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12월 20일까지 진행합니다. 그 프로젝트 연재글을 알맞게 편집·수정하여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여기에서는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으로 이름을 바꿔서 올릴 생각입니다. 실제로 '서울트레킹'보다는 '서울역사트레킹'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함께 걷는 서울역사트레킹_ 다음스토리펀딩 1편

올 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 남산 남산 서울성곽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는 서울. 그 서울이 싫어 누구는 '탈 서울'을 꿈꾼다. 귀농, 귀촌, 주말농장, 혹은 제주살이. 명칭만 다를 뿐 서울을 떠나는 이들의 이유는 비슷비슷할 것이다. 각박한 삶, 끊임없는 경쟁, 웃음기 잃은 얼굴들...




다시 서울로

역사트레킹 강사인 나도 '탈 서울'을 꿈꾸었다. 서울과는 더 이상 궁합이 맞지 않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지금 이 글도 백두대간인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이라는 곳에서 쓰고 있다. 거창 귀농학교라는 곳에서.

하지만 나는 다시 서울로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귀농하려다 실패해서 다시 리턴하는 것인가? 아니다. 현재 귀농학교에서 기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농사를 지을 실력이 못 된다. 귀농은 아무나 하는가!

귀농학교는 내게 집필 장소이자 생태교육의 장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우리 농촌과 우리 산하의 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위쪽으로는 덕유산, 아래쪽으로는 지리산이 가까운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마디로 이곳은 강원도를 빰치는 아웃도어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웃도어 천국인 곳을 뒤로 하고 나는 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하는가? 서울이 역사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도 뚜껑 없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각박함, 스트레스, 공해 등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어들 너머로 숨어 있는 서울의 유적지와 그 유적지를 탐방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내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 진관사: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의 대웅전

 





성곽길이 곡선을 그리며 나가는 인왕산, 계곡길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북한산성, 낙조가 아름다운 안산의 봉수대... 남도가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다 해도,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서울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서울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요!"


그런 말을 내게 하며 미소 짓던 얼굴들.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물과 간식거리를 건네주었던 따뜻한 마음들. 그런 고마운 미소와 마음들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리딩을 하고 싶어 했던 내 모습. 그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내게 서울로 가는 티켓을 다시 끊게 했던 것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지만 결국은 또 사람이다. 역사트레킹을 하면서 망나니들만 만났다면 나는 진작 트레킹 리딩을 때려치웠을지 모른다. 돈도 안 되는 일에, 거기다 망나니들까지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 안산 봉수대 서대문 안산의 정상에 자리잡은 봉수대.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작은 서울과 큰 서울

서울은 작은 서울과 큰 서울로 나눌 수 있다. 작은 서울은 내사산(內四山)이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북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이 바로 그 내사산이다. 이 내사산들을 따라 한양도성이 축조됐던 것이다. 즉 작은 서울은 사대문 안쪽을 말한다.

이에 비해 큰 서울은 외사산(外四山) 안쪽을 뜻한다.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행주산성)이 외사산이다. 아시다시피 조선건국 초기의 서울은 도성 안쪽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은 계속 팽창해 나갔다. 그렇게 팽창해 나갔지만 외사산을 넘지는 못했다. 현재 서울의 행정구역은 외사산 안쪽에 위치해 있다. 아무리 도심지가 확장된다고 하더라도 자연지형까지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작은 서울, 큰 서울은 내 트레킹의 단골 소재로 이용됐다. 이번 주는 작은 서울, 다음 주는 큰 서울. 그 다음 주는 좀 멀리가고. 계속 그런 식으로 트레킹을 해왔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볼 일 없는 나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고,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붙여줬다. 아이고, 낯 뜨거워! 그러고 보면 트레킹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창구였던 셈이다.





▲ 인왕산 서대문 안산에서 바라본 인왕산. 산 능선을 타고 서울성곽이 구축되어 있다. 왼쪽 뒤편에 있는 산은 북한산이다.  







올해는 소출이 좀 있었다!

'덥다 덥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슬슬 외투를 챙겨 입어야 할 계절로 들어섰다. 그렇다. 이제는 가을로 진입했다. 야외활동하기에 제격인 계절로 들어선 것이다.

사실 이 글은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1편을 오마이뉴스에 싣기 위해 편집한 글이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로 9월 1일에 오픈하여 111일간 진행된다.

트레킹 하기 좋은 계절에 시작해서 올해가 끝나는 시기에 종료되는 펀딩이다. 정확히 12월 20일에 종료가 되는데 그때가 동지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연재가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지난 3월에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이라는 펀딩을 이미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올해에만 펀딩을 두 개를 실시하는 것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난생 처음으로 펀딩을 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봤고,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해서 '선생님' 소리도 들었다. 이 정도면 소출이 좀 나왔다고 할 만하다.

이제 나는 그 소출을 더 늘리기 위해 다시 서울로 복귀할 것이다. 그렇게 서울로 복귀를 하면 남도의 넉넉한 들녘이 내 시야에서 계속 아른거릴 것 같다. 내가 남도에서 서울성곽길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 서울트레킹 서울트레킹, 정확히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참가했던 분이다. 앞쪽에 있는 한옥 구조물은 창의문이다. 창의문은 사소문 중에 하나로 작년에 보물로 승격됐다.      






* 북악산 역사트레킹: 북악산 역사트레킹에 참여한 참가자들. 저런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이다.  

     









 
  

 

 













 

 

 





 






덥다 덥다 했을 때가 불과 엊그제인데, 갑자기 가을이 찾아온 듯하네요. 마치 도둑 같이 찾아온 듯합니다. 제가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의 산골짜기라서 그런지 계절 변화의 폭이 크게 느껴지네요. 아는 분은 벌써 보일러를 틀었다고도 하던데...

산골짜기에 찾아 온 가을은 색깔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붉은 빛이 곱게 든 오미자, 연두색에서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는 사과.
 

그렇습니다. 이곳의 특산품인 오미자와 사과에는 벌써 가을의 색깔이 깊게 배이고 있습니다. 농부들의 땀과 노력이 붉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고보니 벌써 추석이 코 앞이네요.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뎠으니, 올 추석은 더욱더 풍성했으면 합니다. 모든이들의 마음에 한가위 보름달 같은 넉넉함이 스며들었으면 하네요.



 




    

 











* 수표교: 장충단 공원 안에 있는 수표교 앞에 선 참가자들.










"소나기라도 안 내리나? 이런 날씨에 무슨 트레킹이야! 더워 죽겠구만!"



2016년 8월 16일.



찌는 듯한 폭염이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광복절 전후로 폭염이 꺾인다는 기상청의 발표는 그저 무색할 따름이었죠. 정말 망설였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 무슨 트레킹입니까!


그래도 약속은 약속입니다. 아무리 덥다고 해도 일정을 변경을 할 수는 없겠죠. 중간에 에어컨이 빵빵한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발걸음을 떼야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덥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제가 소나기가 내렸으면 하는 기원까지 드렸겠습니까!


앞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렛츠런 문화공감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은 서울내부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날이었습니다. 폭염에 대한 염려의 마음을 한가득 안고 집합장소인 청구역에 도착했습니다.


렛츠런에서 행하는 트레킹은 모임 인원이 20명인데 이날은 9명이 오셨더군요.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참가율이 저조했던 것 같습니다.


두둥~ 드디어 첫걸음을 옮겼습니다. 태양은 뜨겁게 내려째고 있었고, 지열은 이글이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서울내부 역사트레킹 코스는 응봉이라고 불리는 산등성이를 타고 갑니다. 산등성이라고 하지만 해발이 낮아서 누구나 다 오를 수 있는 코스죠. 그래도 산을 오르려면 오르막 길을 올라야 하잖아요. 그런 오르막이 초반에 있답니다. 그 초반 오르막을 지나면 숲길을 지나는 터라 걷기는 편하죠. 참가자 분들이 도보여행에 익숙한 분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초반 오르막 길을 무사히 잘 오르시더군요.







*버티고개: 버티고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참가자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날 트레킹도 모든 분들이 완주를 해주셨답니다. 땀을 뻘뻘 흘리기는 했지만... 그래서 옷이 완전 젖었지만... 아참 출발하기 전에 제가 참가자 분들에게 손수건을 나눠 드렸습니다. 일명 '역사트레킹 손수건'이었는데 나름대로 디자인이 예쁘다고 하시더군요. 그 손수건으로 땀도 닦으시고 그러더군요. 하여간 잘 나눠드린 것 같습니다.


저도 다른 모임 때보다 아주 천천히 리딩을 했답니다. 사실 저도 무척 힘들었으니까요. 사실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하여간 쉽지 않은 트레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을 했더니 기억에 많이 남는 모임이 되었답니다. 보람도 컸습니다.


그래도 9월 달 트레킹은 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성곽: 서울성곽 구간에 선 참가자들.













 







백두대간을 '무대'로 삼은 거창아시아1인극제



제9회 거창아시아1인극제 참관기


16.08.11 12:00  최종 업데이트 16.08.11 18:12

곽동운


             





    

 

▲ 양반춤 양반춤을 추고 있는 이삼헌. 뒤로 보이는 산이 삼봉산이다. 백두대간 삼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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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무대 배경으로 삼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요? 백두대간을 무대 일부로 끌어온 연극제가 있다면, 그 연극제는 어떤 멋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까요? 만약 그런 연극제가 있다면 풍류를 제대로 타는 연극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백두대간을 무대 배경으로 '쓴' 거창아시아1인극제

실제로 그런 연극제가 있었습니다. 지난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에 걸쳐 삼봉산문화예술학교에서 개최된 제9회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삼봉산문화예술학교의 다른 이름은 거창귀농학교입니다. 거창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1인극제의 무대 배경으로 백두대간 삼봉산이 쓰일(?) 수 있었던 겁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9회째를 맞이했다고 기술했지만 '아시아1인극제'는 올해로 27회째입니다. 1988년 서울 바탕골 소극장에서 펼쳐진 '아시아1인극제'가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전신이기 때문입니다.

바탕골에서 1회 대회를 치른 이후 '아시아1인극제'는 대만,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을 순회하며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그 이후 충남 공주에 있는 공주민속박물관이 주최가 되어 1인극제를 무대에 올리게 됩니다. 명칭도 바뀝니다. '공주아시아1인극제'로.



▲ 나비와 소녀 극단 마네트의 김봉석이 '나비와 소녀'라는 마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저 소녀의 옷이 걸쳐진 나무에 자석이 달린 종이 나비들이 붙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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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이 경남 거창에서 1인극제가 무대에 오르게 된 건 2007년부터였습니다. 백두대간 삼봉산이 올려다 보이는 거창귀농학교에서 무대가 펼쳐지니 그때부터는 '거창아시아1인극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모노드라마(monodrama)가 백두대간 아래에서 펼쳐졌고, 벌써 9회째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올해 대회는 작년에 비해 참가팀이 많았습니다. 이틀에 걸쳐 23개 팀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거기에 더해 관람객으로 참가한, 23개 팀에 등재되지 않았던 '국악소녀'가 특별출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라 타령 한 곡조를 뽑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연극제가 풍성해질 수 있었던 건, '한국민족춤협회' 회원들의 발걸음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3월 19일, 대학로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한 '한국민속춤협회' 회원들은 이번 거창아시아1인극제에 대거 참석했습니다. 우리 민속춤을 계승·발전시키고자 발족한 한국민속춤협회 회원들 덕택에 거창아시아1인극제도 한층 빛이 났던 것입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을 소개해보겠습니다.







▲ 만신 서문정 마고당 서문정. 작두를 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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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커피 때문에 장군님이 노하셨나?

이번 연극제는 만신 서문정(마고당)의 작두굿으로 시작했습니다. 21살 때 신내림을 받은 서문정은 서해안배연신굿 예능보유자인 김금화 선생에게서 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황해도를 위시한 서해안지역의 굿은 퍼포먼스가 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서문정의 작두굿도 그런 문법에 충실했습니다. 혀 위에 날카로운 식칼을 올려놓기도 했고, 큰 작두 위에서 두 발을 쿵쾅거리며 뛰기도 했습니다.

연극제 스태프로 참가한 저는 그 작두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서문정이 작두를 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작두지기를 하다 보니 에피소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작두지기도 굿에 참가한 일원이다 보니, 굿하는 동안만큼은 다른 잡스러운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너무 더워서 그랬는지 작두지기를 하는 내내 저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생각했습니다. 
   
'아이스커피 사 먹으려면 읍내까지 내려가야 되는데... 그래도 시원하게 한 잔 했으면 ...'

작두굿은 무사히 마쳤습니다. 관객들 호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액운(?)이 끼었습니다. 제 휴대폰이 굿을 할 때 쓰이는 정화수에 완전히 젖었기 때문입니다. 시원하게 젖어서 전원이 나가버렸습니다.

'장군님이 노하셨나? 아직 할부도 많이 남았는데... 시원하게 물먹었네.'  



▲ 서예 퍼포먼스 서예 퍼포먼스를 펼친 김기상. 오른쪽에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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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퍼포먼스와 통영오광대 문둥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작품은 신평 김기상 선생의 서예 퍼포먼스였습니다. 김기상 선생은 몽둥이 같은 큰 붓을 들고 일필휘지의 기운으로 획을 쳐나갔습니다. 그렇게 흰 천 위에 한 획 한 획이 이어지다보니 어느 순간 한 편의 작품이 탄생되더군요. 채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작품이 완성된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완성된 작품이었지만 미적으로는 무척 뛰어났습니다. 검은 선들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나와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 때문인지 김기상 선생의 작품은 다음날(30일) 공연 내내 무대 뒤편에 걸려 있었습니다. 배경막으로 쓰인 셈이죠.

이외에도 첫날 공연에는 이강용씨가 춘 문둥춤 공연이 상당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문둥춤은 통영오광대 놀이의 첫 번째 마당으로 덧빼기 춤의 정수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덧빼기는 장단을 말하는 것이죠.

문둥춤에서 광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한 맺힌 삶을 춤으로 승화하려 합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식으로 내용이 전개되면 극의 분위기가 무척 가라앉았을 겁니다. 하지만 문둥춤이 오광대놀이의 첫째마당 아닙니까. 비록 광대는 흉한 모습의 탈을 썼지만 입에서는 걸출한 입담을 쏟아냈습니다. 춤에 풍자와 해학을 담아 자신의 한을 승화시킨 것이죠.



▲ 문둥춤 문둥춤을 추고 있는 이강용.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꼬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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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혼: ​우리문화연구회 타악 연주팀. 타혼.





풍류를 탔던 양반춤

1인극제는 그 다음날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둘째 날(30일)은 우리문화연구회 '타혼'의 난타 공연으로 시작됐습니다. 쿵쾅거리는 북소리가 축제의 둘째 날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장중한 북소리의 울림이 공연장 곳곳을 휘몰아친 후 백두대간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이어진 공연은 춤꾼 이삼헌의 양반춤이었습니다. 이삼헌씨는 원래 발레를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한국 무용으로 '전공'을 전환한 후 지금까지 우리 전통춤을 추고 있다고 합니다. 서양무용과 한국무용을 두루 섭렵한 것이죠.

그런 이삼헌씨의 이력 탓인지 그가 추는 양반춤은 남다른 멋이 있더군요. 흰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 부채를 펼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백두대간 삼봉산이 펼쳐지니 풍류가 제대로 장단을 탔던 것이죠.



▲ 인형한마당 얼씨구 판타지 인형극 '얼씨구'를 공연중인 고규미. 2화 꽃의 환생을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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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소녀

인형극 공연과 마임 퍼포먼스도 펼쳐졌습니다. 극단 상사화의 고규미씨는 '인형한마당 얼씨구'를 통해 판타지 인형극을 선보였습니다. 인형극은 '1화 할아버지 얼씨구'와 '2화 꽃의 환생'으로 이루어졌는데 2화를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누구나 꽃처럼 오고 언젠가 꽃처럼 갑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인생들이 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극단 마네트의 김봉석씨는 마임 퍼포먼스를 펼쳐주셨습니다. '나비와 소녀'라는 마임이었는데 정신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공연이었습니다. 소녀의 옷이 걸린 나무의 등장으로 극은 시작됩니다. 그 옷을 걷어낸 자리에는 날갯짓을 하며 날아온 나비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나비들이 꽉 들어차자 나무에 불이 밝혀집니다.

'나비를 좇는 소녀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나무에 못이 박히듯 소녀의 몸은 상처로 얼룩지고 꿈은 무참히 깨집니다. 이제 살아있는 이들이 상처를 덮고 다시 소녀로 되돌려주려 합니다. 아름다운 나비의 꿈으로...'


▲ 나비와 소녀 마임 퍼포먼스 '나비와 소녀'를 펼치고 있는 김봉석. 나비가 날아온 나무에 보라색 등이 점등이 됐다.  뒤편 건물에는 동영상 프로젝트 빔을 쏘고 있다.



      



'나비와 소녀'에 대한 팸플릿의 소개글이었습니다. 관람객이 자석이 박힌 종이나비를 직접 나무에 붙여주는 등, 이 마임 퍼포먼스는 관객친화적인 공연이었습니다. 또한 위에 소개글처럼 많은 울림을 담은 공연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첫째날 작두굿 공연을 한 만신 서문정은 이런 소감을 밝히더군요.

"공연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임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마임 퍼포먼스를 펼쳐주신 김봉석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사라토 연주: ​아사라토를 연주하고 있는 일본인 켄토. 켄토는 이번 1인극제에 참여한 유일한 외국 국적자였다. 아사라토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타악기인데, 호두만한 두 개의 물체를 부딪혀 소리를 낸다. 치고, 흔들고, 불고... 그렇게 소리를 낸다. 즉흥 공연이 가능하고, 다른 악기와 협연도 쉬운게 아사라토의 장점이다. 정식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켄토의 즉흥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켄토는 아사라토 연주만 13년 째라고 한다. 저렇게 공연을 하며 전세계를 누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켄토도 풍류객인 것이다.

 







사드 반대 춤

거창아시아1인극제의 대미는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인 장순향 선생께서 해주셨습니다. 장순향 선생은 '사드(THAAD) 반대' 춤을 추셨습니다. 원래 선생께서는 산조춤을 추시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셨을 때는 '사드 반대'라는 큰 부채를 펼치며 춤사위를 펼쳤답니다.

선생도 처음부터 저 춤을 출 계획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연을 바로 앞 둔 시점에 착상이 떠올라 즉흥적으로 춤을 추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창작춤을 이끌었던 셈입니다. 

아시아1인극제가 열린 거창은 사드 배치 후보지인 성주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사드 배치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드 반대' 춤이 주는 의미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과연 우리나라에 사드가 필요한 것인지, 만약 그 사드 체계가 설치가 된 후에 실전에서 사드 미사일이 발사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 더 나아가 동북아 지역은 지도상에서 지워질지 모릅니다.

사드 반대 춤을 끝으로 이틀에 걸쳐 펼쳐진 제9회 거창아시아1인극제도 무사히 종료가 됐습니다. 백두대간 삼봉산을 배경 삼아서 그랬는지 춤사위는 더 멋들어졌고, 노랫가락은 더 흥에 겨웠습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풍류를 제대로 탔던 것이죠.







▲ 사드 반대 사드 반대 춤을 추고 있는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 장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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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요즘입니다. 수박 한 덩이가 간절하게 그리운 계절이네요.


휴가철이라 많은 분들이 피서를 떠나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휴가를 못 떠납니다.


명색이 역사트레킹 마스터고, 여행작가이기도 한데... -_-


하지만 며칠 전에 저에게 시원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정식으로 런칭을 했고, 모집 공지도 문화센터 홈페지에 정식으로 올라왔더군요.


한겨레문화센터는 제가 수강생 입장으로 방문을 했던 곳인데... 이제 저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강사 타이틀을 얻게 됐네요.





 

* 한겨레문화센터: 역사트레킹 패키지. 이번 가을 학기에는 총 5회 실시한다. 패키지를 구매하면 10%를 할인 받는다.









물론 저는 다른 문화센터에서도 역사트레킹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문화센터는 인지도 면에서나 영향력에서나 다른 문화센터보다는 좀 남다르잖아요.


그래서인지 한겨레문화센터에 역사트레킹이 런칭된 것이 정말 감격스럽더군요!


런칭이 확정됐을 때는 좀 울컼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삼 시 새끼를 빵 뜯어 먹으며 답사다녔던 기억들, 당사자는 무심코 내뱉었지만 내게는 비수가 되었던 이야기들,


지독하게 내렸던 빗줄기 때문에 어느 마을회관 처마에서 오도가도 못했던 그 때, 그때 내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그 때의 기억들...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더니만 기어이 그런 기억들이 제 눈 앞에 떠오르더군요.









* 인왕산 역사트레킹:  이번 가을 학기의 첫번째 스타트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이 끊는다. 9월 24일에 실시된다.








세상 참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제가 문화센터에서 강연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정말 세상일 알다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도 계속 역사트레킹을 해왔으니까요. 대신 자만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더 열심히 길을 걷고, 자료를 더 많이 습득해야겠습니다.


또한 열심히 아재 개그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참가자들이 은근히 아재 개그를 좋아하거든요... ㅋ



클릭 ---> 역사트레킹         











큰 붓으로 '뚝딱'하고 그려낸 한반도 지도!


붓으로 그려낸 한반도 지도!





        곽동운(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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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한 편에 흰색 천을 깔고 한반도 지도를 그려나갑니다. 그러자 흰 천 위로 우리나라의 형상이 드러납니다.

일필휘지의 기운이 끝까지 이어졌던 걸까요? 힘주어 마지막 두 점을 찍고 그는 사라집니다. 그 마지막 두 점은 울릉도와 독도입니다. 이 붓그림을 그린 분은 서예가 신평 김기상 씨입니다.
 

김기상 선생은 서예 퍼포먼스로 유명한 분이라고 합니다. 몽둥이 같은 큰 붓으로 순식간에 작품을 형상화 하는 모습을 직접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저 서예 퍼포먼스는 2016년 거창아시아1인극제가 개최된 거창귀농학교 운동장에서 행해졌답니다. 예정에도 없었는데 김기상 선생이 순식간에 그려낸 것이죠.

그러고보면 붓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듯합니다. 이렇게 퍼포먼스도 할 수 있으니...


















'돌머리'가 되도 좋아!


돌담 쌓기가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16.07.25 09:47 최종 업데이트 16.07.25 09:47

             곽동운(artpunk)             







     

 
▲ 돌담 완성된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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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은 정겹습니다. 돌담을 끼고 걷는 것만으로도 푸근함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돌담 쌓기는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우선 '손'이 많이 갑니다. 그렇게 만만치 않은 돌담 쌓기 작업을 해봤습니다. 저는 현재 거창귀농학교라는 곳에 기거하고 있는데 그곳의 외부 담벼락이 붕괴됐습니다. 그것을 수리하는 데 제가 '발품'을 팔았습니다.

돌담을 쌓으려면 황토 흙을 반죽해야 합니다. 밀가루 반죽하듯이 반죽해야 합니다. 그래야 찰기가 생기니까요. 황토를 손으로 반죽할 수는 없습니다. 발로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 황토반죽 작업을 제가 맡았습니다. 맨발로 황토를 밟는데 마치 늪에 발이 빠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찰기 때문이죠. 그렇게 맨발로 하다 보니 흙 속에 숨어 있는 작은 돌들에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장화를 신고 싶어도 장화를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화가 본드에 붙은 것처럼 반죽에서 안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한 발 떼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황토 반죽을 고무 대야에서 하는 이불 빨래 정도로 생각했다가 아주 큰 코 다쳤습니다.
 






 
▲ 무너진 돌담 무너진 저 돌담을 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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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돌담. 뒤쪽에서 본 모습







그렇게 반죽된 황토를 바르고 돌을 올렸습니다. 돌담에 쌓는 돌들은 계곡돌이라고 해서 좀 매끈한 녀석들을 쓰는 게 좋습니다. 그 계곡돌들을 층층이 쌓은 후 진흙으로 빈틈을 채우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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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기와를 올렸습니다. 동네의 돌담들은 그냥 돌만 올리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기와까지 올렸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암키와를 올리고, 수키와를 덮고... 옛 우리조상들이 쌓았던 방식과 동일하게 돌담을 쌓게 된 것이죠.

돌담을 쌓다보니 옛날 성을 쌓았을 때의 모습들이 유추되더군요. 서울성곽 같은 경우, 우리가 보고 있는 성체는 조선 후기 이후에 중수한 것들입니다. 두부돌이라 불리는 거대한 장판석(長板石)이 그것들입니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는 잔석(殘石)이라 하여 크기도 작고, 형태도 울퉁불퉁한 돌들로 성체를 올렸습니다.


잔석들은 퍼즐 조각처럼 딱딱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딱 들어맞지 않는 부분에는 황토가 들어갔습니다. 찰기가 살아있는 황토가 잔석들의 빈 공간을 채워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황토 흙도 성체의 일부분이었던 것입니다.







 

 
▲ 돌담 쌓기 반죽된 황토를 바르고 돌들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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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토 반죽. 저렇게 반죽을 하면 본드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그냥 벽돌에다 시멘트 발라서 올리면 작업은 편해질 테지요. 하지만 시멘트가 발린 벽돌담은 돌담처럼 정겨움을 주지 못합니다. 시멘트는 갈라지면 흉하게 보이지만 돌담은 갈라져도 그것 자체로 보기가 좋습니다.

돌담 작업을 하느라 제 옷은 황토로 뒤범벅이 돼버렸습니다. 옷이 완전히 진흙탕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조상들의 작업 방식과 동일하게 돌담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일이었답니다.

돌담작업을 하다 보니 서울성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겹게 봐왔고, 수도 없이 탐방했던 서울성곽인데 눈앞에 돌담을 보니 불현듯 서울성곽이 그려지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우리 돌문화에 깊게 빠진 듯합니다. 서울 성곽길을 걷고, 돌담길에 환호하며, 돌장승들을 탐방하는…. 그렇게 제 머릿속에는 '돌'들이 가득합니다. 우리 옛 조상들의 슬기와 자연미를 담고 있는 그런 '돌'들이 제 머릿속에는 가득한 것입니다. 그럼 제 머리는 '돌머리'인가요?
 






 
▲ 돌담 완성된 모습. 기와까지 올려진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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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성대: 비가 오는 낙성대에서. 역사트레킹에 후원해주신 제주도님. 16일에 행한 관악산 역사트레킹 때는 비가 많이 내렸다.







 * 낙성대: 우비를 입고 있는 나.











* 수성동 계곡: 17일에 행한 서울시티 리워드 역사트레킹에 참가한 후원자분들. 17일에는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아니 트레킹 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 역사트레킹 펀딩: 역사트레킹 펀딩이 다음카카오에서 108일간 진행되었다. 여기에 언급된 관악산과 인왕산 트레킹은 그 펀딩에 대한 리워드 차원으로 행해진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주말을 매우 의미있게 보냈답니다. 저를 후원해주신 분들과 트레킹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위에 사진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저는 다음카카오에서 역사트레킹 펀딩을 진행했습니다.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해 아쉽기는 했지만.... -_-ㅋ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펀딩이었습니다.


지난 7월 8일에 펀딩이 종료됐고, 저는 리워드를 후원자분들에게 드려야했습니다. 다른 펀딩을 보면 도서, 엽서, 머그컵 같은 것들을 많이  제공합니다. 하지만 저는 역사트레킹 모임에 후원자분들을 초대했습니다. 트레킹과 관련된 후원을 받았다면 그에 맞게 트레킹을 답례로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답례로 드릴 책이나 엽서 같은 것들도 없고요.


그러다보니 역사트레킹 펀딩은 다른 펀딩과 달리 창작자와 후원자가 직접 대면을 하게 되더군요. 물론 다른 펀딩들도 후원자들을 티타임 같은 것에 초대를 하여 대면을 합니다. 하지만 단발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요. 사진에도 나와있듯이 저는 벌써 두 번이나 후원자분들과 직접 대면을 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두 번 정도 또 대면을 해야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후원자분 들과 직접, 또한 자주 만날 수 있는게 역사트레킹 펀딩의 장점인 듯싶습니다.










* 광화문: 서울시티트레킹에 참가한 후원자 분들.










여기서 해당 리워드 트레킹을 좀 설명하자면...


7월 16일 토요일에 행한 관악산 역사트레킹은 수중전이었습니다. 전날부터 비가 오더니, 결국 트레킹 때까지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더군요. 그래서인지 참가자가 단 한 분 뿐이었습니다. 제주도님이라고... 그래도 할 건 해야지요. 제주도님과 저는 열심히 트레킹을 했답니다.


수중전이었지만 나름대로 재미난 트레킹이었습니다.


7월 17일 일요일에 행한 서울 시티트레킹 때는 총 4분이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그날은 트레킹 하기에 날씨도 좋았습니다. 흐려서 그랬는지 덥지가 않았거든요. 참가자분 중에는 멀리 충청도 서천에서 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죠.


관악산도, 서울 시티트레킹도 모두 다 잘 마무리했답니다. 모두 다 완주를 해주셨거든요. 특히 서울시티트레킹이 끝난 후에는 식사 자리도 했답니다. 물론 막걸리도 등장을 했지요.~ ㅋ


그런데... 그 식사비를 누가 지불한지 아십니까? 원래는 제가 내려고 했습니다. 후원을 받았으니 제가 식사라도 대접을 해드려야 맞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내지 않았습니다. 후원자분들이 결제를 하셨답니다. 정말 감사하더군요.


저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요?


이렇게 대접을 받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역사트레킹 펀딩을 한 번 더 해볼까 합니다. 아주 저렴하게 리워드 트레킹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렇게 설계를 해보려고요. 또한 리워드 트레킹의 횟수를 전보다 더 많이 잡아보려고요. 그럼 대면의 폭도 넓어지잖아요.


왜 그러냐? 여러분들이 역사트레킹을 더 많이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저는 지난 주말에 정말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래서 더 열심히 제 직분에 충실하려고요. 더 열심히 역사트레킹을 해보려고요!!!









* 윤동주 시인의 언덕: 앗! 곽작가도 나왔네^^; 왼쪽에서 두 번째에 서 있는 곽작가.










* 성곽길: 창의문을 향해 걷고 있는 후원자 분.



















* 광화문: 해태상 앞에서 참가자 분들.






 

​   * 전단: 역사트레킹을 알리는 렛츠런문화공감센터의 전단 










7월 12일 화요일.


일기예보에는 분명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진다고 했지만... 날씨가 화창했습니다. 기상청 예보대로 움직였으면 그날 트레킹을 못할 뻔했지요.


이날 저는 인왕산 역사트레킹을 리딩했습니다. 제가 7월 달부터 렛츠런문화공감센터에서 역사트레킹을 런칭했는데 이날이 첫 시작일이었습니다.  사실은 일주일 전인 5일 날이 첫 개강일이었지만 그날 호우경보가 내려서 한 주 연기가  것이지요. 


어렵게 시작한 만큼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가 문화센터 강의는 처음이라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역사트레킹을 많이 리딩을 했지만요...


좀 덥기는 했지만 그래도 트레킹 하는데 양호한 날씨였습니다. 또한 인왕산 트레킹의 특징이 전반부만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숲길로 갑니다. 그래서 초반 30분 정도만 버티면 때양볕 걱정은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이날 참가를 해주신 분들은 트레킹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으셨습니다. 제가 바짝 긴장을 할 만큼...^^;


트레킹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제가 다 감사할 정도였습니다. 부족한 저의 설명도 경청을 해주셔서 감사했고요. 그래서인지 한 분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분들이 다 완주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얼마나 저를 잘 챙겨주시는지... 먹을 것도 엄청 얻고 먹었습니다. 또 어떤 분께서는 제게 모자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날 제가 모자를 쓰고 가지 않았거든요. 제가 챙겨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넉넉한 인심을 누리고 온 것이죠.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이 맛에 트레킹 리딩을 하는 거겠죠! 카아~!



이 포스팅은 간략한 스케치입니다.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정식 포스팅이 궁금하신다면


 

클릭 ☞ http://blog.naver.com/kwakmaster/220736534015


 









* 성곽길: 곡선미가 넘치는 서울성곽






* 수성동 계곡: 수성동 계곡에서. 뒤로 인왕산이 보인다.





​* 시인의 언덕: 윤동주 문학관 뒤쪽에 있는 시인의 언덕에서.




* 창의문: 창의문 앞에서.
















하이힐을 신고 성곽길을?


성곽길을 걷는 서울시티트레킹

 





이제 역사트레킹 펀딩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역사트레킹 펀딩 기간은 108일입니다. 108일이면 충분히 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기간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못 다한 이야기가 넘쳐나네요. 한편으로는 펀딩이 빨리 종료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원고를 작성하는 게 만만치 않았거든요. 여기에 올린 글들은 기 발표작들입니다. 그것들을 펀딩 플랫폼에 맞게 수정을 가했지요. 그런데 수정하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새로 작성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으니까요.


어쩌면 역사트레킹 펀딩은 제게 108번뇌와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번뇌를 벗어나고자 저는 계속 허우적거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허우적거리다보니 이제 종료를 코앞에 두게 됐네요. 시간이 참 빠르죠!


후원자분들! 파티란에 리워드 트레킹 공지 올렸으니 확인해 주세요. 보충 트레킹도 올려놨으니 꼭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화에서는 서울시티트레킹을 소개해 봅니다. 서울시티트레킹은 '서울시티투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가보면 서울시티투어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이 버스를 타면 서울을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2층 버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면 좋겠지만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면 역시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서울성곽이 있는 인왕산 정상에 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요!


한편 서울시티트레킹은 인왕산 역사트레킹의 자매편입니다. A코스, B코스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될 듯싶네요. 인왕산이 스토리텔링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나눈 것이죠.

 




 

* 소녀상






 

꽃 한 송이가 놓여 있는 소녀상

 

서울시티트레킹은 조계사와 그 옆쪽에 자리 잡고 있는 우정국 탐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정국은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갑신정변(1884)을 일으킨 곳입니다. 일명 '3일 천하'로 불린 갑신정변은 임오군란(1882)과 함께 개화기에 발생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정변 주동자들의 의견과 너무나 큰 간극을 보였던 당시의 조선 상황, 정변 당사자들의 과도한 일본 의존 등으로 갑신정변은 '그들만의 리그'로 막을 내렸고, 주동자였던 김옥균은 중국 상해에서 암살을 당하고 맙니다.


정변 주동자들은 일본을 맹주로 한 '대동합방론'과 아시아에서 벗어나자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친 후쿠자와 유키치의 충실한 모범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에 메이지유신을 '이식' 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를 하고 만 것이죠.


갑신정변이 발생한 곳인 우정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본대사관이 있고, 그 앞에는 위안부소녀상이 꿋꿋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92년부터 개최된 수요집회는 2012년에 1000회를 맞이하게 됐고, 그 기념으로 본 위안부소녀상이 건립되었습니다.


누구는 위안부소녀상이 외롭고 처량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2인용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일본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망언들을 생각하면 그 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소녀상이 외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소녀상을 방문할 때마다 꽃이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꽃이 아니라 매번 다른 꽃이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어떨 때는 과자나 그림 같은 것들이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소녀는 벤치에 홀로 앉아 있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소녀상은 외롭지 않았습니다.

 





*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 행사. 뒤로 보이는 산은 인왕산이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

 

다음 탐방지는 광화문입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입니다.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이었던 만큼 광화문은 다른 궐문보다 훨씬 더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무지개문)을 셋이나 내서 격식을 높였습니다.


궁궐은 ''''이 합쳐진 말인데 ''은 높은 석대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경복궁 돌담과 떨어져 있는 동십자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일반적인 궁궐의 의미에 빗대어 보자면 광화문은 조선시대 궁궐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은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맙니다. 광화문 앞에 화기를 막으려고 세운 해태상이 있었음에도 불에 전소되었던 것이죠.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몽진(임금의 피난)을 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백성들은 궁궐로 몰려갑니다. 급기야 백성들은 궁궐에 불을 놓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해태상을 세운다고 한들, 강력한 소방시설을 갖춘다고 한들 성난 민심 앞에서는 그저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광화문을 헐어 동쪽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한용운 선생이 '돌집'이라고 불렀던 조선총독부가 들어섰지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광화문은 20108월에 완공된 것입니다. 사실 광화문은 1968년에 중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대로 복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 축에 맞춰 중수를 했는데 그 때문에 본래보다 3.5도 가량 틀어져 버렸던 것이죠.


그런 오류를 바로잡고 거듭난 광화문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수문장 교대식 때문입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큰 깃발과 화려한 복식을 한 수문장들의 박력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 동십자각. 도로 위에 섬처럼 떠있다.






 

섬처럼 떠 있는 동십자각

 

광화문에서 동쪽, 삼청동 방면으로 가다보면 누각 하나가 껑뚱하게 떨어져 나와 있습니다. 광화문 인근이라서 그런지 자동차들이 쉴 세 없이 그 앞을 지나고 있지요. 외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대형 버스들도 많이 지나갑니다. 도로 한복판에 툭 튀어 나온 누각을 보고 있다 보면 마치 섬이 하나 떠 있는 느낌이듭니다.


도로 한복판에 외떨어져 나온 누각은 앞서 언급한 동십자각입니다. 동십자각은 경복궁의 동쪽의 방위 초소 역할을 했던 곳이죠. 서십자각은 서쪽 방위 초소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십자각은 경복궁의 담벼락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왜 지금처럼 끊겨져 있는 걸까요? 이것 역시 일제에 의해 끊기게 됐습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경복궁의 남쪽 담벼락을 다 헐어버렸습니다. 그때 광화문도 이전을 하게 됐지요.


돌담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철책선이 그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구한말에 촬영한 사진을 보면 동십자각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오르내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계단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한편 동십자각이 감시초소였던 만큼 그 역할은 무척 중요했습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일본인 자객들도 동십자각을 점령한 후 경복궁 내부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동십자각은 서십자각 보다는 상황이 더 낫습니다. 서십자각은 아예 허물어졌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광화문에서 영추문 사이에 전차노선을 개설했는데 그때 서십자각을 철거했던 것입니다. 멀쩡한 광화문을 옮겨버리고, 담장을 헐고, 누각도 철거시키고...


그러고 보면 일제도 반달리즘을 저지른 셈입니다. 반달리즘은 로마의 유적들을 파괴했던 반달족들의 반문명적인 행위를 빗댄 명칭입니다.

 

 



* 서울성곽




 

인왕산과 서울성곽

 

이제 서울성곽을 오를 차례입니다. 18km에 달하는 서울성곽은 조선의 도성이었습니다. 북쪽의 백악산(북악산)을 기준으로 동쪽에 낙산, 서쪽에 인왕산, 남쪽에 목멱산(남산)을 둘러서 만든 성곽입니다. 이 산들을 묶어 내사산이라 부릅니다.


북악산은 원래 백악산이라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에 '북악'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 도성에는 4대문이 있는데 남쪽에는 숭례문(남대문), 동쪽에는 흥인지문(동대문), 북쪽에는 숙정문, 서쪽에는 돈의문(서대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서대문은 없지요.


인왕산에 올라서면 성곽과 함께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입니다. 내사산이 둘러싸고 있는 서울 중심부입니다. 이를 두고 저는 '작은 서울'이라 칭합니다.


그럼 '큰 서울'은 어디일까요? 서울의 주산인 북한산을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관악산, 동쪽으로는 아차산(용마산), 서쪽으로는 덕양산(행주산성)을 두고 외사산이라 부르는데 그 외사산의 안쪽 지역을 '큰 서울'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쪽 지역만 빼놓고는 지금의 서울 행정권역과 얼추 비슷합니다. 한양천도 이후, 서울의 확장은 계속됐지만, 지형적인 굴레까지 뛰어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 서울성곽. 급경사를 타고 내려가는 참가자. 딱 봐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든 참가자들이 완주를 해주셨다는 점이다.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급경사를 타는 서울성곽

 

서울성곽은 자연적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요새를 구축했습니다. 산사면의 급경사를 이용하여 적의 침략을 대비한 것이죠. 한마디로 매우 급한 경사면에 성곽이 구축됐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경사면이 급하면 급할수록 방어력은 증강될 테니까요. 이를 달리 해석하면 서울성곽길은 걷기가 만만치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걷다 보면 발바닥에 불이 난다는 뜻이지요.


물론 평지구간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평지 구간은 도시화로 인해 성벽이 거의 다 허물어졌지요.

간혹 서울성곽길을 좀 만만하게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전 트레킹 팀원 중에서도 그런 분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께서 하이힐을 신고 오셨던 것입니다. 트레킹 리딩자로서 참 난감하더군요.

     

"! 제가 분명히 편한 복장에 편한 신발을 신고 오라고 당부 드렸는데요."

"앞에는 그냥 평지고, 서울성곽길 걷는다면서요..."

 

서울성곽은 여러 번에 걸쳐 개축됐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토성이었고, 이후에는 주위에 있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됐습니다. 그러다 조선 후기 숙종시대에는 두부 모양의 장대석이 올려지게 됩니다.


이렇듯 서울성곽은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마치 600년이란 시간이 퇴적층처럼 돌들에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랫돌은 옛날에 쌓여 '누리끼리'한데 그 이후에 축성된 돌들은 하얀색입니다. 윗돌과 아랫돌이 서로 '시간 퇴적층'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아참! 그 하이힐 신은 분은 어떻게 됐냐고요? 다행이었습니다. 그 분도 끝까지 완주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참가자분들이 완주를 해주시면 저는 정말 뿌듯하더군요. 물론 조마조마 하기는 했지만...

 

 





* 독립문. 독립문을 지나고 있는 참가자들.






 

서대문형무소와 독립문

 

마지막 탐방지는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독립문은 잘 아시다시피 독립협회에서 자주 국권을 상징하기 위해 세운 문입니다. 독립문은 영은문을 헐고 지은 문이죠. 영은문은 청나라 사신을 접견하기 위해 만든 문이었습니다.


독립협회가 주장한 '자주독립'은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독립의지는 확고했으나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이권침탈에는 목소리를 높이며 반대했으나 일본의 이권 침탈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함의가 있어서 그랬는지 독립문은 일제강점기에도 헐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시티 투어를 떠납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분주히 사진을 찍어 됩니다. 외국인들이 이렇게까지 서울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데 우리가 그들보다 서울을 더 모르면 안 되겠지요? 우리도 열심히 서울에 대해서 배워 보자고요.


그렇게 배우다보면 역사도시 서울의 매력에 푹 빠질 겁니다. 그 매력에서 허우적거리다보면 주말마다 배낭을 꾸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손에는 서울 역사지도를 들고 있을 거고요.

 

 




*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에 걸린 초대형 태극기.





 

 

서울 시티트레킹

 

1. 코스: 조계사 소녀상 광화문(동십자각) 황학정 서울성곽(인왕산) 서대문형무소(독립문)

 

2. 이동거리: 8km

 

3. 예상시간: 3시간 30(쉬는 시간 포함)

 

4. 난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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