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훈풍, 한반도에도 불 수 있을까?

 

[주장] 오바마의 광폭 행보와 북한 핵협상

 

15.04.07 11:40  최종 업데이트 15.04.07 11:40

 

 

 

 

 

 

 

악의축과 불량국가

 

'악의 축'도 '불량국가'도 이제 하나만 남았다. 그렇게 무대에 단독으로 서 있는 '주인공'은 바로 북한이다. 지난 2일 이란 핵협상의 타결로, 이제 무대는 북한의 독차지(?)가 된 것이다. 이란의 퇴장으로 인해 소련 붕괴와 911테러 이후로 만들어진 악의 축과 불량국가들은 미국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실상 그 목표(소멸)에 도달하게 된 셈이다. 

일단 용어를 정리해보자. 불량국가(rogue state)는 소련의 붕괴 이후로 만들어진 것으로 냉전 이후 새롭게 등장했다기보다 기존에 '눈엣가시'같던 국가들을 묶어, 소련이 행했던 역할로 자리매김했다. 그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평화에 역행하고, 테러를 자행하거나 방조하는 국가들이 그 리스트에 올려졌다. 북한,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이 올랐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이스라엘이나, 쿠르드족을 탄압한 터키가 빠져 있는 등, 불량국가 리스트는 온전히 미국의 국익적 관점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악의 축(axis of evil)은 2002년 1월 29일,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 문서에서 언급한 것으로 이란, 이라크, 북한이 그 대상이었다. 불량국가 중에서도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몇 나라를 추려낸 것이다. 911테러가 있은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인 시점에 발표된 것이라 그 파장은 상당했다. 정권 교체에 군사행동까지 포괄적으로 포함된다는 것으로 알려지자 해당 국가들은 크게 반발했었다.

악의 축 지정과 관련하여 북한은 무척 억울했을 것이다. 북한은 911테러가 있은 후, 테러에 대해 반대한다고 성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동지역에 쏠린 것을 중화시키기 위해 북한이 구색 갖추기 용으로 포함됐다는 후문이 있었다. 실제로 초안에는 북한이 빠져있었다.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에 창안되고, 혹은 공고화된 악의 축과 불량국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흘러간 유행가처럼 빛이 바랬다. 가다피 정권 시절에 이미 미국과 화해의 손을 잡은 리비아는 재스민 혁명의 여파로 내전 중에 있다. IS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시리아도 내전 중에 있다. 수단은 2011년 수단과 남수단으로 분리됐다. 쿠바는 작년 12월에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섰다. 이라크는 굳이  언급을 안 해도 사정을 잘 아실 것이다.

 

 

적과도 악수를 하겠다


 
▲ 오바마 대통령 이란 핵협상과 관련된 문서를 열람하고 있는 오바마. 옆에 있는 사람은 벤 로즈,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 백악관 홈페이지 자료사진 캡처.
ⓒ 백악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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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전에 '적과도 악수를 하겠다'라는 큰 포부를 밝혔다. 이번 이란 핵협상 타결과 지난 쿠바와의 관계 개선은 그 포부가 결과물로 도출된 것이다. 2012년, 오랫동안 관계가 단절되었던 버마를 전격적으로 방문한 것도 결은 다르지만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오바마의 광폭 행보는 이란이 마지막 종착지가 아닐 수도 있다. 중동발 훈풍이 한반도에도 전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런 국내외 예측에 대해서 미 국무부는 이란과 북한의 경우는 사안이 다르다고 차이를 강조했다.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수준이 엄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번 협의에서 이란은 원심분리기를 1만 9000개에서 6104개로 줄이고, 저농축 우라늄 비축 분을 1만kg에서 300kg으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내용에서도 보이듯 시험기기나 실험실 차원의 핵물질이 이번 합의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3번에 걸쳐 핵실험을 했다. 이란과 달리 상당 수준의 핵무기 제조에 접근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벤 로즈(Ben Rhodes)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은 2013년 9월 23일에 이런 발언을 했다.

"실제로는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획득했고 2006년 초 시험도 했다. 그러나 이란은 핵무기를 아직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벤 로즈의 발언에 입각하자면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벤 로즈가 오바마의 '남자'로 불릴 정도로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당시 그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의 벤 로즈의 발언은 현재 미 국무부가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고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비핵화 단계냐, 아니면 비핵화 단계를 넘어섰느냐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적인 면에서 그 '액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핵화 단계인 이란은 실험실을 '문 닫으면' 되지만 비핵화 단계를 넘어선 북한은 '더 큰' 것을 넘겨주어야 한다. 북한측에서도 '초대장'을 받았다고 순순히 그 '초대'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난제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란과 달리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것이다.

 

 

한반도발 훈풍을 기대하며


그렇다면 한반도발 봄바람은 아예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이란 핵협상도 이스라엘의 강한 반대를 극복해야 했다. 이스라엘 총리인 베나민 네타냐후는 오바마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 하원에서 이란 핵협상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시아파 이란의 부상을 꺼리는 나라 중에 하나가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였던 것이다.

이렇듯 이란 핵협상 이면에는 주변국들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북한 핵과 관련된 난제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들이었다. 다음 대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오바마이기에 마지막 악수를 북한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편 오바마는 할아버지의 나라였던 케냐도 방문할 예정이다. 그간 오바마는 케냐 출신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래서 이제껏 자신의 뿌리였던 케냐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눈초리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외교행보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협상이라는 건 난제가 있기 때문에 꾸려지는 것이다. 고스톱이나 치려고 협상테이블에 앉는 게 아니다. 북한은 오바마를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임기 종료가 가까울수록 자신의 외교적 업적에 큰 방점을 찍으려고 하는 오바마는 협상 파트너로서 제격일지 모른다.

오바마가 물러나면 또 이상한 사람이 그 테이블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2000년 615공동성명,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과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 북미공동코뮤니케 등등... 2000년 하반기에 일어난 한반도발 훈풍이 조지 W. 부시의 등장으로 일순간에 삭풍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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