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 템플스테이 발우 공양 문화를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⑨] 태백산 2편

13.01.02 08:35l최종 업데이트 13.01.02 08:35l

 

 

 

 

 

 

▲ 태백산캠핑장 일명 당골캠핑장이라고도 불린다. 아침에 눈을 뜬 후, 바라보는 태백산의 전경이 일품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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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태백산캠핑장에서 3일을 머물렀다. 이번편에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다.


# 물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는 태백산 캠핑장

"야영비 받으러 왔습니다."

태백산 산신령님이 달콤한 잠을 내려 단잠에 빠져 있는데, 아침부터 누가 돈 타령을 하고 있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내일 받으러 와요."
"..."

나는 당골매표소 아래쪽에 위치한 태백산캠핑장(일명 당골야영장)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당시가 장마철이라서 그랬는지 캠핑장에는 야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화장실 문을 잠가 놓고 샤워를 했다. 원래는 캠핑장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놈의 돈이 원수지!

필자가 보기에 태백산 캠핑장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내부는 숲이 둘러싸고 있고, 외부는 산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말 그대로 숲 속에서 캠핑을 하는 식이었다. 또 캠핑장 옆으로 당골천이 흐르고 있어, 밤에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잠자리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작은 소음에도 잠을 뒤척일 수 있지만 태백산 캠핑장은 당골천이 소음을 중화시키기에, 민감한 사람도 비교적 편하게 취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밤에 산 새 소리와 함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캠핑장이라면, 정말 좋은 캠핑장이 아니겠는가? 물론 갈수기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태백산 베이스캠프 저렇게 태백산캠핑장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참 단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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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텐트 내 텐트와 비교하면 저 텐트는 궁궐 같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나도 저런 멋진 텐트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

 

 

 

 

 


그렇게 좋은 태백산 캠핑장에서 필자는 3일을 머물렀다. 하지만 돈 한푼 안냈다. 처음 수금하러 온 이후에는 징수원들이 다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규칙을 위반하고,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는 등 민폐를 끼쳤다고 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필자는 민폐를 끼쳤으면 그만큼의 값을 한다.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했고, 캠핑장 식수대를 말끔히 치웠다.

어느 캠핑장을 가나 식수대는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로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퇴수가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찌꺼기들을 손으로 직접 다 끄집어내, 퇴수가 잘 되도록 하고 나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골든보이 캠핑장에 가면 색다른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골든보이' 이 친구도 태백산캠핑장에서 만났다. 그는 3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여행했다고 한다. 3개월 동안 강원도를 돌아다닌 터라 그의 허벅지는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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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장에 템플스테이 식문화를 이식시키자


한편 그 음식물 찌꺼기는 필자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음식물을 왜 남기는가? 넉넉히 먹고 즐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캠퍼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숨 가쁜 도시생활을 벗어나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도시생활의 안락함을 캠핑에서까지 이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필자는 답답함부터 느낀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주말 섹션에 겨울캠핑과 관련하여 전기장판에 관련된 이야기가 언급됐다. 필자는 그 기사를 보고 혀를 찼다.

'과연 이 엄동설한에 뭐 하러 전기장판까지 준비해서 캠핑에 나서는가? 전기 꼽을 곳은 있나? 그렇게 갖출 거 다 갖추고 싶으면, 동네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는 게 최고일 텐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캠핑시장은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질적으로도 그런가?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최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캠퍼들이 기본적인 캠핑 매너도 안 지키는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같이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캠핑장을 애용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캠핑장 사용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다음 일정을 위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먹고, 마시자, 죽자'라는 캠퍼들의 소음에 새벽까지 잠을 설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 태백산 캠핑장 필자가 손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끄집어 낸 식수대. 그 뒤로 필자가 몰래 샤워를 한 화장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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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최첨단 장비에 걸맞게 캠핑문화도 최첨단으로 향상 시킬 때가 됐다. 성숙한 캠핑문화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 할 때가 됐다. 이제 캠핑장에서는 좀 덜 먹고, 덜 마시는 분위기가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 같아서는 '템플스테이'와 같은 식문화와 정숙함이 전국 캠핑장에 만발했으면 좋겠다. 이건 너무 급진적인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다. 캠핑장에서 수금 징수원을 가장해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기꾼들이 있으니 주의를 요망한다. 대규모 캠핑장 같은 경우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기에 사기꾼들의 좋은 활동처가 되곤 한다. 그들은 캠핑장 직원과 동일한 복장과 동일한 영수증 용지를 들고 다니며 캠퍼들을 현혹시킨다. 그런 사기에 넘어간 캠퍼들은 사기꾼과 정식 수금요원에게 두 번 요금을 납부해야 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캠핑의 낭만은 사라지고 불쾌지수만 높아질 것이다.

 

 

 
▲ 백캠핑 대형오토 캠핑도 좋지만 요즘은 호젓하게 백캠핑을 하는 캠퍼들도 많이 늘어났다. 백캠핑은 배낭에다 캠핑장비를 짊어 지고 다니며, 캠핑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백캠핑의 관건은 짐의 경량화에 달려 있다. 필자가 행한 캠핑도 백캠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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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비를 받아서 얼마나 남겠냐고, 의문을 표시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형텐트의 경우는 통상 2만 원 정도의 요금을 지불한다. 그런 텐트가 10동 이상 있다고 생각해보시라. 한 시간도 안 되서 사기꾼들은 수십 만원을 챙길 수가 있는 셈이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캠퍼 자신이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가지 팁을 제시해 본다.


1. 영수증을 꼭 확인한다.
2. 징수원의 직원증을 확인한다.
3. 쓰레기봉투를 요청한다.

2번 직원증 확인의 경우는 쉽지 않다. 수금요원이 직원증이 없는 단순 아르바이트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면, 사전에 캠핑장 관리사무소의 전화번호를 메모해뒀다가 전화를 걸어 수금 요원의 신분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판단된다.

요즘은 웬만한 대형캠핑장은 사용료를 지불하면 해당 지자체에서 발행한 쓰레기봉투를 지급하니, 쓰레기봉투 지급여부도 잘 확인을 해보면 가짜 징수원들의 사기 행각의 덫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캠핑장 요금도 안 내고 도망간 주제에 말이 많다고, 아직도 필자를 질책할 분이 있을지 모른다. 여행이 다 그런 거지 뭐. 여행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리고 캠핑장 팁도 알려드렸으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캠핑 적기에 맞춰 이런 팁을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엄동설한에 이런 글을 쓰니, 필자도 그게 참 아쉽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8편]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

태백산여행기 1편

 

 

12.12.31 20:23l최종 업데이트 12.12.31 20:23l

 

 

 

 

▲ 태백산 주목 죽은 것 중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이 있을까? 죽으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흉하게 썩고 만다. 그건 식물도 마찬가지다. 죽은 나무는 껍질이 썩어들어가 종국에는 흰개미가 득실거리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그래서 썩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주목은 다르다. 오히려 죽어서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 같다. 죽어서 더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 같다. 생(生)과 사(死)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태백산 주목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든다. '혹시 태백산의 진짜 산신령은 주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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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은 언제 국립공원으로 승격을 할까?

지난 7월 5일, 울릉도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온 나는 '태백산 산신령'을 만나러 강원도 태백시로 향했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 개천절이면 산 정상부에 있는 천제단에서 단군을 위해 제례를 들이는 곳. 예로부터 계룡산과 더불어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곳. 신라 오악(五嶽) 중 하나로 북악(北嶽)이라 불렸던 곳. 이렇듯 태백산(1567m)은 예로부터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축적되어 온 곳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태백산이, 국립공원이 아닌 도립공원 '품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뻘인 소백산(1440m)도 국립공원인데 태백산이 아직도 도립공원으로 묶여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의문을 표하는 사람 중에 필자도 포함되어 있다.

특정 지역의 국립공원 지정은 첨예한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교통 정리'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이해관계 중에서 단연 두드러진 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제약이다. 군립공원보다는 도립공원이, 도립공원보다는 국립공원이 더 많은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 망경사 용정 당골매표소에서 천제단 방면으로 오르다보면 8부 능선 즈음에 망경사가 나온다. 망경사 옆쪽으는 '용정'이라는 시원한 샘물이 있다. 한편 사진 오른쪽에 있는 가부좌를 튼 보살상이 이채롭다. 용정에서 조금만 더 오르다보면, 단종 임금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단종비각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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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은 국립공원, 태백산은 도립공원 


지난 12월 27일에 지정된 21번째 국립공원을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국립공원이 지정된 해는 1988년이다. 그해, 변산반도와 월출산이 지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이 1967년에 지정됐고 20호인 월출산이 1988년에 지정됐으니, 21년 만에 무려 20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 24년 동안 새로운 국립공원 지정이 전무했던 것은 시대상황의 변화 때문으로 판단된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같은 권위주의적인 정권하에서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대해서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을 거라는 건 불 보듯 빤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항쟁 이후로는 재산권 행사와 관련해서 국민들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국립공원 지정에 대한 해당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그 수위가 높아졌을 거라는 걸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2월 27일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경우는 참 반가운 사례다. 서울의 북한산과 더불어 무등산은 광주광역시라는 대도시에 인접해 있는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순번 대기를 하고 있는 국립공원 후보군들이 재산권 제약이라는 난관을 뚫고 '국립공원 클럽'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을 무등산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번호표를 뽑고 '국립공원 클럽' 앞에서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몇 명 보인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린 '녀석'은 단연 태백산이다. 도대체 언제쯤 태백산은 국립공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 태백산 주목 이 사진을 보니 비룡이 용솟음 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장면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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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서도 아름다운 태백산 주목
 


태백산은 태백시내에서 약 5~6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강원도에 있는 다른 큰 산들에 비해 접근성이 더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태백시내에서  도립공원 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운행을 하는데, 그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하면 바로 등산로에 진입할 수 있다.

태백산의 등산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매표소 입구에서 부지런히 걸으면 정상까지 3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당골매표소-반재-망경사-단종비각-천제단 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하산을 할 때면 그 반대편인 유일사매표사 코스로 내려가면 되는데 그 코스도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태백산 산 정상부는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그 능선길 양 옆으로는 장구한 세월을 올곧게 서 있는 주목들이 있다. 그 중에서 단연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목의 고사목들이다.

주목은 색깔이 붉다고 하여 적목(赤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 자생하는 고산 식물이다. 그래서 백두대간 고산 지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편, 주목은 가장 오래 사는 식물들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또 주목은 한약재로 쓰이는 좋은 나무라고 한다. 주목이 약재에 좋은 나무라는 것이 잘 알려져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많이 벌목이 됐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소백산 정상에 있는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 태백산 주목 이 주목은 큰 수사슴의 뿔처럼 여겨진다. 이 기사가 발행되는 시점이 한겨울이라 태백산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주목 사진이 더 시의성에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새해 2013년을 기약하는 마음과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사진을 바라본다면, 그것 자체로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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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이 오래 살고, 약재에도 좋다고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그저 '죽은 주목'만이 눈에 뛸 뿐이었다. 왜? 주목의 고사목처럼 죽어서 아름다운 나무들은 거의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죽었지만 주목의 올 곧은 자태는 태백산의 정기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도 등산 중에 나무를 몇 그루 쓰러뜨린 적이 있다. 필자가 힘이 센 '슈퍼맨 나무꾼'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두께가 얇은 나무는 죽으면 쉽게 쓰러진다. 그 쓰러질 타이밍에 필자가 손을 댔던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에 우쭐해 하며 내 힘 자랑을 떠벌렸다. 산행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보고 나를 진짜 슈퍼맨으로 알겠지만 노련한 등산가들은 필자를 허풍쟁이로 몰아붙일 것이다.

이렇듯 죽은 나무는 가벼운 외부 충격에도 제 본 모습을 잃고 흉하게 쓰러지고 만다. 그래서 죽은 나무는 땔감용으로 쓰는 게 제격이다. 하지만 태백산 정상에 서 있는 주목 고사목들은 기품이 있었다. 죽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은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주목의 자태를 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죽어서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있구나! 혹시 태백산 산신령이 있다면 이 주목들이 아닐까?'

 

 



▲ 태백산 천제단 태백산은 태고적부터 우리조상들이 신성시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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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 그런 신성스러운 공간에 필자가 올랐다. 자전거는 저 산 아래 태백산캠핑장에 주차시켜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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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의 산신령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태백산은 우리민간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속설에 의하면 태백산이 내뿜는 기가 매우 강렬하여 무속인들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샛길로 빠졌는데, 그 곳에서 형형색색의 비단으로 치장한 나무 성황단을 만나게 됐다. 그곳은 그나마 있던 샛길도 끝나는 후미진 곳에 있던 나무 성황단이었다.

아무래도 태백산 산신령을 모시기 위한 제단처럼 여겨졌다. 제단이 후미진 곳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아지트와 같은 곳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제단에는 지폐 몇 장과 동전이 쌓여 있었다. 싹 쓸어 담으면 한 2만 원 돈 이상이 되는 듯했다.

 



▲ 나무 성황단 태백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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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님한테는 죄송한데, 저걸 가져다 여행 경비로 써? 어차피 지폐는 비 맞고 하면 훼손 되잖아. 이참에 한 번 조폐공

사에서 감사패 한 번 받아봐?'

그 순간 갑자기 푸드득 거리며 내 앞으로 새가 한 마리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난 좀 놀랐다. 아무래도 그 짓을 하지 말라는 '산신령의 계시'인 것 같았다. 뒤가 밟혔던 나는 돈은 그대로 두고, 제단 주위에 있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웠다. 그리고는 생수 하나를 개봉하여 정화수로 올렸다. 괜히 제단에 있는 재물을 탐했다가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하긴 앞으로도 수많은 '백두대간 산신령'들을 만나뵐 텐데 괜히 거기서 밑보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태백산은 참 복받은 산 등산 중에 배수로 작업을 하시는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도립공원 직원이 아니었다. 그냥 자진해서 등산로 배수로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그냥 태백산이 좋아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작업을 하신다고 했다. 극구 사진 찍는 걸 원하지 않으셨지만 난 살짝 '몰카'를 찍었다. 그러고보면 태백산은 참 복 받은 산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분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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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도 울릉도를 여행할 권리가 있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7편] 울릉도 여행 가이드

 

 

12.11.19 11:47l최종 업데이트 12.12.07 15:36l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북면 일대의 해안선. 눈도 마음도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오른쪽 방면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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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하등대 모노레일을 타고 태하등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태하등대가 있는 서면 부근은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태하등대에서 그 유명한 태하 낙조를 감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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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울릉도 여행에서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본다. 또 필자가 추천하는 저렴하게 울릉도를 여행하는 방법도 소개해본다.

 


# 기억에 남을 명소: 태하 등대와 대풍감

하지만 필자는 7일이나 머물렀지만 울릉도 곳곳을 다 다녀보지 못했다. 아무리 자전거여행이라고 해도, 통상적인 울릉도여행이 2박3일인 것을 감안하면 좀 오래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울릉도의 지붕인 성인봉도 못 가봤다. 입산을 하려고 나리분지까지 갔었는데 마침 그때 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울릉도의 구석구석까지 다 탐방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몇몇 곳을 소개해보겠다.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서면 태하 대풍감이다. 이곳은 태하 등대가 있는 곳인데 한 아웃도어 잡지에서 우리나라의 10대 비경으로 꼽은 곳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사실 필자는 아직까지도 태하 대풍감이 눈에 아른거린다. 대풍(待風)은 '바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바람이라는 대풍(大風)으로 뜻을 고쳐도 무방할 만큼 태하 대풍감 일대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었다.

그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깎아질 듯한 절벽 위에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시라! 그런 해안 절벽은 암벽타기를 하지 않는 이상 도저히 육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런 해안절벽 위로 유유히 갈매기 떼들이 춤을 추듯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시라! 진짜 태하 대풍감은 그런 상상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울릉도의 곳곳이 다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곳만을 찍으라고 하면 태하 대풍감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의 왼쪽편 해안선이다. 깎아지는 듯한 해안절벽이 자아내는 풍광은 한마디로 명품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위를 유유히 비행하고 있던 갈매기들이 부러웠다. 저런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삼아 날개짓을 할 수 있는 울릉도 갈매기들은 정말 복받은 갈매기들이다. 한편 태하대풍감은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향나무'의 자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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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 등대까지는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서 왕복비용 4000원만 지불하면, 그곳까지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탑승하지 않아도 그 곳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해발 309미터를 6분 만에 주파하는 모노레일을 타는 게 체력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태하를 위시한 서면과 북면 지역의 일몰도 장관 중에 장관이다. 노을이 지는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은 육지의 일몰 명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듯했다. 어둠 속에 붉게 채색된 일몰이 스며드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묘한 황홀감까지 들 정도였다. 필자는 그 광경을 울릉도 군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았다. 운이 좋았는지 시간대가 맞았는데, 그 버스는 내게 일몰을 감상하는 '관광버스'가 된 셈이다.

 

 



▲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 오르면 저런 멋진 풍광들을 볼 수 있다. 한편 관음도에는 다리가 놓였지만, 필자가 입구에 갔을 때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관음도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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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을 명소: 석포

두 번째 추천할 곳은 북면 석포리 일대다. 석포는 울릉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석포의 해안도로에서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바위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기암괴석과 항구가 어우러진 북면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석포 전망대는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석포전망대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망루로 쓰였다고 한다. 석포에는 전망대가 하나 더 있는데 그 곳은 '석포독도전망대'라고 불린다.

석포전망대는 두루봉(281m) 일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해안가에서 올라가려면 좀 시간도 걸리고 힘도 많이 든다. 태하 대풍감처럼 모노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석포전망대에 올라서면 호젓하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멀리 있는 관음도의 모습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 북면 석포 인근의 해안가 석포 인근에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 바위들이 해안도로 주변에 위치해 있다. 사진에 나오는 '물개바위'도 석포 일대에서 볼 수 있다. '물개바위' 뒤편으로 보이는 섬은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서 보는 관음도의 풍광은 일품이었다. 한편 '물개바위'는 필자가 임의적으로 네이밍을 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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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을 항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

석포 독도 전망대 아래쪽으로 하산을 하면 섬목항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이 운항을 했다. 앞선 여행기에도 언급했듯이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저동 간의 구간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섬목까지 탐방한 사람들은 차를 돌려 왔던 길을 고스란히 돌아가야 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야 느긋하지만, 나같이 철TB에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무시무시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 놀이'를 또 하라고! 시시포스 놀이는 한 번으로 족했다.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면 느긋하게 저동항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탑재도 가능한 여객선이라 자전거 탑승은 문제 없었다. 배 삯은 1인당 5000원이었고, 자전거는 3000원의 추가 운임을 받았다. 전남 완도-청산도의 여객선 운항거리가 30km 정도이고 배 삯이 8000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섬목-저동 간의 배 삯은 좀 비싼 편이다. 총 운항거리가 10Km도 안 되기 때문이다.

 

 



▲ 섬목-저동간의 여객선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에서 끊긴다. 그래서 울릉도 동북쪽인 섬목에서 읍사무소가 있는 도동까지 가려면, 왔던길을 다시 또 가야 한다. 하지만 저 배를 타면 저동항까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배를 타면서 아름다운 울릉도의 동쪽 해안을 느긋하게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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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보라고 권해드린다. 바닷가 위에 우뚝 솟은 울릉도의 기암절벽들을 스쳐지나가듯 배를 타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가며 울릉도 동쪽 해안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 배를 타고 가면, 왜 아직까지 섬목-저동 구간 도로가 개설되지 않은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 곳은 지형이 험하다. 다시 말하면 그런 해안가 기암괴석들을 배를 타고 느긋하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석포에서는 산길을 따라 내수전으로 갈 수 있다. 석포와 내수전을 잇는 산길은 동편 울릉둘레길이다. 동편 울릉둘레길을 따라가면 정매화골을 지난다. 내수전에도  전망대가 있는데 이름하여 '내수전 일출전망대'라고 불린다. 내수전 코스도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울릉도의 절경 중에 한 곳으로 꼽힌다.

 

 

 


#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팁

필자는 2012년 6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울릉도에 머물렀다. 6월 29일까지 쓴 비용은 29만7000원이었다. 이를 다시 울릉도에서만 지출한 비용을 계산해보니 19만6000원이었다. 여기에 강릉-울릉도 여객선 왕복요금인 9만8000원을 빼보니 9만8000원이 되었다. 즉 약 7일간 울릉도에 있으면서 9만8000원으로 여행을 한 것이다. 이 비용에는 태하 모노레일 비용, 섬목-저동 구간 배 삯, 울릉도 군내버스 비용 등이 다 포함된 것이다.

물론 필자는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여행을 하는 터라 위와 같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저렇게 가난뱅이처럼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울릉도 탐방에 대한 팁을 드리려고 한다.

울릉도는 숙박이나 음식점의 90%가 울릉읍 저동-도동-사동에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읍내를 빠져나오면 호젓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울릉도도 성수기 시즌에는 민박 잡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성수기 시즌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 중심가만 빠져나오면 텐트 칠 곳은 아주 많기에 캠핑 장비를 완비했다면 여름에도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 울릉도의 단방향터널 울릉도 남부지역 해안가도로에는 단방향터널이 상당히 많았다. 단방향터널 앞에는 신호등이 있어, 양측방면의 차량소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호를 제때 받으면 저런 터널을 몇개씩 통과했기에 차들이 터널 안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도보로 터널을 넘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입구가 흰색인 단방향터널 3개를 동시에 렌즈 속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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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그래서 울릉도의 일주도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일주도로가 해안가를 끼고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주도로를 걷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일주도로가 걷기에 편한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보면 입출입이 한 곳인 단방향 터널이 나온다. 그런 터널을 걸어서 넘어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필자는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넘었는데, 어찌나 차들이 빨리 다니는지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울릉도에는 단방향 터널이 여러 곳이 있는데, 신호를 잘 받으면 한 번에 여러 터널을 쉽게 건널 수 있는 구조였다. 반면 신호를 놓치면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터널에서 차들이 빨리 지나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도보로 터널을 지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해안가 걷기는 북면 일대가 최적이었다. 내가 시시포스 놀이를 했던 항목령을 넘으면 북면 현포항이 나온다. 이곳부터 섬목까지는 걷기도 좋고, 풍광도 멋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코끼리 바위나 삼선암, 관음도 같은 멋진 풍광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다.

울릉도는 버스 운행이 자주 있는 터라 버스와 도보를 결합하는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버스가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데 시골버스치고는 상당히 자주 운행하는 편이다. 중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다음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난 대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 태하 산책길에서 서면 태하 모노레일 인근에는 소라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타고 오르면 해안산책길을 만날 수 있다. 바위투성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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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요금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울릉도 시내버스의 기점인 도동 읍사무소 입구에서 북면 면사무소 소재지인 천부까지 거리는 30Km가 넘는다.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6월 26일(여행13일차)에 나는 천부항 인근에 텐트와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도동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앞서 언급한 '일몰 관광버스'를 이용했던 것이다. 당시 왕복요금으로 3000원 정도를 지불했으니 무척 저렴하게 여행했던 셈이다.

다른 지역의 시골버스 같은 경우는, 30Km 이상 이동했으면 편도 요금만 3000원이 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울릉도 버스-도보를 결합한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면 굳이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고도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이런 방식은 단독이거나 소규모 팀으로 움직여야 가능할 것이다. 

걷기를 하다 식사를 못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울릉도의 경우 면소재지 정도에 가야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에 거의 매일 5끼를 먹었다. 영양보충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중에 3식은 시리얼과 두유로 해결을 했다. 우유보다는 두유가 보관하기가 편하고 유통기간이 길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니 무척 간편했다. 또 시리얼과 두유를 섭취하면 영양공급 문제가 해결이 되는 장점도 있었다.

 

 


▲ 내수전 가는 길 저동항에서 내수전 가는 길이다.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면 바닷가 쪽으로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죽도를 볼 수 있고 내륙 쪽으로는 성인봉 일대를 바라볼 수 있다. 필자가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있어 원활한 관찰을 할 수 없었다. 사진 중앙에 조그맣게 있는 섬은 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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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하는 여행, 맛집도 다니고 그래야 하지 않냐고? 맛집 기행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무슨 재미냐고? 혼자 몸으로 식당에 들어가면 식당 주인이 별로 안 좋아한다. 서울이야 혼자 밥먹는 사람도 많지만 유명관광지는 단체손님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냥 눈치 보면서 밥먹는 것보다 시리얼로 때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끼 식사 정도는 그런 식의 행동식을 섭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맛집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남이 맛있다고 해도 나한테는 별로일 수 있는 게  음식이다. 음식 맛이라는 건 매우 주관적인 개념 아니겠는가?

전쟁 때는 주먹밥 먹고도 전투를 잘 했다고 하지 않던가! 주먹밥보다는 두유나 우유에 시리얼 둥둥 띄어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여행자라면 이런 정도는 감수를 해줘야지!

 

 


▲ 현포항 일대 북면 현포항. 이국적인 모습이 들 정도로 참 아름다운 풍광이다. 저런 곳에서 낙조를 본다면 더욱더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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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포항이 바라다보이는 전망대 북면 현포항이 보이는 전망대다.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현포항 부근은 옛날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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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지도 울릉도 지도. 기사의 이해 높이기를 위하여 네이버 지도 서비스를 가져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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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0일 차: 2012년 6월 23일

내가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여행일지를 살펴보니 오후 8시에 하선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배멀미로 구토를 여섯 번이나 해서 진이 다 빠졌지, 주위는 이미 어두워진 데다 하룻밤 잘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지. 울릉도 섬 여행이고, 백두대간 여행이고 다 귀찮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여행을 '쫑 내고'고 서울로 복귀하고 싶었다. 그냥 편하게 안양천이랑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예쁜 여자'들이나 쳐다보면서 자전거나 탈 걸 무엇 하러 이고생을 사서 하는가? 그런 필자의 우울한 마음도 몰라주고 어떤 울릉도 아줌마가 이런 말을 외친다.

"어이, 자전거 끌고 가는 아저씨 민박 3만원."

가뜩이나 울릉도에 와서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그 호객행위 하는 아줌마의 말이 귀에 잘 들렸겠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텐트 있어요."

 

 



 

 

▲ 울릉한마음회관에 친 텐트 울릉도에 너무 늦게 입도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노숙을 할 판이었지만, 다행히 울릉한마음회관 앞마당에 저렇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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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첫 번째 베이스캠프 울릉한마음회관

텐트만 있었을 뿐이지, 캠핑 장소는 없었다. 조바심이 생겼다. 아무리 필자가 노숙에 익숙하다고 해도 진이 빠진 상태에서 텐트 세팅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도동항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읍 소재지인 도동항에 가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울릉도의 지형은 한계령 빰칠 정도로 험했다. 저동항에서 도동항으로 이동할 때는 저동재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의 경사도가 엄청 가파른 것이다. 배멀미의 여파로 정신은 혼미하고, 뱃속은 허하고, 저동재의 경사도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정말 울릉도와 나는 서로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

불행 중 다행으로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곳 앞뜰에 팔각정이 있어 거기다 그냥 텐트를 쳤던 것이다. 더 이상 이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텐트 세팅을 했던 것이다.

텐트를 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다. 배멀미로 위액까지 쏟아낸 터라 내 뱃속이 음식물을 잘 소화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을 먹으면 제격이었기에 그 길로 다시 저동항 부근 편의점으로 가, 인스턴트 야채죽을 하나를 사먹었다. 울릉도에 입도해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편의점 죽일 줄이야...

다음날. 육지에서 피로가 많이 쌓여서 그랬는지 잠은 잘 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관공서 앞에 야영지를 잡았지만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낸 셈이었다. 텐트에서 나와 야영지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난 놀라운 풍광들을 보게 됐다. 내가 있던 울릉한마음회관은 저동재 중턱 부근에 있었는데 그 아래로 저동항 일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던 게 아닌가. 내 눈은 휘둥그레졌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비경을 품고 있기에 필자가 놀랄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 저동항 울릉한마음회관에서 내려다 본 저동항. 울릉도에서 맞은 첫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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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해안도로 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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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vs. 제주도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그래서 울릉도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듯 계속적으로 울릉도행 배편은 증편되고 있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활동에 의해 탄생된 섬이다. 하지만 두 섬의 지형적 특색은 다르게 나타난다. 제주도가 솥두껑 모양의 완만한 순상화산 지형이라면, 울릉도는 급격한 경사도를 나타내는 종상화산 지형이다. 제주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올레길이 개설됐을 정도로 해안지형이 완만한 경사도 나타내지만 울릉도는 그렇지가 않다. 울릉도의 해안은 수직적인 해식애 지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식애란 바닷물의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를 말한다.

그런 지형적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 울릉도는 완전한 일주도로가 없다. 1963년부터 2001년까지 39.8km에 이르는 도로가 저동(울릉읍)-섬목(북면)까지 개설이 됐는데, 섬목-저동까지는 도로가 끊겼다. 울릉도 중앙에 성인봉(986m)이 있는데, 성인봉을 중심으로 1시 방향 지역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동리 -천부(북면 면소재지)간 4.75km 도로의 기공식이 2011년 12월에 거행됐고, 2016년에는 완전한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설될 예정이다.

 

 



▲ 울릉공설운동장 서면에 있는 울릉공설운동장. 저렇게 멋진 곳에서 축구를 하면 나도 메시나 호나우두처럼 공을 잘 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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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듯 울릉도에는 둘레길이 있다. 하지만 경사도 완만성이나 접근성면에서 제주 올레길이 우위에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울릉도 둘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서면 남양리에서 태하리까지 개설된 7km 구간은 섬 안쪽에 있는 태하령(496m)를 넘어가는 코스다. 저동-섬목 구간에 개설된 둘레길도 남양-태하 구간보다는 바닷가에 접하기는 하나 내수전과 정매화골등을 지나쳐야 하기에 산행코스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신 울릉도에는 '행남해안산책로'라는 해안도보길이 따로 개설돼 있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 팀이 탐방해 유명해진 길인데, 해안절벽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멋진 길이다.

 

 

 


▲ 항목령 정말 꾸불꾸불한 길이다. 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놀이를 해야 했다. 내가 무슨 그리스 신화를 쓰는 사람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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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락내리락, 울릉도는 내게 시시포스가 되길 '강요'했다

필자는 주로 울릉도 해안을 따라 이동을 했다. 울릉도는 역시 섬지역이라 해안을 따라 관광명소가 즐비했다. 예를 들어 서면 통구미 마을에 거북바위나 북면 석포리의 삼선암 등은 해안도로 바로 옆에 있어 힘들이지 않고 그 바위들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한편 울릉도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무척 힘든 곳이었다. 급격한 경사도로 인해 자전거를 끌고 가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철TB'인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에 무려 40kg 달하는 짐을 싣고,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오르락내리락은 반복하니, 마치 내 자신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가 된 것 같았다.

설악산의 한계령을 넘고, 그밖에 강원도의 험준한 고개들 줄줄이 넘어온 나였지만,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에 그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서면 태하에서 북면 현포리로 넘어가는 항목령 부근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 험하기로 소문난 지리산 관통도로와 필적할 정도로 꾸불꾸불했기 때문이다. 지리산 관통도로야 해발고도가 높기라도 하지. 항목령은 겨우 300m밖에 안 되는 곳이었지만 내게 시시포스의 역할을 강요시켰던 것이다.

 

 

 


▲ 항목령에 우뚝선 블루야크 어렵게 어렵게 정상부에 올랐다. 거의 탈진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시시포스 놀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뿌듯했다. 블루야크는 내 철TB의 애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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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바위 서면 통구미 마을 부근에 있는 거북바위다. 형상이 기묘하여 사진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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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타이밍, 강릉항에서 타이밍을 잘 잡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5] 강릉항에서 울릉도행 배를 타다

 

 

 

 

 

12.10.22 21:23l최종 업데이트 12.10.22 21:23l
곽동운(artpunk)

 

 

 

 

 

 

▲ 주문진항의 블르야크 ?산에 갔다, 바다에도 갔다 내 자전거인 블루야크 종횡무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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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3일 토요일: 여행 10일차



설악산 한계령이 '원통'함을 풀어주어서 그랬는지 다음 일정은 좀 수월한 편이었다. 이전 여행기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계령, 특히 양양군 방면의 경사도는 상당했다. 가뜩이나 브레이크가 잘 안 드는 중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지라,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내 마음은 콩닥콩닥했다. 난 자전거 속도 측정용 GPS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는데 당시 순간 시속이 65km까지 찍혀 있었다. 그런 한계령을 사고 없이 무사히 통과했으니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무사히 강원도 양양군에 도착한 나는 양양군 현남면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강릉항(구 안목항)을 향해 출발했다. 일명 낭만가도라고 불리는 7번 국도를 따라 양양군에서 강릉시로 이동을 한 것이다.

 

 

 


▲ 주문진항 주문진항의 오징어잡이 배들. 그냥 주문진항은 '항구 한바퀴'놀이를 해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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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에게는 낭만, 자전거에게는 비낭만

낭만가도. 물론 그곳이 낭만 가도이기는 했다. 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삼아 시원하게 내달리는 것 자체가 낭만적인 일이 아닌가? 그때 옆에 사랑하는 이가 동승하고 있다면 그 낭만은 두 배, 세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낭만가도를 짐 40Kg이 실린 블루야크(내 자전거 이름)를 끌고 혼자 낑낑거리며 페달을 굴린다고 생각해보라! 낭만이 아니라 낭패지!

필자는 7번 국도를 달리는 이들의 낭만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7번 국도는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부산까지 연결된 종단 국도로 유명 해수욕장과 리조트들을 많이 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수도권 국도치고는 교통량이 상당히 많고 차들도 과속을 많이 하고 있었다. 또한 유명해수욕장 주변에는 교통정체 현상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갓길이 잘 발달이 되어 있냐? 그것도 아니다. 자동차들과 노면을 같이 써야 하는, 나 같은 자전거족들에게 7번 국도는 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도로였던 것이다. 물론 군데군데 자전거도로가 놓이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일부 구간에 한정된 시설이었다. 나도 낭만을 느끼고 싶어 가끔 느긋하게 주행을 했는데 그때마다 뒤에서 나는 '빵빵' 소리에 산통을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편 흉하게 서있는 동해안 철책선도 낭만가도의 낭만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푸른 동해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을 철책선와 함께 감상해야 하는 게 썩 유쾌하지가 않았었다. 철조망 너머의 동해바다는 그저 해류의 흐름이 있을 뿐 남북으로 갈라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 주문진오징어 문제의 그 오징어다. 한편, 이 사진을 보니 그때의 오징어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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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천 원에 두 마리, 주문진항에서 오징어로 배를 채우다

그런 비낭만적인 난관들을 뚫고 강릉시 주문진항에 도착했다. 주문진항에 도착을 하니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오징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맥주를 마실 때도 새우깡보다는 오징어땅콩을 선택할 정도로 오징어를 좋아한다. 그런 차에 주문진항까지 왔으면서 그냥 갈 수 있겠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주문진항은 매년 10월경에 <오징어축제>를 개최할 만큼 오징어 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오전 10시 30분 경에 주문진항에 도착했었다. 이리저리 주문진항과 어시장 구경을 하며 '시장 한 바퀴 놀이'를 했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 자체가 좋은 관광명소인 것처럼 주문진항과 어시장 자체도 좋은 볼거리였다. 시장 한 바퀴 놀이를 끝낸 후 난 오징어 회를 파는 곳으로 갔다. 항구에서는 통상 만 원에 4마리를 팔았는데,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아주머니들이 내게만 5천원에 2마리를 팔았다. 거기에 회 뜨는 비용 천 원이 추가됐다. 항구를 둘러보니 거의 다 가족단위나 연인단위였지 '뻘쭘'하게 혼자 다니는 사람은 나 말고는 거의 없는 듯싶었다. 더군다나 혼자 와서 오징어를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 자신이 초라하면 어떤가? 오징어가 맛있는데. 초장에 착착 찍어 맛나게 먹었다. 혼자서 두 마리를 다 먹기에는 버거웠지만 '우구적거리며' 그냥 다 먹었다. 그 아까운 걸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오징어로 뱃속을 든든히 채운 후, 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강릉항에 가서 울릉도로 향하는 쾌속선을 타야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울릉도로 가려고 몇 번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고, 태풍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제주행 여객선보다 비싼 배 삯에 쓴 입맛을 다시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한반도 상공을 뒤덮은 태풍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만큼 울릉도는 쉽게 나를 반겨주지 않는 곳이었다.

 

 

 

 



▲ 동해바다 여름바다이긴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시즌이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좀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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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30분경.

강릉항에서 출발하는 울릉도행 배는 오전에 딱 한 편만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객터미널 방향으로 향했다. 배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지 물어도 보고, 사전에 동선도 파악할 생각이었다.

"배 타시려고요?"
"지금 출발하는 배가 있어요?"
"네. 편도 4만 9천원이에요."

대합실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온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매표소 아줌마가 퉁명스럽게 말을 건냈다.

 

 

 

 

# 인생사 타이밍! 여행도 타이밍! 


배가 있단다. 그런데 배에서 먹을 간식거리 같은 필요 물품들을 구매하지 않았는데. 강릉항 근처에서 1박을 하면서 그때 마트에 가서 물품들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터미널 구조나 알아보려고 들어왔는데 바로 배가 있다니. 어차피 물품이야 울등도에 가서 구매를 하면 되지 않은가? 물론 울릉도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말야. 인생사 타이밍아닌가! 지금 안 잡으면 또 언제 타이밍을 잡을 것인가.

나는 그 즉시 배에 올랐다. 알고 보니 그 배는 부정기편이었는데 그래서 승선 인원도 적었다. 나를 포함해서 40명도 안 되는 인원이 탑승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자전거를 적재할 수 있는 공간도 여유가 있었다. 강릉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은 차량 탑승이 안 되는 밀폐형 배다. 일명 박스(box)배로 불리는 쾌속정으로 선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속 50Km 이상의 속도로 해상을 질주를 하는 터라 승객 안전을 위해 그런 구조로 배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속도가 빠른 만큼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울렁증이 심하게 생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출항 직전에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구토용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줄 정도였다.

까짓것 무슨 배멀미인가!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배를 타봤는데. 그동안 섬여행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데. 난 받아든 비닐봉지를 하찮게 여기며 그냥 쓰레기 비닐봉지로 사용을 할 생각을 했었다.

 

 

 



▲ 시스타(sea star)호 울릉도와 강릉항(구 안목항) 구간을 운항하는 쾌속정이다. 배수량 590톤에 433명을 태우고 3시간 정도로 강릉-울릉 구간을 주파한다. 한편 밀폐형 배라서 그런지 배멀미가 심하다. 사전에 배멀리 약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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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여행의 팁: 멀리약을 챙기자!

깜빡 잠이 들었다 깼다. 무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왜이리 속이 울렁거리지? 울릉도에 간다고 이렇게 울렁거리나. 역시 울릉도는 내게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올 기세였다. 난 당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윀. 해상 날씨가 안 좋았던지 배가 요동을 쳤다. 다시 우윀. 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아까 주문진에서 먹은 오징어가 꿈틀대며 내 몸에서 빠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또다시 우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승선 인원이 별로 없어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도 구토를 심하게 하다 보니, 난 오기가 생겼다. 그래 몇 번까지 하냐, 한 번 카운팅을 해보자. 또 우윀. 총 여섯 번이었다. 총 여섯 번에 걸쳐 구토를 했다. 나중에는 개어낼 것이 없어서 그냥 위액이 쏟아졌다. 아까운 내 주문진 오징어들이 변기통으로 싹 다 쓸려 내려간 것이다.

필자도 느껴진다. 내게 가해지는 따가운 시선들. 좋은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이렇게 세밀하게 '우윀' 장면을 묘사 하냐고 항의를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만약 이 기사를 식사 시간 전후로 읽으신 분들은 필자에게 엄청난 저주를 퍼부으실 것이다.

 

 


▲ 울릉도 저동항 배에서 구토를 6번이나 해서 그런지 넋이 빠진 모습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저동항에서 정신 좀 차리고 하다보니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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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뱅이들을 위한 울릉도여행!

 

하지만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필자는 몇 가지 당부를 하려고 이 부분을 세밀하게 그린 것이다. 그렇다. 배멀미를 주의하라는 것이다. 꼭 배멀미 약을 준비하신 후에 승선을 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자신이 배멀미에 강하다고 과신하지 마시고 미리 약을 준비하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배멀미를 앓으면 그만큼 자신도 괴롭고 향후 여행 일정에도 막대한 차질이 생기게 된다. 필자처럼 56일 동안 여행을 하실 시간적 여유가 없으신 분들은 돈 2~3천원 들여서 멀미약을 복용하신 후에 승선을 하시면, 더 기분 좋게 울릉도 여행을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게 필자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첫 번째 울릉도 여행 팁이다.

여기서 잠깐! 당시 필자는 울릉도에 입도를 할 때까지 여행 경비로 110,000원을 지출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때가 여행 10일차였었다. 하루에 만 원 정도 썼는데, 7일을 머물렀던 울릉도에서는 얼마를 지출했을까? 항간에는 울릉도 여행이 제주도여행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그만큼 울릉도의 물가가 비싸다는 것이다. 그럼 주머니가 가벼운 필자가 7일 동안 울릉도 곳곳을 다니면서 쓴 돈이 얼마일까? 필자는 놀 거 다 놀고, 볼 거 다 보면서 울릉도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텐데, 이거 경비 부족으로 울릉도가 자전거여행의 마지막이 되는 건가?

다음편을 기대해주시라. 울릉도에서 쓴 경비내역들을 올릴 생각이다. 가난뱅이 여행가가 고물가 지역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드릴 생각이다. 아웃도어여행 앞에 모든이들이 공평하다는 게 내 여행 철학인만큼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도 울릉도 여행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생각이다.

 

 

 



▲ 시스타호 저렇게 시스타호 후미 부근에 자전거를 적재했다. 원칙적으로는 자전거 탑승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출항 당시 워낙 사람들이 적게 승선해서 그냥 승무원들이 탑승을 시켜줬다. 본 사진은 창문 넘어로 찍었다. 운항중에는 승무원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선실밖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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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바우길 강릉에도 도보여행 길이 있다. 일명 바우길이다. 소설가 이순원씨가 이 바우길 개척에 참여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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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어시장 주문진항 바로 옆에 있는 어시장이다. 그냥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구경거리다. 우리동네 낭만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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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오두막 내가 오징어회를 먹고 있는데 대가족이 몰려왔다. 그래서 난 냉큼 자리를 비켜줬다. 꿔다 둔 보리자루 마냥 내 자전거가 저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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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울릉도는 그 자체가 출사지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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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이 나의 '원통' 함을 달래주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④] 한계령 편
12.10.12 20:59l최종 업데이트 12.12.18 22:00l
곽동운(artpunk)

 

 

 

 

 

 

 

▲ 한계령 한계령에 자신이 올라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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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나는 강원도 양구와 인제에 있는 광치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입성했다. 광치령은 660고지였는데, 역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힘든 기색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이제 곧 한계령을 넘어야 했으니까!

"실례하지만, 여기 읍사무소가 어디에요?"

힘들게 광치령을 넘었던 터라, 읍사무소에서 물도 얻어 마시고, 인제군 여행지도도 얻어갈 생각이었다.

"읍사무소는 남쪽으로 한참 가야 하고,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면사무소가 있어요."
"예? 여기가 원통읍이 아닌가요?"
"원통은 원통리이고, 여기는 읍이 아니라 북면이에요. 인제군 북면."

 

 

 

# 원통이 읍이였어?... '광천김'은 A급 밥도둑

'읔! 원통읍이 아니라 원통리였다니! 원통의 정확한 행정상 지명이 인제군 북면 원통(元通)리였다니!'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녀봤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원통이 행정구역상 '리' 단위였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사실은 내 얇은 지식이 들통이 나서 더 창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칭 아웃도어 여행가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우리나라에서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군' 단위와 차별화되어 자체적 '네이밍' 파워를 가진 곳이 몇 군데 있다. 가야, 강경, 광천, 삼랑진, 벌교 등이 그곳이다. 강경은 충남 논산시 강경읍, 광천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 삼랑진은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벌교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공식적인 행정 지명이다. 고대연맹 국가인 가야국에서 지명을 따온 가야읍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속해 있는 곳으로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벌교도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였으니, 잘 알 것이다.

강경과 삼랑진은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 이후, 쌀의 집산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강경은 금강을 통해, 삼랑진은 낙동강을 통해 바다로 출항할 수 있는 곳인데, 그만큼 내륙 수운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광천은 '광천김'으로 유명한 곳이다. 2011년 자전거여행 당시 난 그곳에 들러 '광천김'을 한가득 샀었다.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여행자와 궁합이 잘 맞는 밥도둑들을 데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광천김'은 A급 밥도둑이었다.

이렇듯 읍 단위의 지명이 그 상위 행정구역인 시나 군만큼 입에 자주 언급되는 경우는 종종 봐 왔지만, 리 단위의 지명이 군 단위의 '브랜드 파워'와 필적하는 경우는 원통리가 유일할 것으로 여겨진다.

 

 




▲ 원통종합복지타운 저 곳에는 도서관, 공공회의실, 보건지소 등 공공시설이 입주해 있는데 우리동네에 있는 곳보다 시설이 더 좋았다. 저 사진은 복지타운의 담당자님이 찍어 주셨다. 그 분 말씀에 의하면 인제군 북면은 인구가 8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면단위 인구 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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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그럼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원통리가 인제군과 짝을 이루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애절한 슬로건 대명사를 낳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강원도 군번들이 입에 달고 사는, 아리랑 곡조보다도 더 애절한 이 말의 출현시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사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에도 원통리가 있다. 하지만 인제군의 원통리와 비교하면 그 존재감이 덜해서 일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청원 가서 원통하다!'라는 말은 없으니까.

인제군 원통리의 지형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북쪽으로는 명당산(764m)이 있긴 하지만, 동쪽으로는 소양강을 향해 가는 북천이 흐르고 있어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원통리에는 원통체육공원도 자리 잡고 있다. 차라리 한계령을 품고 있는 한계리의 지형이 험하면 더 험한 듯싶었다.

원통(元通)은 원래 원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설악산과 금강산을 넘으면 바로 원산이니 그런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인 의미의 명칭은 한국전쟁과 분단 그리고 군사도시로 변모한 인제군의 모습 속에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마음속에 '슬픈 아리랑' 한 곡조씩을 품고 사는 강원도 군번들에게 '인제'와 '원통'이란 명칭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푸념거리의 소스로 제격이었던 것이다.

원통에 대해서 '왜 그리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필자에게 질책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것인지 '명칭 따라 삼천리'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다고 비판의 화살을 내게 발사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필자는 원통을 보면서 한국전쟁과 뒤이은 분단으로 인해 해당 지역 명칭이 일반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각인되는지에 대해서 주목해 본 것이다. 예를 들어 지리산 피아골 같은 경우도 원래는 곡식인 피가 많이 재배된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골짜기가 피로 넘쳐 났다는 변형된 의미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게 됐다는 것이다.

 



▲ 설악산 산봉우리의 걸린 흰구름을 보니 아이스크림 생각이 간절해지더라! 쪽쪽 빨아먹을 수 있는 배 맛 탱크보이가 그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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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한계령으로 향하다!  


한계령 초입에 해당하는 한계교차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2시 경이었다. 40Kg 달하는 자전거를 끌고 한계령을 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행동식은 준비가 됐는가? 식수는 몇 통을 챙겼는가? 만약 밤샘 이동을 한다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등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충족시키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한계령이 어떤 곳인가? 설악산을 가로질러 동해로 나아갈 수 있는 높디높은 고개가 아니던가!

한계교차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면 미시령 고개를 넘을 수 있고, 44번 국도를 타면 한계령에 다다를 수 있다. 인제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인접 도시인 속초로 갈 때 주로 미시령 도로를 이용한다고 했다. 미시령은 터널로 연결됐기 때문에 보다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꼬불꼬불한 한계령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서울에서 속초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주로 미시령을 이용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아갔지만, 설악산 속살을 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더군다나 차가운 개천이라는 뜻의 한계(寒溪)로 들어가는데, 그 정도의 노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확실히 자동차 여행과 자전거 여행은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계령이 험하다고 하지만,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반대편 양양군에 입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을 빨리 이동할수록 인간의 두뇌가 '패스'시키는 지리적 장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긴 운전에 집중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수많은 자연풍광들을 어떻게 일일이 다 지켜보겠는가.

 

 



▲ 한계령 관통도로 표지판에 있는 고라니처럼 껑충껑충 뛰어올라 한계령에 도달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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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야크' 타고, 한계령을 10시간 만에 주파


비록 중고 자전거지만 엄연히 내 자전거도 이름을 가지고 있다. 블루야크. 내 자전거가 푸른색이라 국내 모 아웃도어 브랜드 명칭을 빗대서 그렇게 지어본 것이다. 내 자전거가 무적 철TB라 히말라야 야크들처럼 튼튼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네이밍을 붙여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니까.

산중에서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어차피 야간 이동을 각오했지만, 밤이 되니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시간이 더 지체 됐던 것이다. 나도 블루야크도 지쳐갔다. 이전의 여행들을 통해 많은 경험이 쌓였지만, 한밤중 산중에서의 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지친다고 안 갈 수 있겠는가! 무거운 블루야크를 끌고 걸음에 걸음을 계속했다. 이렇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한계령에 올라서서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부를 수 있다는 생각에 블루야크에게 '채찍'을 가하며 재촉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산중에서 홀로 고독과 탈진 사이를 오가며 계속 걸음에 걸음을 더했다. 그런 외로운 길에도 친구는 있는 법이다. 뻐꾸기, 소쩍새 등등의 산새들이 내 귀를 밝게 해주었다. 시각적으로는 어두웠으나 청각적으로는 무척 경쾌했다.

가고, 또 가고 하다보니 결국 한계령 정상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고도 920m인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난 쾌재를 불렀다. 애초 예정했던 시각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20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반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러고보면 여행하면서 어떤 이동수단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지는 듯 싶다. 10시간이면 고속버스로 서울에서 속초까지 왕복 2번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 한계령 정상 참 힘들게 올라왔다. 어두웠을 때 도착했더니 사진도 잘 안 찍혔다. 수 십방을 찍은 후에 겨우 건진게 이 사진이다. 흐릿하게 나왔지만 이 사진 하나가 내게는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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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태순이 말하는 한계령

 

 만약 누군가가 자동차로 한계교차로에서 한계령까지 오는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을 했을까? 그 운전자가 설악산에 사는 신선이 아닌 이상 무슨 큰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적어도 동승한 사람은 10시간 동안 운전자의 짜증과 욕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거리를 10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교통수단에 따른 '여행시간 체감변동법칙'이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애초 한계령 관통도로는 1972년에 군사용 도로로 개통된다. 그러다 한 공병부대가 6년간의 노력 끝에 1978년 포장도로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반 국민들이 자동차로 한계령까지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설가 박태순씨가 쓴 <나의 국토, 나의 산하 1>에 한계령 관통도로에 대한 내용이 있어 잠시 인용해본다.

"공병부대원들의 노고와는 상관없는 것이었지만 애당초 잘못 설계되고 아울러 무리한 산복도로 공정으로 사고가 발생되곤 한다. 절개와 절삭, 백두대간의 산세와 지세를 아예 무시하고 묵살시켜 벼랑길을 내게 한 것이다."

박태순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70년대, 그것도 공병부대에 의해 개설된 도로이기에 지금의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것은 아예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환경적인 면은 그렇다 하더라도 '벼랑길'은 눈에 보이는 현재적인 위협이 된다. 이 부분은 필자도 제대로 경험을 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제군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안전상 문제로 인해 한계령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하지 않던가! 한계령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해준 것은 인정되나 그만큼 '목숨 걸고' 한계령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 한계령 이 사진은 나처럼 자전거여행을 하던 어떤 대학생이 찍어준 것이다. 나는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길이었고, 그는 반대로 양양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참 멋진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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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내 텐트로 찾아온 한계령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한계령은 그 말뜻대로 정말 서늘했다. 준비해 둔 잠바를 꺼내 입었는데도 추위에 오들오들 떨 정도였다. 변덕스럽게 끼고 지고를 반복하는 안개를 보고 있자니 몽롱한 기운도 느껴졌다. 가수 양희은씨의 '한계령'을 한 곡 제대로 뽑고 싶었지만, 한여름에 맞는 추위에 입이 얼어붙었는지 난 그저 따뜻한 커피만 홀짝였다. 제설장비를 모아두는 창고에다 베이스캠프를 친 후 나는 싸늘한 한계령의 날씨를 원통해하며 잠이 들었다. 잠결이었나? 누군가 내게 말을 이런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인제서라도 와줘서 고맙습니다. 원통한 마음은 거두고 편하게 잘 쉬었다 가세요!"

내가 잠든 사이 한계령이 내게 와서 속삭이듯 이 말을 남기고 간 듯싶었다.

 

 



▲ 한계령 정상에 차린 베이스캠프 제설장비들을 적재시켜 놓은 창고에다 한계령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한여름에 눈이 올 것도 아닌데.. 하룻밤 신세 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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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진항 설악산에도 올라가고, 동해바다도 달리고... 나의 자전거인 블루야크는 어디든 종횡무진이다! 다음은 울릉도로 향해 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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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강원도 화천에서 행한 <평화안보백일장>의 쓰라린 패배를 뒤로하고, 나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 방문을 접목하는 방식은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몸은 많이 축났다. 그저 방문객의 입장에서 보고 즐기는 축제에 참가했으면 모르겠는데, 능동적으로 움직여야하는 글쓰기 대회에 참여했으니, 예상치 못한 체력의 소진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난 1등을 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1등은커녕 가작에도 못 들어, 인건비도 못 건졌으니 강원랜드에서 '한 판 땡길' 이유도 없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기념으로 정선에도 가보고, 가리왕산도 탐방할 생각이었는데 애초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그래서 여행 경로를 수정했다.

 



▲ 북한강의 자전거도로 화천에서 양구를 향해 가는 길. 이 길을 따라 시원하게 강변을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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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 양구 -> 인제 -> 양양 -> 강릉 ->울릉도

이 코스로 길을 잡았고, 실제로 이 코스로 주행을 했다. 그런데 이 코스에는 중간에 한계령이 자리 잡고 있다. 한계령! 그 이름만으로도 아웃도어 여행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설악산 한계령!

일단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을 넘는다는 것이 무척 '환상'적인 일인데, 게다가 다른 고개도 아닌 한계령을 넘어간다는 것이 더욱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화천에서 한계령으로 가려면 양구를 거쳐 가야 한다.

'국토중앙 양구'

위의 명칭은 양구군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지역을 두루 다니다 보면 각 지자체마다 자신들의 특색을 슬로건화 해, 네이밍 한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천시는 '대한민국 생태도시 순천', 거창군은 '거창한 거창', 장흥군은 '정남진 장흥' 등으로 브랜드화했다. 거창군의 '거창한 거창'이야 지역 명칭을 브랜드화 시켰음을 단 번에 알아낼 수 있지만 장흥군의 '정남진'이나 양구군의 '국토중앙 양구'는 쉽게 그 뜻이 와 닿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남진은 장흥군이 서울에서 정남쪽으로 있다고 하여 정남진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했는데, 정동진을 빗대서 생각해보니 그 뜻을 쉽게 이해하게 됐다.

그럼 국토중앙 양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양구군은 DMZ를 끼고 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북한인데...

 

 



▲ 국토중앙 양구 한반도 중앙에 양구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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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배꼽 양구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남한, 북한을 뛰어넘는 한반도적인 슬로건이다. 휴전선 남쪽이라는, 협소한 시각에서 바라보면 양구는 철책선에 갇힌 변방에 불과하지만 철책선을 걷어낸 후의 양구는 국토의 정중앙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미래지향적이고 통일지향적인 구호라고 할 만하다.

남쪽만 나와 있는 교통지도와 남쪽지역 날씨만 알려주고, 북한 지역은 '언저리'로 알려주는 날씨방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국토중앙 양구라는 슬로건은 죽비소리와도 같은 일침을 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구글 어스에는 북한지역 정보가 나오지 않지만, 옛날 <대동여지도>에는 남북한의 구분이 없지 않았던가?

지리적으로 남과 북을 구분하는 사고도 극복해야 할 분단고착적인 사고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려있다고 하지만 백두대간이 갈렸는가? 남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고, 북쪽 백두대간이 따로 있겠는가? 다 똑같이 소중한 우리의 백두대간이지 뭐!

 

 



▲ 파로호 화천에서 양구로 넘어가기 위해서 파로호 인근을 지나야 했다. 멀리 파로호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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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령 터널 개통으로 접근성이 좋아진 양구

 

국토의 정중앙이라서 그런가? 양구를 진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에 양구는 도로 접근성이 많이 좋아졌다. 올봄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됐기 때문이다. 5.1Km라는 국내 최장거리 터널이 개통되어 양구와 화천을 오가는 길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기존의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어 도로교통이 무척 불편했었다.


그 두 호수가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길이 그곳을 '뼁~'하고 돌아가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차에 배후령 터널이 개통되었으니 화천과 양구에 사시는 분들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난 왜 양구를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말을 했나? 이율배반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5.1Km나 되는 터널을 통과한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거 정말 못할 짓이다.


400~500m 짜리 터널을 지나는 것도 정말 괴로운 일인데 무려 5.1km에 달하는 터널 구간을 지날 때의 고통이란! 내 고막을 도려낼 것 같은 자동차의 소음은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그나마 뒤에서 오는 차가 승용차면 다행이지, 22톤짜리 바퀴 8개 달린 덤프트럭이 뒤따라온다고 생각해봐라!

그 긴 장거리 터널을 지나고 나니, 탈진할 정도로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어둠 속에서도 야영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의 여행일지를 보니, 난 양구군 양구읍에 있는 사명산 양구학생 캠핑장에서 텐트를 쳤었다. 도착 시간을 보니 23시였다.

 






▲ 박수근 공원 박수근 미술관 앞에 있는 박수근 공원. 산책하거나 사색하기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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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만난 박수근 화백

 


다음날.

난 양구읍내로 진입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양구는 소양호와 파로호를 끼고 있다. 그래서 호반의 도시로 보이기도 한다. 양구 읍내에서 가까운 곳에 박수근미술관이 있었다. 양구 읍내에서 걸어갈 수도 있을 정도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좋은 감흥을 받고 왔다. 자전거여행에 지역축제가 접목되고, 또 미술관 탐방까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박수근(1914~1965)은 양구군 양구면(현 양구읍) 정림리에서 출생을 했다. 가난했던 그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게 됐는데 그런 성장배경은 박수근의 작품들에 오롯이 스며들게 된다. 그는 화강암처럼 두툼하고 거친 풍의 질감으로 작품들을 많이 제작을 했는데 그런 작품들은 서민적이면서도 소박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악〉(1932),〈나무와 여인〉(1950년대),〈행인〉(1964), <할아버지와 손자〉(1964) 등등... 작품명만 봐도 한국적이지 않은가? 그런 박수근미술관은 선생의 작품들과 함께 일대기를 기록한 공간이었다. 2002년에 개관한, 비교적 최근에 개관한 곳이라 그런지 전시공간과 편의시설도 합격점을 줄 만 했다. 

 

 




▲ 박수근 선생 좌상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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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선생 생가터에 200여 평 규모로 건립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은 그 자체로 문화공간이었다. 앞산이 보이는 확 트인 공간에 있는 미술관은 전면에 공원과 함께 야외전시장이 있었다.

그냥 얼핏 봐도 산책하기도 좋고, 사색하기도 좋은 공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나는 공원에 앉아 야외전시물들을 감상하며 식사를 했다. 왜 이상하게, 난 그렇게 멋진 문화공간에 들어서면 허기가 지는지 모르겠다. 야유회를 가면 도시락부터 챙기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긴 잘 먹어야지. 그래야 구비구비 돌아가는 한계령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는 '인제'로 향하는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느냐고? 원통해서 어찌하라고? 그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 가서 물어보시라.
 

 

 



▲ 고구려이야기 가난했던 박수근 화백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직접 역사 그림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감옥에서 역사편지를 썼던 인도의 네루 총리가 연상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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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의 고구려이야기 박수근 고구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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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 화백 작품 박수근 화백이 이런 작품도 그렸다. 박수근 화백에게서는 서양 화풍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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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과 자전거 박수근 미술관에 가면 무언가 작품을 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는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한 번 설치미술(?)을 해보았다. 박수근 선생은 내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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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 제 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 이외수 작가와 필자 이외수 작가님의 패션 감각은 남달랐다. 파란색 바지가 상당히 눈에 띄었다. 필자의 파란색 티셔츠와 묘하게 매치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당시 내 자전거에는 태극기와 함께 영국 국기인, 유니온잭이 걸려있었는데 한국 대표팀의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전을 기원하며서 달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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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4일 목요일.

드디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 시작됐다. 첫 목적지는 강원도 화천이었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6월이라 좀 이르긴 했지만, 당시 강원도 화천에서는 <2012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이라는 문화 행사가 개최되었다.

평화와 안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상 '평화'와 '안보'는 서로 접합 점을 찾을 수 없는 각 세력들이, 대표적으로 부르짖는 '프로파간다(어떤 것의 존재나 효능 또는 주장 따위를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일이나 활동. 주로 사상이나 교의 따위의 선전을 이른다.)'처럼 보인다. 소위 진보와 보수, 각 진영에서 그 낱말들을 중심으로 구심점을 삼아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고 피력한다는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쉽게 섞일 것 같지 않은 두 명칭을 내걸고 문화행사를 한다고 했으니 나도 처음에는 의심부터 품었다. 더군다나 문학축전 메인 행사는 <2012세계평화안보 백일장>이었는 데, 통상적인 백일장 행사는 반 나절 치기로 족하지 않던가? 그런데 2박 3일 동안 행사가 진행된다고 하니, 그것 또한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것들 사짜 아니야?'

 

 



▲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 홈페이지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을 알리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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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와 안보가 공존한 <세계평화안보축전>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그저 그런 행사가 아닌, 꽤 의미 있는 행사였다. DMZ을 끼고 있는 최전방 강원도 화천이라면 평화와 안보가 공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결정적으로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이 주도적으로 기획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다. 난 '이외수'라는 이름 석자를 믿고 화천으로 나아갔다. 백일장 최고 상금이 천만 원인 터라 잘하면 여행비용 충당은 물론 유럽 여행까지 '한방에' 해결될 수도 있었다.

또 나는 자전거로 화천까지 왔고,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초반부를 문학축전에서 보낸 만큼 적어도 지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두고 1타 3피라고 해야 할까?

<2012 세계평화안보문학축전>은 6월 15일(금요일)부터 2박 3일간 '평화의 종' 공원과 붕어섬 일원에서 진행됐다. 강원도 화천은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산천어 축제는 한겨울에 진행되는 대표적인 얼음낚시 축제인데 군부대로 둘러싸인 화천의 이미지를 좀 더 활기차고 밝게 바꾸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붕어섬은 화천 읍내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야외무대 및 편의시설이 있어 산천어 축제의 부대행사도 이 곳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붕어섬은 서울의 선유도 공원 정도의 규모였다. 그런데 거기에 야외공연장, 공원, 운동시설, 수상레포츠,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강원도 화천을 방문하는 분들이라면 산보 삼아 붕어섬을 탐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북한강의 시원한 풍광을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소풍을 즐기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실제로 인근 군부대에서 외박을 나온 군인 아저씨들과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분들이 붕어섬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많이 포착됐다.

 

 

 



▲ 붕어섬 북한강을 뒷배경하여 붕어섬에서 한 컷 찍어봤다. 이렇듯 붕어섬은 상당히 좋은 출사지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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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여름에 붕어섬에서 캠핑하다 얼어 죽을 뻔 했다! 

 

그런 붕어섬에서 3일을 캠핑했다. 지갑이 얇은 관계로 숙소를 잡는 것은 내게 사치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2박 3일을 펜션이나 민박집에서 보냈다면 바로 여행 예산이 바닥났을 것이다.

한편, 화천은 군부대가 몰려 있어 주말에는 외박 나오는 군인들 때문에 숙소 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문학 축전에는 500명의 예비문학인과 그 가족들이 참관하는 터라 가뜩이나 수용력이 한정된 화천의 숙소 문제를 더욱더 가중시켰을 것이다. 나도 그런 의문이 들어 행사 스태프들이나 군청 관계자분들에게 관련 사항을 문의해 보았다.

나의 '민원'이 잘 받아들여졌던 것일까? 원래 붕어섬은 야영과 취사가 금지된 곳이지만, 나는 행사 기간 내내 캠핑을 하고 밥을 지어 먹었다. 북한강의 시원한 풍광을 바라보며 낭만의 섬, 붕어섬에서 캠핑을 하는 그 맛이란!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나를 무척 부러워하실지 모른다. 아담하고 예쁜 붕어섬에서 '합법적'으로 캠핑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러워하실 거 없다. 6월 중순이었지만, 붕어섬의 밤은 무척이나 추웠다. 새벽에는 얼어 죽는 줄 알았다.

 



▲ 평화토크 왼쪽부터 공연기획자 탁현민, 작가 이외수, 개그맨 전유성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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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 공원에서 행한 백일장대회

 첫째 날인 15일에는 사전 행사로 '평화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기획자 탁현민씨가 사회를 맡았는데 오프닝 멘트로 이런 말을 했었다.

"이외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외수한테 빚진 사람들은 다 화천으로 와라!"

그렇게 이외수 선생님에게 빚진 사람들이 많았는지 16일에 있은 '평화의 종 콘서트'에는 김제동, 김C, YB 등 국내의 유명 뮤지션과 방송인이 출현하여 축제의 밤을 불태웠다. 달리 보면 이것이 소설가 이외수의 힘인 것 같다. 강원도 화천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학을 테마로 하여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지 않았던가?

문학축전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세계평화안보백일장'은 화천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평화의 종 공원 일대에서 진행됐다. 평화의 종 공원은 2009년도에 평화의 댐 바로 옆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그 곳 중심부에는 평화의 종이 걸려있었다.

평화의 종은 높이 4.7미터에 무게가 무려 35톤에 달하는 거대한 종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든 무척 특별한 종이다. 현재도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지구촌을 위해 그 평화의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백일장을 치르고 있을 때 종을 치니까 그건 별로였다. 전날 붕어섬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잤던 터라 집중이 안 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땡~'하고 종을 치니, 어쩌란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나는 원고를 제출했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하지만 1등이 아니더라도 2,3등 정도만 되도 여행비가 빠지고도 남으니, 한편으로는 느긋해 있었다.

 

 

 



▲ 평화의 종 평화의 종은 세계 분쟁지역에서 보내온 탄피를 녹여 만든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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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장이 '꽝' 됐어도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계속해야...

 


'2등 상금이 기백만 원 정도 되니까, 남은 여행을 좀 풍족하게 보낼 수 있겠군! 시간되면 정선에 있는 카지노에서 한판 땡기고 가야겠어! 푸하하!'

개뿔, 땡기길 뭘 땡겨! 결과는 꽝이었다. 붕어섬에서 벌벌 떨며 버텼던 지난 시간이 너무나 허무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승복을 해야지. 재미나게 화천 구경도 하고 했으니,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십 몇 년 전의 약속을 깨고 다시 와서 화천과 재회를 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실 난 강원도 화천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그래서 아웃도어를 하면서도 화천 쪽은 계속 누락을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화천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화천도 나름대로 아웃도어 천국이었던 것이다. 아참, 공연기획자 탁현민씨도 화천에서 군대 생활했다고 한다.

그렇게 <2012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은 마무리 됐다. 하지만 처음 시작되는 행사라 그런지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수상자들에게 미리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는지 상을 수여받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덤덤했다. 하물며 천 만 원의 상금을 받는 1등 당첨자의 모습은 덤덤하다 못해 무척 차분해보였다. 명색히 수상식이라면  '와!'라는 함성과 '어머 어떡해'라는 놀라움이 교차해야 하는데, <세계평화안보 백일장>의 수상식은 긴장감은커녕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 김C와 뜨거운 남자 평화의 종 콘서트에 오프닝을 맡았던 밴드 뜨거운 감자. 뜨거운 감자에서 김C는 기타 겸 리드보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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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자들이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것을 우려한 주최측이 미리 수상자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 같은데, 다음 대회부터는 그런 편법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본인은 백일장에 떨어졌다는 충격과 수상식에서 받은 허무감 때문에 화천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고 말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게 컸기에 그냥 화천에서 하루를 더 보내며 체력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 북한강가의 캠핑장 숙박 시설이 부족한 화천에서는 이렇게 군청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 있었다. 붕어섬의 맞은편에 있는 캠핑장인데 군청에서 운영하는 터라 비용이 무료였다. 그날 캠핑장에는 나 혼자였다. 무척 쓸쓸하고 추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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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동시에 게재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 이 포스팅은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 원문 기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성공적으로 연재가 마무리 됐답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독자사연공모전 당선작

 

여러분의 2012년은 어떻게 저물어가고 있습니까? 형편없는 성적표나 불합격 통지서, 애인의 이별통보와 갑자기 엄습해온 병 등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했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esc와 함께 그 흑역사를 털어버리고자 공모전에 동참해왔습니다. 아깝게 탈락한 독자 여러분께도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선자 7명에게 롯데월드 자유이용권 4매씩 드립니다.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카드명세서

 

 

내게는 사자나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 귀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지만 그 녀석 앞에만 서면 내 심장은 ‘쫄깃쫄깃’해진다. 그 녀석은 한달에 한번씩 꼭 찾아와서는 나를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떠나가 버린다. ‘대금 결제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그렇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바로 카드 값이다.

 

 

그간 카드 좀 긁었다. 벌이가 변변치 않아, 일단 카드로 결제하고 다음달에 메우는 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현금서비스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결제일이 다가올수록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혹자는 내게 ‘화끈하게 놀았구먼!’ 하고 질책할 것이다. ‘얼마나 절제하지 못하고 긁었으면….’ 하지만 난 화끈하게 놀지 않았다. 이상한 곳에서 긁지도 않았다. 가난하게 살다 보니 카드 의존도가 높았을 뿐이다. 누군들 한달에 한번씩 꼭 ‘멘붕’을 맞고 싶겠는가!

 

 

2013년 새해부터는 카드 값의 공포에서부터 벗어나고 싶다. 새해부터는 재무설계를 똑 부러지게 할 생각이다. 더 졸라맬 허리띠도 없지만 그래도 개미허리가 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체크카드도 이용할 생각이다. 통장의 잔고 범위에서 지출하는 체크카드를 쓴다면 계획성 있게 돈을 쓸 것 같다. 재무설계를 똑 부러지게 하고 체크카드도 쓴다면, 2013년은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카드 값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원년이 될 것이다.

 

 

  

곽동운/

 

 

*** 한겨레 주말판(ESC)에 독자공모를 한다고 해서 글을 올렸습니다. 카드값과 관련된 이야기를요. 맨 위에 걸린 일레스트레이션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카드값 귀신이 자고 있는 사람을 놀래킵니다. 앗! 혹시 저 그림에서 놀란 곽작가, 나인가???ㅋ

아래글은 다른분들의  공모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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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가야 좀만 참아줘~

 

7시50분, 내가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차로 6~7분 거리, 밀릴 염려도 없는 주택가 도로임을 고려한다면 나의 출근길은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시 정도에 밥을 먹고 준비해서 7시40분께 집에서 출발하면 느긋한 맘으로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느긋한 나의 이 출근길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일명 ×이라 불리는 대변이다.

 

 

지금껏 내 인생에서 아침에 대변을 보지 않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일어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배설기관을 작동시키는 것. 실패한 적이 거의 없는지라 항상 가뿐하게 아침을 시작하는데, 문제는 희한하게도 아침을 먹고 나서 7시40분만 되면 후속타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 다녀올게” 하고 인사까지 다 마치고 현관문을 열려고 하면, 그때서야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신호가 오는데, 그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가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꺼림칙하다. 옷이며 가방이며 다 준비된 것들을 다시 내려놓고 화장실로 가야 하는 참담함, 그리고 오늘도 늦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암담함. 그래도 어쨌거나 가뿐한 몸으로 출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 뒤늦은 쾌감.

 

 

아침잠이 없어 새벽에 항상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인 나는, 이 말 못할 배설작용으로 올 한해 게으름뱅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라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3년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당하게 외친다. “×아, 이제 나를 놓아다오~”

 

 

임주성/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양다리의 길은 멀고도 험난해

 

 

스물다섯이 되도록 애인 없이 모태솔로로 지내던 나에게 소개팅은 거의 일상이었다. 끝나가는 스물다섯을 한탄하며 ‘이번에는 꼭!’이라는 각오로 소개팅을 하게 됐다. 다행히 괜찮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기는구나’ 하는 기대까지 하게 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상대는 만날수록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다른 지인에게서 새로운 소개팅 제안을 받았고 약속 날까지 잡았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우는 기분이랄까.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뭐! 하고 생각하며 남자1호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문제의 발단은 남자2호를 만나기 전에 1호의 고백을 받게 된 거였다. 나의 예상 시나리오는 두 사람을 만나보고 더 나은 상대를 택하는 것이었는데! 팔자에도 없는 저울질을 하려다 보니 일이 꼬인 것인지, 남자1호에게 나는 시간을 달라는 애매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이야기 들은 사람이라면 예상했을 것이다.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놓쳤구나?’ 이 정도였다면 그렇게 지우고 싶은 기억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자1호는 자꾸만 대답을 듣고 싶어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기다려달라’는 말만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만났을까. 정말, 거짓말처럼 남자2호와의 약속이 잡힌 바로 전날 인내심이 바닥난 남자1호가 이별 선언(?)을 해온 것이다. 떠나겠다는 사람 잡을 이유는 없었기에 쿨하게 안녕 하고 다음날 소개팅에 나갔지만, 더는 쿨할 수가 없었다.

 

 

남자2호가 영 아니었던 것이다. 그 뒤로 자꾸만 남자1호가 생각나고 마음에 걸렸다. 가슴앓이를 하는 나를 주선자는 신기해했다. 지금껏 내가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연락을 하고야 말았다. 무려 세번이나! 주선자를 통해서도 해보고 내가 시도도 해보고. 결국 세번 다 까였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떠나는 2012년과 함께 정말 잊고 싶은 기억이 돼버렸다.

 

 

문송이/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카드명세서

 

 

 

 

 

 

2012 view블로거대상 엠블럼

 

 

 

 

 

 

 

 

 

 

 

 

 

 

 

 

 

 

 

 

 

 

 

 

 

 

 

 

 

 

 

 

 

 

 

 

 

 

 

 

 

 

미디어가 파묻은 진실 발로 뛰며 파헤쳐
[한겨레 2006-08-25 14:54]    

 

 

[한겨레] 나는 이렇게 읽었다/<전선기자 정문태 16년간의 전쟁기록>

 

 

 

 

이 책에서 독자들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건 ‘전선기자’라는 말일 것이다. 지난 16년간 전쟁터를 누빈 정문태는 종군기자라는 통상적인 호칭을 과감히 거부하고 자신을 전선기자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부분은 미군의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록이었다. 2005년 11월, 미 해병대에 의해 발생한 이라크 하디타 학살이나 최근 공개된 1950년 당시 미국 대사였던 무초의 편지글은 정문태가 기록한 민간인학살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미군의 전쟁범죄는 1950년대나 지금이나 작동방식이 같다는 말이다. 즉 무차별적인 학살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상을 잘 모른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대표적이다. 폴포트의 크메르루즈 집권시 200만명이 죽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1984년에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킬링필드>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영화 <킬링필드>는 75~79년까지 집권세력인 크메르루주가 동족 200만명을 학살했다는 걸 토대로 삼았다. 그러나 정문태는 킬링필드가 69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베트남과 국경이 맞닿은 캄보디아는 당시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무려 60만명 이상이 죽었다. 미군은 네이팜탄 등과 같은 제네바 협정에 위배되는 폭탄으로 캄보디아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폭격 임무를 안고 날아갔으나 어디에도 군사 목표물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결혼식장을 공격 목표물로 삼았다.” 당시 폭격임무를 수행한 B-52폭격기의 파일럿이 오죽했으면 이런 증언을 했겠는가.

  

 

놀랍지 않은가? 우리 일반사람들 인식 속에 69~75년 기간의 1차 킬링필드는 인지조차 안 되고, 오직 2차 킬링필드에만 초점이 맞춰진 터라 미군의 전쟁범죄는 ‘내 머릿속 지우개’가 돼 버린다. 현재도 국내 언론들의 킬링필드에 대한 보도 관행은 영화 <킬링필드> 수준이다. 크메르루즈의 학살 책임을 묻는 만큼 미군의 학살책임도 짚고 넘어가야 옳은 일이 아닐까?

   

 

미군에 의한 학살은 이렇듯 무차별적이었고 미디어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면 목표물이 적대행위 대상자든 민간인이든 그건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은 어땠을까? 노근리는 단면에 불과하다. 무차별 폭격과 사격이 특정지역에서만 발생했겠는가? B-29로 융단폭격을 가한 익산역 폭격, F-86으로 공격한 단양 곡계굴 폭격, F-80으로 기총사격한 사천 조장리 난민캠프 학살…. 이 외에도 수많은 곳에서 미군학살이 발생했다. 이라크, 캄보디아, 베트남에 비해 더하면 더했다.

 

 

한국전 당시 이렇게 많은 학살이 있었음에도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미디어 ‘덕택’이다. 그런 면에서 “심지어 자신을 전장으로 보낸 언론사도 배신하고 시민 편에 서야 된다”는 말까지 하는 정문태 기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연호 기자가 90년대 내내 노근리에 대해서 알리고 또 알렸지만 눈길 한 번 안 주다가 AP 통신에 의해 노근리가 밝혀지니 그때서야 열심히 취재경쟁에 나섰던 국내 언론사들의 한심한 작태를 상기하면서 <전선기자 정문태 16년간의 전쟁기록>을 읽는다면 더욱더 감칠 맛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곽동운/자유기고가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앗! 2006년 8월에 기고한 글이네요. 곽작가, 제 사진이 저렇게 걸려 있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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