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산 역사트레킹> 정조대왕을 생각하며 행했던 역사트레킹___ 2편입니다.

 

 

 

울창한 숲길, 삼막계곡


삼성산 역사트레킹은 삼막천을 따라 이동을 한다. 삼막천은 삼성산에서 발원된 작은 하천으로 그 상류 위쪽에는 삼막사가 터를 잡고 있고, 그 하류에는 현재 만안교가 놓여있다. 만안교를 지난 삼막천은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안양천과 합수된다.

복날이 한참 남은 5월이었지만 날씨는 한여름이었다. 땀방울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흘러내렸다. 봄소풍 같은 역사트레킹을 기대했지만, 때 이른 더위로 자꾸 나무그늘만 찾게 됐다. 필자도 지쳐갔고, 팀원들도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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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막계곡 밖에는 햇살이 강했지만 계곡 안쪽 숲길은 나무그늘이 져서 트레킹 하기에 적당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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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삼막계곡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이 솟구쳤다. 계곡을 끼고 있는 숲길로 들어선 것이다. 아무리 강한 직사광선이 내린다고 해도 숲속에 있으면 탈진할 일이 없다. 숲속이 강력한 '선크림'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도 숲 속에 있으면 탈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원한 나무그늘에 있으면 원기가 회복된다. 이런 숲길을 걷는다면 한 여름 태양 아래에서도 트레킹을 마음껏 할 수 있을 듯 싶었다.

1시간 정도 계곡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드디어 삼막사에 도착했다.

 

 


불국사보다 더 오래된 삼막사

삼막사는 677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 의상, 윤필 3대사가 막(幕)을 치고 수행을 하다가 그 후에 절을 지으니, 그 절이 삼막사가 된 것이다. 삼성산의 명칭 유래도 마찬가지다. 원효, 의상, 윤필의 성인이 수도를 한 곳이라 하여 삼성산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삼성산은 관악산의 지산이다.

서두에서 필자는 삼막사가 불국사보다 더 오래된 연혁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개창 시기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통상적으로 불국사의 창건은 751년으로 잡는다. 그러면 삼막사가 불국사보다 무려 70년 정도 앞선 연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유서가 깊어서인지 삼막사에는 수많은 선승들이 머무르며 수도에 정진했다. 신라 말에 도선국사, 고려시대에는 나옹선사,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와 사명대사, 서산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 특히 조선왕조 개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무학대사는 삼막사에서 새로운 왕조에 대한 융성을 기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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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막사 산 정상 능선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삼막사는 사방이 트여있는 형세다. 그래서 좋은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은 올해 3월 달에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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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막사 돌부적 지운영이 그린 돌부적. 지운영은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형으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그림과 글씨에 능했다고 한다. 지운영은 한 때 삼막사의 한 암자에서 은거하며 수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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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선승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는 건, 달리 말하면 삼막사가 좋은 기운을 품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멀리서 삼막사를 봤을 때, 기운이 사방으로 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삼막사는 정상부 능선 부근에 자리 잡고 있어 그곳에 올라서면 멀리 인천과 서해바다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데 그런 입지적 조건이 삼막사의 기운을 '쾌'하게 생성시키는 것 같았다. 이런 좋은 기운 때문인지 삼막사는 조선시대부터 남왈삼막(南曰三幕)으로 지칭됐다. 또한 진관사 등과 함께 서울 인근의 4대 명찰로 불리게 됐다.

삼막사에는 무학대사가 중수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1880년(고종 17년)에 지어진 명부전과 그 다음해 지어진 칠성각 등의 당우(堂宇)들이 배치되어 있다. 또 고려중기 시대에 건립된 3층 석탑과 조선 후기시대에 제작된 아미타삼존불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낮에는 세상을 집어 삼킬 듯 강력하게 내리쬐었던 해가 어느덧 서쪽 하늘에 걸려 '붉은 노을'이 되어 있었다. 삼막사 부근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일품이라, 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삼막사 아래에 있는 염불암 탐방을 끝으로 삼성산 역사트레킹은 무사히 종료가 됐다.


정조대왕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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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구릉 삼막사 위쪽에 가면 바위구릉이 있는데 그 곳에서 바라본 관악산 연주대 방면. 관악산이 돌산이라는 사실을 이 바위구릉에 올라서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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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마치기 전에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해보겠다.

앞서 필자는 만안교에 얽힌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을 언급하였다. 인근백성들이 '만년동안 편한하게' 건널 수 있도록 튼튼한 돌다리를 축조하고, 그 이름을 직접 지었다는 것만으로도 백성을 중시했던 정조대왕의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능행차 중, 격쟁(擊錚)을 통해 백성들의 호소를 직접 듣고 '민원처리'까지 해주던 개혁군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것이다.

만약 정조대왕이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수장이었다면 어떤 조취를 취했을까? 뚱딴지 같지만 필자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정조대왕이 수장이었다면 최소한 '청와대는 재난 수습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하며,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자신들의 책임을 등한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경호의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까지, 단순 조문객을 유족으로 둔갑시켜 '조문 빅 쇼'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느긋하게 용상에 앉아 행하는 '착석 사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조대왕이 수장이었으면 절대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일처럼 책임을 통감하며, 크게 사죄하고 사태수습에 만전을 기했을 것이다. 자신의 책무를 발뺌하지 않고, 백성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을 것 같다.

200여 년 전 백성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튼튼한 돌다리를 축조해 준 정조대왕이 그리운 봄날이다.


● 도움말

1. 삼성산 역사트레킹 코스: 만안교 ▶ 경인교대 정문 ▶ 삼막사 초소 ▶ 삼막계곡 ▶ 삼막사 ▶ 염불암 ▶ 안양예술공원

2. 이동거리: 약 8km / 소요시간: 약 4시간(쉬는 시간, 삼막사 일대 탐방 시간 포함)

3. 삼성산 역사트레킹은 삼막천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중간에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음. 또한 삼막계곡을 통과하기에 한 여름에도 트레킹을 진행할 수 있음.

4. 교통편: 수도권 전철 관악역 1번 출구에서 하차하여 남쪽으로 500미터 정도 이동하면, 만안교에 닿을 수 있다. 종료 한 후에는 안양예술공원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관악역으로 이동함. 안양예술공원과 관악역은 버스로 5분 거리임.

 

 

 

 

 

 

 

 

정조대왕을 생각하며 행했던 역사트레킹

 

집밥 식구들과 함께 한 삼성산 역사트레킹

14.05.15 19:15     최종 업데이트 14.05.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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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안교 1795년, 정조 19년에 축조된 만안교. 건립된지 20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튼튼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돌다리를 씩씩하게 걷고 있는 삼성산 역사트레킹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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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질문 두 가지! 서울 인근에 경주 불국사보다 더 오래된 연혁을 가진 사찰이 있다면? 또 그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조대왕 시대에 축조한 돌다리가 있다면?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분명 이런 물음에 흥미를 느끼실 것이다.


불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찰은 삼성산에 있는 삼막사라는 사찰이고, 정조대왕 시대에 축조된 다리는 만안교라는 석교(石橋)다. 이 두 장소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여 이동할 수 있고, 또한 편리하게 수도권 전철을 타고 탐방할 수 있다. 필자는 그런 만안교와 삼막사를 묶어, 일명 '삼성산 역사트레킹'을 진행하였다.

지난 10일, 날씨는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5월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때 이른 더위였다. 필자 단독으로 행하는 트레킹이면 땡볕이든 폭풍우든 상관이 없지만, 단체트레킹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번 삼성산 역사트레킹은 소셜다이닝 '집밥'에서 사람들을 모아, 함께 트레킹에 나섰기 때문이다.

'트레킹이나 등산하고는 담 쌓은 사람들도 올지 모르는데... 그러다 낙오자라도 생기면... 이거 잘못하면 욕만 바가지로 먹는 거 아냐?'

 

 

화산 능행차와 만안교(萬安橋)


삼성산 역사트레킹은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관악역 1번 출구에서부터 시작된다. 1번 출구에서 나와 안양역 방면으로 약 500미터 정도를 걸어가면 만안교를 만날 수 있다.

1795년 축조된 만안교는 정조대왕의 화산 능행차를 위해 만들어졌다.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1789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 영우원에서 수원 화산의 현륭원으로 이장을 한다. 그리고는 자주 참배에 나섰는데 이를 두고 '화산 능행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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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안교 사진에서 보듯 만안교는 인근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생활속의 다리다. 박물관에 있는 잘 모셔진(?) 다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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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능행차는 도성에서 동작나루를 거쳐 남태령을 넘는 길이었지만 이후 시흥과 안양을 거치는 길로 변경된다. 남태령 길이 협소하다는 지형적인 한계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다른 사정도 있었다. 과천 행차로에는 김상로와 그의 형 김약로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영의정이었던 김상로는 사도세자 처벌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해원하기 위해 떠나는 능행차 길에 사도세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김상로 형제의 묘소를 지나는 것이 탐탁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1794년 이후부터는 능행차 노선이 시흥과 안양 방면으로 변경된 것이다.

당시 왕의 행차 길에는 임시로 나무다리 등을 가설한 후, 행차가 끝난 뒤에는 철거 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이에 정조는 그런 번거로움을 피하고, 인근 주민들이 평상시에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하천을 넘을 수 있게 튼튼한 돌다리(石橋)를 건설하라고 왕명을 내린다.

석교의 축조에는 경기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 수원·개성·강화 유수까지 동원될 정도로 큰 공사였지만 공사 기간은 3개월 정도였다. 그렇게 왕명으로 지어진 돌다리는 길이가 31.2m, 넓이가 8m에 달하는 큰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왕의 뜻대로 인근 백성들도 안심하고 하천을 건널 수 있는 튼튼한 돌다리가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다리를 두고 정조대왕은 만년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 만안교(萬安橋)라는 이름을 직접 작명하였다.

 

 


백성들을 위해 튼튼한 돌다리를 축조한 정조대왕

한편, 원래 만안교는 지금의 자리보다 남쪽으로 200m 지점인 삼성천 위에 축조됐지만 1980년 국도 확장 공사시에 지금의 삼막천 위로 옮겨지게 됐다. 이 다리가 놓여 있는 안양시 만안구의 명칭은 만안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만안교는 무지개교라 불리는 홍예교다. 조선 후기에 축조된 홍예교 중에서 가장 큰 다리로 모두 7개의 아치가 놓여 있다. 판석과 장대석을 서로 맞물려 축조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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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안교 밑줄친 부분은 현재의 만안교의 위치고, 동그라미 부분이 옛 만안교의 위치다. 애초 만안교는 세로로 놓였지만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는 90도로 각도를 틀어 가로로 놓이게 됐다. 네이버 지도 사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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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처음 만안교를 탐방했을 때 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4대문 밖, 그것도 한강 이남에 이렇게 정교하고 거대한 아치형 석교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돌다리는 박물관에 갇혀 있는 죽은(?) 다리가 아니라 지금도 인근 주민들이 건너다니는 살아있는 '생활' 다리였다는 점이다.


이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진두지휘하는 화산 능행차를 볼 수 없고, 다리 주위로는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정조대왕의 바람은 계속 이어지는 듯싶다. 인근 백성들이 '만년동안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하는, 그런 애민 정신 말이다.

돌다리를 넘으면서 필자는 한마디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조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역사적인 다리를 걷고 있습니다. 200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까지 튼튼한 돌다리를 넘고 있는 거죠."

역사트레킹팀은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을 곱씹으며 튼튼한 돌다리를 씩씩하게 걸어 다음 코스인 삼막사 계곡으로 향했다.


* 삼막사: 삼막사는 삼성산의 능선 부근에 자리잡고 있어, 날씨가 좋을 때는 인천 시가지는 물론 멀리 서해바다까지 보일 정도다.

 

 

 

 

 


 

* 만안교: 1795년, 정조 19년에 축조된 만안교. 건립된지 20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튼튼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돌다리를 씩씩하게 걷고 있는 삼성산 역사트레킹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만안교: 사진에서 보듯 만안교는 인근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생활속의 다리다. 박물관에 있는 잘 모셔진(?) 다리가 아니다.

 

 

 

 

 

* 만안교: 밑줄친 부분은 현재의 만안교의 위치고, 동그라미 부분이 옛 만안교의 위치다. 애초 만안교는 세로로 놓였지만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는 90도로 각도를 틀어 가로로 놓이게 됐다.

 

 

 

 

 

*삼막계곡: 밖에는 햇살이 강했지만 계곡 안쪽 숲길은 나무그늘이 져서 트레킹 하기에 적당했다.

 

 

 


 

* 바위구릉: 삼막사 위쪽에 가면 바위구릉이 있는데 그 곳에서 바라본 관악산 연주대 방면.

관악산이 돌산이라는 사실을 이 바위구릉에 올라서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삼막사: 삼막사의 명왕전. 1880년, 고종 17년에 건립되었다.

 

 

 


* 삼막사 돌부적: 지운영이 그린 돌부적. 지운영은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형으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는데 그림과 글씨에 능했다고 한다.

 지운영은 한 때 삼막사의 한 암자에서 은거하며 수도를 했다.

 


 

* 삼막사 3층 석탑과 거북모양 감로정석조: 3층 석탑은 고려시대 중엽 양식이다. 승려 김윤휴가 몽고 살리타를 화살로 쓰러뜨린

기념으로 제작된 탑이라 전해진다. 거북모양 감로정석조(甘露井石漕)는 조선 정조 시대 인물인 김창영의 탄생전설과 관련이 있다.

 

 

 

 


 

* 삼막계곡: 삼막계곡에는 누군가가 쌓아놓은 돌탑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과연 저 돌탑들이 한여름 비에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 삼막사: 산 정상 능선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삼막사는 무언지 모를 포근함을 전해준다.

 

 

 

 


 

* 삼막사 계단

 

 

 

 

 

 

 

 

 

 

 

 

 











[앵콜 9차] <영월> 5월에 떠나는 영월강변둘레길 역사트레킹!

영월강변둘레길은 지난 3월 22일에, 이미 한 번 트레킹을 한 곳입니다. 그때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무척 즐거웠었지요. 참가 하신 분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았고요. 저는 그것을 아이템 삼아 한 온라인 신문에 '영월 여행기'를 기고하기도 했었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당시 시간 관계상 눈물을 머금고 코스를 단축해야 했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코스를 완주해 보려고요. 잡풀이 많이 자랐을 거 같아서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사실 앵콜도 많이 들어왔었고요~

트레일(trail:오솔길)이 아무리 험하다고 해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겠죠!!!~ㅋ


잠깐! 5시간이나 이동을 하고, 거리도 만만치 않은데... 그럼 아주 빡세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트레킹스타일이 좀 느긋하게 걷자입니다. 무슨 속도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빨리가서 무엇하겠습니까? 중간에 새소리도 듣고,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해야 제 맛이죠! 즐기려고 트레킹 하는 거잖아요~^^;


아래 사항은 제가 3월 22일 트레킹 때 작성했던 초대장입니다. 그것을  좀 수정해서 재작성하였습니다. 그때보다 10분 정도 일찍 만납니다. 또 참가비도 올랐네요-_-; 



* 이동 중에 간간이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이 있을 예정입니다. 사진 촬영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은 모자나 선그라스  등을 준비하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마스크 추천이요!!!ㅋ 



*** 




*주의: 아래 미션에도 공지되어 있듯이 이 모임은 서울에서 만나, 해당지역인 영월로 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원도 영월 현지에서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행한, 기존의 집밥 모임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그래서 당황하실 분들도 있을 듯요...

듣도 보도 못한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사람만 믿고 영월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지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믿어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나름대로 저도 

아웃도어 바닥에서 열심히 굴러봤답니다. 

한편 저는 말만 master지, 회원분들의 slave랍니다!ㅋ 영월로 당일치기 봄소풍 간다고 생각하시고 우리 재미있게 놀아보자고요! 아주 멋진 절경에 취해보자고요!





트레킹을 하다보면 이 길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곳이 있습니다. 
나만 알고, 나만 즐겼으면 하는 곳이 생기는 것이죠. 

한마디로 그런 길들은 절경 중에 절경입니다. 
정말 아름다워서 누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곳이죠.

 

강원도 영월에 그런 곳이 있습니다. 
서강을 끼고 걷는 코스인, <영월강변둘레길>이 바로 그곳입니다. 

영월에는 유명한 동강 말고도 서강이라는 강이 흐릅니다. 
물론 서강이 동강보다는 경치가 덜합니다. 

하지만 워낙 동강의 경치가 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동강의 위세에 서강이 좀 눌렸을 뿐이지 서강 주변도 정말 비경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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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이 알고 있는 그런 곳을 여러분들과 함께 걷고 싶어서 이렇게 공지글을 올려봅니다.

이 코스에는 유명한 선돌과 청령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곳들은 예능프로인 <1박 2일>에서도 탐방을 했던 곳이죠..


선돌, 청령포, 청령포 기차역 그리고 서강....

이 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딱 이 기간 외에는 쉽게 접근을 할 수가 없답니다.

겨울에는 폭설로 인해 접근할 수 없고, 여름에는 잡풀이 우거져 등산로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소중한 곳이기도 합니다. 접근하기 쉽지 않아서 더 애착이 가는 곳이죠. 

사실 이 곳은 제가 직접 개척한 곳입니다. 개척하다가 죽는줄 알았습니다~ㅋ


 하지만 그런만큼 걸림돌도 많네요. 일단 돈이 많이 듭니다. 서울에서 행한 모임은 그저 전철비에

자기 저녁값 정도만 있으면 됐잖아요. 하지만 이번은 왕복 고속버스비에, 회비까지...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시는 분들은, 적어도 5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갑이 얇은 집밥 식구들에게는 큰 돈 일겁니다. .


돈만 문제인가요? 영월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도 드문드문 있어서 잘못하면 밤 12시 경에

집에 도달할지도 모른답니다. 막차가 끊겨서 택시를 탈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통금 시간이 있는 분이라면 더더욱 곤란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월강변둘레길 역사트레킹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아름다운 서강을 걷다보면 그런 걸림돌들은 곧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아주 하잖게 느껴지실 겁니다. 

절경에 취하다보면 서울로 올라가기 싫어질지 모릅니다. 그런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 미션: 영월강변트레킹을 참여하시는 분들은 미션을 한 가지 수행하셔야 합니다.^^;

별 거는 아닙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모임 집결지가 서울이 아닌 강원도 영월읍

시외(고속)버스터미널입니다.  영월이라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마스터)을 만나  

낯선 지역을 트레킹 하는 것입니다. 그럼 미션명은 '낯선'인가요?ㅋ

아참! 집결지가 서울이 아닌 영월읍인 만큼 강원도 원주지역이나 충북 제천 지역의 집밥 식구들도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서울터미널 ---> https://www.ti21.co.kr/










* 일시: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오후 12시 50분


* 집결장소
: 강원도 영월군 고속(시외)버스터미널 ---> 영월 읍내에 있는 곳입니다. 
서울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 영월 읍내에서 모이는 것이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서울에서 영월은 약 2시간 정도 걸립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약 2시간 20분 정도 걸리더군요.

* 회비: 1만 5천원 ---> 간식비, 식수, 청령포 입장료, 선돌까지 이동 교통비로 사용됩니다.  마지막에는 택시를 타고 읍내로 다시 진입할 예정입니다. 


* 이동경로: 영월읍내 ▶(버스 이동) 선돌 ▶ 서강 뚝방길 ▶ 청령포 ▶ 방절산 
▶ 청령포 기차터널 ▶ 청령포역(폐역사) ▶ 동강 대교 ▶ 영월역


* 난이도 : 중상   --->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 가요? 아닙니다. 예전에 다녀오셨던 분들도 안전하게 잘 다녀오셨답니다.  안전제일!!!

* 이동거리: 약 13km / 약 5시간 정도 소요 예상(청령포 관람시간, 쉬는 시간 포함)

* 준비물
: 여분의 옷, 

* 주의점
: 트레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여분의 옷도 준비해주세요. 강변에서 부는 바람이 좀 시릴 듯합니다!

영월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선돌로 이동할 예정이오니 지각 no!


 

 

 

 

 

 

 

 

 

 

 

 

 

 

 

 

 

세월호 참사, 위로받고 싶어서 걸었다 ___2편

식구들과 함께 한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

 

 

 

 

 

---> 전편에 이어서

 

 

 

 

신유박해로 유배길에 올라야했던 정약용

이때 셋째 정약종은 서소문 밖에서 참수를 당했고, 정약용과 정약전은 유배길에 나서게 된다. 처음 다산의 유배지는 경상도 포항 부근 장기였고, 정약전의 유배지는 전라도 완도 본섬 옆에 있는 신지도였다. 하지만 신유박해 이후, 황사영 백사사건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정약용은 포항보다 더 궁벽한 강진 땅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이배되기에 이른다.

한편 강진에서도 다산 선생의 유배지는 고정되지 않았다. 읍내에 있는 주막거리에 거처를 하기도 했고, 자신의 제자의 집에 머물기도 했다. 그러다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덕산 기슭에 초막을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다산초당이었던 것이다. 다산초당은 다산 선생이 1808년에서부터 해배되던 1818년까지, 10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그렇게 해배된 이후 다산 선생은 고향인 이 곳 마현으로 다시 오게 됐고,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에서 강진 시절에 마치지 못한 저술 작업에 매진하게 된다.

"다산 선생은 무려 500여 권의 서책을 저술한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강진에서의 18년 동안, 또 여유당에서의 18년 동안 다산 선생은 묵묵히 저술과 학술작업에 매진하셨습니다. 그런 다산 선생의 뜻을 배우고자 우리는 여기에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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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둥산 남한강 자전거 도로만 따라가면 재미가 없다. 잘 닦인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이런 비포장 도로를 걸어야 진정한 트레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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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설명을 잘했는지 필자의 말에 환호를 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몇마디 더 설명을 보탰다.

"아참 다산 선생은 40세에 유배됐다가 58세에 여유당으로 오시게 됩니다. 그러다 76세에 돌아가십니다. 그때 기준으로는 무척 장수를 하신 셈입니다."

다산생가를 떠나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한 이후에도 필자는 참가자들과 함께 다산 선생과 정조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파란만장한 다산 선생과 그의 형제들의 삶, 참된 목민관이었던 다산 선생의 애민 정신, 개혁군주였던 정조대왕의 일대기 등등... 이번 트레킹의 명칭이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이었던 만큼 다산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래서인지 참가자 중에 한 분은 집에 가서 다산 선생과 관련된 공부를 해야겠다고 필자에게 슬며시 말을 건냈다. 그러고보면 필자 같은 사람은 두꺼운 역사책의 머릿말을 읽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비록 도서관이 아닌 아웃도어이지만, 필드에서 트레킹하며 사람들을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리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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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개 고개 진둥산 인근에 있는 얕은 고개. 이 구간은 동네 마을길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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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로

다산 선생께서 세월호 사건을 보셨으면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자기만 살겠다고 배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에 대해서 서릿발 같은 호통을 내리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서는 어떤 호통을 내리셨을까?

'전원구조'에서 300명이 넘는 생때같은 인명이 익사하거나 실종처리 된 상황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링거에 의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실종자 가족들은 기력이 떨어져 있는데, 그 옆에서 냄새를 풀풀 풍기며 맛있게 라면을 드셨던 교육부 장관을 보며 어떤 감정을 가지셨을까? 또 그 교육부 장관이 계란을 풀어먹은 것도 아닌데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어떤 인식을 하셨을까? 더불어 청와대는 재난 콘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강변을 하는 발언에 어떤 느낌을 받으셨을까? 조문객을 유가족으로 바꿔치기하며, '분향소 빅 쇼'를 연출한 대통령과 경호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만하자. 그만해! 더 이상 말하면 누구말대로 '미개'해질지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같이 상상해 보길 바란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당연히 큰 호통을 내리셨을 것이다. 아니 역정을 내며 회초리를 드셨을지도 모른다. 다산 선생 같은 강직한 분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다산 선생께서 그렇게 준엄하게 꾸짖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무언가 막힌 곳이 좀 뚫리는 느낌이었다. 다산 선생께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느낌이었다. 물론 이런 감정은 지극히 필자의 주관적인 감흥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다산 선생을 뵈러갈 생각이다. 남양주든 강진이든 상관없다. 그냥 가서 위로를 받고 올 생각이다. 역시 다산 선생은 멘토 중에 멘토인 듯싶다. 난 힘들 때마다 항상, '다시 다산 정약용선생'에게로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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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선생 동상 다시 정약용 선생에게로... 만약 다산 선생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호통을 치셨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크게 서릿발 같은 큰 호통을 치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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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 코스: 팔당역 ▶(시내버스 이동) ▶ 능내역(폐역)▶ 마재성지 ▶ 다산 생가(여유당) ▶ 연꽃 공원 ▶ 다산 삼거리 ▶ 조안면사무소 ▶ 진둥산 ▶ 솔개고개 ▶ 운길산역


2. 이 코스는 기본적으로 남양주시에서 개설한 <다산길>을 이용함. 단 진둥산과 솔개고개 코스는 필자가 개설한 곳임.


3. 이동거리: 약 9.5km / 소요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포함)


4. 교통편: 중앙선 팔당역에서 하차하여 능내1리행 버스에 탑승함. 능내역이 능내1리임. 버스로 약 10분 정도 이동함.

 

 

 

 

 

 

 

 

 

 

 

 

 

 

 

세월호 참사, 위로받고 싶어서 걸었다 ___1편

 

식구들과 함께 한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

14.05.02 19:00l최종 업데이트 14.05.0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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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내역 2008년 복선화된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능내역은 폐역사가 됐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여지듯 능내역은 많은 나들이객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공간으로 재탄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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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6일 토요일.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을 행하는 길. 마음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그런 가벼운 발걸음에 미안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 백 명의 꽃다운 생명들이 차디찬 물 속에서 삶을 마감했는데 팔자 좋게 트레킹이라니! 또 그 내용을 기사화해서 <오마이뉴스>에 송고를 하다니! 그런 무거운 자책들이 필자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다산 선생의 손을 붙잡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자는 비판의 화살이 날아올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번 트레킹을 강행하였다. 그것도 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끌어 모아 함께 트레킹을 했다.

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받은 충격을 어떤 식으로든 누그러뜨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위로의 손길을 같이 받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누구의 손길에 의탁했는가? 누구에게 그런 마음의 짐을 풀어 놓았는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다산 선생에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다산 선생의 손을 붙잡고, 치유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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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재성지 마재성지는 다산 정약용의 셋째형 정약종의 생가다. 대개 천주교 성지는 순교와 관련된 곳이 많다. 절두산, 새남터, 황새울 등등... 하지만 이 곳은 독특하게도 한 인물의 생가가 성역화 됐다. 그만큼 우리 천주교에서 정약종의 업적과 희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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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에 참여를 한 사람은 총 7명이었는데 소셜다이닝 사이트 <집밥>에서 만난 이들이다.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의 코스는 다음과 같다.

팔당역 ▲(시내버스 이동) ▲능내역(폐역) ▲마재성지 ▲다산 생가(여유당) ▲연꽃 공원 ▲다산 삼거리 ▲조안면사무소 ▲진둥산 ▲솔개고개 ▲운길산역

2008년 중앙선 복선화로 인하여 폐역이 된 능내역은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간이역의 색깔을 그대로 남겨두어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정취를 쫓아 주말이 되면 많은 이들이 능내역으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단선철도 시절, 옛 중앙선의 일일 수송량보다 더 많은 인파가 주말이면 능내역 인근으로 몰려와 트레킹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그런 북적북적한 능내역을 뒤로 하고 우리는 천주교 성지인 마재성지로 향했다. 마재성지는 능내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지만 그 주변 분위기는 능내역과는 완전 달랐다. 무척 차분했다. 성지는 성지였던 것이다. 


정약종의 생가, 마재성지

마재성지는 다산 선생의 셋째형인 정약종의 생가다. 새남터, 절두산, 해미읍성 등 일반적인 천주교 성지는 거의가 순교, 즉 신자들의 죽음과 관련된 곳이 대대수지만 마재성지는 한 집안의 살림집이 성지가 된 독특한 사례다.

그럼 정약종은 누구인가? <자산어보>를 저술한, 정약용의 둘째형인 정약전은 잘 알고 있는데 정약종이란 이름 석 자는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정약종은 정약용의 셋째형이었다. 바로 윗형이었다. 도교에 심취해있던 정약종은 다른 형제들보다 늦게 천주교에 입문하게 된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진산사건으로 인해 다른 형제들이 천주교를 멀리할 때도 그는 강건하게 신앙을 지켜냈다.

1791년(신해년)에 발생한 진산사건은 윤지충이란 사람이 제례를 거부하고 위폐를 불사른 사건을 말하는데 이 사건의 파장으로 다산 선생도 벽파세력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신유박해(1801년) 이후 또다시 피바람을 몰고 왔던, 황사영의 백서(帛書)에도 '신해년 박해 이후에 형제나 친구들로서 여전히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정약종만 홀로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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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재성지 마재성지에 있는 예수상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묵념을 하고 있는 역사트레킹 참가자들. 이 예수상은 특이하게도 한복을 입은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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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형제들조차도 정약종의 강건한 신앙을 환영하지 않았다. 당시 조선의 천주교는 외국 선교사에 의해 포교된 것이 아니라 남인 계열의 선비들이 서학을 토대로 자생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유교적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혁명적 도구로 천주신앙을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상의 위폐를 불태운 진산 사건에 반발해 천주교를 떠난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배교를 한 이들은 조상의 제사도 지내지 않는 천주 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정약종이 계속 굳건하게 신앙을 지키면 지킬수록 집안 형제들과의 사이는 멀어져갔다. 그래서 나중에는 정약종만 홀로 강 건너 분원리(현 광주시 남종면)에 살게 될 정도였다.

그런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뒤로 하고, 역사트레킹 팀은 마재성지에 있는 '한복 입은 예수상' 앞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묵념을 올렸다. 참가자 중에는 다른 종교를 가진 분도 있었고, 무신론자도 있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종교를 뛰어 넘어 경건의 시간을 함께했다. 필자도 나지막이 묵념을 올렸다.

'희생자들 모두 좋은 곳으로 가시길,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말길. 나도 당할 수 있는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이 땅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역사트레킹팀은 다산 정약용 생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산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은 마재성지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능내역 ▶ 마재성지 ▶ 다산 생가(여유당)에 연꽃 공원까지, 이들 지역이 도보로 20분 이내의 거리에 묶여 있다. 이런 명소들이 집중적으로 밀집해 있으니, 앞서 언급한대로 주말이 되면 많은 이들이 이곳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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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용 동상 정약용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날은 햇살이 강해서 그랬는지, 참가자들은 선글라스나 창모자 등으로 햇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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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과 정약용

매번 와도 느낌이 좋은 곳. 돌아가는 발걸음이 아쉬운 곳. 다산 선생의 뜻을 되새기고 싶은 곳... 필자는 이곳에 올 때마다 항상 좋은 감흥을 받았고, 그런 감흥을 다른이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했다. 결국, 그 날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떠났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뭐 다들 아시겠지만... 1799년, 당시 시파의 영수였던 체제공이 그해 1월에 서거를 했다. 반대파였던 벽파로서는 체제공의 뒤를 잇는 시파 거물 정치인의 등장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했다.

벽파 입장에서는 누가 가장 위협적으로 보였을까? 정약용이 1순위였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체제공 서거 이후 정약용은 더 많은 모함과 박해를 받게 된다. 하지만 딱히 정약용의 손발을 묶을 방법이 없었다. 그만큼 정약용에게 흠결이 없었다는 것이다.

벽파는 꼼수를 썼다. 외곽 때리기를 했던 것이다. 정약용의 흠을 잡는데 실패한 그들은 둘째형인 정약전 때리기에 나섰다. 결국 정약전은 관직에서 물러났고, 이를 지켜본 정약용도 격분하며 고향인 마현(현 능내리)으로 낙향하게 된다.

체제공과 정약용이란 '원투펀치'가 조정을 떠난 두 달 후, 개혁군주였던 정조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정조대왕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들은 선생은, 임금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크게 스스로를 책망했다고 한다. 그때가 1800년 6월이었다.

정조의 승하는 벽파에게는 더할 수 없는 호재였다. 벽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조를 따르던 인사들을 축출하게 된다. 1801년 2월에 있은 신유박해가 바로 그것이다.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남인 계열 시파 100여 명이 사사됐고, 400여 명이 유배길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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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공원 팔당호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뒤편으로 보이는 곳은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으로,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진 정약종 선생이 따로 떨어져 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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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내역: 2008년 복선화된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능내역은 폐역사가 됐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여지듯 능내역은 많은 나들이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재탄생(?) 되었다.

 

 

 

 

 * 마재성지

 

 

 

 


즐겁게 트레킹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감정이 스며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나라 전체가 슬픔에 휩싸여 있는데 뭐가 좋다고 트레킹 행하는지...

더군다나 혼자도 아니고 여러명이서 같이했으니...


하지만 저도 무언가 멍~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여객선을 많이 타야 하는 팔자인지라

언젠가는 저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남양주 정약용 트레킹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다산 선생 앞에서 미주알 고주알, 

제 감정들을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다산 선생 앞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도 가능했을 겁니다.


참된 목민관이었던 다산 정약용 선생! 

다산 선생께서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셨을까요?

독자분들의 한 번 상상해 보시죠?

 









 

 

* 마재성지: 마재성지는 다산 정약용의 셋째형 정약종의 생가다. 대개 천주교 성지는 순교와 관련된 곳이 많다. 절두산, 새남터, 황새울 등등...

하지만 이 곳은 독특하게도 한 인물의 생가가 성역화 됐다. 그만큼 우리 천주교에서 정약종의 업적과 희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 마재성지: 마재성지에 있는 예수상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묵념을 하고 있는 역사트레킹 참가자들. 이 예수상은 특이하게도 한복을 입은 상이다.   

 

 

 

* 정약용 동상: 정약용 선생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날은 햇살이 강해서 그랬는지, 참가자들은 선글라스나 창모자 등으로 햇살을 가렸다.

 

 

 

 

 

 

 *연꽃 공원: 팔당호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뒤편으로 있는 곳은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으로,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진 정약종 선생이 따로 떨어져 살았던 곳이다.  

 

* 진둥산: 남한강 자전거 도로만 따라가면 재미가 없다. 잘 닦인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이런 비포장 도로를 걷는 것이 더 재미나다.

 

 

 

* 솔개 고개

 

 

* 연꽃공원: 연꽃 공원에 서 있는 다산 선생의 저작을 모은 조형물 

 

 

* 정약용 선생: 다시 정약용 선생에게로... 만약 다산 선생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아마도 호통을 치셨을 것 같다. 그것도 아주 크게 호통을 치셨을 것 같다.

 

 













두둥~ 이제 곧 있으면 직장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황금 연휴가 시작되겠네요.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맛보는 휴일의 느긋함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달콤할테죠.

그런 달달한 느낌을 5월 5일 어린이날에 양수리에서 맛보는 건 어떨까요?

 

황금연휴에 좀 멀리 여행을 가고 싶지만 그런 여건이 안되는 분들도 환영합니다.

예전에 이성친구 혹은 애인과 함께 거닐었던 양수리, 그 두물머리를 집밥 식구들과
함께 걷는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나요? 집밥 식구들과 느긋하게 대화를 하며
사뿐사뿐 소풍을 가듯 두물머리를 걷는 겁니다.

 

집밥지기인 제가 남자친구 역할에 부적절하다고요? 그래서 저는 판만 깔아드리고
뒤로 빠진답니다~ㅋ 여러분들이 재밌게 노시라고~ㅋ

 


일시: 2014년 5월  5일 월요일 오후 1시 ---> 좀 시일이 촉박하죠.  사실은 예정된 출장이 날라가서...

이 모임을 급조해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재미만큼은 급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결장소:  중앙선 팔당역 --->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해 있음.

 

이동경로:  팔당역 ▶(버스이동) ▶ 조안면 면사무소 ▶진둥산 ▶ 솔개고개 ▶ 운길산역 ▶ 팔각정 ▶ 북한강 철교

▶ 양수리 생태공원▶ 두물머리(양수리) ▶ 새미원(선택사항)
*** 맛나고 유익한 뒤풀이 예정~ㅋ

 

이동거리: 약 7km /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난이도: 하 ---> 평이한 코스입니다. 기초 체력이 되시면 누구나 다 참여가능합니다.

 

준비물: 여분의 옷, 간식

 

확인사항: 중간 중간에 사진 촬영이 있습니다. 이 점 양지해 주세요. 사진 촬영이 별로인 분들은
스키마스크 착용을 추천 드립니다!~ㅋ

 

주의점: 장시간 트래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하이힐 NO! 트래킹화 YES!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참고사항:  당일날 햇살이 강할지 모르니 모자나 썬크림 등을 준비해주세요. 해가 떨어지면 추워집니다. 여분의 옷도 준비해주세요!
 

비용: 비용은 7천원입니다. ---> 식수, 간식, 리딩비 포함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간식이 제공될까요?ㅋㅋㅋ



















 

 

 

 

 

 

---> 소셜다이닝 모임인 집밥에 올린 삼성산 종교트레킹에 대한 공지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는 모객을 하지 않으니, 이 점 양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혹시 그거 아세요? 서울 인근에 불국사보다도 더 오래된 사찰이 있는 거?

그 절이 어디냐고요? 바로 삼막사라는 사찰입니다.

원효, 의상, 윤필의 세 성인께서 창건을 했다해서 삼막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답니다.


한편 삼막사가 있는 산의 이름은 삼성산인데 그 세 분이 이 곳에서 수도를 했다해서

삼성산이라 불립니다. 사실 삼성산은 관악산의 지산입니다. 바로 옆동네 산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유서가 깊은 곳이라 그런지, 이 삼막사는 진관사, 불암사, 승가사 등과

함께 서울의 4대 명찰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약간 강원도 산골짜기 분위기가 풍겨집니다. 또 산 정상 부근에 자리잡은

사찰의 모습도 정감 있어 보입니다.


이번 삼성산 종교순례 역사트레킹에서는 이 삼막사를 비롯하여 호압사, 삼성산 성지 등을

탐방합니다. 삼성산 성지는 예전 관악산 역사트레킹 때와 조금 노선이 겹쳐지네요.


아참 이번 트레킹에서는 만안교 탐방도 합니다. 만안교는 정조대왕 시절에 건립된 돌다리인데,

지금도 그 동네사람들은 만안교를 지나다닙니다. 박물관에 있는 다리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로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다리가 바로 만안교랍니다.


한가지 더: 조선 후기시대에 제작된 다리도 직접 걸어보고, 삼막사와 호압사 등의 불교 사찰과

천주교 성지인 삼성산 성지도 탐방을 하니, 이번 역사트레킹의 명칭이 <삼성산 종교순례 역사트레킹>이 되었답니다.










일시: 2014년 5월 10일 토요일 오후 1시


집결장소
: 지하철 1호선 관악역 1번 출구

이동경로: 관악역 ▶만안교 삼막사 계곡 입구 삼막사 ▶ 호압사 ▶ 삼성산 성지

이동거리: 약 10km /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난이도: 중 ---> 코스에 산길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난해한 코스는 아닙니다.


준비물
: 여분의 옷, 간식

확인사항: 중간 중간에 사진 촬영이 있습니다. 이 점 양지해 주세요. 사진 촬영이 별로인 분들은
스키마스크 착용을 추천 드립니다!~ㅋ

주의점: 장시간 트래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하이힐 NO! 트래킹화 YES!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참고사항: 당일날 햇살이 강할지 모르니 모자나 썬크림 등을 준비해주세요. 해가 떨어지면 추워집니다.

여분의 옷도 준비해주세요!


비용: 비용은 7천원입니다. ---> 식수, 간식, 리딩비 포함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간식이 제공될까요?ㅋㅋㅋ

 

* 마재 성지

 

 

 

*능내역

 

 

 

 

 

이 포스팅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에서 만나게 될 장면들을 모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포스팅은 사진으로 보는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입니다.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은 능내역, 마재성지, 다산 생가, 연꽃공원, 중앙선 자전거길, 진둥산, 솔개고개 등등... 많은 볼거리들로 풍성한 트레킹 코스입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나들이객들로 그 주위가 북적북적 해지는 곳이랍니다.

 

우리는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 하며 다산 선생의 실학 정신과 초기 천주교에 대해서 곱씹어 볼 수 있을 겁니다.

수려한 풍광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시간내서 트레킹 하는 재미가 있죠. 너무 인공적인, 너무 잘 닦인 길들만 다닌다는 것은 트레킹 정신과는 좀 동떨어진 게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 곳은 남양주시에 개설한 <다산길>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기반하여 걷습니다. 하지만 좀 다르게 걸어보려고요. 왜? 능내역부터 운길산역까지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하는데 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들과 경합하는 것이 썩 좋지 않거든요!

 

진둥산과 솔개고개 코스는 다산길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입니다. 이 부분은 마스터인 제가 개설했답니다. 너무 인공적이고, 너무 잘 닦인 길보다는 조금은 다른, 좀 덜 닦인 길을 가보는 것도 <남양주 정약용> 역사트레킹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답니다!!!

 

 

 

 

* 마재 성지

 

 

 

 

* 마재 성지

 

 

 

 

 

* 연꽃 공원

 

 

 

 

*능내역 기차카페

 

 

*진둥산

 

 

 

*솔개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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