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역사트레킹 마스터


필자는 삼남길 개척단 이외에도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역사트레킹 마스터가 바로 그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최근에 카페(http://cafe.daum.net/historytrekking)도 하나 개설했다.

역사트레킹? 숲길트레킹이나 오지트레킹이란 말은 들어보셨어도 역사트레킹이라는 용어는 생소하실 것이다. 하지만 역사트레킹은 익숙한 것들의 결합체이다. '역사'와 '트레킹'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형태라는 것이다. 즉, 유물답사를 한 후에 10Km 정도 되는 거리를 걷는 것이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문화재를 관람하면 편리하다. 느긋하게 맛집 탐방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역사트레킹은 그런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를 자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해당 문화재를 방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보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넉넉히 살찌우자는 것이 역사트레킹의 대원칙이다.

하지만 필자가 역사트레킹을 해보겠다고 다짐하기까지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능력도 없는데 괜히 나섰다가 트레킹에 나선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고등학생의 뉴스 인터뷰를 보았고, 그 이후 필자는 역사트레킹의 마스터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야스쿠니 신사요? 야스쿠니 젠틀맨을 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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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현무암 이진 항구에는 저렇게 제주산 현무암이 즐비했다. 이 돌들은 제주도에서 군마를 실어올 때 배에 함께 실린 돌들이라고 한다. 항해에 익숙지 않은 말들이 요동을 치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배의 중량을 늘이려고 저런 돌들을 갑판 아래에 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 현무암들은 중심돌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해남에 와서 역할을 다한 현무암은 이진 항구의 갯벌에 버려졌다. 그래서 이진항 일대는 제주도가 아닌 육지 항구에서 가장 많은 현무암들이 발견된다.
ⓒ 곽동운

 

 

 

 


자신이 TV에 나온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떴는지 그 학생의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하지만 필자의 마음은 무척 어두웠다. 아무리 역사 교육이 내팽겨 쳐졌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 중, 또 하나가 걸그룹 시크릿의 멤버인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이었다. '민주화'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알고 있고, 또한 '농락'거리로 내뱉었던 그녀의 언사에 경악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 말이 부정적인 말이라면, 민주화를 요구하며 피를 흘렸던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은 무엇이었나? 또한 얼마전에 방한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는 1991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는데 '민주화'라는 부정적인 일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노벨상이 수여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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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성터 이진성터는 현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한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된 옛 이진성은 해안방어 기지로 이용되었다. 이 담장은 성의 일부였다고 판단되는 석축인데 지금은 농가의 돌담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왼쪽처럼 석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역사트레킹은 이런 현장들을 탐방한다.
ⓒ 곽동운

 

 

 

 

 


#역사트레킹의 예시: 삼남길 '해들길'에서



문화재 앞에서는 역사해설가가 되고, 트레일에서는 대장 역할을 해야 하는게 마스터의 주된 임무다. 또한 준비운동이나 응급처치도 마스터의 몫이다. 이렇듯 역사트레킹 마스터의 어깨는 무척 무겁다. 하지만 제일 곤혹스러운 것은 트레킹 코스의 개발이다. 필드가 있어야 역사트레킹이 가능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삼남길은 필자에게 좋은 필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왜? 현재 삼남길은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창지대였던 삼남(전라, 경상, 충청)지역이 조선왕조 물산의 중심축 역할을 했듯, 한양에서 해남 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그렇게 때문에 옛 삼남대로 인근에는 역사적인 유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렇다. 현재의 삼남길은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고 있기에 느긋하게 트레킹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역사공부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삼남길은 역사트레킹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남길에서 역사트레킹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짤막한 예를 들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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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들길 해들길은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의 애칭이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600Km에 걸쳐 조성되는 국토종단형 트레킹 코스로 도보여행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걷기여행길이다.
ⓒ 곽동운

 

 

 

 

 


전남 해남군 북평면에는 이진성터가 있다. 현재 이진성터는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에 놓여 있다. 옛 이진성은 이진항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된 방어기지였는데 항구는 제주도를 향하는 배가 출항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진 항구 위쪽으로는 남창이라 하여 제주도에서 수취한 공물들을 축적하는 창고가 있었다. 현재의 지명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이다.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점은 옛 이진성이었다. 땅끝 전망대가 있는 땅끝마을이 삼남대로의 종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땅끝 개념은 근래에 들어선 개념이다. 해남 사람들은 땅끝을 갈두리로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굳이 땅끝 개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진항이 더 좋은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진항 바로 옆으로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가 있고, 그 뒤쪽으로는 완도 본섬이 있기 때문이다. 완도로 내왕하기도 편했고 제주도로 나아가기에도 수월했던 곳이 바로 옛 이진항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착점도 이진항이었던 것이다. 옛 이진성은 그런 전략적 요충지인 이진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됐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에 수군만호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러다 제주도로 출발하는 배가 수심이 더 깊은 목포항 쪽으로 바뀌고, 완도에 다리가 놓이게 되니 이진항의 위상은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역사공부도 되고, 느긋하게 트레킹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거리가 10Km 남짓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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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구가방을 두른 필자 지난 3월 16일자 기사에 쓰인 사진이다. 사진 왼쪽이 손성일 대장이고, 오른쪽이 필자다. 허리에 공구가방을 두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계속된 작업에 지쳐서 그랬는지 뒷모습이 좀 '껑뚱'하다. 방송은 이런 길을 만드는 '하드웨어 작업'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어떤 방식으로 길이 개척되고, 어떻게 작업이 진행되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럴만도 한게 우리나라에 도보여행 길이 600개가 넘지만 '하드웨어 작업' 자체가 소개된 길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개척하는 주체도 관리하는 주체도 불분명하여 개통 이후 방치된 트레킹코스가 많은게 우리의 현실이다.
ⓒ 곽동운

 

 

 

 

 

 


# 오마이뉴스에 기사 썼다, 방송물 먹었다!

 

이런 삼남길에 대한 역사성과 개인적인 작업 참여 등을 종합하여, 필자는 지난 3월 16일에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이라는 기사를 작성했었다. 당시 기사는 개척이 아닌 보수작업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냈었다. 그 기사에서 필자는 일부러 사람 얼굴이 나오지 않은, 등 돌린 사진만 게재를 했었다. 제목처럼 무척 힘든 작업이 연속됐기에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었지만 실제로 확인해보니 얼굴이 정면으로 응시된 사진도 쓸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다시 그 기사를 읽어봤을 때는 좀 낯선 감이 있었다. 필자의 예전 기사들이 사물에 근접하게 포커스를 맞췄다면, 그 기사는 좀 멀찍이 떨어져서 초점을 맞춘 셈이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사안을 바라보니 작성 범위도 넓었던 것 같았다. 분량이 무려 원고지 34매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노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은 메인탑, 즉 오름기사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필자가 작성한 그 기사를 보고 <MBC 시사매거진 2580> 측에서 손성일 대장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내 기사가 디딤돌이 되어 또 하나의 콘텐츠가 생성됐고, 덕분에 '바람잡이'였지만 필자도 나름대로 TV에 등장했던 것이다.

삼남길 관련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 메인톱에도 게재가 됐고, 또한 거기에 더해 '방송물'도 먹었더니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자리 잡는다.

'이 기사도 메인에 오르면, 다른 방송국에서 섭외 들어오는 거 아니야? 푸하핫!'

 

 

 


# 도보여행길 개척이 토목공사?



글을 마치기 전에 걷기 열풍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600여 개에 달하는 도보여행길이 있다. 제주 올레의 열풍을 타고 전국 각지에 트레킹 코스가 앞 다투어 개설된 것이다. 최근에 한 풀 꺾였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개설중인 길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길들 중에는 명품 코스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도보여행에 적합하지 않은 길들도 부지기수다.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거나 아스팔트 비율이 높은 곳들이 바로 그런 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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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재 삼나무 숲길 아스팔트를 계속 걷는다면 도보여행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여름에 아스팔트의 열기를 느끼며 트레킹을 한다면 자칫 일사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트레킹은 숲길을 걷는게 제격이다. 사진은 삼남길 전남구간 6코스 점재다. 저 길을 걸으면 그윽한 삼나무 향을 느낄 수 있다.
ⓒ 곽동운

 

 

 

 


한편 '친환경 사업'이라고 불리는 트레킹 코스 개설에 너무 많은 예산이 소요된 사례도 있다. 해파랑길이 바로 그런 길이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연결된 해안걷기 길인데 그 거리만도 770Km에 이를 예정이라고 한다. 해파랑길은 2014년, 완전 개통을 목표로 개척되고 있다.

아웃도어 여행가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해파랑길 개척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냈다. 삼남길과 같이 국토종단형 도보여행길이 개설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무려 770Km에 이르는 대장정이 아닌가? 하지만 필자는 해파랑길의 예산 투입 금액을 보고 경악했다.

'무슨 4대강 사업하나? 도보여행 길 개척에, 왜 170억원이란 엄청난 거금이 집행돼야 하지?'

삼남길 전라도 구간(228Km)과 경기도 구간(91Km) 개통에 총 3억 남짓한 돈이 든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삼남길 600Km 개척에 채 8억도 안 드는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도보여행 길 개척이 삼남길처럼, 개척단의 희생을 발판 삼아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엄청난 혈세가 트레킹 코스에 투입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해파랑길은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해안누리길과 거의 일치하여 예산의 중복투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파랑길은 '낭만가도'라고 불리는 7번 국도를 기반 삼고 있기에 특별하게 수백억의 예산이 집행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도보여행길 개척이 또다른 형식의 토목공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 지론이다. 돈은 적게 들이고, 효과는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 도보여행을 바라보는 필자의 기본 시각인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필자가 삼남길 개척단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돈은 아주 적게 들면서 여행의 효과도 있고, 역사트레킹도 할 수 있으니까.
 

 

 

 

 

 

 

 

 

 

 

 

 

 

 

 

 

 

 

 

 

 

 

 

 

 

▲ 강진 다원 월출산을 뒷배경 삼은 강진 다원. 5월에 촬영한 사진이라 녹차밭도 푸르고 월출산도 푸르다. 강진 다원은 삼남길 전남구간 8코스(산내들길)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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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 다원 같은 강진 다원 사진인데도 계절에 따른 색감이 다르다. 녹차밭도 월출산도 녹음이 들지 않은 모습이다. 2월에 찍은 사진이라서 그런지 월출산에는 잔설이 남아 있기까지 했다. 이렇게 같은 장소지만 자연이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삼남길이다.
ⓒ 곽동운

 

 

 

 

 

 


# 필자도 한 때 '전문 대타'였다

필자도 한 때 '방송물'을 먹은 적이 있었다.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공중파 고정출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구색을 갖춘다고 매주 '꽃단장'을 하며 '오빠 피부'를 만들어야 했다. 명색이 공중파 출연인데 신경 좀 써야 하지 않겠나?

100분 토론이었다. 필자가 매주 '고정출연'한 프로그램이 100분 토론이었던 것이다. 물론 필자가 패널로 참여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방청객으로 자리를 지켰다.

처음에는 아는 지인 분께서 '언론 개혁'과 관련된 토론에 패널로 참가하셔서 얼떨결에 그 뒷자리를 지켰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매주 MBC를 방문해야 했는데 이유인 즉, 방청객들 중에서도 종종 '펑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공간을 필자가 '대타'로 채워 넣었던 것이다. 100분 토론이 워낙 늦은 심야 시간에 종료가 되니 패널 섭외만큼 방청객 섭외도 어렵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쥐꼬리만한 방청료를 가지고 심야의 택시 할증을 방어할 수 있는 일반인들이 거의 없었기에 필자 같은 사람이 '전문 대타' 역할을 해야 했던 것이다. MBC가 있는 여의도에서 집이 있는 신도림까지는 걸어서 갈 만했다. 또 쥐꼬리만한 방청료지만 그렇게 모아두니 쓸 만 했다. 그렇다. 그렇게 심야 프로그램을 채워줄 필자만한 '대타'가 없었던 셈이다.

당시는 손석희씨가 진행을 했던 초창기였으니, 한 10년도 더 넘은 일인 듯싶다. 가끔은 그 때가 그리워진다. 방송 나온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다녔으니까...

그러다 얼마 전에 진짜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MBC 시사매거진 2580>에 필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19일 방영분, 세 번째 꼭지인 <삼남길을 아십니까?>편에 당당히 얼굴을 내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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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바가지를 든 필자 우물 물을 한 바가지 들이키는 설정 샷! 좀 껑뚱하게 나온 듯싶다!
ⓒ MBC화면캡처

 

 

 


물론 필자가 해당 꼭지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삼남길을 필자가 주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저 삼남길 개척의 주도자인 손성일 대장 뒤편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바람잡이'를 잘해야 방송이 산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명품 조연'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잠깐! 여기까지 기사를 읽으신 독자들 중에서는 필자에게 이런 의문을 표시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싶다.

'겨우 바람잡이 역할 한 거 가지고 이렇게 왈가왈부 하나? 그리고 삼남길은 또 뭐야?'

 

 



# 서울에서 해남까지 삼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삼남길? 해당 방송을 시청하지 못하신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 <삼남길 개척단>이라는 직함을 가진 필자가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딱 반이 지났다. 지난 5월 25일 개통한 경기도 구간으로 인해 삼남길은 이제 딱 절반 구간이 정식으로 얼굴을 내밀게 됐다. 2012년 4월 전라도 구간 개통(228Km)과 경기도 구간(91Km) 개통으로 삼남길 전체 구간 중 319Km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제 충남구간과 전북 구간이 연결되면 서울에서 해남까지 장장 600Km에 이르는 도보여행길이 개설된다. 

그렇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한국에는 삼남길이 있다. 서울 숭례문에서부터 해남 땅끝 마을까지 트레일(trail:오솔길) 코스가 개설되고 있다. 그 머나먼 도보여행길이, 민간단체인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에 의해서 개척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삼남길은 전남과 경기도 구간이 개통됐고, 2014년 후반기에 완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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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성일 대장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
ⓒ MBC화면캡처

 

 

 


이 작업의 선봉에는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 서 있다. 2008년부터 삼남길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길에 미친 사나이'라고 칭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는 분명 '미친 사나이'였다. 도보여행에 넋이 나가지 않고서야 5년이 넘는 기간을 온전히 트레일 코스 개척에 다 쏟아 부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매일같이 텐트 생활을 하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개척 초기 인고(忍苦)의 시절도 그런 열정으로 버텼던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괄시나 당했던 그 서러운 시절을 미치지 않고 어떻게 극복했겠는가?

그런 '미친 사나이' 대열에 필자도 뒤늦게 합류했다. 필자가 처음 삼남길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0년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개척에 참여한 것은 올 초부터다. 자동차도로도 마찬가지겠지만 도보여행 길도 개설만큼 유지․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척과 보수 둘 다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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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성터 옛 이진성은 구릉지대를 이용하여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해남에서 제주도로 들어가는 항구였던 이진에 성을 축조했던 것이 이진성이었던 것이다. 뒤쪽으로 보이는 섬은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다.

ⓒ 곽동운

 

 

 

 

 

 

 

 

 

 

 

 

 

 

 

 

 

 

 

 

 

 

 

 

 

 

 

 

 

 

 

*** 드디어 경기도 삼남길 개통식이 개최 되는군요. 그래서 관련 기사를 한 번 가져 와 봤습니다.

경기도 삼남길은 저도 개척 작업에 참여를 해서 그런지 애착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삼남길은 전남 구간(228km)과 경기구간(90km)가 개설되었습니다. 딱 반을 이루었고,

이제 딱 반이 남았습니다. 충남 구간과 전북 구간이 남은 절반입니다.

 

역사트레킹을 하는 곽작가 입장에서는 삼남길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큽니다.

삼남길을 걷다보면 풍부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좋은 점들 때문에 제가 삼남길을 계속 주시를 하고, 삼남길 개척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남구간과 경기구간이 잘 개척된 만큼 충남구간과 전북구간도 잘 개척이 되어, 삼남길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레일 코스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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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삼남길 전 구간 개통기념, 함께 걷기 대회 열려

[중앙일보] 입력 2013.05.24 15:51

25일 오전 9시 과천시청 후문 광장에서 삼남길 전체구간 개통식 개최
개통식 후 과천시청에서 남태령까지 약 4Km 함께 걷기 행사 예정
길을 걸으며 역사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는 수도권의 테마 도보코스로 자리 잡을 전망

 

 

 

 

 

 


 


삼남길 경기지역 전 구간 개통을 기념하는 개통식이 25일 열린다.

경기도는 과천?안양?의왕?화성?오산?평택시, 경기문화재단, (사)아름다운도보여행, 코오롱스포츠와 함께 오는 25일 오전 9시부터 과천시청 광장에서 경기도 삼남길 전체구간 개통식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삼남길은 한양에서 경기도를 거쳐 각각 충청수영과 해남 땅끝마을, 통영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이었던 삼남대로를 기본 원형으로 한 도보길이다.

지난해 10월 수원과 화성, 오산 구간 33.4.km를 우선 개통한 이후 과천∼안양∼의왕∼수원 24.8㎞ 구간과 오산∼평택 31.9㎞ 전 구간을 연결하는 노선확정을 최근 끝내고 표지부착 등 마무리작업을 벌였었다.

 
전 국민적인 걷기 열풍 속에 조성한 삼남길 경기도 구간은 온온사, 인덕원터, 임영대군 묘역, 사근행궁터, 지지대비, 용주사, 독산성, 진위향교, 대동법기념비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보행조건만을 고려했던 기존의 도보길과는 달리 역사문화 체험과 교육 효과도 곁들일 수 있는 도보길로 평가받고 있다.

25일 열릴 삼남길 개통식은 광개토사물놀이패와 한뫼국악예술단이 펼치는 길놀이, 축연무에 이어 삼남길 전체 구간 영상 소개, 이광수 명인의 비나리, 개통 축하 퍼포먼스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개통식에 이어 자원봉사자와 함께하는 ‘장애우와 함께걷기 프로그램’ 및 일반 참가자들의 함께 걷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행사장부터 온온사, 과천향교 입구 등을 거쳐 남태령 옛길 표석까지 약 4km의 삼남길 구간(한양관문길)을 함께 걸을 예정이다. 사전 신청한 함께걷기 참가자 및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코오롱스포츠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할 예정이며, 남태령까지 완주하면 인증 스탬프도 발급된다. 이 외에도 건강관리센터와 함께 체지방, 혈압, 혈당 등을 체크하는 코너나 도보여행 관련 용품을 전시하는 코너도 마련된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조선시대 교통과 물자이동의 간선로였던 옛 삼남대로가, 역사문화가 숨 쉬는 도보길 ‘삼남길’로 다시 태어났다”고 밝히고, “역사성을 갖춘 이 길을 걸으며 건강도 찾고 옛 사람들의 정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기도는 2017년까지 삼남길 외에도 의주대로, 영남대로 등 경기도 지역의 옛길을 고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도보길 개발을 연차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삼남길의 경우 경기도 외의 다른 광역지역에서도 조성되거나 조성이 검토되고 있어 국내 최초의 전국 단위 도보길로 거듭날 전망이다.

참가신청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or.kr)를 통해 할 수 있으며, 경기도 및 각 자치단체, 유관기관 홈페이지에서도 연결이 가능하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이 외에도 경기도 옛길의 역사와 문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답사하는 ‘경기도 옛길 아카데미’(연 4기 개설), 경기도 옛길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클린 옛길 자원봉사’(연 4회 개최), 각계 전문가를 초빙하여 진행하는 ‘멘토와 함께 걷는 옛길’(매월 1회 개최), 매월 주어진 테마에 맞춰 인증샷과 후기를 응모하면 우수작을 선정해 소정의 상품을 지급하는 ‘테마가 있는 옛길 365’(상시), 경기도 옛길 종주 프로그램(수시) 등을 진행 중이다. 경기도 옛길 프로그램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나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청소년은 경기문화재단이 운영 중인 ‘경기도 옛길’ 카페(cafe.naver.com/oldroad)나 (사)아름다운도보여행이 운영 중인 ‘삼남길’ 공식 블로그(blog.naver.com/samnamgil)을 통하면 된다.

 

 

 

 

 

 

 

 

 

 

 

 

 

 

 

 

 

 

 

 

 

 

 

 

 

 

 

* 곽작가: 우물 물을 한 바가지 들이키는 설정 샷! 좀 껑뚱하게 나왔네요!ㅋ

 

 

 

 

 

 

* 삼남길: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삼남길에 대해서 방송을 했답니다. 사진에 등장한 분은 강나림 기자인데 이 분도 삼남길을 직접 걸었답니다.

그러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더군요. 사진에 등장한 숲길은 전남 강진의 백운동 숲길입니다. 직접 걸어보면 화면보다도 더 큰 감흥이 있을 것입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삼남길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을 걸고 삼남길에 대해서 방송을 했습니다. 약 13분간 진행된 방송은 기승전결이 명확히 떨어지더군요. 삼남길에 대한 소개, 삼남길이 주목받는 점, 삼남길을 만드는 사람들, 삼남길의 과제 등등...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진행된 방송에서 삼남길은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더군요.

 

이렇게 진행된 방송에 저도 출현을 하였기에 포스팅을 한 번 해봅니다. 사실 생각보다 제가 화면에 많이 등장해서 좀 놀라기도 했답니다~ㅋ

한가지 흡족한 점은 제가 예전에 삼남길과 관련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를 한 적이 있었는데, 2580측에서 그 기사를 보고 손성일 대장에게 접촉을 했다고 하더군요. 뭐 저도 나름대로 삼남길 발전에 기여를 한 셈이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 __ ^

 

이 사진들은 동영상 화면을 캡처한 것이라 화질이 떨어졌네요. 그게 안타깝습니다.

 

    

 

 

 

 

 

 

 

 

 

 

 

* 삼남대로: 삼남길은 조선시대 옛 삼남대로를 표본으로 개척되고 있는 도보여행 코스입니다. 아쉽게도 현재 삼남대로는 그 원형을 잃어버리거나 훼손된 곳이 많답니다. 산업화와 도로교통의 발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요. 삼남길에게도 이런 시대적 흐름 뿐아니라 도보여행길이라는 본질에 걸맞은 변화의 옷이

필요하겠지요. 즉, 옛 삼남대로를 기계적으로 삼남길에 옮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도보여행을 위한 트레킹 코스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스팔트를 걸으며 매연을 먹는 도보여행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 곽작가: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 해들길에서 한 컷. 해들길은 해남군 북평면 옛 이진산성을 지나갑니다.

제가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건가요? 저것도 연출인 듯~ㅋ

 

 

 

 

 

 

*우물: 이 우물은 옛 이진성 안에 있었던 것인데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우물을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드셨다고 하네요.

화면에 저를 포함한 손성일 대장 및 삼남길 개척단원들이 등장합니다.

 

 

 

 

 

 

* 함박골: 함박골은 현대식 한옥으로 만들어진 팬션입니다. 너무 예쁘게 치장하려고만 하는 현대식 팬션과는 격조가 다른 곳입니다. 이 곳에 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고, 저렇게 흰둥이들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함박골 한옥팬션은 삼남길 전남구간 4코스 첫 시작점인 차경마을에 위치해 있답니다.

 

 

 

 

 

 

* 텐트: 손성일 대장과 함께 텐트를 세팅 중.

 

 

 

 

 

* 손성일 대장: '저는 몰라도 삼남길은 분명히 남을 거다'는 멘트가 의미심장합니다!

 

 

 

 

 

 

 

* 삼남길

 

 

 

 

 

* 삼남길: 맨 뒤에서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곽작가. 배낭에 뭘 저렇게도 많이 짊어지고 계신가?ㅋ

 

 

 

 

* 이진성터: 이진성터는 현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한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된 옛 이진성은 해안방어 기지로 이용되었다.

이 담장은 성의 일부였다고 판단되는 석축인데 지금은 농가의 돌담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 왼쪽처럼 석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 이진성터: 옛 이진성은 구릉지대를 이용하여 석축을 쌓았다고 한다. 해남에서 제주도로 들어가는 항구였던 이진에 성을 축조했던 것이 이진성이었던 것이다.

 

 

 

 

 

 

 

 

역사트레킹의 마스터로서 본인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트레킹 코스의 개발이다.

필드가 있어야 역사트레킹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문화재를 검색한 후 서로 서로간의 지점을 연결하여 자동차로 이동을 하면 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트레킹은 그런 수학여행식의 '버스 뺑뺑이'를  자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해당 문화재를 방문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도보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넉넉히 살찌우자는 것이

역사트레킹의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지덕체가 골고루 함양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문화유산과 함께 좋은 트레킹 코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백년의 세월을 이겨낸 장엄한 문화유산과 함께 탄성을 자아내는 유려한 풍광의 도보여행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좋은 역사트레킹 길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1. 유려한 풍광

2. 안전성

3. 접근성

4. 명확한 IN_OUT(타 교통편과의 연계)

5. 이용성

 

이 외에도 몇가지 사항이 있으나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생략한다. 또한 역사유물 존재 유무도 생략한다. 역사유물이 없는

역사트레킹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제주의 현무암: 이진 항구에는 저렇게 제주산 현무암이 즐비했다. 이 돌들은 제주도에서 군마를 실어올 때 배에 함께 실린 돌들이라고 한다. 항해에 익숙지 않은 말들이 요동을 치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배의 중량을 늘이려고 저런 돌들을 갑판 아래에 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저 현무암들은 중심돌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해남에 와서 역할을 다한 현무암은 이진 항구의 갯벌에 버려졌다.

그래서 이진항 일대는 제주도가 아닌 육지 항구에서 가장 많은 현무암들이 발견된다.

 

 

* 이진성 우물: 이 우물은 옛 이진성에 식수를 공급했던 우물이었다. 옛 이진성터에는 이 우물을 포함해서 2개의 우물이 있다.

 

 

 

 

 

 

역사트레킹의 코스가 10Km 정도이다. 필자는 그 10km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싶다. 해당 문화재는 물론 걷기에 안전하고 풍광이 유려한

길을 소개하고 싶다. 숲길도 있고, 바다도 보이고, 계곡도 보이는 그런 명품길으로 역사트레킹을 떠날 생각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기왕하는 트레킹, 안전하고 풍광이 수려한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나?

 

아스팔트 길을 걸을려면 트레킹을 할 필요도 없다. 바퀴가 열 개 달린 24톤 짜리 트레일러와 '맞서 싸우며' 걷기 여행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목숨 내놓고, 또는 매연을 들어 마시며 도보여행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도변에 널부러진 로드킬 당한 야생동물의 시체들을 보는 것도 고역이다. 내장이 터지고, 안구가 튀어나온...-_-

 

명품 역사트레킹 코스를 개발하는 것은 마스터인 필자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코스를 개발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한가지 아이템이 떠올랐다. 바로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를 탐방한 후에

이거다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도보여행 길이다. 현재는 전남구간이 개통되어 있고, 다가오는 2013년 5월 25일에 

경기도 구간이 개통된다. 조선시대 8대 대로 중에 하나였던, 옛 삼남대로를 기본축으로 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삼남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많은 역사적 유물을 담은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 역사트레킹도 삼남길을 많이 걸을 것 같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해남 이진성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현재 이진성터는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해들길)에 놓여 있다.

옛 이진 나루는 제주도를 향하는 배가 출항하는 항구였다. 그래서 이진 항구 위쪽으로는 남창이라 하여 제주도에서 수치한

공물들을 축적하는 창고가 있었다. 현재의 지명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이다.

 

 

 

 

 

 

* 해들길: 해들길은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를 지칭하는 애칭이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600Km에 걸쳐 조성되는 국내 최장거리 트레킹 코스다.

 

 

 

 

 

 

 

옛 삼남대로의 종점은 옛 이진성이었다. 땅끝 전망대가 있는 땅끝마을이 삼남대로의 종점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땅끝 개념은

근래에 들어선 개념이다. 조선시대에는 굳이 땅끝 개념을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진항이 더 좋은 지리적인 잇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항 바로 옆으로 완도의 부속섬인 달도가 있고, 그 뒤쪽으로는 완도 본섬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완도로 내왕하기도 편했고

제주도로 나아가기에도 수월했던 곳이 바로 옛 이진항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종착점도 이진항이었던 것이다.

옛 이진성은 그런 전략적 요충지인 이진항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됐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에 수군만호부가 자리잡았다고 한다.

 

역사트레킹은 이렇게 역사유물을 직접 답사하고, 이후에는 트레킹을 통해 즐거운 도보여행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삼남길 전남구간 3코스인 해들길에는 시원한 바다 풍광과 함께 숲길이 펼쳐진다. 역사유물을 직접 탐방하고

즐겁게 해안길과 숲길을 걷는 것이다.

역사지식도 쌓고 트레킹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단순한 도보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 이진성터: 옛 이진성터는  1999년에 일부 구간이 복원됐을 뿐이다.  

 

 

 

 

 

 

 *이진성터

 

 

 

 

 

 

 

* 현무암: 이진항에 있는 제주산 돌들

 

 

 

 

 

 

 

 

▲ 삼남길 장군봉이라는 곳이다. 작은 산이지만 그 곳에 올라서면 평야와 산들이 어우러진 강진군 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사진에서 나타나듯 장군봉에서 바라다보는 남도 일대는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사진에 등장한 분들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과 장덕진 팀장이다.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7일 동안 90km 걸으며 삼남길 보수작업 여행기___2편

 

 

 

 

 

# 공구가방을 둘러메고 보수작업에 나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개척이 아닌 보수공사를 하러갔다. 이미 개척이 완료된 구간의 설비들을 재정비하는 것이 필자의 임무였다. 보수작업은 개척작업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래서 개척작업과 보수작업을 이란성 쌍둥이로 표현할 수도 있다.

도보여행 코스는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데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는 한 번쯤 전수 조사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안내판 재정비 같은 작업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훼손된 방향표지판을 새로 교체해 주고, 수풀이 우거진 곳은 낫으로 통행로를 확보하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지니고 움직여야 할 장구들도 한가득이었다. 방향지시판, 스티커, 리본, 전동드릴, 실리콘총 등등…. 이렇게 가지고 다녀야 할 공구들이 많으니 작업팀들은 허리에 공구가방을 둘러야 했다. 군대에서 쓰는 탄띠를 응용해서 만든 가방이었다. 그 많은 장비들을 공구가방에 담았더니 허리가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보수작업의 첫 시작점은 해남 땅끝 마을이었다. 삼남길의 시작점이 땅끝 마을이기 때문이다. 보수작업은 할 만했다. 필자도 트래킹 코스를 직접 개척한 경험도 있었고, 개별적으로 삼남길을 여행한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필자는 아웃도어 여행가가 아닌가!

'그냥 산보 하듯이 살랑살랑 걷다가 맛있게 남도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겠군. 푸하핫, 간만에 일주일 동안 포식하겠군!'

 

 

 

 

 

▲ 화장실에 붙여진 삼남길 스티커: 녹색이 서울 방면이고 빨간색이 해남 방면이다. 사단법인이 돈이 없는 관계로 값비싼 방향표지판 대신 스티커를 붙여야 했다. 한편 저 화장실은 스티커를 붙이는데는 제격이었지만 볼 일을 보기에는 꽝이었다. 무척 지저분 했기 때문이다. 아마 화장실 귀신도 도망갔을지 모른다.

 너무 지저분해서.

 

 

 

 

 

도보여행 길 보수 작업의 핵심은 올바른 표지판 설치에 있다. 단방향 길처럼 중간에 진·출입이 없는 곳이면 표지판 설치에 드는 수고가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남길은 그렇게 단순한 길이 아니다. 바다와 만나고, 산을 둘러가고, 농로를 질러가고, 강을 건너는 길이 바로 삼남길이기 때문이다. 해안길만 타고 가는 길이야 그냥 바다를 기준 삼아 계속 나아갈 수 있지만 삼남길은 그렇게 단순하게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말이다.

혹자는 '그렇게 단순한 길이 아니면,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나무 푯대 같은 것을 갈림길 곳곳에 세워두면 되지 않냐'고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삼남길 개척을 주관하는 손성일 대장의 고심이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돈이 문제지. 나무 푯대 하나 설치하는데 인건비 포함해서 100만 원 정도 든다는데 그 비용이면…. 아휴."

 

 

 

 

 

▲ 점재 삼나무 숲길: 삼남길 6코스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지나 점재를 넘는다. 1970년대 포장도로가 들어서기 전까지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 산 아래 주민들은 점재를 넘어 강진 읍내로 왕래했다고 한다. 포장도로 개설 이후 사람들이 자동차만 타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산길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다 삼남길 개척으로 옛길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아마 다산 정약용 선생도 저 점재를 넘어 강진 읍내로 왕래를 하셨을 것 같다.

저렇게 시원스럽게 뻗은 늠름한 삼나무에 감탄을 하시면서.

 

 

 

 

 

#'초' 저비용으로 개척되고 있는 삼남길

그렇게 손성일 대장이 한탄을 할 만했다. 오죽했으면 고급(?) 인력인 필자까지 자원봉사로 삼남길 보수공사에 참여를 했겠는가. 그렇다. 역시 돈이 문제였다. 사단법인이 비영리단체이다 보니 항상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헝그리 정신'은 삼남길 개척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전남구간 228km 개통에 3억 원 남짓한 비용밖에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km당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이 투입됐던 다른 도보여행 길들의 예산 집행과정과 삼남길의 개척비용을 일대일로 비교해보면, 그 '헝그리 정신'이 더욱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걷기여행의 열풍을 타고 각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개설했던 도보여행 길들에 적게는 수십 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삼남길은 확실히 저비용이라는 대단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개발비용이 저렴하다는 말은 달리 말해 개척자들이 엄청난 '생고생'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랬다. 개척초기에 삼남길 개척단은 매일 같이 텐트 생활을 해야 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돈이라고는 지인들이 모아준 후원금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용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개척단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피로가 가중됐고, 황소도 때려잡게 생긴 사람도 몸살을 앓고 '픽픽' 쓰러졌다고 한다.

 

 

 

 

*삼남길 작업: 삼남길 작업에 쓰인 리본

 

 

 

 

#'이거 도망가야 하나?', 야반도주를 생각하게 됐다

문제는 필자도 그렇게 '픽픽'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작업 3일째가 되자 출발 전에 품었던 느긋함은 싹 다 사라졌다. 작업 장구를 지니고 하루 평균 15km 이상의 거리를 속보를 통해 이동을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피지컬을 염두에 두고 이동하는 일반적인 도보여행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균형이 깨졌던 것이다. 자신만의 페이스라는 게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한 번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적지까지 잘게 썰어서 도착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두 가지를 절충해서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삼남길 보수 작업에서는 그런 통상적인 페이스 조절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왜? 말 그대로 작업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작업지점에 멈춰 서서 작업을 하고, 또 이동하다 작업하고. 그렇게 불규칙적으로 이동과 작업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수많은 돌발 변수들이 발생했다. 예전에 설치했던 표식들이 사라졌거나 길 자체가 훼손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새롭게 코스를 재정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유지를 통과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땅 주인이 철문을 새로 달아 놓으면 그 길은 더 이상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엔 국도가 4차선으로 확·포장 되어서 기존의 트래킹 코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필자만의 페이스를 발휘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균형도 깨졌다. 일반적인 도보여행보다 피로도가 2~3배는 더한 것 같았다. 작업 당시 남도는 봄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지만 내 몸에는 한기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식은땀이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온 삭신이 다 녹아나는 느낌이었다. 파스로 버틸 수위를 넘어선 것이다. 야반도주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내 마음을 간파했는지 손성일 대장이 몸살약을 건네며 이런 말을 했다. 

"정말 만만치가 않지…. 이 일 하다 여럿 도망갔어."

 

 

 

 

 

 

 

▲ 공구가방을 두른 필자 사진 왼쪽이 손성일 대장이고, 오른쪽이 필자다. 허리에 공구가방을 두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계속된 작업에 지쳐서 그랬는지 뒷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공구가방이 축 처져있다. 자켓에 달린 모자도 지퍼가 좀 풀려있다. 뒤에 있는 산은 영암 월출산이다.

 

 

 

 

 

#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도망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배신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전 일정을 다 참가한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 달릴 때까지 달려보는 거야. 중간에 그만 둘 수는 없잖아!'

오기 때문인지, 몸살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여곡절 끝에 필자는 전 일정을 다 소화 할 수 있었다. 무척 고단한 작업이었고 체력적으로도 힘겨웠지만 전 일정이 무사히 완료됐다. 멤버들도 모두 무탈하게 귀가 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7일 동안 90km 정도를 이동했던 것 같다. 100km에는 못 미쳤다. 오전 작업만 한 적도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단기간 내에 참 많이 걸었던 셈이다.

새삼스럽게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지 말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했던 여행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체력적으로 충만하다고 해도 아웃도어 현장에서는 돌발 변수라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피로는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아웃도어를 하다가 골병이 들면 안 되지 않나?

도보여행 객들을 위해 좋은 길을 만드시는 분들의 노고도 새삼스럽게 되새겨 보았다. 가장 걷기 좋게, 가장 친환경적으로 트래킹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숱한 몸살과 골병들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개척자들의 피땀 어린 노고가 있었기에 도보꾼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 것이다.

 

 

▲ 삼남길 8코스 태평양 다원 여기서 조금만 더가면 유명한 월남사지 3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 강진 태평양 다원 삼남길 전남구간 8코스에 있는 태평양 다원. 멀리 보이는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을 병풍 삼아 펼쳐진 강진의 녹차밭은 보성 녹차밭과는 또다른 멋이 있었다.

 

 

 

 

 

▲ 해남의 갈대밭 삼남길 3코스는 해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삼남길은 바다를 만나고, 산을 둘러가고, 강을 넘는 길이다. 멀리 보이는 섬은 완도다.

 

 

 

 

 

당신이 걷기 좋았던 그 길, 누군가에겐 골병의 길

7일 동안 90km 걸으며 삼남길 보수작업 여행기____1편

 

 

 

일주일 동안 100km를, 도보를 통해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필자는 개의치 않았다. 차라리 느긋해 있었다. 물론 자동차가 아닌 도보를 통해 100km를 이동해야 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할 일은 길의 보수·정비였다.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걷는 일반적인 도보여행이 아니었다. 각종 장구들을 지니고 주요 지점에 멈춰 서서 길을 정비하는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 필자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여행가이기 때문이다. 5600km라는 무동력 여행 기록을 가지고 있으니, 100km 정도는 그리 큰 숫자로 보이지 않았다.

'하핫, 까짓것 파스 좀 바르면 거뜬하게 버틸 수 있겠군. 오랜만에 남도여행이나 재밌게 해보는 거야!'

지난 2월 21일. 필자는 그런 느긋한 생각을 품고 해남 땅끝 마을로 향하는 승합차에 탑승했다. 승합차 뒤편에는 전동드릴, 실리콘 총, 리본, 스티커 등등…. 각종 작업 장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곽 작가, 오랜만이야. 자원봉사 고마워. 그런데 이번 삼남길 보수작업 만만치 않을 거야."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었다.

"무슨 말씀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전문가 아닙니까?"

 

 

 

* 삼남길 보수작업: 보수작업에 쓰여던 각종 공구와 도구들.

 

 

 

 

 

 # 서울에서 해남 땅끝까지, 삼남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랬다. 필자가 이번에 소개할 여행기는 삼남길 전남 구간 보수·정비에 대한 이야기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삼남길에 대해서 소개해본다. 스페인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듯이 한국에도 삼남길이 있다. 서울에서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걷기 편한 트레일(trail:오솔길) 코스가 만들어지고 있다. 장장 700km가 넘는 도보여행길이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에 의해서 개척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현재의 삼남길 개척은 조선시대 십대대로 중에 하나였던 삼남대로를 계승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곡창지대였던 삼남(전라, 경상, 충청)이 조선왕조 물산(物産)의 중심축 역할을 했듯, 한양에서 호남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길을 따라 수많은 관헌들이 말을 달렸고, 그 길을 따라 수많은 보부상단과 남사당패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한 수많은 수레들이 힘 좋은 황소들에 이끌려 그 길에 바퀴자국을 냈다. 
 
그 길에서는 희망과 참담함이 서로 교차되기도 했다. 호남과 충청지역 자제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러 갔던 길이 삼남대로였고, 중앙권력에서 밀려난 선비들이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며 귀양길을 떠나야 했던 길도 삼남대로였기 때문이다. 정약용·정약전 형제가 귀양길을 올랐던 곳도 삼남대로였고,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인 제주도로 향할 때 걸었던 길도 삼남대로였다. 이렇듯 옛 삼남대로를 계승하는 삼남길은 단순히 국토종단 도보여행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적인 길이 오늘날 느림의 미학과 결부되어 행복과 치유의 도구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다. 삼남길은 현재 전남구간(해남~장성) 14코스 228km가 개통되어 있고, 올해 5월에는 경기도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다. 아직 충남과 전북지역은 미개통 상태로 남아 있다.

 

 

 

 

▲ 삼남길 보수작업의 작업팀 맨 왼쪽은 <아름다운 도보여행>의 손성일 대장이다. 나머지 두 분은 보수작업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하시러 왔다.

두 분 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었다. 도보여행에 대한 애착과 경력은 이미 전문가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을 할 수 있는가?

한편 현재 개척되고 있는 삼남길이 조선시대에 발간된 지도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필자는 이런 주장이 좀 우려스럽다. 삼남길에 대해서 기계적인 접근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사기로 복사하듯 옛날 길을 복원하라는 건 현실적인 상황을 아예 무시하는 태도라고 판단된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교통혁명을 겪었다. 인력과 축력, 즉 무동력 시대에서 동력기관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교통혁명은 시간에 대한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무동력 시대에는 해남에서 한양까지 30일이었지만 지금은 고속도로로 5시간이다. 현재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이 해남으로 출장을 가면 1박 2일이 걸리지만 조선시대 관헌은 왕복하는데 족히 2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교통혁명은 옛 삼남대로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흙길이었던 곳에 신작로가 닦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신작로가 지금은 국도나 고속도로로 변한 곳도 있다. 군부대가 들어선 곳도 있다.

옛 삼남대로를 기계적으로 복원하면, 국도나 고속도로에서 바퀴 열 개짜리 24톤 트레일러와 함께 길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군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길은 걸을 필요가 없다. 매연을 먹으면서 '힐링'하려고? 소음을 들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려고?

 

 

 

 

 

▲ 삼남길 삼남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남도의 정취에 물들게 된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풍광이 삼남길 곳곳에 즐비해 있다.

 

 

 

 

 

* 전남 해남 삼남길에서 한 컷

 

 

 

 

 

 

 

 

 

  <나무들>이란 네이밍을 걸고 여행관련 블로그를 하다보니, 내 자신을 타인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들었다.

 내가 무슨 특수공작 007스파이도 아닌데... 자신을 너무 뽑내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노출돼도 상관없다. 사실 전에 방송까지 출현을 한 적이 있는데 굳이 꽁꽁 숨길 필요가 있나?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못생겼다는 소리는 안 들어봤다. ㅋㅋㅋ 

 

 그것도 그렇지만 아웃도어와 관련하여 내 포부나 꿈 같은 것을 그려본 적이 있었다. 구체적인 윤곽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마고도를 가고 싶다, 일본 규슈지역으로 자전거여행을 하고 싶다, 베트남 일주 자전거도보여행을 하고 싶다, 백두대간을

다 가보고 싶다... 등등.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난 것들이 아니고 뒤죽박죽이지만 그런 거창한 계획들이 내 머릿속에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던 것이다. 나름대로 아웃도어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포부가 생겼던 것이다.

 

더 정확히는 꿈일 것이다. 'Boy, be ambitious!' 같은 등 떠밀기식 꿈이 아닌 내가 스스로 그려보는 그런 꿈 말이다.

누가 대신 꾸워준 꿈이 아닌 내 스스로가 생각하고 실행하고픈 그런 꿈 말이다. 어쩌면 이게 진정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이나 주위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너의 꿈이 뭐니?'에 대한 답변용 꿈이 아닌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소중한 꿈, 그런 꿈 말이다!

 

 

아래글은 어느 아웃도어 회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내가 작성했던 내 소개글이다. 글 속에 나의 포부와 꿈에 대한 내용이 있다.

 

내 꿈이 뭐냐고? 본문 내용에도 나와 있듯이~ 1만 5천 킬로미터 유라시아 대륙횡단이 바로 나의 꿈이다! 

언제 그 꿈이 이루어질까? when comes true my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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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해미읍성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등산, 자전거, 트레킹 등 아웃도어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포츠에서 하는 이벤트에 자주 노크를 하고 있지요.

작년, 딱 이 맘 때입니다.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제가 삼남길 1기 주자로 참여를 했지 뭡니까! 당시 <나무드리>라는 아이디를 썼었죠. 지금은 개명을 해서 <나무들>입니다. ㅋㅋㅋ 리스트에 올려진 사진도 그때 삼남길 1기 활동 당시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제 소개를 좀 더 해보자면... 저는 등산, 자전거, 트레킹 등 아웃도어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행도 자동차나 기차여행보다는 자전거나 도보여행을 선호한답니다. 즉 무동력(No Moter) 여행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무동력 여행이 쌓이고 쌓이고 하다보니 어느새 벌써 4200Km 정도가 되었답니다.  정확히 카운팅이 된 것은 아니지만 얼추 그 정도가 될 겁니다. 아니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겠고요. 제 스스로에게 떳떳하자는 다짐이 있어서, 허위로 카운팅을 하지는 않지요. 자기 자신도 속이는 사람이라면 아웃도어를 즐길 자격이 없는 법이잖아요!

 

내년 정도가 되면 5000Km 달성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봅니다. 그렇게 오천을 찍으면 꿈의 <유라시아 대륙횡단 1만 5천 킬로미터>에 더 한발짝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제 평생의 꿈이 무동력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한 번 횡단해 보는 것이랍니다. 포르트갈에서부터 대한민국 서울까지, 1만 5천 킬로미터의 대장정! 카아~ 

 

 

 

 


* 완도군 청산도에서: 왼편에 있는 파란 봉고차가 인상적이군요~

 

 

 

 

 

그래도 도전해 봅니다. 도전해 보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일일 테니까요.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제가 다닌 곳은 많아도 입고 다니는 옷이 별로입니다. 누구는 그런 저를 보고,

'보헤미안'이라고 하는데 그건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뭐 아웃도어계의 교복도 아니고...

매일 같은 옷으로 때웠으니...ㅋㅋㅋ  

 

이번 그린트레일은 여타 브랜드에서 개최하는 아웃도어 체험프로그램이 아닌 도시형 아웃도어스타일에 초점이 맞춰진

이벤트라는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필드에서 직접 몸으로 경험한 터프함보다는 도시적 감수성에 아웃도어적인 요소를

결합한 이벤트라고 여겨지네요.

 

제가 필드에서 직접 잔뼈가 굵어진 스타일이지만, 그렇다고 도시적 감수성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옷발이 안 받을 수 있는데, 그건 제가 열심히 한 번 커버를 해보겠습니다.

 

 

 

 

 

* 제주시 추자도: 추자도는 제주 본섬과는 또다른 멋이 있더군요. 선더랜드에서 활동하는 지동원 선수가 추자도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삼남길 개척단 첫빠따 멤버, 나무드리의 후기 



들어가면서: 굉장히 오버한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는데, 저는 최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보면서, ‘아, 이제 우리나라도 서서히 탈근대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흔히 학자들은 한국사회를 근대, 전근대, 포스트모던(탈근대)이 혼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포스트모던에 대한 징표들은 엘리트층에서만 통용되었다는 게 사실이었거든요. 그런 형이상학적 사상의 조류들을 일반 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해체 담론이니, 탈구조화니 하는 것들이 산행을 즐기는 일반 사람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런 골치 아픈 거 생각하느니 그 시간에 오징어 뜯어 먹는 게 훨씬 남는 장사지.

 

‘느림’을 기본으로 하는 걷기여행은 속도 경쟁을 우선시 하는 근대사회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게 개념입니다.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개념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빨리빨리를 외쳐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뭐 느림? 걷기? 니가 배가 불렀구나?” 과거 성장우선주의 시대에서는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200km가 넘는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올레길 투어가 가족단위 관광 상품으로 등장하는 요즘에는 그런 속도 경쟁적인 사고보다 동행과 보폭을 맞출 수 있는 더불어 숲과 같은 생각이 우리사회에도 확산된 게 사실입니다.

 

 

 

 

그만 그만! 제가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요? 후기 쓰는데 서설이 왜 이렇게 기냐고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며칠 전 한겨레신문(2010년 10월 18일자 12면)을 보니 걷기 열풍을 타고 100여개 가량의 길이 개척되었다는 소식이 실려 있더군요. 또 앞으로도 더 개척될 예정이라고도 하고요. 이 기사를 읽고 있자니 우리가 개척한 삼남길은 걷기 열풍에 가장 정점에 위치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사에 소개된 길들은 개별 지역을 중심으로 개척되었다보니 해당 지역에 국한된 루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그쪽 안에는 촘촘한데 그쪽 밖에는 끊겼다고 해야 할까요? 개별지역의 걷기 길이 일반적인 의미의 산이라면 1000리 삼남길은 백두대간과 같이 큰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삼남길은 서울에서 해남까지 국토를 종단으로 연결하는 의미가 강한 것이죠.

 

 

 

선조들이 한양을 가기 위해 걸었던 옛 길. 그런 의미에서 삼남길 루트 개척단은 역사적인 길을 복원한다는 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삼남길 루트 개척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뜻 깊은 족적을 남겼다고 자화자찬을 해도 괜찮을 겁니다.


 

 


참가인원: 한소절님, 정감독님, 마스코트님, 연경님, 무영님, 삼공빠님, 마루금님, 사이다님, 나무드리(나) + 손성일 대장님, 정 실장님, 김기동 주임님 그 외 스텝 분들



이동경로: 광주역 집결 후 버스로 해남 땅끝 관광지로 이동



해남 현지에서의 이동: (첫날) 땅끝 마을→송호 해수욕장

(둘째날) 송호해수욕장→영전


날짜: 2010년 10월 16~17일


 



개척활동: 12인 삼남길 루트 개척단은 활동은 단순히 길 걷기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개척단’이었습니다. 안내자를 따라 길을 걷다가 중요 포인트에서 멈춰 서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통상적인 여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걷기 코스로 생각하고 루트 개척단에 참가를 하셨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1기 멤버들이 주로했던 활동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1. 표지 리본 달기

2. 루트 나무판 달기

3. 방향 화살표 달기

4. 길에 스프레이로 화살표 표시하기

5. 낫 작업으로 보행로 잡풀 제거하기


위에 나열된 작업들을 손성일 대장님, 스텝 분들과 함께 진행해 나갔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같은 1기 멤버인 삼공빠님과 함께 스프레이 작업을 했는데 손 대장님이 주요 포인트를 찍어주시면 그 곳에 스프레이로 화살표 표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스프레이 작업을 할 수 없는 구간, 즉 산림지대로 진입했을 때는 한소절님을 따라 낫으로 잡풀을 제거했습니다. 낫 작업은 벼베기를 할 정도의 큰 근력을 요구하는 건 아니고 벌초 작업정도의 스킬만 있으면 되겠더군요. 한소절님은 백두대간을 세 번이나 완주하실 정도로 대단하신 분인데 그 때문인지 역시 필드에 강하시더군요. 덕분에 낫 작업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답니다.

 

루트 나무판 설치는 개척단 일과 중에 가장 중점을 둔 작업이었습니다. 나무판 자체의 제작 단가가 비싸고, 수량도 얼마 되지 않아 정말 중요 포인트라고 여겨지는 곳에서만 설치를 했답니다. 각 개인마다 3개의 나무판을 전달받아서 그 뒷면에 자신이 소망하는 글귀를 적었답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지요. 저는 ‘행복한 길, 삼남길 걷기’ 이런 문구를 적어봤답니다. 아쉬운 것은 광주에서 해남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미리 나무판과 관련된 공지를 전달받았다면 더 멋진 문구를 생각했을텐데... 해남 현지에서 발대식 이후에 문구를 적으라고 하셔서 좀 어리둥절하게 적었답니다. 다음 기수부터는 좀 더 멋진 문구를 많이많이 적어주시길!

 

 

 

 

 


개선점: 이 부분은 16일 첫날 일정이 끝난 후 간담회 자리에서 마루금님과 다른 멤버분들이 날카롭게 지적하셔서 제가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지만 제 나름대로 보충적인 의견을 개진해 보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동의를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이번 1기 루트 개척단은 좀 정신없이 진행된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런 혼동은 ‘첫빠따’인 1기의 숙명일 수밖에 없을 노릇이겠죠. 그런 초기 혼란 비용을 하루라도 빨리 틀어막는 게 손성일 대장님이나 코오롱 측에도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나름대로의 개선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부분은 다른 멤버들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1. 신속한 일정공지: 홈페이지 상의 공지가 너무 늦었을 뿐더러 개인 이메일 공지도 출발 하루 전날에 도착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시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2기는 10월 30일에 출발하오니 최소한 25일 정도에는 관련 공지가 공고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겠습니다.


2. 버스 이동시간 활용하기: 버스에서의 이동 시간은 참 소중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광주역에서 해남까지 버스로 무려 2시간가량을 이동했는데 그 시간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삼남길 관련 영상물이나 루트개척단의 작업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게도 필요없이 15분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반복학습을 위하여 출발 직후에 한 번, 도착 즈음에 또 한 번 상영하면 더 좋겠네요.

아참, 앞서도 언급했듯이 버스에서 개척단에게 미리 나무판 실물을 보여주고 거기에 담을 문구도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 문구를 남기는 거 좀 ‘뽀대나게’ 문구를 기재하면 좋잖아요!☺


3. 기장 선정 및 소집단 선정: 개척단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열성적인 분들이실 거라는 생각이 들기에 굳이 기장이 필요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기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기장은 멤버들 중 가장 연령이 많은 분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막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소집단을 꾸리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스텝진에서 기계적으로 나누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해당 소집단이 바로 작업조로 변형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4인 1개조 형식으로 하면 총 3개 팀이 나오겠네요. 그럼 해당 팀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한 팀은 나무판 작업팀, 다른 한 팀은 스프레이 팀, 또 다른 팀은 낫 작업팀 등등...

표지 리본 작업은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작업이니 모든 팀들의 공동 임무 사항으로 삼으면 될 듯 합니다.


 

 

 

 


4. 공구함 만들기: 루트 개척단이 단발성에 그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꼭 시정이 됐으면 좋을 듯싶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리본 작업 같은 경우는 가슴 앞쪽으로 맬 수 있는 투명 비닐팩 가방을 준비하여 거기에 리본들을 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장시간 리본들을 들고 가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투명 비닐 팩에는 니퍼도 넣을 수도 있겠네요. 아참 니퍼는 4개 이상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각 팀마다 최소한 한 개 이상씩 지급하는 것이죠. 니퍼가 없어서 대기하는 시간이 생기면 안 되겠죠.

 

또 스프레이 작업이 계속된다면 스프레이 작업 전용 공구함도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가수 싸이가 맥주상자를 들고 ‘씩스팩, 씩스팩’ 그러는데 그 외형으로 만들면 좋겠네요. 대신 주형틀 나무를 끼워 넣는 공간도 확보를 해야겠지요. 조그마한 비닐봉지에 여러 개의 스프레이통과 주형틀을 넣고 다녔더니 완전 고역이었습니다.


 

마치며: 참 장문이네요. 뭐하느라 이렇게 길게 후기를 적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제가 할말이 많았나 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만약 제가 통상적인 인솔자가 주도하는 산행이나 트래킹에 참여했다면 이렇게 장문의 후기를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이번 루트 개척단에서 받은 느낌이 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마디로 삼남길의 얼리 어댑터가 됐기 때문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고 해야겠네요.


자 여기까지는 삼남길에 대한 칭찬이었습니다. 그럼 루트 개척단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이 되어서 쓴소리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현재도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단독이나 소규모로 떠나는 사람들도 많고 대규모 팀을 꾸려 떠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소규모라고 하면 통상 열명 이하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고 대규모라고 하면 모 제약회사의 국토순례단 같은 단체들이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아스팔트 길을 걷고 있을 소규모 도보여행객들을 삼남길로 끌어오는 것은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이상의 대규모 집단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거냐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제가 다닌 길에서는 대규모 도보 순례단을 맞을 인프라가 전혀 없었습니다. 화장실은커녕 식수를 받을 장소도 없었습니다. 또 소규모로 이동한다고 해도 그들이 텐트나 취사도구 같은 캠핑장비로 중무장 하지 않는 이상 여행 종착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삼남길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 순례단도 맞을 수 있고, 소규모 여행자들의 배낭의 무게도 줄여주어야 삼남길이 본 궤도에 들어설 수 있겠지요. 그런 면에서 제주 올레길의 전례를 참고로 삼을 수는 있지만 삼남길이 올레길의 판박이는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제주도는 이전부터 관광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기존의 인프라가 존재했기에 올레길이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는 삼남길의 장기과제가 되겠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닐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따로 사진에 대한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풍경 사진외에는 작업 사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진에서도 나와 있듯이 1기 멤버들이 다녀온 삼남길은 그 자체가 출사지였습니다. 정말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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