역사트레킹 카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러러면 카페지기인 제가 더 열심히 달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솔직히 카페지기가 임무에 너무 소홀히 했네요. 4월 22일이 카페 1주년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뻔했습니다.

 

카페 창립 1주년 축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로 대신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셜다이닝 <집밥>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시간 관계상 대면이 아닌 서면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여간 집밥은 무척 기특하단 말야~^^;

 

 

 

 

  

  

 

 

 

 

 

 

 

 

 

 

남도여행 책자에 실릴 저의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곽작가도 이번 여행책자에 공저자로 참여를 한 것입니다. 아직 변변한 여행서 하나 출간 하지 못했지만 이번 책자 발간을 기점으로 저도 한발짝 도약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원래는 이 책자가 작년에 나오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발간되지 않았네요.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참 저는 강진과 해남을 중심으로, 트레킹에 대한 내용을 기고했답니다. 삼남길 전남 구간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하였답니다. 남도 이야기를 하니 또 남도에 내려가고 싶네요!ㅋ

 

 

 

 

 

 

 

 

 

 

 

안녕하세요? 곽작가입니다.

더운 여름, 어떻게들 보내시고 계시나요? 열대야 때문에 잠도 들기 어려운 이 시기! 저도 무척 괴로웠답니다. 왜? 여름 정기 투어가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같았으면 벌써 여행을 다녀와서 뒷마무리 작업 중이었을 텐데... 그렇게 해야 할 일을 못했더니 몸에 좀이 쑤시더군요. 역시 계획한 일은 해야 하는게 순리인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이 발행될 시점에 저는 춘천행 ITX를 타고 있을 겁니다. 작년 백두대간자전거여행에 이어 올해 여행의 시작점도 춘천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은 춘천에서 시작하여 계속 남진을 할 예정입니다. 서부 강원권과 충청북도를 중심으로 이동해 지리산 부근에서 남해바다쪽으로 핸들을 돌릴 예정입니다. 즉, 백두대간과 남해바다 탐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름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이라고 명칭을 붙였습니다.

 

 

 

대충 헤아려보니 거의 1,500km 정도 이동할 것 같네요. 만만치 않은 거리죠. 그래서 시일도 한 40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겠죠!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치고 와서 열심히 후기를 남기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길!

 

 

 

 

ps. 이번 여행에서는 새로운 도보여행길 개척을 위한 사전작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새로운 도보여행길은 남해바닷길입니다. 일명 '남바다'라고 불릴 예정입니다. 전남과 경남, 부산까지 약 400km의 국토횡단 도보여행길을 개척 준비중입니다. 영호남의 화합을 담은 도보여행길을 만드는 것인 만큼 아주 잘 만들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일정이 변경되서 14일이 아닌 15일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8월 15일에 출발하는 셈이니 광복절 기념 자전거여행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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