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밥: <영월강변둘레길> 역사트레킹 참가자들이 즐겁게 길을 나서고 있다.

 

 

 

 

 

* 서강: 필자의 '비밀화원'이었던 환상의 뷰포인트다. 여러명이서 같이 동행을 하니 이렇게 사진 찍어줄 사람도 생겼다.  

 

 

 

 

 

* 지난 3월 22일 토요일에 행한 <영월강변둘레길> 역사트레킹에 대한 사진 후기입니다.

이날은 총 9명의 인원이 함께 했답니다. 날씨가 좋아 무척 재미있게 진행이 됐답니다.

마치 봄소풍을 나온 것처럼 참가자들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답니다.

 

 

 

 

 

 

 

 

 

*선돌: 선돌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참가자들. 왼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 서강: 날씨도 좋고, 배경도 좋고, 사람들은 더 좋고. 뒤로 흐르는 강이 서강이다. 오른쪽 상단 부분이 선돌이다.

 

 

 

 

 

* 선돌구간: 선돌에서 서강뚝방길까지의 구간은 급경사 구간이다. 이동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 선돌: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에 올라 선돌과 서강을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들.

 

 

 

 

* 청령포: 청령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참가자들.

 

 

 

 

* 방절산: 방절산에 올라 영월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들.

 

 

 

 

 

* 선돌: 선돌 전망대에 올라 한 컷

 

 

 

 

* 서강 뚝방길: 서강뚝방길부터는 길이 좋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길을 걷고 있다.

 

 

 

 

* 서강: 환상의 뷰포인트에서 한 컷.

 

 

 

* 청령포 가는 길: 봄 소풍을 온 듯 참가자들이 즐겁게 트레킹을 하고 있다.

 

 

 

 

* 서강: 홀로 단독여행을 했을 때는 이렇게 자전거가 필자를 대신한다. 2013년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 서강: 환상의 뷰포인트라지만 단독여행을 할 때는 이렇게 풍경사진만 찍게 된다. 

절경을 공유하니 즐거움은 더더욱 커졌던 것 같다. 2013년 겨울에 찍은 사진이다.  

 

 

 

 

 

 

 

 

 

 

3월 22일 토요일.

 

 

화창한 봄날이었습니다. 선돌을 끼고 흐르는 서강도 봄 햇살을 받아 더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그 길을 걸었습니다. 영월강변 둘레길 역사트레킹을 저렇게 웃으며 걸었습니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하나의 사고 없이 그렇게 안전하게 트레킹을 했습니다.  

 

 

선돌에서부터 청령포까지, 거기에 방절산까지...

 

 

자세한 후기는 차후에 올리겠습니다!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 이라는 긴 제목의 전남여행 가이드북이 발간되었다. 이 책자는 올 3월에 발간된 터라 아주 따끈따근하다~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이라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해당 여행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중심에 놓고 여행정보를 첨가하는 식으로 작성되었다. 여행정보 전달이 우선시되던 기존의 가이드북하고는 방향성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동부권, 중남부권 등... 전남지역을 권역별로 나누었는데 해당 꼭지마다 다른 필진들이 기용되어 여행에세이를 작성하였다. 물론 필자인 곽작가도 이 작업에 참여를 하였다. 필자가 참여를 했으니 이런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다....ㅋ

필자가 여행한 곳은 강진이었고, 글 제목은 <삼남길 따라 가는 남도 역사트레킹>이다.

 

기성 여행작가와 여행기자들이 필진으로 참여를 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이 가이드북의 완성도는 높았다. 책자든, 신문기사든 여행과 관련된 글은 그것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배낭을 꾸리게 해야 한다. 글이 좋든 사진이 좋든 독자에게 해당 지역을 가보게 할만큼 충동질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 여행기는 여행기로서 낙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자에 기고한 필진들의 글과 사진은 퀄리티가 확실히 높았다. 필자도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고 배낭을 만지막거렸으니까...

 

 

 

 

 

 

그런데 한가지!

 

이렇게 공동필진으로 기획된 책은 각 필진의 필력 때문에 밸런스가 상이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마디로 잘 쓰는 사람은 잘 쓰고, 못 쓰는 사람들은 못 써서 책 전체의 균질성이 감소된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이 책의 완성도가 높다고 하더니, 지금은 밸런스가 깨졌다고? 한 입 가지고 두 말 한다고 필자에게 질책을 가하지는 마시라!

전체적으로 좋다고 했지, 모두다 좋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기성작가라고 하는데 기본적인 문장력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분의 글들이 몇 편 보여서 그랬다. 기본적인 팩트도 어긋난 부분이 있어서 지적하는 것이다. 상당히 치명적인 팩트의 오류라 그냥 넘기기에는 거시기 하더라...

 

어떻게 보면 여행작가라는 직업은 진입장벽이 거의 없는 직업이다. 여행블로그를 하다가, 어디 오지 여행을 하다가 책을 내고 언론에 등장하면, 그 사람이 바로 여행작가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작가 판은 지금도 계속해서 신규 인원들이 진입을 하고 있다. 물론 그만큼 빠져나가는 사람도 아주 많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뭘 내세울 게 있어서 여행작가니, 여행프리랜서니 하고 다니겠는가? 겨우 무동력 여행으로 몇 천 킬로미터 찍은 거, 역사트레킹을 리딩하는 거... 뭐 그런 것들이다. 얼핏보면 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

       

이렇게 진입장벽이 거의 없거나 낮다보니 필력이 의심되는 분들의 여행기도 간간이 접하게 된다. 또한 기본적인 팩트가 어긋나는 글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든다.

 

"여행작가 지망생들아! 너무 쫄지 마라. 이런 사람들도 여행작가라고 여행기를 생산해낸다! 너희들도 할 수 있어! 파이팅! 나도 파이팅!"

 

ㅋㅋㅋ

 

글이 길어졌다. 그럼 필자가 작성한 <삼남길 따라 가는 남도 역사트레킹>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 문장력이 제대로 갖추어졌고, 기본 팩트가 일치하는가? 문장력은 모르겠는데, 기본 팩트는 일치한다. 필자는 왠만하면 크로스체킹을 통해 서너번 이상 오류 감시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각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여행 공모전을 시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결과물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들이 있다. 공모전들이 휘발성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은 잘 활용되어 결과물의 '자기복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휴대하기 편하기 만들어진 이 책자를 가지고 남도 땅을 여행하고, 그 여행이야기가 더욱더 많이 퍼지는 식으로 '자기복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기장판, 영상기기, 탁자... 왜 캠핑하세요?___2탄

EBS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 단상... 적게 쓰는 캠핑 되길

---> 전편에 이어서

 

 

 

 

 

 


기사 관련 사진
▲ 지리산 뱀사골 뱀사골 캠핑장 옆에 있는 뱀사골 계곡이다. 바위 위에 젖은 옷들을 말리고 있다. 시각적으로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2012년 여름에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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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왔나?

장비 과시욕은 다른 아웃도어 영역에서도 늘 잡음을 발생시켰다. 소형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나 슬슬 다니시는 분, 머리에서 발끝까지 유명 아웃도어 메이커로 도배했지만 등산은 잘 못하시는 분 등등. 그런 분들이 있으니 아웃도어 업체에서도 계속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은 그래도 과도한 음식물 쓰레기는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렇다. 필자가 캠핑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이 부분은 캠핑을 즐겨하시는 분이나 캠핑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공통적으로 공감하실 것이다.

요즘에는 캠핑식이라 해서 캠핑 요리 레시피를 모은 가이드북도 발간됐다. 캠핑장에서 먹는 요리는 꿀맛이다. 대자연에서 캠핑도 즐기고, 요리도 해먹으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밤마다 캠핑장은 바비큐 파티장으로 변신한다. 고기가 구워지고, 자연스럽게 술잔이 돈다. 자연 속에서 고기와 술을 즐기니 그곳이 무릉도원인가? 그렇게 먹고 마신다 보면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발생한다. 아웃도어 활동을 하다 보면 그렇게 부산물들이 발생하지만 캠핑장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정도를 넘어섰다.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그렇게 '파티의 끝'은 항상 쓰레기였다. 다 먹지도 못할 음식물들은 왜 가지고 와서 버리고 가는가? 도시에서도 그렇게 음식물을 버리는가? 차라리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은 남은 음식물들을 공용 냉장고에 넣어 둔다. 그러면 다른 숙박인들이 재활용(?)할 수 있다. 필자도 제주도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 냉장고에 있는 오징어를 재활용해서 요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캠핑장에서는 그런 재활용 과정 없이 그냥 버려진다. 필자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먹으로 오셨나요? 먹으러 오셨으면 다 드시고 가시지, 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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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박 비박이란 야외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 취침을 하는 것을 말한다. 텐트를 설치하면 캠핑이 되는 것이고, 사진에서처럼 그냥 침낭만 깔고 자면 비박이 되는 것이다. 2013년 여름 강원도 횡성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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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캠핑은 안녕하십니까?

필자는 우리나라 캠핑장에 발우공양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신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준비해서 남기지 않는 것이다. 뒤끝이 없게 캠핑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럼 필자는 캠핑을 하면서 무엇을 먹었을까? 콘플레이크를 먹었다. 두유에 동동 띄어서 먹었다. 밥도 지어먹기는 했지만 콘플레이크를 더 많이 먹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전혀 남기지 않았다.

물론 필자처럼 캠핑장에서 콘플레이크 같은 행동식을 취식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의미에서 콘플레이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좀 더 계획적으로 일정을 짜서 좀 더 적게 버리자는 것이다.

이제껏 필자가 언급한 것들과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에서 질타한 내용은 상당 부분 일치한다. 또한 백패킹을 지향점으로 삼는 것도 동일하다. 먹고, 마시고, 장비 과시에 집중된 우리의 캠핑문화는 변해야 한다. 물량공세식의 소비지향적 캠핑은 지양돼야 한다. 캠핑은 자연을 느끼러 가는 것이지 도시적인 소비패턴을 연장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혼잡한 캠핑장에서의 하룻밤은 힐링이 아니다. 그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짜증 캠핑'일 뿐이다.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는 그릇된 캠핑문화의 폐해를 잘 지적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우리나라 캠핑, 아웃도어 문화에 대해서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방송을 다 시청한 후 필자는 이런 의문을 품어 봤다. 

'당신의 캠핑은 안녕하십니까? 진정 캠핑을 제대로 잘 즐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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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하나뿐인 지구>의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 편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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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의 어느 날.


당시 필자는 중부내륙 자전거여행을 행하고 있었다. 강원도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야영지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에 가까웠기에 다급했다.

그러다 현지 경찰분들의 도움으로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 대한 정보를 얻어 그곳으로 향했다. 그 날은 '도깨비 도로'라는 거시기한 이름의 급경사 도로를 통과했던 만큼 심신이 무척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폐교를 리모델링했다는 그 캠핑장이 '스위트 룸'이 되어주길 기대했다. 달콤한 휴식을 기대하며 페달을 굴리는데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필자의 인상은 찌푸려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시간은 한밤중이었지만 그곳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여기저기서 고기가 구워졌고,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기 굽는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였고, 술자리의 떠들썩함이 온 동네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또한 한편에서는 불꽃놀이도 벌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필자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끈한 곳에서는 심신의 피로를 달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로가 더 가중될 뿐이다. 결국 그날은 자정을 훨씬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이름 모를 공사장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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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달궁 캠핑장 지리산 국립공원에 있는 오토캠핑장. 여름에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2012년 여름에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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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


필자는 캠핑을 많이 하지만 캠핑장을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캠핑장이 아닌 곳에다 텐트를 친 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골동네 팔각정, 마을회관 뒤편 공터, 다리 밑, 야산 공동묘지 등등.

그렇게 캠핑장이 아닌 곳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난뱅이 여행을 하는 터라 돈이 없고, 둘째 현재 우리나라 캠핑문화가 탐탁지 않아 그렇게 했다. 캠핑장 입장료가 몇 푼 한다고 비용 문제를 언급하겠는가. 그렇다. 캠핑장 입장을 실제적으로 꺼리는 이유는 두 번째 사유 때문이다.

EBS의 환경다큐멘터리 중에 <하나뿐인 지구>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지난 2월 28일에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라는 제목을 걸고 우리나라 캠핑 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그릇된 캠핑문화를 질타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들을 시청자들에게 던졌다.

'캠핑장으로 향하는 당신의 텐트와 차는 얼마나 큽니까?'
'캠핑장에 무엇을 남기고 어떤 것을 채워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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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 당골캠핑장 필자는 소형텐트로 캠핑을 한다. 2012년 여름에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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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생활을 옮겨 놓은 '자연 속' 오토캠핑장


처음으로 대형 캠핑장에 갔을 때 필자는 손수레의 쓰임새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얼핏 쓰레기 적재에 쓰인다고 봤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자동차에서 짐을 꺼내 자신의 사이트(텐트 세팅지)로 움직일 때 이동수단으로 쓰였다.

내부에서 차량 이동이 되지 않는 캠핑장에서는 손수레가 이동수단으로 사용된다. 일단 텐트 무게가 있고, 기타 짐들이 가득하니 손수레를 이용해 이동을 하는 것이다. 어떤 캠퍼들은 한 차로는 부족했는지 두세 번 왕복하기도 했다. 이후 다른 캠핑장에서도 손수레로 캠핑 장구들을 나르는 광경은 아주 흔하게 목격됐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조용히 있다 조용히 간다'라는 말처럼 캠핑에는 많은 물품들이 필요하지 않다. 하루짜리 야외생활에 적합한 물품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손수레로 두세 번 왕복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토캠핑장에 오는 사람들은 왜 엄청난 짐들을 싣고 오는 것일까? 'city life', 즉 도시생활을 끌고 왔기 때문이다. 그 짐이라는 것들을 보면 캠핑 본연의 물품들이라기보다는 도시생활을 옮겨 놓은 것들에 가깝다. 탁자, 주방기구, 영상기기 등등…. 혹한기에는 난방용품까지 추가되는데 난로와 전기장판까지 휴대품으로 소지한다. 그러니까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캠핑 장비가 많을수록 그것을 싣는 자동차의 크기도 커져야 한다. 그래서 캠핑을 위해 더 큰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생길 정도다. 캠퍼들 사이에서는 캠핑장비가 넘쳐나 일반 승용차에서 SUV로 바꿨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캠핑의 주도권이 캠퍼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캠핑장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캠퍼와 캠핑 장비 간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도시의 안락한 생활을 캠핑장으로 옮겨 놓는다면 무엇하러 캠핑을 하러 가는가? 엄동설한에 전기장판과 난로를 가져가서 캠핑을 하느니 차라리 저렴한 민박집에 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해당 지역경제에 보탬도 된다.


 

 

 

 

 

 

 

 

 

 

 

 

* 낙성대: 낙성대 3층 석탑을 바라보고 있는 역사트레킹 참석자들 

 

 

 

 

 

* 삼성산 숲: 메타세쿼이어 군락지 앞에 선 참석자들.

 

 

 

 

* 삼성산 숲: 위쪽 사진에 있는 메타세쿼이어 숲이 무성해진 모습.

 

 

 

 

 * 코스명: 낙삼성길 ( 낙성대와 삼성산에서 글자를 조합하여 네이밍을 했음. 한편 이 곳은

일명, 관악산 A코스임 . 경기도 안양 방면에서 이동하는 관악산 B코스도 개척할 예정임.)  

 

* 이동경로: 낙성대역 ▶ 낙성대 ▶ 서울대입구 ▶ 장승마을 ▶ 헬기장 ▶ 삼성산 성지 ▶삼성당 성당

 

* 역사유적: 

1. 낙성대: 강감찬 장군의 업적에 대한 설명. 거란과 송나라 등 당시 동북아 지역 상황에 대한 설명. 낙성대 3층 석탑과 옛 백제계 석탑에 대한 비교 설명 등

2. 삼성산 성지: 기해박해(1839년)에 대한 설명. 병인박해 등 우리나라 천주교의 핍박의 역사에 대한 설명.

3.  기타: 김종서 장군 등 문신 출신 명장에 대한 설명.  

 

 

* 특징: 서울 근교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이 용이함. 봄에는 철쭉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룸.

 

* 이동거리: 약 8km

 

* 예상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휴식시간 포함)

 

* 난이도: 중 ---> 오르막 길이 있으나 그렇게 험하지 않음.

 

* 방향찾기(표식물): 있음. 관악산 둘레길 표식을 찾아 가면 됨. 단 '낙성대역 ▶ 낙성대' 구간과   '삼성산 성지 ▶삼성당 성당' 구간은 수정구간임.

 

* 이용불가 계절: 겨울. 단, 겨울 장구들을 준비하면 탐방이 가능함.

 

* 특이사항: 관악산 둘레길 A와 B코스 위주로 이동하지만 둘레길과 동일하게 걷지 않고 좀 수정하여 탐방함.

 

 

* 교통편: IN -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3번 출구 이용 / OUT - 삼성산 성당 아래에 위치해 있는 미림여고 앞에서 시내버스 탑승 후 2호선 신림역 등을 이용함.   

 

* 후기:  후기보러 가기 ---> 클릭

 

 

 

 

 * 낙성대: 강감찬 장군 동상 앞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한 컷

 

 

 

 

 

* 관악산 둘레길 

 

 

 

 

 

* 관악산 둘레길 사진: 공식 관악산 둘레길 지도임.

 

 

 

 

 * 영월강변둘레길

 

 

 

소셜다이닝 사이트인 <집밥>에서 영월강변둘레길과 속초해변트레킹 지도를 작성해 주었네요. 인터뷰 할 때 지도가 있냐고 해서 전에 제가 직접 그린 이미지 파일을 보내주었거든요. 그 파일은 네이버 지도에서 따서 알씨로 편집했던 이미지였죠. 그래서 좀 조잡했던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집밥에서 그 파일을 잘 다듬어서 이렇게 눈에 확 들어오는 지도를 작성해 주었네요. 참 감사하네요. 하지만 하나 아쉬운 것도 있어요. 지도의 위치가 좀 다르다는 거....ㅋ

 

어찌댔든 집밥은 정말 기특하단 말야! 이런 지도들도 제작을 해주고 말이죠! 

 

 

 

 

 

 

* 속초해변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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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성대 3층석탑 12세기 경에 건립된, 낙성대 3층 석탑을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들. 낙성대 3층석탑은 고려시대 건립된 탑으로 강감찬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한편 석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그래서 석탑은 대개 사찰이나 폐사지에 세워진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낙성대는 사찰이 아니다. 사찰이 아닌 곳에 석탑이 세워진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낙성대 3층 석탑은 강감찬 장군의 위상을 대변해주는 큰 징표로 보인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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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산 참가자 중 한 분이 서울대 방면을 바라보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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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키운 건 도봉산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히말라야니, 킬리만자로니 이런 산들이 아니라 동네 뒷산인 도봉산이 현재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대목을 읽을 때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베이스캠프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그 베이스캠프에서 잔뼈가 굵어지고, 더불어 '통'도 커진다. 똥개도 자기집 앞마당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처럼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반은 먹고 들어갈, 그런 베이스캠프가 필요한 법이다.

그 말을 빗대서 생각해보면 엄홍길 대장의 베이스캠프는 도봉산이다. 그럼 필자의 베이스캠프는 어디일까? 관악산이다. 동네 뒷산은 아니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관악산이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곳을 활보하며 '다리통'을 늘렸고, '깡다구'도 키웠다.  

 

관악산과 관악산둘레길


봄기운이 스며들던 지난 8일. '관악산 둘레길 역사 트레킹'을 실시하려고 길을 나섰다. 3년 전, 관악산에도 둘레길이 개설됐는데 그 길을 탐방하고자 배낭을 꾸린 것이다. 소셜다이닝 모임인 '집밥'을 통해 모집된 참가자들과 함께해서 그랬는지, 이번 트레킹은 북적북적 거렸다.

2011년에 개통된 관악산 둘레길은 3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고, 총 연장이 15km에 달한다. 관악산 둘레길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난 걷기 열풍의 일환으로 탄생되었다. 사실 이 길들은 기존에는 등산로로 쓰였다가 그 열풍을 타고 '관악산 둘레길'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북한산 둘레길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등산로가 둘레길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들이 반갑다. 자신의 '보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증설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런 둘레길 개척 비용이 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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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산 숲길 아직은 황량하지만 이제 곧 짙은 녹음으로 울창한 수림을 이룰 것이다. 왼쪽에 있는 나무들은 메타세쿼이어. 메타세쿼이어들이 울창해질 때 다시 한 번 이 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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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위세 때문인지 관악산은 서울의 진산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강남 지역에서는 관악산이 최고일 것이다. 관악산 일대의 가치는 이미 삼국시대에서부터 형성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한강 하류지역의 주도권을 잡게하기 위해 이 일대에서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고려시대에는 남경(지금의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남쪽산으로 그 전략적 가치가 중시되었다.


이런 역사성 때문인지 관악산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들이 넘쳐난다. 광화문에 해태상이 조각된 이유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한 방편이라는 이야기, 조선 태종이 셋째 세종에게 양위를 할 것을 눈치 챈 첫째 양녕대군과 둘째 효령대군이 도성을 빠져나와 왕좌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기 위해 수도를 했다는 연주대 이야기. 하지만 연주대(戀主臺)는 그 한자 이름에도 나타나듯이 왕좌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났던 공간이라는 이야기.

 


 

 

노익장을 발휘한 문신 출신, 강감찬 장군


그런 관악산 스토리텔링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과 그의 생가인 낙성대(落星垈)일 것이다. 낙성대라는 의미에서도 보듯,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굳이 신화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역사적인 인물을 과도하게 칭송했다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성역화 작업의 한 대상자였던 강감찬에 대해 외면하고 싶은 시각도 존재할 것이다. 참고로 현재의 낙성대는 1974년, 유신헌법이 한참 맹위를 떨칠 때 건립된 것이다.

"그거 아세요. 강감찬 장군이 사실은 문신 출신이라는 거요."
"정말요?"
"더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장군께서 나이 70에 최전방 사령관으로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귀주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둬서 거란 세력을 물리쳤고요."
"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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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감찬 장군 동상 2013년 여름경에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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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설명에 참석자들은 좀 놀라는 표정이었다. <삼국지>의 황충 장군도 아니고, 고희의 나이에 최전방에서 칼을 휘둘렀다는 점이 놀라웠을 것이다. 더구나 상대편은 당시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거란족들이 아닌가?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 보자. 고려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두고 금수지국(禽獸之國)이라고 칭하며 건국 초부터 강경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거란이 선물로 준 낙타를 굶겨 죽인, 일명 만부교 사건도 발생하게 됐던 것이다.

거란은 요나라를 세우고 동북아에서 위세를 떨쳤다. 당시 요나라는 만리장성 부근에서 송나라와 대치를 하게 됐는데 한반도에 있는 고려에 대해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고려가 송나라와 손을 잡고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3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였던 것이다. 강감찬 장군은 3차 침공 때 상원수가 되어 10만 거란군을 격퇴시켰고 그로 인해 고려는 전란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낙성대 3층 석탑 좀 보세요.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인데요. 12세기 경에 건립됐으니 천 년의 세월을 버틴 탑이라네요."
"아 그렇군요."
"탑이라는 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담아 놓는 조형물이잖아요. 그런데 강감찬 장군은 부처님도 아니고 유명한 고승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곳에 탑이 세워졌습니다. 아무래도 강감찬 장군의 위엄이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던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탑이라 하면 불탑을 지칭한다. 이런 불탑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터라 사찰이나 폐사지가 아닌 곳에 불탑이 세워진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다르게 이야기하면 강감찬 장군에 대한 고려인들의 흠모가 얼마나 열광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인헌공 강감찬은 84세에 천수를 누리다 영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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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산 성지 왼쪽부터 앵베르도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라고 쓰여 있는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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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 성지


낙성대를 뒤로 하고 본격적인 관악산 둘레길 역사트레킹이 시작됐다. 트레킹 팀은 서울대 입구를 지나 삼성산 성지로 향했다. 삼성산은 관악산의 지산으로 원효, 의상, 윤필 세 분의 성인이 움막을 짓고 수도에 정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성산에 있는 삼막사(三幕寺)의 유래도 거기에서 나왔다.

그런 삼성산에 성지가 있는데 불교 성지가 아니라 천주교 성지다. 삼성산 성지는 기해박해(1839년) 때 효수를 당한 세 명의 프랑스 신부들의 무덤이 있던 자리를 성역화 시킨 것이다.

세도 가문이었지만 안동 김씨는 천주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폈다. 하지만 뒤이어 집권한 풍양 조씨는 천주교에 대한 탄압에 앞장섰다. 그렇게 하여 발발한 것이 헌종 5년에 있었던 기해박해였다. 이로 인해 권력의 중심은 풍양 조씨로 넘어갔다. 그런 면에서 기해박해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간의 권력투쟁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기해박해로 인해 앵베르도 주교(한국명: 범세형)와 모방, 샤스탕 신부 등이 새남터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그들의 주검은 노고산(마포구 노고산동)을 거쳐 삼성산에 묻히게 된 것이다. 이후 천주교에서는 이곳을 성역화 하였고 지금의 삼성산 성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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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산 성지 참가자 한 분이 삼성산 성지(천주교)에 있는 팻말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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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 성지는 조용히 사색하기 좋은 곳이다. 성지라서 그런지 다른 탐방객들도 목소리를 낮추고 주위를 경건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삼성산 성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삼성산 숲이라는 소나무 군락지도 있는데 이곳도 사색하거나 시집을 꺼내 읽기 좋은 곳이다.

관악산의 또다른 자랑인 메타세쿼이어 숲 탐방을 끝으로 관악산 둘레길 역사트레킹도 무사히 끝마칠 수가 있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아직 봄기운이 스며들지 않아 겨울 산의 황량함이 배어 있었다는 점이다. 꽃망울이 터지길 바랐는데….

뒤풀이로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우리 역사트레킹팀은 다음을 기약하였다. 트레킹을 하며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역사트레킹! 앞으로도 역사트레킹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한 번 참가해 보는 게 어떠신지? 최소한 필자와 함께 다니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만 잘하면 간식도 챙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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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산 성지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분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사전 답사때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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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세쿼이어 관악산에도 저런 울창한 수림이 있다. 이 사진은 2012년 5월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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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관악산둘레길은 1, 2, 3코스가 있고, 총 거리는 15km에 이른다.
2. 필자가 행한 <관악산 둘레길 역사트레킹>은 1, 2코스에서 이루어졌는데 좀 변형을 시켰다.
3. 역사트레킹코스:  낙성대역 ▶ 낙성대 ▶ 서울대입구 ▶헬기장 ▶ 삼성산 성지 ▶ 삼성산 성당
4. 이동거리: 약 8km /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 낙성대 3층석탑: 12세기 경에 건립된, 낙성대 3층 석탑을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들. 낙성대 3층석탑은 고려시대 건립된 탑으로

강감찬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한편 석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그래서 석탑은 대개 사찰이나

폐사지에 세워진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낙성대는 사찰이 아니다. 사찰이 아닌 곳에 석탑이 세워진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낙성대 3층 석탑은 강감찬 장군의 위상을 나타내주는 징표가 아닐까?

 

 

 

 

* 강감찬 장군 동상: 작년 여름경에 촬영한 사진임.

 

 

 

 

 

제목: 관악산둘레길 역사트레킹

일시: 2014년 3월 8일 일요일 오후 1시

이동경로: 낙성대역 ▶ 낙성대 ▶ 서울대입구 ▶ 장승마을 ▶ 헬기장 ▶ 삼성산 성지 ▶삼성당 성당

일행: 총 7명. <집밥>에서 모객을 했음.

 

 

 

 

 

 

 

 

 

 

 

 * 단체사진

 

 

 

 

 

 

 

 

* 삼성산: 삼성산 바위턱에 올라 서울대학교를 바라보고 있는 참가자들.

 

 

 

 

* 삼성산: 참가자 한 분이 서울대를 바라보고 있다. sue님이다.

 

 

 

 

* 삼성산 성지: 참가자 한 분이 삼성산 성지(천주교)에 있는 팻말을 촬영하고 있다. 재섭님이다. 

 

 

 

* 삼성산 성지

 

 

 

 

* 삼성산 숲길: 아직은 황량하지만 이제 곧 짙은 녹음으로 울창한 수림을 이룰 것이다. 왼쪽에 있는 나무들은 메타세쿼이어다. 메타세쿼이어들이 울창해질 때 다시 한 번 이 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 삼성산 성지: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분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사전 답사때 촬영한 사진이다.

 

 

 

 

 

* 트레킹: 관악산둘레길 역사트레킹에 참석한 참가자 분들. 발걸음들이 가볍다. 한가지 안타까웠던 건 아직은

겨울산의 자취가 남아 있어 녹음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꽃도 피고, 새싹도 파릇파릇하면 시각적으로도 훨씬 더 풍성하게 트레킹을 할 수 있을 듯싶다. 

 

 

 

 

* 메타세쿼이어: 관악산에도 저런 울창한 수림이 있다. 이 사진은 2012년 5월에 찍은 사진이다.

 

 

 

 

 

 

 

 

 

농촌체험, 아이들은 이미 놀 준비가 돼 있다

아산 외암마을에서 행한 평가단 활동

 

14.03.03 14:02    최종 업데이트 14.03.03 17:53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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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암마을 설화산과 어우러진 초가집. 사진 중간 하단에 있는 누렁바둑이는 외암마을의 감시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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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암마을 외암마을은 설화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을 마을 안쪽으로 끌어왔다. 그렇게 끌어들인 물은 연못이나 빨래터로 사용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진은 물래방아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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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뒤에 서 있는 설화(雪華)산 때문일까? 예안 이씨의 집성촌인 충남 아산, 외암마을의 첫 느낌은 '잘 생겼다'였다. 설화산이 외암마을을 든든하게 감싸주고 있는 모습은 풍수지리에 '풍'자도 모르는 사람도 이곳이 명당 마을이라는 걸 직감하게 될 것이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여행객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을 정도로 이곳은 산과 들판, 그리고 마을이 서로 '잘 생기게' 어우러진 곳이다. 어쩌면 역마살이 붙은 '노마드'들도 이 마을의 풍광을 보고 있노라면 고향생각에 젖어들어 수구초심(首丘初心)에 빠질지 모른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인 이 아늑한 마을을, 여행이 아닌 '비즈니스' 차원에서 방문했다고 하면 엇박자가 날 수도 있다. 이곳은 패스트푸드보다는 누룽지를 박박 긁어 먹고 싶은, 그런 느긋한 곳인데 업무 특성에 맞춰 날카로운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면 무척 피곤한 일이 될 테니까.

 

 



농어촌 체험학습의 검열관(?)

지난 2월 20일, 필자는 농어촌공사가 주관하는 농촌체험학습평가단의 일원으로 외암마을 방문했다. 농촌체험학습의 주요 고객은 초등학생들이라 초등학교 교사들의 평가가 중시된다. 하지만 제3자적인 시각도 필요하기에 필자와 같은 여행프리랜서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한편 평가를 수행한 교사분들의 자제들도 외암마을에 동행했는데 필자는 이 녀석들이 하는 행동들을 주시하며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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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암마을 연자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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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본업은 역사트레킹이지만 평소부터 농어촌 체험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업무라는 꼬리표(?)를 달고 외암 마을을 방문하니 후더분한 눈빛보다는 검열관과 같은 날카로운 눈매를 지녀야 했다. 한 박자 쉬어 가고 싶은 민속마을에서 검열관과 같은 냉철한 태도를 지녀야 했으니 무척 곤란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업무는 업무다. 밥벌이는 해야지. 그래서 농어촌 체험학습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평가 요인들을 제시해본다.

 


1. 활동성
2. 결과물의 생성
3. 흥미성
4. 학습성

 


여기에 나열된 항목들은 체험학습의 참관 혹은 도우미로 참여했던 필자의 경험과 여타 다른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다. 각 항목별로 서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체험학습이 위에 제시된 요인들을 다 포함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김치 담그기 같은 체험은 귀가할 때 자신이 담근 김치를 포장해 가지만 투호나 널뛰기 같은 전통놀이 체험은 결과물이 생성되지 않는다. 그저 놀이 참여자체가 무형의 결과물인 것이다.

활동성은 참가자 개개인이 체험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앞 줄에 있는 몇 명만 행위에 참여를 하면 뒤에 선 아이들은 딴짓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는 안 된다. 뒷줄에 있는 아이들도 참여를 하러 왔지 뒷짐 지고 있으려고 농촌에 온 건 아니니까.

결과물의 생성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달걀꾸러미를 만드는 짚풀공예 체험에 참여한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집으로 가져와 가족들에게 자랑을 할 것이다. 그럼 가족들은 칭찬을 할 것이고, 아이는 더욱더 성취감을 강화할 수 있다. 물론 달걀꾸러미를 엉망으로 만들면, 반대로 가족들에게 면박을 당할 수 있지만.

흥미성은 가장 중요한 요인일지 모른다. 고리타분한 체험활동을 교실 밖에서까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신나는 일이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해당 체험에 빠져 들어가기에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성을 돋우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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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암마을 외암마을 참판댁. 참판을 지낸 이정렬에게 조선 고종이 사액한 고택이다. 외암마을 참판댁은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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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평가를 내렸나?

그럼 필자는 외암마을에서 어떤 체험활동을 했고, 어떤 평가를 내렸나? 필자는 '냅킨을 이용한 핸드폰가방 만들기'와 '손두부 만들기'를 직접 체험했고, 그에 대한 평가를 했다. 냅킨에 그려진 캐릭터들을 잘라, 풀로 손가방에 붙이는 것이 핸드폰가방 만들기 체험이었다. 학창시절의 공작시간이 연상된 순간이었다. 손재주 없다고 무척 면박을 당했던 아픔도 떠올랐던 시간이었다.

손두부 만들기는 단골로 등장하는 체험활동 중에 하나다. 맷돌만 여러개 준비되어 있다면 손쉽게 아이들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활동이다. 실제로 동행한 초등학생 아이들은 어처구니(맷돌 손잡이)를 돌리며 신나했다. 아이들에게는 어처구니를 돌리는 일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돌린 맷돌 사이로 흘러나온 흰 비지가 흘러나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떤 녀석은 맷돌을 돌리며 손으로 비지를 찍어 먹기도 했다.

그렇다면 필자는 어떤 평가를 내렸나? 솔직히 위에 언급된 체험학습들은 도시에서도 할 수 있다. 외암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체험은 아닌 것이다. 이야기를 확장해 보자. 다른 마을의 체험학습 리스트들을 보면 중복되는 활동들을 여러 개 발견할 수 있다. 깍두기 만들기, 한지공예, 김치 담그기 등 마치 우리나라 어느 관광지를 가도 똑같은 기념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 체험학습 시장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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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암마을 외암마을의 참판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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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스타일'과 '내고향 6시'

그럼 필자는 검열관과 같은 날카로운 눈매로 낙제점을 주었는가? 아니다. 후한 점수를 주었다. 필자는 아이들이 대도시를 벗어나 흙과 전통문화에 접할 수 있는 것 자체를 중시한다. 점점 더 벌어지는 도시와 농어촌의 간극을, 미흡하지만 이런 체험활동을 통해서라도 채워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1만 1천 킬로가 떨어진 뉴욕의 일상은 '뉴요커 스타일'로 끊임없이 소비되지만, 불과 고속버스로 2~3시간 걸리는 우리 농어촌의 일상은 '내고향 6시' 정도로만 편성될 뿐이다. 도시인들에게는 오히려 우리의 농어촌보다 미국 대도시의 사람들과 더 많이 닮아 있을지 모른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고, 타블릿PC로 자료를 검색하고, 보안카드를 찍고 사무실로 출근하고... 이번 체험에 동행했던 초등학생 아이들의 부모 세대, 즉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지금의 30~40대들도 리스트에 나열된 체험활동 리스트들이 익숙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그들이 짚신을 잘 만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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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부만들기 아이들은 어처구니를 열심히 돌리며 두부를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고 노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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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 준비가 되어있다!

체험활동에 참가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놀 준비가 되어있다!'

접착제를 붙인 듯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스마트폰을 뒤로 하고 열심히 체험활동에 빠져든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런 말들이 읽혀졌다. 

필자가 부족하지만 농어촌체험학습을 옹호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해당마을의 재방문율이 바로 그것이다. 학교에서 체험활동을 한 아이들이 가정으로 돌아가 해당마을에 대해 입소문을 내면, 부모들은 아이 손을 붙잡고 그 마을을 방문하여 숙박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1박을 하며 체험활동의 여운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재방문율의 증가는 농촌 소득증대에도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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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가방 필자가 만든 핸드폰 가방. 나름대로 수작이라고 자평해본다. 독자들의 후덕한 평가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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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은 여러번 방문해도 좋다. 앞서 언급했듯이 설화산이 잘 품어주고 있는 이 민속마을은 정겨움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초가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아이들보다 아빠가 더 신날지 모른다. 느긋하게 초가집에서 1박을 한 후, 아이들과 함께 외암마을의 자랑인 돌담길을 따라 동네 한바퀴를 산책한다면 상쾌함이 더할 것이다.

필자도 외암마을을 재방문을 할 생각이다. 그때는 날카로운 검열관의 눈매가 아닌 '수구초심'의 감흥에 젖어 있는 눈으로 이 민속마을 곳곳을 탐방할 생각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설화산에도 올라 풍수지리적인 시각으로 외암마을을 바라볼 생각이다. 그러려면 풍수지리 책도 몇 권 보고 가야겠지. 그럼 풍수지리 체험학습이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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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길 돌담길은 외암마을의 또다른 자랑거리이다. 전통가옥과 어우러진 돌담은 산책의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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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외암마을은 아산시내에서 약 7km 정도 떨어져 있다.


2. 교통편: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아산행 고속버스 이용(약 1시 30분 소요 / 배차간격 30분) ▶ 강당골행 시내버스 탑승(약 40분 소요 / 배차간격 40분)

 
3. 입장시간: 9시~17시 30분(동절기: 17시)


4. 문의전화: 041) 541-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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