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는 피해야 하고, 사드는 알아야 한다!

[주장] 사드를 둘러싼 한-미-중과의 관계

 

15.03.31 14:02 최종 업데이트 15.03.31 14:02
곽동운

 

 

 

 

"사드? 사드가 뭐야. 사스 아니야? 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이라는……."

농담 같지만 실제로 이런 말들이 오간다. '사드'와 '사스'는 어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스는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많이들 인지하고, 또한 대비책도 강구할 것이다. 하지만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는 명칭에도 보이듯 일반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개념이다. '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라는 한글명칭으로 바꿔도 그 뜻이 단번에 납득되지 않는다.


MD체계에서는 하늘을 3등분... 마지막단계가 종말단계

사드는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이라 불린다. MD 시스템에서는 상대국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하늘을 3등분 한다. 이륙(Boost) - 중간궤도(midcourse) - 종말(terminal)로 구분 짓는데 실제로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구간은 중간궤도 이후 단계부터다.

이론상으로는 이륙단계부터 요격할 수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측이 친절하게(?) 발사 시각을 알려주겠는가? 탄도미사일 공격이 '전광석화'처럼 진행되기에 요격을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시각은 중간궤도 이후부터가 되는 것이다.   

탄도미사일은 곡선을 그리며 비행하기에 가장 고도가 높은 지점은 중간궤도 부분에 위치해 있다. 이런 개념을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사드가 고고도라며? 그럼 최고점도 종말 단계에 있어야 하지 않아? 고고도, 종말 서로 어울리네..."

MD체계의 마지막 구간인 종말단계는 말 그대로 탄도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이다. 그래서 미국은 종말단계를 고(高)고도와 중(中)고도로 세분화하였다.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만큼 중간궤도보다는 더 촘촘히 빗장을 걸어둔 것이다.

 

 
▲ 미사일방어체계 MD체계 개념도
ⓒ 위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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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로 총알을 잡는다?

중고도를 담당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사드 미사일도 역시 명중률이 문제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미사일방어시스템을 구비했는데 명중률이 낮다면 그거 곤란한 일이 아닌가?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사는 사드의 명중률을 80% 발표했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하지만 이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탄도미사일 발사는 발사 당사자가 친절하게 사전 고지를 하지 않는다. 차량에 실린 이동발사대는 계속 움직일 것이다. 만약 발사 모체가 잠수함이면 사전 탐지가 더욱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명중실험도 기습적인 상황 하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수송기인 C-17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타깃으로 사용되는 등 실전과는 다른 명중 실험이었다. 탄도미사일은 대기권 밖에까지 치솟아 올랐다, 정점을 찍고 다시 지구 궤도로 급강하한다. 그럼 물리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미사일은 중력가속도가 붙어 엄청난 속도로 지구표면에 낙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송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그런 중력가속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편 그런 엄청난 낙하속도 때문에 '총알로 총알을 잡을 수 있나?'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더미(dummy) 탄두 문제도 있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로켓에 인공위성을 하나만 싣지는 않는다. 각국에서 실려 온 각양각색의 인공위성들이 하나의 로켓에 실려 우주로 쏟아 올려 진다. 하나라도 더 실으면 발사국은 금전적으로 더 이득을 볼 것이다.

인공위성 발사 로켓과 동일한 하드웨어를 가진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탄두를 하나만 장착하지 않고 여러 개를 동시에 탑재한다. 일정 지점에서 탄두가 여러 개로 쪼개지면 공격은 더 극대화되는 반면 방어는 더욱더 어려워진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더미 탄두는 이때 이용된다. 기만책으로 '거짓' 탄두를 탑재시켜 진짜 탄두를 찾아내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사드 미사일은 더미탄두 문제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사스는 피해야 하고, 사드는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처럼 사드는 북한 견제용이라기보다는 대 중국 견제용이다. 일본이 북한을 '지렛대' 삼아 자위대의 확장을 꾸준히 이룩한 것처럼, 사드 문제도 미국이 북한을 '지렛대' 삼아 동북아지역에서 MD 체계를 확장시키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그토록 사드를 포함한 MD 문제에 민감할까? 중국 측도 사드미사일이 요격율이 낮다는 걸 잘 알 듯한데... 필자가 보기에는 미국과의 정보 비대칭을 우려하는 것 같다. 사드에 핵심 장비 중에 하나인 X-밴드 레이더가 남한에 설치된다면 중국의 동부 해안지역은 실시간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어디에 레이더를 설치하여 정보를 얻을 것인가? 캐나다 혹은 쿠바? 꿈같은 소리다. 중국은 우리 해군의 초계기인 PC-3의 서해 상공 초계 비행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정도로 동부 해안지역은 중국이 빗장을 꽁꽁 걸어두고 싶은 핵심적인 지역인 것이다.   

사드가 북한 방어용이든 중국 방어용이든, 그것이 실전에 사용되는 순간 남북한은 모두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어찌 보면 참 중요한 일이 한-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너무 그런 문제에 둔감해 있는 듯싶다. 사스는 피해야 하지만 사드는 낱낱이 따져봐야 하는 한다. 그것이 필자 이 글을 쓴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허벅지를 더듬는 '손길'.. 친구를 의심하다

오마이뉴스 2014.09.15 11:45

 

 

 

 

 
▲ 부동산 광고 전월세 광고
ⓒ 곽동운

 

 

 

 

공주 → 제주 → 공주 → 거창 → 남도 일대 → 거창


지난 여름, 필자의 이동 궤적이다. 무슨 팔자(?)가 붙었는지 유랑단처럼 계속 이동을 하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잠자리도 계속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내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던 점이다. 매일 밤 폭우를 걱정하며 텐트 생활을 했던 장거리 여행 때보다는 그나마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그렇게 방랑 생활을 하다보니 한 가지 '잠자리의 철학'이 생겼다.

"7성급 호텔이든 공동묘지 옆에 친 텐트든 내가 두 다리 뻗고 누운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하자. 어차피 잠만 잘 자면 되잖아!"

실제로 이런 원칙을 세우고 장거리 여행을 다녔더니, 잠자리가 바뀌어서 겪는 불면증 따위는 겪지 않게 됐다. 하지만 이 같은 나의 '잠자리 철학'은 역설적으로 안정된 거주지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그런 열망.

 

 

 


 
▲ 물폭탄 맞은 텐트 돈이 없어 모기장 텐트를 쳐가며 여행을 했을 때 사진. 전날에 내린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물난리를 겪은 모습을 담았다. 2011년 여름, 전북 완주 부근에서 촬영했다.
ⓒ 곽동운

 

 

 

창고가 된 내 방


대학 시절이었다. IMF 이후였다. 자영업을 하시던 삼촌이 일이 잘못되어 사업을 정리해야 했고, 사시던 집까지 잘못되어 가족들을 이끌고 우리집으로 들어오셨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삼촌 식구 4명이 들어오니 집안은 정신이 없었다. 삼촌네 살림살이들도 전부 다 이사 왔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이동할 때도 짐들을 피해 쏙쏙 옮겨 다녀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내 방도 짐이 쌓여 창고(?)처럼 보였다. 간신히 몸을 누일 정도만 됐던 것이다.
당연히 내 생활은 사라졌다. 창고 같은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학교 근처에다 방을 구하기로 했다.

'룸메이트는 없고 방에서 술은 안 마시겠다'

이런 식의 나름대로의 독립생활 수칙도 정했다. 내 방이 주당들의 아지트화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시작한 자취생활


우여곡절 끝에 나의 '자취 일기'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생활을 잘했다. 삼시 세끼 다 챙겨먹었고, 방 청소도 주기적으로 했다. 거의 다 학교 사람이긴 했지만 이웃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빨래, 설거지, 청소, 음식 장만 등등...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척척 해내니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같이 살 여자 친구만 있으면 되겠네!'

그 기원이 통했는지 정말 친구와 함께 살게 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친구는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같이 살고 싶다는 소박한 기원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친구 녀석인 성훈이와 동거를 하게 됐던 것이다. 룸메이트를 두지 않겠다는 수칙을 깨지게 만든 이 녀석의 사연도 기구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전부 뿔뿔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한 수칙 때문에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제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친구를 위해 방 한편을 내주기로 결정했다. 다행인 건 성훈이가 생활 매너가 좋았다는 점이다.

성훈이도 방을 아지트화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서로서로 바빠서 그랬는지 방을 아지트화 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런대로 잘 지켜졌다. 또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그런지 서로간의 생활 트러블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성훈이가 등장한 이후로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무언가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바퀴벌레!

전에는 한두 마리씩 보이던 바퀴벌레가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보이는 거였다. 소풍(?)을 가는지 어른 바퀴 뒤로 줄줄이 새끼바퀴들이 따라다니는 장면도 목격됐을 정도다. 전에는 분명 이렇게 자주 출몰하지 않았었는데...

바퀴벌레는 정말 별로다. 차라리 뱀이나 두꺼비가 낫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 덕택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어두운 밤에 집에 불을 켰을 때 처음 눈에 띄는 게 바퀴벌레라면... 그것 참 거시기 했다.

 

 

 

 

 
▲ 부동산 어플리케이션 음식배달 어플이 있듯이, 이제는 부동산 어플도 등장했다.
ⓒ 곽동운

 

 

 

 

바퀴벌레 때문에 친구를 의심하게 되다


바퀴벌레들 때문에 성훈이를 오해한 적도 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전날 알바 때문에 난 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성훈이도 알바를 하고 왔는지 골아 떨어져 있었다. 뒤척거리다가 선잠에 들었다. 몽롱한 기운이었지만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자꾸 내 허벅지를 뭐가 건드는 게 아닌가. 한쪽도 아니고 양쪽을 동시에 다 건드리고 있었다.

"너, 뭐야!"

소리를 냅다 지르고 일어나 불을 켰다. 그런데 성훈이는 방 한편에서 곤히 잘 자고 있었다. 정신없는 내 눈에는 범인으로 보이는 어른 바퀴벌레 두 마리가 도망가는 게 보였다. 그 중 한 마리는 성훈이 얼굴을 타고 도망을 갔는데, 그 기척에 놀라 성훈이도 일어났다.

"뭐야... 도둑 들었어?"
"어.... 아니..."
"그럼 꿈꿨냐? 빨리 자라. 나 내일 일찍 나가야 돼."
"......"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성훈이가 내 방으로 이사 왔을 때 살림살이도 좀 가지고 왔다. 그래서 그 이사 와중에 바퀴벌레들도 같이 이사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성훈이의 짐들을 방 한편에 쌓아두었으니 바퀴벌레 녀석들의 아지트도 넓어진 셈이다.

물론 이런 결론은 내 스스로 한 것이고, 성훈이한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훈이도 눈치가 있었는지 바퀴약 사는데 '거금'을 내놓았다. 또한 집 청소와 이불 말리기에 손수 앞장섰다.

우리들의 일제소탕 작전으로 그 녀석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일단 집안 청소에 신경을 쓰니 자연스레 그 녀석들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우리집 본가에서도 바퀴벌레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삼촌댁 이삿짐과 함께 그 녀석들이 옮겨왔던 것이다.

그 바퀴벌레 에피소드가 일어난 몇 달 후 나는 다시 본가로 복귀를 했다. 삼촌이 집을 구해 나가셨고 내 방도 창고 신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두 다리 뻗고 누운 곳이 바로 천국


글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필자에게는 돌아다니는 팔자가 붙은 거 같다. 역마살이 붙은 것 같다. 역사트레킹이니 도보여행이니 하는 역마살 팔자가 붙다보니 역설적으로 안정된 거주지에 대한 갈증이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갈증은 평생 해소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잠자리가 바뀔 때마다 '내가 누운 곳이 천국'이라는 다짐을 하며 유유자적하게 받아 넘겨야 할 것 같다. 그 곳이 7성급 호텔이든 허름한 오두막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정말 내가 두 다리를 뻗고 있는 곳이 천국인가? 진짜 그럴지도 모르지! 대신 바퀴벌레가 있으면 지옥일지도 몰라. 뱀은 자세히 보면 귀엽기라도 한데... 바퀴벌레는 진짜 별로야...'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문창극은 조선총독부 총리로 지명됐는가?

 

 

'야동 학대?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야한 동영상들이 탄압을 받는다는 거야?'

아니었다. '아동학대'를 '야동학대'로 잘못 본 것이다. 요즘 들어 난독증 때문에 뒷골을 몇 번 잡은 적이 있다. 아직까지는 팔팔한 청춘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필자도 점점 주름살이 짙어지는 나이 대에 진입한 것이다.
한편 언론인 문창극 씨가 총리로 지명된, 당일 날에는 이런 일까지 겪었다.

'총리 후보자? 일본의 아베 총리가 권좌에서 물러났나? 얼마전에 북한과 스톡홀롬에서 납치피해자에 대한 당국간 회담을 했잖아. 또 요즘은 집단자위권 문제 때문에 발바닥에 불나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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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극 총리 지명자에 대한 착시현상


착시현상이었다. 인터넷 창을 여러 개 띄어놓고 국내정치와 국제정치면 뉴스를 번갈아 가면서 봤더니 그런 착시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고, 문창극 지명자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무리 그가 나와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억지로 아베 신조와 엮어,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억지로 엮는다면 필자는 '적폐'로 낙인찍힐 것이다. 말 그대로 '개조'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필자는 문 후보자에게 미안한 감정을 덜어내고 가뿐한 마음으로 이 기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문 후보자가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언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 후보자는 이를 특종보도한 KBS를 향해 고소를 준비한다고 했다.
이렇게 문 후보자가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니 필자가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이크 없이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 그 정권에서 잊혀질 만 하면 쏟아져 나오는 망언들과 동영상에서 드러난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한 우리 민족 DNA'
'일본지배,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
'일본이 이웃인 건 지정학적인 축복'
'제주 4․3은 폭동'

 

 

 


# 비겁하게 윤치호 뒤에 숨지 마시라!

제주 발언을 제외하고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우익세력들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지 않은가? 조선은 고대 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스스로 문명개화를 할 수 없으니 일본인들이 '시혜'를 베풀어 문명국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100년 전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나?

문 후보자 측은 위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윤치호가 말한 것이고 자신은 그것을 인용했을 뿐이라며, KBS에 대해 악의적인 편집을 했다면서 고소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한 가지 묻고 싶은게 있다.

"왜 하필 친일 매국노인 윤치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인용하셨는가? 왜 솔직하지 못하고 윤치호 뒤로 숨으시는가? 제주 4․3 폭동 발언도 윤치호가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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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문 후보자는 '강연은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것이어서 일반인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다'고 반론을 한다. 필자는 이런 시각이 무척 우려스럽다. 문 후보자 말에 의하면 교회 정서와 일반인의 정서 사이에는 간극이 명확해진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를 더욱 확장하면 교회는 친일 매국노들과 매카시즘의 '해방구'가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을 얻게 된다. 왜? 교회 안과 일반인들의 정서가 다르니까. 무엇을 하더라도 교회가 방패막이가 된다는 뜻이 아닌가?

한편 필자는 그 강연을 들었던 온누리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문창극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쌍수 들고 환영할, 그런 강연을 할 때 여러분들은 뭐하셨습니까? 혹시 '아멘'하고 화답한 거 아닙니까?"

 

 


# 총독부 총독으로 지명 받으셨나?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사과 받을 필요 없다'는 올해 4월, 문 후보자의 서울대 강연 내용을 12일 밤 인터넷 기사로 읽었다. 그 기사를 읽은 후, 필자는 착시현상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필자가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제대로 봤던 것이다.

아무리 주어가 빠졌다고 하더라도 광운대 강연 동영상으로 MB는 BBK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윤치호의 뒤에 숨는다고 하더라도 문창극의 발언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주장과 일맥상통 할 수밖에 없다.

올해는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어선 동학군들이나 혹은 독립군들이 문창극의 발언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시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한 우리 민족 DNA, 일본지배는 하나님의 뜻,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조선총독부 총독으로 지명 받었어? 총리가 아니라 총독으로 착시현상 겪고 있는 거 아니야?"    

 

 

 

 

 

 

 

 

 

*** 이 글은 지난 6월 4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의 원문글입니다. 오마이뉴스 측은 제 원문을 많이 수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바뀌었고, 원고 분량도 많이 줄어 들었지요. 오마이뉴스나 저나 더 많은 클릭수가 유인되기를 원할 겁니다.  사실 저도 욕 먹어도 괜찮으니까, 제 글이 많이 클릭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낚시성 기사에 대한 유혹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유혹에 쉽게 굴복하면 안되겠지요. 하지만 언제 그런 유혹들에 넘어갈지 모르죠~ㅋㅋㅋ

 

원문글이 많이 수정되고, 가위질 당하다보니 문맥이나 글의 흐름이 많이 어그러졌더군요. 저는 글을 작성할 때 흐름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어감 하나하나에도 무척 신경을 씁니다.  제가 독자의 입장에 섰을 때도 글의 흐름이 매끄러운 글들에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오마이뉴스는 기사분량을 줄이려는 측면에만 맞춰서 편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점을 찍으며 강조하려던 부분도 들어내버렸더군요. 그렇게되니 제 글은 뜀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애초 저는 탄탄한 다리를 놓을 생각을 갖고 글을 작성했는데 오마이에서 발행된 글을 보니 중간중간이 짤린 징검다리가 되어버렸더군요. 그나마 그 징검다리도 일정한 간극을 유지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예전부터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편집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항의도 해보고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게 무명 시민기자의 설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유명인들의 칼럼이나 에세이도 윤문을 거쳐 편집됩니다. 하지만 무명작가들의 글처럼 확 짤리지는 않습니다.

뭐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가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확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ㅋ  

 

 

 

오마이뉴스에 개제된 기사보러가기 ---> 클릭

 

 

 

 

 

 

혁명적인 루소와 보수적인 고승덕의 공통점

 

필자는 장자크 루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친딸에게서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고 거명된,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보고 있자니 장자크 루소의 생애부터 떠올랐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 장자크 루소와 <에밀>

 

장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 <인간불평등의 기원> 같은 역작들을 출간하여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혁명적인 인물이 아닌가? 그에 비해 고승덕 교육감 후보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까지 지냈고, 또한 BBK 사건에서 MB쪽 변호사로 일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렇다. 고 후보자는 말 그대로 보수적인 인물이다.

 

그럼 도대체 프랑스 대혁명에 큰 영감을 준 혁명적 사상가와 보수 교육감 후보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완전 다른 스타일의 삶의 궤적을 가진 분들 같은데... 둘 다 교육과 관련된 업적을 쌓거나 쌓으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고,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다는 점이 그 둘의 공통점이다.

 

루소는 1762년에 <에밀>을 출간하게 된다. 소설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근대교육학의 한 획을 그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루소 시대의 아동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받지 못했다.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에 루소는 <에밀>에서 아동중심주의를 역설한다. ‘아동의 발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에밀>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아동 교육 문화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낸 아동중심 교육자

 

이토록 아동중심주의 교육방법을 역설했던 루소의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루소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말았다. 루소의 아이들은 그의 아버지가 역설한 아동중심주의 교육을 구경도 못해 봤던 것이다. 대단히 역설적이다. 아동중심주의 교육법을 강력히 주장했던 이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으니

 

태어나마자 어머니를 잃는 등, 루소가 아무리 불후하게 성장을 했고, 또한 그 이후의 삶도 팍팍했다고 하지만 다섯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더 많이 손가락질을 했다. ? 그가 <에밀>이라는 아동중심주의 서적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붙이도 잘 양육하지 못한 인물이 교육에 대해서 운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남에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겨!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이런 비판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실제로 루소가 직면했던 비판의 화살들이다. 또한 지금까지도 그에게 붙여진 꼬리표다. 쉽게 떼어지지 않는 꼬리표.

 

그럼 저런 비판의 화살들이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게 조준된다면? 저런 비판들 앞에서 고승덕 후보가 느긋할 수 있을까? 물론 프랑스 부르봉 왕가 시절을 살았던 루소와 2014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고 후보의 처지를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재벌가에서는 고시 3관왕도 그저 그런 스펙?

 

고승덕 후보의 경우는 루소의 경우와 달리 이혼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가족사의 아픔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고 후보는 고시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펙을 쌓았고, 이후 재벌가인 박태준의 사위가 됐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나 보다. 고 후보자가 61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재벌가의 사위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시 3관왕도 재벌가 앞에서는 그저 그런 스펙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고 후보자는 동정표를 얻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미국 시민권자로 키우려고 했던 재벌가와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사위간의 다툼에서 처절하게 패배를 하여, 그로 인해 아이들을 빼앗겼다면 그것 자체가 동정 여론일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길래 제 딸과 아들을 빼앗아갔나 하는 생각에 저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인간 고승덕의 고뇌까지 읽혀질 정도였다. 박태준가()와의 갈등의 골이 그랜드캐넌보다 깊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한편 그 대목만 얼핏 보면 반미를 부르짖는 종북좌파라고 색깔론 공격을 당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인간적인 고뇌의 대목을 읊조리며 고승덕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서 사퇴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진짜 동정여론을 얻었을지 모른다. 차기 광역단체 후보 등, 더 큰 정치적인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광작 목사가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어째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라며 망언을 했을 때, 그 자리에 고승덕 후보자가 있었는지 아닌지 하는 진실공방도 사퇴기자 회견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또한 전교조만큼은 손을 보겠다라고 언급을 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 다툼도 저편으로 날라 갔을 것이다.

 

하지만 고승덕 후보는 문용린-박태준의 정치공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후보직 사퇴를 거부했다. 이로써 고승덕의 딸, 캔디 고는 문용린-박태준고승덕 낙선커넥션의 돌격대원이 되었다.

권력이 무섭기는 무섭다. 자신의 혈육도 반대편 후보의 정치공작원으로 돌려세울 만큼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혈육과 대척점에 서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쟁취를 해야 하는 것이 권력에 내재된 습성일지도 모른다.

 

 

 

 

 

 

 

 

 

#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VS 딸이 폭로한 고승덕

 

장자크 루소가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외부의 폭로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폭로를 했던 것이다. 루소는 말년에 <고백록>,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의 참회록들을 연이어 저술하는데 그런 서적들에서 자신의 치부와 모순을 스스로 드러냈던 것이다. 이런 자신의 모순에 대한 스스로의비판과 성찰은 오히려 루소의 사상과 작품을 더 빛나게 해주었다. 그런 참회를 통해 루소는 그저 그런입 진보들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승덕의 경우는? 자신의 딸이 직접 페이스북에서 폭로를 했다. 고승덕의 모순을 자신의 혈육이 폭로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인데, 그런 아버지가 서울시의 교육감이 된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미국에서 터를 잡은 캔디 고 입장에서는 보수 후보가 되던 진보 후보가 되던 무슨 상관이 있겠냐, 이 말이다.

 

 

 

 

 

 

만약 61일에 고승덕 후보자가 깨끗이 사퇴를 했으면 이 기사도 작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선거판에 나온 정치인이라지만 그들의 가족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것이 무척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필자는 유명한 정치 평론가도 아니고, 그저 역사트레킹을 행하는 여행작가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여행작가가 너무 정치색이 강한 기사를 작성한 것 같다.

기왕 정치색이 강한 발언을 한 김에 하나 더 해보자. 필자는 고승덕 후보가 교육감으로 선출되는 것이 무척 우려스럽다. 재임기간 내내 이런 꼬리표가 따라 붙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에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겼어야지!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

오마이뉴스|입력2014.06.03 22:59

 

 

 

[오마이뉴스 곽동운 기자]

자신의 친딸로부터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 받은,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를 보고 있자니 장 자크 루소의 생애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프랑스 대혁명에 큰 영감을 준 혁명적 사상가와 보수 교육감 후보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둘 다 교육과 관련된 업적을 쌓거나 쌓으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고,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루소는 1762년에 < 에밀 > 을 출간한다. 소설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근대교육의 한 획을 그은 수작으로 평가 받는다. 루소 시대의 아동들은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 받지 못했다.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에 루소는 < 에밀 > 에서 아동중심주의를 역설한다. '아동의 발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 에밀 > 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아동 교육 문화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낸 '아동중심 교육자'



▲ 에밀루소는 < 에밀 > 에서 아동중심주의 교육을 역설한다.

ⓒ 미네르바

 


이토록 아동중심주의 교육방법을 역설했던 루소의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루소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루소는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고 말았다. 루소의 아이들은 그의 아버지가 역설한 '아동중심주의 교육'을 구경도 못해 봤던 것이다. 대단히 역설적이다. 아동중심주의 교육법을 강력히 주장했던 이가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돌보지 않았으니.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는 등 루소가 아무리 불후하게 성장을 했고, 또한 그 이후의 삶도 팍팍했다고 하지만 다섯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낸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손가락질을 했다.

왜? 그가 < 에밀 > 이라는 아동중심주의 서적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붙이도 잘 양육하지 못한 인물이 교육에 대해서 운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의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겨!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이런 비판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제로 루소가 직면했던 비판의 화살들이다. 또한 지금까지도 그에게 붙여진 꼬리표다. 쉽게 떼어지지 않는 꼬리표.

그럼 이러한 비판의 화살들이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게 조준된다면? 고승덕 후보가 느긋할 수 있을까? 물론 프랑스 부르봉 왕가 시절을 살았던 루소와 2014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고 후보의 처지를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딸의 폭로를 '정치공작'으로 만든 고승덕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

ⓒ 고승덕 후보 홈페이지

 

고승덕 후보의 경우는 루소의 경우와 달리 이혼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가족사의 아픔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고 후보는 '고시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펙을 쌓았고, 이후 재벌가인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사위가 됐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나 보다.


고 후보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재벌가의 사위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시 3관왕도 재벌가 앞에서는 그저 그런 '스펙'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고 후보는 동정표를 얻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미국 시민권자로 키우려고 했던 재벌가와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사위간의 다툼에서 처절하게 패배해, 그로 인해 아이들을 빼앗겼다면 그것 자체가 동정 여론일 것이다.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길래 제 딸과 아들을 빼앗아갔나 하는 생각에 저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인간 고승덕의 고뇌까지 읽혀질 정도였다. 그런 인간적인 고뇌의 대목을 읊조리며 고승덕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서 사퇴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진짜 동정여론을 얻었을지 모른다. 차기 광역단체 후보 등 더 큰 정치적인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승덕 후보는 문용린-박태준가의 '정치공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후보직 사퇴를 거부했다.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vs. 딸이 폭로한 고승덕

 


장 자크 루소가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외부의 폭로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폭로를 했던 것이다. 루소는 말년에 < 고백록 > , <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 등의 참회록들을 연이어 저술하는데 그런 서적들에서 자신의 치부와 모순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런 자신의 모순에 대한 스스로의 비판과 성찰은 오히려 루소의 사상과 작품을 더 빛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고승덕 후보의 경우는? 자신의 딸이 직접 페이스북에서 폭로를 했다.

필자는 고승덕 후보가 교육감으로 선출되는 것이 무척 우려스럽다. 재임기간 내내 이런 꼬리표가 따라 붙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애들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말고, 당신 애들이나 잘 챙겨!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그래!"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제가 작성한 <혁명적인 루소와 보수적인 고승덕의 공통점>이라는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배치됐더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스로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서 발행이 됐네요. 더군다나 본문 내용도 많이 바뀌어졌더군요. 메인에 걸어줘서 고맙기는한데 그래도 최대한 원작성자의 의도대로 원문을 살려줘야 하지 않을까?

 

제가 작성한 원문글은 원고지 21매 분량으로 감상적인 면이 많은 에세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는 <정치적 주장>으로 바꿔버렸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그 신문사의 편집권을 존중하지만 필자의 의도대로 글을 최대한 살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힘없는 시민기자의 서러움이라고 할까요?

 

위에 보시면 빨간색 네모난 박스처리를 된 것이 제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캡처를 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더 큰 것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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