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역사트레킹 강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 런칭과 동시에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그 강의!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올해는 '더불어 걷는 역사트레킹'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올 3~4월 학기는 총 6번에 걸쳐 트레킹을 진행합니다. 사진에서 보듯 스타트는 안산트레킹으로 시작합니다.


아직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어서 트레킹에 대한 관심이 덜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물쭈물 하다가는 접수를 못할 수도 있어요...ㅋ


아참 올해 강의부터는 수강료가 올랐습니다. 2만 5천원이 책정되어서 저도 좀 놀랬습니다.


강의료가 부담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만큼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죠.


올 3월을 기다리면서 저는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정말 열심히 해서 역사트레킹이 한겨레문화센터의 대표강의가 되게 할 겁니다! ^^; 감사합니다!



한겨레문화센터 안산트레킹 수강신청 ---> 바로가기







* 아래는 3~4월 학기 일정표입니다. 마지막 트레킹이 종료된 뒤 5~6월 학기가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올 상반기는 2번의 학기가 개설될 것입니다. 6번씩 총 12번의 트레킹이 진행된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부탁드립니다!


34일 토요일

1차 안산트레킹

311일 토요일

2차 삼성산트레킹

318일 토요일

휴무

325일 토요일

3차 북악산트레킹

41일 토요일

4차 남양주 정약용트레킹

48일 토요일

휴무

415일 토요일

5차 아차산트레킹

422일 토요일

6차 성북동트레킹






























2016년은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국내외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그렇게 다이내믹했던 2016년이 지고 이제 대망의 2017년의 새해가 밝아오네요.

새해가 되면 많은 분들이 해돋이를 보러 갑니다. 또 누구는 산에 오르기도 하지요. 그곳에서 한 해를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깊게 새기시겠지요. 그렇게 다짐을 하고 오는 곳은 자신에게 특별한 곳일 겁니다.

저한테도 그런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바로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입니다.
승복을 입은 스님처럼 보인다고 하여 선바위로 이름 붙여진 큰 바위가 바로 그곳이지요.


누구는 이 선바위를 두고 무학대사 바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 무학대사가 이 바위를 도성 안에 넣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바위는 도성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유학을 중시했던 정도전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저는 이 바위를 사오정 바위라고 부릅니다. 바위의 뒤태를 담은 사진을 잘 보세요. 꼭 사오정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아니면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다의 뒷모습?

이름이 어떻든 간에 이 바위는 우리나라에서 기도발이 가장 잘 받는 곳 중에 한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두 손 모아 기원을 드립니다. 저도 선바위에서 삼 배를 올리곤 했습니다.

2017년 새해를 맞이해서 선바위에 가서 삼 배를 올릴 생각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번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두 손을 모을 생각이지요. 또 한 해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다부지게 할 생각입니다.

아참!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테니 그것에 대한 기원도 드릴 생각입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이 고생을 했으니, 다음 대통령은 정말 상식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선출되라고 국가적인 기원을 드릴 생각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인해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진행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 잘 마무리가 됐답니다.


펀딩이 성공을 한 것입니다. 달성율 101%. 100%를 넘어 101%에 도달한 것입니다. 짝짝짝~!

​2016년 9월 1일부터 12월 20일 까지 무려 111일간 진행!

그렇게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을 진행하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제게는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답니다. 물론 오해도 받았답니다.~ ㅋ  

​어차피 사랑이든 오해든 뭐든... 이제는 다 지난간 일입니다.


이제는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다가올 2017년 계획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다사다난 했던 2016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밝아오는 새해에는

항상 좋은 일들만 함께 하시길~!

* 후원금: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펀딩 소개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자신이 낸 후원금으로 역사트레킹(테마트레킹)을 즐기는 것입니다. 연재글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었지요.


그래서 후원금도 그렇게 지출됐습니다. 5번의 리워드 트레킹에 후원금이 모두 지출된 것입니다. 이 점도 리워드에 참가를 해주신 참여자분들에게도 계속 이야기를 했었답니다. 

사실은 제 사비를 털어서 실비로 먼저 지출했지요. 이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도 저는 펀딩금을 만져 보지도 못했으니까요. 한마디로 전 지금 마이너스... -_-; ㅋㅋㅋ


그래도 다른 펀딩에 비하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양반입니다. 다른 펀딩들은 리워드 때문에 무척 골치가 아플텐데 저는 그런 염려에서 벗어났으니까요.

회계 보고에 대한 부담감도 없습니다. 후원자들을 직접 만나 후원금을 같이 집행을 했으니까요.

 






                                                                                                                                                                                            




  * 대서문: 북한산성 대서문





펀딩해서 돈 좀 만지셨수?

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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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펀딩과 함께 했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 올 한 해 스토리펀딩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323일부터 108일 동안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을 진행했었고, 91일부터는 본 프로젝트인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을 무려 111일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 종료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까지도 난 가끔 이런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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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펀딩을 한 게 잘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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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트레킹이라는 주제는 스토리펀딩에 적합하지 않은 테마일 수 있다. 아무리 앞쪽에 역사혹은 서울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고 하더라도 트레킹이 주는 그 자체의 무게감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공익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눈가에 감동의 폭포수를 흐르게 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반응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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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다 펀딩질 하며 돈 구걸하네. 너희 놀고먹는 일에 돈까지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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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해들이야 애초부터 감수를 했지만 그래도 막상 그런 반응들을 접하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글을 발행하는 것밖에. 그래서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에서는 17편의 글을 발행했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게으름 때문인지 6편 밖에 작성하지 못했다.

이번 글은 7편째다. 지난 1113일에 행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천년 고찰인 진관사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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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숲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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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스토리가 숨어 있는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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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4대 명찰이 있다. 동쪽에 불암사, 남쪽에 삼막사, 북쪽에 승가사. 그럼 서쪽은? 진관사다.

천년 고찰인 진관사(津寬寺)는 고려 현종 때인 1010년에 만들어졌다.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이 직접 창건한 이 절은 진관대사를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태조 왕건의 손자였던 현종, 즉 왕순은 어릴 적에는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왕건의 손녀였던 천추태후로부터 어릴 적부터 박해를 받은 왕순은 한때 강제로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천추태후가 그의 이모가 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당시 얽히고설킨 왕실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같은 왕건의 혈통이자 이모뻘의 천추태후로부터 살해위협까지 받게 된 건 그가 왕위계승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천추태후는 애인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왕으로 등극시킬 셈이었다.


그런 천추태후의 마수가 진관사에까지 뻗치게 됐다. 원래 진관사 자리에는 신혈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진관이라는 승려가 홀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승려가 홀로 거처하는 곳이라 천추태후 입장에서는 무언가 거사를 치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랬다. 천추태후는 신혈사에 자객을 보내 왕순을 죽일 셈이었다.

천추태후의 의도대로 왕순이 자객에 손에 비명횡사를 했다면, 현종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진관사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진관사: 대웅전









천추태후의 의도를 눈치 챈 진관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굴을 파서 왕손을 숨기는 기지를 발휘한다. 수미단은 불상을 올려놓는 단을 말한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산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진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왕순은 3년 뒤, 개경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려 8대 왕 현종이다. 현종은 1010,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진관 대사의 이름을 본 따서 사찰 이름을 지으니 그 사찰이 바로 지금의 진관사다.

 

조선시대 진관사는 사가독서제로 애용된 곳이다. 사가독서제란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정진하게 만든 제도로 세종시대에 처음 도입되었다. 풍광이 수려하고 계곡이 시원한 진관사라면 학문을 닦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가독서제로 진관사를 다년간 이들은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었다.

진관사는 한국전쟁동안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다. 그래서 지금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의 웅장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관사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는 사찰이다. 진관사 숲길과 계곡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느낌들이 좋아서 발걸음들이 진관사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트레킹팀도 그런 좋은 기운을 받으며 다음 코스인 대서문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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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아름다운 북한산과 어우러진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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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에서

 

대서문은 북한산성에 있는 14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있는 성문을 말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는 대동문, 대남문 등과 달리 대서문은 해발고도가 낮아 접근성이 매우 좋다. 북한산둘레길 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거리가 가까워, 둘레길과 묶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트레킹팀이 그렇게 탐방을 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북한산성은 1711(숙종37)에 축조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북한산에는 산성이 존재했었다. 백제시대에는 위례성의 북쪽 방어성으로 산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인 삼국 항쟁시기에는 북한산을 두고 각국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그 항쟁의 증거 중에 하나인 진흥왕 순수비가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있다. 정확히는 지금 비봉에 세워진 순수비는 진품이 아니고, 순수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석이다. 진품은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로 비봉은 앞서 언급한 진관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도는 상당히 가파르다. 답사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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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계곡




 

우리 북한산계곡에 와 있습니다. 정말 시원스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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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계곡에서 나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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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성벽 구간, 무너진 성벽 구간이 보이시죠? 원래 이 곳에는 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문을 통해서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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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에는 대서문 같은 7개의 대문과 6개의 암문, 그리고 한 개의 수문이 있었다. 이를 두고 북한산성 14성문이라고 말한다. 대문과 암문은 복원이 되고 해서 실재하고 있지만 수문은 소실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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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북한산성은 포곡식 산성입니다. 포곡식이라는 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성이라는 뜻이죠. 성이 만들어지면 음용수 때문에 골치를 썩잖아요. 그런면에서 계곡을 끼고 있는 북한산성은 물 공급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죠.”

진짜 그랬겠네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계곡이 있다 보니 풍수해에 취약해요. 그래서 저 앞에 수문이 떠내려가 버렸잖아요.”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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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성 수문터: 북한산성 수문은 북한산계곡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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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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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탐방을 끝으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더불어 후원자들과 5번에 걸쳐 함께한 리워드 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이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도 마칠 때가 됐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2016년 한 해는 펀딩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달리 리워드를 트레킹 초대형식으로 제공했다. 에코백이나 머그컵 같은 것을 드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잘하는 것을 리워드로 제시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5번에 걸쳐 직접 후원자들과 만나 트레킹을 행했었다. 내 리딩 방식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중에는 중복 참여를 하신 분들도 여럿 계셨다. 어떤 분은 5번 다 참가를 해주시기까지 했다. 내년에도 스토리펀딩에 트레킹 프로젝트를 개설해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다.

글을 끝내기 전에... 누군가 이렇게 물으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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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으로 올 한 해를 때웠다고 하는데... 그래서 돈 좀 만지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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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대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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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펀딩합니까?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 펀딩한 거지. 어차피 실비 빼면 마이너스에요. 그래도 하는 건 트레킹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거에요. 그런 게 세상사는 맛 아니겠어요? 당신도 기회 되시면 서울트레킹에 참여해보세요. 제가 김밥이랑 물 챙겨 드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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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원효봉이다.









        * 대서문: 대서문의 여장. 특이하게도 일체형이다.













무장공비 루트에 고운 단풍... 그런데 여기가 서울?



정릉에서 김신조 루트까지, 성북동 역사트레킹




16.11.21 13:10 최종 업데이트 16.11.21 13:10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이번글은 5편입니다. - 기자 말

    

▲ 북악산 북악산 하늘길, 일명 김신조 루트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빛깔 고운 단풍비를 맞으며 걷고 있다.

        

        



출발 전부터 바람이 불었다. 빗방울도 오락가락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처음 런칭하는 날인데..."

지난 10월 23일.

이 날은 성북동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날이었다. 성북동 트레킹은 스토리펀딩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트레킹이었다. 그래서 나름 준비도 열심히 했다.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답사도 여러번 다녀왔고, 자료를 찾는다고 책장을 분주히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당일 날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트레킹할 때 날씨가 좋으면 반을 먹고 들어간다고 하는데 보시다시피 오늘은 꽝이네요."
"그래도 좋아요!"
"이런 날씨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자리에 모인 후원자분들이 더 걱정을 해주셨다. 말씀만이라도 고마웠다. 이런 후원자들과 함께 트레킹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일 테지!





▲ 정릉 세계문화유산 정릉.   

       







이성계의 총애를 받은 신덕왕후

트레킹 팀이 첫 번째로 탐방한 곳은 정릉(貞陵)이었다. 정릉은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황해도 곡산 출신인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이성계의 총애를 받게 된다. 1392년, 조선이 개국했을 때 태조의 옆에 서 있던 사람도 신덕왕후였다.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가 그 전 해에, 조선의 개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결국 강씨는 현비로 봉해져 조선의 첫 번째 왕비에 오르게 된다.

조선왕조가 개창될 때 이성계의 나이는 58세였다. 그래서 즉위하자마자 세자 책봉에 나서야 했다. 현비였던 신덕왕후로서는 자신이 생산한 왕자를 세자의 자리에 앉히고 싶어 했다. 이성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녀였기에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으리라.

하지만 쟁쟁하게 버티고 있던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들이 문제였다. 방과(정종), 방원(태종) 등등... 신의왕후의 소생들은 조선 창업에 큰 공을 세운 이들었다.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신덕왕후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정도전과 손을 잡게 된다. 정도전 입장에서도 이미 다 장성한데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신의왕후 자제들보다는 아직 나이가 어린 강씨의 소생이 세자가 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재상중심의 왕도정치를 주창한 정도전이었으니까.

결국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었던 방석(의안대군)이 1392년 8월 20일에 세자로 책봉된다. 그해 7월 17일에 조선이 개국했으니 약 한 달 만에 세자가 책봉이 된 것이다. 이에 이방원(정안대군)은 격분한다.

"정릉은 조선왕조가 개국한 후 처음으로 능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왕릉들에 비해서는 좀 허술해 보이지 않나요? 봉분을 둘러싼 봉분석도 없고요." 

그 말대로 정릉은 능의 격식에 맞지 않게 무언가가 빠져 있다. 여백의 미학이 아닌 인위적으로 뺄셈을 당한 것이다. 그렇게 뺄셈을 한 사람은 바로 태종 이방원이었다.

신덕왕후는 자신의 소생이 왕위에 등극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396년(태조5)에 눈을 감고 만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신덕왕후가 죽자 이성계는 지금의 서울 정동, 현재의 영국대사관 자리에 능을 조성했다. 또한 흥천사라는 사찰을 지어 그녀의 명목을 빌었다.

이 흥천사를 두고 원찰(願刹)이라고 부르는데, 원찰은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진 사찰을 뜻한다. 정조대왕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융건릉 인근에 있는 용주사도 원찰이다.



                             ▲ 정릉 봉분을 두르는 봉분석이 없다.

        






뺄셈을 당한 정릉

1398년 8월,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 무인년에 일어났다 하여 무인정사(戊寅靖社)라고도 불리는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정도전은 목숨을 잃게 된다. 세자였던 이방석도 목숨을 잃게 된다. 

왕위에 오른 이방원은 도성 안에 무덤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1409년(태종9)에 정릉을 지금의 위치인 성북동으로 이전시킨다. 본격적인 뺄셈이 시작된 것이다. 그 다음해에는 정릉의 봉분을 두르고 있던 석각신장 같은 석물을 광통교 건설에 쓰게 했다. 광통교는 청계천에 있는 다리다.

능에서 가져온 귀한 석재들로 돌다리를 만드는 만큼 그것들을 제대로 이용했으면 좋았으련만 이방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부러 신장석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광통교 하단을 보면 몇몇 신장석들은 머리가 바닥을 향해 있다. 이방원은 철저하게 신덕왕후를 짓밟았던 것이다.

"여기 이거 물구나무 선 거 같지 않나요?"
"진짜 그러네요."
"청계천 복원할 때 뒤집어서 복원한 게 아니고, 광통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렇게 물구나무를 세웠습니다. 광통교는 1410년, 태종 때 만들어졌지요. 이렇게 거꾸로 놓이게 된 건 제작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뜻이겠죠."
"굳이 이렇게까지..."
"그나저나 이것들은 거의 600년 이상을 이렇게 거꾸로 세상을 보고 있었겠네요."


인왕산역사트레킹 때 광통교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에 정릉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광통교도 함께 탐방할 것을 추천한다. 





▲ 광통교 정릉에서 빼온 신장석이 거꾸로 세워져 있다. 무려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광통교는 청계천에 있다.

     


 
  

아픈 현대사를 걷다, 김신조 루트를 걷다

정릉을 뒤로 하고 트레킹팀은 본격적인 길을 나섰다. 바람이 좀 더 세게 부는 듯했다. 빗줄기도 더 강해지고 있었다. 참가자들 중에는 우비를 꺼내 입은 분들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이런 게 내 잘못이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자. 오늘 가는 곳이 아픈 현대사를 담은 곳이잖아. 그러니 비를 배경 삼아 가는 것도 괜찮겠네.'

트레킹팀은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 <북악하늘길>로 접어들었다. 북악하늘길은 성북구에서 조성한 도보여행길로 총 4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트레킹 팀은 제2산책로를 '타깃'삼아 이동을 했다. 나는 제2산책로를 앞에다 두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정릉을 거쳤고, 북악스카이웨이 옆 산책로도 지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그럼 거의 끝난 건가요?"
"아니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 코스를 걷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행연습이었어요."
"에이..."
"너무 해!"







      ▲ 북악산 하늘길 단풍이 고운 북악산 하늘길.         

       



그렇게 참가자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떤 참가자는 내게 '사기꾼'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 탄식과 핀잔이 감탄사로 바뀔 것이라는 그런 자신감.

"이 곳은 북악하늘길 제2코스입니다.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곳이죠."

북악산은 군사 목적으로 출입이 제한되다가 지난 2007년 전면 개방이 되었다. 그 군사적인 목적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김신조 일당이었다.

"1·21사태, 일명 김신조 사건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청와대 습격 사건이라고도 부르는 그 사건이요."

나는 호경암 앞에서 입을 열었다. 호경암은 1·21사태 때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져 아직까지도 바위 곳곳에는 그날의 아픈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당시 김신조를 위시한 무장공비들은 시간당 10km 이동을 했답니다. 그것도 산길을요. 건강한 성인이 4km로 정도로 이동하니까 그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이동을 했는지 알 수 있겠죠."

구멍이 뻥뻥 뚫린 호경암을 앞에 두고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 호경암 치열했던 교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호경암. 빨간색으로 칠한 표시가 바로 총탄 자국이다.        

  





격동의 시기, 1968년!

"김신조 사태가 1968년 1월 21일에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 이틀 후인, 1월 23일에는 미국의 정보선인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의해 나포되지요. 또 그해 10월 경에는 울진, 삼척 지역에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를 하기에 이릅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월맹군의 구정공세로 미군의 예봉이 꺾였고, 미국에서는 반전 운동이 크게 일어났잖아요. 히피문화로 대변되는..."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숨을 좀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이것 말고도 1968년에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서구에서는 68혁명이라 하여 구체제 극복을 내세운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공산권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프라하의 봄이라는 혁명이 일어났지요. 밀란 쿤데라라고 소설가 아시죠? 그 사람이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프라하의 봄이 중요한 모티브였습니다. 하지만 그 봄날은 오래가지 못했답니다. 구소련이 강제 진압을 했었거든요. 봄날이 너무나 쉽게 가버린 것이죠."

너무 설명이 진지했던 것 같아 약간 말을 돌렸다.

"이제까지 1968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 1968이라는 숫자를 저도 가지고 있답니다. 제 전화기 끝자리가 1968이거든요."

그렇게 내가 실없는 소리를 했어도 참가자들은 신나했다. 비가 오고 있어도 바람이 불고 있어도 신나했다. 왜? 성북동 트레킹이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악산 단풍이 아주 곱게 잘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빛깔 고운 단풍을 서울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장공비의 루트였던 곳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하긴 아무리 지뢰가 깔리고, 철조망이 쳐져 있다고 해도 DMZ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을 테니까!

글을 마치기 전에 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만 하자. 며칠 전인 12일에 백 만명 이상 사람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19일에도 수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촛불혁명이라고 명명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여 불을 밝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이렇게 외쳤다.

"박근혜 퇴진"

나중에 이 촛불혁명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승리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패배로? 나는 승리로 기록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 백사실 계곡: 백사실 계곡에서 한 컷







2016년 11월 5일.


이날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북악산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날입니다.


어제 제가 포스팅 두 개를 연달아 올렸는데 그 두 개는 스토리펀딩의 리워드 트레킹입니다. 오늘 올리는 포스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행해진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트레킹 강의를 하고 있잖아요.


간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문화센터 트레킹 강의와 리워드 트레킹 강의가 다르나요?"


아닙니다. 둘 다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라면 코스별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좀 길게 가느냐 좀 짧게 가느냐, 그 차이입니다.


이 북악산 트레킹은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코스입니다. 예전 포스팅들에도 그런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지요. 제 말을 못 믿으신다면 이렇게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백 번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한 번 와 보시라고! ^^;


인기가 많은 코스라 그런지 참가자들도 다른 트레킹보다 많았습니다. 그렇게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날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이 뿌옇게 됐기 때문입니다. 시야가 너무 안 좋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화려한 풍광도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악산 트레킹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적으로 높았답니다. 북악산 자체가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북악산 트레킹이 네 번째였고, 다섯번째 트레킹인 관악산 역사트레킹을 끝으로 2016년 한겨레문화센터 가을학기 트레킹이 종료가 됐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다!"


이번 가을학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상당히 정신없게 진행이 됐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많았지요. 하지만 나름대로 찬사를 받으며 종료가 됐습니다. 그런 격려를 발판삼아 내년 봄학기에는 더욱더 알찬 트레킹 강의가 될 수 있게 노력을 해야겠네요.  








 * 현통사: 백사실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현통사.  

 




 * 북악산 역사트레킹 










 *참가자: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이날은 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드디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의 리워드 트레킹이 마지막으로 실시된 날이었으니까요.


여기서 잠깐! 앞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 다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지난 9월부터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한마디로 트레킹을 주제로 펀딩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펀딩을 받으면 저는 후원자들에게 무언가 답례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두고 '리워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게 돈을 주신 분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다른 펀딩을 진행하시는 분들은 에코백이나 엽서, 도서 등을 리워드로 많이 제시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트레킹을 잘하니 '북악산트레킹 초대' 같은 식으로 리워드를 제공했습니다. 유형의 물질을 드리는게 아니라 무형의 것을 제공한 셈이죠.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진행되었고, 결국 이날 마지막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이 실시된 것입니다.


순조로운 해피엔딩은 없었던 것인지 , 아침부터 좀 삐그덕거렸답니다. 오전 10시경 집합장소인 구파발역에 가봤더니 갑자기 '헉' 소리가 나더군요.


구파발역에서 시작점인 북한산성 입구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등산객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버스를 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빰칠 정도로 콩나물 시루 같았습니다. 정말 탈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종료점인 진관사에서 출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역순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하고 진관사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진관사행 버스는 북한산성행 버스에 비하면 천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가 순발력 있게 잘 대처한 듯했습니다.


정방향이면 어떻고 역방향이면 어떻습니까! 앞뒤를 바꿔서 시작해도 상관없는 게 트레킹의 묘미잖아요!


진관사를 출발해 북한산성입구, 대서문, 북한산계곡 등으로 이어진 이 날의 트레킹은 약 4시간에 걸쳐 진행이 됐답니다. 길이에 비해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하여 마지막 리워드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순조롭게 잘 마무리 됐답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버스 타는 것만 혼잡했지, 그 다음부터는 계속 한적하게 우리만 다녔기 때문입니다. 역시 트레킹은 한적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하여간 제 어깨에 놓인 짐이 하나가 날아간 느낌입니다. 어쨌든 다섯번의 트레킹이 잘 마무리가 됐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더군요. 또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하다는 감정도 생기고!

 






  * 북한산: 북한산성 대서문에서 바라본 원효봉.







  *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 안산트레킹: 봉수대를 향해 가는 참가자들.








10월 22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행하는 역사트레킹 강의 세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이 날은 서대문 안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일명 안산역사트레킹을 한 것이죠!


사진에서 보여지듯 이날 날씨가 좋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수강생 분들은 마치 가을소풍을 하듯 트레킹을 즐기시더군요.


저도 덕분에 즐겁게 리딩을 했답니다. 저도 가을소풍을 만끽한 셈입니다.  







 

  * 메타세쿼이아 숲: 안산의 자랑인 메타세쿼이어 숲에 들어선 트레킹팀.

      






            

  * 안산트레킹 









 

 *홍제천: 홍제천을 건너고 있는 트레킹팀. 오리인지 거위인지... 하여간 저 녀석들이 우리들을 반겨줬다.​








 

  * 안산트레킹: 메타세쿼이아 숲.









           

    * 성북동 트레킹: 비주얼이 뛰어났던 북악산.








10월 23일.


강원도에서 들려오는 단풍 소식이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의 대부분의 산들은 아직 단풍 절정기에 들지 않았더군요. 기왕하는 트레킹,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걸으면 좋잖아요.


이 날은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의 세번째 리워드 트레킹이 있었던 날입니다. 일명 성북동 역사트레킹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성북동 트레킹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처음으로 런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잘해야 하는데!"


첫 스타트였으니 부담감도 좀 생기더군요. 그런 약간의 부담감을 안고 약속장소인 성심여대역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첫번째 코스인 정릉을 지났는데... 그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바람도 거세게 불고.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트레킹을 첫번째로 런칭한 날인데!!! 


그렇다고 하염없이 날씨 탓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기획한대로 제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답사를 제대로 해서 그랬는지 첫 번째로 행하는 트레킹치고는 물 흐르듯이 잘 진행이 되었답니다.


"우와!"


북악산을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참가자들의 탄성 소리도 커져갔습니다. 왜냐?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주위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다른 산들은 아직 단풍절정기가 아니었지만 우리가 갔던 북악산 코스는 단풍이 최절정기에 다다랐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주얼을 바라보며 걸으니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더군요. 참가자분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습니다.


"올해 단풍놀이를 여기서 할 줄이야!"


첫번째인데다, 비 내리는 날 행한 트레킹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해주셔서 무사히 행사가 잘 종료가 됐답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올해 단풍놀이를 그날 처음했던 것 같네요. 눈이 호강을 한 하루였습니다.

 



 





 
   * 전망대: 뒤로 성북구와 도봉구 일대가 보인다.
 






 

  * 호경암: 1.21사태. 일명 김신조 사태 때의 상흔을 품고 있는 호경암.








  * 성북동 역사트레킹: 단풍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한강: 매봉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

 





 

* 버티고개: 버티고개에서 한 컷. 수강생분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10월 8일 토요일, 한겨레 문화센터 역사트레킹 강의가 있는 날.


그 전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한겨레 문화센터입니다. 내일 비 예보가 있는데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예보 저도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출발할 때는 비가 그친다고 나오네요."


"그래도 비가 계속 올 지 모르니까..."


'그렇죠. 비가 계속 이어서 올 지 모르죠. 요즘 하도 일기예보가 안 맞으니까..."


"음...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혹시 이번 트레킹은 취소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아니요. 일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때 그때 일정을 소화해야지 차후로 미루면 엉켜버립니다."



저는 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의사표시를 한 것이죠. 한 번 일정이 틀어지면 계속 꼬이게 되잖아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단호하게 나갔던 것입니다. 제 뜻을 알겠다는 듯 담당자 분도 수긍을 해주시더군요. 감사하더군요.


8일에 행해진 서울내부트레킹은 그렇게 비 때문에 취소될 뻔했답니다. 사실 당일날 새벽까지 비가 오긴 왔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개었더군요. 전화위복이라고 그렇게 비가 그친 뒤에 행한 트레킹이라 상쾌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내부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는 좀 고민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길을 안 좋아하면 어쩌냐... 여기 산들은 다 동네 뒷산급인데..."


하지만 수강생분들의 만족도는 상당했습니다. 괜한 걱정을 한 것이죠. 수강생분들은 서울의 구석구석을 알 수 있게 되어, 즐거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해주시더군요. 매봉산 팔각정, 버티고개, 수표교, 광희문 등등... 수강생분들은 그런 곳들을 탐방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걱정을 많이 한 만큼 준비를 많이 한 탓도 있을 겁니다.


역시 강의 준비는 철저히! 다음 트레킹을 또 기약하며!


 








​ * 성곽길: 남산의 동쪽에 위치한 성곽길.


 


* 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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