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서울에 북한산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쓸데없는 가정을 한 번 해본다. 북한산이 품고 있는 울창한 숲, 아름다운 풍광, 풍부한 문화유산 등등...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면 서울은 정말 밋밋한 도시가 됐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그만큼 서울 사람들은 북한산의 덕을 제대로 보고 있는 셈이다. 이번편은 진관사에 대한 글인데 이 진관사도 북한산이 품고 있는 문화유산 중에 하나다.

* 진관사 극락교

● 삼각산이라 불렸던 북한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북한산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북한산은 예전에 삼각산(三角山)이라는 명칭으로 더 많이 알려졌었다. 세 개의 봉우리가 삼각뿔처럼 생겼다하여 삼각산이라고 불린 것이다. 그 세 봉우리는 백운대(837m), 인수봉(810m), 만경대(800m)이다. 예전에 봉우리 이름을 외우려고, 앞 글자를 따서 ‘만백인’으로 외웠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백만인’이 더 잘 머릿속에 남을 거 같다. 한편 북한산의 정상은 인수봉이 아닌 백운대다. 인수봉이 유명해서 그런지 인수봉이 최정상인지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더군다나 인수봉은 일반 등산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클라이밍 장비로 암벽 등반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다른 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북한산도 동서남북이 제각각이다. 삼각뿔이 자리 잡고 있는 동쪽은 높은 봉우리들이 장벽처럼 연이어 서 있다. 이에 비해 서쪽은 비교적 낮은 봉우리들이 올망졸망하게 늘어서 있다. 그렇게 동서간의 고도차이 때문인지 북한산의 물길은 동쪽보다는 서쪽이 더 완만하다. 계곡트레킹을 하기에도 서쪽편이 더 낫다.

이번에 탐방할 진관사도 북한산의 서쪽에 있다. 진관사를 가려면 3호선 구파발역에서 진관사행 시내버스를 타면 쉽게 도달할 수 있다. 15분 정도 타고 이동을 하는데 차창밖 풍경이 예뻐서 지루하지가 않다. 다른 방법도 있다. 6호선 독바위역에서 하차한 후 진관뉴타운 방면으로 북한산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진관사에 도달할 수 있다. <진관사 역사트레킹>을 이렇게 행하는데 볼거리도 많고, 문화유산도 많아서 많은 이들에게 별표 5개를 받고 있다. 진짜다.

 

“와! 멋지네요. 서울에 이렇게 큰 한옥마을이 있었어요?”

“네 있었어요. 한옥하고 북한산하고 잘 어울리죠.”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진관한옥마을이 탐방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진관한옥마을은 진관뉴타운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는데 수도권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옥마을이다.

* 진관사: 대웅전 앞에 쌍석등이 있다.

 

● 서울의 4대 명찰 진관사

진관사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4대 명찰 중에 한 곳이다. 4대 명찰은 조선 세조 때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서쪽에 진관사, 동쪽에 불암사, 남쪽에 삼막사, 북쪽에 승가사를 지정하였다. 왕실의 번영을 위해 지정된 사찰들이었기에 이 사찰들은 명찰이라 불리며 승격이 높았다.

일주문과 불이문을 지나 진관사 경내로 들어가자. 초가지붕을 얹은 연지원에서 흘러나오는 향긋한 차향에 이끌리어 발걸음을 멈추지 말자. 바로 대웅전으로 이동하자.

 

“와, 좋네요. 무언가 탁 트인 느낌이에요.”

“뒤쪽에 있는 봉우리하고 대웅전하고 잘 어울려요.”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외쳤다. 진관사는 계곡 지형에 위치해 있는데 대웅전 뒤쪽편의 봉우리는 비교적 아담하지만 상류쪽으로는 높은 봉우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탁 트인 시야와 웅장한 모습을 동시에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대웅전 앞에서는 매번 이런 해설을 했었다.

“진관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인데요. 보시다시피 본당인 대웅전 앞에 탑이 없고, 대신 석등이 2개가 있어요. 통상적인 가람 구조에서 벗어난 형태에요.”

옛 사찰들은 본당 앞에 탑을 세웠다. 본당 하나에 탑이 하나있는 것을 1당 1탑이라고 한다. 1당 2탑도 있다. 말 그대로 하나의 본당 앞에 쌍탑이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진관사의 대웅전 앞에는 탑 대신에 쌍석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통상적인 가람 구조에서 벗어났다고 말한 것이다. 있어 보이려고, ‘에헴’하고 헛기침도 하면서 해설을 했지만...

“곽작가님, 우리 빨리 단체 사진 찍어요.”

해설 실력이 약하나? 꼭 그렇지는 않은데. 그래, 어차피 해설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그런 것이다. 참고로 ‘가람(伽藍)’은 승려가 모여 수행을 하는 장소를 말하는데 불교 사찰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 진관사

● 진관대사를 위해 세운 진관사

진관사(津寬寺)는 1010년, 고려 현종 2년 때에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신혈사로 불렸던 진관사는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이 진관대사를 위해 직접 세운 절이라고 한다. 당시 왕위계승 1순위였던 현종은 어려서 대량원군(大良院君)으로 불렸었다.

그런데 헌애왕태후로 불리기도 했던 천추태후(千秋太后)에게 미움을 받았다. 천추태후는 5대왕 경종의 부인이자 7대왕 목종의 어머니였는데 아들인 목종이 후사가 없자 자신의 다른 아들을 왕위에 앉힐 생각이었다. 당시 애인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에 올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대량원군을 위협하는 천추태후의 검은 그림자는 더욱더 짙어져갔다.

원래 신혈사는 진관 스님이 홀로 수행을 하는 곳이었는데 천추태후는 강제로 대량원군을 이곳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외진 곳이니 자객을 보내기도 좋았을 터. 하지만 진관 스님은 이런 음모를 간파했고, 수미단에 굴을 파서 대량원군을 숨겨놓는 기지를 발휘했다. 수미단은 불상을 올려놓는 단을 말한다.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일컬어지는 상상속의 산인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이다.

3년 뒤인 1009년에 대량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른다. 서북방을 지키던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하고 대량원군을 등극시킨 것이다. 고진감래라고 천추태후의 탄압을 끝까지 견뎌냈기에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현종 때에는 2번에 걸쳐 거란이 침공을 해왔다. 목종을 폐위시킨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의 2차 침입이 1010년에 있었고, 8년 후에는 3차 침입이 있었다. 2차 침입 때는 요나라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한 터라 현종은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을 가야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당하고만 있던 민족인가. 조일전쟁(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거란과의 전쟁 때는 강감찬 장군이 있었다. 1018년에 있은 3차 침입 때 강감찬 장군은 귀주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귀주대첩이다.

진관사 이야기를 하다가 고려 초기 거란과의 항쟁까지 언급하게 됐다. 뭐 이러면서 하나라도 더 익히면 좋지 아니한가. 우리가 역사트레킹을 혹은 답사여행을 행하는 것도 현장에 직접 가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거니까.

진관사는 한국전쟁 때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는다. 빨치산이 지리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북한산에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한전, 칠성각, 독성전은 전쟁의 참화를 피하게 된다.

* 진관사

● 일장기에 덧그린 태극기가 발견되다

2009년도였다. 오래된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다 뜻밖의 문화재가 발견된다. 일장기 위에 태극문양을 덧그린 태극기가 발견된 것이다. 태극문양이 지금처럼 상하대칭이 아닌 좌우대칭으로 그려진 독특한 형태의 태극기였다. 이 태극기를 숨겨놓으신 분은 바로 백초월 스님이셨다.

일제강점기 당시 진관사에 주석하시던 백초월 스님은 한용운 스님, 박용성 스님과 함께 항일운동에 적극적이셨던 불교계 인사였다. 1944년 형무소에서 옥사하실 정도로 백초월 스님은 끝까지 항일 의지를 꺾지 않으셨던 분이다. 31운동 경, 일제 경찰에 잡혀가기 전에 숨겨놓은 태극기였으니 무려 90년 만에 세상에 다시 나온 태극기였다.

 

“삼각산이 조선이면 왜놈은 계란이다. 계란으로 삼각산을 아무리 친다한들 삼각산은 끄떡없다.”

 

백초월 스님의 어록이다.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이다. 전세계에 있는 계란을 다 친다고해도 북한산은 꿈쩍도 하지 않을 거다.

이렇게 하여 진관사 탐방은 종료된다. 좀 아쉬우시면 위쪽에 있는 진관사 계곡에 잠시 다녀오시는 것도 좋을 듯싶다. 나름대로 아기자기한 계곡이라 잠시 머리를 식히기에 딱인 곳이다.

북한산, 4대 명찰, 진관대사, 현종, 천추태후, 거란, 강감찬, 백초월 등등... 진관사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있다. 본 글에 언급하지 못한 유명한 진관사 수륙재도 있다. 그러니 가보면 좋다.

 

 

 


 

 

 

 

■ 진관사 탐방

1. 세부코스: 진관한옥마을 ▶ 진관사 ▶ 진관계곡

2. 가는법: 3호선 구파발역에서 진관사행 시내버스 탑승. 약 15분 정도 소요됨.

3. 같이 가면 좋을 곳: 기자촌 근린공원 / 화의군 묘역

* 진관사 탐방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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