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인석: 방치된 문인석들을 모아놓았음.

 

 

 

 

 

 

 

4월 27일 화요일.

 

성북50플러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여섯번째 강의가 실시된 날이다. 6강은 삼천사 역사트레킹이다.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에서 집합한 후 실시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좀 소동이 있었다. 가보니 2번 출구가 공사중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현장에서의 일은 항상 변수가 발생한다. 그런 돌발상황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고 생각해야 속이 편하다. 그게 현장의 특성이니까...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구파발역 바로 옆에 있는 이말산부터 탐방하는데 이동순서는 다음과 같다.

 

이말산 -> 진관사 입구 -> 은행나무숲 -> 삼천사

 

이말산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곳에는 내시와 상궁들의 무덤들이 아주 많다. 후손이 없다보니 무덤들은 방치되고, 훼손됐다. 서울 강북에 있는 초안산 내시분묘군과 딱 판박이다. 어떤 문인석은 머리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초안산에 있는 문인석처럼 말이다. 여기서 '이말'은 재스민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말산은 재스민산이라는 뜻이다.

 

그런 이말산에서 트레킹팀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곱씹어보았다. 그리고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카르페디엠!!!

 

661년도에 창건된 삼천사는 고려시대 마애불이 있는 곳이다. 정교함이 돋보이는 고려시대 초기 마애불을 보려고 삼천사에 갔더니만... 무슨 행사를 하는지 경내가 좀 들썩들썩 거렸다. 무슨 탄신제를 한다고 하던데... 삼천사는 이웃한 진관사와 달리 좀 한적한 맛이 있는 곳인데 그날 갔을 때는 아주 들썩들썩거렸다.

마애불도 건성으로 알현하고 서둘러 삼천사계곡 쪽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그래도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잘 종료가 됐다. 현장 상황이라는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잖아. 그게 바로 현장일의 묘미 아니겠는가!^^

 

 

 

 

 

 

 

* 삼천사

 

 

 

 

 

 

 

 

* 트레킹팀

 

 

 

 

 

 

 

 

* 트레킹팀

 

 

 

 

 

 

*** 삼천사 역사트레킹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brunch.co.kr/@historytrekking/208

 

20화 막걸리를 못 마시게 해서 그런가?

<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19편> 삼천사 역사트레킹 | 역사트레킹 리딩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불만 섞인 지적을 받게 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필자에게 쏟아내는 욕구들도 다양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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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역사트레킹 2편>

 

 

역사트레킹 리딩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불만 섞인 지적을 받게 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필자에게 쏟아내는 욕구들도 다양했던 것이다. 역사트레킹을 시작하면서 팔자에도 없는 욕을 먹게 될 거라는 건 각오를 했다. 하지만 서로가 충돌하는 욕구들을 쏟아낼 때는 참 난감해진다.

 

- 코스의 물리적 난이도가 너무 높다 혹은 너무 낮다

- 이동 속도가 너무 빠르다 혹은 너무 느리다

- 해설의 수준이 너무 높다 혹은 너무 낮다

- 막걸리를 못 마시게 해서 너무 싫다

 

일부 수강생분들 중에는 엄청난 여행 경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엄청난 등산 경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다. 그런 베테랑들에게 역사트레킹은 성이 안 찰 수도 있다. 7~8km 밖에 되지 않는 구간을 4시간에 이동을 하니 그 분들이 보기에 너무 느린 것이다. 평지 기준으로 보통 성인이 한 시간에 4km 정도를 이동하니 그 분들은 2시간 남짓이면 해당 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트레킹은 테마를 따라가는 느림보 트레킹입니다. 소걸음 걷듯이 아주 느긋하게 소풍 맞은 아이들처럼 그렇게 재밌게 걸을 겁니다.”

 

이렇게 사전에 계속 안내를 하지만 ‘너무 느리다’라는 컴플레인은 꾸준히 제기됐다. 그런 컴플레인을 제기했던 분들은 다음번 강의에서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 불만이 다는 아닐 거다. 아무래도 막걸리를 못 마시게 해서 그런가...

 

 

 

 

 

 

* 이말산의 봄

 

 

 

 

 

 

● 이름도 독특한 이말산

 

이번에는 삼천사 역사트레킹을 소개한다.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이말산(莉茉山)에서 시작된다. 이말산은 3호선 구파발역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인데 산이라고 칭하지만 작은 언덕배기에 불과하다. 해발이 겨우 132미터 정도니까. 구파발역 옆에 있는 통일로를 건너가면 앵봉산으로 갈 수 있는데 앵봉산 남쪽에는 유명한 서오릉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반대로 구파발역에서 이말산을 계속 타고 가면 북한산 서쪽편이 나온다. 즉 이말산은 앵봉산과 북한산의 중간에 있는 작은 산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말산은 이름이 참 독특하다. 명칭이 독특해서인지 동명이산도 없다. 실제로 검색을 해봐도 구파발 이말산이 유일하다. 그럼 이말(莉茉)은 무슨 뜻일까? 재스민을 한자로 풀면 '이말'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이말산은 재스민이 만발한 산이라는 뜻이다. 이말산에 재스민이 많이 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산에는 무언가가 확실히 많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무덤이다.

 

특히 이말산에는 내시를 비롯한 궁인들의 무덤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북한산의 지산인 이말산은 한양도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성저십리 밖이라 무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성저십리(城底十里)는 도성에서 십리(4km)까지의 거리를 뜻하는데 성저십리까지는 무덤을 쓰지 못하게 했다. 북한산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말산은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무덤을 쓰기에 적당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의주로를 따라 비교적 편하게 당도할 수 있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의주로는 지금의 통일로다.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이전에 소개한 <진관사 역사트레킹>과 여러 면에서 겹쳐진다. 동쪽편과는 다른 북한산 서쪽편의 이야기, 거기에 잠들어 있는 궁궐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실제로 진관사와 삼천사는 북한산 응봉을 사이에 두고 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두 사찰 사이의 직선거리가 1km도 안 될 정도로 아주 가깝다. 그러니 이번편 삼천사 역사트레킹과 <진관사 역사트레킹>을 교차해서 살펴보시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 이말산: 주인을 잃은 석물들이 방치되어 있다.

 

 

 

 

 

 

● 죽어서까지 서럽다

 

거대한 암봉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북한산은 골산(骨山)의 면모를 보인다. 이와 달리 해발 130미터 정도의 이말산은 육산(肉山)이라고 할 수 있다. 푸근한 동네 뒷산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현재 이 산의 무덤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 쓰러진 문인석, 뒹굴고 있는 묘비, 잘려나간 망주석 등등... 자신들의 '씨앗'을 남길 수 없었던, 그래서 후손들을 둘 수 없었던 내시들이었기에 그런 황량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물론 예전 내시들 중에는 양자를 드려 자신의 제사를 받들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양자도 후손을 둘 수 없는 이들이었기에 그 한계가 분명했던 것이다.

 

후손이 없는 무덤은 버려진 것과 다를 바 없다. 봉분은 깎여 나가 평평해지고, 그 주위에 세워둔 석물들은 쓰러진다. 그 중 잘 생긴 문인석은 누군가의 손에 들려 나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도둑을 맞는 것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서러운데 더 서러운 일도 있다. 2010년을 전후로 해서 이말산 부근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유명한 은평 뉴타운이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민들이 이곳에 있는 무덤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민원을 넣은 것이다. 아파트 창문을 열면 바로 무덤들이 보이니 무섭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뉴타운보다 무덤이 더 오래됐다. 그 무덤들이 먼저 들어섰고, 몇 백 년 후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뉴타운이 굴러온 돌인 것이다. 그리고 이말산에 있는 궁인들의 무덤은 그자체로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

 

 

 

 

 

 

 

* 문인석: 머리가 잘려나간 문인석. 누군가 일부러 머리 부분을 자른 것처럼 절단면이 반듯해보인다. 주인이 없는 무덤가라 그런지 문인석들도 크게 훼손됐다.

 

 

 

 

 

 

 

● 북한산의 고봉들이 반겨주는 삼천사

 

이제 트레킹팀은 삼천사로 향한다. 삼천사는 661년(문무왕1)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이웃한 진관사가 천년고찰이면서 서울의 4대 명찰로 불리지만 창건연대에서는 삼천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진관사는 1010년, 고려 현종 때 건립됐으니 삼천사가 그보다 400년이나 앞서 세워진 것이다.

 

삼천사는 한때 3000명의 수도자가 불도를 닦았을 정도로 크게 융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크게 손상을 입는다. 한국전쟁 때도 크게 불에 타는데 지금의 전각들은 1960년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그때 복원을 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터를 잡은 것이다. 오리지널 삼천사 터는 계곡을 따라 약 30분 정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현재의 삼천사에 들어서면 북한산 서쪽편의 고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계곡을 따라 장군봉, 나한봉, 나월봉, 보현봉... 그 다음에 뭐였더라? 그렇게 우뚝우뚝 서있는 고봉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심지 빌딩숲에 펼쳐진 인공의 스카이라인이 밋밋하게 여겨진다.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눈을 정화했다면 이제 부처님을 향해 갈 차례다. 삼천사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마애불이 있는데 그 부처님을 만나 뵈러 가는 것이다. 보물 657호로 지정된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을 뵈러 가는 것이다.

 

고려 전기시대에는 개성미가 넘치는 석불들이 많이 등장한다.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안동 제비원 석불, 파주 용미리 쌍미륵 등등... 이 시기에 등장한 석불들은 거대한 사이즈를 자랑하는데 은진미륵 같은 경우는 약 18미터에 달할 정도다. 그렇게 어마어마하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불로 자리매김했다. 1등이라는 말이다.

 

돌장승같이 석불들이 큼직큼직하니 균형미나 비례미는 떨어졌다. 신체비율에 안 맞게 얼굴을 크게 부각하여 3~4등신으로 만들어진 석불도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개성미가 넘치게 된 건 그 당시 정치상황과 연관이 있다. 고려 전기시대에는 호족세력들이 지방에서 위세를 떨쳤는데 그런 사회상황이 석불 제작에도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 삼천사: 뒤쪽으로 북한산의 고봉들이 펼쳐져 있다.

 

 

 

 

 

 

 

● 같은 고려 전기에 제작됐지만 삼천사 마애불은 다르다

 

11세기경에 제작됐으니 삼천사 마애불도 고려 전기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고려 전기에 제작된 석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세련미와 균형미가 잘 갖추어졌다는 뜻이다. 격식을 파괴한 듯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이는 거대한 석불과는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대웅전을 돌아 위쪽으로 올라가면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마애불(磨崖佛)은 벼랑애(崖) 자에서 보듯 바위에 새긴 불상을 말한다. 위에서 언급한 은진미륵 같은 경우는 환조(丸彫) 형식의 석상으로 되어 있다. 좀 어렵다. 학창시절에나 배웠던 미술용어도 나오고, 그보다 더 어려운 한자도 나왔으니까. 트레킹팀도 어려워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을 했다. 해설을 질을 떨어뜨렸다고 하지 마시라.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마애불은 벽에다 그리는 그래피티라고 생각하시고요, 환조는 이순신 장군 동상 생각하세요. 물론 동상은 금은동 할 때 그 동으로 만들었어요. 석상은 돌, 그러니까 스톤이고요. 오케이?”

 

삼천사 마애불은 신체의 비례가 잘 표현됐고, 승각기 등의 법복이 잘 그려졌다. 약 3미터 정도인 삼천사 마애불은 양각, 음각, 부조까지 다양한 기법들이 조화롭게 잘 스며들어 있다. 양각과 음각은 아실 것이다. 그럼 부조는? 부조(浮彫)는 돋을새김이라고도 하는데 평면에 형상이 도드라지게 만든 것을 말한다. 삼천사 마애불의 얼굴 부분을 보시면 부조로 잘 조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애불 앞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치성을 드린다. 이곳 아래로는 삼천사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다리 형식으로 복개를 하여 부처님에게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제작된 지 거의 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삼천사 마애불은 별로 마모가 되지 않고 뚜렷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석불 좌우에 뚫린 가구공(架構孔)에 당장이라고 목재를 끼워 지붕을 달 수 있을 정도로 가구공도 그 빤듯함을 유지하고 있다.

트레킹팀도 공손하게 합장을 하고 기원을 드렸다.

 

“여러분 무슨 기원을 올리셨나요? 어쨌든 소중한 기원이 잘 성취됐으면 좋겠네요.”

 

글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역사트레킹은 테마를 따라가는 느림보트레킹이다. 쭉쭉 치고 나가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역사트레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삼천사 역사트레킹과 진관사 역사트레킹은 따로따로 행하셨으면 좋겠다. 느긋하게 따로따로 행하는 게 더 기억에 남을 테니까.

 

 

 

 

 

 

* 삼천사 마애불: 고려 전기시대 작품

 

 

 

 

 

 

 

* 삼천사 마애불: 천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음.

 

 

 

 

 

 


 

 

 

 

■ 삼천사 역사트레킹

1. 코스: 이말산 ▶ 진관근린공원 ▶ 삼천사 ▶ 삼천사계곡

2. 이동거리: 약 7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휴식시간 포함)

4. IN: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 / OUT: 진관한옥마을 ☞ 삼천사계곡까지 탐방한 후 은평한옥마을에서 버스편을 이용하여 다시 구파발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 삼천사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지난 3월 26일 화요일.

2월달부터 화요일마다 도심권 50플러스센터에서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강의를 합니다. 이날은 6강 삼천사 역사트레킹이 있었던 날이죠. 5강 아차산 역사트레킹은 뜀뛰기하고 삼천사로 넘어갑니다. 

"우리 이말산에서 개나리를 제대로 볼 게 될 거에요.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삼천사 역사트레킹을 앞두고 저런 말을 했었답니다. 삼천사 트레킹의 시작은 이말산인데 그곳에 개나리가 쭈~욱 펼쳐진 구간이 있거든요. 그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 봄꽃은 아직이더군요. 아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30일에는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여간 날짜를 앞서간 이말산에서 트레킹팀은 개나리 대신 방치된 문인석들을 많이 보게되었답니다. 이말산에는 내시와 궁녀들의 무덤이 많이 있기 때문이죠. 그들이 후손이 없어서 그런지 훼손된 묘지들이 많이 있었답니다.

단체사진은 삼천사로 향해 가는 은행나무 앞에서 찍었답니다. 저 은행나무 숲은 가을에 오면 딱인데! 계절을 앞서 와서 좀 황량하더군요. 하지만 나름대로 사진빨이 사는 곳입니다. 

삼천사에는 고려 초기에 제작된 삼천사 마애불이 있답니다. 고려 초기에 제작된 마애불이나 석불들은 통상 비례미가 떨어지는데 삼천사 마애불은 그렇지가 않답니다. 그래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렇게 마애불 탐방을 끝으로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잘 종료가 됐답니다. 마애불도 그렇고, 사진에 나온 계곡도 그렇고. 삼천사는 한 번 쯤 가볼만한 곳입니다. 아주 시원시원하거든요~   















*** 예전에 가려다 계속 실패했던 삼천사 역사트레킹 다시 시도해 봅니다. 

10월 22일에 실시 예정이오니, 그때 쯤에는 북한산이 오색단풍으로 물들어 있을 겁니다. 그 아름다운 풍광을 기대해보며~!!!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이말산에서 시작됩니다. 재스민을 한자로 풀면 '이말'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이말산은 재스민이 만발한 산이라는 뜻이죠. 이말산에 재스민이 많이 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산에는 무언가가 확실히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바로 무덤입니다. 


특히 이말산에는 내시들의 무덤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지산인 이말산은 한양도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저십리 밖이라 무덤을 쓸 수 있었던 곳입니다. 북한산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말산은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무덤을 쓰기에 적당했을 겁니다. 도성에서도 가깝고 하니... 

푸근한 동네 뒷산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현재 이 산의 무덤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러진 문인석, 뒹굴고 있는 묘비, 잘려나간 망주석 등등... 자신들의 '씨앗'을 남길 수 없었던, 그래서 후손들을 둘 수 없었던 그들이기에 그런 황량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예전 내시들 중에는 양자를 들여 자신의 제사를 받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양자도 고자였기에 한계가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죠. 

이말산을 탐방한 후 트레킹팀은 삼천사로 향합니다. 천년고찰인 삼천사는 아주 시원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계곡 안쪽에 자리잡은 삼천사 뒤쪽으로 북한산의 고봉들이 트레킹팀을 반겨줄 것입니다. 장군봉, 나한봉, 나월봉, 보현봉 등등... 이웃한 진관사와는 또다른 느낌을 전해줄 것입니다.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이말산에서 시작됩니다. 재스민을 한자로 풀면 '이말'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이말산은 재스민이 만발한 산이라는 뜻이죠. 이말산에 재스민이 많이 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산에는 무언가가 확실히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바로 무덤입니다. 

특히 이말산에는 내시들의 무덤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지산인 이말산은 한양도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저십리 밖이라 무덤을 쓸 수 있었던 곳입니다. 북한산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말산은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무덤을 쓰기에 적당했을 겁니다. 도성에서도 가깝고 하니... 

푸근한 동네 뒷산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현재 이 산의 무덤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러진 문인석, 뒹굴고 있는 묘비, 잘려나간 망주석 등등... 자신들의 '씨앗'을 남길 수 없었던, 그래서 후손들을 둘 수 없었던 그들이기에 그런 황량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예전 내시들 중에는 양자를 들여 자신의 제사를 받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양자도 고자였기에 한계가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죠. 

이말산을 탐방한 후 트레킹팀은 삼천사로 향합니다. 천년고찰인 삼천사는 아주 시원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계곡 안쪽에 자리잡은 삼천사 뒤쪽으로 북한산의 고봉들이 트레킹팀을 반겨줄 것입니다. 장군봉, 나한봉, 나월봉, 보현봉 등등... 이웃한 진관사와는 또다른 느낌을 전해줄 것입니다. 

*** 삼천사 역사트레킹 공지 올립니다. 추석연휴가 10일 정도라 올 가을은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적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9월 달에 한 번 더 트레킹을 해보려고 합니다. 올 여름에 진행하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던, 하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삼천사 역사트레킹을 9월 달에는 꼭 실시했으면 좋겠습니다! ^^; 






















*** 한 여름에 떠나는 계곡트레킹! 삼천사 역사트레킹!


http://cafe.naver.com/trekkingmaster/75  <-- 삼천사 역사트레킹 신청하러 가기!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이말산에서 시작됩니다. 재스민을 한자로 풀면 '이말'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이말산은 재스민이 만발한 산이라는 뜻이죠. 이말산에 재스민이 많이 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산에는 무언가가 확실히 많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요? 바로 무덤입니다. 

특히 이말산에는 내시들의 무덤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지산인 이말산은 한양도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저십리 밖이라 무덤을 쓸 수 있었던 곳입니다. 북한산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말산은 해발이 높지 않은 산이라 무덤을 쓰기에 적당했을 겁니다. 도성에서도 가깝고 하니... 

푸근한 동네 뒷산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현재 이 산의 무덤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러진 문인석, 뒹굴고 있는 묘비, 잘려나간 망주석 등등... 자신들의 '씨앗'을 남길 수 없었던, 그래서 후손들을 둘 수 없었던 그들이기에 그런 황량함이 더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예전 내시들 중에는 양자를 들여 자신의 제사를 받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양자도 고자였기에 한계가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죠. 

이말산을 탐방한 후 트레킹팀은 삼천사로 향합니다. 천년고찰인 삼천사는 아주 시원한 풍광을 자랑합니다. 계곡 안쪽에 자리잡은 삼천사 뒤쪽으로 북한산의 고봉들이 트레킹팀을 반겨줄 것입니다. 장군봉, 나한봉, 나월봉, 보현봉 등등... 이웃한 진관사와는 또다른 느낌을 전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경내 곳곳을 둘러보다보면 큰 바위에 눈길이 가게 될 것입니다. 그 바위 앞에서 합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바위가 바로 삼천사 마래여래입상이기 때문입니다. 고려 초기의 작품인 삼천사 마래여래입상은 세밀하고, 생동감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그렇게 삼천사 마래여래입상은 천년 이상의 세월동안 그 곳에 서 있으면서 많은 이들의 기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9남인 화의군 이영 묘소 탐방을 끝으로 삼천사 역사트레킹도 종료가 됩니다. 삼천사 역사트레킹은 시원한 계곡을 탐방하니 더운 여름에 적합한 트레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유적도 탐방하고, 계곡도 탐방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까 삼천사 역사트레킹에 꼭 오셔야합니다! ^^; 




















어제 북한산 자락인 이말산이라는 곳을 탐방했습니다.


이말산부터 시작해서 삼천사까지 탐방하고 왔습니다.


그 곳에서 담은 사진들을 몇 장 올려봅니다.


이 코스는 나중에 <삼천사역사트레킹>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해 볼 생각입니다.


즐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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