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샛강 생태공원: 샛강 생태공원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 샛강 생태공원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거의 3년 만에 처음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10월 4일에 행한 한강 역사트레킹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유도에서부터 여의도에 있는 샛강 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저는 한강 역사트레킹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한강 트레킹을 마지막으로 행했을 때가 2013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저도 이 길을 걷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트레킹을 앞두고 좀 긴장을 했답니다.


"잘 되야 하는데... 또 오늘이 4학기 첫 수업이잖아!"


그렇습니다. 그날은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습니다. 렛츠런 문화센터의 2016년 4학기의 첫 수업이었죠. 3학기가 잘 끝났으니 4학기는 더 잘 해야 하잖아요. 그런 심적 부담을 좀 안고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첫 수업이라서 그랬는지 수강생들도 거의 다 참석을 해주신 것 같더군요. 약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모였답니다.


10월의 하늘은 참 맑고 청명했습니다. 햇살이 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걷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


한강 역사트레킹은 서울에 있는 트레킹 코스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합니다. 선유도를 걷는 것도 좋고, 샛강 생태공원을 걷는 것도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의도 옆에 위치한 샛강 생태공원은 빌딩 숲과 푸른 수목이 어우러져 있어 무척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색적인 트레킹 코스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답니다. 바로 소음 때문입니다. 길 옆 쪽으로 88도로가 지나가는데 그래서 자동차 소음이 상당히 심하다는 것이죠. 리딩하는 내내 그 점이 마음이 걸리더군요.


그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트레킹은 무사히 잘 종료가 됐답니다.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그렇게 호평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4학기는 가을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트레킹하기 정말 좋은 학기라고 생각합니다. 수강생들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트레킹에 임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런 만큼 제 어깨도 무척 무겁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죠. 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다음 강의 때도 날씨가 받혀줬으면 정말 좋겠네요~

 







​ * 샛강교: 샛강교에서 한 컷. 뒤로 여의도 금융가의 빌딩 숲들이 보인다.


 



   * 뱀 조심: 뱀 조심 표지판. 샛강 생태공원에 뱀이 나타나는가 보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샛강에서 뱀을 본 적이 없다.









 * 백사실 계곡: 백사실 계곡 입구 









서울 한복판에 능금마을?

북악산에 가면 무언가 얻어가는 느낌이 들 겁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드높기만 하다. 설악산에서는 단풍 소식도 들려온다. 그래서일까, 이런 계절에 집에만 있으면 손해 보는 느낌까지 든다. 가벼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어디를 가도 좋을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그럼 어디로 떠나는 게 좋을까? 북악산을 추천해 본다. 북악산 역사트레킹을.

 

  

 

세검정(洗劍亭)보다 고향집 팔각정이 더 낫다?

 

북악산 역사트레킹은 세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검정은 칼을 씻었다(洗劍)’는 의미인데 광해군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자, 인조반정을 획책한 이귀, 김류 등이 칼을 갈아 씻었다고 해서 세검정(洗劍亭)이라고 명명됐기 때문이다. 정자정()에서도 보듯 세검정은 계곡 옆에 지어진 정자다.


세검정 일대(종로구 부암동)는 예부터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였다.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이 주위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사천이라 불렸던 홍제천이 너럭바위 위를 유유히 흐르고 있으니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데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다산 정약용과 겸재 정선도 그렇게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 이들이었다. 다산 선생은 <유세검정(遊洗劍亭)>이란 시를 지었고, 겸재 선생은 <세검정도>라는 부채 그림을 그려 세검정을 칭송했다.

현재의 세검정은 1977년에 지어졌다. 1941년에 인근에 있던 종이공장에서 화재가 났는데 불이 옮겨 붙어 주춧돌만 남기고 완전히 소실됐다가 이후 36년 만에 복원된 것이다. 겸재 선생의 부채 그림을 많이 참조하여 복원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크다고 한다. 내가 봐도 복원된 세검정과 겸재 선생의 그림 속의 세검정은 닮아 있지 않았다. 현재의 세검정은,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동네 정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농담 삼아 이런 말도 한다.

 

우리 고향 마을회관에 있는 팔각정이 더 좋아 보이는데요...”


부채에 그려진 수려한 주위풍광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문화재 복원만큼은 보다 더 정교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 세검정: 홍제천 위에 서 있는 세검정

 

오성대감 이항복과 백사실 계곡

 

세검정을 지나 백사실 계곡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북악산 트레킹이 시작된다. 백사실 계곡은 말이 계곡이지 거의 건천에 가깝다.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을 때를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백사실 계곡은 계곡 자체보다는 숲길이 더 각광을 받는 곳이다. 중심가와 인접한 곳에 그렇게 잘 정돈된 숲길이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니까.


숲길 안쪽으로 걷다보면 백사 이항복의 별서터가 보인다. 숲길 한편에 자리 잡은 별서터는 현재 기단석만이 남아 있다. 그 기단석과 바로 옆쪽에 있는 연못자리로 그 옛날 별장의 풍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별서터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고 새겨진 바위를 볼 수 있다.백석백악을 뜻한다. 북악산을 예전에는 백악산이라고 불렀다.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수려한 곳을 말한다. 한마디로 백석동천은 북악산에 있는 풍광이 수려한 골짜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백사실 계곡의 백사는 이항복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백사실 계곡 인근에 있는 세검정은 광해군과 관련이 많은 곳이다. 인조반정을 획책한 이귀, 김류 등이 반정을 획책하고 칼을 씻었다고 해서 세검정(洗劍亭)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항복도 광해군과 관련이 많은 인물이다.


오성대감으로 더 잘 알려진 이항복은 한음 이덕형과의 재기 넘치는 일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중에 5번이나 병조판서에 오를 만큼 이항복은 선조의 신임을 받았다. 이항복이 당쟁에 물들지 않고, 초연하게 자신의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해냈기에 이런 신임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항복은 이덕형을 명나라에 급파하여 원군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이 왜와 함께 명나라를 치려고 한다는 오해가 생기자, 그 자신이 직접 명나라에 가 오해를 풀고 오기도 했다. 이렇듯 이항복은 외교적으로도 뛰어난 업적을 쌓았다.


오성대감 이야기를 조금 더해보자. 전란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대북파로 분류됐던 문홍도가 휴전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유성룡을 탄핵했다. 그러자 오성대감은 자신도 그 의견에 동조를 했다며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다. 이후 영의정이었던 1600년에는 기축옥사(1589)와 관련하여 성혼을 변호하다가 반대파들에게 정철 비호자로 몰렸고, 그래서 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는 인목대비 폐위(1617)에 대해서도 반대하다 삭탈관직을 당한다. 그리고 다음해인 1618년에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만다. 오성대감이 그렇게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5년 뒤, 광해군도 인조반정에 의해 퇴위당하고 유배길에 오르고 만다. 그러다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세상을 떠난다.

 

 




 * 백사실계곡: 백사실 계곡 숲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서울 한복판에 능금마을이?

 

백석동천을 탐방하다 보면 능금마을이라는 곳을 만나게 된다. 능금마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그런지 전원적인 모습이 물씬 풍기는 곳이다. 서울 도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료포대가 쌓여진 농촌 마을을 보고 있자니 생경한 느낌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왜 능금마을이 북악산 뒤편 부암동 부근에 있는 것일까? 아시다시피 능금이면 우리나라의 고유 사과종을 말하는데 능금으로 유명한 지역은 대구·경북 쪽이 아닌가? 이런 의문이 드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 북악산 역사트레킹에 참가한 사람들도 그렇게 묻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왜 사과마을이 있는 거에요?”

 

현재 창의문 밖, 부암동 일대는 능금마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과나무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능금마을이라는 마을 명칭만이 옛 흔적(?)을 확인해 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40여 년까지만 해도 창의문 밖 능금은 경림금(京林檎)이라 하여 서울의 유명한 특산물이었다. 능금이 출하되는 가을 때쯤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상인들로 창의문 인근이 들썩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창의문 밖에 능금나무가 많이 심어졌을까? 먼저 산지 형태를 띠는 부암동 일대의 토양이 척박하여 논농사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로 들어질 수 있겠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두 번째 이유는 창의문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그 두 번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창의문의 역사를 더듬어 가야 한다.

 




 * 백석동천: 백석동천이라는 한자가 음각된 바위.




 

 

인조반정과 능금마을

 

1623313.

 

창의문 밖 홍제원(지금의 서대문구 홍제동)에 집결한 의군(義軍)’들은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으로 진격한다.

반정군의 원두표가 도끼로 문을 부셨다. 당시 창의문은 문루가 없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탔기 때문이다. 높은 위치에서 활도 쏘고 해야 하는데 문루가 없으니 효과적인 방어가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반정군은 창덕궁을 점령했고, 광해군은 퇴위된다.


능금마을 이야기를 하다 뚱딴지 같이 왜 인조반정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일까? 그렇다. 창의문 밖 능금마을은 인조반정과 무척 관련이 깊다. 인조는 반정에 협조했다 하여 창의문 밖 백성들에게 능금나무와 자두나무를 나눠주었다. 그게 부암동 능금마을의 시초가 된 것이다.


숙종 때에는 정책적으로 묘목을 더 많이 심어 부암동 일대에 무려 20만 그루의 능금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매운 음식을 먹은 듯, 빨갛게 달아오른 사과알들이 푸른 잎들 사이에서 대롱대롱 거렸을 것이다. 아주 멋진 장관이 펼쳐졌을 것 같다. 거기에 인왕산 서편으로 석양이 지는 모습까지 어우러지면...!


창의문 밖 능금, 경림금은 그렇게 서울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되었다. 추석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제례물품이 되었던 것이다.





   

 * 능금마을: '능금마을'을 가리키고 있는 표식. 

 

 

적어도 손해 보지는 않는다!

 

전편인 4편에서 나는 이렇게 부제목을 썼다.

 

- 다음은 북악산입니다. 안 가면 후회할 겁니다.

 

조금은 자극적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노골적인 영업성 멘트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북악산 역사트레킹을 행하다보면, 적어도 손해 보는 느낌이 들지는 않을 거라고. 무언가를 얻어 가는 느낌이 들 거라고.






 * 북악산: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 본 북학산. 












* 서대문 안산: 봉수대 올라가는 길.










펀딩 잘 몰라요, 그냥 트레킹이 좋아서...

다음은 북악산입니다. 안 가면 후회할 겁니다!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이번글은 4편입니다. - 기자 말 

- 죄송합니다. 김밥이랑 생수 사느라고 한 10분 정도 늦을 거 같습니다.

 


925일 일요일.

 

나는 서대문 영천시장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트레킹 참가자, 정확히는 내 후원자들에게 나눠줄 김밥과 생수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준비한다고 김밥집 검색도 해놨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허둥지둥 댔던 것이다. 먼저 가서 후원자들을 맞았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후원자들과 함께하는 첫 번째 리워드 트레킹부터 발걸음이 꼬였던 것이다.

 

 




 *  안산: 봉수대 가는 길. 뒤로 보이는 산이 인왕산이다.









 

높아진 긴장도 수치

 

사실 이날 리워드 트레킹을 앞두고 나는 좀 긴장을 했었다. 후원자들과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하루 전인 토요일에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트레킹 리딩을 했는데 그 여파가 그날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행하는 트레킹 강의도 그날이 처음 시작하는 날이었다. 한마디로 이틀 연속으로 첫 시작이었던 것이다. 긴장도 수치가 높을 만 하지 않는가? 실제로 일요일 트레킹을 마친 후에 나는 며칠간 앓아누워야했다.

 

죄송합니다. 오늘이 리워드 트레킹 첫날인데 지각을 해버렸네요... 너그러이 용서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정이야기를 드려서 그랬는지 모두다 넘어가주는 분위기였다. 역시 후원자분들이었다. 다른 곳이었으면 분명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리딩자가 어떻게 늦을 수 있냐며...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탐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이 되었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이 좀 뿌옇게 보였다. 그래도 인왕산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랬는지 멀리 있는 남산보다는 훨씬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인왕산입니다. 우리는 인왕산의 서쪽 면을 보고 있습니다. 경복궁이나 서촌 쪽에서 바라보는 인왕산과는 좀 다를 겁니다.”


어떻게 다르죠?”


경복궁 쪽에서는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려보잖아요. 그래서 인왕산의 암반 노출면이 두드러지게 보이죠. 하지만 이곳에서 보면 인왕산을 전체적으로 다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요?”


내사산인 인왕산이 북악산, 또 그 뒤에 있는 북한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고 있는지 확인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내 설명이 좀 부족했을지 모른다. 경복궁이나 서촌쪽에서 인왕산을 직접 올려다 본 후라야 저 해설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 곳을 제대로 보려면 365도로 다 둘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산에서 보는 인왕산이 다르듯, 북한산에서 보는 인왕산도 다르거든요. 북한산에서는 인왕산의 북쪽면을 둘러볼 수 있죠.”

 

 




* 안산 자락길: 안산 자락길 표식.







펀딩 그런 거 몰라요. 그냥 트레킹이 좋아서...

 

나는 이렇게 힘을 주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사실 나 같아도 저런 딱딱한 해설보다는 시원한 풍광 쪽에 포인트를 맞췄을 거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참가자들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서울트레킹 펀딩의 취지가 좋아서 돈을 냈는지 아니면 그냥 트레킹이 좋아서 왔는지요.”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슬쩍 물어보았다.

 

스토리펀딩의 창작자 입장에서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오늘 트레킹에 참여를 하셨는데,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의 취지가 좋아서 참여를 했다 1, 그냥 펀딩 형식만 빌렸을 뿐 내 돈 내고 트레킹에 참여를 했다 2, 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압도적이었다. 내심 1번이 많았으면 했지만 거의 다 2번으로 손을 들어주셨다. 대충 감은 잡고 있었지만 그래도 2번으로 중심추가 쏠리니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1번에 선 분들이 언젠가는 2번으로 자리바꿈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그렇게 자리를 옮기게 하려면 내가 잘해야 했다.

 

 



* 홍제천: 홍제천 인공폭포






 

승복을 입은 바위?

인왕산의 서울성곽 구간은 인왕산 자체보다 여기 안산에서 보는 게 더 낫습니다. 인왕산 정상부근에서 내려온 성곽이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 큰 바위 하나를 비켜서 나갑니다.”


무슨 바위죠?”


선바위입니다. 마치 바위가 승복을 입은 승려처럼 보인다고 해서 선()바위라고 불립니다. 성곽을 쌓을 때 무학대사는 저 선바위를 도성 안쪽에 놓자고 했지요. 하지만 정도전은 반대를 했습니다. 승복을 입은 거대한 바위가 도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한 것이죠.”


누가 이긴 거죠?”


정도전이 이겼죠. 보시다시피 선바위는 성곽 밖에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했지만 아차 싶었다. 사실 멀리서보면 이 바위가 선바위인지, 저 바위가 선바위인지 잘 분간이 안 된다. 그래서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저 선바위 밑에 국사당이라고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대표적인 기도처가 있거든요. 거기가면 기도빨이 잘 받는다고 하니까 나중에 우리 거기 한 번 가보죠.”

 

애꿎은 국사당을 들먹이며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휴우!

안산의 자랑인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지나 홍제천 인공폭포 앞에서 트레킹은 무사히 종료가 됐다. 거의 4시간 정도 진행이 됐는데 한 분도 낙오하지 않고 모두 다 완주를 해주셨다.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 세검정: 북악산 역사트레킹.





 

다음은 북악산 역사트레킹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지만 서울트레킹 펀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리워드 트레킹은 북악산으로 이어집니다. 안 가시면 후회할 겁니다. 사실 안산 트레킹은 맛배기에 불과하거든요.”

 

안산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됐지만 앞으로도 리워드 트레킹은 계속된다. 당장 109일에 북악산 역사트레킹이 실시가 된다. 그날은 또 어떤 후원자들이 오실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미 오신다고 약속을 해주신 분들이 여럿이니 그날 먹을 김밥이랑 생수를 좀 넉넉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 표지속: 북악산 완전 개방 표지석. 





 















9월 25일 일요일.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제 발걸음은 분주했습니다. 이날은 안산 역사트레킹을 하는 날이었으니까요.


안산 트레킹은 처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좀 긴장이 되더군요. 처음하는 트레킹도 아닌데 긴장을???



저는 현재 다음 스토리펀딩에 <함께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에 올린 포스팅에도 기술되어 있지요. 이날 오신 분들은 모두 다 <함께걷는 서울트레킹>을 통해 참가를 해주신 분들입니다.

한마디로 저는 제게 후원해주신 분들과 함께 리워드 트레킹에 나선 것입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저처럼 후원자들과 직접 만나는 창작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간단한 티타임이나 강연 형식이 아닌 저처럼 서너시간을 함께하는 창작자는 더더욱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참가자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행운아에요. 이렇게 후원자분들을 직접 만나서 오랜시간을 함께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2348












 
























9월 24일 토요일.


제게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예전에 포스팅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이 날은 제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트레킹 강의를 첫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한겨레 문화센터면 왠만한 백화점 문화센터보다도 더 인지도가 있지 않습니까!


날씨도 좋더군요. 수강생들도 많이 오셨고. 저를 포함해서 총 19명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을 지날 때, '아차'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더군요.


가을날의 광화문은 축제의 연속입니다. 그 축제의 장으로 트레킹팀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소음과 번잡함 속으로 들어갔으니 정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제가 좀 말려버렸습니다. 9월의 광화문에 대해서 미리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니 참가자분들도 제가 좀 미더웠을 겁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황은 좀 나아지는 것 같더군요. 일단 길이 예쁘고, 한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트레킹의 묘미는 한적함입니다. 한들한들 거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야 참가자들도 저도 숨통이 트이니까요.


첫 트레킹은 그저그렇게 끝났지만 다음부터는 더 잘해보고 싶네요. 수강생들의 열화가 같은 박수를 받는


그런 강사가 되고 싶습니다.


추신: 한겨레문화센터 강의에 너무 신경을 곤두 세웠나 봐요. 그날 트레킹 끝나고 그냥 뻗어버렸답니다.~ 

트레킹 한 두 번 한 것도 아닌데 신경을 많이 썼나 봅니다. 잘해보려고 하는 욕심도 컸고요.  











 



 



 









어라? 이거 놀고 먹는 펀딩이 아니었네!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일품 풍광, 안산 역사트레킹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이번글은 3편입니다. - 기자 말 


           


    

 
▲ 안산에서 본 인왕산 안산 봉수대에서 바라 본 인왕산의 모습. 능선을 따라 늘어선 서울성곽이 보인다. 왼쪽 뒤로 보이는 산은 북한산이다.
ⓒ 곽동운









나를 설득 해봐요!

"이번에 또 펀딩하니까 한 번만 더 도와줘요!"


얼마 전 만난 지인과의 대화. 나는 능청스럽게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어차피  돈 벌려고 펀딩을 하는 건 아니었다. 지인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난 저렇게 능청을 떨면서 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냥 편안하게.

"전에 한 번 했었잖아요. 그거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야."
"한 번 했다고 두 번 못하라는 법 있어요. 그냥 하는 거지."
"어차피 인건비도 못 뽑을 거면서... 괜히 돈 냈다가 허무하게 공수표 되는 거 아니에요?"

"뭐 그러겠죠. 그런데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하는 거지."
"팔자 좋네. 부러워 정말.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부럽기는... 뻔히 사정 알면서. 그리고 펀딩하면서 욕도 많이 먹는 거 알잖아요."


툭툭 말을 던지는 지인. 그걸 또 툭툭 맞받아치는 나. 지인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저렇게 이야기를 해대도 지인은 속이 깊은 사람이다.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니까. 지난번에 행한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펀딩에도 거액(?)의 후원금을 내게 쥐어줬었다.

"자 그럼 내가 지갑을 또 열 수 있게 나를 설득해 봐요. 그냥 도와달라는 말은 사절합니다!"

나는 주변 사람을 설득시키지 못하면, 제3자도 설득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본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기본적인 취지에서부터, 다른 펀딩과의 차별성 등을 차례로 설명해나갔다. 본 펀딩의 사회적·공익적 역할 부분에서는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까지 이야기를 해댔다.   

"잠깐, 전이나 비슷하네... 그건 그렇고 방금 말한 리워드 중심이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아, 리워드 중심이요. 리워드 중심 프로젝트라는 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기획할 때부터 리워드에 방점을 찍고 시작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이 에코백이나 도서 같은 현물을 리워드로 제공하지만 내 프로젝트는 '트레킹 초대' 식으로 리워드가 제공된다.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5회가 제공되기에 창작자인 나는 후원자들을 5번 이상 만나게 된다.

확실히 다른 프로젝트들과는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이것을 두고 나는 리워드 중심 프로젝트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 부분은 앞선 1화에서도 언급을 했었다. 지인은 그때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쉽게 이야기를 하지. 뭘 그렇게 어려운 단어들 써가면서 말을 해요."
"음... 이게 어려운가요?"
"한마디로 자기 돈 만 원 내고, 트레킹에 참여를 한다는 거잖아요. 내 말이 맞죠?"
"맞아요. 딱 그 말이에요."


역시 날카로워! 그런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펀딩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날카로운 지적이 오히려 필요했다.

"리워드 중심이니, 뭐니 하는 어려운 말을 쓰지 말고, 해당 트레킹 코스의 매력에 대해서나 이야기를 해봐요."
"예... 매력이요?"

"그게 현실적이지. 백날 리워드 중심이니, 창작자와 후원자가 만난다느니 하는 소리하지 말고요. 뭐하러 그 구리구리한 얼굴을 보러 가겠어!"
"쩝..."


"처음 간다는 곳이 어디에요? 안산이라고 했나요?"
"네. 서대문 안산이요. 경기도 안산 말고."
"그럼 그 안산의 매력에 대해서 읊어 봐요."






▲ 봉수대 안산 봉수대 전망대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 근처에 연세대가 위치해 있어 유학생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 곽동운





서대문 형무소와 다크 투어리즘

안산 역사트레킹은 서대문 형무소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시다시피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독립운동가들만 시련을 당했던 것은 아니다. 작고한 김근태 의원 같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분들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런 아픈 역사 때문인지 서대문 형무소는 다트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대표적인 장소로 손꼽힌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천연재해 등을 당한 곳을 방문하는 것을 말한다. 즉 다크 투어리즘은 아픈 기억을 가진 지역을 탐방함으로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로 착안된 테마여행 방식인데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만약 당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동남아 쓰나미 피해를 입은 지역을 방문했다면 다크 투어리즘 여행을 행했다고 볼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확대해보면, 서울도 곳곳이 다 그 탐방지에 속할 수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던 경복궁, 한국전쟁 중에 폭파가 됐던 한강철교 등등... 서울만 그러겠는가. 전국이 다 다크 투어리즘 천지다. 5·18 민주화운동, 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 등등... 동학농민군이 몰살을 당한 공주 우금치도 다크 투어리즘의 최적지일 것이다.



 

▲ 서대문 형무소 안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서대문 형무소.
ⓒ 곽동운







안산과 인왕산

그렇게 서대문형무소를 지나 본격적인 안산 역사트레킹이 시작된다. 안산(鞍山)은 그 형태가 말 위에 올려놓은 안장과 비슷하다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鞍'는 '안장안'자다.

안산은 인왕산과 무악(毋岳)재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지금은 통일로가 놓여 있는 무악재는 무학재로도 불린다. 이처럼 한끝의 차이는 왜 나타났을까? '무악'이나 '무학'이나 똑같아 보이는데.

조선이 개국할 즈음에 천도 예정지로 거론된 곳은 한양, 계룡산, 안산 세 곳이었다. 당시 경기도 관찰사 하륜은 안산 주산론을 펼치며 안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이에 이성계는 실제로 안산 남쪽 부근을 도읍지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안산의 남쪽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이유로 안산 주산론은 폐기되고, 무학대사의 의견에 따라 북악산 남쪽이 도읍지로 결정된다. 이런 이유로 무악재가 무학재로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무악재는 말안장 같은 안산 기슭을 따라 넘는 고개라고 하여 길마재라고도 불렸다.

나는 이전에 안산 역사트레킹을 리딩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인왕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은 인왕산이 아닌 이곳 안산입니다. 저기 보세요. 정상부 능선 따라 이어진 서울 성곽의 윤곽을요."

괜한 말이 아니다. 안산 정상부에 올라서면 봉수대와 함께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인왕산의 모습은 좀 색다른 멋이 있다. 통상적으로 바라보는 경복궁 방면의 인왕산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봉수대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면 어떻게 이 산이 내사산(內四山:작은서울)과 외사산(外四山:큰서울) 속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그 때문에 나는 이런 멘트를 덧붙였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산이나 비슷한 거 같아요.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봐야 제대로 냉철하게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안산 봉수대 전망대의 또 다른 매력은 한강 너머로 보이는 낙조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한강이 시원하게 보이는데 그 한강에 붉은 기운이 감돌 때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안산의 명소인 메타세쿼이아 숲 탐방도 꼭 해야 한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이 다 상쾌해진다.


 

▲ 안산 봉수대 봉수대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
ⓒ 곽동운





이런 설명들을 들은 지인이 입을 열었다.

"음... 가볼만 한 거 같긴 한데요."
"진짜 가보면 말로 들은 것보다 더 좋아요."
"그런가..."


헤어질 시간이 됐다.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지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아참 각 코스들 다 1만 보 이상 걷죠?"
"당연하죠."
"그럼 운동이 꽤 되겠네요."
"그럼요. 아주 많이 됩니다. 스트레칭도 쭉쭉 하고."
"리워드로 모이는 사람이 전부 다 합치면 75명이 된다고 했죠?"
"네 맞아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한 지인이 내게 미소를 보이며 말을 했다.

"그럼 공익성은 있네요. 그냥 놀고먹는 펀딩이 아니었네. 그 많은 사람들 1만 보 이상 운동시켜주니까요."
"맞아요. 이제야 제 펀딩을 좀 이해를 해주시네!"
"잘하면 보건복지부에서 상 받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좋죠. 상금도 빵빵하게 주면 더 좋고. 그럼 제가 한 턱을...!"
  









* 능안정: 안산은 행정구역상 북아현동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 이곳은 능안리로 불렸던 터라 능안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있다.  













 * 안산 자락길: 서대문 안산 자락길 표식
        








요즘도 가끔가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

"트레킹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런 질문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입 속에서 우물거리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대응능력은 예전보다는 좀 더 나아졌다.

"우리나라에서 글만 써서 밥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거의 없지 않나요."
"그렇죠. 거의 없죠. 이 트레킹 바닥은 그것보다 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걷기열풍이 휘몰아치지 않았던가. 그에 편승되어 각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도보여행길을 개설하지 않았나. 그렇게 만들어진 트레일(trail:오솔길)이 무려 2만km가 넘는다. 또 아직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길 열풍은 또 어떤가.

참 아이러니컬하다. 그렇게 트레킹에 대한 물리적인 저변이 크게 확장됐음에도 트레킹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니! 

솔직히 나도 트레킹만으로 먹고 사는 입장이 못 된다. 얼마 전에도 시멘트 포대를 좀 날랐다. 각기목도 나르고. 공사판에서 일을 했던 것이다. 또 요즘은 추석 시즌이라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공사장일도 농장일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서 일당을 딱딱 받는 재미가 있으니까. 또 삼시 세끼를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트레킹으로 먹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적어도 트레킹과 관련된 일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필자: 남도의 어느 임도 길에서.     




● 트레킹의 정확한 어원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더 많이 답사를 다니고, 더 많이 자료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적절할 때 '아재 개그'를 터뜨려서 참가자들의 배꼽을 빠뜨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트레킹이든 답사여행이든 재밌어야하니까.

어쨌든 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트레킹의 어원을 잘못 쓰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아래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다.

최근 몇 년간 거세게 일어났던 도보여행 덕분일까? 우리는 트레킹(trekking)이라는 낯선 단어를 꽤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물며 이 글의 서두에서는 '트레킹으로 먹고 살 수 있냐'는 질문까지 적시되어 있다.

그렇듯 우리는 트레킹이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고 있다. 그것도 그냥 액면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접두사까지 붙여서 사용한다. 힐링트레킹, 숲길트레킹, 봄꽃트레킹 등등...








 * 공산성: 공산성 성곽길을 걷고 있는 도보여행자.      
        





한마디로 '트레킹'이란 명칭은 이제 우리에게 '등산'이란 단어만큼이나 친숙해진 말이 됐다. 하지만 트레킹이란 말은 자주 입에 올려도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싶다.

트레킹은 남아프리카의 보어인들이 소달구지 등을 이용하여 정처 없이 이동한다는 것을 그 어원으로 두고 있다. 여기서 보어(bore)인들은 네덜란드에서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즉 보어인들은 남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백인이었고 네덜란드어를 썼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트레킹(trekking)이라는 말도 네덜란드어 'trek(끌기, 이동)'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부에서는 보어인들을 남아프리카 원주민으로 잘못 설명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원주민은 흑인인 줄루족인데도 보어인들을 원주민으로 잘못 지칭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원 설명도 뒤바뀌어 버렸다. 네덜란드 이주민들이 썼던 말을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썼던 말로 잘못 설명한 것이다.

그 설명대로 하자면 넬슨 만델라도 보어인이 된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온갖 박해를 받은 넬슨 만델라가 보어인이 되는 것이다. 보어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정책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어원 설명이 잘못되다보니, 나머지 사실들도 뒤죽박죽이 된 것이다. 참고로 만델라는 줄루족이 아닌 템부족 출신이다. 줄루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다수 종족이다.

일부 도보여행 전문가들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온라인 백과사전에도 그런 식으로 트레킹의 어원 설명을 잘못 기재한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안은 확실하게 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삼신봉: 지리산 삼신봉. 1284고지에 위치한 삼신봉. 저 곳에 올라서면 지리산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져진다.










● 트레킹 VS 등산

사실 트레킹의 어원이 네덜란드이든 남아프리카이든 걷기에 나선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걷기가 트레킹으로 불리든 도보여행으로 불리든 배낭을 둘러메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트레킹의 장점일 것이다. 트레킹의 효용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동어반복이 될 수 있다. 트레킹 좋은 거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차라리 누구나 다 아는 트레킹의 장점을 나열하는 것보다 등산과 비교하는 것이 더 알찬 일이 될 것이다.

등산은 '산에 오른다'라는 말처럼 수직적인 개념이다. 이에 비해 트레킹은 수평적인 개념이다. 산에 올라야 하기에 등산의 등판각은 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비해 산 주위를 둘러가는 트레킹은 등판각이 완만하다. 거의 평지를 걸을 때도 있다. 그렇게 완만한 길을 걷기에 등산보다는 관절에 부담이 덜 한 것이다.

관절의 부담만 덜한 것이 아니다. 심장의 부담도 덜하다. 등산 시에는 종종 호흡이 가팔라지지는 경우가 있지만 트레킹을 할 때는 그렇게 심장박동이 빨라질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완만함이 유지되다 보니 접두사가 붙여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풍류, 역사, 봄꽃, 인문학 등등...

그런 접두사들은 테마로 도출된다. 한마디로 테마트레킹이 되는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헥헥' 거리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걸어 다니니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듣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추석 연휴도 막바지를 향해간다. 한 해의 소출을 거두는 귀중한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가을걷이가 이루어지는 들녘은 언제 봐도 풍요롭다.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농부들의 미소가 달덩이처럼 보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모두 다 보름달 같은 미소로 추석 연휴를 즐기셨으면 좋겠다. 나도 보름달 같은 미소를 짓고 싶다. 그리고 올해는 머뭇거렸지만 내년에는 당당히 답을 하고 싶다.

"트레킹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네, 많이는 못 벌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 안산 자락길: 안산 자락길을 산책하는 모습.


















안녕하세요?


늦은 명절 인사올립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습니까?


미리미리 인사를 올렸어야 하는데... 제가 요즘에 다음카카오에서 펀딩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함께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펀딩이지요. 전에도 관련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사진 하단 빨간 박스에서 보듯, 이번에는 '트레킹으로 밥 먹고 살 수 있어요?'라는 글을 발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다음 메인면에 올라갔네요.


포털 1면에 올라간 게 뭐 대단한 일은 아닐 겁니다. 1면에 올라간다고 로또 맞는 것도 아니고...ㅋㅋㅋ   그리고 전에도 몇 번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사회에서 포털의 위력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그래서 그 포털의 1면에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인 저의 삶에는 뭐 그닥...


그래도 작은 선물이나마 추석 선물을 받은 느낌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 하나 쌓여서 큰 보름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보름달이 크게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머리 위에도 넉넉한 한가위 보름달이 비쳐졌으면 좋겠습니다. 대낮처럼 주위를 밝혀주는 보름달이 있기에 추석 명절이 더욱더 정감가니까요.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8179
























No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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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별의별 일들을 다 겪는다. 그렇다. 여행이 우리 스케줄대로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여행자들은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매번 짜증을 낼 것인가, 아니면 문제없다며쿨하게 넘길 것인가?


몇 해 전. 서울 촌놈인 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난생 처음 유럽에 가는 길이라 유럽스타일좀 낸다고 옷도 사고, 신발도 사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또 한 푼이라도 아낀다는 생각에 수수료가 저렴한 곳을 골라 환전을 하기도 하고, 여행 정보를 얻는다고 10시간 동안 꼼짝 않고 웹서핑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누구는 유럽여행 두 번 가면 어디 실려 가겠다고 질책을 하기도 했다. 하긴 그 말도 맞았다. 여행 준비에 골몰하는 바람에 난 두통약까지 복용해야 했으니까.

가을 하늘이 유난히도 청명했던 10월의 어느 날, 난 인천공항에서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새로 산 옷과 신발을 신고 영자 신문을 넘기며 폼을 좀 잡아봤다. 또 목에 힘주며 환전한 유로화도 꺼내서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폼 잡는 것도 잠깐 그 순간이었다. ?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동안 기내에 갇혀 비행을 한다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인가!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 몸은 계속 축 늘어져갔다.

승무원들이 음료카트를 끌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음료 서비스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술을 잘 못하지만 그날만큼은 음료카트에 실린 위스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냥 한 잔 제대로 마시고 잠을 청하고 싶었다.

음로 하씨게써요?”



좀 어눌한 한국말로 내게 음료를 권하는 스튜디어스는 베트남 출신 여승무원이었다. 한국말은 어눌했지만 자태가 고운 미인이었다.

이쓰키로 할까요?”

덜컹. 난기류를 만났는지 비행기가 잠시 흔들렸다. 그래서 그 승무원의 말이 더 어눌하게 들렸다.

다시 덜컹. 나는 좀 겁이 났지만 승무원들은 그런 난기류들이 익숙한 듯 각자 자신의 일에 집중을 하는 듯했다.


, NO!"

하지만 이 말과 함께 그 승무원 손에 들려 있던 위스키 잔이 내게 엎어졌다. 앞서보다 더 큰 난기류에 기체가 더 심하게 요동쳤고, 그녀는 중심을 잃고만 것이다.


잔에 가득 담긴 위스키가 내 얼굴에 쏟아졌고, 난 상반신이 다 젖어버렸다. 옷 상의는 물론 팬티까지 싹 다 젖었다. 난 안경을 쓰는데 우산 없이 길거리에서 비를 맞듯, 내 안경 위로 위스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잠시 멍하게 지켜봐야 했다. 한마디로 난 위스키 샤워를 한 것이다.


미안해


당혹스러웠는지, 그 승무원은 어찌할 줄을 모르게 내게 반말을 했다.


내가 할게

그녀는 또 반말을 하며, 음료 카트 아래쪽에서 수건을 꺼내 내 얼굴에 들이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수는 실수를 부르는 법이다. 수건을 들이대는 순간 그 승무원은 또 중심을 잃고 내 쪽으로 몸이 쏠렸는데, 그 틈에 수건이 들린 손이 내 얼굴을 강타하고 말았다.


정말 미안해, 미안해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연속된 실수로 고객의 소중한 여행을 망쳐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운이 좋았다. ? 나 같은 너그러운(?)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비행 중에 만난 난기류를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 베트남 승무원이 일부러 실수를 하고 싶어서 실수를 했겠는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위스키에 혀를 살짝 다시어, 익살스럽게 맛보기를 할 정도로 난 큰 문제가 없었다.


“No, Problem!"









그렇게 난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그녀에 손에 들린 수건을 빼앗아 얼굴과 상의를 구석구석 닦았다. 그런 나의 침착한 모습에 그녀도 안도가 됐는지, 잔뜩 경직됐던 얼굴이 좀 풀렸던 것 같았다.


내 몸 구석구석을 한참동안 닦고, 안경도 닦았더니 나도 좀 정신이 들었다. 수건을 돌려줄 때 자세히 보니 그 수건 밑단에 고추장이 좀 묻어 있던 게 눈에 띄었다. 경황이 없던 승무원이 사용안한 마른 수건을 준다는 걸 이미 사용한 걸레를 준 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난 그것조차 쿨하게 넘겼다.


그런 우여곡절을 넘기며 난 샤를 드골에 무사히 도착했다. ‘위스키 샤워 사건이후, 그 베트남 승무원이 내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최고급 위스키를 건넸는데 그걸 한 잔 마셨더니 내내 좀 알딸딸했다.  내게만 제공된 특별한 술이었는데, 미녀 승무원이 권한 술잔이라 더 취기가 올랐던 걸까? 아니면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일까? 드골 공항에서 들려오는 프랑스어가 제대로 내 귀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마치 여기저기서 랩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출발부터 그런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랬는지, 당시의 유럽여행은 정말 재미있었다. 어차피 여행을,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여행을 떠난다면 애초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때마다 짜증을 내고, 언성을 높일 것인가? 한 가지라도 더 느끼고 배운다는 자세로 여행길을 떠난다면 잠시 잠깐의 불편은 지혜롭게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언성 높이지 말고 이렇게 한 번 외쳐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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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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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정리하다가 2012년에 간행된 <하늘사랑 수기공모전> 모음집이 보이더군요. 몇 페이지를 넘기니 그 속에 제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최우수상!  제목은 No problem!


학교 다닐 때는 상장 하나 못 받아봤는데... 나이가 들고, 글을 쓰다보니 저렇게 상도 받아보네요. 그것도 가작이나 우수상이 아닌 최우수상이라니! 정말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 바닥을 기었었는데... ㅋ


이제껏 공모전에서 여러번 상을 받았는데 아직까지는 1등은 못 해봤답니다. 물론 우수상이나 가작도 매우 훌륭한 것지요. 하지만 평생 1등을 한 번 못 해봐서 그런지 대상 한 번 타보는 것이 정말 소원 중에 소원이랍니다.


만약 1등상을 받는다면, 기왕이면 상금이 큰 대회에서 받고 싶네요. 짭잘하게 상금을 챙기게요. ^^;   


4년에 발간된 책자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옛날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위에 글은 원문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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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역사트레킹: 공산성 위에 선 후원자님. 뒤로 보이는 강이 금강이다.  





* 관악산 역사트레킹: 장승들 앞에 선 후원자분들.







9월 3~4일.


그날도 어김없이 저는 트레킹을 했습니다. 어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걸었지요. 하지만 그날 트레킹에 참가한 분들은 남다른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였냐?


바로 제게 후원금을 내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들은 제 후원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108일 동안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이라는 펀딩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 스토리펀딩이라는 플랫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죠.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리워드'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리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창작자가 후원자들에게 주는 답례입니다.


통상적으로 리워드로 많이 지급되는 것이 엽서, 머그컵, 에코백 등등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저런 것들을 리워드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트레킹이라는 이름으로 펀딩을 한 만큼 트레킹에 초대하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관악산 역사트레킹: 후원자분들과 함께 서 있는 나. 맨 오른쪽. 땀으로 범벅이 됐다-_-







* 공주 역사트레킹: 우금티 고개에 선 나. 그날 햇살이 강해서 그랬는지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렇습니다. 리워드를 트레킹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리워드 트레킹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9월 3일과 4일에 진행됐습니다.


3일에는 공주 역사트레킹이 실시됐고, 4일에는 관악산 역사트레킹이 진행됐습니다. 두 날 모두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아쉽기는 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함께 걸었으면 좋았을텐데...


특히 공주 역사트레킹 같은 경우는 쉽게 행할 수가 없답니다. 일단 제가 미리 가서 답사를 해야 합니다. 또 이동시간도 꽤 깁니다. 서울에서 하는 트레킹보다 적어도 1시간 이상 더 걸리니까요. 그러니 참가자들도 부담, 저도 부담이 되지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어쨌든 더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_-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나름의 특색이 있는게 트레킹의 매력입니다. 공주 역사트레킹 같은 경우는 1:1 맨투맨으로 트레킹을 했습니다. 관악산 역사트레킹의 경우는 3명의 후원자와 함께 행했습니다.





* 공주 역사트레킹: 공산성 광복루에 선 후원자 분. 저 광복루라는 이름은 김구 선생께서 직접 붙이신 것이다.








* 공주 역사트레킹: 공주성당.








트레킹 하기 좋은 가을날 후원자분들과 함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습니다. 후원자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펀딩이 사실 많지가 않답니다. 실제로 만난다고 해도 티타임이나 강연 정도이고요. 후원자가 능동적인 입장이 되어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면에서 저는 행운아입니다. 후원자들과 직접 만나 트레킹을 행했으니까요. 서너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으니까요. 저같은 창작자도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함께 걷는 길 서울 트레킹>이라는 펀딩을 또 하고 있답니다. 후원자들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또 펀딩을 개설한 것이죠. 이번 펀딩에는 리워드 트레킹을 5개를 배치해서 후원자들들 5번 이상 만날 계획입니다. 5번 이상 그들과 만나 웃고 떠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가을은 은근히 바쁠 것 같습니다. 소출이 기대되는 올가을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8179  <--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 관악산 역사트레킹: 메타세콰이어 숲에 선 후원자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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