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도 늦게 올리고 이 소식도 늦게 올리고...^^

 

지난 2021년 5월 27일 목요일에 내 사연이 MBC <심야괴담회>에

소개되었다. 제목은 '안개 속의 하이힐'이다. 원래 제목은 '안개 속에서'였는데...

제작중에 바뀌었다. 바뀐 제목이 더 나은 거 같군.

 

배우이자 무속인이 정호근 님이 사연을 소개해줬는데 역시 배우라서 그런지

확실히 다르더군. 라디오 극장처럼 잘 재현해주셨다. 덕분에 1등을 했다.

뭐 3편 중에 1등이었지만... 그래도 1등도 해보고 얼마나 좋은가! 학교 다닐때는

맨발 꼴등만 했었는데 말야. 상금도 타니 더없이 좋다. 원천징수를 할 줄 알았는데

명시된 금액을 전부다 입금시켜줘서 너무 고마웠다...ㅋ

 

그러고보면 같은 시나리오를 두고도 누구는 수작을 만드는데 누구는 망작으로

쫑을 내버리기도 한다. 그게 바로 내공의 차이인가?ㅋ

 

 

 

#심야괴담회

 

 

 

 

*** 유튜브 링크를 거니까 한 번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둘러봐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07ANFmITUaU

 

 

 










 


평소 서울에 있을 때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뭐 매일 비스무리한 일상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ㅋㅋ 아니다. 게을러서 그랬다. 그래도 일상을 육필로 기록하고 싶은 생각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하지만 장거리여행을 할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꼬박꼬박 일지를 작성하였다. 올 겨울에 다녀온 이베리아반도 여행도 51일 내내 여행일지를 깨알같이 작성하였다. 다이소에서 천원에 사간 기자(?)수첩을 한 권 다 채웠으니까.

 

말 그대로 여행일지였지만 여정 와중에 느낀 감상들도 기술했으니 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 자신을 소개할 때 '역사트레킹 마스터'라는 직함 말고도 '여행작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다. 그래서 누가 여행을 하며 삶이 확 바뀌었다고 하면... 물음표부터 걸어둔다. 뭐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렇다치고.

 

그 전에도 가기는 했지만 딱 10년 전 여름경에 행한 국토종단 자전거여행부터 내 장거리여행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름, 그것도 장마철과 겹쳐서 행한 여행이라 비를 계속 맞았다. 싸구려 자전거를 타고, 비가 줄줄 세는 2만원 짜리 텐트를 치고 잤었다. 짐도 주렁주렁이었다. 대충 자전거 무게까지 합치면 40kg 정도는 됐을 것이다.

 

캠핑장에서 잤다? 아니다. 돈도 없었고 캠핑장도 눈에 띄지 않아 주로 공터에서 사이트를 구축했다. 공동묘지에서도 텐트를 쳤고. 생각보다 공동묘지가 은근히 아늑하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렇게 국토종단 4, 국토횡단 2번을 행했다. 그 자전거여행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도둑으로 몰린 일, 사고가 났던 일, 지역주민들의 따뜻한 격려를 받았던 ... 다 추억이다. 잊지못할 추억들...

 

사진에 나온 일지는 2010년도 여름에 행한 L자형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원래는 다른 곳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새로 받은 수첩에 옮겨 적고 있다. 기존에 적혀 있던 수첩이 비에 젖어 완전히 엉망이고 해서 필사(?)를 해서 옮기고 있는 것이다.

 

L자형이라는게 내가 이동한 코스가 알파벳 L자형이라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

 


천안(시작) -> 공주 -> 익산 -> 나주 -> 목포 -> 제주 -> 추자도 -> 완도 -> 장흥 -> 고흥

(나로도)

 

대충 요렇게 이동을 했다. 찌그러진 L자 형태가 나오더라.

 






비를 맞으면 맞은대로 엉망이면 엉망인대로 그냥 간직하는게 나을 것도 같다하지만 내 10년 전 쯤의 일기를 들쳐보고 수정한다는 생각으로 옮겨 적고 있다사실 오리지널이 적힌 수첩은 너무 꽝이었다는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옮겨 적다보니 그 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또렸하게 되살아나 울컥하는 것이다. 당장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드는 것이다아무 자전거나 빌려 타고 페달을 열심히 밟고 싶은 생각이 확 드는게 아닌가!

 

괜히 옮겨 적었나! 수첩 속에 잠들어 있던 자전거요정이 깨어나서 내 몸에 붙은 거 아닌지몰라...ㅋ 

 

붙은게 맞다. 2013년 이후로 중단했던 자전거여행을 올 8월 경에 다시 행하기로 했으니까. 지금 열심히 관련 용품들을 검색하고 있다. 트레킹하는 사람이 다시 페달을 열심히 굴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10년 전의 일기가 올 여름 휴가를 기획해줬네! 이게 기록의 힘인가? ^^;













 

신을 부르짖었던 공포의 시간들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은 거짓말 같았던 순간

 

15.03.20 18:01   최종 업데이트 15.03.20 18:01

 

 

 

 

 

 

 

2013년 여름, 경남 거창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느님 살려주세요!"

 


2013년 8월의 어느 날. 필자는 경남 거창군 웅양면에서 고제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당시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고갯길에서 그만 브레이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짐을 주렁주렁 매단 고물자전거가 '빛의 속도'로 고갯길을 내달리는데 정말 아찔했다. 회전을 할 때는 반대편 중앙선을 크게 넘어갈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신을 찾으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겠는가? 한편으로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타박상 정도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참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득 도로 끝단에 피어나 있던 잡초들이 눈에 들어 왔다.

 


'저 잡초들 위로 바퀴를 굴리면 속도가 죽을 수도 있겠지. 흙들도 깔려 있으니 그냥 아스팔트보다는 노면이 거칠 거야'

 


신께서 가호를 베풀었던 것일까? 그렇게 잡초 더미와 거친 노면을 질주하다보니 예상대로 속도가 확 감속되었다. 또 다행이었던 것은 양편 모두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찔한 순간을 운 좋게 넘긴 셈이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그렇게 무모한 행위를 했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자전거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급경사를 내려왔단 말인가?

 

 

 



 
▲ 지리산 정렴치에서 촬영했다. 주렁주렁 짐을 많이 실었는데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자전거가 중심을 못 잡고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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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진입하니 태풍이


2011년 8월. 그때도 필자는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었다. 일명 제2차 국토종단여행. 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었다. 당시를 기록한 여행수첩에는 거의 매일 비가 왔다고 적혀있었다.

비만 맞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태풍(무위파)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리산 성삼재에서 맞았다. 분명 전북 남원에서 지리산 관통도로로 진입했을 때는 해가 쨍쨍했었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상이 나빠졌던 것이다. 비는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태풍이 지리산을 빗겨가거나 소멸된다는 예보를 믿고 지리산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낭패를 당했던 것이다.

이미 너무 높이 올라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애초 계획했던 대로 성삼재를 찍고 전남 구례로 내려가기로 했다. 필자의 애 타는 마음도 몰라주고 더 거센 빗줄기와 더 강력한 바람이 성삼재 일대를 강타했다. 침낭은 물론  모든 옷가지는 싹 다 젖었고, 휴대하던 전자기기들도 모두 침수 피해를 입어 작동에 큰 이상이 생겼다. 몸 상태도 문제였다. 계속 거센 비바람에 노출되다 보니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빨리 쉴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구례 방면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시작한 여행이라 그랬는지 지리산 성삼재에 이르렀을 때는 자전거도 거의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싸구려 고물자전거가 한계치에 다다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계속된 비로 인해 관통도로의 노면은 무척 미끄러웠다. 그 길을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리산 관통도로는 한계령 관통도로보다 훨씬 더 험하다.

 






 
▲ 만해 한용운 충남 홍성에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관 앞에서 한 컷. 2011년 여름.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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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갈 수도 저쪽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태풍이 물러갈 때까지 성삼재에 머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이 그냥 다 거짓말 같았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기로. 그런데 그때 어떻게 내려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하강을 했으니 그냥 공포스러웠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나마 성삼재로 올라오는 차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차들이 반대편에서 많이 올라왔다면 필자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2013년에는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그 당시에는 부처님의 자비(?)를 입었었다. 공포에 떨며 겨우겨우 도로 하단인 천은사에 도착했는데 그곳 인근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주차장 앞쪽에 빈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곳이 필자에게 쉴 곳이 되어 준 것이다. 덕분에 몸을 좀 추스를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도 비바람이 거셌는데 맑은 날은 본 건 3일 후였다.

지리산에서 태풍을 맞으며 하강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렇게 거창에서 무모하게 페달을 굴렸던 것이다. 앞선 경험이 독이 될 뻔한 경우였다.

필자의 거짓말 같았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린다. 도보여행이든 자전거여행이든 안전이 최우선이다. 목숨 걸고 여행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필자와 같이 거짓말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와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안전제일!


 


 

 

 

내 똥에 그만 '철퍽'하고 넘어졌다 2편

[공모- 더러운 이야기]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벌어진 일, 그만 웃어버렸다

 

 

 

 

 


 

 
▲ 자전거여행 2009년 여름에 행한 1차국토종단 자전거여행. 면도를 안 해서 지저분하다. 무릎쪽에는 그날에 난 그 상처때문에 큰 거즈가 붙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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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이어서

 

 

 

 

무릎은 깨졌지, 다리는 풀렸지, 그래서 뒤로 넘어갔지!

상처부위를 직접 눈으로 보니 아픈 게 더 크게 느껴졌다. 잠시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통증에 다리도 더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 때 때마침 무언가가 제 앞을 휙~ 지나가는 것이었다. 귀신인가?

"악!"

머리는 띵하지, 다리는 풀렸지, 귀신인지 뭔지 때문에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 그렇다. 그냥 뒤로 넘어졌다. 이번에는 '꽝'이 아니라 '철퍽'하고 넘어졌다. '철퍽'하고 소리가 우렁차게 난 만큼 다 묻었다. 그 날 제주산 똥돼지 먹었다고 크게 일을 봤었는데 그게 다 필자의 엉덩이로 옮겨왔던 것이다.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지 엉덩이에는 철퍽하고 다 묻었지! 정말 난감했다. 이러려고 자전거 여행을 한 게 아니었는데.

'이게 다 뭐냐! 제주도에서 한 밤 중에 뭐하는 짓이냐!'

그래도 별 수 있는가, 이미 다 묻어버렸는데. 빨리 빡빡 닦아내야지. 정신을 가다듬고 뒤처리에 나섰다. 그리고는 크게 한 번 웃었다. 뭐가 좋아 웃었냐고, 묻지 마시라! 그 상황에서 울음을 터뜨릴 수도 없지 않은가?

덕분에 아주 시원하게 샤워도 하고 비데도 하게 됐다. 그것도 전신으로 하게 됐다. 저녁을 해먹은 코펠통으로 물을 받아 시원하게 내려 부었다. 깨진 무릎팍이 쓰라렸지만 참았다. 아주 빡빡 문질렀는데도 냄새가 잘 안 지워졌다. 코펠통으로 수없이 물을 뿌려댄 후에야 겨우 샤워를 끝낼 수 있었다. 그때서야 무릎의 피도 어느 정도 지혈이 됐다.

여행을 하다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있지 않던가. 어쩌면 그렇게 지저분한 일들을 당하는 것도 여행의 일부일지 모른다. 한라산 중턱 이름 모를 야영장에서 홀로 샤워 겸 비데를 마음껏 즐겼으면 그만 아닌가! 또 덕분에 이렇게 '더러운 이야기' 공모에 쓸 '꺼리'도 생기지 않았던가! 이런 것도 다 여행의 재미다. 더러워서 문제지만.

 

 

 

 
▲ 제주도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보시며, 필자의 더러운 이야기 때문에 지저분해진 눈과 마음을 정화하시길!

 

 

 

 

 

 

 

 

 

 

내 똥에 그만 '철퍽'하고 넘어졌다 1편

 

[공모- 더러운 이야기]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벌어진 일, 그만 웃어버렸다

 

14.08.10 14:54  최종 업데이트 14.08.10 14:54
 

 

 

 

 

 

 

 
▲ 화장실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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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여름.


당시 필자는 1차 국토종단 자전거여행을 행하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여행은 목포를 찍고 제주까지 이어졌다. 무려 17일 동안 계속된 여행이라 재밌는 일도 힘든 일도 많았다. 그래서 에피소드도 넘쳐났다. 특히 그날의 에피소드는 정말 '거시기' 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지저분한 일이었다.

장기간의 여행이었지만 식사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똥'이었다. 평소에는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았었는데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여행 중에는 무척 자주 가게 됐다. 자전거 타기가 장운동에 좋아서 그런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주 넉넉하게 일을 처리했다. 변기가 막혀 조마조마한 적도 있었다. 자전거 타기가 숙변제거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골에는 화장실 시설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야산에다 일을 처리 한 적도 있었다. 야삽으로 터를 잡고 일을 처리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일을 볼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제주산 똥돼지로 배를 채웠던, 그날 밤

제주도의 한 아영장.

문제의 사건은 여행의 끝무렵이었던 제주도에서 발생했다. 필자는 그날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있는 한 야영장에다 텐트를 쳤다. 야영장이라고 하지만 폐쇄가 됐는지 시설은 다 노후화 된 곳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몸을 씻을 수 있을 정도의 수도 시설은 있었다.

그 날 그 곳에는 필자 혼자였다. 달빛이 있었지만 어두웠다.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좀 쓸쓸한 밤이었다. 한라산 중턱 부근에 홀로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쓸쓸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문제의 그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낮에 '똥돼지'로 불리는 제주산 돼지를 배불리 먹었더니 신호가 오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아주 큰 녀석이 배출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욱신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기사 관련 사진 
▲ 자전거여행 2009년에 행한 1차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주렁주렁 매달고 지저분하게 하고 다녔다. 정신이 없었는지 뒤쪽 받침대도 안 올리고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촬영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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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뭐야!'


화장실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건 화장실이 아니었다. 그 곳은 귀신도 줄행랑을 칠 정도로 아주 최악의 화장실이었다. 냄새는 그렇다 치고 두 발로 자세잡기도 힘든 곳이었다. 아영장에 왜 사람이 없었는지, 왜 그렇게 시설이 낙후됐는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자연을 벗 삼아 일을 치르기로 결심 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데 이게 딱 그거네. 오늘 따라 무척이나 비데있는 좌변기가 그리워지는구나!'

서둘러 땅 팔 곳을 찾았다. 허겁지겁 일을 치를 곳을 물색했는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만 '쾅'하고 돌에 부딪혀 오른쪽 무릎이 크게 다치게 된 것이다. 야영장이 어두웠던 데다 장기간의 여행 여파로 피로가 누적됐는지, 그만 다리 힘이 풀렸고 바위를 들이 받은 것이다.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엄청 세게 다쳤지만 아파도 별 도리가 없었다. 그저 빨리 일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당시 필자는 인간의 배설욕구가 외상의 고통 정도는 쉽게 불식시킨다는 것을 온 몸으로 습득하였다.

그렇게 볼일을 봤다. 정말 시원했다. 그렇게 원초적인 순간이 지나가니 자연스럽게 무릎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출혈이 심했던 것이다. 상처 부위도 상당히 넓었다. 그렇게 큰 상처가 났을 줄은 정말 몰랐다.

 

 

 

 

 

 

 

 

 

 

 

 

[중부내륙자전거여행 3편] 아웃도어 스펙 조작하기

여행 후기, 걸러서 보세요

13.12.16 15:40   최종 업데이트 13.12.16 15:4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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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에서 캠핑을 했을 때의 모습.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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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째 : 2013년 8월 16일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을 출발한 필자는 홍천을 거쳐 횡성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낮 12시에 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전날 야간주행의 여파로 너무 밤늦게 잠이 든 게 원인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몸상태가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적합할 정도로 달아오른(?) 것도 아니었으니 삭신이 다 쑤실 정도였다. 그래서 필자는 묘한 신음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아~ 정말 적응 안 되네. 몇 년을 달렸어도 여행 첫날이랑 그 다음날은 죽음이란 말이야! 오늘은 기필코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치고 자야지. 오늘 저녁은 두부 송송 썰어서 김치찌개 해먹어야겠다. 푸하핫! 오늘은 캠핑 특별식이다!'

 

 

#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라는 소리다. 그렇다. 이 속담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깊게 새겨 들여야 하는 격언일 것이다. 그건 자전거 여행이든 도보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체력, 장비의 한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 진격"만 외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여행을 통해 하나라도 배워가야지 여행이 '중노동'으로 변질된다면 곤란해진다.

스스로에게 적합한 일일 적정 주행거리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이동을 한다면 보다 더 즐겁고 재밌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일일 적정 이동거리는 자전거 여행일 때는 50~60km, 도보 여행일 때는 20~25km이다. 둘 다 취사와 캠핑장비로 완전무장한 상태를 가정한 것이다.

자전거 여행일 때는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 수 있어서 상황이 좀 낫다. 하지만 도보 여행일 때는 거의 2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배낭을 온전히 자신의 신체만으로 버텨야 한다. 그래서 장거리 도보 여행을 떠날 때는 5~6일을 이동했으면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좀 더 여유롭게 여행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기울어져 있다. 필자의 경험과 아웃도어 선배들의 의견들을 한 데 모아서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의 체력이 좋으면 하루에 100km 이상을 주행할 수도 있고, '천리행군' 빰칠 정도로 수십 킬로를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고유의 특색이 중노동으로 변질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타협책이 바로 일일 적정 이동거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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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골터널 홍천군 북방면에서 홍천 읍내를 향해 갈 때 이용했던 잿골터널.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한쪽에 보행자 통행로가 있다. 방음벽까지 갖춘 보행자 통로가 인상적이어서 한 컷 찍어 봤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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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어 '뻥튀기'의 유혹


전에 어떤 유명 여행 블로그를 눈팅하면서 혀를 찬 적이 있었다. 4개월 동안 무려 1800km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여름인 6월에서 9월 사이에 그랬다는 것이다. 억지로 하면 할 수도 있을 듯싶지만 그래도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다.

'이 분은 장맛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트레킹을 하셨나? 한 여름에는 제대로 아웃도어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신규 진입을 하는 여행판. 더 정확히는 여행작가판에서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의 스펙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려고 무진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한 곳이라도 여행지를 더 다니려고 발품을 팔고, 글감을 뽑아내려고 에피소드 찾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런 와중에 유혹도 생긴다. 커리어를 '뻥튀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웃도어 스펙을 조작하는 것이다. 500km짜리 도보여행을 했는데 거기에 한 300km를 더 붙여서 800km 정도로 늘려 잡는 것이다. 딱히 검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500이 고무줄처럼 800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500보다는 800이, 5000보다는 8000이 더 장사가 잘 되는 법이다. 5000을 뛴 것보다는 8000을 뛰었다고 하면 방송이나 언론에서 더 주목을 받지 않겠는가? 카메라는 조금이라도 더 드라마틱한 그림을 요구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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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강 강원도 홍천군을 흐르고 있는 홍천강. 이 강은 북한강의 지류이다. 앞쪽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띄어서 한 번 찍어보았다. 그러고보면 이곳도 강변아파트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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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원웨이(편도) 티켓만으로 세상을 누볐다는 이야기도 필자는 물음표를 붙인다. 이런 식으로.


'여비나 생활비는 그렇다 쳐도, 비자 받을 때도 공짜로 받을 수 있나?'

누군가는 필자에게 이렇게 질책을 하실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 넌 네가 주장하는 커리어가 딱 일치하냐? GPS로 다 찍어봤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GPS로 다 찍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의 GPS는 싸구려라서 그런지 기록이 고무줄로 나온다. 간간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는 필자가 왜 이런 제살 깎아먹기(?)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가. 커리어 '뻥튀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필자가 왜 이런 동업자 정신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는가. 이런 주문을 드리고 싶어서다.

'걸러서 보세요. 너무 액면 그대로 믿지 마시고! 아웃도어도 따라쟁이 식으로 하지 마시고 주체적으로 하자고요!'

 

 

 

 

 

 

 

자전거 여행서 만난 목사님, '전두환 코드'로 통했네

[중부내륙자전거여행②] 춘천에서 만난 센스쟁이 목사님

13.11.25 10:17l최종 업데이트 13.11.25 10:57l
         
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홍천→횡성→영월→충북 단양→제천→경북 문경→경남 거창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여행 1일째 : 2013년 8월 15일

용산역에서 ITX 열차를 탄 후, 한 1시간 가량을 달려 남춘천역에서 하차했다. 북한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춘천까지 올 수도 있었지만 그냥 편하게 ITX로 이동을 했다. 일명 '청춘열차'라고도 불리는 ITX는 영업 속도가 시속 180km에 이른다. KTX 다음으로 쾌속 질주를 한다.

 



# ITX와 동서고속철도

경춘선의 복선화와 그에 따른 전철화로 '춘천 가는 기차'식의 낭만이 많이 사그라진 게 사실이다. 복선화 이후 터널이 많아져 창문 밖 경치 구경도 '끊김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복선화가 경춘선의 신비감을 떨어뜨렸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나도 일정 정도 그 푸념에 동의를 한다. 분명 단선일 때, 경춘선은 터널도 적었고, 역사(驛舍)도 아담했다. 옛 김유정역 같은 경우는 아담하다 못해 앙증맞을 정도였다.  

그런 시각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낭만을 따지기에는 강원도 지역의 SOC(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단선철도 시절,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면 거리가 80km 정도인 춘천까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가 약 90km 정도이고 무궁화호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춘천까지 얼마나 거북이 걸음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이 이런 상황인데 다른 곳은 어땠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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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X ITX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칸이 있다. 그나저나 왼쪽에 있는 자전거와 필자의 자전거가 너무 비교된다. 필자의 자전거는 뒤태가 너무 구리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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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역사에 들어선 장애인, 노약자 편의 시설들은 기존의 옛 역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철도 건널목을 건너듯 맞은편 플랫폼으로 이동을 해야 기차를 탈 수 있는 역이 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야 철로를 건너 맞은편으로 느긋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고 횡단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맥락에서 나는 춘천에서 속초까지 이어지는 동서고속철도를 찬성한다. 동서고속철도는 강원도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으로, 선거철만 되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거의 30년 동안이나. 이렇게 오랫동안 동서고속철도가 활로를 찾지 못했던 건, 이 사업이 경제 타당성이 낮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악산이 수도권의 '외곽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원도 지역은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수도권과의 거리가 많이 좁혀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간의 동서고속화철도에 대한 박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낡은 경제 방식이지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현상을 경춘선 복선화와 중앙선(용산-용문) 전철화로 확인을 이미 한 바 있다.

북한-중국-러시아를 잇는 환동해권 물류 '파이프라인'으로도 동서고속화철도가 이용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선적된 물류들이 속초항을 거쳐 수도권으로 직접 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북 교류뿐 아니라 극동아시아 물류 운송 등에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동서고속화철도를 찬성하지만 그건 조건부다. 백두대간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조건 말이다. 허울뿐이지만 그래도 필자가 명색이 역사트레킹 마스터인데 백두대간이 다치는 것은 눈뜨고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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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랭이논 다랭이논은 경작지가 협소한 산촌이나 섬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남해군, 청산도, 지리산에 있는 다랭이논들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 다랭이 논은 좀 규모가 작지만 경작구간과 비경작구간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춘천에서 홍천으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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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님 같은 목사님


남춘천역에 하차했을 때가 오후 6시께였으니 많이 달려봐야 2시간 정도를 주행할 수 있을 터. 애초 첫날 계획은 춘천 시내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벗어나 홍천 부근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춘천의 도심부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보다는 군이나 읍 단위가 야영하기에 더 느긋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 자전거가 '거북이'였다는 것이다. 180km가 아니라 그저 시속 18km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 텐데... 현실은 8km였다. 그나마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보다 끌고 가는게 더 많았다. 그리고 춘천-홍천 간에는 왜 그리 고개들이 많던지!

결국 야간주행을 하게 됐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고심이 앞섰다. 통상 3일 정도는 페달을 굴려줘야 다리가 풀리는데 아직 다리가 덜 풀린 상태에서 행하는 야간주행이었기 때문이다. 갓길이 거의 없는 도로 사정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공친 거 같다. 빨리 마을회관 같은데 가서 텐트나 쳐야겠어!'

당시 나는 제대로 공을 쳤다. 농로길로 들어섰다 공동묘지로 빠져나왔고 논두렁에 자전거가 엎어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야간주행이라 적응이 안됐던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웠다. 그저 하룻밤 캠핑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적시해 줄 그런 고마운 손길.

"실례하지만 이 동네 이장님이세요?"
"아니에요. 저는 저쪽에 있는 교회 목사예요."
"예... 아... 그러세요."

영락없는 동네 이장님 같은 분이셨는데 교회 목사님이란다.

"오늘은 손님들이 많네."
"손님이요?"
"좀 전에도 대안학교 학생들이 도보 순례를 한다고 왔어요. 숙소가 없다고 해서 우리교회 1층에 자리를 마련해 줬어요."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분은 춘천시 동산면에서 교회 사역을 담당하고 계신, 전 목사님이셨다.

"텐트 칠 자리가 필요하다고요? 우리 교회에 앞마당이 있는데..."
"그건 제가 좀 불편하고요. 저기 마을회관 앞에다 텐트를 좀 칠게요."
"여기는 바로 앞에 차들이 다녀서 좀 정신없을 텐데요."
"그게 좀 걸리긴 하네요."
"그럼 제가 차를 앞쪽에다 댈게요. 그럼 차가 방패막이 역할을 할테니까."
"그럼 저야 감사하죠. 앞이 뻥 뚫린 것보다 훨씬 낫죠."

 

 

 

 

 

 

 

 

시작은 백두대간 종단이었으나 끝은 대폭 수정

[중부내륙자전거 여행 1] 실패(?)한 여행의 기록들

13.10.31 17:23l최종 업데이트 13.11.03 08:34l
곽동운(artpunk)             

 

 

 

여행은 8월 15일부터 시작하여 9월 15일에 다녀왔습니다. 이동 경로는 강원도 춘천 -> 홍천 -> 횡성 -> 영월 -> 충북 단양 -> 제천 -> 경북 문경 -> 경남 거창을 자전거로 다녀왔습니다. 여행수첩과 사진기록을 토대 삼아 약 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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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군의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 옆으로 관광용 뗏목선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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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5일 오후 4시.

나는 우쭐해 있었다. 왜? 여름 정기 투어에 나서려고 용산역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몰골은 '우쭐'하지 못했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중고자전거에 짐을 잔뜩 실었는데 그나마 패킹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것들이 한쪽으로 쏠렸다. 뒤에서 보면 자전거의 뒤태가 완전히 껑뚱했던 것이다.

나의 신발도 문제였다. 어차피 장거리 여행을 끝내고 나면 새로 산 신발도 망가지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나는 자전거만 타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에 트레킹과 등산을 병행한다. 그래서 2012년에 행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때에도 신고 갔던 트레킹화는 서울로 복귀하자마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그런 점을 잘 알기에 나는 아예 '빵구' 난 트레킹화를 신고 갔던 것이다. 자전거 뒤태는 껑뚱하지, 신발은 옆면이 터져 양말이 보이지... 뒤쪽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관련기사:
흥미진진했던 56일, 나는 '백두대간'을 달렸다)

"자전거... 노숙자...?
"정말...?"

 


광복절을 맞아 시작한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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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태가 구린 여행자전거 내 여행자전거의 이름은 블루야크. 모 아웃도어 회사의 이름을 빗대서 네이밍을 해 본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여행 자전거가 저렇게 뒤태가 안 이쁜가? 패킹을 잘못해서 그런지 짐이 한쪽 편으로 쏠려 있다. 사고 나기 딱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사고가 안 났다. 필자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홍천군 방면으로 길을 잡을 때 찍은 사진.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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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런 괄시를 쿨하게 받아넘겼다.

'난 지금 백두대간을 종단하고 거기다 남해를 횡단할 거다. 푸하핫! 이거 아무나 못하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쉽게 못 덤빌걸. 억만장자 워런 버핏도 쉽게는 못 덤빌 거야!'

워런 버핏도 못할 일을 시작한다고 그렇게 한참 우쭐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여행의 시작일이 또 8·15 광복절이 아닌가? 광복절 맞이 국토대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더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백두대간을 횡단하고 남해바다를 횡단할 테니 이름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이라고 붙이면 되겠군! 푸하핫!'

백두대간 종단과 남해바다 횡단? 호기는 좋았으나 내 앞에 놓인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횡단에 1200Km 이상, 남해바다 횡단에 흑산도까지 입도하려면 600Km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약 1800km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자전거를 다 떨어진 트레킹화로 페달을 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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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이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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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가 넘는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도 내가 느긋할 수 있었던 건 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첫 장거리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런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지리산에서 태풍도 맞아봤고, 공동묘지에서도 홀로 밤을 지새웠는데 겁날 게 뭐있겠어. 한두 번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이런 시건방은 아웃도어 여행에서는 독이다. 철저한 준비와 다부진 마음가짐을 갖고 떠나도 될까 말까인데, 시건방부터 떤다면 여행의 성공 여부를 떠나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악사고도 보면 초심자들보다는 '산 좀 탔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당한다. 네팔도 다녀오고 했는데 해발고도가 낮은 우리나라 산 쯤이야, 하다가 큰 낭패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여간 나의 시건방은 열차 출발 시각에서도 표출됐다. 여행의 시작점을 춘천으로 잡기 위해 용산역에서 ITX를 탔는데 그 시간이 오후 4시였던 것이다. 남춘천역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되니 첫 페달을 굴린 시각이 오후 6시 경이 되고 말았다. 여름에는 해가 길다고 하지만 그래도 오후 6시가 가까이 된 시각에 여행을 시작하면 그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시건방은 장거리여행의 독(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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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 자전거여행 중에 가장 난감할 때는 터널을 통과할 때다. 강렬한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질때의 그 느낌이란! 강원도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갈 때 찍은 사진이다. 이 터널은 극히 교통량이 적었기에 이와 같은 사진 촬영이 가능했음을 밝혀 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터널 중간에 정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위험한 짓이기 때문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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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곽작가입니다.

더운 여름, 어떻게들 보내시고 계시나요? 열대야 때문에 잠도 들기 어려운 이 시기! 저도 무척 괴로웠답니다. 왜? 여름 정기 투어가 계속 미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같았으면 벌써 여행을 다녀와서 뒷마무리 작업 중이었을 텐데... 그렇게 해야 할 일을 못했더니 몸에 좀이 쑤시더군요. 역시 계획한 일은 해야 하는게 순리인 것 같습니다.

 

 

 

이 포스팅이 발행될 시점에 저는 춘천행 ITX를 타고 있을 겁니다. 작년 백두대간자전거여행에 이어 올해 여행의 시작점도 춘천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은 춘천에서 시작하여 계속 남진을 할 예정입니다. 서부 강원권과 충청북도를 중심으로 이동해 지리산 부근에서 남해바다쪽으로 핸들을 돌릴 예정입니다. 즉, 백두대간과 남해바다 탐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름도 백두-남해 자전거여행이라고 명칭을 붙였습니다.

 

 

 

대충 헤아려보니 거의 1,500km 정도 이동할 것 같네요. 만만치 않은 거리죠. 그래서 시일도 한 40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겠죠! 무사히 여행을 잘 마치고 와서 열심히 후기를 남기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길!

 

 

 

 

ps. 이번 여행에서는 새로운 도보여행길 개척을 위한 사전작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새로운 도보여행길은 남해바닷길입니다. 일명 '남바다'라고 불릴 예정입니다. 전남과 경남, 부산까지 약 400km의 국토횡단 도보여행길을 개척 준비중입니다. 영호남의 화합을 담은 도보여행길을 만드는 것인 만큼 아주 잘 만들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일정이 변경되서 14일이 아닌 15일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8월 15일에 출발하는 셈이니 광복절 기념 자전거여행이 되겠군요!

 

 

 

 

 

 

 

 

 

 

 

 

 

* 충남 서산시 기포리: 마을회관 앞에서 느긋하게 텐트치고 잤는데 한 밤중 폭우가 쏟아져 수해를 겪었다.

그래서 빨래 말리듯 마을회관 난간에 젖은 옷가지와 물품들을 말렸다. 2011년 7월 27일에 찍은 사진이다.

 

 

 

 

모기장에 방수포를 씌운 새로운 보금자리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북 익산에 있는 대형마트에 들어섰다. 마침 여름시즌 상품을 할인세일 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고객님, 많이 당황하셨겠어요."
"그렇죠 뭐."
"그럼 이 제품 한 번 보세요. 가격도 저렴한데다 캠핑용품으로 유명한 OOOO사 제품이에요. 신제품이고요."
"좋아 보이네요. 그런데 가격이...?"
"여름 시즌 특별할인 행사를 해서 20만 원이랍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나는 돌아섰다. 탐나는 제품이었지만 20만 원이라는 돈은 나에게 큰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20만 원이면 내가 20일 동안 버틸 수 있는 돈인데...'

하지만 망가진 텐트로는 여행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수가 필요했다.

'푸하핫! 그렇지.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전북 전주에 도착한 나는 그 길로 'O마트'에 가서 모기장텐트를 구매했다. 모기장 텐트에 방수포를 씌워 사용할 생각이었다. 방수포는 폴대가 부러진 그 텐트에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2만 원에 새로운 보금자리가 탄생했다.

'모기장 텐트는 비가 오면 쥐약이니까 일기예보를 더 잘 들어야겠군. 그리고 웬만하면 팔각정 같은 곳에다 텐트를 치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거야!'

방수포는 모기장텐트에 맞춰 딱 떨어지지가 않았다. 아랫부분 10cm 정도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그 부분은 취약지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물망 너머에 각종 벌레들이 들러붙어 있었고, 노상에 덕지덕지 깔린 껌딱지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 그 비타민 냄새를 맡을 수밖에….

 

 

 

* 충남 홍성 만해기념관: 만해 한용훈 선생 기념관 옆 공원에서 텐를 쳤을 때의 모습. 사진 맨 위쪽  정중앙 부근에 폴대가 부러진 모습이 보인다. 싸구려 텐트를 짊어지고 가야 했던 비애였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도시의 공원에서 야영했을 때는 사람들의 하반신도 관찰되었다. 어느날인가 내 얼굴 바로 앞쪽에 하이힐 신은 여자의 발목이 보여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장점도 있었다. 통풍이 잘되어서 아주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으니 그냥 밖에서 침낭을 덮고 자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을 걸, 괜히 내려앉은 텐트 속에서 허우적거렸네. 하여간 시원하고 좋네. 푸하핫!'

 

새벽의 저주

모기장텐트로 보금자리를 꾸민 나는 마이산이 있는 전북 진안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무엇에 홀렸는지 계속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서 갔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주행을 해야 했다. 이미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나는 야영지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은 조급해졌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비가 온다는 예보도 없었다.

'이러다 밤새겠다. 비도 안 온다니까 그냥 텐트 칠 곳이면 그냥 쳐야겠다.'

우여곡절 끝에 어떤 농로길 옆에 텐트 칠 공간은 마련했다. 전북 완주군 부근이었는데, 외곽지역이라 인적이 드물어서 야영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늦었지만 맛있게 저녁을 지어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하늘을 올려보았다. 서산에서 봤던 별보다 더 많은 별들이 촘촘히 밤하늘에 박혀있었다. 장시간 주행으로 몸이 지쳐서 더 그랬을까? 인적이 끊긴 외진 농로길에서 밤하늘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센티멘털해졌다.

'참 별들이 많아 좋네. 어쨌든 오늘은 단잠을 잘 수 있겠어. 푹 자고 내일은 가뿐하게 달려보는 거야!'

한두 시간 정도 곯아 떨어졌을까, 무언가가 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뚝, 뚝, 뚝... 잠결이라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었만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그렇다. 비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폭우였다. 서산에서 맞은 폭우에 못지않은 강력한 비였다. 나는 허둥지둥 거렸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휴대폰이나 디카 같은 전자제품을 챙기는 것이 전부였다. 
 

 

 

 

 

 

* 전북 완주: 전주에서 모기장 텐트를 하나 구입한 후, 그 모기장텐트에 위쪽으로 방수포만 씌어서 여행을 계속 이어나갔다. 송송 뚫린 모기장이라 통풍이 잘돼 아주 시원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전북 완주에서 엄청난 물폭탄을 맞았다. 송송 뚫린 모기장이라 물길도 시원스럽게 났다. 그 물길을 보면서 필자는 인생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야 했다.

 

 

 

 

 

조금 지나니 안으로 빗물이 들어왔다. 단순히 텐트에 빗물이 스미는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누워 있는 침낭 양 옆으로 새롭게 물고가 생겼다. 텐트를 친 곳이 하필이면 기울어져 있어서 농로에 있던 물들이 텐트 안으로 다 들어오는 것이었다. 모기장텐트에 방수포를 씌운 것인데 무엇을 바라겠는가! 나는 그저 양 옆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물줄기들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난 이 낯선 동네에서 새벽에 저주를 당하고 있는가? 왜 나는 한 치 앞도 못보고 이 곳에다 텐트를 쳤는가? 왜 나는 스스로의 감에 의해 날씨를 예측하여 이런 낭패를 자초했는가? 왜 인간은 이다지도 어리석은 존재란 말인가?'

폭풍우는 그칠 줄을 몰랐고 천둥번개는 불꽃쇼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그럴수록 인간 존재에 대한 사색은 더욱 더 깊어졌다. 복잡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누구나 다  인간 존재에 대한 사색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무섭지도 않고 시간도 잘 간다.

다음날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쨍쨍했다. '새벽의 저주'가 풀린 것이다. 그 이후에도 비는 계속 내 곁을 따라다녔다. 특히 지리산 성삼재에서는 '무위파'라는 태풍까지 맞아야 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더 이상의 '새벽의 저주'는 없었다. 한편 그런 재밌는 경험을 했으니 이렇게 캠핑공모전에 응모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쏟아진 토사: 2011년에도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 그래서 저렇게 길 위로 토사가 쏟아져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명과 차량 피해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저 길을 달리고 있을 때 토사가 쏟아졌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충남 서산에서 홍성으로 가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여행은 계획대로 딱딱 안 맞아 떨어진다. 2011년의 제2차 국토종단자전거여행이 '새벽의 저주'에 의해 몸살을 앓았다면, 2012년에 행한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은 마을사람들과 야생동물들의 '습격'으로 몸살을 앓았었다. 왜 너구리가 텐트에 들어와서 내 귀중한 식량을 뺏어 먹는지! 왜 남의 텐트를 발로 뻥뻥 차는지!

그렇다. 그것이 여행이고, 캠핑이다. 틀에 박힌 도시생활과는 다른 경험들 느끼고 싶다면 캠핑을 떠나보시라고 권해드린다. '새벽의 저주'를 느끼며 인생의 존재론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할 수도 있으니 나름 색다른 경험이 아니겠는가?

 

 

 

 

*** 원래는 8월 14일에 2013년 여름정기 투어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정에 생겨서 하루를 미뤄 8월 15일에 떠납니다.

그러고보니 광복절에 여행을 떠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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