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성한 <혁명적인 루소와 보수적인 고승덕의 공통점>이라는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배치됐더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서 발행이 됐네요. 더군다나 본문 내용도 많이 바뀌어졌더군요. 메인에 걸어줘서 고맙기는한데 그래도 최대한 원작성자의 의도대로 원문을 살려줘야 하지 않을까?

 

제가 작성한 원문글은 원고지 21매 분량으로 감상적인 면이 많은 에세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는 <정치적 주장>으로 바꿔버렸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그 신문사의 편집권을 존중하지만 필자의 의도대로 글을 최대한 살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힘없는 시민기자의 서러움이라고 할까요?

 

위에 보시면 빨간색 네모난 박스처리를 된 것이 제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캡처를 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더 큰 것들이고요. 

 

 

 

 

 

 

 

 

 

 

 

 

 

 

곽작가도 집필에 참여한 <가는 곳마다 추억 꾸러미 보는 곳마다 이야기꽃> 이 정식으로 발간 됐네요. <가는 곳마다...>는 전남 지역의 여행 명소들을 소개한 여행책자입니다. <가는 곳마다...>는 전남도에서 발간을 했는데, 지자체에서 발간한 가이드북 형식의 여행책자치고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아 보입니다. 해당 여행지에 대해 단순 나열식의 소개가 아닌 스토리텔링 위주의 동선 구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눈에 띄지만...

 

곽작가는 강진, 해남에 있는, 삼남길에 녹아 있는 역사트레킹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냈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보도자료문에는 제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그래서 서운하다는...ㅋㅋ

<가는 곳마다...>는 공저지만 이제 곧 저의 단독 저술도 나올 수 있겠지요? 그때는 저도 출판기념회와 출판기념 역사트레킹을 동시에 진행해 보고 싶네요! 그러면 정말 재미나겠네요~!  

 

 

 

 

 

 

 

남도여행기 '가는 곳 마다 추억꾸러미' 발간

뉴시스 | 맹대환 | 입력 2014.04.14 14:10

【무안=뉴시스】맹대환 기자 = 전남도는 여행작가와 일반인들이 남도의 매력을 표현한 여행기 '가는 곳마다 추억꾸러미, 보는 것마다 이야기꽃'을 발간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책자 발간에는 여행작가 17명, 블로거 10명, 일반인 22명 등 총 49명이 참여했으며 역사, 생태, 슬로시티, 섬, 음식 등 남도만의 고유한 멋과 풍광을 이야기 형태로 30편을 수록했다.

 

 

여행작가 양영훈이 추천하는 '꽃섬 하화도'는 봄꽃이 하늘거리는 해안길을 따라 파도소리를 들으며 섬을 한 바퀴 도는 순환형 트래킹코스를 돌고 난 후 갯돌해변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여행작가 홍순율이 걸었던 '다산초당 가는 길'은 두충나무 숲길을 지나 나무뿌리들이 드러난 이채로운 길로 이어지는데 그 길을 따라 초당까지 걷는 길은 이 길이 유배의 길이었음을 잊을 만큼 솔향이 가득하다.

여기에 여행객들의 남도여행 체험이 녹아 있는 포토에세이 22편, 블로거들의 남도사랑 이야기 10편이 실려 있다.

또 남도의 감동 여행기를 묶어놓은 '이야기땅 남도에 가고 싶네' 독서 감상문 공모전 입상작 7편도 추가로 실렸다.

김명원 전남도 관광정책과장은 "이 책자는 여행 전문작가에서부터 일반인의 여행기를 한데 모은 책으로 여행 정보뿐만 아니라 읽을수록 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따스하고 포근한 남도 이야기를 따라 가족끼리, 친구끼리 추억여행을 시작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 이야기책은 남도여행길잡이 누리집(www.namdokorea.com)에서 누구나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고 전남관광정보센터(061-285-9045)를 통해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다.

mdhnews@newsis.com

 

 

 

 

 

 

 

 

20년도 넘은 잡지책...가, 이젠 가란 말야!

아끼던 <월간항공> 버리던 날

 

14.04.05 15:48l최종 업데이트 14.04.05 15:4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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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항공 20년도 더 지난 비행기 잡지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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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헤어질 때가 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년이란 시간을 함께했으니 이제는 떠나보낼 때가 된 것이다. 헤어질 때는 냉정해지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그런 독한 놈이 되는 거야!

"이제 넌 나한테 필요 없어. 가란 말야! 떠나버리라고!!!"

 

 


책벌레들의 커다란 고통: 책 버리기

예전에 지인분이 쓰신, 책과 관련된 에세이를 본 적이 있다. 책과 관련된 에세이라, 얼핏 '독서 예찬'과 같은 통상적인 주제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책장에 가득한 책들 중에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남겨둘지에 대한 단상들을 풀어낸 글이었다.

책벌레들에게 책을 버리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책을 쌓아둘 곳은 한정되어 있기에 어쩔 수없이 책을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킬 수가 없듯이 모든 것들을 다 담아둘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 분 말에 의하면 잡지책이나 소설류들을 버리는 데는 큰 고민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전공서적이나 학술서적 코너에 들어서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것이다. 처분을 해야겠는데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한편 에세이들 중에서도 저자 사인이 적혀 있는 것들은 쉽게 처분 대상에 올리지 못해 곤혹스럽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사실 그 지인 분은 대학교수다. 그래서 그 분의 서재는 일반적인 독서인들의 서재와는 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독서인이든 대학교수든 책을 버리는 순서는 비슷해 보인다. 처분 일순위로 잡지가 지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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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항공 오른쪽은 1991년 5월호다. 노태우 정권 때 진행된, KFP 사업에 선정됐던 F-16에 대한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놓았다. F-15K를 넘어 이제 F-35가 우리공군에 차세대 전투기로 쓰일 예정이라 사진이 무척 낯설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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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순위로 지목된 잡지를 필자는 20년이 넘게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최근 10년 동안은 단 한 번도 펴보지 않고 그냥 그대로 한쪽 구석에 잘 모셔두었다. 그러다보니 10년치 먼지가 그대로 쌓이게 됐고 그 뒷면은 바퀴벌레 등의 좋은 안식처가 됐다.

 



'비행'소년의 욕구를 받아주었던 <월간항공>

그 잡지들은 <한겨레21>이나 <창작과 비평>같은 유명한 시사, 문예잡지가 아니었다. <월간항공>이라는 비행기 잡지였다. <월간항공>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에 창간된 잡지로 우주항공 분야의 전문지로 탄생했다. 지금이야 자동차, 아웃도어, 뷰티, IT 등등 각양각색 다양한 분야의 잡지가 발간되어 세세한 정보들을 독자들에게 실어 나르고 있지만 1989년 당시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지난 지 겨우 2년 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이라 그랬는지 아직 세상은 다양한 욕구를 담아낼 그릇들이 준비되지 않았었다. 영화잡지인 <씨네21>이 1995년에 창간됐듯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욕망들이 본격적으로 잡지형식의 매체로 투영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이후부터였다.

그런 의미로 <월간항공>의 등장은 상당히 신선했다. 당시는 인천공항도 없었고, 비행기 여행도 일반적이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멋진 비행기 사진이 걸린 <월간항공>를 보고 있던 필자의 마음은 크게 요동쳤다. 이미 옆구리에서 날개가 뻗어져 나와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필자도 한 때는 '비행' 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왔던 이카로스처럼 크게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고 싶었던 '비행'소년이었다. 

그런 '비행' 소년의 욕구를 <월간항공>이라는 잡지가 채워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욕구'들이 쉽게 채워지지는 않았다. 잡지 내용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의 지식으로는 <월간항공>의 전문 용어들을 이해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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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항공 20년도 넘게 집에 있다보니 먼지도 많이 쌓이고, 때도 많이 탔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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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문제였다. 하긴 당시 고등학생이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헌책방 투어에 나섰다. 어차피 속보성을 획득하려고 비행기 잡지를 구매했던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 헌책방에서 비행기 잡지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인아저씨가 '그런 잡지도 있냐?'고 반문할 때도 많았다. 어렵게 구한 잡지들도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한 쪽 면이 찢어져 있거나 라면국물이 묻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심지어 곰팡이까지 피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비행기가 있던 자리

그렇게 어렵게 사 모으고, 애지중지하게 모셔두었던 그 비행기 잡지들을 얼마 전 떠나보냈던 것이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잡지들은 이미 정보성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현재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우뚝 선, 인천공항의 착공식을 소개하고 있는 20년 전의 잡지라면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또한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된 F-16(노태우 정권 때 있은 KFP 차세대 전투기 사업 기종으로 당시 F-16이 선정됨)'에 대한 기사를 담은 잡지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F-15K를 넘어 F-35가 우리 공군에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 잡지들이 자리 잡고 있어 새로운 책들이 들어올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곤혹스러기도 했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새롭게 들어올 책들은 줄을 서야 했기 때문이다.

1차로 몇 권의 <월간항공>을 버렸던 날, 20년 전의 일들이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서울에 있는 헌책방들을 찾아 동분서주 하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던 일, 헌책들의 뭉치 속에 파묻힌 잡지를 끄집어내다 책탑을 쓰러뜨려 주인장에게 엄청 혼났던 일 등등. 그런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순간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이제 넌 나한테 필요 없어. 가란 말야. 떠나버리라고! 20년도 넘게 있었으면 이제 갈 때가 됐잖아!"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올라 날개가 녹아내린 이카로스처럼 필자의 마음속에서 펄럭이던 날개도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굿바이 비행소년!'

 

 

 

 

*관촉사 은진미륵: 비행기 잡지가 떠난 자리에는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역사트레킹 마스터를 하려면 방대한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을 '마스터'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4월에 찍은 사진이다.

 

 

 


그렇게 비행기 잡지가 있던 공간에는 이제 새로운 것들이 들어와 그 곳을 메우고 있다. 역사책과 미학책들이 빠르게 그 자리를 치고 들어왔던 것이다. 마치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비행기'가 빠진 공간에 '정약용 선생'과 '마애석불'이 떡 하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자리 잡은 역사책과 미학책들을 자양분 삼아 필자는 역사트레킹을 진행한다. 한마디로 '비행기가 있던 자리'에 '역사트레킹'이 들어온 것이다.

봄날이라서 그런가? 요즘은 새롭게 다시 날개가 돋아나는 것 같다. 아름다운 봄꽃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미 마음은 산과 들에 가 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읊조리며 트레킹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날개가 한 번 꺾여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왜? 새로운 날개가 생기니까!

*추신: 최근 발생한 무인기에 의한 청와대 촬영 사건으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다. 청와대의 방공망이 뚫렸다고 여론이 매섭게 질책을 한다. 그런데 정부가 정국 수습용으로 꺼내든 카드가 무척 당혹스럽다. 바로 모형비행기 동호회에 대한 규제이기 때문이다. 뚱딴지같이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튄 것이다.

북한에서 '인간어뢰'나 '로봇물고기'로 우리 해역을 침범을 한다면 해녀나 스쿠버 다이버들에 대해서 규제를 내릴 텐가? 무인기에 의한 방공망 침범이 있다면 무인기를 무력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뚱딴지같이 애꿎은 동호회에 대해 규제의 덫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께서 연일 '규제 완화'에 대해 역설하는 판에 규제의 덫을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역설적인 일이니까!    

 

 

 

*** 오마이뉴스에 '비행기가 있던 자리'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그나저나 분명히 제가 송고할 때는 맨 마지막 사진인, 은진미륵 사진을 같이 송고했는데 지금보니 발행된 기사에서는 사진이 누락됐네요. 일부러 은진미륵에 대한 사진을 넣어 비행기에서 역사트레킹으로 넘어갔다는 걸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게 오마이의 한계인가??? 좀 거시기하네~~~ㅋㅋㅋ
제 블로그에 담긴 송고본과 오마이뉴스의 발행본을 비교해 보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제 송고본에는 있는 은진미륵 사진이 발행본에는 없어졌고, 그래서 글의 완성도가 감소됐다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발행본 바로가기 http://omn.kr/7p74

 

 

 

 

 

 

* 월간항공: 20년도 더 지난 비행기 잡지들.

 

 

 

 

 

* 월간항공: 오른쪽은 1991년 5월호다. 노태우 정권 때 진행된, KFP 사업에 선정됐던 F-16에 대한 사진을 메인으로 걸어놓았다.

F-15K를 넘어 이제 F-35가 우리공군에 차세대 전투기로 쓰일 예정이라 이 사진이 무척 낯설다.

 

 

 

 

얼마전 2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월간항공>이란 비행기잡지 몇 권을 버렸습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했답니다. '비행기가 있던 자리'라는 제목으로... 위 사진들은 그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들입니다. 딱 봐도 중고품처럼 보이죠?

 

20년 넘게 제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녀석들인데 떠나 보낸다니... 한편으로는 참 아쉬움이 컸답니다. 그러고보면 오래된 물건에는 그 주인의 혼이 스며든다는 말이,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잡지들을 버리면서 제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무언가 허전한 감이 밀려오더군요~!

 

 

 

 

 

* 비행기잡지: 20년도 넘게 집에 있다보니 먼지도 많이 쌓이고, 때도 많이 탔다.

 

 

 

 

 

* 인천공항: 인천공항을 탐방했을 때의 모습. 2014년 2월에 찍은 사진이다.

 

 

 

 

 

 

 

*관촉사 은진미륵: 비행기 잡지가 떠난 자리에는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역사트레킹 마스터를 하려면 방대한 역사책들과 미학책들을 '마스터'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 4월에 찍은 사진이다.

 

 

 

 

 

 

 

 

 

 

 

 

 

 

 

 

 

 

전기장판, 영상기기, 탁자... 왜 캠핑하세요?___2탄

EBS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 단상... 적게 쓰는 캠핑 되길

---> 전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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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뱀사골 뱀사골 캠핑장 옆에 있는 뱀사골 계곡이다. 바위 위에 젖은 옷들을 말리고 있다. 시각적으로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2012년 여름에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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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왔나?

장비 과시욕은 다른 아웃도어 영역에서도 늘 잡음을 발생시켰다. 소형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나 슬슬 다니시는 분, 머리에서 발끝까지 유명 아웃도어 메이커로 도배했지만 등산은 잘 못하시는 분 등등. 그런 분들이 있으니 아웃도어 업체에서도 계속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은 그래도 과도한 음식물 쓰레기는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렇다. 필자가 캠핑장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이 부분은 캠핑을 즐겨하시는 분이나 캠핑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공통적으로 공감하실 것이다.

요즘에는 캠핑식이라 해서 캠핑 요리 레시피를 모은 가이드북도 발간됐다. 캠핑장에서 먹는 요리는 꿀맛이다. 대자연에서 캠핑도 즐기고, 요리도 해먹으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밤마다 캠핑장은 바비큐 파티장으로 변신한다. 고기가 구워지고, 자연스럽게 술잔이 돈다. 자연 속에서 고기와 술을 즐기니 그곳이 무릉도원인가? 그렇게 먹고 마신다 보면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발생한다. 아웃도어 활동을 하다 보면 그렇게 부산물들이 발생하지만 캠핑장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정도를 넘어섰다.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그렇게 '파티의 끝'은 항상 쓰레기였다. 다 먹지도 못할 음식물들은 왜 가지고 와서 버리고 가는가? 도시에서도 그렇게 음식물을 버리는가? 차라리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은 남은 음식물들을 공용 냉장고에 넣어 둔다. 그러면 다른 숙박인들이 재활용(?)할 수 있다. 필자도 제주도에 있는 한 게스트하우스 냉장고에 있는 오징어를 재활용해서 요리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캠핑장에서는 그런 재활용 과정 없이 그냥 버려진다. 필자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먹으로 오셨나요? 먹으러 오셨으면 다 드시고 가시지, 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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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박 비박이란 야외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 취침을 하는 것을 말한다. 텐트를 설치하면 캠핑이 되는 것이고, 사진에서처럼 그냥 침낭만 깔고 자면 비박이 되는 것이다. 2013년 여름 강원도 횡성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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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캠핑은 안녕하십니까?

필자는 우리나라 캠핑장에 발우공양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신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준비해서 남기지 않는 것이다. 뒤끝이 없게 캠핑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럼 필자는 캠핑을 하면서 무엇을 먹었을까? 콘플레이크를 먹었다. 두유에 동동 띄어서 먹었다. 밥도 지어먹기는 했지만 콘플레이크를 더 많이 먹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전혀 남기지 않았다.

물론 필자처럼 캠핑장에서 콘플레이크 같은 행동식을 취식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의미에서 콘플레이크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좀 더 계획적으로 일정을 짜서 좀 더 적게 버리자는 것이다.

이제껏 필자가 언급한 것들과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에서 질타한 내용은 상당 부분 일치한다. 또한 백패킹을 지향점으로 삼는 것도 동일하다. 먹고, 마시고, 장비 과시에 집중된 우리의 캠핑문화는 변해야 한다. 물량공세식의 소비지향적 캠핑은 지양돼야 한다. 캠핑은 자연을 느끼러 가는 것이지 도시적인 소비패턴을 연장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난민촌을 연상시키는 혼잡한 캠핑장에서의 하룻밤은 힐링이 아니다. 그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짜증 캠핑'일 뿐이다.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는 그릇된 캠핑문화의 폐해를 잘 지적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우리나라 캠핑, 아웃도어 문화에 대해서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방송을 다 시청한 후 필자는 이런 의문을 품어 봤다. 

'당신의 캠핑은 안녕하십니까? 진정 캠핑을 제대로 잘 즐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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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하나뿐인 지구>의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 편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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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의 어느 날.


당시 필자는 중부내륙 자전거여행을 행하고 있었다. 강원도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야영지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자정에 가까웠기에 다급했다.

그러다 현지 경찰분들의 도움으로 근처에 있는 캠핑장에 대한 정보를 얻어 그곳으로 향했다. 그 날은 '도깨비 도로'라는 거시기한 이름의 급경사 도로를 통과했던 만큼 심신이 무척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폐교를 리모델링했다는 그 캠핑장이 '스위트 룸'이 되어주길 기대했다. 달콤한 휴식을 기대하며 페달을 굴리는데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필자의 인상은 찌푸려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시간은 한밤중이었지만 그곳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여기저기서 고기가 구워졌고,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기 굽는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였고, 술자리의 떠들썩함이 온 동네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또한 한편에서는 불꽃놀이도 벌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필자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끈한 곳에서는 심신의 피로를 달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로가 더 가중될 뿐이다. 결국 그날은 자정을 훨씬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이름 모를 공사장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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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달궁 캠핑장 지리산 국립공원에 있는 오토캠핑장. 여름에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2012년 여름에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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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


필자는 캠핑을 많이 하지만 캠핑장을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캠핑장이 아닌 곳에다 텐트를 친 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골동네 팔각정, 마을회관 뒤편 공터, 다리 밑, 야산 공동묘지 등등.

그렇게 캠핑장이 아닌 곳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가난뱅이 여행을 하는 터라 돈이 없고, 둘째 현재 우리나라 캠핑문화가 탐탁지 않아 그렇게 했다. 캠핑장 입장료가 몇 푼 한다고 비용 문제를 언급하겠는가. 그렇다. 캠핑장 입장을 실제적으로 꺼리는 이유는 두 번째 사유 때문이다.

EBS의 환경다큐멘터리 중에 <하나뿐인 지구>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지난 2월 28일에 <당신의 캠핑은 몇 g입니까?>라는 제목을 걸고 우리나라 캠핑 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그릇된 캠핑문화를 질타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들을 시청자들에게 던졌다.

'캠핑장으로 향하는 당신의 텐트와 차는 얼마나 큽니까?'
'캠핑장에 무엇을 남기고 어떤 것을 채워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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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 당골캠핑장 필자는 소형텐트로 캠핑을 한다. 2012년 여름에 촬영한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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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생활을 옮겨 놓은 '자연 속' 오토캠핑장


처음으로 대형 캠핑장에 갔을 때 필자는 손수레의 쓰임새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얼핏 쓰레기 적재에 쓰인다고 봤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자동차에서 짐을 꺼내 자신의 사이트(텐트 세팅지)로 움직일 때 이동수단으로 쓰였다.

내부에서 차량 이동이 되지 않는 캠핑장에서는 손수레가 이동수단으로 사용된다. 일단 텐트 무게가 있고, 기타 짐들이 가득하니 손수레를 이용해 이동을 하는 것이다. 어떤 캠퍼들은 한 차로는 부족했는지 두세 번 왕복하기도 했다. 이후 다른 캠핑장에서도 손수레로 캠핑 장구들을 나르는 광경은 아주 흔하게 목격됐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조용히 있다 조용히 간다'라는 말처럼 캠핑에는 많은 물품들이 필요하지 않다. 하루짜리 야외생활에 적합한 물품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손수레로 두세 번 왕복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토캠핑장에 오는 사람들은 왜 엄청난 짐들을 싣고 오는 것일까? 'city life', 즉 도시생활을 끌고 왔기 때문이다. 그 짐이라는 것들을 보면 캠핑 본연의 물품들이라기보다는 도시생활을 옮겨 놓은 것들에 가깝다. 탁자, 주방기구, 영상기기 등등…. 혹한기에는 난방용품까지 추가되는데 난로와 전기장판까지 휴대품으로 소지한다. 그러니까 덩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캠핑 장비가 많을수록 그것을 싣는 자동차의 크기도 커져야 한다. 그래서 캠핑을 위해 더 큰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생길 정도다. 캠퍼들 사이에서는 캠핑장비가 넘쳐나 일반 승용차에서 SUV로 바꿨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캠핑의 주도권이 캠퍼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캠핑장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캠퍼와 캠핑 장비 간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도시의 안락한 생활을 캠핑장으로 옮겨 놓는다면 무엇하러 캠핑을 하러 가는가? 엄동설한에 전기장판과 난로를 가져가서 캠핑을 하느니 차라리 저렴한 민박집에 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해당 지역경제에 보탬도 된다.


 

 

 

 

 

 

 

 

 

 

골짜기

 

당신과의 만남은 그저 작은 인연

 

난 선을 그었고 파내서 골에 내었지

 

골은 깊어졌고 난 두더지가 되었네

 

어둠 속에서도 향기는 스미는 법

 

꽃 향기가 내 눈을 뜨게 했지

 

온 골짜기에 봄꽃이 만발했다네

 

당신이 몰래 뿌려놓은 씨앗이

 

너와 나의 인연의 꽃이 되었네

 

 

 

 

 

 

 

 

 

 

 

 

 

2013년도 서울시에서 지하철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게시될 시를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 제가 시에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시민들이 내가 쓴 시를 보고 어떤 느낌을 가질까, 하는 호기심이 들어 그날로 응모를 했었지요.

 

다행히 합격해서 당당히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 게시되는 영광을 느리게 됐답니다.

 

제목은 '골짜기'입니다. 아웃도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 대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저런 시를 작성하였답니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보니 운문이 아니라 산문 같네요~ㅋ 다른 공모작들은 짧게짧게 쓰여있던데...

 

그나저나 스크린도어에 제 모습이 반사가 되서 자연스럽게 셀카가 되었네요.

 

그럼 자신이 쓴 시를 앞에 두고 셀카를 찍은 건가요?ㅋ

 

 

게시장소: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 종합운동장 방면(외선순환) 3-3

 

 

 

 

 

 

  

  

 

 

 

 

 

 

 

 

 

 

남도여행 책자에 실릴 저의 글입니다. 그렇습니다. 곽작가도 이번 여행책자에 공저자로 참여를 한 것입니다. 아직 변변한 여행서 하나 출간 하지 못했지만 이번 책자 발간을 기점으로 저도 한발짝 도약하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원래는 이 책자가 작년에 나오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발간되지 않았네요.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참 저는 강진과 해남을 중심으로, 트레킹에 대한 내용을 기고했답니다. 삼남길 전남 구간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하였답니다. 남도 이야기를 하니 또 남도에 내려가고 싶네요!ㅋ

 

 

 

 

 

 

 

 

 

 

 

 

 

 

<히든 싱어 김광석편>을 보고 쏟은 눈물

 

13.12.30 10:47

 

최종 업데이트 13.12.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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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히든 싱어> 화면 캡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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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하는 거 좋은데, 김광석 이름 팔아서 먹칠은 하지 마라. 제발 부탁이다!'

그렇게 방송이 시작될 때는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답니다. 사실 <히든싱어2 김광석>을 본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시간인 토요일 밤 11시경에는 저는 항상 잉글랜드 프리미엄리그를 시청했었으니까요. 12월 28일에는 카디프시티의 김보경과 선더랜드의 기성용이 맞붙는 '코리안 더비'를 보려고 TV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 '코리안 더비'는 다음날 새벽 2시경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일 없이 리모컨을 돌리다가 채널 15번에서 잠시 멈췄답니다.

 

 



# 김광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종편을 보게 됐다!

평소에는 종편 채널이 몰려있는 번호대를 그냥 뜀뛰기 하듯 넘어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날만큼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몰입을 하고 보게 됐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JTBC가 요즘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예능 프로그램라면 더욱더 눈을 거둘 수밖에요. 그러나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서는 그런 원칙도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히든싱어>는 원곡을 부른 가수와 여러명의 모창가수가 서로 경쟁을 하는 독특한 구조의 프로그램입니다. 무대에는 장막으로 가려진 방이 여러 개가 있는데 오리지널 가수와 모창가수들이 각 방에서 한 소절씩 원곡을 부르는 식으로 방송이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필'편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간주가 나오는데 오리지널 가수인 조용필은 3번 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1번, 2번 방에 들어간 모창가수들은 최대한 오리지널 가수처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를 것입니다.

워낙 모창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참가했기 때문에 패널들이나 방청객들은 오리지널 가수가 3번인지, 1번인지 혹은 2번인지 혼돈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신승훈'편에서는 모창 가수가 오리지널 가수를 이기는 진기한 장면까지 생성됐다고 합니다.

'김광석'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출중한 모창 실력을 가진 지원자들이라 그런지 마치 故김광석이 실제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김광석의 오랜친구인 김창기, 한동준도 번호를 잘못 누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1996년 1월에 저 먼 곳으로 가신이가 어떻게 <히든싱어>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요? 김광석의 앨범에서 음원을 추출하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김광석의 앨범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어 음원 추출이 수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음원은 뽑아내졌고 가신이도 2013년 <히든싱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신의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됐답니다.

하지만 가신이의 빈자리는 크더군요. 자신의 방문이 열리면 마이크를 잡고 서서히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모창가수들과는 달리 오리지널 가수 방은 휑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하고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가신이의 사진이라도 그 방에 걸어주셨으면 덜 쓸쓸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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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싱어 <히든싱어> JTBC 홈페이지 캡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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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였다네!

저는 故김광석씨를 광석이형이라고 부릅니다. 친형도 아니고 동네 선배형도 아닌데 그렇게 부릅니다. 이렇게 '친한척'을 하지만 광석이형의 제대로 된 매력을 알게 된 건 형이 저 먼 곳으로 간 이후부터였습니다. 방송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참가자 분은 광석이형의 죽음을 군대 전역 즈음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분은 큰 충격에 빠져 광석이형의 앨범을 다 불태워버렸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비보를 군대시절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큰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가수가 한 명 먼저 갔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렀고, 저도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녹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로 들렸고, 저는 그 따뜻한 위로 속에서 단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광석이형의 노래는 점점 더 제 귀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었답니다.

옷 벗기 경쟁에 나선 걸그룹의 음악들에서는 국적 불명의 억센 향수 냄새가 나지만 좋은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싱그러운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는 추억이라는 바람을 타고 널리널리 퍼져 나갑니다. 그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기억으로 묶이게 됩니다.
'김광석 편'에 나왔던 모창 가수들도 저처럼 기억의 한 구석에 광석이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상금을 받으면 광석이형의 웃음 짓는 동상을 만드는데 쓰고 싶다는 지원자, 감수성이 많았던 청소년 시기를 광석이형의 노래로 잘 이겨냈다는 지원자... 모두다 한결같이 광석이형의 노래로 인해 '좋은 향기'를 맡았던 것 같습니다.

 

 

 


# 변호인에서 참은 눈물, 광석이형 보고 쏟아냈다!

저도 그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주르르 눈물이 흐르더군요. 특히 마지막 부분인 <서른 즈음>이 흘러나왔을 때는 좀 더 크게 훌쩍였습니다. 저는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도 눈물을 참았답니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았고 일부러 제가 감정을 억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편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눈물이 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변호인>에서 통쾌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극중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 경찰인 차동명에게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 부분에서 쾌감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광석이형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이 대목에서는 그저 눈물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러다 <서른 즈음> 나머지 부분을 따라 부르며 한심했던 제 30대를 되돌아봤습니다. 어설펐고, 그래서 욕 먹었고, 그것 때문에 아팠고. 하지만 그것보다 배신당했다는 것에 더 가슴이 쓰렸고... 생각해보니 제 30대는 그저 어둡게만 채색된 것 같습니다. 지울 수 있으면 그 시기를 지우고 싶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겠죠.

그렇게 어두웠던 제 30대도 이제 이틀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제 '서른 즈음'이 '마흔 즈음'으로 바뀔 때가 됐네요. 제 '서른 즈음'이 한심하고, 답답했다면 제 '마흔 즈음'은 활기차고 건강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어두침침한 방에서 엎퍼져 있지 말고 봄볕을 맞은 새싹들처럼 기운차게 '일어나'야겠지요! 광석이형의 <일어나>처럼요!

'~일어나, 일어나 봄에 새싹들처럼!' 

 

 

 

 

 

 

 

 

 

 

 

 

<호빗>과 <변호인>

우리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13.12.28 14:53l최종 업데이트 13.12.28 14:53l

 

 

"호빗? 그거 서울에서 안 하잖아."
"그래서 광명까지 갔다 왔어요."
"그렇게까지 가서 볼 필요 있냐? 그거 그냥 블록버스터잖아!"
"……"

선배형은 호빗에 대해서 그냥 시큰둥한 평가를 내렸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후배 녀석이 선배형을 거들면서 이야기를 했다.

"호빗 그거 난쟁이 영화 아니에요? 해리포터 같은... 전 그런 영화는 별로던데... 차라리 변호인 봐요. 그거 재밌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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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봉화산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중앙 하단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땅이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이다. 사진에서 보듯 봉하 마을은 '깡촌'이다. 이곳에 '아방궁'이 들어설 수 있겠는가? 2011년 여름, 남도횡단 자전거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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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빗>과 판타지


그렇다. <호빗 (The Hobbit : The Desolation of Smaug)>은 난쟁이들을 다루었고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영화다. 필자는 호빗들처럼 '짝달막'한데다 판타지 장르를 즐겨 본다. 그래서 멀리까지 가서 보고 온 것이다. 로맨틱코미디는 '닭살'스럽고 공포영화는 '개그콘서트' 보는 것 같지만 판타지 영화에는 팝콘의 유혹을 물리칠 정도로 몰입을 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양태와 희로애락을 신화적인 상상력 안에서 풀어내는 판타지, 필자는 그런 판타지 장르를 선호한다. 불을 내뿜는 용들이 날아다니고 천상의 요정들이 미모를 뽐내는, 그런 화면 가득한 볼거리에 정신이 팔리는 것이 아니다. 물고 물리는 복잡한 스토리 속에서 인간 내면의 '쌩얼'이 꿈틀거리기에,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호빗 2편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배급사와 영화관과의 수익배분 문제 때문에 서울에서 호빗을 보기 어려웠고, 그래서 인근에 있는 광명시까지 가서 보고 왔던 것이다.

영화 취향이 천대를 받아서 그랬는지 필자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인 존 로널드 톨킨(J.R.R.) 박사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톨킨 박사는 세계1차 대전에 참전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 솜강 전투라는 1차 대전 중 최대의 격전에 참가했던 톨킨은 현대 문명에 대해 큰 회의를 품었고, 전후 북유럽과 켈틱 신화에 대해 깊이 매료됐다. 탐욕적인 근대 문명를 크게 혐오하고 물질문명 이전세계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이런 이야기를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역시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었다.

"어차피 그거 해리포터처럼 애들이 많이 보는 거잖아?"

 

 


# 스크린의 안의 문제를 스크린 밖으로까지 끄집어낸 <변호인>

 


지난 월요일 오후. 동장군의 위세가 꺾이긴 했지만 밖은 여전히 추웠다. 찬바람이 불면 온몸이 다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변호인>을 상영하는 극장 안은 후끈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월요일 오후 4시경 영화였지만 좌석은 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필자도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젊은 커플들이 많았지만 나이가 지긋한 분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사실 <변호인>에 대한 첫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개봉 전부터 너무 떠들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에 괜한 반발심부터 앞섰던 것이다. 영화라는 매개물로 고인을 '팔아'먹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한 배우 송강호(송우석 역)와 노무현 대통령이 서로 잘 매칭도 되지 않았다. 수더분한 얼굴의 송강호를 보면 웃음부터 나오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을 보면 웃음부터 나오지는 않았기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필자의 첫 느낌은 송강호의 넉살 좋은 연기에 서서히 무너져 내려갔다. '깔깔깔' 웃음소리와 함께. 그리고는 왜 이 영화가 2013년 최고의 영화중에 하나라고 불리는지도 깨닫게 됐다. 스크린 속에 그려진 우울한 시대의 단면을 영화관 밖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그 장면들이 단지 전두환 시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크린 안에서는 끔찍한 고문과 탄압에 분노를 했을 것이고, 극장 밖에서는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극중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 경찰관인 차동명에게 사자후와 같은 열변을 토하지만, 차동명 세력'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무척 강했고 지금도 강하다. 1981년 부림 사건의 피의자들에게 '북한의 지령'이라는 죄목이 뒤집어 씌어졌다면, 2013년 진보·개혁세력에게는 '종북좌파'라는 비난이 그들에 의해 덧씌워져 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차동명 세력'은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상대편에 '종북좌파' 딱지붙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쩌면 그들은 항상 '이기는 싸움'만 해왔는지 모른다. 물론 잠깐 숨을 고른 적은 있었겠지만.

그런 '차동명 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에도 계속 자신의 반대편에게 '딱지'를 붙이고 있을지 모른다. 차동명이 부림사건 시절에는 공안경찰로 등장했다면 앞으로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라는 얼굴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공공기관 민영화라는 '스타일'로 포장될 수도 있다. 현재는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댓글로 나타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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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경작지 봉하마을에서 공동경작을 하는 논이다. 2011년 여름, 남도횡단 자전거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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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판타지에는 어김없이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일당백이 되어 악당들을 물리친다.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에서도 수많은 영웅들이 악의 세력에 맞서 정의의 칼날을 휘두른다.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는 악의 화신인 사우론과 당당히 맞서고,  꽃미남 엘프 레골라스는 거침없이 정의의 화살을 날린다. 간달프와 레골라스의 한방에 오크족과 고블린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고 결국 강성했던 어둠의 세력들은 멸망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반신반인'의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식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판타지'일 뿐이다. 최강의 포스를 가진 판타지 영웅이 나타난다고 해도 우리시대의 당면과제인 사회양극화, 청년실업, 남북문제 등을 '한방'에 풀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슈퍼맨, 베트맨, 정도령, 원더우먼, 오디세우스 등 동서양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다 등장한다고 해도 역부족일 것이다.

현실의 문제는 결국 생활인들이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기소된 송우석 변호사를 위해 이름을 올린 99명의 변호인들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안녕 대자보를 붙일 때 청테이프를 끊어 주는 친구, 그 대자보를 찬찬히 읽고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동장군의 기세를 누를 따끈한 국물이 그리운 날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국밥 한 그릇이면 속이 든든히 채워질 거 같다. 소중한 친구와 지인들을 모아 따뜻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사람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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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자전거와 내 자전거 오른쪽에 있는 자전거는 노무현 대통령의 것이다. 대통령의 자전거는 단출했지만 필자의 자전거는 무거운 짐들이 잔뜩 실려있다. 고물이고 자세도 안 나오는 내 자전거! 그래도 같이 사진 찍어주는 친구가 생겼네! 2011년 여름, 봉하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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