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내륙자전거여행 5편: 강원도 영월의 여름과 겨울

 

 

14.01.07 14:06  최종 업데이트 14.01.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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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지형 영월군 서면 선암마을 부근의 한반도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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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강 기암괴석들이 열을 지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얼핏보면 물 속에 괴물이나 악어떼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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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6일째: 2013년 8월 20일


겨울 다르고, 여름 다른 우리나라! 기후 온난화로 뚜렷한 4계절이라는 말이 퇴색되긴 했지만 그래도 봄·여름·가을·겨울이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나라! 그래서 누구는 이런 말을 한다. 방문한 여행지를 제대로 알려면 4계절을 다 맛(?)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일상에 쫓기는 생활인들이라면, 제대로 마음 놓고 여행하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지역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곳이 계절마다 '패션너블'한 옷을 갈아입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철마다 달라진 옷 색깔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분주히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그런 '패션쇼'를 경탄의 눈으로 감상하며 여행자들은 이런 말을 내뱉을 지도 모른다.

"계절 바뀌고 나서 또 와야지."

 

 


# 철이 바뀔 때마다 오고 싶은 영월

강원도 영월은 필자에게 그런 곳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고 싶은 곳이 바로 영월인 것이다. 봄에는 꽃들이 만발해서 좋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서 좋고, 가을에는 단풍여행 해서 좋고, 겨울에는 얼음놀이 해서 좋은 곳이다.

이전까지 영월에서는 주로 트레킹을 했었다. 영월은 유명한 동강 뿐아니라 서강과 주천강 등도 흐르고 있는데 이런 강들은 하나 같이 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필자는 이런 곳에서 강변트레킹을 했었다. 꾸불꾸불한 강변길을 걷다보면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꼭 '철 바뀔 때마다' 다시 올 것을 다짐했었다. 그래서 중부내륙 자전거여행에서도 일부러 영월을 코스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트레킹을 했던 곳을 자전거여행으로 다시 찾았을 때의 그 느낌이란 참으로 묘했다.  감정이 오묘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다시 왔군. 다시 왔어. 이번에는 혼자 오지 않고 자전거랑 같이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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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강 강물에 누군가가 돌로 금을 그은 것 같다. 멀리서보면 괴물의 등지느러미나 악어떼처럼 보이는데 자세히보니 차별침식을 받은 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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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강이 흐르는 주천면에서 1박을 한 후, 물길을 따라 한반도 지형이 있는 선암마을 부근에 도착했다. 주천강은 태기산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한반도면에서 평창강과 합수되어 서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다시 서강은 영월읍내에서 동강과 합수되어 남한강을 이루어 충북 단양으로 물길을 잡는다.

한편 주천강은 기이한 풍광을 품고 있었다. 물 속에 잠겨 있는 암석들이 일렬로 늘어진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등지느러미 같이 생긴 것들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강물 속에 엄청난 괴물(?)들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네스호에 괴수가 살 듯... 혹시 주천강에도?

 

 



#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어느덧 필자는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도달하게 됐다. 청령포 선착장 인근에다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24시간 개방되는 화장실도 있고 텐트를 칠 공간도 넉넉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청령포 베이스캠프에서 삼 일을 머물면서 본격적인 영월 탐방에 나섰다.

청령포는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배후면에는 가파른 산이 놓여 있어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그래서 청령포는 지금도 배가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1457년 6월 초순, 단종을 복위시키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단종도 그 사건에 연류된다. 불똥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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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청령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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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포 청령포의 겨울. 이렇게 강물이 꽁꽁 얼 때는 배가 운항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음 위를 걸어서 청령포에 간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 바로 청령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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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에서 졸지에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청령포로 유배를 오게 된다. 하지만 단종은 청령포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해 여름 홍수를 피해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해 10월 하순에 관풍헌에서 숙부인 세조에 의해 사사됐다. 그때는 그나마 있던 '노산군'이라는 지위도 박탈되고 서인 신분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넉 달 정도 밖에 안 되는 단종의 유배생활. 그의 짧은 생애만큼 유배생활도 아주 짧았던 셈이다.


단종의 탄식과 절규가 곳곳에 베어 있는 청령포지만 그 모습은 절경중의 절경이다.
깎아질 듯 급경사를 이룬 육륙봉과 청정한 서강의 모습이 어우러진 청령포의 모습은 누가 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이다. 350도로 청령포를 휘돌아 나가는 서강의 물줄기 또한 힘이 넘친다. 이런 모습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고 생각해 보시라! 그 모습은 분명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광경일 것이다.

 

 


 

 

 

 

 

 

 

 

 

 

 

 

 

 

 

* 2013년 역사트레킹 코스 개설 현황

 

 

번호

코스명

위치

거리

난이도

길표식

비고

1

여의도 샛강길

서울 한강일대

8.5km

모두

이용

-

 

2

속초해변길

강원도 속초

8km

 

 

3

영월강변둘레길

강원도 영월

13km

 

<단종유배길>과 일부구간 겹쳐짐

4

삼남대로 종점길

전남 해남

8km

 

<삼남길>3코스와 연동됨

 

 

 

 

 

 

* 2013년 역사트레킹 활동 현황

 

 

 

횟수

코스

주최자

참가 인원

비고

1

여의도 샛강길

곽작가

마스터 외 5인

 

2

남양주 양수리 정약용 역사트레킹

곽작가

마스터 외 3인

미개설 코스

 

 

 

 

 

 

 

 

 

 

 

<히든 싱어 김광석편>을 보고 쏟은 눈물

 

13.12.30 10:47

 

최종 업데이트 13.12.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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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히든 싱어>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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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그램 하는 거 좋은데, 김광석 이름 팔아서 먹칠은 하지 마라. 제발 부탁이다!'

그렇게 방송이 시작될 때는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답니다. 사실 <히든싱어2 김광석>을 본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시간인 토요일 밤 11시경에는 저는 항상 잉글랜드 프리미엄리그를 시청했었으니까요. 12월 28일에는 카디프시티의 김보경과 선더랜드의 기성용이 맞붙는 '코리안 더비'를 보려고 TV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 '코리안 더비'는 다음날 새벽 2시경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일 없이 리모컨을 돌리다가 채널 15번에서 잠시 멈췄답니다.

 

 



# 김광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종편을 보게 됐다!

평소에는 종편 채널이 몰려있는 번호대를 그냥 뜀뛰기 하듯 넘어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날만큼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몰입을 하고 보게 됐답니다. <히든싱어>가 방영되는 JTBC가 요즘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예능 프로그램라면 더욱더 눈을 거둘 수밖에요. 그러나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서는 그런 원칙도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히든싱어>는 원곡을 부른 가수와 여러명의 모창가수가 서로 경쟁을 하는 독특한 구조의 프로그램입니다. 무대에는 장막으로 가려진 방이 여러 개가 있는데 오리지널 가수와 모창가수들이 각 방에서 한 소절씩 원곡을 부르는 식으로 방송이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조용필'편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간주가 나오는데 오리지널 가수인 조용필은 3번 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1번, 2번 방에 들어간 모창가수들은 최대한 오리지널 가수처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를 것입니다.

워낙 모창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참가했기 때문에 패널들이나 방청객들은 오리지널 가수가 3번인지, 1번인지 혹은 2번인지 혼돈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신승훈'편에서는 모창 가수가 오리지널 가수를 이기는 진기한 장면까지 생성됐다고 합니다.

'김광석'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출중한 모창 실력을 가진 지원자들이라 그런지 마치 故김광석이 실제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김광석의 오랜친구인 김창기, 한동준도 번호를 잘못 누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1996년 1월에 저 먼 곳으로 가신이가 어떻게 <히든싱어> 무대에 설 수 있었을까요? 김광석의 앨범에서 음원을 추출하는 방법을 썼다고 합니다. 김광석의 앨범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어 음원 추출이 수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음원은 뽑아내졌고 가신이도 2013년 <히든싱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신의 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됐답니다.

하지만 가신이의 빈자리는 크더군요. 자신의 방문이 열리면 마이크를 잡고 서서히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모창가수들과는 달리 오리지널 가수 방은 휑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하고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가신이의 사진이라도 그 방에 걸어주셨으면 덜 쓸쓸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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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든싱어 <히든싱어> JTBC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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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와 위로였다네!

저는 故김광석씨를 광석이형이라고 부릅니다. 친형도 아니고 동네 선배형도 아닌데 그렇게 부릅니다. 이렇게 '친한척'을 하지만 광석이형의 제대로 된 매력을 알게 된 건 형이 저 먼 곳으로 간 이후부터였습니다. 방송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참가자 분은 광석이형의 죽음을 군대 전역 즈음에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분은 큰 충격에 빠져 광석이형의 앨범을 다 불태워버렸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비보를 군대시절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큰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저 좋은 가수가 한 명 먼저 갔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렀고, 저도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이 녹녹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광석이형의 음성은 따뜻한 격려로 들렸고, 저는 그 따뜻한 위로 속에서 단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광석이형의 노래는 점점 더 제 귀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었답니다.

옷 벗기 경쟁에 나선 걸그룹의 음악들에서는 국적 불명의 억센 향수 냄새가 나지만 좋은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싱그러운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는 추억이라는 바람을 타고 널리널리 퍼져 나갑니다. 그 향기를 맡은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기억으로 묶이게 됩니다.
'김광석 편'에 나왔던 모창 가수들도 저처럼 기억의 한 구석에 광석이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상금을 받으면 광석이형의 웃음 짓는 동상을 만드는데 쓰고 싶다는 지원자, 감수성이 많았던 청소년 시기를 광석이형의 노래로 잘 이겨냈다는 지원자... 모두다 한결같이 광석이형의 노래로 인해 '좋은 향기'를 맡았던 것 같습니다.

 

 

 


# 변호인에서 참은 눈물, 광석이형 보고 쏟아냈다!

저도 그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러니 주르르 눈물이 흐르더군요. 특히 마지막 부분인 <서른 즈음>이 흘러나왔을 때는 좀 더 크게 훌쩍였습니다. 저는 영화 <변호인>을 보면서도 눈물을 참았답니다. 주위에 사람들도 많았고 일부러 제가 감정을 억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편에서 방영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눈물이 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변호인>에서 통쾌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극중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 경찰인 차동명에게 큰 소리로 윽박지르는 부분에서 쾌감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광석이형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이 대목에서는 그저 눈물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러다 <서른 즈음> 나머지 부분을 따라 부르며 한심했던 제 30대를 되돌아봤습니다. 어설펐고, 그래서 욕 먹었고, 그것 때문에 아팠고. 하지만 그것보다 배신당했다는 것에 더 가슴이 쓰렸고... 생각해보니 제 30대는 그저 어둡게만 채색된 것 같습니다. 지울 수 있으면 그 시기를 지우고 싶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겠죠.

그렇게 어두웠던 제 30대도 이제 이틀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제 '서른 즈음'이 '마흔 즈음'으로 바뀔 때가 됐네요. 제 '서른 즈음'이 한심하고, 답답했다면 제 '마흔 즈음'은 활기차고 건강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어두침침한 방에서 엎퍼져 있지 말고 봄볕을 맞은 새싹들처럼 기운차게 '일어나'야겠지요! 광석이형의 <일어나>처럼요!

'~일어나, 일어나 봄에 새싹들처럼!' 

 

 

 

 

 

 

 

 

 

 

 

 

<호빗>과 <변호인>

우리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13.12.28 14:53l최종 업데이트 13.12.28 14:53l

 

 

"호빗? 그거 서울에서 안 하잖아."
"그래서 광명까지 갔다 왔어요."
"그렇게까지 가서 볼 필요 있냐? 그거 그냥 블록버스터잖아!"
"……"

선배형은 호빗에 대해서 그냥 시큰둥한 평가를 내렸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후배 녀석이 선배형을 거들면서 이야기를 했다.

"호빗 그거 난쟁이 영화 아니에요? 해리포터 같은... 전 그런 영화는 별로던데... 차라리 변호인 봐요. 그거 재밌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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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봉화산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중앙 하단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땅이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이다. 사진에서 보듯 봉하 마을은 '깡촌'이다. 이곳에 '아방궁'이 들어설 수 있겠는가? 2011년 여름, 남도횡단 자전거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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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빗>과 판타지


그렇다. <호빗 (The Hobbit : The Desolation of Smaug)>은 난쟁이들을 다루었고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 영화다. 필자는 호빗들처럼 '짝달막'한데다 판타지 장르를 즐겨 본다. 그래서 멀리까지 가서 보고 온 것이다. 로맨틱코미디는 '닭살'스럽고 공포영화는 '개그콘서트' 보는 것 같지만 판타지 영화에는 팝콘의 유혹을 물리칠 정도로 몰입을 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양태와 희로애락을 신화적인 상상력 안에서 풀어내는 판타지, 필자는 그런 판타지 장르를 선호한다. 불을 내뿜는 용들이 날아다니고 천상의 요정들이 미모를 뽐내는, 그런 화면 가득한 볼거리에 정신이 팔리는 것이 아니다. 물고 물리는 복잡한 스토리 속에서 인간 내면의 '쌩얼'이 꿈틀거리기에,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호빗 2편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배급사와 영화관과의 수익배분 문제 때문에 서울에서 호빗을 보기 어려웠고, 그래서 인근에 있는 광명시까지 가서 보고 왔던 것이다.

영화 취향이 천대를 받아서 그랬는지 필자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인 존 로널드 톨킨(J.R.R.) 박사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톨킨 박사는 세계1차 대전에 참전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다. 솜강 전투라는 1차 대전 중 최대의 격전에 참가했던 톨킨은 현대 문명에 대해 큰 회의를 품었고, 전후 북유럽과 켈틱 신화에 대해 깊이 매료됐다. 탐욕적인 근대 문명를 크게 혐오하고 물질문명 이전세계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이런 이야기를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역시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었다.

"어차피 그거 해리포터처럼 애들이 많이 보는 거잖아?"

 

 


# 스크린의 안의 문제를 스크린 밖으로까지 끄집어낸 <변호인>

 


지난 월요일 오후. 동장군의 위세가 꺾이긴 했지만 밖은 여전히 추웠다. 찬바람이 불면 온몸이 다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변호인>을 상영하는 극장 안은 후끈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월요일 오후 4시경 영화였지만 좌석은 많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필자도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젊은 커플들이 많았지만 나이가 지긋한 분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사실 <변호인>에 대한 첫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개봉 전부터 너무 떠들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생각에 괜한 반발심부터 앞섰던 것이다. 영화라는 매개물로 고인을 '팔아'먹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한 배우 송강호(송우석 역)와 노무현 대통령이 서로 잘 매칭도 되지 않았다. 수더분한 얼굴의 송강호를 보면 웃음부터 나오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을 보면 웃음부터 나오지는 않았기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필자의 첫 느낌은 송강호의 넉살 좋은 연기에 서서히 무너져 내려갔다. '깔깔깔' 웃음소리와 함께. 그리고는 왜 이 영화가 2013년 최고의 영화중에 하나라고 불리는지도 깨닫게 됐다. 스크린 속에 그려진 우울한 시대의 단면을 영화관 밖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그 장면들이 단지 전두환 시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크린 안에서는 끔찍한 고문과 탄압에 분노를 했을 것이고, 극장 밖에서는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극중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고문 경찰관인 차동명에게 사자후와 같은 열변을 토하지만, 차동명 세력'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무척 강했고 지금도 강하다. 1981년 부림 사건의 피의자들에게 '북한의 지령'이라는 죄목이 뒤집어 씌어졌다면, 2013년 진보·개혁세력에게는 '종북좌파'라는 비난이 그들에 의해 덧씌워져 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차동명 세력'은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상대편에 '종북좌파' 딱지붙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쩌면 그들은 항상 '이기는 싸움'만 해왔는지 모른다. 물론 잠깐 숨을 고른 적은 있었겠지만.

그런 '차동명 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에도 계속 자신의 반대편에게 '딱지'를 붙이고 있을지 모른다. 차동명이 부림사건 시절에는 공안경찰로 등장했다면 앞으로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라는 얼굴로 나타날 수도 있고, 공공기관 민영화라는 '스타일'로 포장될 수도 있다. 현재는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댓글로 나타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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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경작지 봉하마을에서 공동경작을 하는 논이다. 2011년 여름, 남도횡단 자전거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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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판타지에는 어김없이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일당백이 되어 악당들을 물리친다.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에서도 수많은 영웅들이 악의 세력에 맞서 정의의 칼날을 휘두른다.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는 악의 화신인 사우론과 당당히 맞서고,  꽃미남 엘프 레골라스는 거침없이 정의의 화살을 날린다. 간달프와 레골라스의 한방에 오크족과 고블린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고 결국 강성했던 어둠의 세력들은 멸망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반신반인'의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식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판타지'일 뿐이다. 최강의 포스를 가진 판타지 영웅이 나타난다고 해도 우리시대의 당면과제인 사회양극화, 청년실업, 남북문제 등을 '한방'에 풀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슈퍼맨, 베트맨, 정도령, 원더우먼, 오디세우스 등 동서양의 영웅들이 한꺼번에 다 등장한다고 해도 역부족일 것이다.

현실의 문제는 결국 생활인들이 풀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웅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기소된 송우석 변호사를 위해 이름을 올린 99명의 변호인들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안녕 대자보를 붙일 때 청테이프를 끊어 주는 친구, 그 대자보를 찬찬히 읽고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동장군의 기세를 누를 따끈한 국물이 그리운 날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국밥 한 그릇이면 속이 든든히 채워질 거 같다. 소중한 친구와 지인들을 모아 따뜻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 사람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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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자전거와 내 자전거 오른쪽에 있는 자전거는 노무현 대통령의 것이다. 대통령의 자전거는 단출했지만 필자의 자전거는 무거운 짐들이 잔뜩 실려있다. 고물이고 자세도 안 나오는 내 자전거! 그래도 같이 사진 찍어주는 친구가 생겼네! 2011년 여름, 봉하마을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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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쓰려도 여행은 계속된다!___ 2부

 

[중부내륙자전거여행 4] 종북 딱지 붙이기 놀이 그리고 말로만 '안보'

 

 

 

 

종북 딱지 붙이기 놀이, 그리고 말로만 '안보'

이런 진지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맨 마지막 문제 같은 경우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현재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있는 김용갑이라는 분이 있다. 이 분에게는 '안보의 첨병'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만큼 강경파였다는 것이다. 안기부 출신이었던 김용갑 전 의원은 1989년 정계에 출사표를 내던지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의 보수들은 다 죽었는가?'

당시 국회는 여소야대를 이루었고 그것에 대한 반발격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추측된다. 국회입성 이후 김용갑 의원은 줄기차게 햇볕정책을 비롯한 남북화해 정책에  반대를 표명해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안보의 첨병 슬하에 있는 3명의 아들은 다 현역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명은 아예 면제고, 그나마 한 명은 공익근무를 했다. 뚱딴지같지 않은가? 진정한 안보의 첨병이라면 자신의 핏줄부터 현역복무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해야 하지 않은가? 국방과 안보는 말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자신의 혈육은 국방의 최일선에서 쏙 빼놓고, 다른이들에게 목청 높여 안보를 외친다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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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이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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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터 강원도 횡성군에서 영월군으로 넘어갈 때 넘는 곳이 바로 도깨비도로다. 그 도깨비 도로 옆을 가고 있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저렇게 빨래를 하시고 계셨다. 요즘은 보기 힘든 장면이라 한 컷 찍어봤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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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의원도 마찬가지다. 현재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맡고 있는 윤상현의 병역 이행 유무를 살펴본 필자는 경악했다. 1988년 5월 14일에 입대해서 당일날에 전역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군복무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기록이다. 징병제를 도입한 근대 국민국가 중에, 입영대상자가 단 하루만의 복무로 전역을 했던 일례가 있었던가? 필자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아예 화끈하게 면제를 받던가.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윤 의원은 군번이 있으신가?'
'총기 및 총번을 부여받으셨나?'
'사격과 수류탄 투척 등 기초 군사훈련을 받으셨는가?'
'하루만 군복무를 했다면, 스스로 창피해서라도 안보를 목청껏 높이기 어렵지 않은가?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선거로 일어선 자, 선거로 망하나?

최첨단 IT시대에도 아직까지 3대 세습을 통한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북한을 보면 짜증이 확 난다. 필자는 일본의 아베 총리를 싫어하는데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도 싫어한다. 아베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꿔서 싫다. 김정은은 그냥 싫다. 뭐 준 거 없이 싫다. 좋아할 이유도 없으니까.

어쨌든 그런 북한정권에 맞서 안보의 기치를 높이 세우려면 스스로가 당당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반대편만 보면 다 김정은이라고 생각되는지 다짜고짜  '종북 딱지붙이기 놀이'부터 하는데, 혹시 자신이 당당하지 못하기에 그렇게 앙칼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 분들은 쓸데없는 딱지붙이기 놀이로 사람들을 몰아세우지 말고 자신이 과연 안보나 국방에 대해서 당당하게 발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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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흥면 안흥찐빵 안흥찐빵은 횡성군 안흥면의 명물이다. 사진에 등장한 곳은 면사무소 앞에 있는 빵집이다. 외벽에 그려진 빵집 아줌마의 모습이 이채롭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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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가 나왔으니 좀 더 해보자. 얼마전에 군 사이버사령부 선거 개입에 대한 중간발표가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발표 내용은 이랬다고 한다.

"군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행위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대선에 개입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과연 그런가? 노골적인 여당 후보 편들기와 야당후보 흠짓 내기를 한 댓글이 증거 자료로 나왔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중립의무를 위반했는데 대선 개입은 아니라는 발언은 '밥은 먹었으나 식사는 하지 않았다'와 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말장난을 아웃도어식으로 바꿔서 해보면 이렇게 된다.

'텐트를 쳤으나 캠핑은 하지 않았다!'

국정원이나 군 사이버사령부 선거 개입을 주변 강대국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국내외 정보수집을 맡고 있는 고급엘리트들이 댓글이나 달고 있고, 국방의 의무를 맡고 있는 군인들이 선거 개입 SNS나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나 대한민국을 업신여겼겠는가!

이 사태에 책임은 분명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박근혜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게 쉽게 해결될 거 같지 않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댓글로 도움을 받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을 것이다. 선거의 여왕이 겨우 댓글 따위에 의탁했다니!

그냥 모른척 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랑스런 불통'이라고 위안을 삼고 싶겠지. 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어리석은 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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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박 강원도 횡성군과 영월군 접경지대에 있는 한 공사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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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쓰려도 여행은 계속된다!

여행 4일째: 8월 18일

이런 웃지못할 촌극들 때문에 필자의 속은 계속 쓰릴 것 같다. 여행할 때나 이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이나... 하지만 여행은 계속됐다. 할 건 해야지.

안흥찐빵으로 유명한 횡성군 안흥면에 도착한 필자는 안흥찐빵으로 배를 채우고 강원도 영월군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횡성에서 영월로 넘어가려면 도깨비 도로라는 곳을 넘어야 했다. 그곳의 입간판에는 '신기하고 재미난 도깨비 도로'라고 적혀있었지만 필자에게는 그저 힘들고 어려운 도로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도깨비 도로에서 지체를 하다보니 이미 세상은 어두워졌다.

또 텐트를 칠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3일째인데 3일 내내 텐트를 제때 쳐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마나 달빛이 밝아 운치는 있었다. 그 달빛을 벗삼아 나름대로 시를 읊어봤다.

달에 있는 옥토끼 잡아다
이 수풀들 찧게 해야지
평평하게 다져지면 그곳에다
침낭깔아 대자로 누우리라!

그렇게 실없는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었는데 야영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널찍한 곳에 땅이 평평하게 잘 다져진 곳이었다. 이게 웬 횡재냐! 자세히보니 그 곳은 바로 공사가 중단된 공사장이었다. 다짜고짜 들어갔다. 공사가 중단됐으니 하룻밤 신세를 진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테지! 필자는 그 곳에서 상당히 낭만적인 하룻밤을 보낼 수가 있었다! 텐트를 치지 않는 방식, 즉 비박으로 낭만적인 밤을 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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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에서의 비박 비박이란 야외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 취침을 하는 것을 말한다. 텐트를 설치하면 캠핑이 되는 것이고, 사진에서처럼 그냥 침낭만 깔고 자면 비박이 되는 것이다. 처음 달빛에 봤을 때는 팬션이나 마을회관을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인 집이었다. 어쨌든 남의 집 공사장에서 비박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신 잠은 무척 맛있게 잘 잤다. 모기가 걱정이었는데 모기도 안 물리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았다.
ⓒ 곽동운

 

 

 

 

 

 

 

 

 

 

 

속이 쓰려도 여행은 계속된다!___ 1부

 

[중부내륙자전거여행 4] 종북 딱지 붙이기 놀이 그리고 말로만 '안보'

13.12.24 17:42  최종 업데이트 13.12.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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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와 자전거 횡성 읍내에서 찍은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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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일째: 8월 17일


전날 119의 도움으로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 일대에서 무사히 캠핑을 할 수 있었다. 그럭저럭 밤을 지새울 수는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뱃속에서 신호가 왔다. 그건 아주 쓰라린 신호였다.

"우읍~~~ 꺼억"

 


쓰린 속을 붙잡고 여행을 이어갔다!

뱃속을 부여잡고 텐트에서 한 바퀴 굴렀다. 쓰린 속을 두 손으로 문질러댔다. 위산과다였다. 목구멍에 무언가 턱하니 하고 걸린 느낌 때문에 새벽에 몇 번이나 잠을 야 했다. 서울에서부터 기미가 보이더니만 결국은 수면 위로 올라와 '나이트메어'가 됐던 것이다.

화장실에서는 넉넉히 일을 잘 봤기 때문에 별 일 아니라고 여겼고, 그래서 위장병을 치유하지 않고 그냥 출발을 강행했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다. 그저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장운동이 잘되어 위장도 튼튼해질 줄 알았다. 자전거여행으로 몸을 '치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짓! 어쭙잖은 자가 진단으로 몸을 막 굴려댔던 것이다. 다리에 무리가 많이 갈 거 같아 그에 맞는 비상약은 준비했지만 위장약은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행이고 뭐가 다 귀찮아졌다.

'이 쓰린 속을 붙잡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냥 여기까지만 갔다 남은 구간은 나중에 도보여행으로 채울까?'

이러저런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해졌고 몸은 축 늘어졌다. 한참을 그냥 텐트 속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쫑 낼 수는 없잖아. 그래 일단 읍내에 가서 약국을 찾아보자. 해볼 건 다 해보고 포기하자고!'

여기서 여행팁이 하나 생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에는 필요한 구급약을 챙겨가야 한다. 진통제, 반창고, 소화제는 필수품목이다. 또 에어파스도 꼭 챙겨야한다. 이 에어파스는 유사시에 호신용 무기로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들개들이 공격할 때 안면부에 분사를 하면 위험한 순간을 모면할 수 있다. 후각이 예민한 야생동물을 잠시나마 교란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여름이었지만 필자는 핫팩도 하나 가져갔다. 갑자기 산 중에서 폭우를 만나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속쓰림을 다스리는 위장약은 챙기질 못했다. 다른 건 다 있었는데 딱 그것만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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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 성당 횡성성당은 1950년대 지어진 성당이다.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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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있는 라면, 피자, 통닭, 삼겹살을 포기하라고요?


"라면, 피자, 통닭, 삼겹살... 등등...  뭐 이렇게 기름진 건 드시지 마시고, 식사는 정기적으로 하세요. 소식으로요."
"라면, 피자, 통닭, 삼겹살... 그거 다 제가 좋아하는 건데요. 그리고 저는 아웃도어 하는 사람이라 밥을 많이 먹어야 되는데..."
"병은 고치셔야죠. 안 그러면 그게 위궤양이 되고, 그러다 위암이 되는 거에요."
"예? 위암이요?"

횡성군 읍내에 있는 약국에서 오간 대화다. 약사님은 음식물 조절을 강조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약사님이 미웠다. 그 맛있는 것들을 내게서 떼어 내려고 하다니!

"약사님. 혹시 자전거나 트레킹을 열심히 해서 장운동이 활성화 되면, 위액 분비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장이 활성화되면 좋기는 하지만 위하고 장은 투약되는 약이 달라요. 둘이 붙어 있지만 다른 거죠."

필자의 자가진단은 보기 좋게 뭉개지고 말았다. 하긴 위하고 장하고 한 몸도 아니지 않은가? 장이 좋다고 위궤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는 법이니까.

아무리 하찮더라도 병을 달고 가는 여행길은 유쾌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허리도 반응을 하는지 찌릿찌릿 거렸다. 이빨도 문제였다. 돈이 없어 치과에 가지 않았던 게 치통으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위장병, 허리통증, 치통까지... 이렇게까지 삼중고(?)에 시달릴 정도면 여행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가는게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계속 페달을 굴렸다.

일단 장거리 여행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 삼중고가 상당히 어중간했다는 것이다. 아예 팍 아파버리면 '옳거니' 하고 그냥 집으로 되돌아갔을 테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약발로 버텨보기로 했다.

'약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고씽이다~!' 

1950년대에 세워진 횡성성당 답사 등, 잠시나마 횡성군 읍내 일대를 돌아본 후 남행을 계속했다. 한우 식당들이 밀집해 있는 우천면에 도착한 후 네덜란드 참전기념공원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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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참전 기념탑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에 기념탑이 있다. 날씨가 흐려서 그랬는지 좀 어둡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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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전투와 네덜란드 참전 기념공원


횡성군 우천면에 있는 네덜란드 참전 기념공원은 횡성전투에 참가해서 전공을 세운 네덜란드 군인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곳이다. 1951년 2월 경에 있은 횡성 전투에서 국군 8사단은 중공군의 맹공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당시 8사단은 구축된 방어선보다 돌출된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어 적의 기습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물밀 듯이 밀려 내려오는 중공군의 공세에 8사단은 큰 타격을 입게 됐고 부대는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퇴각이라도 순조로웠으면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부대간 연락 체계의 붕괴, 후방지원의 미비 등으로 상황은 더욱더 악화됐던 것이다. 더구나 8사단을 지원하기 달려온 미군과 국군도 중공군의 포위망에 걸려 큰 희생을 치루게 됐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 장군은 전황을 보고받고 크게 격노를 했다고 한다.

그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네덜란드군은 퇴각로를 방어하여 국군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희생도 컸다. 대대장이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아군과 적군을 합쳐 1만 5천명이 넘는 인원이 희생된 횡성전투를 두고 미군측에서는 '학살의 계곡'이라고 칭했다. 그런 명칭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횡성 지역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쓰디쓴 아픔의 자리에 네덜란드 참전 기념관이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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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전기념탑 6.25참전기념탑과 베트남참전기념탑. 네덜란드 참전기념탑 옆 쪽에 건립되어 있다. 이 사진 역시 좀 어둡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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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모양을 한 네덜란드 군인상이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 늦은 저녁을 지어 먹었다. 전날 먹지 못한 특식으로 3분 요리 카레를 해서 먹었다. 차를 한 잔 마신 후 어두워진 공원 일대를 할 일 없이 누볐다. 공원에는 네덜란드 참전비 외에도 6.25참전 기념탑과 베트남참전 기념탑이 나란히 서있었다. 장거리여행을 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전쟁기념탑들! 거기에 적혀 있는 서릿발 같은 반공문구들! 그런 전쟁 조형물들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왜 아직도 우리는 분단되어 있는가?'
'휴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는 없는가? 왜 60년이 넘게 평화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는가?'
'분단의 고착화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종북, 종북거리는데... 종북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진짜 반공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안흥면 안흥찐빵: 안흥찐빵은 횡성군 안흥면의 명물이다. 사진에 등장한 곳은 면사무소 앞에 있는 빵집이다.

외벽에 그려진 빵집 아줌마의 모습이 이채롭다.  

 

 

 

* 빨래터: 강원도 횡성군에서 영월군으로 넘어갈 때 넘는 곳이 바로 도깨비도로다.

그 도깨비 도로 옆을 가고 있는데 어느 할머니께서 저렇게 빨래를 하시고 계셨다. 요즘은 보기 힘든 장면이라 한 컷 찍어봤다.

 

 

 

 

* 비박: 비박이란 야외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 취침을 하는 것을 말한다. 텐트를 설치하면 캠핑이 되는 것이고,

사진에서처럼 그냥 침낭만 깔고 자면 비박이 되는 것이다. 처음 달빛에 봤을 때는 팬션이나 마을회관을 짓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인 집을 짓고 있었다. 어쨌든 남의 집 공사장에서 비박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신 잠은 무척 맛있게 잘 잤다. 모기가 걱정이었는데 모기도 안 물리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았다.    

 

 

 * 비박

 

 

 * 네덜란드 참전 기념탑: 횡성군 우천면 우항리에 기념탑이 있다.

 

 

 

* 참전기념탑: 6.25참전기념탑과 베트남참전기념탑. 네덜란드 참전기념탑 옆 쪽에 건립되어 있다.  

 

 

 

 

 

 

▲ 도깨비도로: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의 도깨비 도로. 이 도로는 하도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이 뜸했다.

그래서 '신기하고 재밌기'보다는 그냥 무척 힘든 도로로 기억된다. 도깨비도로는 강원도 횡성군에 위치해 있다.

 

 

 

 

 

 

 * 횡성 성당: 1950년대 지어진 성당이다.

 

 

 

 

 * 횡성 성당: 횡성 성당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횡성 한우: 한우와 자전거. 횡성 읍내에서 찍은 사진임.

 

 

 

 

 

 

 

 

 

 

 

 

 

 

 

*횡성군 섬강: 섬강에서 느긋하게 피서를 즐기고 있는 횡성 군민들

 

 

 

 

 

 

 

 

 

 

[중부내륙자전거여행 3편] 아웃도어 스펙 조작하기

여행 후기, 걸러서 보세요

13.12.16 15:40   최종 업데이트 13.12.16 15:4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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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계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금계천에서 캠핑을 했을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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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일째 : 2013년 8월 16일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을 출발한 필자는 홍천을 거쳐 횡성군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낮 12시에 출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전날 야간주행의 여파로 너무 밤늦게 잠이 든 게 원인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몸상태가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적합할 정도로 달아오른(?) 것도 아니었으니 삭신이 다 쑤실 정도였다. 그래서 필자는 묘한 신음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아~ 정말 적응 안 되네. 몇 년을 달렸어도 여행 첫날이랑 그 다음날은 죽음이란 말이야! 오늘은 기필코 해 떨어지기 전에 텐트 치고 자야지. 오늘 저녁은 두부 송송 썰어서 김치찌개 해먹어야겠다. 푸하핫! 오늘은 캠핑 특별식이다!'

 

 

#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


'사흘 갈 길 하루에 갔다, 열흘 앓아눕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마디로 과유불급이라는 소리다. 그렇다. 이 속담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이 깊게 새겨 들여야 하는 격언일 것이다. 그건 자전거 여행이든 도보 여행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체력, 장비의 한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진격! 진격"만 외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여행을 통해 하나라도 배워가야지 여행이 '중노동'으로 변질된다면 곤란해진다.

스스로에게 적합한 일일 적정 주행거리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춰 이동을 한다면 보다 더 즐겁고 재밌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일일 적정 이동거리는 자전거 여행일 때는 50~60km, 도보 여행일 때는 20~25km이다. 둘 다 취사와 캠핑장비로 완전무장한 상태를 가정한 것이다.

자전거 여행일 때는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 수 있어서 상황이 좀 낫다. 하지만 도보 여행일 때는 거의 2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배낭을 온전히 자신의 신체만으로 버텨야 한다. 그래서 장거리 도보 여행을 떠날 때는 5~6일을 이동했으면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좀 더 여유롭게 여행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에 기울어져 있다. 필자의 경험과 아웃도어 선배들의 의견들을 한 데 모아서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의 체력이 좋으면 하루에 100km 이상을 주행할 수도 있고, '천리행군' 빰칠 정도로 수십 킬로를 이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고유의 특색이 중노동으로 변질되지 않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타협책이 바로 일일 적정 이동거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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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골터널 홍천군 북방면에서 홍천 읍내를 향해 갈 때 이용했던 잿골터널.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한쪽에 보행자 통행로가 있다. 방음벽까지 갖춘 보행자 통로가 인상적이어서 한 컷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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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어 '뻥튀기'의 유혹


전에 어떤 유명 여행 블로그를 눈팅하면서 혀를 찬 적이 있었다. 4개월 동안 무려 1800km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여름인 6월에서 9월 사이에 그랬다는 것이다. 억지로 하면 할 수도 있을 듯싶지만 그래도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았다.

'이 분은 장맛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트레킹을 하셨나? 한 여름에는 제대로 아웃도어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신규 진입을 하는 여행판. 더 정확히는 여행작가판에서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의 스펙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려고 무진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그건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한 곳이라도 여행지를 더 다니려고 발품을 팔고, 글감을 뽑아내려고 에피소드 찾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런 와중에 유혹도 생긴다. 커리어를 '뻥튀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웃도어 스펙을 조작하는 것이다. 500km짜리 도보여행을 했는데 거기에 한 300km를 더 붙여서 800km 정도로 늘려 잡는 것이다. 딱히 검증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500이 고무줄처럼 800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500보다는 800이, 5000보다는 8000이 더 장사가 잘 되는 법이다. 5000을 뛴 것보다는 8000을 뛰었다고 하면 방송이나 언론에서 더 주목을 받지 않겠는가? 카메라는 조금이라도 더 드라마틱한 그림을 요구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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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강 강원도 홍천군을 흐르고 있는 홍천강. 이 강은 북한강의 지류이다. 앞쪽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곳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띄어서 한 번 찍어보았다. 그러고보면 이곳도 강변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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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원웨이(편도) 티켓만으로 세상을 누볐다는 이야기도 필자는 물음표를 붙인다. 이런 식으로.


'여비나 생활비는 그렇다 쳐도, 비자 받을 때도 공짜로 받을 수 있나?'

누군가는 필자에게 이렇게 질책을 하실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잘났냐? 넌 네가 주장하는 커리어가 딱 일치하냐? GPS로 다 찍어봤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GPS로 다 찍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의 GPS는 싸구려라서 그런지 기록이 고무줄로 나온다. 간간이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웃도어 여행을 하는 필자가 왜 이런 제살 깎아먹기(?)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가. 커리어 '뻥튀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필자가 왜 이런 동업자 정신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는가. 이런 주문을 드리고 싶어서다.

'걸러서 보세요. 너무 액면 그대로 믿지 마시고! 아웃도어도 따라쟁이 식으로 하지 마시고 주체적으로 하자고요!'

 

 

 

 

 

* 선돌: 선돌의 겨울 

 

 

 

 

 *선돌 일대: 서강이 꽁꽁 얼어 있다.

 

 

 

 

* 코스명: 영월강변둘레길

 

* 이동경로:  선돌 ▶ 서강 청령포 방절산(야산) ▶ 청령포역(무인역사) 동강대교 영월역

 

* 역사유적

1. 선돌: 선돌 및 세계의 거석문화에 대한 설명. 선돌과 단종 대왕과의 인연 

2. 청령포: 청령포의 지리적 특성 설명. 감입곡류천의 설명. 단종대왕의 유배 및 당시 조선의 상황.

3. 청령포역: 강원도, 충북, 경북 지역의 철도에 대한 설명. 

 

* 특징: 영월의 때묻지 않은 자연을 만끽하고 싶을 때. 또 강변트레킹을 하고 싶을 때 걸으면 좋은 길임.

 

* 이동거: 약 13km
 

 

* 예상 소요시간: 약 4시간(청령포 방문 시간 및 휴식시간 포함)

 

* 난이도: 중 --->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나, 중간에 산길이 있음.

 

* 방향찾기(표식물): 선돌 - 청령포 구간만 있음. 이 구간은 <단종유배길>과 겹치는 구간임. 그 외에는 길을 찾아가야 함. 방절산 구간에서 길을 헤맬 수 있음. 가급적 마스터나 인도자와 함께하면 좋음.

 

* 이용불가 계절: 겨울철. 영월도 강원도 지역이라 겨울에 적설량이 많음. 그래서 가급적이면 겨울철에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음. 단 겨울산행 장비를 갖추면 트레킹이 가능함.

 

* 특이사항: 이 길은 영월 서강을 끼고 가는 길임. 영월은 워낙 동강이 유명한 터라 이 서강길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이 길은 느긋하게 걸을 수 있음.

 

* 교통편:

1. 고속버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까지는 2시간 남짓 정도 소요됨.

2. 영월읍내에서 시작점인 선돌까지는 약 4km 정도 떨어짐. 읍내에서 선돌까지 시골버스로 이동.

선돌이 읍내에서 가까운 터라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해도 크게 부담이 있지는 않음.

 

* 후기: 여기를 ---> 클릭 

 

 

 

 

 

* 서강  

 

 

 * 청령포

 

 

 

 * 터널: 저 터널에서 나온 열차가 청령포역을 지나간다.

 

 

 

 * 영월읍 동강대교

 

 

 * 서강일대

 

 

 

 * 태화산: 영월읍에서 본 태화산

 

 

 

*영월강변둘레길 지도

 

 

 

 

 

 

 

 

 

 

 

남도답사 1번지, '강진군' 사용법을 소개합니다___2편

 

 

---> 전편에 이어서

 

 

 

# 월출산과 강진 녹차밭

전남 영암과 강진 사이에 걸쳐 있는 월출산(月出山, 809m)은 예로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산이다. 남도의 평야지대에 불쑥 솟아 있는 이 돌 산은 그 모습이 기이하게 생겼다.

예전 자전거여행을 할 때 영암의 외곽 지역을 주행한 적이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이동을 했을 때다. 한적해서 그랬는지 차들은 그곳을 '아우토반'처럼 질주했다. 필자도 이에 질세라 열심히 페달을 굴렸다. 내리막길이라 속도가 상당했는데 그 옆으로 월출산이 병풍처럼 서 있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산 주변의 해발고도가 낮았던 터라 월출산의 모습은 더더욱 두드러졌던 것이다. 땅에서 불쑥 튀어 나온 듯한 돌산을 옆으로 끼고 빠른 속도로 주행할 때의 그 쾌감이란! 하지만 그런 쾌감도 적당히 즐겨야 한다.

"허어, 이러시다 큰 사고 납니다. 여기 자동차 전용이에요. 그러다 딱지 뗄 수도 있어요."

경찰 아저씨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그때 필자는 딱지를 안 뗐다.

그처럼 기이한 형상을 한 월출산은 많은 문인들의 음유의 대상이었다. 월출산을 노래한 이중에는 매월당 김시습도 포함되어 있다.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

천재 시인답게 월출산의 모습을 제대로 간파하는 시문을 남겼던 것이다. 매월당의 시처럼 월출산은 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이다. 다산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유배시절 다산 선생은 월출산 옥판봉 일대를 오르셨는데 그 풍광에 크게 심취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제자로 하여금 옥판봉 일대의 모습을 화첩으로 그리게 하셨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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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다원 월출산과 어우러진 녹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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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사지 석탑 강진다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월남사지 터가 있다. 그 곳에 서 있는 월남사지 석탑. 백제계 양식의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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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판봉이 보이는 곳에는 강진 다원이라는 큰 녹차밭이 있다. 옥판봉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드넓게 펼쳐진 강진 다원은 보성 녹차밭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녹색의 녹차밭과 돌산인 월출산의 모습이 서로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월출산 일대는 예로부터 차 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일조량, 일교차 등이 차를 재배하기에 최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산 선생은 월출산에서 나온 차 맛이 으뜸이라고 평가 했을 정도로 이곳에서 자란 차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강진 다원 양 옆으로 자리 잡은 백운동과 그 숲길, 월남사지터에 있는 월남사 3층 석탑도 빼놓을 수 없는 탐방 명소이다. 이런 명소들은 삼남길 8코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다산초당

강진과 관련된 여행기에 다산초당이 빠지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다산초당과 관련된 기사는 많이 게재가 됐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소개한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중턱에 자리 잡은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였다. 다산 선생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유배생활을 하셨는데 그중 후반부 10년 정도를 다산초당에서 기거하시며 집필과 후학양성에 매진하셨다.

현재의 다산초당은 한옥이다. 초당이라 하면 초가집이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아무래도 현재의 다산초당을 복원하면서, 보다 위엄을 살리기 위해 초가가 아닌 한옥집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다산초당은 만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기에 주변이 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숲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초당 위쪽인 만덕산 중턱 부근에는 천년고찰인 백련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다산 선생께서는 백련사 스님들과도 활발하게 교유하셨기에 그 길을 자주 걸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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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사 백련사에서 바라본 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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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다산 선생은 차를 즐기셨고, 월출산도 탐방하시고, 백련사의 승려들과도 교유하셨던 풍유객이었던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보니 다산 선생은 유배시절을 수도승처럼 보내시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산초당 시절에는 살림을 도맡아 했던 과수댁을 들였고, 그 과수댁과의 사이에 딸도 하나 있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다산 선생은 험난한 유배시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극복했던 것이 아닐까? 유배지를 창살 없는 감옥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거대한 도서관으로 만들고, 그 일대를 큰 정원처럼 산책을 하셨던 것이 아닐까?

남도답사 1번지 강진군 사용기는 여기까지다. 사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곳들을 여러번 탐방했었다. 자전거여행 중에 들르기도 했었고, 삼남길 개척 작업을 할 때도 방문했었다. 또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기로 작성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여행기는 예전 남도이야기의'재탕'인 셈이다.

하지만 필자는 계속 '재탕'을 할지 모른다. 앞으로도 계속 남도로 트레킹을 떠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무궁무진한 이야기 창고와도 같은 남도! 그런 남도에서는 뿌리는 같지만 다른 꽃을 피우는 이야기들이 만발한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넘쳐나는 남도는 필자에게 소중한 이야기 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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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초당 가는 길 다산유물전시관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숲길. 길 자체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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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이진성터
1. 이진성터는 삼남길 3코스에 있음.
2. 삼남길 3코스: 약 10km【서홍마을 → 이진성터(이진우물) → 남창리숲길 → 차경마을】
3. 강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경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함. 차경마을에서 역순으로 이동하는 방식도 좋음. 차경마을은 해남군 북평면 면사무소와 인접해 있음.

* 강진 다원
1. 강진다원은 삼남길 8코스에 있음.
2. 삼남길 8코스: 약 14km【달마지마을 → 월하마을회관 → 강진 다원(백운동) → 월남사지3층탑 → 누릿재 → 천황사입구(전남 영암군)】
3. 강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월남사지행 버스를 이용함. 하루 6편 운행.

* 다산초당
1. 다산초당은 삼남길 6코스에 있음.
2. 삼남길 6코스: 약 12km【다산수련원 → 다산초당 → 백련사 → 춘곡마을 → 기룡마을앞 도로 → 초동마을회관 → 영랑생가】
3. 강진시외버스터미널 다산초당행 버스를 이용함. 하루 6편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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