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의미와 유래는?    

 

           
숲에서 만난 세상 / 감성드林 

2014/01/06 15:00

 

                                                                            

 

 

지난해 6월에는 의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1925년 일제에 의해 끊어진 '백두대간 육실령 생태축'이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복원되었거든요.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산림 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이 복원사업으로 끊어진 생태축이 이어지면서 야생동물들의 생명의 길도 함께 열렸답니다. ^^

백두대간은 우리나라 국토의 등줄기로서 남과 북을 잇는 주축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핵심 축을 이루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백두대간보호지역을 지정하여 백두대간 주변 자연환경 및 생태계를 보호하고 이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과 훼손을 막고 있어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인 지리인식체계인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뻗어 있는데요, 생태적인 측면을 넘어 인문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총길이만 약 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따른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구분되어 있죠. 분수계는 비가 내렸을 때 흘러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일 경우 그 경계를 표시하는 선을 말하는데요, 인접한 지역의 하천 경계라 할 수 있어요. ^^ 

 



 

백두대간은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개념으로,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고려한 인식이 나타난 지리관이에요. 백두대간의 개념은 오래 전부터 전해져 왔지만, 조선후기 실학자 신경준의 ‘산경표’를 통해 그 개념이 체계화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백두대간 지형도] (이미지 : 산림청)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맥은 1개 대간과 1개 정간, 그리고 13개 정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동·서로 흘러가는 강을 구분 짓는 큰 산줄기를 대간과 정간, 거기서 갈라져 나와 다른 강들을 구분 짓는 산맥을 정맥이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이러한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어요. ^^

■ 1대간 

백두대간(백두산 - 두류산 - 금강산 - 설악산 - 오대산 - 태백산 - 속리산 - 덕유산 - 지리산)

■ 1정간 
장백정간(원산 - 서수라곶산)

■ 13정맥
청북정맥(낭림산 - 미곶산)
청남정맥(낭림산 - 광량진)
해서정맥(개연산 - 장산곶)
임진북예성남정맥(개연산 - 풍덕차)
한북정맥(분수령 - 장명산)
한남정맥(칠현산 - 문수산)
한남금북정맥(속리산 - 칠현산)
금북정맥(칠현산 - 안흥진)
금남정맥(마이산 - 조룡산)
금남호남정맥(장안치 - 마이산)
호남정맥(마이산 - 백운산)
낙동정맥(태백산 - 몰운대)
낙남정맥(지리산 - 분산)
산이름으로 된 것(2개) 백두대간,장백정간
지방이름으로 된 것(2개) 호남정맥, 해서정맥
강이름으로 된 것(11개)

■ 10대강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요? 개념을 체계화 한 건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신경준이지만, 그 시작은 우리민족 고유의 성산인 백두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백두산은 고대단군신화에서부터 언제나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고, 민족의 정기가 서린 산으로 사람들의 숭배대상이 되어 왔죠. 

 



백두대간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문헌은 10세기 초 고려의 승려였던 도선이 지은 ‘옥룡기’인데요,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끝났으며 물의 근원, 나무줄기의 땅이다"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어요. 

또한 1751년 만들어진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대간은 끊어지지 않고 옆으로 뻗었으며 남쪽으로 수천 리를 내려가 경상도 태백에 까지 통하여 하나의 맥령을 이루었다"는 문장에서 ‘대간’이라는 단어가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죠. 

 



이밖에도 백두대간과 백두정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으로, 백두산을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이자 대간의 시작 산으로 보았어요.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산맥의 전체적인 모습도 제시했죠. 그 다음에 실학자 신경준이 ‘산경표’를 통해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을 연결하여 알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답니다. 


백두대간은 우리나라의 핵심 산줄기로 민족정기의 상징이자 다양한 동식물군이 서식하는 자연유산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생태 문화적으로 잘 보존되고 보호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백두대간에 대해 조금씩만 더 관심을 기울여 보도록 해요. ^^ 

 

 

 

 

 

 

 

 

 

 

 

 

 

 

 

심야 지리산 자전거 질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56일간의 백두대간자전거여행-마지막] 민족의 영산 지리산

13.03.21 18:21l최종 업데이트 13.03.21 18:21l

 

 

 

▲ 성삼재 성삼재에서 바라본 전남 구례. 앞에 보이는 도로가 지리산 관통도로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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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는 타이밍이다. 여행기의 작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있다고 하더라도 발표 시기를 놓친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여행기는 묵혀 놓으면 놓을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골동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 기사는 시급을 다퉈 발표하는 성격의 뉴스가 아니다. 사진도 잘 선별해야 하고, 이동 중에 기록한 메모들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사를 송고할 때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여행에 대한 여행기이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 지점에 있다. 시간의 소요가 느긋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느긋함을 부리다가 기사 작성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그러다 아예 전체 기사분에서 누락되는 원고가 생기게 된다. 내가 연재 아닌 연재를 하고 있는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여행기에도 그렇게 누락분이 발생했다. 삼척·동해·예천·거창·김천 등등 시간에 쫓기다 보니 좀 더 오래 머물고, 좀 더 많은 에피소드를 경험한 지역을 취사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뜀뛰기를 하듯 여행기를 작성했지만 한 번 꼬인 '스텝'은 잘 풀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다녀왔던 이야기가 엄동설한에 발표됐던 것이다. 계절감이 전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 도계삼거리 달궁삼거리를 도계삼거리라고도 부른다. 저 표지판처럼 그 곳은 분명 아름다운 곳이지만... 필자에게는 너무나 험난한 곳이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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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주의보에 보는 반소매 사진

 

 

특정 주제를 놓고 공모를 하는 여행기 공모전이나 옛 추억을 회고하는 방식의 포토에세이라면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처럼 특정 시기에 행하고 동선이 명확한 여행기는 계절감이라는 족쇄에 묶일 수밖에 없다. 2012년 12월 31일에 발행된 <태백산 주목, 혹시 당신이 산신령?>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 여행기를 본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글도 사진도 꽤 쓸 만한데, 반소매 입은 사진은 좀 추워 보인다. 지금 한파주의보라는데…."

아무리 좋은 글을 쓰고, 아무리 멋진 사진을 게재하더라도 한파주의보를 체감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반소매 사진은 '아니올시다'를 유발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필자도 이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뜀뛰기를 하듯 여행지를 취사선택을 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이번 편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마지막 편이기 때문이다.

 

 



# 2011년 여름에 만난 태풍의 기억

여행 43일 차 2012년 7월 26일

나는 경남 함양군을 출발했다. 이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리산!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민족의 영산.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 관문인 지리산. 그렇게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나는 이미 2011년에 관통도로를 통해 지리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중이었는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다. '죽음의 도로'라고 불리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힘들게 올라갔는데 나를 반긴 것은 '덴무'라는 태풍이었다.

무척 억울했다. 여러 번에 걸친 위기를 넘기고 성삼재에 도착했더니, 태풍이 필자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구절양장 같은 꾸불꾸불한 지리산 관통도로를 40시간에 걸쳐 이동을 했는데 말이다.

겨우 태풍이나 만나려고 그 고생을 하며 성삼재에 올랐던 것인가. 힘 좋은 4륜 구동 자동차로도 오르기 힘들다는 지리산 관통도로를 자전거로, 그것도 40kg나 되는 짐을 싣고 올라섰건만. 이름도 이상한 태풍이나 만났으니! 더군다나 당시 내 자전거의 브레이크는 둘 다 작동 불능 상태였다. 지리산 성삼재에서 태풍을 만났지, 자전거 브레이크는 망가졌지, 체력은 다 빠졌지.

 

 

 


 
▲ 지리산 관통도로 꼬불꼬불 구절양장 같은 지리산 관통도로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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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결점을 다시 지리산 성삼재로 잡은 것은 2011년의 '리벤지 매치'의 성격이 강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성삼재에 올라서 등산객들에게 제대로 환대와 격려도 좀 받고, 노고단에도 오를 생각이었다.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를 끌고 가는 내내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푸하핫, 태풍도 안 오고 날씨 참 좋네. 이번에는 성삼재에 올라가서 목에 힘 좀 주고 다녀도 되겠군. 백두대간자전거 여행의 마지막이 지리산이라고 등산객들한테 자랑하고 다녀야지!'

나는 시간 계산을 잘못해, 야간주행을 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했지만 당시 마음은 뭔지 모를 뿌듯함이 넘쳤다. 불빛 하나 없는 산 한복판에서 오직 달빛에 의존해 주행하는 것도 '판타스틱'했고, 그런 '판타스틱'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 지리산이라는 점도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당시 여행일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해서 그런지 몸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그냥 눈이 감길 정도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왜? 이곳은 지리산이니까!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니까!"(7월 26일 오후 11시 뱀사골 야영장에서)

 

 

 

 


# 땀 뻘뻘 흘리며 페달 밟는데, 옆에서는 맥주가...

다음날. 지리산 산신령께서 단잠을 내려 주셔서 그랬는지, 나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까지 잠이 들었다. 여행 막바지라고 여유를 좀 부렸던 것이다. 어차피 내가 그곳 지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시간당 이동 거리도 가늠할 수 있었기에 그런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 전년도의 경험도 한몫했다.

한여름의 지리산은 생기가 흘러넘쳤다. 덩달아 탐방객들이나 캠핑족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흘러넘쳤다. 달궁 캠핑장을 지날 때였다. 한무리의 가족들이 둘러앉아 수박을 쪼개 먹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도 한 잔 걸치면서... 불타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던 나로서는 그런 광경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천하절경 속에서 음식과 술잔이 도니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지만 술 한 잔 받아먹지 못하는 내 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느긋한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서편으로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리산 지리를 안다고 하지만, 야간에 지리산 관통도로를 이동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성삼재에 오르는 것이 급선무였다.


 


▲ 노고단에서의 아침 첩첩 산 중을 배경으로 한 컷! 일출 즈음이라 그런지 사진이 잘 안 찍혔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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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에서의 결심 '자랑 좀 해야겠다'

 

 

7월 27일 오후 7시


드디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진입했다. 유명한 달궁 삼거리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관통도로의 경사도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라졌다.

보통 산행을 할 때 자신의 에너지 중 30%는 비축해놔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비상시라도 체력이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산행 가이드'는 내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젖 먹던 힘까지 내뿜어야 할 시기였던 것이다.

그냥 등산 배낭을 메고 그 도로를 타고 오르는 것도 힘든데 40kg 정도 되는 짐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그곳을 올라가야 하다니…. 어느 구간은 너무 경사도가 심해서 자전거가 뒤로 밀리기까지 했다.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 내 에너지는 0%에 가까웠을 것이다. 에너지 30% 비축론은 지리산 관통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성삼재로 향했고, 지리산은 어둠으로 덮였다. 이제 슬슬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마지막도 보이기 시작했다.

'푸하핫, 드디어 내 여행도 끝이 보이는구나. 성삼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분에게 인사하고 여행 자랑 좀 해야지!'

내 발걸음과 블루야크의 바퀴질도 더 분주해졌다. 빨리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몸은 힘들었으나 노고단이 눈앞에 있으니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성삼재 드디어 성삼재에 도달했다. 어두운 시각에 도착했던 터라 사진도 잘 안 찍혔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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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오후 8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드디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종착지에 도달한 것이다. 난 해냈다. 결국 여행의 끝을 본 것이다. 어둠 속 성삼재는 고요했다. 밤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필자는 성삼재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성삼재 이곳에서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마쳤습니다. 여행을 마치자마자 처음으로 뵙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차관리소에서 급히 나오셨다. 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자랑은 고사하고 꾸지람부터 듣다니

"안녕하세요."
"아니 이 밤에 여기는 뭐하러 올라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고는, 서둘러 쇠사슬로 자동차 진입로를 걸어 잠그는 것이었다.

"뭐해요. 당장 가요."
"……."

역시 또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난 당혹스러웠다. 힘든 여행을 종결짓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소리가 퉁명스러운 꾸짖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겨우 이런 괄시나 당하려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리산에 왔단 말인가? 내 여행이 이렇게 멸시를 당할 정도로 하찮았단 말인가?'

2011년에 태풍을 맞았던 것보다 훨씬 더 억울했다. 그나마 태풍을 맞았을 때는 관리소 직원이 직접 커피를 타주며 필자의 '무사귀환'을 염려해줬다. 그런 고마운 기억이 있었기에 일부러 국립공원 직원분을 찾아 먼저 인사를 드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작은 소망은 퉁명스러운 꾸짖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래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그렇게 혼자 오버 하냐. 뭐 대단한 여행이라고…. 대충 정리하고 빨리 서울 갈 생각이나 해야겠다.'

심신이 다 지쳤다. 그냥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심야고속버스라도 있으면 잡아타고 곧장 서울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지리산 관통도로를 타고 내려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제동이 좋은 자동차도 골짜기로 굴러떨어진다는 '죽음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간에 그곳을 내려간다면?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가야 했다. 그 직원이 퇴거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멸시를 당했더니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가긴 가야 하는데, 내려갔다가는 바로 골로 갈 텐데….'



▲ 노고단 탐방소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저렇게 노고 할매가 반겨주었다. 사진에서 보여지듯 내 자전거는 해발 1,380m까지 올라갔다.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참 멀리도 간 셈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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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가 딱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내려갈 수 없으면 올라가면 되지 않던가? 그냥 노고단으로 가면 되지 않던가?


현재 노고단-성삼재 구간은 임도로 돼 있다. 그래서 1톤 트럭도 통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전거는 통행할 수 없다. 게다가 일몰 후 야간에는 산행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개의 규칙을 어기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한밤중 지리산은 고요했다. 적막감이 들 정도였다. 나는 랜턴을 끄고 달빛에 의존해 노고단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난 시간을 회고해봤다. 한밤중 지리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끌고 가니 노고단에서 빛나는 불빛을 만날 수 있었다. 노고단 탐방소에 갔더니 어떤 젊은 국립공원 직원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야간 산행에, 자전거까지…. 이러시면 안 돼죠. 과태료 딱지를 맞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했다. 그 직원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부터는 규칙을 꼭 지켜주십시오. 어쨌든 여행이 완료된 건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해 나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무사히 종료됐다. 성삼재에서 빰 맞고 노고단에서 화풀이 한 경우이지만, 어쨌든 지리산에서 무사히 여행을 종료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 육십령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있는 육십령 고개. 육십령도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개이다. 지리산까지의 여행 일정을 마치고 지선 개념으로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산까지 달려보았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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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동안 재미는 없고, 분량만 긴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덧글. 내 자전거 블루야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인 노고단 탐방소(1380m)에 오른 여행 자전거로 기록될 것이다. 만약 그 주차관리소 직원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블루야크의 고지대 기록은 성삼재(1090m)에서 멈췄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만항재(1330m)다. 한마디로 자전거도 만항재까지밖에 못 올라간다.

 

 

 


 

 

*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해발고도가 높은 고제면에는 이렇듯 탐스러운 홍로가  재배된다.

 

 

 

 

 

* 홍로: 빨갛게 잘 영근 홍로가 탐스러워 보인다. 색깔만큼이나 맛도 좋다.

 

 

 

 

 

내게 경상남도 거창은 무척 흥미로운 지역으로 각인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김천과 맞닿아 있어 조금만 이동을 하면 도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서울로 복귀할 때, 나는 시골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무려 4개나 되는 도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였다.

 

경남 거창 -> 전북 무주 -> 경북 김천 -> (또다시) 전북 무주 -> 충북 영동 

 

실제로 서편으로는 덕유산, 동편으로는 합천 가야산, 남쪽으로는 함양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 경남 거창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듯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거창이지만 읍내 만큼은 쑥 내려앉은 지세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거창 외곽은 해발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거창의 다운타운(?)은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창에 난 베이스캠프(?)가 하나 있다. 그곳이 어디냐? 바로 고제면에 있는 거창귀농학교이다. 거창귀농학교는 1996년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하여 귀농학교로 탈바꿈을 시켰는데 현장 위주의 노작 활동이 강점인 곳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 면소재지에서도 약 5Km 정도 떨어져 있을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만큼 실제 농업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거창귀농학교: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 시설을 갖추었다. 나에게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다.

 

 

 

* 황토방: 거창귀농학교 운동장 한 켠에 황토방이 있다. 저 곳은 왠만한 고급 폔션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시설과 전망을 자랑한다.

 

 

 

여기서 잠깐! 베이스 캠프를 언급하다 갑자기 뚱딴지 같이 귀농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질책을 가하실 분도 있을 듯싶다. 결론적으로 거창귀농학교가 내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거창 귀농학교는 백두대간인 삼봉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해 있다. 거창귀농학교는 삼봉산 예술학교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 지역명에서 네이밍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또 거창귀농학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대덕산이 있다. 이렇게 아웃도어 접근성이 강한 곳인데 어떻게 내가 그곳을 베이스캠프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베이스캠프 선언은 개인적으로 거창귀농학교 교장선생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골인심이 좋다지만 뚱딴지 같이 불쑥 '베이스캠프 선언'을 한다면, 그 지역분들에게 볼기짝을 훅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런 거창귀농학교를 난 지난 9월 중순경에 방문을 했다. 왜? 사과작업을 하려고! 아웃도어는 잠시 접어두고 말야.

귀농학교의 정확한 위치는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이다. 고제면은 읍내에서 북서방면으로 25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무주군의 무풍이 어떤 곳인가? 덕유산의 무주 구천동을 끼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다. 덕유산의 기운이 넘쳐 흐르는 백두대간에 고제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제면도 해발이 높은 곳이다.

 

그렇게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기에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건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해 거창 읍내는 해발고도도 낮고 분지 형태를 띠고 있는 터라 고제면보다는 더 기온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볼 일이 있어 잠시 읍내에 다녀온 후 다시 고제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온도 변화를 피부적으로 체감했을 정도다. 그런 지형적인 특성 때문인지 고제면 지역은 고랭지 농업이 잘 발달되었다. 과수원과 밭이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고랭지 사과 재배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큰 일교차가 사과의 당도를 현격히 높여주는 듯싶었다. 그런 고제 사과 중에서도 홍로 품종이 농가 소득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홍옥과는 다른 품종인 홍로는 추석 차례상에 올려지는 사과로 9월 초순경에 수확을 한다. 그렇다. 홍로는 '홍동백서'할 때 쓰이는 그 사과다. 한가위 차례상은 햅쌀과 햇과일 등 그해 가을걷이로 얻어진 재료들을 올려야 하기에, 추석 직전에 출하되는 홍로는 자연스럽게 차례상에 올려지는 과일 품목 1순위에 속하는 것이다.

 

"사과를 아기 다루듯이 해주세요!"

 

 

 

 

 

 

 

*삼봉산과 사과농장: 앞쪽에 보이는 산이 삼봉산이다. 사진에 등장하신 분들은

당시 거창귀농학교에서 본격적인 귀농교육을 받으시는 귀농희망자 분들이었다.

 

 

 

 

* 강물이 범람한 거창 읍내: 16호 태풍 산바는 15호 태풍 볼라벤과 달리 한반도에 폭우를 뿌리고 갔다. 

산바가 지나간 후 거창 읍내를 흐르는 위천이 수위가 높아져 범람하고 있다.

 

 

 

*수위가 높아진 거창군의 위천

 

 

 

* 홍콩 아가씨들:  '우프'를 통해 전세계에서 한국의 농촌문화를 탐방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거창귀농학교까지 찾아 왔다.  우프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가에 집적 가서 일손을 돕는 국제 조직을 말한다. 우프지원자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에 농장주는 식사와 숙소를 제공한다.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임금을 받지 않는 관계로 워킹홀리데이와는 차별화가 되는 것이다. 거창귀농학교도 우프에 조직되어 있어 이렇게 홍콩아가씨들도 멀리 거창까지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도깨비: 거창귀농학교 복도에 걸린 도깨비들이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친근한 감정까지 들 정도다.

 힘든 사과작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저 녀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거창 귀농학교

 

 

 

 

 

 

 

 

* 울릉도: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곳곳이 절경이라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그곳이 최고의 출사지가 되는 곳이다. 사진 왼쪽 하단에 있는 흰색 구조물은 작은 터널이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 강원도 화천의 평화의 댐과 평화의 종: 평화의 댐 부근은 DMZ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이게도 천혜의 자연 경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

 

1. 여행기간: 2012년 6월 14일~ 8월 8일

 

2. 주행거리: 약 1200km

 

3. 이동경로:  서울 -> 강원도 춘천 -> 화천 -> 양구 -> 인제 -> 설악산(한계령) -> 양양 -> 강릉 -> 경상북도 울릉군 -> 강릉 -> 동해 -> 삼척 -> 태백 -> 경상북도 봉화 -> 안동 -> 예천 -> 구미 -> 김천 -> 경상남도 거창 -> 함양 -> 지리산(성삼재, 노고단) ->전라남도 구례 -> 전라북도 남원 -> 장수 -> 거창

* 원래는 지리산에서 여행을 종료할 예정이었으나 거창에서 지인분이 축제를 도와달라는 말씀에 다시 거창으로 발길을 돌렸음. 거창에서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로 복귀함.

 

 

 

 

 

 

 


이름부터 거창하다.

그냥 자전거여행이면 자전거여행이지, 뭐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고?

 


요즘은 백두대간이라는 명칭이 맥주 광고에도 차용될 정도로 대중화 됐다지만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거나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지 못했다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는

명칭은 한마디로 '낚시용' 제목이 아닌가? ㅋㅋㅋ

 


그렇다.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좀 어패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난 이번 여행을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고 네이밍을 했고, 다른분들에게도 그렇게 설명을 했다. 실제로 난 백두대간을 너댓번 정도 오르락 내리락했었다.


한계령을 넘어 울릉도에 입도를 했고, 태백산 야영장에 자전거를 박아 놓고 천제단까지 등산을 했다. 남덕유산 아래에 위치한 육십령 고개를 통해 전라북도 장수에서 경상남도 거창으로 이동을 했다.

 


또한 각종 장비로 중무장한 철TB를 끌고 지리산 성삼재와 노고단까지 다녀왔다.

이 정도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고 네이밍을 붙인다고 해도 욕은 덜 먹지 않을까?

 

 

 

 

* 울릉도: 일명 '철TB'라 불리는 '막강한 자전거'를 끌고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다녔다.

한편 울릉도는 자전거를 타기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해안도로가 놓여 있기는 했지만 가파르게 형성된 구간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이 여행한 코스와 산악인들이 언급하는 백두대간의 코스는 다르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전거를 끌고 대청봉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경북 지역에서 봉화와 안동지역을 여행했는데 이곳은 차라리 낙동정맥과 더 가까웠다.


어쨌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백두대간과 가장 근접한 지역을 여행을 했고, 지금은 무사히 서울로 돌아와 이렇게 후기를 작성하고 있다. 산악지역을 다니느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행 일수가 소요됐고, 체력적인 부담도 무척이나 컸었다. 더군다나 올 여름은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지 않았던가!

 

 

 

* 경북 봉화의 청량산: 청량산의 하늘다리다. 역시 산 정상부에는 바람이 많이 불더라. 청량산의 초입에서는 바람 한 점 없었는데, 왜 하늘다리에서는 그리도 강풍이 불어대던지! 바람에 의해 미묘하게 흔들리는 하늘다리를 걸어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지난 56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고, 느꼈다. 더불어 아쉬움도 스쳐갔다. 이번 여행이 국내에서 행하는 장거리 자전거여행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만 거의 1200km 정도를 주행했는데 지난 5년간 누적된 거리만 따지고 보면 한 5400km 정도가 된다. 국내에서 5000km 이상 뛰었으면 많이 뛴 것 아닌가?

 


이제는 발길을 돌려 해외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오늘부터 하나하나 지난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들 생각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있었고, 살벌한 이야기도 있었다. 또 폭염에 지쳐 황천길로 갈뻔한 이야기도 있었으니 <나무들의 행복세상> 블로그를 방문해서, 주인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동영상도 여러편 찍었는데 그것들을 잘 편집해서 공개할 계획도 있다. 물론 내가 아직 동영상 찰영은 미숙한 점이 있으니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

 

 

 

* 청량산에 위치한 청량사: 청량사는 내가 가본 사찰 중에 가장 시원한 배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저기에 계신 부처님은 참 행복한 부처님이 아닐까 한다. 

 

 

 

 


아참! 작년에는 36일간 1300km를 주행했다고 하는데 왜 올해는 56일 동안 여행했으면서 겨우 1200km 밖에 이동하지 못했냐고 의문을 던지실 분이 있을 것 같다. 체력적인 한계 때문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실 너무 힘들었다.


자전거로 서해안을 타고 가는 것과 강원도 산악지형을 가는 것은 피지컬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또한 이번 여행부터는 체류형 여행으로 여행 형태를 바꾸었다. 따지고보니 강원도 화천에서 5일, 울릉도에서 7일, 강원도 태백에서 5일 등등... 지난 여행과는 달리 한 지역에서 며칠을 소요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국토종단자전거여행을 하라고 하면, 나의 철TB로도 한 4~5일이면 가능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재미인가? 그런 의문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기왕 시간내서 가는 여행이라면 주행도로에서 벗어나 인근의 명승지나 역사유적들도 둘러보고, 주위에 어르신들도 만나서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안들도 들어본다면 더 알찬 여행이 되지 않겠나?


그렇게 하는 것이 여행의 퀄리티를 더 높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 나는 주행거리는 줄이고 체류 일수는 늘렸던 것이다.

 


앞으로 한편 한편 써내려갈 나무들의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기대하시라! 지갑이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해 내 나름대로의 TIP도 알려드릴테니 많이들 오셔서 클릭 좀 이빵이 해주시라! ㅋ

 

 

 

 

 

 

 

 

* 경북 김천: 경북 김천의 한 폐교를 개조한 문화공간에서 재밌는 사진을 찍어봤다. 저 인어공주(?)가 머리에 쓴 헬맷은 내 것이다.

 

 

 

 

 

* 지리산 성삼재: 저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노고단의 관문인 성삼재에 다다랐다. 자전거 앞,뒤로 짐이 가득 실려 있던 터라 팔과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오르고 나니 지리산이 나를 반겨주었다.

 

 

 

 

 

* 지리산 노고단 부근: 그렇게 힘든 여정이 있었기에 지리산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이 아닐까? 동이 트고 있을 때라 좀 어둡기는 하지만 지리산의 영험함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 충남 부여: 2009년 1차 국토종단 자전거여행 중에 한 컷. 자전거는 한편으로는 빨래 다이가 된다.

 

 

다시 자전거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난 올 여름 자전거로 백두대간을 누빌 생각이다.

앞뒤로 짐을 잔뜩 싣고 낑낑대며 백두대간을 오를 생각이다. 남들은 그 중노동(?)을 왜 사서 하냐고

하는데, 난 그 일이 정말 재밌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 정상까지 올라간 후 시원하게 들이키는  물 한 잔의

감흥이란! 그 기분을 아시는 분이라면, 분명 내 여행을 격려해 주실 것이다.

 

구체적으로 여행 루트를 나열하면 이렇다.

 

서울 신도림 -> 강원도 춘천까지 ITX로 이동 -> 강원도 화천 -> 횡성 -> 춘천-> 원주-> 영월 ->정선 -> 동해

-> 울릉도 -> 묵호 -> 경북 안동 -> 이후 백두대간을 타고 남행

 

거의 이동거리만 1,000Km가 넘을 것 같다. 또한 여행 일수도 30일 정도를 잡고 있다.

중간에 폭우가 쏟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하고 여행 일수를 늘려 잡은 것이다.

 

힘들고 외로운 길이지만 가야 한다. 돈이 없어 서러운 길이지만 가야 한다.

왜? 난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왜 난 백두대간을 동경하는 사람이니까!

백두대간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뭐 좋은 일 생기겠쥐!

 

아참, 여행의 시작점을 강원도 화천으로 잡은 것은 화천에서 <세계평화안보 축제>가

있어서이다. 가서 소설가 이외수씨도 만나고 좋은 대회에도 참여하고 할 생각이다.  

 

 

* 충남 천안: 2009년 1차 국토종단 자전거여행 때 충남 천안 외곽에서 한 컷 찍었음. 단독 여행이고 해서 혼자 밥 해묵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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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위해 구매한 물품들임.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이렇게 따로 물품을 구매해야 한다.

신형 디카추가: 261,000원

텐트 구매: 75,000원

GPS: 67,000원

타이어튜브: 20,000원

타이어교체: 25,000원

안장 패드: 12,000원

충전기: 10,000원

의약품.기타: 20,000원

식료품: 30,000원

 

 

 

 

 

 

 

 

 

 

 

 

 

 

 

 

 

 

 

 

 

 

 

* 지리산 정렴치: 태풍 무위파의 영향으로 당시 지리산은 폭우와 함께 강한 돌풍이 불었음. 워낙 강한 바람이 부니 자전거가 넘어갈 정도였음.

 

 

 

 

여행기간 총 35일. 이동거리 약 1300km.

서울에서 해남 땅끝을 찍고 전남 진도군으로 방향을 틀어 그 곳에서 마친 여행.

 

서울에서 계속 남진을 하다 일부러 찾은 백두대간... 그 백두대간에 우뚝하게

솟아 있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나는 왜 한 짐 가득한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올랐는가?

애초 계획했던 순수 도보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꺼리낌을 타파하려고?

도보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차피 고바위 길이면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하니... 자연스럽게 도보여행 형식이 되겠지.

그래서 해발고도가 높은 전북 진안, 임실, 남원으로 코스를 잡았잖아.

 

또한 정말 그런... 내 안의 존재하는 약간의 건방을 지리산에서 표출하려고?

그간 아웃도어 좀 해봤다는 자신감을 지리산에서 떨쳐보려고? 

 

그러다 결국 지리산에서 태풍을 만났지. 건방 떨다 제대로 당한 셈이지.

역시 지리산은 지리산이었어. 역시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었지.

 

그런 만큼 지리산은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어. 소박하지만 큰 가르침이었지.

 

 

건방떨지 말고 굳은 다짐에 실행을 더하라!

 

지리산에서 얻은 가르침과 다짐을 고이 간직해서 하루하루 잘 살자고.

그게 바로 정답 아니겠어!!!

 

 

 

 

* 지리산 성삼재: 저 자전거를 끌고 성삼재를 올랐다. 오직 내 팔과 내 다리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랬으니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무동력으로 지리산 관통도로를, 그것도 약 40kg 정도 되는 짐을 싣은 철TB를 끌고 올라갔으니 말이다. 내가 성삼재에 도착하니 지리산은 전면적으로 입산통제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성삼재 코 앞에 있는 노고단도 오르지 못했다. 하긴 그 폭풍우가 부는데 지리산에 입산이 가능하겠는가? 내가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성삼재까지 갔더니 국립공원 직원들도 참 이상하게 보더라. 그 폭풍우 덕택(?)에 내 사진기도 망가졌다. 그래서 지리산 이후로는 전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장거리 여행시에는 무겁더라도 카메라를 두 대 이상 가지고 가는게 현명한 것 같다.

메인과 서브..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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