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녀원 알베르게: 성탄절 이브에 미사를 함께 보고, 작은 파티를 함께 즐겼다. 저기서 한국말로 '징글벨'을 불렀다. 그렇게 부르는데 이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것이다. 징글벨이 한국 노래가 아니었나?ㅋ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Carrion de los condes에 있는 Iglesia de Santa María del Camino 성당

 

 

 

 

* 2023년 12월 24일 일요일: 11일차 / 안개

- Carrion de los condes 알베르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루시아님은 여기서 약 30km 떨어진 Moratinos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난 여기서 Leon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 새벽 시간이었다. 속이 매시꺼우면서 울렁거렸다. 위장약을 꺼내 먹고 누웠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어 다시 소화제를 먹고 누웠다. 그래도 울렁거림은 여전했다. 화장실을 갔더니 구토 증상이 있어 크게 카~악을 했다.

- 솔직히 저녁에 뭐를 크게 잘못 먹은게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 순례길 걷기는 여기까지... 라는 하늘의 계시인거 같았다. 구토를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뱃속에서 가스가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용트림 같은 카~악으로 뱃속이 편해지다니... 그것도 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용인가?ㅋ

- 새벽 6시 30분 경이었다. 루시아님은 Moratinos를 가기 위해 서둘러 움직이고 있었다. 루시아님과 더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제 난 스페인 버스 여행을 해야 한다.

- Carrion de los condes 도착했을 때 분명 레온(Leon) 가는 버스가 있다는 걸 봤다. 그런데 이날은 없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배차가 있는게 아니고,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있는 거다. 더군다나 이날이 성탄절 전날이 아닌가! 당연히 버스가 없는 것이다. 알고보니 버스는 26일 화요일에 있다고 했다.

- 별 수 없었다. 나아갈 수도 없고, 그냥 수녀원 알베르게에 머무를 수밖에... 성탄절 주간을 이곳 수녀원 알베르게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오후 8시에 인근 성당에서 성탄 미사가 있어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참가를 했다. 사찰만큼이나 성당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 미사가 끝난 후에 알베르게에서 수녀님들이 작은 파티를 열어주셨다. 수녀님들이 '코리안 캐롤'을 부르라고 해서 '징글벨'을 한국말로 불렀다. 어쨌든 함께 박수를 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수녀님이 따라주신 샴페인도 맛났다.

- 이렇게 타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서로 격려해주고, 보듬어주고... 각박한 우리 삶에 한 박자 쉼표같은 것들이 있기에 우리는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이다.

 

 

 

* Iglesia de Santa María del Camino 성당의 내부

 

 

 

 

 

* 2023년 12월 25일 월요일: 12일차 / 안개

- 크리스마스 당일이라 레온 가는 버스가 없었다. 그래도 바르(bar)는 열렸다. 성탄절에 바르가 열려 무척 고마웠음.

- 크리스마스였음에도 순례자들은 계속 Carrion de los condes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그 중에서 커피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 청년이 있었는데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칼디커피'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그 청년은 고향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 프랑스 리옹 출신 순례자가 있었는데 이 친구가 요리사란다. 이 요리사 순례자가 만들어준 파스타를 맛있게 먹었다. 알베르게에서 프랑스 출신 셰프가 해주는 요리를 먹다니! 이 알베르게에서는 좋은 일들만 계속 일어났다.

- 나를 제외하고 총 5명의 순례객이 있었는데 이들은 프랑스 4명, 스위스 1명이었다. 이들이 한국인 순례객을 좀 꺼려한다는 말을 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난 한국인들을 변호했다. 영어나 스페인어가 안 되니 그런 거다.

 

 

 

* 프랑스 아재: 순례길 마니아인 그의 크레덴셜. 이 프랑스 아재는 순례길만 수십 차례 완주했을 정도로 순례길 마니아였다.

 

 

 

* 셰프: 프랑스 리옹 출신 셰프. 세프가 해주는 요리라서 그런지 맛이 달랐다. 싹싹~ 긁어먹었다.

 

 

 

 

 

 

 

* 순례길 표식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안개낀 순례길: 메세타평원 구간은 안개가 자주 낀다.

 

 

 

 

 

* 2023년 12월 22일 금요일: 9일차 / 안개

- 이날의 목적지는 프로미스타(Fromista)로 약 26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아침부터 안개가 너무 짙게 끼였다. Castrojeriz를 벗어나 언덕돌탑으로 올라갔을 때도 주위가 다 안개였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메세타 평원의 풍광이 무척 인상적이고, 광활한데... 그걸 이번에는 못 보고 간다.

-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공립 알베르게도 문을 닫을 정도였다. 그래서 같은 순례자인 루시아님은 틈만나면 알베르게 검색을 했다. 걷는 것도 버거운데 알베르게 오픈 여부를 계속 체크한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부지런한 루시아님 덕분에 프로미스타에 있는 betania 알베르게에 손쉽게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 betania 알베르게는 가정집을 개조한 사설 알베르게로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이곳은 2019년 때에도 묵은 적이 있었다.

 

 

* 안개와 나무

 

 

 

*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10일차 / 맑음

- 계속 언급한 것처럼 겨울 카미노는 알베르게 잡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꾸준히 알베르게 업데이트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계속 그 작업을 루시아님이 해주셨다. 길을 걷는 것도 어려운데 객식구(?)의 예약일까지 도맡은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한결 수월하게 순례길을 걸을 수 있었다.

- 이날은 Calzadilla de la cueza까지 가려고 했다. 프로미스타에서 Calzadilla de la cueza까지는 약 35km 정도인데 이렇게 이 구간을 치고 가면 이후 일정이 손쉽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나를 제외한 다른 순례자들의 일정이다. 난 프로미스타 이후로는 보너스 개념이기 때문이다.

- 사정이 생겨 카리온(Carrion de los condes)까지만 가기로 했다. 원래 가기로 했던 곳의 숙소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카리온까지만 갔는데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까지는 약 18km 정도 떨어져 있다. 오전 내내 거의 안 쉬고 왔는데 중간에 바르가 다 문을 닫은 것이다. 성탄절 주간은 알베르게는커녕 바르도 문 여는 곳이 많지 않다.

- 전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프로미스타 - 카리온 구간은 재미가 없다. 차도 옆에 길을 걸어서 그렇다. 차 소리도 별로고, 매연도 싫다. 그래서 이 구간은 사진도 별로 안 찍고 열심히 걷기만 했다.

- 카리온(Carrion de los condes)에 있는 espiritu santo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했음. 이곳 espiritu santo 알베르게는 수녀원에서 운영을 하는데 전에도 2번이나 와서 숙박을 했음. 지금이 3번째인데 3번 모두 좋았음. 시설도 좋고, 관리하시는 분도 좋고... 모든게 다 만족스러웠음. 원래 일정대로 가지는 못했지만 이 수녀원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할 수 있어서 아쉬움을 좀 덜어낼 수 있었음.

- 광장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음. 이후 루시아님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음.

 

 

* 카리온(Carrion de los condes)

 

 

 

* 프로미스타(Fromista) 가는길

 

 

 

 

* 프로미스타(Fromista)

 

 

 

 

 

 

* 팜플로냐대평원: 대평원에서 바라본 주변 모습. 멀리 보이는 산에 눈이 쌓였다. 피레네 산맥 줄기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팜플로냐요새: 산티아고 순례길 바로 옆에 있다. 하지만 걷는데 바뻐서 그러는지 순례자들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 2023년 12월 16일 토요일: 3일차 / 맑음

- 스페인에 몇 번 와봤다고 여유가 있었다. 이러다가 된통 당하는 것인데 말이다. 실제로 당했다. 양 발바닥에 왕물집이 생기고, 야간트레킹에 내몰리고, 급기야 노숙까지!

- 전날 팜플로냐에서 트레킹화를 구매해서 새로 신었다고 했다. 도보여행 와중에 신발을 갈아신는 건 참 위험한 일인데 그 짓을 내가 한 것이다. 결국에는 왕물집이 양발에 제대로 잡힌 것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강렬함(?)이었다!

- 이날 일정은 pamplona를 출발해서 puente la reina-gares에 도착하는 코스다. 약 27km를 이동하는 코스니 좀 부지런히 이동을 해야했다. 하지만 팜플로냐요새(ciudadela de pamplona)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순례길 바로 옆에 위치한 문화유산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 팜플로냐요새는 버스터미널 인근에 있었다. 전날 어두운 새벽에 어렴풋이 봤던게 바로 팜플로냐요새였던 것이다. 어두울 때 보는 것과 밝을 때 보는거랑은 꽤 차이가 컸다.

- 팜플로냐요새는 당시 Navarre의 수도였던 팜플로냐의 외곽을 수비하기 위해 1500~1600년대에 만들어졌다. 요새는 통상적으로 fortress로 많이 표현하는데 보시다시피 팜플로냐 요새는 ciudadela로 기재한다. citadel이라고도 불리는 ciudadela는 도시, 특히 도시와 인접해 있는 요새를 말한다. 팜플로냐에서 동쪽으로 약 120킬로 정도를 가면 하카(Jaca)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도 Ciudadela de Jaca라는 유명한 요새가 있다.

- 팜플로냐요새를 지나 본격적으로 트레킹에 나섰다. 드넓게 펼쳐진 팜플로냐 대평원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다시봐도 좋은 팜플로냐 대평원이었다.

- 트레킹 첫날이라 배낭 무게가 버거웠다. 인천공항에서 약 16kg로 체크됐고, 거기에 생수가 더해지니 약 17kg 정도가 된 것이다. 배낭 무게에다 신발도 길들여지지 않아서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후에 왕물집으로 발전하더라.

- 이날 목표지점은 puente la reina-gares였다. 시작점인 팜플로냐 알베르게에서 puente la reina-gares까지는 약 27km 정도가 된다. puente la reina-gares에는 로마시대에 건설된 멋진 돌다리가 있는 곳이다. 팜플로냐 대평원을 넘어야 하니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하지만 이전에 두 번 넘어봤다고 만만하게 봤다. 해는 이미 넘어갔고, 다리는 아파왔다.

- 느그적거렸더니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puente la reina-gares에 도착하니 이미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좀 불안했다. 알베르게가 닫은게 아니야? 그랬다. 공립 알베르게가 아예 닫혀있었다. 그래서 전에 묵었던 사설 알베르게로 갔다. 역시 문이 닫혔다. 호스텔도, 호텔도 다 문을 닫았다. 이걸 어쩌나? 첫날부터 노숙을 해야할 판이었다.

- 당혹스러웠다. 실질적으로 첫 날인데 첫날부터 왜 이러냐? 어차피 노숙할 거 밤길을 헤치며 약 7km 정도를 더 이동했다. 로마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면 로맨틱할 거 같았다. 하지만 새벽 강바람이 얼마나 춥겠나! 그렇게 해서 cirauqui라는 곳에 도착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마을 초입에 노숙하기 좋은 썩 괜찮은 벤치가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세팅하고 누웠다. 공항에서 배낭을 넣으려고 김장봉투를 하나 준비해서 왔는데 기가 막히게 잘 써먹었다.

- 4년 만에 다시 순례길에서 노숙을 했다. 핫팩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침낭 안에 핫팩을 넣으니 발쪽이 덜 시려웠다. 핫팩이라도 없었으면 정말 추웠을 거다.

- 스페인의 밤하늘은 참 별이 많았다. 노숙을 하며 별도 헤아려봤다. 그렇게 순례길의 첫날이 종료됐다. 아이고 추워라!

 

 

 

* 팜플로냐요새: 별 모양을 한 기본 성채에다 방어력을 더 증강시키려고 성벽을 더 두른 모습이다. 겹성 형태를 띄는 것이다.

 

 

 

* 팜플로냐요새: 전시되어 있는 대포

 

 

 

 

 

*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4일차 / 맑음

- 역시 겨울철 노숙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장봉투에 핫팩까지 있다고 하더라도 겨울 노숙은 겨울 노숙이다. 그래도 바스크 지역의 수많은 별빛들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어서 눈이 호강했다. 하긴 추워도 코 골면서 잔 거 같다.

-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8시쯤 떴다. 굳이 빨리 일어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밝아졌을 때 침낭 정리를 했다.

- 잠을 잤어도 충분하지 않았고, 왕물집도 생겨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더이상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버스를 타고 estella(에스텔라)로 점핑하기로 했음.

- 알베르게 문이 닫혀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cirauqui에서 estella행 버스를 탔다. 요금이 2.5유로였고, 버스 기사에게 직접 돈을 건냈다. 오전 10시 40분경 버스였다.

- 에스텔라까지는 약 20분도 안 걸렸다. 2018년애 묵은 알베르게, 즉 공립 알베르게에 묵으려고 했는데... 공립 알베르게는 열리지 않았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그래서 결국 2019년에 묵었던 albergue hosteria de curtidores로 갔다. 처음부터 이리고 올 걸 그랬다. 사설 알베르게라 그런지 시설이 양호했다.

 

 

 

* 팜플로냐 jesus y maria albergue: 공립 알베르게치고는 상당히 시설이 좋다.

 

 

 

 

* 팜플로냐대평원

 

 

 

 

* 팜플로냐대평원 바람의 언덕에서

 

 

 

 

* 노숙하기 좋은 cirauqu라는 동네의 벤치

 

 

 

* puente la reina-gares에 있는 로마다리 

 

 

 

 

* 팜플로냐 도시성벽: 4개의 큰 홈은 대포가 거취되는 곳이다. 가운데 종처럼 생긴 공간은 초소다.

 

 

 

 

☞ 지난 2023년 12월 14일부터 2024년 1월 26일까지 스페인과 튀르키예를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크게 3단계로 나눠서 했는데 1단계는 산티아고 순례길, 2단계는 스페인 도시여행, 3단계는 튀르키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여행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포스팅들은 그 여행일지 노트를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여행일지를 중심에 두고 작성된 포스팅이라 그렇게 재미진 포스팅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여행일지를 객관화 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더 나아가 모두의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 인천공항

 

 

 

 

* 2023년 12월 14일 목요일: 1일차 / 서울 비

- 비행기가 12시 55분발이라 아침까지 컴퓨터 작업을 하고 집을 나섰다. 미리미리했어야 했는데... 하다보니 일이 많아져 시간에 쫒기는 형편이 됐음. 이러다 비행기를 못 타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오전을 분주하게 보냈음.

- 부모님께 인사하고 나오는데 비가 오고 있었음. 마드리드는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 약3년 만에 비행기를 타게 됐음. 정말 오랜만임. 신형 B-787 드림라이너를 탔음.

- 사실 전날 밤을 세우고, 작업까지 해서 몸이 무척 피곤했음. 그래서 나름대로 비행기에서 잘 잤음. 코 골고 잤나? 그렇게 자서 그런지 시차 적응에 어려움이 없었음.

- 인천공항에서 약 20분 정도 연착해서 그런지 마드리드 공항에 예상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했음. 서울은 비가 내렸지만 마드리드는 비가 오지 않았음. 4번째 스페인 여행이 시작됐음.

- 새벽 1시 15분발 심야버스를 타려고 마드리드 터미널4(T4)로 이동했음. 근데 이 버스가 팜플로냐(Pamplona)로 직접 가지 않아 중간에 Soria라는 곳에서 환승을 해야함. 한 새벽에 낯선 동네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음.

-T4 버스터미널에서 식사할 곳이 없어 첫 끼니부터 샌드위치로 떼웠음. 궁시렁대면서도 맛나게 먹었었음.

 

 

*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터미널4에서 심야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배낭 무게가 대충 17kg 정도였음. 하지만 계속 줄어들었음.

 

 

 

 

 

* 2023년 12월 15일 금요일: 2일차 / 맑음(팜플로냐 비 온 뒤 갬)

- 새벽 1시 15분에 마드리드발 소리아(soria)행 버스에 탑승함. 이후 소리아에서 팜플로냐(pamplona)행 버스로 환승함. 피곤해서 그랬는지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았음. 대신 비행기에서도 버스에서도 계속 앉아 있다보니 허리가 눌리는 느낌이었음.

-팜플로냐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오전 7시가 안 되는 시각이었음. 문을 연 바르(bar)가 있어 오랜만에 cafe con leche와 함께 빵을 먹었음. 역시 스페인은 커피와 빵이 맛남. bar를 스페인어에서는 '바'라고 하지 않고, '바르'라고 읽음. animal(동물) 같은 경우도 '애니멀'이 아니라 '아니말'로 읽음. 영어와 스페인어는 좀 다르다. 카페콘레체(cafe con leche)는 카페라떼를 말함. 레체(leche)가 우유를 뜻한다.

- 순례길을 걸으려면 순례자여권이 필요함. 그래서 팜플로냐 대성당 인근에 있는 알베르게 albergue Jesus y Maria에 갔음. 이곳에서는 순례자여권도 발급받고, 1박도 할 것임. 그런데 12시에 문을 연다고 했음.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의 숙소를 말함.

- 이렇게 된 거 팜플로냐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음. 나름대로 팜플로냐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 우연히 fortin o medialuna de san bartolome라는 작은 요새를 탐방했다. 이곳은 작은 정원이 딸려있었는데 순례길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었다. 유명한 팜플로냐 요새(ciuadadela de pamplona)나 팜플로냐 구시가지 성벽하고도 다른 곳이었다.

- fortin o medialuna de san bartolom 옆쪽으로 작은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나무조각 같은 조형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안내판을 봤더니 스페인내전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조형물이었다. 얼핏봤을 때는 낙엽이 떨어져 있고 해서 그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신발끈을 묶으려고 했는데... 그랬으면 큰일날 뻔 했다.

- 이번에 처음 알게된 명소가 하나 더 있다. monument to the fueros라는 기념비이다. 이 길쭉한 조형물은 1893년 나바로의 푸에로법을 수호하기 위한 걸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monument to the fueros는 유명한 카스티요 광장(plaza del castillo)에서 불과 200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카스티요 광장은 예전에도 몇 번 둘러봐서 익숙한 장소다. 이곳에는 헤밍웨이가 맛집 탐방하듯 자주 들르던 식당도 있다. 익숙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인근에 중요한 기념탑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이걸 두고 등잔밑이 어둡다라고 말하는 것이겠지.

- 이미 두 번이나 팜플로냐에 왔으면서 이런 조형물의 존재자체도 몰랐다니! 아무래도 순례길만 허겁지겁 걷느라 그랬던 거 같다. 오늘은 몇 킬로를 걸어야 하나, 오늘은 어느 알베르게에서 자야 하나... 뭐 이런 고민들 때문에 다른 곳에 눈길을 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솔직히 예전에는 이런 기념물들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 무슨 속도 경쟁하듯 너무 열심히 걸었던 거 같다.

-전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팜플로냐 도시성벽(city wall)도 자세히 둘러봤다. 도시성벽(city wall)은 앞서 언급한 팜플로냐 요새(ciuadadela de pamplona)와는 좀 다르다. 성벽 사진을 찍다가 보니 귀엽게(?) 생긴 초소가 눈에 들어온다. 초소를 영어로는 sentry box, 스페인어로는 garita라고 부른다. 스페인은 워낙 성이 많은 곳이라 다양한 모습의 초소(garita)의 모습이 존재한다. 그중 팜플로냐 시티월의 초소 모습은 꽤 잘 생긴(?) 편에 속한다.

- albergue Jesus y Maria에 도착해 크레덴셜과 1박 숙박비를 지불했다. 크레덴셜 2유로, 1박 숙박 11유로. 숙박비가 좀 오른 거 같다. 3년 전에는 8유로였던 거 같은데...

- 샤워를 하고 누가 남기고간 즉석 해물스파게티를 데워 먹었다. 침대에 누우니 딱 좋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1층에서 묵었는데... 이제는 침대를 다 제거해서 1층은 빈 공간으로 남겨놨다. 왜지?

- 그런데 강력한 발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누구야? 너야? 도대체 누구 발냄새야! 내 발냄새였다. 알베르게에 나 혼자밖에 없었으니까...ㅋ 아무래도 신발에 물이 들어와서 그런거 같다. 하긴 오래신긴 했지. 고민 끝에 새 신발을 구매하기로 했다. 마침 데카트론 매장이 가까이에 있었다. 카스티요 광장에서 5분 정도의 거리였다. 어차피 바꿀 신발이었으니 과감히 바꾸기로 했다. 약 70유로.

- 이 선택 때문에 이 여행은 아주 큰 격변을 겪게 된다. 순간의 선택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도보여행 중에 신발을 바꾸는게 아닌데... 그런 기본중의 기본을 무시한 댓가가 아주 혹독했다!

- 성탄절 주간이라 그런지 팜플로냐 대성당에서 행사가 있었다. 무슨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의식이었는데 거리행진도 하고 그랬다. 하루 사이에 팜플로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거 같다. 팜플로냐의 속살을 봤다고 해야 하나?

 

 

* 스페인내전 조형물: memorial de los centros de detención이 공식 명칭이다. 직역하면 '시내 구금자들의 추모' 로 읽힐 수 있다. detención은 스페인어로 구금, 체포를 뜻한다. 이 조형물은 구글 지도에서도 검색이 안 된다.

 

 

 

* fortin o medialuna de san bartolome

 

 

 

* 팜플로냐 도시성벽: 방어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겹겹이 쌓은, 겹성 형태를 띄고 있다.

 

 

 

* 소몰이축제 조형물: 팜플로냐는 바스크 지역에 속한다. 이곳에서는 투우가 아닌 소몰이 축제가 열린다. 왜 그 순한 소를 화나게 하는지...

 

 

* monument to the fueros: 좀 어둡게 나왔다.

 

 

* 초소: 귀엽게 생겼다. 선물 가게 같기도 하다. 내가 군대 있을 때 들락거렸던 초소는 못 생겼었다.

 

 

 

 

KBS 대학 사극 <고려거란전쟁>을 재미나게 보고 있다. 역시 사극은 퓨전 사극이 아니라

정통 사극이다. 퓨전 사극이 젊은 연기자들의 비주얼을 전면으로 드러낸다면 정통 사극은

노련함을 앞세운 중년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력이 돋보인다.

 

강감찬 역으로 최수종이 캐스팅됐다고, 또 수종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최수종이 사극

연기에 진심이기에 캐스팅이 된 게 아닐까?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왜 강감찬 장군 역으로 최수종일까?

거란과의 3차 전쟁에서 거란군을 괴멸에 가까울 정도로 찍어눌렀던 강감찬 장군이었는데...

좀 더 강인한 얼굴을 한 연기자가 강감찬 장군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이를테면 마동석?ㅋ

 

사실 강감찬 장군은 문관 출신이었다. 잠시 역사 시간을 생각해보자! 고려 시대 무관을 뽑는

과거 시험은 후기에나 실시됐다. 강감찬이 활약을 했던 고려 전기에는 문신을 뽑는 과거가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면 왜 문신 출신이면서 최전방에서 군대를 지휘한 것일까? 이렇게 문무를 겸비한 이들을

두고 출장입상(出將入相)이라고 말한다. 나가서는 장수요, 안에서는 재상의 역할을 하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말하는 것이다.

 

강감찬은 출장입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김종서, 권율, 이순신 장군 등도 출장입상형

인재들이다.

 

강감찬 장군은 관악산 낙성대에서 출생을 하셨다. 관악산은 필자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그런 이야기를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10꼭지 '관악산 역사트레킹'편에 담아봤다.

드라마에 편승해서 이런식으로 숟가락을 올리는군~^^

 

 

 

 

 

● 문관 출신 최전방 사령관, 강감찬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거 아세요. 강감찬 장군이 사실은 문신 출신이라는 거요.”

“정말요?”

“더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장군께서 나이 70에 최전방 사령관으로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귀주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둬서 거란 세력을 물리쳤고요.”

“아, 그렇군요!”

 

필자의 설명에 하나같이 참석자들은 놀랬다. <삼국지>의 황충 장군도 아니고, 고희의 나이에 최전방에서 칼을 휘둘렀다는 점이 놀라웠을 것이다. 더구나 상대편은 당시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거란족이 아닌가?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해 보자. 고려는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두고 금수지국(禽獸之國)이라고 칭하며 건국 초부터 강경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거란이 선물로 준 낙타를 굶겨 죽인, 일명 만부교 사건도 발생하게 됐던 것이다.

 

거란은 요나라를 세우고 동북아에서 위세를 떨쳤다. 당시 요나라는 만리장성 부근에서 송나라와 대치를 하게 됐는데 한반도에 있는 고려에 대해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고려가 송나라와 손을 잡고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3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였던 것이다. 강감찬 장군은 3차 침공 때 상원수가 되어 10만 거란군을 격퇴시켰고 그로 인해 고려는 전란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안국사 뜰 안에는 그런 강감찬 장군을 기리는 삼층석탑이 서있다. 상륜부라고 불리는 맨 꼭대기는 무너져 내렸지만 나머지는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잘 버텨내고 있다. 이 탑은 원래 장군의 생가에 있던 것을 안국사가 만들어지면서 현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필자는 계속 ‘강감찬 장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감찬은 문신 출신이었다. 한국사 시간을 곱씹어 보시라. 과거에서 무관을 뽑았던 건 고려 후기 이후였다. 고려 초기 사람이었던 강감찬은 당연히 문관 출신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강감찬은 문·무에 모두 능한 인재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출장입상(出將入相)이라고 하는데 ‘나가서는 장수(將帥)요, 들어와서는 재상(宰相)이라’는 뜻이다.

 

도교에서는 문(文)을 관장하는 별을 문곡성(文曲星)이라고 칭한다. 문(文)이 뛰어난 사람을 두고도 문곡성이라는 말한다. 그런데 강감찬도 문곡성이라고 불렸다. 최전방 사령관이자 문곡성이었던 강감찬!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인헌공 강감찬은 84세에 천수를 누리다 영면하셨다.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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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공영방송 5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라는 명칭에 걸맞게 수준 높은 영상미를 펼쳐보였다. <고려거란전쟁>은 <불멸의 이순신>, <태조 왕건> 등등...

수많은 명품 사극의 뒤를 이를 것인가? 아직은 극 초반이니 좀 두고봐야 할 것이다.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거란과 사이가 나빴다. 발해를 멸망시켰다하여 거란을 짐승으로 나라로 폄하했다. 고려가 건국했을 때 거란에서 선물로 낙타 50마리를 보냈는데 그 낙타를 굶겨죽이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고려거란전쟁>의 초반은 대량원군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 대량원군은 자신의 이모인 천추태후로부터 수많은 위협을 받는다. 하지만 그 위협들을 다 극복한 후 결국 왕으로 등극한다. 그가 바로 고려 8대왕 현종(재위 1010∼1031)이다.

극에도 나오듯이 대량원군은 강제로 승려가 됐는데 신혈사라는 곳에 은거하게 된다. 이 신혈사가 지금의 진관사다.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그 진관사인데 진관 한옥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여행에세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의 11꼭지에는 '진관사 역사트레킹'이 기술되어 있다. 아래는 그 내용의 일부다. 사극 <고려거란전쟁>에 진관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스리슬쩍 숟가락을 올려본다~^^

 

 

 


 

 

 

 ● 기막힌 스토리가 숨어 있는 진관사

수도권 최대의 한옥마을인 은평 한옥마을을 지나 마지막 탐방지인 진관사로 향한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4대 명찰이 있다. 동쪽에 불암사, 남쪽에 삼막사, 북쪽에 승가사. 그럼 서쪽은? 진관사다. 천년 고찰인 진관사(津寬寺)는 고려 현종 때인 1010년에 만들어졌다.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이 직접 창건한 이 절은 진관대사를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태조 왕건의 손자였던 현종, 즉 왕순은 어릴 적에는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왕건의 손녀였던 천추태후로부터 어릴 적부터 박해를 받은 왕순은 한때 강제로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천추태후가 그의 이모가 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당시 얽히고설킨 왕실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같은 왕건의 혈통이자 이모뻘의 천추태후로부터 살해위협까지 받게 된 건 그가 왕위계승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천추태후는 애인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왕으로 등극시킬 셈이었다.

그런 천추태후의 마수가 진관사에까지 뻗치게 됐다. 원래 진관사 자리에는 신혈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진관이라는 승려가 홀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승려가 홀로 거처하는 곳이라 천추태후 입장에서는 무언가 거사를 치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랬다. 천추태후는 신혈사에 자객을 보내 왕순을 죽일 셈이었다. 천추태후의 의도대로 왕순이 자객에 손에 비명횡사를 했다면, 현종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진관사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천추태후의 의도를 눈치 챈 진관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굴을 파서 왕손을 숨기는 기지를 발휘한다. 수미단은 불상을 올려놓는 단을 말한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산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진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왕순은 3년 뒤, 개경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려 8대 왕 현종이다. 현종은 1010년,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진관 대사의 이름을 본 따서 사찰 이름을 지으니 그 사찰이 바로 지금의 진관사다.

조선시대 진관사는 사가독서제로 애용된 곳이다. 사가독서제란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정진하게 만든 제도로 세종시대에 처음 도입되었다. 풍광이 수려하고 계곡이 시원한 진관사라면 학문을 닦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가독서제로 진관사를 다년간 이들은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었다.

진관사는 한국전쟁동안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다. 그래서 지금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의 웅장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관사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는 사찰이다. 진관사 숲길과 계곡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느낌들이 좋아서 발걸음들이 진관사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진관사

 

 

 

 

 

* 화계사

 

 

 

2023년 10월 19일 목요일.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평소 아웃도어 활동을 하지 않는 분이라도 가을에는 단풍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가을은 트레킹하기 딱~인 계절이다.

이날은 롯데문화센터 목요반 강의가 있었다. 코스는 화계사 역사트레킹이었다. 화계사는 북한산 동쪽에 있는 명찰로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구체적인 코스는 이렇다.

화계사 -> 삼성암 -> 빨래골 -> 북한산생태공원

집을 나설 때 가을비가 살짝내렸다. 단풍색을 짙어지게 만드는 가을비였다. 본 화계사 역사트레킹 코스는 딱 2년 만에 다시 행하는 코스였다. 그때도 가을이었다.

2년 만에 다시 간 화계사는 많이 변해있었다. 공사중이던 대웅전은 수리가 끝났고, 최근에 석불상이 하나 생겼다. 그 석불 앞은 화계사의 전경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화계사에는 범종루에 사인비구라는 분이 제작한 범종이 걸려 있다. 사인비구는 조선 중기 시대에 활약한 분인데 종을 잘 만들었다. 이 분이 제작한 종 11개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화계사에는 조선 후기 시대에 만들어진 대웅전과 흥선대원군의 현판이 걸린 명부전이 있다. 그 명부전 안에 있는 시왕상 등의 조형물은 무학대사의 스승 나옹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화계사 자체가 아름다운 곳인데 이렇게 문화재까지 다양하다.

트레킹팀은 이제 삼성암으로 향한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비가 온 뒤라서 흙냄새가 피어오른다. 낙엽과 함께 올라오니 흙냄새가 좀 쌉싸름하게 느껴진다. 약간 흐릿한 커피냄새라고 할까?

삼성암에 도착했다. 삼성암은 나반존자를 모시는 곳으로 3대 나반존자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나반존자는 중국이나 일본 불교에는 나타나지 않고 우리 불교에서만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나반존자는 독성각에서 모신다. 삼성암의 독성각은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 주위가 아름다워 탐방객들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좀 외떨어져 있기에 조용히 기원을 드리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성암 독성각은 기도빨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기가 정말 쎈~ 곳이다. 독성각에서 내려오니 무언가 '운기충천'하는 느낌이다! 좋았어!

트레킹팀은 빨래골을 지나 마지막 코스인 북한산생태숲을 탐방했다. 북한산생태숲은 숲속의 숲이라는 명칭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편의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한 바퀴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다.

북한산생태숲 한바퀴를 끝으로 화계사 역사트레킹은 잘 종료가 됐다. 이날 오신 분들은 내 책,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을 구매하신 분들이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이날도 책 이야기를 많이 했다. 독자들과 만나 트레킹도 하고, 책 이야기도 하고...

트레킹북토크를 한 것이다. 어쩌면 다른 작가들이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ㅋ

ps. 부러워할 거 없다. 책이 잘 안 팔리니까. 제발 손익분기점만이라도...ㅋ

 

 

 

*화계사 전경

 

 

 

* 삼성암

 

 

 

* 삼성암 독성각

 

 

 

 

2023년 10월 2일 월요일.

이날 목적지는 충북 단양. 트레킹 코스를 확정하러 왔다고,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했지만... 

그건 핑계였고 그냥 명절 연휴를 다 집에서 보내기 싫어 배낭을 둘러맸다. 이날 걸은 코스는 이렇다.

단양역 - 단양강잔도 - 시루섬의 기적조형물 - 적성대교 - 단성면 - 고수대교 - 고수동굴

중간에 시골버스로 점핑을 했는데 그걸 뺐는데도 약 20킬로를 걸었다. 다 평지길이라 20킬로가 그리 대단한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긴 했다. 왼쪽 다리 근육이 올라온 것이다. 햄스트링이 재발한 듯하다.

전에 햄스트링 관련해서 병원을 찾았을 때다. 의사가 걷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다른 병원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트레킹 강사가 못 걷는다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뭘 먹고 사나?

현재의 단양 중심가는 신단양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단성면이 중심가였지만 충주댐이 건립된 후 옛 읍내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된다. 이에 단성면에서 중심지를 북쪽으로 6킬로 정도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긴다.

시루섬의 기적 조형물은 최근에 새워졌다고 한다. 유명한 단양강 잔도와 만천하스카이워크에서 약 5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이 조형물은 1972년 단양 일대를 덮친 수해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해 단양지역에 큰 수해가 났는데 주민들이 시루섬 인근에 있던 물탱크에 올라가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무려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13시간 정도를 버텨냈다고 한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속에서 주민들은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재난을 이겨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원 구조는 아니었다. 어떤 여인의 품에 있던 간난 아기가 질식사를 한 것이다. 공간이 너무 협소한데다 아이를 너무 세게 안았던 것이다. 재난 앞에 하나되는 모습! 이게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소양호의 춘천, 양수리의 양평처럼 어찌보면 단양도 물의 도시라고 할만 하다. 물론 행정구역으로는 '시'가 아닌 '군'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양하면 산이나 동굴, 혹은 시멘트를 생각하지 물과 연관 짓지는 않는다. 참고로 단양지역의 남한강은 단양강이라고 부른다. 평창지역의 남한강을 평창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강원도 양양이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는데 충북 단양도 그에 못지 않게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하고 있다. 단양 여행의 장점은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또한 읍내와 가까운 곳에서 트레킹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아웃이 읍내와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지니 버스나 택시 같은 연계교통편을 이용하기에 수월하다. 한마디로 뚜벅이들도 여행하기에 좋다는 것이다.

장시간 걸었더니 다리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눈은 아주 호강을 하고 있었다. 이게 단양 여행의 매력인가?ㅋ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드디어 책이 나왔다. 발간일 2023년 9월 1일.

누구는 자신의 실물 책을 보면서 감격도 하고,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 가서 은근 슬쩍 자신의 책을 중앙으로 옮겨놓기도 한단다. 하지만 필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앓던 이 하나가 빠진 것처럼 좀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원고를 건성으로 작성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동안 책을 많이 냈나?

이 책은 너무 늦게 나왔다. 첫 꼭지를 2013년에 썼으니 10년이나 걸려서 출간이 된 것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초고를 쓴 지가 오래되서 그런지 중간에 상황이 확~ 바껴 다시 작성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해당 부근에 지하철이 개통되면 그거에 맞춰 집합장소와 종결장소가 변경된다. 또한 그에 맞게 코스 자체도 변경된다. 코스가 바뀌니 원고를 재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크게 4번 정도 갈아 엎었다. 재작성 수준의 리라이팅을 4번씩이나 하다보니 나중에는 원고를 검수하는 것조차 신물이 날 정도였다.

사진은 또 어떻고! 시간이 길어지다보니까 사진도 크게 갈이를 해야했다. 탐방 사진이야 패션 사진처럼 유행을 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현재성을 유지해야 하니까.

거기서 거기인 트레킹 원고, 뭐하러 그렇게 갈아넣으며 작성하느냐고,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쓰면서 햄스트링 건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축구 선수나 걸리는 햄스트링을 트레킹하다가 걸린 것이다. 한편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어차피 가족이나 지인들의 주머니를 공략할 게 아닌가?

사실 이 책은 기성 출판사에서 여러번 퇴짜를 맞았다. 처음에는 퇴짜를 맞으니 얼얼했지만 나중에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 어차피 돈도 안 되는 책, 내가 출판사차려서 내가 만들어보자. 잘나도 내 원고, 못나도 내 원고가 아닌가!'

코로나가 한참 맹위를 떨치던 2021년 가을경에 역사트레킹북스라는 1인 출판사를 창간하게 된다. 그때 이미 원고의 90%가 준비되긴 했지만 사정이 있어 2023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편집과 디자인작업이 끝나고 인쇄를 할 시기였는데 약 3주간의 공백이 생겼다. 편집 작업이 끝날 때가 8월 초순이었는데 이 시기에 인쇄소가 휴가 기간이었다. 인쇄업 특성상 휴가를 함께간다는 것이다. 어쨌든 한 번 맥이 끊기니 3주나 지체가 됐다. 역시 땡길때 땡겨야 하는 거다!

예전부터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다.

'나무한테 미안한 짓은 하지 말자!'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면서 저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봤다.

서점과 계약을 하느라 판매 시기가 늦춰졌다. 끝날때까지 계속 늦춰졌다. 어쨌든 이제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같은 서점에서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을 구매할 수 있다. 10년 간의 노고가 이제 결실로 다가와야 하는 시기다. 그러고보니 곧 추석이네~

지금 다시 책을 응시했는데 역시 별 감흥이 없다. 첫 책인데도 그렇다. 그저 무언가 내 몸에서 툭툭 털려나가는 느낌이들 뿐이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허허로운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별 감흥은 없지만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그저 앉아서 쓴 책이 아니다. 두 발로 빚은 책이다. 손은 그저 글씨를 옮겼을 뿐 발로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다.

글에서 발냄새가 나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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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곧 출간을 앞 둔 필자의 책이다. 첫 꼭지를 2013년에 작성했으니 10년 동안 공을 들인 원고다.

물론 초고를 쓴 다음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고 이후 숱하게 수정을 했다. 크게 고친게 5번 정도된다.

뭐 그건 그렇고... 트레킹 책이다보니 지도가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처음에는 멋 모르고 네이버나 구글 지도를 변형해서 사용했다. 하지만 이게 말도 안 되는 행위다. 그냥 블로그에 올리는 정도면 모르겠으나, 출간을 하는 마당에 구글 지도를 변형해서 쓴다면 명백한 저작권 위반이다.

책을 편집해주는 에디터에게 따끔하게 한 소리를 먹었다. 저작권 위반으로 엮이면 아주 골치아파진다고, 저작권 위반 사항이 있는지 스스로도 점검해보라고... 그래서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지도도 저작권 위반 사항이 없는지 계속 게이트키핑(?)을 하고 있다. 뭐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포스팅까지 저작권으로 걸고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해당 지도가 포함된 포스팅이 후원금을 받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올려진 지도들은 직접 수작업으로 그린 것이다. 어느 지역일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대를 그린 것이다.

직접 그리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손도 많이 간다. 하지만 직접 그리니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듯싶었다. 공을 들여 해당 지역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런데 트레킹 책이라면서 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서울학개론이라면서 그 먼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갈 것인가?

트레킹에 대한 어원을 이야기하다보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한 언급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영국과 네덜란드의 후예인 보어인들 간의 전쟁인, 보어전쟁에 대한 내용도 필수로 꼭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임에도 남아공 지도를 필수적으로 그린 것이다.

예전 세계사책들은 지도가 상당히 풍부하게 실려있었다. 하지만 요즘 책들은 예전보다 지도의 내용이나 정밀성에서 많이 떨어진다. 책 내용 자체보다 지도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요즘 세계사책들은 그런 재미가 확실히 반감 됐다.

사실 지도 그리기가 쉽지는 않다. 손이 많이 간다. 디자이너에게 제작의뢰를 하려고 하면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구글이나 네이버 지도를 따 가지고 오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지도들을 그리느라 책작업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늦춰졌다. 하지만 여러장 그리다보니 재밌는게 아닌가?

이참에 수작업 지도 전문가로 나서볼까?^^

ps. 지도 1번은 보어전쟁시기인 1899~1902년 사이의 지도임. 남아공의 왼쪽 위에 있는 나미비아가 독일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ps2. 지도 2번은 현재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그 주변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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