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겨레21]
[레디 액션!]

뭐 서평을 쓰자고? 세상살이에 바빠 책 한 권 읽기도 힘든 마당에 책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고? 이거 너무 무리한 ‘레디 액션’이 아닌가. 맞는 말이다. 독서다운 독서를 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책읽기를 넘어 서평을 써보자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온라인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책은 부차적인 정보취득원일지 모른다. 간단한 키워드 검색만으로도 평생 섭렵할 수 없는 자료가 쏟아져나오는데 해당 정보를 찾으려 굳이 책장부터 뒤적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수갑’처럼 콱 쥔 스마트폰은 또 어떤가?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어지러운 온라인 지식을 걸러내고, 심도 있는 정보를 구체화하는 데 아직 책보다 더 뛰어난 지식의 도구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까? 앞서도 언급했듯이 서평을 쓰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서평을 쓰면 적극적으로 책읽기를 하게 된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라도 밑줄을 긋거나 메모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능동적인 독서 행위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능동적으로 독서에 임하다보면 책에 더 집중할뿐더러 지은이가 말하는 바를 잘 깨닫게 된다.

 

 

 

 

 

 

 


 

독자가 천재가 아닌 이상, 아무리 재밌게 읽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책장을 덮을 때부터 한줄 한줄 사라지다 나중에는 자신이 그 책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가물가물해진다. 하지만 서평을 쓰다보면 구체적인 문장은 사라질지언정 저자가 말하는 큰 틀은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서평쓰기는 바다에 던지는 그물과도 같다. 작은 물고기는 놓치더라도 큰 녀석만큼은 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서평쓰기에는 특별한 격식이 필요 없다. 전문적인 평론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손이 가는 대로 작성하면 된다. 예를 들어 책 내용 중에 중점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부분을 기술하고, 왜 그 부분을 부각시켰는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 된다.

잘 작성된 서평을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게재해보자. 그러면 지식나눔이 되는 것이다. 그 서평을 통해 네티즌과 알차게 소통할 수도 있다. 누가 아는가? 서평을 열심히 쓰다보면 인터넷 서평꾼 ‘로쟈’처럼 되어 이름을 날릴 수도 있을지. 물론 그렇게 되려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지만 말이야.

 

곽동운 독자


*‘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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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공산성 금서루

 

 

 

 

* 지난 6월 중순 경에 '공산성-우금티'를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고자 충남 공주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공산성과 우금티는 직선거리로 3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간 하나의 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는 없었답니다. 그래서 공산성과 우금티의 탐방도 버스 투어 형식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부분에 주목을 했고, 어떻게 해서든 두 지점을 연결하여 도보여행을 할 수 있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왜냐? 공산성과 우금티는 공주의 대표적인 역사유적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 일명 '공주역사둘레길'이 탄생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공산성과 우금티는 물론 중동성당, 영명학교, 송장배미 등의 근현대유적들을 탐방할 수 있답니다. 각 코스를 연결하면 둥근 원형을 띈다고 해서 '공주역사둘레길'이라는 명칭을 붙여 보았습니다. 공주역사둘레길은 역사, 풍광, 동식물 등...

 

세 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는 명품트레킹 코스입니다. 정식 개통이 되지 않아 무척 아쉽지만 저도 빨리 여러분들과 함께 이 길에서 역사트레킹을 해보고 싶답니다!

 

 

 

*** 이 포스팅은 그와 관련된 사진포스팅입니다.

 

 

 

 

 

 

 

 

 

 

 * 공산성: 공산성 진남루. 진남루는 공주지역 삼남길의 관문이다.

 

 

 

 

 

 

* 공산성: 금강에서 바라본 공산성 만하루.  파란색 천이 씌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공사중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2013년 11월 경에 찍은 사진이다. 필자가 올해 6월에 공산성을 방문했을 때도 만하루 일대는 공사중이었다.  

 

 

 

 

 

 

 

 * 우금티: 우금티는 황량하다. 얼핏보면 우금티 벌판으로 보일 수도 있다.

 

 

 

 

 

 

 * 우금티: 나무로 만든 조형물들이 쓰러져 있다.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갔을 동학농민군들의 모습이 겹쳐져 마음이 무척 착잡했다. 

 

 

 

 

 

* 우금티: 실제로 동학농민군들이 죽음을 당한 곳은 저 아래 쪽이다. 도로가 보이는 곳이다.  

 

 

 

 

 

* 우금티: 나무를 엮어 만든 조형물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사이로 잡풀들이 파고 올라왔다.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갔을 동학농민군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씁쓸했다.  

 

 

 

 

 

*동학혁명군위령탑: 동학농민 혁명과 잘 어울리는 탑인가?

 

 

 

 

 

 

 * *동학혁명군위령탑: 이 탑도 세월의 흔적을 이기지 못하고 낡아지고 있다.

탑신 중간 부분의 벽돌이 깨어졌다.

 

 

 

 

 

 

*동학혁명군위령탑: 탑두 부분의 빨간 벽돌은 그나마 잘 남아 있다.  

 

 

 

 

 

* 우금티 터널: 현재 우금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이 우금티 터널이다.  

 

 

 

 

 

 

 

* 공산성: 공산성은 산성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 공산성 만하루: 만하루 옆에는 연지라는 연못이 있다. 옆으로 흐르는 강은 금강이다.

멀리 금강교가 보인다. 이렇듯 공산성은 산성트레킹과 강변트레킹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우금티 대나무로 만든 조형물들이 쓰러져 있다.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쓰러진 동학농민군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우금티 고개에서 족구 한 판?  ___2편

 

 

 

 

 

---> 1편에 이어

 


황량한 우금티 벌판, 어떻게 채울까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은 우금티에서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의해 크게 패배했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연합부대보다 병력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죽창을 든 동학군은 개틀링 기관총 등 최신무기로 무장한 연합부대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만다. '우금티 전투'가 아닌'우금티 학살'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동학농민군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것이다.

우금티 전투는 갑오동학농민전쟁의 최정점에 위치한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농민군의 역량이 총집결하여 대규모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군은 패배했고, 뒤이어 전봉준도 사로잡혀 한성으로 압송된다. 이렇게 갑오년의 뜨거운 함성이 메아리치는 우금티. 하지만 그 우금티를 바라보는 필자는 좀 엉뚱한 생각부터 들었다.

'음 여기서 족구 한 판 뜨면 재밌겠군!'

역사적인 장소를 두고 너무 불경한 말을 한 것인가? 사실 필자는 공주여행에서 우금티를 따로 추천하지 않는다. 왜? 너무 한적하기 때문이다. 우금티에 올라서면 이곳이 역사적인 장소가 맞나, 할 정도로 황량함이 몰아친다. 그 흔한 비석조차 없다. 예전에 세워졌던 조형물들은 쓰러져 있고, 여름이면 그 사이를 잡초들이 파고 들어가 무성하게 피어난다. 잡초가 파고 들어간 조형물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안타까움만 더 커질 뿐이다.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쓰러진 농민군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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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티 대나무를 엮어 만든 조형물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사이로 잡풀들이 파고 올라왔다.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갔을 동학농민군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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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혁명군위령탑 동학농민 혁명과 잘 어울리는 탑인가? 한편 이 탑은 건립된지 40년이 넘어서 그런지 무척 낡아보인다. 탑두의 빨간 벽돌은 그런대로 잘 붙어 있지만 탑신 부분의 벽돌은 제거가 됐고, 그 부분이 흉터처럼 남아있다. 좀 흉해 보인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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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고개 아래쪽에 세워진 동학혁명군위령탑은 더 형편없어 보인다. 유신시대에 건립된 탑이라 그런지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담아낼 수 있을지 의구심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또한 건립된 지 오래되어 그런지, 탑이 무척 낡아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탑신 중간의 벽돌이 떨어져 나가 흉해 보인다.

현재 우금티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 조형물(?)은 바로 우금티 터널이다. 2006년에 개통된 우금티 터널은 국도 40호선의 4차선 확장 반대 투쟁의 산물로 등장하였다. 우금티를 가로지르던 기존 2차선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 우금티 고개는 원형이 손상될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공주지역 시민단체들은 도로 확장 반대를 주장하며 대안으로 터널형식을 제안하였고, 그것을 관철시켰던 것이다.

터널이 개통되었고 그 위로는 작은 벌판이 생겨났다. 일명 '우금티 벌판'.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곳은 그저 황량한 벌판일 뿐이다. 족구가 하고 싶어지는 그런 벌판인 것이다.

이 황량한 우금티 벌판을 무언가로 채워야 하지 않겠나? 언제까지 이런 역사적인 장소를 그저 쓸쓸한 공간으로 남겨둘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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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티 터널 현재 우금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이 우금티 터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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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이 우금티 벌판에 돌로 만든 튼튼한 석상 조형물을 올려놓아 보자는 것이다. 큰 동상을 하나 세우자는 것이 아니다. 우금티를 못 넘은 동학농민군의 한을 담아 사람 크기의 동상들을 여러 개 세워보자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진시황의 병마용으로 보일 수 있는 동학농민군 동상들이 우금티 벌판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넘고자 했던 우금티 고개를 돌이 되어서나마 넘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 가서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공산성이든 우금티든 한번 떠나보자. 공산성에서는 즐겁게 산성 트레킹을 해보고, 우금티에서는 갑오년 동학농민군의 결기를 느껴보자. 공산성에서는 백제시대를 떠올려 보고, 우금티에서는 구한말의 상황을 되새겨보자.

그렇게 살아있는 역사 지식을 쌓다보면 머릿속이 튼튼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s. 다음 편에는 공산성과 우금티를 직접 연결하여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일명 '공주역사둘레길'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생각이다.

 

 

 

 

 

 

 

 

 

 

우금티 고개에서 족구 한 판?

[주장] 우금티에 동학농민군들의 동상을 세우자

14.07.07 11:13l최종 업데이트 14.07.07 11:5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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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공산성 진남루. 진남루는 삼남길과 연결된다. 이 길을 따라가면 논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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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공산성 금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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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는 경북 경주와 마찬가지로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다. 그만큼 공주는 도시 자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공산성, 우금티, 무령왕릉, 석장리 유적, 황새울 성지 등등… 이들 중에서 무령왕릉을 제외하고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곳은 공산성과 우금티일 것이다. 실제로 이 두 장소는 공주를 대표하는 곳이다.


한편 공산성과 우금티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웅진성에서 산성공원까지, 공산성의 이름 변천사

앞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있고, 뒤로는 크고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현재의 공산성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475년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현 공주)으로 천도했을 때 이곳은 왕성(王城)이었고, 536년 사비(현 부여)로 천도했을 때는 북방성으로 불리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660년, 당나라 소정방에 의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백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때, 의자왕이 있던 곳도 사비성이 아닌 바로 이곳 공산성이었다. 당나라가 옛 백제땅에 세운 웅진도독부가 있던 곳도 공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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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공산성은 산성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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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시기 공주는 신라 9주의 하나인 웅천주였고, 공산성의 이름도 웅천성으로 바뀌게 된다. 공산성이 지금과 같은 '공산성'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시대 때부터였다. 940년(태조 23년)에 지방제도를 정비하게 되는데 웅천에서 공주(公州)로 명칭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때 비로소 공산성(公山城)이라는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된다. 공(公)자형 산에 성이 축조됐다고 하여 공산성이 된 것이다. 공산성이 자리잡은 산은 '공산'이다. 변산반도의 '변산'처럼 '공산'도 한 글자 산이다.

공산성의 현재 모습은 조선시대에 그 틀이 잡혔다고 볼 수 있다. 1602년 충청감영이 충주에서 공주로 이전했다. 이후 공주는 호서지방의 중심 고을이 되었고 공산성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토성(土城)이었던 공산성이 튼튼한 석성(石城)으로 축조된 것도 조선시대였다.

한편 1624년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산성으로 피신을 왔는데 그 이후로는 '쌍수산성(雙樹山城)'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인조는 성 안에 있는 나무 두 그루 아래에서 반란이 진압되길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다 이괄이 부하의 배신으로 참수됐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그 나무 두 그루(쌍수)에 정삼품의 작위를 내린다. 그리하여 '쌍수산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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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성 금강에서 바라본 공산성 만하루. 파란색 천이 씌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공사중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2013년 11월 경에 찍은 사진이다. 필자가 올해 6월에 공산성을 방문했을 때도 만하루 일대는 공사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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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는 공산성에 공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곳에서는 각종 체육대회나 야유회가 개최되었다. 그래서 일제시대에는 산성공원(山城公園)으로 불리기도 했다.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어 조선의 궁궐을 격하시켰듯 공산성에 공원을 만들어 그 위엄을 깎아내렸던 것이다.


공산성이 수많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성을 둘러싼 역사가 '드라마틱' 했다는 뜻일 것이다. 현재의 공산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벽 일부가 내려앉아 등재까지는 가시밭길이다.

 



공주성, 동학농민군들이 가고자 했던 그 성

왕성, 웅천성, 쌍수산성 등등… 지금까지 공산성과 관련된 수많은 다른 이름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빠진 명칭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공주성이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1894년 10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들은 논산을 출발하여 기세등등하게 북상하고 있었다. 그들이 점령하고자 했던 곳은 공주성이었다. 그렇다. 지금의 공산성인 공주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진격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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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티 우금티전투가 있었던 우금티. 사진에서도 보이듯 무척 황량하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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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언급했듯이 당시 공주는 감영이 있던 충청지방의 중심지였다. 감영은 관찰사가 주재하던 곳으로 지금으로 치면 도청(都廳)소재지이다. 조선시대 크고 작은 변란이 있었지만 이괄의 난을 제외하고는 한 도(道)의 감영이 함락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1894년 4월 27일, 동학농민군들이 전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조선 정부는 깜짝 놀라 '멘붕'에 빠졌다. 하지만 당시 조선정부는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결국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을 한다.

청나라는 조선정부의 공식적인 파병 요청을 받고 아산만에 출병을 한다. 이에 일본도 텐진조약을 빌미삼아 인천으로 군대를 급파하게 된다. 그나마 청나라는 출병 요청을 받았다지만 일본군은 왜 우리 땅에 들어왔나? 들어왔으면 전주성이 있는 남도로 진격을 해야지, 왜 인천으로 향했단 말인가?

뚱딴지같은 일본의 출병은 6월 하순에 있은 경복궁 점령으로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그들은 조선사회의 평안을 위해 이 땅을 밟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평화유지군'이 아니라 그저'침략군'이었을 뿐이다. 경복궁 점령 이후,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나라군을 기습하여 청일전쟁을 벌인 것을 보면 그 침략야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뒤이어 발발한 청일전쟁에 대해 동학농민군은 크게 반발했다. 그래서 2차 봉기에 나서게 됐고 공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북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우금티에서 관군(3천명)과 일본군(2천명)의 연합부대와 맞서게 된 것이다.

 

 

 

 

 

 

 

 

 

 

 

 

 

 

 

 공주역사둘레길  

 

● 트레킹을 하며 공주의 역사를 탐방하다! 

 

 

 

 

 

 

 

 

 

지난 6월 하순경에 충남 공주를 일주일동안 방문을 했습니다. 작업실(?)이 있어 전에도 충남 공주는 자주 방문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한 작업을 행하기 위하여 일주일 정도 머무르게 되었답니다.

 

무슨 작업이었냐고요? 공주에 새로 역사트레킹 코스를 하나 개설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료가 됐답니다. 즉 새로운 역사트레킹 코스가 하나 더 추가된 셈입니다.

 

사실 충남 공주도 경북 경주와 마찬가지로 땅만 파면 유물이 솓아져 나오는, 그런 고장입니다. 역사와 전통의 고장이라는 것입니다. 공산성, 무녕왕릉, 석장리 유적, 우금티, 금강 등등... 금강을 끼고 있는 공주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관찰사가 주재한 곳이기도 합니다. 동학농민군들이 우금티를 넘으려고 시도한 것도 공주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1937년, 대전으로 도청이 이전하기 전까지 충남도청이 있던 곳도 충남 공주였습니다.

 

 

 

 

 

 

 

 

 

 

 

 

 

공주는 이렇게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역사유적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곳입니다. 반가운 것은 그런 유적들이 도심에서 가깝게 위치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 착안하여 이번에 일명 <공주역사둘레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개설해보았습니다. 아직 갓 태어나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이 길은 풍부한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품고 있는데다 풍광까지 일품이어서, 많은이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길을 개척하고자 일주일 동안 100km 이상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갔던길 다시 가고, 왔던 길 돌아오고, 그러다 길도 잃어 버리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좋은 길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물론 이 공주역사둘레길도 없던 코스를 제가 직접 땅파고, 롤러질을 해서 개척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길의 일부 구간은 공주대간이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존의 등산로를 잘 이용하여 역사트레킹 코스를 개설한 것입니다.

 

공주역사둘레길을 통해, 예전에는 개별적으로 방문했던 공산성과 우금티를 트레킹을 통해 한 번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조금 길이가 길기는 하지만 공산성과 우금티를 트레킹을 통해 탐방하는 것 자체가 무척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아래는 공주역사둘레길의 세부구간입니다. 약 14km 정도 되고, 이동시간은 5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충남 관광안내판(신관동 고속버스터미널) ▶ 금강수변 ▶ 금강교 ▶ 공산성 ▶ 중동 성당

▶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 영명교 ▶ 소나무숲길 ▶ 삼문사 ▶ 감시초소 ▶ 금학생태공원 ▶ 우금티 ▶ 웅진동 ▶ 송장배미

 

 

 

 

 

 

 

 

 

 

 

 

 

 

 

 

 

 

 

 

 

 

 

 

 

 

 

 

 

 

 

 

 

 

 

 

 

 

 

 

 

 

 

 

*공산성

 

 

 

 

 

*공산성:진남루

 

 

 

* 우금티: 우금티터널

 

 

 

* 코스명: 공주역사둘레길

 

 

 

* 이동경로: 금강교 ▶ 공산성 ▶ 중동 성당 ▶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 영명교 ▶ 소나무숲길 ▶ 삼문사 ▶ 감시초소 ▶ 금학생태공원 ▶ 우금티 ▶ 웅진동 ▶ 송장배미

 

 

 

 

* 역사유적:

1. 공산성: 백제의 수도였고, 조선시대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공산성에 대한 설명

2. 중동성당과 영명학교: 공주지역의 근현대유적 중심으로 설명

3. 우금티과 송장배미: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설명.

 

 

 

 

* 특징: 고대 유적부터 근현대 유적까지, 트레킹을 통해 답사여행을 할 수 있다. 더불어 공주지역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도 있는 명품트레킹 코스다.

 

 

 

 

* 이동거리: 약 14km

 

 

 

 

* 예상 소요시간: 약 5시간 (공산성 탐방, 휴식시간 포함)

 

 

 

 

* 난이도: 중 ☞ 일부 구간은 공주대간이라고 불리는 산길을 이용함. 경사도가 있는 구간도 있음.

 

 

 

 

* 방향찾기(표식물): 없음. 차후 표식작업 진행 예정.

 

 

 

 

* 이용불가 계절:

 

 

 

 

* 특이사항: 트레킹 중간에 고라니 같은 산 짐승들을 만날 수 있음. 주의를 요망함.

 

 

 

 

* 교통편:

1. 충남 공주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기준으로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됨.

2. 공주역사둘레길은 IN과 OUT이 시내권에서 이루어짐. 그래서 트레킹 종료시 터미널로 이동하는 것이 용이함.

 

 

 

* 후기:

 

 

 

 

 

* 중동 성당

 

 

 

 

 

* 영명학교

 

 

 

 

*측우기: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 산길: 금학생태공원 가는 길

 

 

 

 

 

* 금학생태공원

 

 

 

 

 

* 우금티

 

 

 

 

 

 

* 소나무 숲길

 

 

 

 

 

 

 

 

 

 

*우금티

 

 

 

 

 

 

 

 

 

* 우금티

 

 

 

 

 

 

 

 

 

 

 

 

 

 

 

문창극은 조선총독부 총리로 지명됐는가?

 

 

'야동 학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야한 동영상들이 탄압을 받는다는 거야?'

아니었다. '아동학대'를 '야동학대'로 잘못 본 것이다. 요즘 들어 난독증 때문에 뒷골을 몇 번 잡은 적이 있다. 아직까지는 팔팔한 청춘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필자도 점점 주름살이 짙어지는 나이 대에 진입한 것이다.
한편 언론인 문창극 씨가 총리로 지명된, 당일 날에는 이런 일까지 겪었다.

'총리 후보자? 일본의 아베 총리가 권좌에서 물러났나? 얼마전에 북한과 스톡홀롬에서 납치피해자에 대한 당국간 회담을 했잖아. 또 요즘은 집단자위권 문제 때문에 발바닥에 불나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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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극 총리 지명자에 대한 착시현상


착시현상이었다. 인터넷 창을 여러 개 띄어놓고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면 뉴스를 번갈아 가면서 봤더니 그런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고, 문창극 지명자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리 그가 나와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아베 신조와 엮어,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억지로 엮는다면 필자는 '적폐'로 낙인찍힐 것이다. 말 그대로 '개조'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필자는 문 후보자에게 미안한 감정을 덜어내고 가뿐한 마음으로 이 기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문 후보자가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언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 후보자는 이를 특종보도한 KBS를 향해 고소를 준비한다고 했다.
이렇게 문 후보자가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니 필자가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이크 없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 그 정권에서 잊혀질 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망언들과 동영상에서 드러난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한 우리 민족 DNA'
'일본지배,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
'일본이 이웃인 건 지정학적인 축복'
'제주 4․3은 폭동'

 

 

 


# 비겁하게 윤치호 뒤에 숨지 마시라!

제주 발언을 제외하고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우익세력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지 않은가? 조선은 고대 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스스로 문명개화를 할 수 없으니 일본인들이 '시혜'를 베풀어 문명국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100년 전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나?

문 후보자 측은 위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윤치호가 말한 것이고 자신은 그것을 인용했을 뿐이라며, KBS에 대해 악의적인 편집을 했다면서 고소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다.

"왜 하필 친일 매국노인 윤치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인용하셨는가? 왜 솔직하지 못하고 윤치호 뒤로 숨으시는가? 제주 4․3 폭동 발언도 윤치호가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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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문 후보자는 '강연은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것이어서 일반인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다'고 반론을 한다. 필자는 이런 시각이 무척 우려스럽다. 문 후보자 말에 의하면 교회 정서와 일반인의 정서 사이에는 간극이 명확해진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를 더욱 확장하면 교회는 친일 매국노들과 매카시즘의 '해방구'가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을 얻게 된다. 왜? 교회 안과 일반인들의 정서가 다르니까. 무엇을 하더라도 교회가 방패막이가 된다는 뜻이 아닌가?

한편 필자는 그 강연을 들었던 온누리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문창극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쌍수 들고 환영할, 그런 강연을 할 때 여러분들은 뭐하셨습니까? 혹시 '아멘'하고 화답한 거 아닙니까?"

 

 


# 총독부 총독으로 지명 받으셨나?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사과 받을 필요 없다'는 올해 4월, 문 후보자의 서울대 강연 내용을 12일 밤 인터넷 기사로 읽었다. 그 기사를 읽은 후, 필자는 착시현상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필자가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제대로 봤던 것이다.

아무리 주어가 빠졌다고 하더라도 광운대 강연 동영상으로 MB는 BBK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윤치호의 뒤에 숨는다고 하더라도 문창극의 발언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주장과 일맥상통 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어선 동학군들이나 혹은 독립군들이 문창극의 발언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시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한 우리 민족 DNA, 일본지배는 하나님의 뜻,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지명 받었어? 총리가 아니라 총독으로 착시현상 겪고 있는 거 아니야?"    

 

 

 

 

 

 

 

 

 

 

 

 

 

태어나면서 가장 많은 사과했던 그 날, 잊지 못해요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에서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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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해수욕장 속초해수욕장 앞에 있는 조도. 처음에는 이런 낭만적인 여행, 낭만적인 트레킹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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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쭐해 있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 6월 3일, 오랜만에 필자의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오름)에 게재됐던 것이다.  그 글을 작성한 필자의 의도가 표심으로 연결된 것 같아 무척 의기양양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서울시교육감선거에서 고승덕 후보가 물을 먹지 않았던가! (관련기사 :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

"푸하핫! 선거의 여왕이 있다는 데 난 이제부터 선거의 왕이다! 그럼 나도 정치컨설턴트나 해볼까?"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필자도 다시 역사트레킹을 리딩해야 했다. 선거가 끝난 이틀 후인, 6월 6일에 강원도 속초에서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을 주최해야 했던 것이다. 

<집밥> 소셜다이닝 홈페이지서 속초 해변길 트레킹 모집

속초해변길 트레킹은 <집밥>이라는 소셜다이닝 홈페이지에서 모집했다. <집밥>은 홀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1인 가족이나 자취생들을 위한 모임으로, 파편화된 도시적인 삶을 극복하고, 서로 식사를 나누며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보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공유기업이다. 그렇다고 <집밥>이 밥만 먹는 모임은 아니다. 자전거 타기나 버스투어, 악기 연주 같이 음식과는 상관없는 모임들도 개설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자도 <집밥>에서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 모임을 개설했다. 모임 회비로는 1만 7천원을 책정했다. 이렇게 회비를 걸어놓아야 중구난방식의 참여를 막을 수 있을뿐더러 참가자들에게 행동식도 제공할 수 있다. 6월이었지만, 30℃에 육박하는 날씨가 많았던 터라 일찍 모집완료가 되었다. 초여름, 동해바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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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해수욕장 외옹치에서 바라본 속초해수욕장. 푸른 동해바다와 황토빛 모래사장이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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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정도 참가 신청했는데, 출발 전날 그 인원에 맞춰 간식을 샀다. 장시간 트레킹에 필요한 영양바, 초코바, 영양갱, 소시지, 육포, 음료수 등을 샀다. 품목이 다양해서 그랬는지 무게도 엄청나서 비닐봉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마트에서 사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렇게 저렴하게 샀더니 머리 한 구석에서는 이런 '창조'적인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이렇게 구매를 해도 돈이 남네! 그러고 보니 다 지출해도 고속버스비, 저녁식사비, 담배값 정도가 더 남잖아. 야 이거 남는 장사네. 창조경제가 따로 없구나! 푸하핫~ 이거 완전 창조경제야! 창조경제!' 

모임의 집결지는 속초시 동명동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나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 서울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으로 전락 될 수 있기에 일부러 속초시에서 직접 만나기로 했다. 이 말은 모임의 마스터인 필자를 포함한 참가자 전부가 다 다른 고속버스로 개별적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버스로 이동을 할 때는 오직 문자나 카톡(모바일 메신저)으로만 대화가 가능할 뿐이었다. 또한 그 대화의 주관자도 리더인 필자라는 것이다. 왜? 해당 참가자들의 연락처는 모임지기인 필자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남터미널로 

6월 6일, 오전 8시.

날씨는 화창했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강변역으로 향하는 전철은 한산했다. 10인분에 가까운 간식과 음료를 넣은 배낭이 무겁기는 했지만 그래도 느긋하게 전철에 앉아 갈 수 있었다.

'간만에 동해바다도 보고, 돈도 벌고... 오늘 제대로 창조경제 좀 해보자고!'

필자는 전철을 타는 내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총 얼마나 이익을 보려나? 

오전 9시경, 동서울터미널 매표소.

"예? 표가 없다고요?"
"지금 당장 떠나는 건 없고 2시간 정도 지난 후에 출발하는 건 있어요."
"두 시간 후면...?"
"오전 11시 차에요."
"왜 이런 거에요. 왜 이렇게 빨리 매진 됐어요?"
"오늘이 연휴잖아요. 강원도 쪽은 차들이 매진된 게 많아서 증차한 노선도 있어요. 끊으실 거에요?"
".... 그거라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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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배 유명한 아바이마을의 갯배. 속초해변길 트레킹에서는 갯배를 타고 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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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 시간은 오후 1시경이었다. 속초까지 거의 2시간 정도니 꾸역꾸역 가도 좀 늦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모임의 주관자가 지각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2시간 동안 터미널 대합실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차라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10시 이전에 차만 타면 그래도 해볼 만한 '게임'이었다.

"이거 환불해주세요."
"수수료 10%가 공제되고 환불됩니다."
"......."


터미널마다 다른가? 다른 지역터미널에서는 수수료를 받지 않던데... 그래도 수수료보다는 시간 약속이 더 중요했다. 환불을 하고 그 길로 20분 거리에 있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속초까지 가는 제일 빠른 차표 하나 주세요."
"제일 빠른 게 10시 50분차인데 괜찮으세요?"
"예? 그보다 빠른 건요?"
"다 마감됐어요."


터미널에 나타난 관광버스

그냥 동서울터미널에 있을 걸 그랬다. 외형적으로는 10분을 번 것처럼 보였으나 강남보다는 동서울터미널이 더 동쪽인데다 강원도로 진입하는 길이 더 수월하기에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시간을 잃어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네. 참가자들한테 집합시간을 늦춰달라고 해야겠다. 미안하지만 말야.'

참가자들은 흔쾌히 수락해 줬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차가 많이 밀린다는 멘트를 남겼다.

'밀리면 얼마나 밀리겠어. 5일 빼면 투표일부터 8일까지 계속 연휴인데. 여행객들이 많이 분산됐겠지. 난 오늘 트레킹 리딩만 잘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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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항 속초해변길의 종착지는 대포항이다. 대포항은 어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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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버스 출발시각이 되자 그 마음은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속초 예상 도착시간이 4시간 30분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플랫폼에 서 있는 버스는 정식 고속버스가 아니라 'XX관광'이라는 로고가 선명한 일반관광버스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났으면 터미널에서 일반 관광버스까지 '대절'하여 승객을 실어 나르겠나! 

서울을 빠져나가기 전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 버스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에서부터는 아예 도로에 멈춰 섰다. 그렇게 가다가는 오늘 내로 못 도착할 것만 같았다. 일이 완전 꼬이게 된 것이다. 

6일 현충일을 맞아 속초 동명항 입구에 서 있는 '수복기념탑' 앞에서 설명하려 했던 한국전쟁과 현재의 동북아 정세는 저 멀리로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속초해수욕장 옆에 불쑥 튀어나온 외옹치에서 설명하려 했던 무동력선을 이용한 재래식 문어잡이 방식도 역시 저 멀리로 흩어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 카톡 단체 채팅방은 무기력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말들에 휩싸인 필자는 가시 방석 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 그런 무기력 말들이 칼날이 되어 필자를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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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항 작은 항구인 외옹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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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칼날이 날라 왔다. 유독 날카로운 카톡 메시지를 날렸던 참가자가 있었는데 그 분이 결국 이런 멘트를 날렸던 것이다.

"환불해줘요!"

그 분은 왜 '교통량 예측을 하지 못했냐'는 원망의 메시지도 함께 남겼다. 필자는 죄인처럼 연거푸 사과의 멘트를 날려야 했다. 교통량을 예측하지 못한 것까지도 사과해야 했다. 모바일 상이기는 했지만 태어나서 그렇게 사과를 많이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속초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이었다. 무려 6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편을 알아봐야 할 처지였다. 참가자들에게 둘러싸인 필자는 청문회에 불려나온 것처럼 진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가야 했다. 다행인건지 아닌지, 그 날카로운 멘트를 날린 분은 미리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속초해변길 트레킹은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도 못하고 종료가 됐다. 참가자들의 원망이 섞인 환불명세서를 받아들고... 10인 분에 가까운 행동식은 현지에서 풀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울로 가져왔다. 간식들을 먹으며 계산기를 두들겼다. 참가비를 환불하고, 은행수수료를 부담하다보니 적자였다. 내 고속버스비에 저녁식사는커녕 5만 원 이상이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이걸 어쩌냐. 마이너스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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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옹치 모임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렇게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뒤로 보이는 곳이 외옹치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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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십니까?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 속초해수욕장: 속초해수욕장 앞에 있는 조도. 처음에는 이런 낭만적인 여행, 낭만적인 트레킹을 꿈꿨다.

 

 

 

* 속초해변길: 마스터를 제외한 유일한 남성 참가자. 이 분과 함께 속초해수욕장을 거닐었다. ㅋ

 

 

 

지난 6월 6일.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을 하려고 강남터미널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막혀봐야 얼마나 막히겠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속버스에 올랐지요. 그런데 헉!이었습니다. 무슨 추석날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차들이 꽉 막히다니요! 결국 속초까지 6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트레킹은 하지도 못하고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역사트레킹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날이었습니다. 이 일을 교훈삼아 다음에는 제대로 역사트레킹을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역사트레킹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본 포스팅에 사진들에 나타난 장소들은 <속초해변길> 코스에 포함된 곳들입니다. 한마디로 속초해변길은 무척 걷기 좋은 길이라는 겁니다. 풍광도 좋고, 걷기도 좋은 곳이라는 거죠.

 

 

 

 

 

 

 

 

 

 

 

 

* 외옹치: 모임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렇게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뒤로 보이는 곳이 외옹치다.

 

 

 

 

 

 

* 대포항: 속초해변길의 종착지는 대포항이다. 대포항은 어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 갯배: 유명한 아바이마을 갯배.

 

 

 

 

*외옹치항: 작은 항구인 외옹치항.

 

 

 

* 속초해수욕장: 외옹치에서 바라본 속초해수욕장. 저런 멋진 장면을 꿈꾸고 트레킹에 나섰는데...

 

 

 

*외옹치: 외옹치에는 경작지도 있었다. 푸른바다와 황토빛 경작지가 서로 대비되어 눈을 더 즐겁게 해준다.

 

 

 

 

 

 

 

 

 

 

---> 소셜다이닝 <집밥>에 올린 삼성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공지글입니다.

공지에 나온대로 6월 14일에 계곡트레킹을 하러 갑니다! 잼나게~ㅋ

 

 

 

 

관악산( 삼성산) 숲길 트레킹? 혹은 계곡트레킹___ 삼성산 역사트레킹!



 

* 더운데 웬 트레킹이냐고요? 때양볕에서 걷다 일사병 날 수도 있다고요?

ㅋㅋㅋ

하지만 숲길이나 계곡길을 걸으면 여름에도 트레킹을 할 수 있답니다.

숲길에서는 일사병이 일어나지 않거든요. 


그렇습니다. 이번 삼성산 역사트레킹은 삼막계곡이라는 숲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래서 한 여름에도 트레킹을 할 수 있답니다. 


삼성산 역사트레킹은 지난 5월 10일에 이미 한 번 실시를 했었답니다. 

그때 반응이 좋아서 한 번 더 해보려합니다. 사실 이 삼성산역사트레킹을 끝으로

상반기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됩니다. 날씨가 너무 덥거든요. 올 가을에나 다시 재가동

될 거 같습니다. 



중간 중간에 사진 촬영이 있습니다. 이 점 양지해 주세요. 사진 촬영이 별로인 분들은
스키마스크 착용을 추천 드립니다!~ㅋ 



아래는 지난 5월 10일 모임에 사용했던 초대장인데 재활용(?) 해 봅니다!


***


혹시 그거 아세요? 서울 인근에 불국사보다도 더 오래된 사찰이 있는 거?

그 절이 어디냐고요? 바로 삼막사라는 사찰입니다. 

원효, 의상, 윤필의 세 성인께서 창건을 했다해서 삼막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답니다.


한편 삼막사가 있는 산의 이름은 삼성산인데 그 세 분이 이 곳에서 수도를 했다해서

삼성산이라 불립니다. 사실 삼성산은 관악산의 지산입니다. 바로 옆동네 산이라는 뜻입니다.

통칭으로는 그냥 다 관악산으로 불리지요. 


이렇게 유서가 깊은 곳이라 그런지, 이 삼막사는 진관사, 불암사, 승가사 등과 

함께 서울의 4대 명찰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약간 강원도 산골짜기 분위기가 풍겨집니다. 또 산 정상 부근에 자리잡은 

사찰의 모습도 정감 있어 보입니다.    


아참 이번 트레킹에서는 만안교 탐방도 합니다. 만안교는 정조대왕 시절에 건립된 돌다리인데, 지금도

그 동네사람들은 만안교를 지나다닙니다. 박물관에 있는 다리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로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다리가 바로 만안교랍니다. 


한가지 더: 조선 후기시대에 제작된 다리도 직접 걸어보고, 삼막사를 

탐방을 하니, 이번 역사트레킹의 명칭이 <삼성산 역사트레킹>이 되었답니다.



일시: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오후 1시


집결장소
:  지하철 1호선 관악역 1번 출구

이동경로:  관악역 ▶만안교  경인교대 입구 삼막사 계곡  삼막사  ▶ 염불암 ▶ 안양예술공원 

이동거리: 약 8km /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쉬는 시간 포함)

 

난이도: 중 ---> 계곡트레킹입니다. 체력이 필요합니다만 그래도 지난번 참가자 분들도 무리 없이 다 완주를 했답니다. 


준비물: 여분의 옷, 배낭(백팩), 트레킹화(등산화) ---> 운동화를 신어도 상관없으나 가급적 트레킹화나

등산화를 준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주의점: 장시간 트레킹을 하는 것이니 가급적 편한 복장을 해주세요. 
출발 즈음에 가볍게 스트래칭을 할 예정입니다. 아웃도어를 하기 전에는 꼭 스트래칭을!!!


참고사항:  당일날 햇살이 강할지 모르니 모자나 썬크림 등을 준비해주세요. 해가 떨어지면 추워집니다.

여분의 옷도 준비해주세요!

 


비용: 비용은 8천원입니다. ---> 식수, 간식, 리딩비 , 집밥 수수료 포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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