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12월 11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및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노숙: 노숙도 순례길의 일부? 2차 노숙지.




*여행 9일차: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맑음 

1. 오전 9시경, Torres del rio 알베르게에서 출발함.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거의 홀로 걸었음. 날씨도 양호했고, 노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았음.

2. 일행들은 Logrono를 향해갔지만 난 일행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서 Logrono를 넘어갈 생각이었음. 그러러면 좀 서둘러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음. Logrono는 대도시임.

3. Logrono를 9.6km 정도를 지나 navarrete를 향해 갔음. 프린트상에 navarrete는 나름대로 알베르게가 6개 정도 있다고 적혀 있었음.

4. Logrono에서 navarrete까지는 약 13km 정도임. 이미 Logrono에 들어섰을 때 해가 지고 있었음. 그런데 거기서 13km를 더 가겠다고? 과욕임에 틀림없었음!

5. 결국 야간트레킹을 하게 되었음. 뭐 야간트레킹이야 국내에서도 숱하게 했고, 이번 순례길에서도 야간트레킹을 몇 번을 할 거라고 예상했었음. 하지만 의외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음.

6. 아닌 밤 중에 홍두께라고, 멧돼지 떼를 목격한 게 아닌가! 한 마리도 아니고 멧돼지 떼를 만난 것이다. 
예전 도봉산에서 멧돼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한 마리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떼거지였다...ㅋ

7.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멧돼지 녀석들의 덩치가 크지 않았다는 것과 길을 가로질러 갔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멧돼지를 만났을 때의 수칙을 되내이며 녀석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8.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쾌에엑'거리는 멧돼지들의 굉음을 듣다보니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남에 나라에 와서 한 밤 중에 뭐하고 있냐...ㅋ

9. 어찌어찌하여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하지만 또다른 위기가 안 온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열심히 걸어갔다. 이미 오후 9시가 넘은 시각, 거의 12시간 정도 걸은 것 같은데... 어디서 힘이 났는지 속보로 걷고 있었다. 어디서 멧돼지가 또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질려서 그랬는지 내 다리는 멧돼지 녀석들보다 훨씬 더 빨리 내달리고 있었다...ㅋ

10. 그렇게 힘들게 야간트레킹을 한 후 navarrete에 갔더니 알베르게가 딱 하나 열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그것도 알베르게 관리인이 출타중이라고 했다. 이때가 밤 10시 경이었다. 역시 겨울철 순례길은 알베르게 잡기가 만만치 않다. 그나마 그 동네에 호스텔이 있어서 갔더니 30유로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뭐 30유로면 우리나라 돈으로 4만 2천원 정도 하는터라 그 정도를 지불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5유로 10유로에 익숙해져서 그랬는지 30유로라는 말에 잠시 망설였었다. 

11. 망설이며 잠시 어디를 다녀왔는데 그새 호스텔도 문을 닫았다. 그 잠시 사이에 문을 닫은 것이다. 한마디로 이제 navarrete에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숙소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걸 어쩌냐!

12. 별 방법이 없었다. 노숙을 하는 수밖에... 그렇다고 navarrete에서 할 수는 없고, 좀 더 걷기로 했다. 야간트레킹을 넘어 심야트레킹을 하기로 한 것이다. 

13. 그렇게 심야트레킹을 해서 ventosa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 ventosa 성당 벤치에 자리 깔고 노숙을 했다. 무자게 춥더라! 특히 하반신이 무척 추웠다. 발도 시렸고. 그래도 피곤했는지 잠은 잘 왔다. 코를 골면서 잤으니까. 

14. 멧돼지를 만나지 않나! 노숙을 하지 않나! 순례길을 제대로 만끽하네!ㅋㅋㅋ




*여행 10일차: 2018년 12월 20일 목요일 맑음 

1. 노숙의 여파로 아침경에 또다시 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날씨만 따뜻하면야 노숙도 할 수 있는 거지. 그런게 순례길의 또다른 맛이 아니겠어!ㅋㅋㅋ

2. 오늘은 체력 관리 차원에서 najera까지만 가기로 했음. ventosa에서 najera까지는 약 9km 정도였음.

3. 어제오늘 총 51km를 걸었음. 하루에 그냥 25km씩, 이틀에 걸쳐 가는게 더 나을뻔 했음. 이게 뭐야!




* 필자: 출발할 때는 이렇게 호기롭게 출발을 했지. 이 사진은 일본인 사와다라는 친구가 찍어줬음. 




navarrete: ventosa와 함께 잊을 수 없는 도시!





* 1차 노숙지: ventosa성당 벤치. 힘들어서 그랬는지 코골면서 잤다. 내 코고는 소리에 스스로 놀라 깼을 정도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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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puente romanico



* 여행 7일차: 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맑음

1. puenta la reina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 출발함. 이 사설 알베르게는 숙박비가 15유로였는데 조식도 주고 나름 괜찮았다. 

2.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날씨가 좋았다. 비가 한방울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하게 걸을 수 있었다. 이렇게만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3. 도보여행 5일차가 되니 배낭 무게가 적응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짐을 줄여야 한다는 명제는 언제나 살아있다!

4. 시작점 초기에 로마양식의 천년된 돌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오래됐지만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쓰이는 다리였다. 딱 봐도 아주 멋졌다.

5. 대체로 이베리아 지역의 옛 다리들은 홍예부분이 무척 컸다. 압도적인 아치라고나 할까나?

6. 목적지인 estella에 있는 capuchinos rocamdor 알베르게에 도착함.



* puente romanico




* 양떼목장(?): 여행 8일차에 만난 양떼들. 




* 여행 8일차: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흐림

1. estella에 있는 capuchinos rocamdor 알베르게는 옛 수도원을 개조한 곳이었음. 숙박비는 무려 16유로였음. 조식도 안 주는데 16유로라니! 더군다나 좀 비좁은 느낌이었음. 한마디로 돈 값을 못하는 느낌이었음. 대신 식당은 넓고 좋았음. 일행들과 함께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음. 난 먹을 복이 있나 봐!^^

2. 오늘의 목표는 torres del rio라는 곳인데 약 28km를 이동해야 함. 거리는 꽤 멀었지만 계속 평지를 걷는 터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음. los arcos라는 곳에서부터 torres del rio까지 약 8km 정도 되는 구간에서는 속보로 열심히 걸었음.

3. 그렇게 열심히 걸었더니 8km를 1시간 40분 만에 주파했음. 두 번이나 쉬기까지 했는데 말야.

4. 오후 7시가 넘어 torres del rio에 도착. la pata de oca라는 허름한 알베르게에 도착함. 오늘은 일행들과 떨어져서 홀로 알베르게를 잡았는데 왜 이 알베르게가 장사가 안 되는지 알겠음.

5. 가격은 10유로인데 조리시설 자체가 없음. 그래서 물도 못 끓여 마심. 무언가를 좀 먹으려면 무조건 1층에 있는 bar에서 먹어야 했음.

6. 알베르게 주인이자 bar 사장인 주인장은 주정뱅이인 듯함. 처음 봤을 때부터 거하게 취해있었음. 그렇게 인기 없는 알베르게라서 그런지 오늘은 나 혼자 알베르게를 다 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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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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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언덕




* 여행 6일차: 2018년 12월 16일 일요일 흐림, 간간이 비 옴

1. 오늘은 팜플로냐 대평원을 만나는 날! 순례길 코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간! 그곳을 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2. 팜플로냐 jesus y maria 알베르게를 출발하여 바람의 언덕을 지나 목적지인 puenta la reina를 향해갔다. 

3. 바람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그리 어려운 난코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노면 상태가 별로였다. 자갈길이었다. 더군다나 계속 그랬듯이 비가 오락가락했다. 노면 상태가 고르지 않은 곳을 비에 젖은 신발로 계속 이동하다보니 발바닥에는 왕물집이 생겼다. 

4. 드넓은 팜플로냐 대평원! 보고만 있어도 그냥 시원하다. 정말 시원하다. 저 풍광을 확 다 가져가고 싶을 정도였다. 

5.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그냥 보고만 있어도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전화위복인가? 비가 와서 그랬는지 무지개를 두 번이나 봤다. 특히 두 번째 무지개는 기둥형식의 무지개였다. 무지개가 기둥식도 있더라...ㅋ

6. 순례길을 팜플로냐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생장피에르포드에서부터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팜플로냐를 시작점으로 잡는데 그 이유는 팜플로냐가 대도시이기 때문이다. 마드리드나 바로셀로나에서 팜플로냐로 가는 버스편이 있어 아무래도 접근성이 더 나을 수밖에 없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팜플로냐에서부터 순례길을 시작한다. 

7. 팜플로냐에서 산티아고콤푸스텔라까지는 약 700km정도 걸린다. 참고로 바로셀로나에서 팜플로냐까지는 버스로 약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 팜를로냐 대평원




*팜플로냐 대평원 무지개





* 바람의 언덕





*팜플로냐 대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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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순례길 안내표지석에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 깃발을 놓고 왔다. 기념으로... 아니 무거워서 무언가 하나라도 빼내려고...ㅋ





* 여행 5일차: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흐림, 간간이 비 옴

1. zubiri 알베르게에서 오전 9시 30분 경에 출발함. 

2. 전날보다는 훨씬 양호하게 걸었다. 길이 비교적 유해서 그런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또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서 역으로 오는 순례자도 봤음. 이런 사람들을 통상 리버스(reverse) 순례자라고 칭함.

3. 오늘의 목적지는 팜플로나(pamplona)였음. 그런데 문제는 팜플로나 일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깡촌이었음. 팜플로나 바로 인근에 있는 arleta까지 오는 동안 마트 하나, 바르(bar) 하나 보지 못했음. 거의 3시간 동안 물 한 모금을 못 마셨음. 중간에 물을 살 때가 있을 줄 알고 방심을 했던 것임. 

4. 산티아고 순례길은 오지를 많이 걷기 때문에 3끼 분에 식량과 물을 항상 휴대해야 함.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5. 점심 먹을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휴대하고 있던 식빵에다 잼을 발라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밥도둑을 만난 것이 아닌가! 동네 고양이들이 쓰~윽 나타나더니 내 점심을 뺏어 먹는 것이었다. 한 두 마리도 아니고 무슨 놈의 고양이들이 이렇게 많냐! ㅋㅋㅋ

6. 팜플로나 알베르게에 오기 전에 길을 헤맸음. 그때 다리를 건너야 했었는데 너무 아찔했음. 급류가 쌩쌩~ 그런데 알고보니 조금만 돌아가면 그런 위험한 상황을 안 만날 수 있었음. 바로 앞에 있는 걸 못 보다니...ㅋ

7. 오후 6시경에 팜플로나에 있는 jesus and maria 알베르게에 도착함. 알베르게에서 신라면을 끓여 먹었음. 아주 맛났음!^^;
 



* 밥도둑들: 사진상으로는 4마리인데 실제로는 거의 20마리 정도였다. 친구를 계속 불러들이는데... 그나저나 고양이가 식빵을 그렇게 잘 먹는 줄 처음 알았다. 우리동네 고양이들은 잘 안 먹던데 스페인 고양이들은 아주 잘 먹었다. 




* 자전거 아저씨들: 스페인은 아웃도어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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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ubiri: 사설 알베르게 발코니에서 바라본 모습



* 여행 4일차: 2018년 12월 14일 금요일 하루종일 비

1. 론세바레스(roncevalles)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오전 9시 30분 경에 출발함. 전날 피레네가 준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태로 출발함. 멍~한 상태로! ㅋ

2. 오늘은 zubiri까지 가는 여정임. 피리네에 비해 어려운 것은 없었으나 급류를 건너서 가야하는 구간을 4번이나 만남. 돌다리가 있기 했지만 무척 어설픈 돌다리였음. 자칫하면 급류에 떠내려 갈 수도 있을 정도였음.

3. 전날 그 지역 일대에 비가 많이 내려서 급류가 생겼는데... 오죽했으면 '순례길을 포기해야'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다리를 건너는 것이 어려웠음. 턱이 낮은 돌다리 위로 급류가 덮쳐오는 형상이었음.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떼는 게 아니라 질질 끌고가야 했음. 

4. 무릎까지 오는 세찬 물살을 뚫고 발을 뗐는데...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음. 그렇다고 물살이 잠잠해 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음. 왜? 전날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렸으니까.  

5. 첫날은 피레네에서 빰 맞고, 둘째날은 급류에 휘청거리고... 순례길이 왜이래? 한겨울에 급류를 걱정을 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ㅋ

6. 어찌어찌하여 급류를 잘 건넜고 주비리(zubiri)에 있는 사설 알배르게에 도착했다.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는 국공립에서 운영하는 곳이 있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설이 있다. 대체로 국공립보다는 사설이 요금이 비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설이 우수하다. 

7. 이날 묵은 알베르게는 숙박비가 15유로로 좀 비싼 편이었지만 시설은 무척 괜찮았다. 특히나 바로 옆에 (rio arga)라는 강물이 흐르고 있고, 강둑 사이를 고풍스런 돌다리가 연결하고 있었다. 풍광이 뛰어난 알베르게였던 것이다. 조식도 주었는데 나름대로 먹을만 했다. 




* 급류: 여기를 넘어가야 했다. 물살은 거셌고 차가웠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 zubiri: 아르가(rio arga) 강 위에 올려진 돌다리. 여름에 인기가 많다고 한다.  














☞ 지난 2018년 12월 11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및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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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레네




* 여행 3일차: 2018년 12월 13일 목요일 하루종일 비 옴

1. 생장피에르포드(saint-jean-piedport)에 있는 refuge라는 알게르게에서 오전 9시경 나옴. 알베르게(albergue)는 순례자 숙소를 말한다. 겨울철이라 생장피에르포드에 오픈한 알베르게는 refuge 알베르게 한 곳 뿐이었다. 하긴 사람도 안 오는 비시즌에 뭐하러 이곳저곳 문을 열어 놓겠나. 

2. 확실히 12월~1월은 비시즌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펜션들을 생각해보라. 겨울철에 문을 닫는 펜션들이 많지 않은가? 

3. 그래서 그런지 겨울철에 순례길을 걷는 이들은 무언가 한가닥(?) 하는, 무언가 좀 있어보이는 이들만 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정말? 말그대로 소문!!! 난 11월까지 비즈니스가 있었고, 12월에 겨우 시간이 나서 순례길에 온 것이다. 

4. 순례길 첫날부터 아주 제대로 당했다. 역시 피레네는 피레네였다. 나폴레옹 루트가 아닌 평탄한 곳으로 올라갔지만 계속 헥헥거리면서 올라갔다. 또 처음부터 어의없게도 길을 잃어버려 스텝도 꼬였다. 길을 잃어버려 거의 2시간 정도를 날렸던 것이다. 

5. 비는 주적주적 계속 내리고 있지, 무려 2시간이나 길을 헤매였지, 어깨는 배낭 때문에 내려 앉을 거 같지... 완전히 첫날부터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짐 때문이었다. 짐 무게가 무려 16~17kg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뭐하느라 쓸데없이 그렇게 무겁게 가지고 왔는지! 스스로 고행을 자초했다니...ㅋ  

6. 짐을 줄여야 한다! 짐 때문에 순례길이 고행길이 되는 것이다. 고행도 적당히 해야지 어깨가 고장나는 고행은 사절이다!

7. 프랑스에서 스페인 국경을 넘는데 국경 경계 표식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난생 처음 걸어서 국경을 넘어보려고 했는데 그래서 국경 표지석 앞에서 폼 좀 잡아보려고 했는데... 아이고 어깨야!^^;

8. 산 정상부에 올라서니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또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8년 전 지리산에서 맞은 태풍 이후로 처음  겪어보는 산중 비바람이었다. 피레네가 환영식을 아주 거창하게 해주었다. 

9. 초반에 너무 늦게 출발한 것도 있고, 2시간 정도 길을 헤매여서 결국 야간트레킹을 하게 됐다. 구닥다리 헤드랜턴을 켜고 산길을 걸어갔다.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좀 무서웠다. 바람이 거세게부니 귀신도 무섭다고 안 나오려나...ㅋ

10. 밤 9시경에 목적지인 스페인 론세바레스(roncevalles) 수도원 알베르게에 도착했음. 프랑스 생장피에르포드에서 오전 9시경에 출발했으니 1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래그래~ 12시간 만에 국경도 넘고, 피레네도 넘었다. 배낭이 가벼웠으면 한 8시간 만에 주파했을 수도 있었는데.

11. 하도 이때 된통 당해서 그런지 피레네를 꼭 한 번 다시 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야 하나? 피레네에서 당한걸 피레네에서 다시 갚아준다? 하여간 피레네는 내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 생장피에르포드




* 피레네: 비바람이 몰아치는 피레네












*** 지난 2018년 12월 11일부터 2019년 2월 1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 및 이베리아반도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답니다. 앞으로 그 여행일지를 포스팅화 시킬 예정입니다. 여행일지를 약간의 수정 과정을 거쳐 올릴 거라 그렇게 재밌는 포스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큰 정보를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저 손글씨로 작성한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할테니까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바욘




*여행 1일차: 2018년 12월 11일 화요일 맑음 

1. 인천공항 제2청사에서 파리행 에어프랑스 탑승. 오전 9시55분 -> 오후 2시 20분 파리 드골공항 터미널2에 도착함. 시차 때문에 몇 시간을 번 셈이다. 

2. 드골 공항 3청사로 트램을 타고 이동하여 바욘(bayonne) 가는 심야버스를 기다리고 있음. 오후 8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오전 8시경에 바욘에 도착하는 심야버스임. 장거리 비행기를 타느라 띵~한 상태에서 이번에는 장거리 심야버스를 타야 할 판임. 파리에서 바욘까지는 약 800km 정도를 달려야 함.

3. 역시 장거리 비행은 정말 죽을 맛이었음. 엉덩이에서는 뿔이 났고, 머리는 지끈거렸음. 오죽했으면 승무원에게 두통약을 달라고 했을까!

4. 드골 공항 3청사에서 거리의 가객이 에릭클립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음. 난 그 옆에서 맛없는 샐러드와 과자로 끼니를 때움. 그 거리의 악사가 워낙 열광적으로 노래를 해서 그런가? 그 악사에게 어떤 청년이 음료수를 가져다 주었고, 나도 2유로를 기부했다. 역시 무언가를 열광적으로 하다보면 그에 대한 답례를 받는 것이다. 

5. 바욘가는 버스가 직행인 줄 알았는데 군데군데 다 섰다. 파리 시내에 있는 버시(bercy)라는 곳을 정차했는데 그곳에는 영국 런던가는 버스도 있다더군! 유럽은 버스로 못 가는 곳이 없더군! 바욘 가는 버스는 유명한 보르도도 정차했음.




* 바욘역




* 생장피에르포드의 골목길




* 여행 2일차: 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하루종일 약한 비  

1. 바욘가는 심야버스에서 나름대로 잘 잤음. 그래도 시차 적응이 잘 안되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렸음. 또 두통약 하나를 먹음.

2. 오전 8시경 드디어 바욘에 도착함. 예상도착 시간은 오전 9시였지만 1시간 빨리 왔음. 어쨌든 엉덩이가 들썩들썩, 온 몸이 찌뿌둥찌뿌둥...ㅋ

3. 바욘은 바스크 지방에 속해 있는 도시다. 프랑스의 남서쪽에 위치해있다. 비교적 큰 강(아두흐강)을 끼고 있는 도시인데 여기서 '비교적'이라는 말은 파리의 센강과의 비교다. 물론 센강이나 아두흐강이나 서울의 한강에 비하면 크기가 작다. 

4. 몸이 피곤해서 바욘은 그냥 건너 뛰고 그냥 생장피에르포드(saint-jean-pied port)로 가기로 했다. 
바욘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출발점인 생장피에르포드로 가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곳이었다. 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위해 온 것이지 바욘을 탐방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거쳐 가는 것이 좀 아쉽기는 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바욘도 한 번 제대로 탐방해봐야겠네. 물론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5. 오전 11시 50분 경 생장피에르포드행 기차를 탔다. 12시 50분 경 도착. 기차는 통근열차처럼 생겼고 통근열차처럼 이역 저역 다 정차했다. 그래도 차창 밖에 펼쳐진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주 즐거운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기차표는 약 10유로. 바욘역 매표소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다. 

6. 기차에서 수잔님이라는 한국인 여성을 만남. 수잔님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로 대단한 운동 능력의 소유자였음.

7. 생장피에르포드(saint-jean-pied port)는 참 아름답고 조용한 동네였음.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자아자 파이팅!





* 생장피에르포드 알베르게 앞: 배낭이 저렇게 무거우니 헥헥~ 거리지! 







* 생장피에르포드역에서 한 컷














속옷*3
양말*5
수건*2
자켓*2
침낭
아이젠
잠옷세트
구급약통
태블릿pc
세면도구
헤드랜턴
필기도구
충전기
여권
버스 출력증
건전지
슬리퍼
판초우의
보조배낭
.
.
.

등등...


한짐이네요. 한짐! 뭐 어디 여행가나요? 네 맞습니다. 좀 멀리갑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로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할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이라 이것저것 때려 넣었더니 50리터 배낭이 뚱뚱해졌습니다. 대충 15kg 정도 될 거 같은데... 좀 있다 공항에서 정확히 측정해봐야겠습니다.

기왕가는 여행, 이번에 여행상품을 하나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 뭐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미 기존 여행 상품들이 넘쳐나고 있지요. 하지만 뭐 제 방식대로 하나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물론 사람들이 많이 호응을 해주셔야지 그것도 가능하겠죠...ㅋ

내년 2월 1일에 입국하니 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거 같습니다. 여행 잘 다녀와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건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번 여행에서 약 1,000km를 걸어야 되니까요! ㅋ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을 진행하면서 수천킬로를 걸어다녔기에 사전 준비는 웬만큼 한 셈이죠. 하지만 외국에서 걸으려고 하니 좀 긴장이 되는게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한 겨울에 떠나는 길이고, 배낭 무게도 만만치 않은 터라...

하지만 유쾌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4년 전 순례길을 갔을 때도, 작년 도보여행길 조사 작업을 할 때도, 예전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행했을 때도 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런 만만치 않은 여정도 즐기면서 가는게 진정한 도보여행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2018년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밝아오는 2019년 한 해는 더더욱 건강하고 활치하게 보내자고요~ 역사트레킹을 같이 행하면서요!^^;


ps. 비행기 탑승 시각을 5시간 정도 앞두고서...   














* 피스테라 가는 길. 대서양에 접한 스페인의 한 어촌 마을. cee라는 곳이다.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가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 두 번째 이야기

 

 

 

이번 화는 전편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이란 제목에서처럼, 저는 통상적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산티아고지우개로 지워버린 셈이 됐으니까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작성한 건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조만간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탐방할 예정입니다. 다른 순례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 길을 걸으며 많은 감흥을 얻었고, 큰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만큼 저도 산티아고 앓이를 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이란 도발적인 글을 썼을까요? 간단합니다. 제대로 알고 가자는 의미에서 글을 썼습니다. 기왕 돈 들여, 시간 들여가는 길이라면 제대로 알고 가야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 더 알찬 트레킹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피스테라 가는 길. 조가비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물이다.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피스테라(Fisterra)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서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스페인의 땅끝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의 시신은 나룻배에 실려 에스파냐 땅에 닿게 됐는데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피스테라였다고 합니다. 많은 여행책자들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지요.


어쨌든 그런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에다 땅끝이라는 지정학적인 의미가 더해진 곳이기에 피스테라는 순례여행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게 피스테라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피스테라로 가는 시작점은 산티아고 대성당입니다. 대성당은 순례길의 종료점이기도 했지만 땅끝으로 가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을 보고 있자니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실감나더군요. 새삼스레 인생은 끝없는 여정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시작 할 때는 이게 언제 끝나나, 하고 막막해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마침표를 찍게 되고, 그러다 또 다른 시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예전 국내여행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시작할 때는 막막했지만 여행이 종료가 될 때는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미 다음 여행의 경로를 머릿속으로 그리곤 했었지요.

    






* 산티아고 순례길.







 

해양과 산맥이 공존하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

 

피스테라로 가는 길은 인적도 드물었지만 마을 자체도 듬성듬성 있었습니다. 조금은 척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개발이 덜 된 곳도 있었습니다.


피스테라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한 갈리시아 지방은 스페인의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데 서쪽으로는 대서양, 위쪽으로는 비스케이만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형은 산지 형태를 띠고 있는데 험준한 산악지형이라기보다는 구릉형 산지가 층층이 쌓아 올려진 형태였습니다

 

전편에도 언급했듯이 이 지역은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을 때도 그 침략의 사슬에서 벗어나 있던 곳입니다.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온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은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고, 이에 서고트 왕국의 옛 귀족들은 반도의 서북부에서 아스투리아스(Asturias)를 건립하여 가톨릭 왕국의 재건에 나서게 됩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서북부 지역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들어서게 됩니다. 이곳은 첩첩산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산악지형을 띠고 있기에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했습니다

 

대서양에 가까워지는 만큼 기후변화가 더 심해졌습니다. 비가 더 심하게 오락가락했습니다. 우리나라 여름철 날씨도 변덕스럽지만 여기에 오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더군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호랑이가 장가를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무지개도 무척이나 많이 봤답니다. 평생 본 무지개보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본 무지개가 훨씬 더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 피스테라. 큰 네모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작은 네모는 피스테라를 표시한다. 구글지도 변형.





 



피스테라와 야고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입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개 그곳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스테라를 소개하는 일부 책자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스테라는 제가 반복해서 기술한대로 스페인의 땅끝이지 유럽 대륙의 땅끝은 아닙니다.


정확히 유럽 대륙의 땅끝은 호카 곶(Cabo de Roca)입니다. 호카 곶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깎아질 듯 서 있는 해안절벽이 일품인 곳이지요.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말할 때 두 가지로 분류를 해서 말합니다. 튀어나온 규모가 크면 반도가 되고, 작으면 이 됩니다. 유명한 포항의 호미곶을 연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북한 쪽에서는 장산곶이 유명하지요.







* 피스테라. 광활한 대서양이 펼쳐지는 곳. 가슴이 확 트이는 곳이다.








피스테라에 대한 환상(?)을 한 가지 더 깨볼까요. 저는 전편에 야고보 성인은 이베리아반도에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서술했습니다. 그 서술을 따라가 보면, 야고보의 시신이 담긴 배가 예루살렘에서 피스테라까지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허구일 가능성이 큽니다. 뻔한 당시의 항해 기술은 둘째 치고, 사역을 하지도 않은 곳에다 자신의 시신을 묻어 달라는 전도자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피스테라가 왜 야고보와 연결이 됐을까요? 아무래도 야고보의 존재를 더욱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스테라가 동원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인들은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끝에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도착하여 별들의 들판이라는 산티아고 콤프스텔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정리될 수 있겠지요. 이런 전개 과정 자체가 여행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로마인들이 세상의 끝을 호카 곶으로 판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럼 호카 곶과 야고보가 연결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환상이 다 깨졌다고 해도 피스테라는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곳입니다. 넘실대는 파도와 해안절벽들을 따라 가다보면 땅끝 등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모습은 일품 중에 일품입니다. 특히 이곳의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행합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것들을 불태우는 것이죠. 실제로 등대 근처 곳곳에는 순례자들이 태운 신발과 옷가지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피스테라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무언가 의식을 행하거나 다짐을 하게 만드는 장소였다는 것이죠. 마치 해남 땅 끝에 가면 무언가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요. 저도 대서양 바다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난생 처음 보는 대서양 앞에서 다짐을 한 말치고는 무척 소박한가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도 못한다고 하잖아요. 허상과도 같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일들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것이죠. 지나간 과거를 괴롭게 되새기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억지로 끌어와서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 피스테라 표지판


 




 

남북한 순례자들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면?

 

순례길은 화합의 길이었습니다. 지역감정으로 유명한 마드리드, 카탈로니아, 바스크 사람들이 서로 정답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 순례길이었습니다.


스페인 내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앙숙이었던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발트3) 청년들이 서로 의지를 하며 걷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었습니다. 도보여행을 하는데 국적이니 지역이니 하는 것들은 다 소용이 없을 테지요.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 그게 바로 순례길에 녹아 있는 정신일 겁니다. 그런 정신들이 길 위에 뿌려지고, 뿌려지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저도 짧게나마 일본인 친구들과 즐겁게 순례길을 걸었답니다. 니가타 출신이라는 처자는 저에게 한국말로 오빠라고 칭해주더군요.

 

나 아저씨인데...’

 

이 말을 표현할 방법은 없고, 기분은 좋고 하니, 저는 그들에게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춰줬습니다. 그들도 따라 추더군요. 아주 즐겁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북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순례길을 걷는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일일 것이겠지요. 함께 격려하고, 도우며 길벗을 하고... 힘들 때는 함께 아리랑도 부르고!

 

 



* 진정한 챔피언. 이 친구의 왼쪽 다리를 보라! 의족이다. 하지만 사진에도 나와 있듯이 그의 표정은 아주 밝다. 자신을 북부 빌바오 출신이라고 말한 이 친구는 자전거로 이베리아 반도를 투어하고 있다고 했다. 저런 청년들이 있기에 순례길이 아름다운 것이다. 순례길 곳곳에 뿌려진 선한 마음과 인간애가 산티아고 순례길로 더 많은 이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

- 마음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번에는 국내를 넘어 스페인으로 이야기를 확장해볼까 합니다. 스페인에는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하는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통상적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내용이 아닐 겁니다.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 올레길

 

제주 올레길은 우리나라 도보여행의 시발점입니다. 2007년 제주 올레 1코스가 개척된 이후, 우리나라 도보여행길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지금은 2km 이상이 됐는데 이 길이는 지구 반지름에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길이입니다. 이 제주 올레의 모태가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그런 면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나라의 도보여행에 많은 영향을 준 셈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영향력은 요즘도 식을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도보여행자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탐방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순례길 걷기를 일생일대의 버킷리스트로 올려놓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니 이 역사트레킹펀딩에서도 꼭 한 번은 다뤄봐야겠지요.

    

 







 

 * 산티아고 콤포스테라라 시가지. 사진 중앙 상단에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스페인 민중들 속에서 부활한 야고보

 

산티아고(Santiago)는 스페인어로 야고보를 뜻합니다. 야고보는 사도 요한의 형으로, 야고보와 요한은 둘 다 예수의 12제자였습니다. 야고보는 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해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야고보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지요. 고된 사역길 이후에 다시 돌아온 고향이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금의환향이 아닌 죽음의 그림자였습니다. 유대왕인 헤롯 아그리파 1세의 무시무시한 칼날이 그의 목을 내리쳤기 때문입니다. 아그리파는 예수가 태어날 때, 베들레헴의 신생아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던, 그 헤롯왕의 손자였습니다.


대대로 헤롯왕가들은 유대 땅에 그리스도교가 기반을 잡는 것을 싫어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야고보는 기원후 44725일에 참수를 당합니다. 12제자 중 처음으로 순교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후 야고보의 시신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배에 실려, 에스파냐 북서부 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에서 복음을 전한만큼 그 곳에 뼈를 묻겠다는 유언이 있었고, 제자들이 실행에 옮겼다는 겁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부터 그 먼, 당시는 로마지배 하에 있던 이베리아반도까지 장거리 항해를 마다하지 않고 제자들은 돛을 올렸을 겁니다.


당시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지 않았습니다. 공인은커녕 탄압에 앞장섰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야고보와 관련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 갔습니다.










*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 야고보의 존재가 민중들 속에서 부활하게 된 시기는 8세기경이었습니다. ‘별들의 들판이라고 불리는 캄푸스 스텔라(Campus Stellae)에 있는 무덤중 하나가 별의 계시를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민중 속에서 널리널리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그 계시가 실현이 된 것인지, 서기 813년경 성인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를 지배하고 있던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는 그 무덤이 발견된 곳에 성당을 짓게 합니다.


그렇게 하여 건립된 것이 산티아고 대성당이었습니다. 또 그 대성당이 위치한 곳에 도시가 들어섰는데 그 곳이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산티아고 카미노(camino: 스페인어로 ’)에 녹아 있는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우리언론들 뿐 아니라 스페인 관광청의 소개책자에도 기술되어 있습니다.

 




 

* 야고보 성인. 산티아고 대성당 외벽에 조각된 야고보.






 

야고보의 제자들은 어떻게 그 먼 뱃길을 찾아갔을까?

 

산티아고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은 필그림(Pilgrim)이라고 불립니다. 영어 풀이 그대로 순례자라는 뜻입니다. 종교다원론자(?)인 저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짧게나마 필그림이 되었고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야고보 성인을 기리며 미사에도 참석했습니다.


대성당에서 드린 미사는 필자에게 무언가 모를 강한 영감을 심어주었지요. 그 영감은 예전 논산 관촉사에서 은진미륵을 처음 보았던 때의 감흥과 비슷했답니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또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선한 감흥을 얻었지만 여행을 하기 전부터 품었던 근본적인 물음은 계속 풀리지 않았답니다. 그림자처럼 그 물음은 계속 저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진짜 산티아고 대성당에 사도 야고보가 묻혀 있는 게 맞는 거야? 야고보의 제자들은 스페인 땅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거기까지 간 거지. 내비게이션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래 그들이 갔다고 치자. 그런데 굳이 지브롤터 해협을 돌아서 스페인 서부 지역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스페인 동부 해안 쪽이 훨씬 더 가깝잖아.’

    








* 한국 컵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한국 사람들이 많기에 저런 광고문구가 나왔으리라...










산티아고에 산티아고(야고보)가 없다?


이 물음대로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그 수많은 순례자들은 사기를 당한 셈이 됩니다. 있지도 않은 야고보 무덤을 보기 위해 수 백 킬로에 달하는 길을 걷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자신의 버킷리스트로 등재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미래에 행할 바보들의 행진을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는 멍청이들인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의문은 더욱더 짙어져갔습니다. 그러다 새 유럽의 역사라는 책, 159쪽에 기술된 부분을 읽게 되었지요.

 

사도 성 요한의 형제이자 에스파냐의 수호성인인 야곱이 에스파냐에서 복음을 전도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프레데리크 들루슈 편, 윤승준 역, 새 유럽의 역사(까치)

 

이 서술에 의하면 산티아고에 산티아고(야고보)’가 없을 확률이 농후해집니다. 이외에도 서양의 중세사를 다룬 유명한 저서, 서양중세사에서도 야고보와 스페인에 대한 관계를 그저 전설수준으로 서술하였더군요.


애초 야고보가 에스파냐에 복음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없었다면 그의 유언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가보지도 않은 땅에 자신의 주검을 묻어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사기를 당한 것일까요? 존재하지도 않은 야고보의 행적을 쫓아,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바보들인가요?

 

 




* 이베리아 반도 지도. 야고보의 제자들이 이베리아에 가려고 했다면 바로셀로나 같은 동부 지역에 닻을 내렸을 것이다. 뭐하러 지르롤터를 거쳐 대서양까지 나갔다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먼 길을 돌아갔겠는가? 더군다나 그들이 탄 배는 나룻배 수준이었을텐데. 한편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포함하는 서북부에 위치해 있었다.  






 

국토회복운동에 구심점이 되어 준 야고보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시기는 9세기 초반 경이었습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은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611,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이래, 무슬림들은 포교를 위한 전쟁을 수행해나갔습니다.


북아프리카 일대를 점령한 그들은 711,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반도까지 물밀 듯 쳐들어갔습니다. 당시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서고트왕국은 이들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713년에 멸망합니다. 이후 서고트 왕국의 옛 귀족들은 이베리아반도 북서쪽 산악지대로 도주를 했다가, 718년에 아스투리아스(Asturias) 왕국을 창건하게 됩니다.


스페인은 유럽 주요국들 중 유일하게 십자군전쟁에 참여를 하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십자군 전쟁(1096년 발발)이 일어났을 때도 국토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 세력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자국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입니다.


이런 국토회복운동을 레콘키스타(reconquista)라고 부릅니다. 국토회복운동은 이슬람세력이 침공했던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800년이나 지속됐는데 그런 국토회복운동의 중심에 야고보가 서게 됩니다.


국토회복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큰 구심점이 필요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그 역할을 야고보에게 맡긴(?) 것입니다. 12제자 중 처음으로 순교를 했던 야고보였기에 그런 중책이 맡겨졌을 겁니다.


그와 관련하여 전설이 하나있습니다. 844년에 있은 클라비호 전투에서 백마를 탄 야고보가 나타나 이슬람 무어인들을 무찔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후 야고보는 무어인을 죽이는 산티아고(Santiago Matamoros)’라고 불리기도 하였답니다.


이렇듯 야고보는 스페인 사람들을 정신적, 종교적으로 하나로 묶어 이슬람 세력에 대한 항전 의지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야고보는 큰 구심점이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 산티아고 개: 산티아고 도심 입구 쪽에 있는 대저택에서 기르던 개. 무척 귀여워서 한 컷!  





 

의심도 순례자들의 덕목일지 모른다

 

산티아고에 산티아고(야고보)가 있냐, 없냐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내려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한편 고생고생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저와 같은 의문을 한 번쯤 다 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그 당시 항해기술로 예루살렘 땅에서 스페인까지 원거리 항해가 가능하겠어!’

 

저는 그런 의심(?)들도 순례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하나로 판단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 믿어라, 믿어라하면 맹목적인 신앙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의심하지 말라라고 적혀 있지만, 그 의심이 합리적이라면 계속해서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라는 물음 없이 교조적으로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라 세뇌일 뿐이죠. 그 세뇌가 통한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가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다고 치자, 그럼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무슨 의미로 걷는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마음으로 걸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걷는다면 산티아고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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