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낙산에 올라서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서울의 좌청룡을 걷다, 낙산 역사트레킹


17.03.29 14:01 최종 업데이트 17.03.29 14:01
 
곽동운(artpunk)             


    

      

▲ 낙산역사트레킹 성북동 부근을 촬영했다. 성북은 성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엄밀히 말해 이곳은 한양도성 북악산 구간이다. 하지만 낙산역사트레킹에서는 이 구간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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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에도 좌청룡·우백호가 있다.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이 풍수지리에 의거해 기획된 도시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좌청룡·우백호가 있고,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일단 우백호는 어디일까? 인왕산이다. 경복궁 옆쪽에 우뚝 서 있는 인왕산이 서울의 우백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 좌청룡은 어디일까? 낙산이다. 혜화동 뒤편에 나지막하게 서 있는 낙산이 바로 서울의 좌청룡인 것이다.



        



▲ 낙산성곽길 흥인지문 옆 쪽에 복원된 성곽길. 흥인지문 옆쪽 구간은 2015년도에 복원됐다. 예전에는 그 자리에 이화여대동대문병원이 들어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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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백호의 위세에 눌린 좌청룡

낙산(駱駝)은 높이가 약 125미터로 키가 작은데 산의 형세가 낙타 등처럼 보인다 하여 낙산 또은 낙타산이라고 불린다. 낙산은 인왕산과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낙산은 좌청룡이기에 우백호인 인왕산과는 필연적으로 '용호상박'을 해야 하는 팔자다. 청룡과 백호의 피할 수 없는 한 판!

'세상을 뒤흔들 세기의 맞대결! 메가톤급 강펀치가 천지를 진동한다. 세상의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청룡과 백호의 물러설 수 없는 한 판! 그 세기의 대결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마감 임박~'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법이다. 저렇게 프로모션을 띄운다고 해도 결과는 뻔하다. 세기의 대결치고 진짜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 거 본 적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 서울의 청룡은 백호에게 게임이 안 된다. 체급부터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낙산은 해발고도가 125미터로 338미터인 인왕산에 비해 키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낙산(동), 인왕산(서), 남산(남), 북악산(북)을 묶어 내사산으로 칭하는데 그 내사산 중에서 낙산이 가장 작다. 참고로 북악산은 342미터이고, 남산은 270미터이다.

해발고도가 낮으니 낙산은 산세도 그리 웅장하지 못하다. 이에 비해 인왕산은 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돌출된 암반면이 소나무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300미터급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고 있다. 



        

▲ 성곽길 성벽과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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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백호보다 기량이 딸리는 좌청룡이었기에 그것을 보완해야 했다. 동쪽에 있는 좌청룡은 남자, 장자를 뜻했다. 이에 비해 서쪽에 있는 우백호는 여자, 차자 등을 뜻했다. 적장자 중심의 왕위계승을 중시했던 조선이었기에 좌청룡에 대한 보완은 분명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무학대사는 인왕산 아래에 궁궐을 짓자고 역설한다. 그리고는 궁궐의 방향을 동쪽인 낙산으로 향하게 하자는 주장을 펼친다. 이것이 인왕산 주산론이다. 하지만 당시의 실권자였던 정도전 세력들은 인왕산 주산론을 반대한다. 궁궐의 방향을 서쪽으로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이 꺾인 무학대사는 이런 말을 남기며 탄식했다고 한다.

"200년 뒤 경복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너희들이 알겠느냐!"

200년 뒤에 조일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경복궁은 잿더미로 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무학대사의 예언이 맞았던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역사트레킹 참가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무학대사 말대로 인왕산 아래에 경복궁이 들어서면 조일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경복궁이 불타지 않았을까요? 풍수지리는 우리민족 정신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상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경도되지는 말자고요. 조상묘를 잘 쓰는 것보다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조상묘 아무리 잘 써도 자기가 노력을 안 하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 성벽 모자이크처럼 올려진 성벽돌. 각 시기마다 축조된 성벽돌이 달라 모자이크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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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의 핵심 김효원이 살았던 낙산

낙산은 야트막한 산세 때문에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었다. 또한 숲길이 우거져 있어 낙산 인근에는 별장들이 많았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었던 인평대군이 지은 석양루(夕陽樓)를 비롯하여 18세기에 활약했던 문인 이심원이 지은 일옹정(一翁亭) 등 많은 별채들이 있었다.

명사들도 많이 살았다. 태종의 외손이었던 남이 장군,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동서분당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김효원도 낙산 기슭에서 살았다. 김효원의 집이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동인이라고 불렀다. 이에 비해 서인의 거두 심의겸의 집은 지금의 덕수궁 근처라 한양의 서쪽에 있었다. 그래서 심의겸을 따르는 이들을 서인이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단종비 정순왕후(定順王后)도 낙산에 은거해 살았다고 한다. 단종이 강원도 영월 땅으로 유배를 떠나고 난 후, 폐서인이 된 정순왕후는 이 산 아래에 있는 청룡사의 승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임을 떠나보냈던 정순왕후는 이 산 동쪽에 있는 동망봉에 올라 매일같이 치성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벽화 이화동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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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정상에 올라서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낙산은 서울의 안쪽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 중에 가장 키가 작다. 그래서인지 한양도성 낙산 구간은 인왕산이나 북악산 구간보다 훨씬 더 걷기 편하다. 인왕산이나 북악산 구간에는 간간이 급경사 구간이 있지만 이에 비해 낙산 구간은 시종일관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선조들에게는 왜소한 좌청룡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성곽길을 탐방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찬사를 받는 것이다.

또한 접근성도 상당히 좋다. 전철역에서 바로 성곽길 트레킹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에서 하차한 후 흥인지문(동대문)을 둘러본 후 성곽길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것이 낙산트레킹의 큰 장점 중에 하나다.

그렇게 성곽길을 타고 올라가다보면 이화동 벽화마을도 만날 수 있다. 벽화마을을 탐방한 후 언덕길을 올라가면 낙산 정상부인 낙산공원에 다다르게 된다. 이 곳에 올라 서면 속이 다 시원해질 정도로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무언가 꽉 막혀 있던 것들이 확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 낙산 성곽길 한양도성 낙산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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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한양도성이 어떤 방식으로 내사산을 연결하여 축조되었는지 찬찬히 따져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손에 다 잡힐 듯 북한산이 아주 가깝게 펼쳐져 있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 등의 동북쪽 봉우리들뿐만 아니라 보현봉이나 형제봉 같은 남쪽의 봉우리들까지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참가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저 북한산 좀 보세요. 위쪽으로는 살짝 도봉산까지 보이죠? 북한산을 한 눈에 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려면 이 낙산만큼 좋은 곳도 없습니다. 낙산이 키가 작아도 이렇게 참 실하지 않습니까?"

성곽길 낙산 구간이 끝날 무렵에는 동소문이라고 불리는 혜화문을 만나게 된다. 혜화문은 일제에 의해 철거됐다, 199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복원됐다.

낙산 역사트레킹은 북악산 성곽길도 걷는다. 그렇게 성북동 인근 북악산 구간을 걷다 와룡공원을 지나고, 북촌의 위쪽에 자리 잡은 삼청공원에서 종료하게 된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떠나기 좋은 계절이 왔다. 하지만 미세먼지니 황사니 하는 것들이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우리가 안 떠날 줄 알고! 떠날 사람은 다 떠난다. 그렇다. 이번 주말 서울의 좌청룡인 낙산으로 떠나보자.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낙산 공원에도 올라보고, 걷기 편한 성곽길도 걸어보자. 시원하게 펼쳐진 북한산을 바라보며 인증샷도 찍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낙산으로 봄소풍을 떠나보는 것이다.




▲ 혜화문 사진 중앙부 상단에 있는 헤화문. 일제에 의해 철거된 후 1994년에 복원됐다. 원래는 사진 하단에 보이는 도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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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 성곽면이 잘려 있다. 도심지의 확장 및 사유지의 확장으로 인해 한양도성 평지 구간은 훼손이 심한 구간이 있다.





◆ 트레킹 참고 사항


1. 교통편: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6번 출구 하차
2. 세부코스: 흥인지문 ▶ 이화동벽화마을 ▶ 낙산공원 ▶ 혜화문 ▶ 와룡공원 ▶ 삼청공원(북촌)
3. 이동거리: 약 8km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cafe.naver.com/trekkingmaster








 









지난 3월 12일 일요일에 행한 관악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후기입니다.


총 9강에 걸쳐 기획된 2017년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의 첫 번째 강의가 관악산에서 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관악산 역사트레킹이 진행된 것입니다.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길인역)은 트레킹을 하며


역사를 배우자는 의미로 개설된 평생교육 카페입니다. 명소를 다니며 트레킹도 하고, 역사와 문화도 배우면


좋잖아요. 요즘처럼 인생 2막, 3막을 준비하는 시대라면 길인역 같은 프로그램은 더욱더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그동안 동장군이 얼마나 얄미우셨습니까?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리는데 그 넘의 동장군이란 넘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그렇게 동장군을 몰아내는 봄기운이 관악산에도 찾아왔습니다. 그 기운을 맞으며 트레킹팀은 관악산을 누볐답니다.


웃고, 즐기고, 이야기하고... 맛나는 거 나눠 먹고.


사진을 보십시오. 얼굴에 모두 다 봄을 품고 있잖아요! 정말 멋지십니다!


길인역 트레킹팀은 강감찬 장군의 생가지인 낙성대, 그 분의 뜻을 기리는 안국사를 탐방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를 거쳐 가톨릭 성지가 있는 삼성산 성지도 답사를 했답니다.


아직 봄꽃들이 머리를 내밀지 않아 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지천으로 봄꽃들을 만나게 될 테지요. 그때 다시 한 번 관악산을 탐방했으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답니다.


하여간 오랜만에 행하는 트레킹이라 정말 즐거웠답니다. 다음에는 더 즐겁고, 더 알차게 트레킹을 해보자고요! 






*** 참고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은 계속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길인역 카페를 방문해주세요!



http://cafe.naver.com/trekkingmaster








 

 






 





 
















 

사진을 보니 다 예술이네요... ^^


봄을 품고 있는 모습들이 다 좋아보입니다. 그런데 제 얼굴은 봄이 아니라 붕 떠보이네요. 그날 잠을 못 자서 그런가? ㅋ









서울에 '기도발' 잘 받는 바위가 있다고?


선바위와 국사당을 품고 있는 인왕산



17.01.26 10:29   최종 업데이트 17.01.26 12:10

곽동운(artpunk)             





    

        

 

▲ 선바위 인왕산 중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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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거대한 암반이 노출된 인왕산은 그 자체가 절경이다. 그래서 옛 선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인왕산에 대한 애정 공세는 오늘날에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성곽길을 탐방하는 도보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왕산을 향하는 발걸음이 모두 성곽길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 성곽길 트레킹이 아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인왕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속인일 수도 있고, 그냥 평범한 일반 시민일 수도 있다. 필자와 같이 역사 트레킹을 즐겨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 그들은 어디를 가서 기원을 드릴까. 대충 아무 곳이나 가서 돗자리 펴고 절을 올리는 것일까.





       

▲ 선바위 누군가 간절히 기원을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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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을 입은 바위?
 
그들이 기원을 드리는 곳은 인왕산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선바위라는 곳이다. 선바위는 높이 7미터, 가로 10미터 정도가 되는 바위로 산 중턱에 불쑥 솟아 있다. 그렇게 바위의 규모가 크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선바위를 한자로 쓰면 '선암(禪岩)'으로 '스님바위'라는 뜻이 된다. 승복을 입은 선승이 참선을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선바위를 자세히 보면 단일 암석이 아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것을 두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영혼이 나란히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게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보니 선바위는 예로부터 아이를 갖기 원하는 이들의 좋은 기도처였다고 한다. 쌍둥이 바위는 다산을 뜻하니까.

거대한 암석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을 두고 거석숭배문화라고 한다. 이 거석숭배문화는 우리 민간신앙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선바위는 이런 거석숭배문화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바로 산악신앙이다.

우리 옛 선인들은 산을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였다. 물이 샘솟고, 과실과 약초들이 산재해 있으며, 연료인 나무들을 채취할 수 있으니 산은 인간에게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산을 마냥 좋은 것만 주는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사나운 맹수들이나 험준한 지형이 항상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 국사당 인왕산 선바위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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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당과 산악신앙
 
그래서 그들은 경이로운 존재이자 두려운 존재인 산을 신격화하여 제사를 드렸다. 산에 사는 신령, 즉 산신령에게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산악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런 산악신앙은 우리 무속신앙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바위 아래에는 국사당(國師堂)이라는 신당이 있다. 이 국사당은 원래 남산에 있던 신당이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395년(태조4), 이성계는 목멱산을 목멱대왕(木覓大王)으로 봉하고 호국의 신으로 삼았다. 그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당이 세워졌는데 이것을 국사당, 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라고 불렀다.

이 목멱신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국가의 공식행사로 제례를 올렸다. 유교중심주의를 표방하며 건국된 조선에서조차도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 국사당






그렇게 목멱대왕을 모셨던 국사당은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 일제가 남산 중턱에 신사를 세웠는데 자기들의 신사 위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것이다. 국사당이 선바위 부근으로 옮겨오게 된 건, 인왕산이 무학대사의 기도처였기 때문이었다. 국사당(國師堂)에서 '국사(國師)'는 무학대사를 뜻한다.

그렇게 아래쪽에 국사당이 자리 잡게 되니 선바위는 거석숭배문화에다 산악신앙까지 더해지게 된다. 선바위에서 기원을 드리는 사람들이 국사당 앞에서도 두 손을 모으게 됐다는 것이다. 









        

▲ 선바위의 뒤태 선바위의 뒷모습.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을 닮았다. 그래서 필자는 선바위를 사오정바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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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와 정도전, 선바위를 두고 맞서다
 
선바위는 한양도성에서 직선거리로 3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두냐 마냐를 두고 무학대사와 정도전 간에 격론이 오갔다. 불교세력을 대변했던 무학대사는 당연히 선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교세력을 대변했던 정도전은 이 스님바위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 선바위가 들어오면 도성 안에 불교가 융성해질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첨예하게 오갔던 격론은 이성계에 의해 결론이 났다. 선바위가 도성 밖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불심이 깊은 이성계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유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인왕산은 그 자체가 매력적인 산이다. 또한 그 안에 선바위와 국사당 같은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잘 간직해온 산이다. 그렇게 매력적인 풍광과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산이 서울 중심가에 '떡'하고 위치해 있는 것이다.







        

▲ 선바위 선바위는 정도전을 위시한 유교세력들에 의해 한양도성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사진에서보듯 선바위는 한양도성과 무척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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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 인왕산에 직접 가서 선바위와 국사당을 탐방하고 오는 건 어떨까. 선바위가 기도발이 잘 받는 곳이라는데 그곳에서 기원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살짝 뒤로 돌아 선바위의 '뒤태'도 살펴보자. 앞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왔던 사오정과 비슷하게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선바위를 '사오정바위'라고 부른다. 

거기에 더해 유명한 수성동 계곡에도 가보자. 수성동계곡에서 바라보는 인왕산은 민낯을 드러낸 것처럼 거대한 암반이 노출된 모습을 하고 있다. 인왕산에 올라 '기도발'도 세워보고, 유명한 수성동 계곡도 탐방하고. 그 아래 서촌에 들러 배도 채우고! 참 서울을 즐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 것 같다.





여행정보

1. 교통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1번 출구 하차. 표지판을 따라 800미터 정도 올라가면 선바위에 도착함.


2. 추천이동경로: 선바위(국사당) ▶ 인왕산 성곽구간 ▶ 수성동계곡 ▶ 서촌
 






 



        

▲ 한양도성 인왕산 구간


















                                                                                                                                                                                            




  * 대서문: 북한산성 대서문





펀딩해서 돈 좀 만지셨수?

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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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펀딩과 함께 했다. 이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 올 한 해 스토리펀딩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323일부터 108일 동안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을 진행했었고, 91일부터는 본 프로젝트인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을 무려 111일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 종료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까지도 난 가끔 이런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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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펀딩을 한 게 잘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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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트레킹이라는 주제는 스토리펀딩에 적합하지 않은 테마일 수 있다. 아무리 앞쪽에 역사혹은 서울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고 하더라도 트레킹이 주는 그 자체의 무게감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공익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독자의 눈가에 감동의 폭포수를 흐르게 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반응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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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다 펀딩질 하며 돈 구걸하네. 너희 놀고먹는 일에 돈까지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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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해들이야 애초부터 감수를 했지만 그래도 막상 그런 반응들을 접하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글을 발행하는 것밖에. 그래서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에서는 17편의 글을 발행했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게으름 때문인지 6편 밖에 작성하지 못했다.

이번 글은 7편째다. 지난 1113일에 행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다.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천년 고찰인 진관사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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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숲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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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스토리가 숨어 있는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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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4대 명찰이 있다. 동쪽에 불암사, 남쪽에 삼막사, 북쪽에 승가사. 그럼 서쪽은? 진관사다.

천년 고찰인 진관사(津寬寺)는 고려 현종 때인 1010년에 만들어졌다.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이 직접 창건한 이 절은 진관대사를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태조 왕건의 손자였던 현종, 즉 왕순은 어릴 적에는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왕건의 손녀였던 천추태후로부터 어릴 적부터 박해를 받은 왕순은 한때 강제로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천추태후가 그의 이모가 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당시 얽히고설킨 왕실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같은 왕건의 혈통이자 이모뻘의 천추태후로부터 살해위협까지 받게 된 건 그가 왕위계승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천추태후는 애인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왕으로 등극시킬 셈이었다.


그런 천추태후의 마수가 진관사에까지 뻗치게 됐다. 원래 진관사 자리에는 신혈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진관이라는 승려가 홀로 수도를 하고 있었다. 승려가 홀로 거처하는 곳이라 천추태후 입장에서는 무언가 거사를 치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랬다. 천추태후는 신혈사에 자객을 보내 왕순을 죽일 셈이었다.

천추태후의 의도대로 왕순이 자객에 손에 비명횡사를 했다면, 현종도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진관사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진관사: 대웅전









천추태후의 의도를 눈치 챈 진관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굴을 파서 왕손을 숨기는 기지를 발휘한다. 수미단은 불상을 올려놓는 단을 말한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의 산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진관에 의해 목숨을 건진 왕순은 3년 뒤, 개경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고려 8대 왕 현종이다. 현종은 1010,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진관 대사의 이름을 본 따서 사찰 이름을 지으니 그 사찰이 바로 지금의 진관사다.

 

조선시대 진관사는 사가독서제로 애용된 곳이다. 사가독서제란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정진하게 만든 제도로 세종시대에 처음 도입되었다. 풍광이 수려하고 계곡이 시원한 진관사라면 학문을 닦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가독서제로 진관사를 다년간 이들은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등이었다.

진관사는 한국전쟁동안 많은 전각들이 소실된다. 그래서 지금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의 웅장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관사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는 사찰이다. 진관사 숲길과 계곡을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느낌들이 좋아서 발걸음들이 진관사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트레킹팀도 그런 좋은 기운을 받으며 다음 코스인 대서문으로 방향을 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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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관사: 아름다운 북한산과 어우러진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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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에서

 

대서문은 북한산성에 있는 14개의 성문 중 서쪽에 있는 성문을 말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는 대동문, 대남문 등과 달리 대서문은 해발고도가 낮아 접근성이 매우 좋다. 북한산둘레길 코스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거리가 가까워, 둘레길과 묶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트레킹팀이 그렇게 탐방을 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북한산성은 1711(숙종37)에 축조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북한산에는 산성이 존재했었다. 백제시대에는 위례성의 북쪽 방어성으로 산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후 본격적인 삼국 항쟁시기에는 북한산을 두고 각국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그 항쟁의 증거 중에 하나인 진흥왕 순수비가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있다. 정확히는 지금 비봉에 세워진 순수비는 진품이 아니고, 순수비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석이다. 진품은 훼손을 막기 위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로 비봉은 앞서 언급한 진관사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도는 상당히 가파르다. 답사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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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계곡




 

우리 북한산계곡에 와 있습니다. 정말 시원스럽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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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이 시원하게 바라다 보이는 계곡에서 나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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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성벽 구간, 무너진 성벽 구간이 보이시죠? 원래 이 곳에는 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문을 통해서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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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에는 대서문 같은 7개의 대문과 6개의 암문, 그리고 한 개의 수문이 있었다. 이를 두고 북한산성 14성문이라고 말한다. 대문과 암문은 복원이 되고 해서 실재하고 있지만 수문은 소실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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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북한산성은 포곡식 산성입니다. 포곡식이라는 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성이라는 뜻이죠. 성이 만들어지면 음용수 때문에 골치를 썩잖아요. 그런면에서 계곡을 끼고 있는 북한산성은 물 공급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죠.”

진짜 그랬겠네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계곡이 있다 보니 풍수해에 취약해요. 그래서 저 앞에 수문이 떠내려가 버렸잖아요.”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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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성 수문터: 북한산성 수문은 북한산계곡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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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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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이 수려한 북한산계곡 탐방을 끝으로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더불어 후원자들과 5번에 걸쳐 함께한 리워드 트레킹도 무사히 종료가 됐다.


이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도 마칠 때가 됐다.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2016년 한 해는 펀딩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프로젝트들과 달리 리워드를 트레킹 초대형식으로 제공했다. 에코백이나 머그컵 같은 것을 드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잘하는 것을 리워드로 제시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5번에 걸쳐 직접 후원자들과 만나 트레킹을 행했었다. 내 리딩 방식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중에는 중복 참여를 하신 분들도 여럿 계셨다. 어떤 분은 5번 다 참가를 해주시기까지 했다. 내년에도 스토리펀딩에 트레킹 프로젝트를 개설해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다.

글을 끝내기 전에... 누군가 이렇게 물으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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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으로 올 한 해를 때웠다고 하는데... 그래서 돈 좀 만지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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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대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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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려고 펀딩합니까? 그냥 사람들이 좋아서 펀딩한 거지. 어차피 실비 빼면 마이너스에요. 그래도 하는 건 트레킹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거에요. 그런 게 세상사는 맛 아니겠어요? 당신도 기회 되시면 서울트레킹에 참여해보세요. 제가 김밥이랑 물 챙겨 드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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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팀: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원효봉이다.









        * 대서문: 대서문의 여장. 특이하게도 일체형이다.













 * 백사실 계곡: 백사실 계곡에서 한 컷







2016년 11월 5일.


이날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북악산 역사트레킹이 행해진 날입니다.


어제 제가 포스팅 두 개를 연달아 올렸는데 그 두 개는 스토리펀딩의 리워드 트레킹입니다. 오늘 올리는 포스팅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행해진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트레킹 강의를 하고 있잖아요.


간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문화센터 트레킹 강의와 리워드 트레킹 강의가 다르나요?"


아닙니다. 둘 다 차이가 없습니다. 차이라면 코스별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좀 길게 가느냐 좀 짧게 가느냐, 그 차이입니다.


이 북악산 트레킹은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코스입니다. 예전 포스팅들에도 그런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지요. 제 말을 못 믿으신다면 이렇게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백 번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한 번 와 보시라고! ^^;


인기가 많은 코스라 그런지 참가자들도 다른 트레킹보다 많았습니다. 그렇게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날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이 뿌옇게 됐기 때문입니다. 시야가 너무 안 좋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북악산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화려한 풍광도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악산 트레킹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적으로 높았답니다. 북악산 자체가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북악산 트레킹이 네 번째였고, 다섯번째 트레킹인 관악산 역사트레킹을 끝으로 2016년 한겨레문화센터 가을학기 트레킹이 종료가 됐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다!"


이번 가을학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상당히 정신없게 진행이 됐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많았지요. 하지만 나름대로 찬사를 받으며 종료가 됐습니다. 그런 격려를 발판삼아 내년 봄학기에는 더욱더 알찬 트레킹 강의가 될 수 있게 노력을 해야겠네요.  








 * 현통사: 백사실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현통사.  

 




 * 북악산 역사트레킹 










 *참가자: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이날은 참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드디어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 펀딩의 리워드 트레킹이 마지막으로 실시된 날이었으니까요.


여기서 잠깐! 앞에서도 계속 언급을 했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거 같아 다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지난 9월부터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한마디로 트레킹을 주제로 펀딩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펀딩을 받으면 저는 후원자들에게 무언가 답례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두고 '리워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게 돈을 주신 분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다른 펀딩을 진행하시는 분들은 에코백이나 엽서, 도서 등을 리워드로 많이 제시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트레킹을 잘하니 '북악산트레킹 초대' 같은 식으로 리워드를 제공했습니다. 유형의 물질을 드리는게 아니라 무형의 것을 제공한 셈이죠.


그렇게 리워드 트레킹이 진행되었고, 결국 이날 마지막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이 실시된 것입니다.


순조로운 해피엔딩은 없었던 것인지 , 아침부터 좀 삐그덕거렸답니다. 오전 10시경 집합장소인 구파발역에 가봤더니 갑자기 '헉' 소리가 나더군요.


구파발역에서 시작점인 북한산성 입구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등산객들이 워낙 많았던 터라 버스를 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을 빰칠 정도로 콩나물 시루 같았습니다. 정말 탈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종료점인 진관사에서 출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역순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하고 진관사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진관사행 버스는 북한산성행 버스에 비하면 천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가 순발력 있게 잘 대처한 듯했습니다.


정방향이면 어떻고 역방향이면 어떻습니까! 앞뒤를 바꿔서 시작해도 상관없는 게 트레킹의 묘미잖아요!


진관사를 출발해 북한산성입구, 대서문, 북한산계곡 등으로 이어진 이 날의 트레킹은 약 4시간에 걸쳐 진행이 됐답니다. 길이에 비해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이 된 셈입니다.


그렇게 하여 마지막 리워드 트레킹인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은 순조롭게 잘 마무리 됐답니다.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버스 타는 것만 혼잡했지, 그 다음부터는 계속 한적하게 우리만 다녔기 때문입니다. 역시 트레킹은 한적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하여간 제 어깨에 놓인 짐이 하나가 날아간 느낌입니다. 어쨌든 다섯번의 트레킹이 잘 마무리가 됐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더군요. 또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하다는 감정도 생기고!

 






  * 북한산: 북한산성 대서문에서 바라본 원효봉.







  * 북한산계곡 역사트레킹: 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













  * 전망대: 금호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 금호산도 응봉 라인의 한 축이다.








11월 6일 일요일.



청명한 가을날이었습니다. 약속 장소인 지하철 5호선 청구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전날에는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이 뿌였습니다. 약간 목이 간질거리기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하늘이깨끗하더군요. 하루 사이에 그렇게 달라지더군요.


한마디로 트레킹하기 아주 좋은 날이었다는 뜻이죠. 그렇게 좋은 날, 우리는 서울내부트레킹을 하러 떠났습니다.


사실 내부트레킹을 진행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다른 트레킹과 달리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다른 리워드 트레킹은 거의 다 '만땅'을 채웠는데 유독 내부트레킹만이 신청이 미비했답니다.  


많으면 많은데로, 적으면 적은데로... 또 그렇게 떠나는게 트레킹의 묘미 아닙니까!


트레킹을 할 때마다 열 대여섯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함께 이동하느라 좀 북적북적거렸습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주 단출했지요.


트레킹팀은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와!"

"단풍 명소가 따로없네"

"북악산 단풍하고는 또 다르네!"


참가자들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저런 말씀들이 터져 나오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단풍구경을 하고 있다고 감탄을 하시는 겁니다.


내부트레킹은 매봉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응봉 라인을 따라 걷는답니다. 응봉은 이름에도 나타나듯이 매사냥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작은 봉우리들이 남산에서부터 서울숲까지 '쭈욱' 연결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이 절경입니다.


그런 한강의 모습을 보기 위해 트레킹 코스로 넣었는데 시기가 시기인만큼 단풍구경까지 덤으로 하게 된 것이죠. 아니 단풍구경이 메인이 되고 한강 조망이 사이드가 되었다고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이 한강과 가까워서 그런지 강에서 불어는 바람 때문에 단풍이 빛깔이 잘 드는 듯싶더군요. 하늘도 청명하고 단풍도 예쁘고...!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참여를 많이 안 해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단풍 선물, 그것도 비주얼이 뛰어난 단풍 선물을 받았으니까요.


역시 세상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트레킹 때문에 또 하나 삶을 배워갑니다. 그러고보면 제 인생학교는 트레킹인 것 같습니다!









​  * 참가자: 이번 트레킹은 단출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코스의 비주얼은 대단했다!





  * 북한산: 단풍들 너머로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 안산트레킹: 봉수대를 향해 가는 참가자들.








10월 22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행하는 역사트레킹 강의 세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이 날은 서대문 안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일명 안산역사트레킹을 한 것이죠!


사진에서 보여지듯 이날 날씨가 좋았답니다. 그래서인지 수강생 분들은 마치 가을소풍을 하듯 트레킹을 즐기시더군요.


저도 덕분에 즐겁게 리딩을 했답니다. 저도 가을소풍을 만끽한 셈입니다.  







 

  * 메타세쿼이아 숲: 안산의 자랑인 메타세쿼이어 숲에 들어선 트레킹팀.

      






            

  * 안산트레킹 









 

 *홍제천: 홍제천을 건너고 있는 트레킹팀. 오리인지 거위인지... 하여간 저 녀석들이 우리들을 반겨줬다.​








 

  * 안산트레킹: 메타세쿼이아 숲.









           

    * 성북동 트레킹: 비주얼이 뛰어났던 북악산.








10월 23일.


강원도에서 들려오는 단풍 소식이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의 대부분의 산들은 아직 단풍 절정기에 들지 않았더군요. 기왕하는 트레킹, 아름다운 단풍을 보며 걸으면 좋잖아요.


이 날은 <함께 걷는 서울트레킹>의 세번째 리워드 트레킹이 있었던 날입니다. 일명 성북동 역사트레킹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성북동 트레킹은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처음으로 런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잘해야 하는데!"


첫 스타트였으니 부담감도 좀 생기더군요. 그런 약간의 부담감을 안고 약속장소인 성심여대역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첫번째 코스인 정릉을 지났는데... 그만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바람도 거세게 불고.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트레킹을 첫번째로 런칭한 날인데!!! 


그렇다고 하염없이 날씨 탓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기획한대로 제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답사를 제대로 해서 그랬는지 첫 번째로 행하는 트레킹치고는 물 흐르듯이 잘 진행이 되었답니다.


"우와!"


북악산을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참가자들의 탄성 소리도 커져갔습니다. 왜냐? 알록달록한 단풍들이 주위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다른 산들은 아직 단풍절정기가 아니었지만 우리가 갔던 북악산 코스는 단풍이 최절정기에 다다랐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비주얼을 바라보며 걸으니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더군요. 참가자분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습니다.


"올해 단풍놀이를 여기서 할 줄이야!"


첫번째인데다, 비 내리는 날 행한 트레킹이었지만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해주셔서 무사히 행사가 잘 종료가 됐답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올해 단풍놀이를 그날 처음했던 것 같네요. 눈이 호강을 한 하루였습니다.

 



 





 
   * 전망대: 뒤로 성북구와 도봉구 일대가 보인다.
 






 

  * 호경암: 1.21사태. 일명 김신조 사태 때의 상흔을 품고 있는 호경암.








  * 성북동 역사트레킹: 단풍길을 걷고 있는 참가자들.

 









 * 한강: 매봉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

 





 

* 버티고개: 버티고개에서 한 컷. 수강생분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10월 8일 토요일, 한겨레 문화센터 역사트레킹 강의가 있는 날.


그 전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한겨레 문화센터입니다. 내일 비 예보가 있는데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예보 저도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출발할 때는 비가 그친다고 나오네요."


"그래도 비가 계속 올 지 모르니까..."


'그렇죠. 비가 계속 이어서 올 지 모르죠. 요즘 하도 일기예보가 안 맞으니까..."


"음...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혹시 이번 트레킹은 취소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아니요. 일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때 그때 일정을 소화해야지 차후로 미루면 엉켜버립니다."



저는 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확실히 의사표시를 한 것이죠. 한 번 일정이 틀어지면 계속 꼬이게 되잖아요.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단호하게 나갔던 것입니다. 제 뜻을 알겠다는 듯 담당자 분도 수긍을 해주시더군요. 감사하더군요.


8일에 행해진 서울내부트레킹은 그렇게 비 때문에 취소될 뻔했답니다. 사실 당일날 새벽까지 비가 오긴 왔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개었더군요. 전화위복이라고 그렇게 비가 그친 뒤에 행한 트레킹이라 상쾌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서울내부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는 좀 고민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길을 안 좋아하면 어쩌냐... 여기 산들은 다 동네 뒷산급인데..."


하지만 수강생분들의 만족도는 상당했습니다. 괜한 걱정을 한 것이죠. 수강생분들은 서울의 구석구석을 알 수 있게 되어, 즐거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해주시더군요. 매봉산 팔각정, 버티고개, 수표교, 광희문 등등... 수강생분들은 그런 곳들을 탐방하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걱정을 많이 한 만큼 준비를 많이 한 탓도 있을 겁니다.


역시 강의 준비는 철저히! 다음 트레킹을 또 기약하며!


 








​ * 성곽길: 남산의 동쪽에 위치한 성곽길.


 


* 광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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