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의 표지

 

 

 

 

 

*** 예전에 기고했던 기사를 여기다 올려봅니다. 날짜를 보니 벌써 7년 전이군요!

에궁~ 이제 한 달 후면, 2013년인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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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오마이뉴스 곽동운 기자]안녕하세요? 공선옥 작가님!

 

녹음이 짙어지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평안하신지요? 지금 춘천은 참 아름답겠네요. 아아! 곧 전주로 이사를 간다고 하셨지요. 전주도 참 멋들어진 곳이지요. 비빔밥도 맛있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형식에 대해 한마디 합니다. 서평을 이렇게 편지글 형식으로 작성해 보는 게 처음입니다. 서평을 편지 형식으로 쓴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은 없겠죠? 객관성을 중시하며 각종 자료들이 동원되는 서평 글은 서평자의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아 균형감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딱딱한 문체가 별로죠. 서평을 꼭 논문 쓰는 것처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 공선옥 산문집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 표지
ⓒ2005 당대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전편에 흘러넘치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작가님의 시선은 너무나 따사로웠습니다. 그 품에 안기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카드 빚에 내몰리고, 재개발에 내몰리고, 가정 파탄으로 내몰리고… 우리네 고단한 서민들의 아픔을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당신의 착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작가님은 '아름다운 노래 따위 나는 부를 수 없다'고까지 하셨지요. 작가님은 "나도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 예술 한번 하고 싶었다. 예술. 그러나 나는 그렇게도 소원이던 예술을 이제와 포기하여 한다"며 괴로워하셨지요. 또,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아, 백죄 그러지 말아라.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아, 입 좀 닥쳐라"라고 엄포를 놓으셨습니다. 그건 소외받은 이웃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절대 외칠 수 없는 절규입니다.

 

 

<사는 게...> 중에서 제가 가장 숨죽이며 읽었던 부분은 "사랑은 가고 '러브'만 남은 이 휘황한 밤에"였습니다. 가난한 열여덟 살 청년이 택시기사의 사납금 10만원을 뺏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또 이혼한 장애 여성이 단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하는 부분에서는 제 입술을 깨물어야 했습니다.

 

 

 

 

이 책 전반에 흐르는 키워드는 빈곤과 소외, 그에 따른 고단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 이외에 사람들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더군요. 뭐 작가님 자신과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몇몇 분이 계시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사는 게...>는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사람들' 속에서도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은 인생'들도 꿈틀거린다고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서평이라고 할 수 없겠죠. 책에 대한 냉엄한 평가는 오간데 없고, 칭찬 일색이니. 일반독자에 의한 주례사 비평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음 부분부터는 작가님을 위한 제 나름대로의 쓴소리를 적어보았습니다. 작가님과 제가 사회를 보는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이 책을 신문의 사회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신문 사회면 중에서 '경악스러울'만한 팩트를 추리고 거기에 '좋은 생각'을 접목해 놓은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구구절절한 사연과 함께 고통스런 환경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대미를 장식하는 식이지요.

 

 

여기에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 고단한 이웃들의 삶 자체가 사색의 대상이 되는 만큼 그에 따른 합당한 대안 제시도 필요합니다. '그게 지식인의 책무'라는 말은 너무 흔하죠?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억울할지도 모르겠지만, 혹자는 작가님에게 빈곤을 이용해먹는다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전 작가님이 그 비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빈곤의 늪에서 허덕이는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 못지않게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끈을 던져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생생한 현장 기록들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또 전 결코 대안 지상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작가님에게 합당한 대안 제시를 요구하는 건, 대안이 빠진 <사는 게...>의 내용은 자칫 신문 사회면의 동어반복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그 나름대로의 생명력이 충만함에도 작가님의 기록들과 사색이 2% 부족 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런 모습은 빈곤에 대한 지식인의 알량한 연민으로 내비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그렇게 꺼리는 '예술'을 하고 있다고 오해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한 이야기만 더 할게요. 작가님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인정미가 넘치는 당신의 어린 시절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시더군요. 그 시절은 항상 아름답게 떠올리셨어요. 그러나 그런 유년시절의 시골풍경들이 2005년에 휘돌고 있는 수많은 복잡한 일들의 안식처가 될 수 없습니다. 복잡하고 골머리 썩이는 현실이 싫다고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시선들로 독자들의 시야를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한 비판들이 작가님에게는 섭섭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서운해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그저 한 독자의 애정 어린 비판으로 받아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소외되고, 외로운 이웃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건강조심하시고요.

 

 

건필 하십시오!

/곽동운 기자

 


덧붙이는 글
서평전문 사이트 리더스 가이드에도 올립니다(www.readersguide.co.kr)

 

-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울릉도 투구바위

 

 

*** 언론 기고문이라는 폴더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제가 언론에 기고한 콘텐츠를 게시할 예정입니다. 저는 언론사에 기고를 할 때 블로그에다 원문글을 작성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일단 개인 블로그에서 작성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편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재 자전거여행기를 기고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도 기사작성 하는 것이 편리하지가 않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인터넷 신문인데도 기사 작성하는데 순탄치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제 개인블로그에다 초고를 작성합니다. 그런 후에 완성본을 오마이뉴스에 송고하는 식입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면 다음 블로그의 웹기반 성에 대한 찬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를 일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다음블로그의 웹기반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블로거들에 대한 대접은 다음이 네이버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는 현실이겠죠.

 

각설하고.

 

이 코너에 게재되는 기사들은 이미 제 블로그에 올라온 것들입니다. 블로그의 포스팅과 차이는 있습니다. 블로그 글보다 신문기사 글이 훨씬 더 깁니다. 기사글이 한 편이면 블로그 글은 3편으로 쪼개 놓았습니다. 길다고 좋은 게 아니니까요. 우리는 스코롤의 압박을 싫어하잖아요!

 

저는 블로그 글과 기고문을 좀 다르게 작성해 왔습니다. 아무리 인터넷 신문이라지만, 제 기명으로 발행되는 것이기에 나름대로 게이트키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최대한 블로그 원문글과 신문기사글을 일치시키려고 노력을 했었지요.

 

블로그에는 쪼개서 작성하였지만 기사에는 한 편으로 올라갔다, 이것이 가장 핵심일 것 같습니다.

 

 

 

 

 

 

 

 

▲ 울릉도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곳곳이 절경이라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그곳이 최고의 출사지가 되는 곳이다. 사진 왼쪽 하단에 있는 흰색 구조물은 작은 터널이다. 자연과 인공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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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와 자전거 일명 '철TB'라 불리는 '막강한 자전거'를 끌고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다녔다. 한편 울릉도는 자전거를 타기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해안도로가 놓여 있기는 했지만 가파르게 형성된 구간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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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거창하다. 그냥 자전거여행이면 자전거여행이지, 뭐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고? 요즘은 백두대간이라는 명칭이 맥주 광고에도 차용될 정도로 대중화 됐다지만 자전거를 타고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거나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지 못했다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는 명칭은 한마디로 '낚시용' 제목이 아닌가.

그렇다.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난 이번 여행을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고 이름지었고,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난 백두대간을 너댓번 정도 오르락내리락했다.

한계령을 넘어 울릉도에 입도했고, 태백산 야영장에 자전거를 주차(?)시켜 놓고 천제단까지 등산을 했다. 남덕유산 아래에 있는 육십령 고개를 통해 전라북도 장수에서 경상남도 거창으로 이동을 했다. 또한 각종 장비로 중무장한 철TB를 끌고 지리산 성삼재와 노고단까지 다녀왔다. 이 정도면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질책을 그나마 덜 당하지 않을까.

 

 


▲ 청량산에 위치한 청량사 청량사는 정말 시원한 배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저기에 계신 부처님은 참 행복한 부처님이 아닐까 한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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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필자가 여행한 코스와 산악인들이 언급하는 백두대간의 코스는 다르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전거를 끌고 대청봉에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경북 지역에서 봉화와 안동지역을 여행했는데 이곳은 차라리 낙동정맥과 더 가까웠다.

어쨌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백두대간과 가장 근접한 지역을 여행을 했고, 지금은 무사히 서울로 돌아와 이렇게 여행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산악지역을 다니느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행 일수가 소요됐고, 체력적인 부담도 무척이나 컸다. 더군다나 올 여름은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지 않았던가.

지난 56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고, 느꼈다. 더불어 아쉬움도 스쳐갔다. 이번 여행이 국내에서 행하는 장거리 자전거여행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만 거의 1200km 정도를 주행했는데 지난 5년간 누적된 거리만 따지고 보면 한 5400km 정도가 된다. 그렇다. 필자는 자동차나 기차처럼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무동력(No-motor)으로 5000km 이상을 여행했다. 국내에서 축적한 5000km 이상의 자전거여행 경력을 이제는 해외로 발산할 순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기는 제대로 잘 기록해 둘 셈이다. 구슬도 잘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던가. 장거리 여행을 한 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획득한 엄청난 스펙을 스스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필자도 그런 우를 범하지 않게 지난 56일간의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 생각이다. 여행 내내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있었고, 살벌한 이야기도 있었다. 또 폭염에 지쳐 황천길로 갈뻔한 이야기도 있었으니 통상적인 여행기보다는 좀더 '서프라이즈'한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 강원도 화천의 평화의 댐과 평화의 종 평화의 댐 부근은 DMZ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이게도 천혜의 자연 경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타원형에 평화의 종이 걸려있다. 평화의 종은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고 한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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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노고단 부근 힘든 여정이 있었기에 지리산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일까? 동이 트고 있을 때라 좀 어둡기는 하지만 지리산의 영험함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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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 여행기간: 2012년 6월 14일~ 8월 8일

2. 주행거리: 약 1200km

3. 이동경로: 서울 -> 강원도 춘천 -> 화천 -> 양구 -> 인제 -> 설악산(한계령) -> 양양 -> 강릉 -> 경상북도 울릉군 -> 강릉 -> 동해 -> 삼척 -> 태백 -> 경상북도 봉화 -> 안동 -> 예천 -> 구미 -> 김천 -> 경상남도 거창 -> 함양 -> 지리산(성삼재, 노고단) ->전라남도 구례 -> 전라북도 남원 -> 장수 -> 거창

* 원래는 지리산에서 여행을 종료할 예정이었으나, 경남 거창에 볼 일이 생겨 다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음. 거창에서는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로 복귀함.


이기사는 제 블로그(http://blog.daum.net/artpunk)에도 실렸습니다.

 

 

 

* 일본 돗도리현 다이센: 올해 첫 눈을 일본에서 맞았네요. 생각지도 않은 설국(雪國)을 만나서 좀 어리둥절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태백산과 소백산의 눈꽃들이 그리웠던 대목입니다.

 

 

 

 

 

* 돗도리현의 미즈키시게로 로드: 요괴만화로 유명한 미즈키시게로 화백의 작품에 등장한 요괴들을 형상화한 거리.

 미즈키시게로 로드에는 총 134개의 요괴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포즈를 취하신 분은 <아름다운도보여행>의 이사장인 손성일 대장님입니다. 손 대장님은 지금 삼남길을 개척하고 계신답니다.

 

 

 

 

 

 

<고어텍스 풋웨어> FILA 풋웨어 NEO PLUTO를 신고 일본 다이센(大山)을 가다!___ 네오 플루토 체험기 3편

 

 

 

 

'어 이거 정말 물건이네!'

 

내 입에서 독백조의 말이 튀어나왔다. 물건? 무슨 물건? 당시 신고 있었던 NEO PLUTO에 대한 내 스스로의 평가였다. 사실 난 처음에 이 NEO PLUTO가 탐탁지 않았었다. 그래서 1편 개봉기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이번에 소개할 슈즈는 FILA에서 나온 NEO PLUTO(네오 플푸토)라는 제품이다. 네오플루토는 얼핏보면 '멋대가리 없는 옛날 방식의 운동화'라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잘못보면 '마사이워킹화' 같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여행화는 디자인이나 색상에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아웃도어 신제품 슈즈들이 얼마나 멋들어졌는가?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 '패션너블'한 트래킹화들이 얼마나 많은 유혹의 '뻐꾸기'들을 날리는가?ㅋ

 

그런 패션너블한 신제품들의 위용에 밀려 명함도 못 내밀 네오 플루토지만 나름대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장점들을 소개하는 것이 내 임무일 것이다.

 

NEO PLUTO를 인수하고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별로였다. 요즘 강조되는 '스타일리쉬'한 디자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로우컷 등산화 분위기가 풍기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 어중간한 디자인과 어중간한 칼라가 NEO PLUTO의 첫 느낌이었다. 본 이벤트를 주관하는 측에 원망감이 들 정도였다. '멋대가리 없는 풋웨어'를 주고 리뷰를 쓰라는 건... 좀 어패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계속 착화를 했고, 그에 따라 이 슈즈의 장점들이 계속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난 이 NEO PLUTO를 신고 일본 돗도리현으로 여행을 갔고, 급기야 심하게 눈발이 날리던 다이센이라는 산을 등반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NEO PLUTO는 본격적인 등산화가 아니기에 다이센을 오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메뉴얼대로 딱딱 떨어지던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대처하는 것이지.

 

내가 일본 돗도리현으로 출발한 것은 지난 11월 22일이었다. 3박 4일 코스로 돗도리현 일대를 탐방하고 다이센을 트래킹하는 대회에 참여를 하려고 동해항에서 DBS호에 승선을 했던 것이다. DBS호는 동해항에서 14시간을 달려 돗도리현 사카이미나코항에 도착했다.

 

일정에 따라 돗도리현 탐방 등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는 물흐르듯이 일정표대로 잘 진행됐다. 그런데 예정됐던 트래킹이 사라졌던 것이다. 트래킹이 사라지고 시내 관광으로 대체됐던 것이다.

 

"내가 시내 관광이나 하러 일본까지 왔나? 그리고 돈이 있어야 관광을 할 게 아냐?"

 

그렇게 하여 난 별다른 장비도 없이 다이센 등반대회에 참가를 하게 됐다. 겨울산행 장비가 없어서 좀 고민이 됐지만 산행 진입로를 보니 안심이 됐었다. 낙엽도 쌓여 있고, 특별히 난 코스로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이센의 높이는 우리나라 지리산보다도 더 낮았기 때문이다. 까짓거 아웃도어맨이 어디를 못 가겠는가? 낙엽 쌓인 산길을 사뿐히 갔다가 내려오는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일정 정도 고도에 이르자 눈길이 시작됐다. 난 좀 당황했다. 겨울 산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젠은커녕 그 흔한 스틱도 가져가질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난 둘레길 정도의 트래킹을 예상하고 일본행 배에 승선한 것이다. 하지만 어쩌리! 세상의 모든 일들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예상외의 난관들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지!

 

고도가 높아질수록 적설량이 많았다. 눈이 발목 이상으로 쌓여 있던 것이다. 덕분에 내 바지 밑단은 다 젖어있었다. 계속 나아가다보니 아예 눈 속에 발이 푹푹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날 비가 내렸는지 어떤 곳은 물웅덩이도 있었다. 눈길에 빠져, 물웅덩이에 빠져, 진흙탕에 빠져... 내 하의는 아주 거지꼴이 되어 갔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 발 안쪽은 물기가 스며들지 않았다. 그렇게 눈길에 빠지고, 진흙탕에도 빠졌는데 신발 안쪽으로 물기가 스며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수 없이 물웅덩이에도 발을 담가야 했는데, 그때도 물기가 NEO PLUTO의 안쪽으로는 스미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내가  체험단 활동을 해서 아니라 정말 몸소 NEO PLUTO의 방수력을 제대로 실감을 했기에 맨 처음 언급된 표현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 다이산 스키장: 다이산을 위시한 돗도리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 돗도리현은 우리의 동해와 맞닿아 있는 지역인데

지형적인 특색인지 동해안을 끼고 있는 일본 지역은 겨울에 강설량이 많다고 합니다. 다이산 스키장 앞에서 NEO PLUTO를 신고 인증샷을 한 번 찍어봤습니다.

 

 

 

 

* 셴조우진자: 등산 초입부입니다. 아직 간간이 단풍이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저 정도의 산길이었으니 NEO PLUTO를 신고도 갈만 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 이거 정말 물건이네!'

 

 

엄밀히 말하면 이번 다이센에서 한 체험은 적절하지 않았다. NEO PLUTO는 트래킹화이지 등산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상황에 맞는 필드조건에서 테스트를 해야 했지만 그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혹독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테스트를 맞는 입장에서는 내게 강력하게 항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혹독하게 테스트를 합니까?'

 

주인을 잘 만났어야지. 어쩌랴! 상황이 이러한데. 길이 있으면 가야 하고, 또 가다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지 않던가?

그렇게 가다 가다보면 결국에는 종착지에 도달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 아닐까 한다. 또 상당히 호조건에서만 필드테스트를 한다는 것도 우수운 일일 것이다. 악조건에서도 필드테스트를 하는 것이 우리 풋웨어 체험단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하향게 수놓은 눈발들을 헤치며 나아갔더니 목표했던 지점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목표 고지에 도달해서 인증사진도 찍고 그러는데, 다른 분들이 내게 그 신발로 여기까지 왔냐며 상당히 의아한 눈빛을 보내셨다. 내 신발이 어때서? 좋기만 한데.

 

솔직히 말해서 NEO PLUTO 안쪽에 물기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하산하다가 발목 위까지 잠겼던 물웅덩이에 풍덩하고 빠졌기 때문이다. 그때 신발끈 부분으로 물기가 마구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이거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것은 아무리 막강한 고어텍스라고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NEO PLUTO의 방수력 덕을 많이 봐서 접지력이나 방풍력의 문제를 소홀히 했는데, 그 부분을 간단히 언급해 보겠다.

NEO PLUTO의 밑부분을 보면 'SLIP LOCK SYSTEM'이 적용되어 있다. 한마디로 미끄럼 방지 시스템이 적용됐다는 것인데 여타 등산화와 비교를 해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실제로 다이센 산행길은 미끄러웠다. 눈길에다, 전날 비가 와서 그랬는지 지표면에 습기도 많았다. 그래서 좋은 등산화를 신고도 미끄러져 넘어지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딱 한 번 넘어졌다. 그것도 하산길에서 좀 속도를 내다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다리가 좀 풀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뭐 물론 와장창 넘어진 것이 아니라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금세 일어났다. 나의 운동실력이 어딜가나???ㅋㅋㅋ

 

예전 포스팅에도 언급을 했는데, NEO PLUTO의 방풍력은 상당히 탁월했다. 당시 다이센은 영하의 날씨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눈이 내렸지. 하지만 그렇게 발바닥이 시렵지는 않았다. 발이 시려워 발을 동동거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두꺼운 양말을 신고 있어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발이 시렵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일본 돗도리현 다이센에서 했던 등반 대회는 무사히 끝이 났다. 좋은 사람은 어려울 때 빛이 나듯이, 좋은 제품은 악조건에서 더욱더 빛을 내는 것 같다. NEO PLUTO 덕분에 즐겁게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NEO PLUTO를 강추한다!

 

 

 

 

 

 

 

 

 

* 다이센의 눈길: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눈이 쌓인 길이 나오더군요. 어차피 다이센을 오르기 위해 일본에 왔으니 그냥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냥 트래킹 수준이라고 생각을 해서 장비를 준비하지 않아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정도의 진흙탕은 매우 양반입니다.

 

 

 

 

 

* 다이센의 설국: 사진에도 보여지듯이, 설경을 마음껏 감상했답니다. 하지만 등산하기에는 아주 꽝이었습니다.

눈이 저렇게 많이 쌓인 노면은 이미 NEO PLUTO로 버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답니다. 같이 등반한 분들은

하이컷 등산화, 아이젠, 스틱, 우비,각반 등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저는 거의 맨몸이었습니다.

 

 

 

 

* 나의 NEO PLUTO: 이렇게 악조건인 상황에서 필드테스트를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트래킹화이긴 하지만 NEO PLUTO는 분명 여행화이기 때문에 이런 악조건인 상황이 필드테스트 조건에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상황에 직면하니 NEO PLUTO의 진가가 발휘되더군요. NEO PLUTO는 정말 '물건'이었습니다.

 

 

 

 

 

 

* NEO PLUTO를 신고 미션 완료: 진흙탕에 빠지고, 눈길에 빠지고... 그런 악조건의 상황이 계속 들이닥쳤지만 NEO PLUTO를 신고 무사히 목표지점까지 다닿랐습니다. 일단 NEO PLUTO의 방수력은 제대로 체험을 했답니다. 곳곳에서 물웅덩이를 만났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그 웅덩이에 여러번 발을 담갔습니다. 하지만 왠만해서는 NEO PLUTO 안쪽으로는 물기가 거의 스며들지 않더군요.

 

 

 

 

* 목표지점에 닿은 나: 아이젠도 없이, 하이컷 등산화도 없이, 스틱도 없이, 우비도 없이.... 참 어쩜 겨울 산행을 하면서 그렇게 준비도 없이 길을 나섰을까요? 그나마 하나 믿을 수 있었던 건 NEO PLUTO뿐! 악으로 깡으로 가다보니 결국 목표지점까지 도달했습니다. NEO PLUTO 체험도 제대로 하면서요.

 

 

 

 

 

* 미즈키시게루 로드: 입만 있는 요괴가 참 익살스럽습니다. 어찌보면 제 다이센 NEO PLUTO 필드테스트도 무척 '익사이팅'하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 현포항 일대 북면 현포항. 이국적인 모습이 들 정도로 참 아름다운 풍광이다. 저런 곳에서 낙조를 본다면 더욱더 멋질 것 같다.

 

 

 

 

 

* 현포항: 정말 멋있다!

 

 

 

 

---> 전편에 이어서

 

 

 

 

 

#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팁

 

필자는 2012년 6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울릉도에 머물렀다. 6월 29일까지 쓴 비용은 29만7000원이었다. 이를 다시 울릉도에서만 지출한 비용을 계산해보니 19만6000원이었다. 여기에 강릉-울릉도 여객선 왕복요금인 9만8000원을 빼보니 9만8000원이 되었다. 즉 약 7일간 울릉도에 있으면서 9만8000원으로 여행을 한 것이다. 이 비용에는 태하 모노레일 비용, 섬목-저동 구간 배 삯, 울릉도 군내버스 비용 등이 다 포함된 것이다.

 

물론 필자는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여행을 하는 터라 위와 같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저렇게 가난뱅이처럼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위한 울릉도 탐방에 대한 팁을 드리려고 한다.

 

울릉도는 숙박이나 음식점의 90%가 울릉읍 저동-도동-사동에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읍내를 빠져나오면 호젓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울릉도도 성수기 시즌에는 민박 잡기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은 성수기 시즌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울릉도 중심가만 빠져나오면 텐트 칠 곳은 아주 많기에 캠핑 장비를 완비했다면 여름에도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 천부항: 천부는 북면의 중심지이다. 천부에 면사무소와 함께 버스종점이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 버스노선의 주선은 도동-천부 라인이다.

만약 북면 일대에서 해안도로 걷기를 하신다면 천부항은 꼭 방문하시게 될 것이다.

 

 

 

* 관음도: 울릉도의 또다른 자랑거리인 관음도다. 사진에서도 보듯 현재 관음도는 다리로 울릉 본섬과 연결이 되어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관음도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관음도에 진입을 할 수 없었다. 입구는 공사중이었는데, 관리자가 없었다.  

 

 

 

 

 

 

# 버스와 도보를 결합한 여행이 울릉도 여행으로 제격!

 

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그래서 울릉도의 일주도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 일주도로가 해안가를 끼고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주도로를 걷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일주도로가 걷기에 편한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보면 입출입이 한 곳인 단방향 터널이 나온다. 그런 터널을 걸어서 넘어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필자는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넘었는데, 어찌나 차들이 빨리 다니는지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울릉도에는 단방향 터널이 여러 곳이 있는데, 신호를 잘 받으면 한 번에 여러 터널을 쉽게 건널 수 있는 구조였다. 반면 신호를 놓치면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터널에서 차들이 빨리 지나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도보로 터널을 지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해안가 걷기는 북면 일대가 최적이었다. 내가 시시포스 놀이를 했던 항목령을 넘으면 북면 현포항이 나온다. 이곳부터 섬목까지는 걷기도 좋고, 풍광도 멋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코끼리 바위나 삼선암, 관음도 같은 멋진 풍광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다.

 

울릉도는 버스 운행이 자주 있는 터라 버스와 도보를 결합하는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버스가 1시간에 한 대 꼴로 있는데 시골버스치고는 상당히 자주 운행하는 편이다. 중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다음 관광지를 둘러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난 대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버스 요금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울릉도 시내버스의 기점인 도동 읍사무소 입구에서 북면 면사무소 소재지인 천부까지 거리는 30Km가 넘는다. 여행일지를 찾아보니, 6월 26일(여행13일차)에 나는 천부항 인근에 텐트와 자전거를 주차해 놓고 도동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앞서 언급한 '일몰 관광버스'를 이용했던 것이다. 당시 왕복요금으로 3000원 정도를 지불했으니 무척 저렴하게 여행했던 셈이다.

 

다른 지역의 시골버스 같은 경우는, 30Km 이상 이동했으면 편도 요금만 3000원이 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울릉도 버스-도보를 결합한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면 굳이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고도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이런 방식은 단독이거나 소규모 팀으로 움직여야 가능할 것이다.

 

걷기를 하다 식사를 못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울릉도의 경우 면소재지 정도에 가야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전거여행 중에 거의 매일 5끼를 먹었다. 영양보충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 중에 3식은 시리얼과 두유로 해결을 했다. 우유보다는 두유가 보관하기가 편하고 유통기간이 길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니 무척 간편했다. 또 시리얼과 두유를 섭취하면 영양공급 문제가 해결이 되는 장점도 있었다.

 

 

기왕 하는 여행, 맛집도 다니고 그래야 하지 않냐고? 맛집 기행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무슨 재미냐고? 혼자 몸으로 식당에 들어가면 식당 주인이 별로 안 좋아한다. 서울이야 혼자 밥먹는 사람도 많지만 유명관광지는 단체손님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냥 눈치 보면서 밥먹는 것보다 시리얼로 때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끼 식사 정도는 그런 식의 행동식을 섭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맛집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남이 맛있다고 해도 나한테는 별로일 수 있는 게 음식이다. 음식 맛이라는 건 매우 주관적인 개념 아니겠는가?

 

전쟁 때는 주먹밥 먹고도 전투를 잘 했다고 하지 않던가! 주먹밥보다는 두유나 우유에 시리얼 둥둥 띄어서 먹는 게 더 맛있을 것이다. 가난뱅이 여행자라면 이런 정도는 감수를 해줘야지!

 

 

 

 

 * 관음도: 석포전망대에서 찍었다.

 

 

 

▲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 석포전망대에서 본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 오르면 저런 멋진 풍광들을 볼 수 있다.

한편 관음도에는 다리가 놓였지만, 필자가 입구에 갔을 때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관음도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 관음도의 다리: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관음도 입도 편의를 위해 마련된 엘레베이터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공사중이었다.

 

 

 

 

* 소라계단: 태하모노레일 옆으로는 소라계단이 있다. 소라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해안산책로가 나온다. 전편에 나온 소라계단을 다른 각도에서 찍어보았다.

 

 

 

 

 

* 나리분지 가는 길: 나리분지는 울릉도 유일의 평지 구간이다. 나리분지를 가기 위해서는 또 꾸불꾸불한 길을 올라가야 한다.

 

 

 

 

* 나리분지를 알리고 있는 표지판: 나리분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천부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물론 난 그냥 걸어 올라갔다.

 

 

 

 

* 나리분지: 울릉도 유일의 평지라 그런지 경작지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 울릉도의 투막집: 투막집은 울릉도의 기후조건과 섬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많은 강우와 강설이 내리는 기후 조건이 울릉도에서 투막집을 짓고 살게 했던 것이다.

 

 

 

 

 

*울릉도의 우데기

 

 

 

* 나리분지 캠핑장: 나리분지 캠핑장은 울릉도 유일의 공식 캠핑장이다. 캠핑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원하게 삼림욕을 할 수 있다.

 

 

▲ 북면 석포 인근의 해안가: 석포 인근에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 바위들이 해안도로 주변에 위치해 있다.

사진에 나오는 '물개바위'도 석포 일대에서 볼 수 있다. '물개바위' 뒤편으로 보이는 섬은 관음도이다.

석포전망대에서 보는 관음도의 풍광은 일품이었다. 한편 '물개바위'는 필자가 임의적으로 네이밍을 해 본 것이다.

 

 

 

 

 * 저동항: 울릉도여행을 마치고 다시 백두대간자전거여행을 하기 위해 저동항으로 돌아왔다. 사진 중앙에 있는 배를 타고 다시 강릉항으로 되돌아 갔다.

 

 

 

▲ 태하 산책길에서 서면 태하 모노레일 인근에는 소라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타고 오르면 해안산책길을 만날 수 있다.

바위투성이 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북면 일대의 해안선. 눈도 마음도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오른쪽 방면 풍광이다.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에 올라서면 울릉도 북면의 해안선을 조망해 볼 수 있다.

 

 

 

이번 편에서는 울릉도 여행에서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본다. 또 필자가 추천하는 저렴하게 울릉도를 여행하는 방법도 소개해본다.

 

 

 

# 기억에 남을 명소: 태하 등대와 대풍감

 

하지만 필자는 7일이나 머물렀지만 울릉도 곳곳을 다 다녀보지 못했다. 아무리 자전거여행이라고 해도, 통상적인 울릉도여행이 2박3일인 것을 감안하면 좀 오래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울릉도의 지붕인 성인봉도 못 가봤다. 입산을 하려고 나리분지까지 갔었는데 마침 그때 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울릉도의 구석구석까지 다 탐방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기억에 남는 몇몇 곳을 소개해보겠다.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은 곳은 서면 태하 대풍감이다. 이곳은 태하 등대가 있는 곳인데 한 아웃도어 잡지에서 우리나라의 10대 비경으로 꼽은 곳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사실 필자는 아직까지도 태하 대풍감이 눈에 아른거린다. 대풍(待風)은 '바람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큰 바람이라는 대풍(大風)으로 뜻을 고쳐도 무방할 만큼 태하 대풍감 일대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었다.

 

그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깎아질 듯한 절벽 위에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시라! 그런 해안 절벽은 암벽타기를 하지 않는 이상 도저히 육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런 해안절벽 위로 유유히 갈매기 떼들이 춤을 추듯 비행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시라! 진짜 태하 대풍감은 그런 상상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울릉도의 곳곳이 다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곳만을 찍으라고 하면 태하 대풍감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태하 등대까지는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서 왕복비용 4000원만 지불하면, 그곳까지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탑승하지 않아도 그 곳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해발 309미터를 6분 만에 주파하는 모노레일을 타는 게 체력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태하를 위시한 서면과 북면 지역의 일몰도 장관 중에 장관이다. 노을이 지는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은 육지의 일몰 명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듯했다. 어둠 속에 붉게 채색된 일몰이 스며드는 모습을 바라볼 때는 묘한 황홀감까지 들 정도였다. 필자는 그 광경을 울릉도 군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았다. 운이 좋았는지 시간대가 맞았는데, 그 버스는 내게 일몰을 감상하는 '관광버스'가 된 셈이다.

 

 

 

 

▲ 태하등대: 모노레일을 타고 태하등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태하등대가 있는 서면 부근은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태하등대에서 그 유명한 태하 낙조를 감상하고 싶다.

 

 

 

 

* 태하 등대에서 대풍감으로 향하는 길: 등대에서 대풍감까지 이렇게 데크로 연결되어 있다.

 

 

 

 

# 기억에 남을 명소: 석포

 

두 번째 추천할 곳은 북면 석포리 일대다. 석포는 울릉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석포의 해안도로에서는 삼선암이나 딴바위 같은 큰바위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기암괴석과 항구가 어우러진 북면일대를 조망해 볼 수 있다. 석포 전망대는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석포전망대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망루로 쓰였다고 한다. 석포에는 전망대가 하나 더 있는데 그 곳은 '석포독도전망대'라고 불린다.

 

석포전망대는 두루봉(281m) 일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해안가에서 올라가려면 좀 시간도 걸리고 힘도 많이 든다. 태하 대풍감처럼 모노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석포전망대에 올라서면 호젓하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멀리 있는 관음도의 모습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기억에 남을 항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

 

석포 독도 전망대 아래쪽으로 하산을 하면 섬목항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섬목-저동 간 여객선이 운항을 했다. 앞선 여행기에도 언급했듯이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저동 간의 구간이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섬목까지 탐방한 사람들은 차를 돌려 왔던 길을 고스란히 돌아가야 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야 느긋하지만, 나같이 철TB에 짐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무시무시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 놀이'를 또 하라고! 시시포스 놀이는 한 번으로 족했다.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면 느긋하게 저동항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탑재도 가능한 여객선이라 자전거 탑승은 문제 없었다. 배 삯은 1인당 5000원이었고, 자전거는 3000원의 추가 운임을 받았다. 전남 완도-청산도의 여객선 운항거리가 30km 정도이고 배 삯이 8000원 안팎인 것에 비하면 섬목-저동 간의 배 삯은 좀 비싼 편이다. 총 운항거리가 10Km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섬목-저동 간의 여객선을 타보라고 권해드린다. 바닷가 위에 우뚝 솟은 울릉도의 기암절벽들을 스쳐지나가듯 배를 타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가며 울릉도 동쪽 해안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 배를 타고 가면, 왜 아직까지 섬목-저동 구간 도로가 개설되지 않은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 곳은 지형이 험하다. 다시 말하면 그런 해안가 기암괴석들을 배를 타고 느긋하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석포에서는 산길을 따라 내수전으로 갈 수 있다. 석포와 내수전을 잇는 산길은 동편 울릉둘레길이다. 동편 울릉둘레길을 따라가면 정매화골을 지난다. 내수전에도 전망대가 있는데 이름하여 '내수전 일출전망대'라고 불린다. 내수전 코스도 무척 아름다운 곳으로 울릉도의 절경 중에 한 곳으로 꼽힌다.

 

 

 

 

 

 

 * 소라계단: 태하모노레일 옆으로는 소라계단이 있다. 소라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해안산책로가 나온다. 사진 오른쪽은 태하 황토굴이다. 황토굴은 말그대로 동굴의 색깔이 황토색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동굴의 바깥색이 검은색인 반면에 안쪽은 황토색이라서 묘한 대비를 이룬다.

 

 

 

 

 

 * 태하 모노레일: 경사도가 상당히 급하다. 그래서 타는 재미가 있다.

 

 

  

 

 ▲ 태하 대풍감: 태하 대풍감의 왼쪽편 해안선이다. 깎아지는 듯한 해안절벽이 자아내는 풍광은 한마디로 명품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위를 유유히 비행하고 있던 갈매기들이 부러웠다. 저런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삼아 날개짓을 할 수 있는 울릉도 갈매기들은

정말 복받은 갈매기들이다. 한편 태하대풍감은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향나무'의 자생지이다.

 

 

 

 *태하 대풍감 왼쪽편 해안 

 

 

 

* 태하 대풍감 오른쪽 해안

 

 

 

 

 

▲ 섬목-저동간의 여객선: 울릉도 일주도로는 섬목에서 끊긴다. 그래서 울릉도 동북쪽인 섬목에서 읍사무소가 있는 도동까지 가려면,

왔던길을 다시 또 가야 한다. 하지만 저 배를 타면 저동항까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배를 타면서 아름다운 울릉도의 동쪽 해안을

느긋하게 즐길 수도 있다.

 

 

 

 

* 천부항: 천부는 북면의 중심지이다. 천부에 면사무소와 함께 버스종점이 있기 때문이다. 울릉도 버스노선의 주선은 도동-천부 라인이다.

사진 중앙에 높게 솟구친 바위는 송곳바위다. 해발고도가 452미터에 달하는 큰 바위다.

 

 

 

* 북면의 해안가: 울릉도 해안도로 트래킹은 북면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북면 일대의 해안도로는 인공터널이 없을 뿐더러 교통량도 적어 걷기에 큰 불편함이 없다. 아래에 있는 사진과 비교해보자.

 

 

 

▲ 울릉도의 단방향터널:울릉도 남부지역 해안가도로에는 단방향터널이 상당히 많았다. 단방향터널 앞에는 신호등이 있어, 양측방면의 차량소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호를 제때 받으면 저런 터널을 몇개씩 통과했기에 차들이 터널 안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래서 도보로 터널을 넘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입구가 흰색인 단방향터널 3개를 동시에 렌즈 속에 담아보았다.

 

 

 

 

 

* 삼선암: 북면 석포리 일대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사진 오른쪽의 바위는 삼선암이다. 사진에 나타난 흰색 점들은 갈매기들이다. 울릉도는 갈매기 천국이다.

 

 

 

 

 

* 석포 안내판: 울릉도 버스 노선의 주라인은 도동-천부 선이다. 석포-천부 라인은 간선 개념으로 운행되어 버스 횟수가 그리 많지 않다.

천부에서 석포,섬목까지는 충분히도보로 걷을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걷기에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버스 운행시간을 잘 체크해야 할 것이다.

 

 

 

 

 

▲ 섬목-저동간의 여객선: 저 배를 타면 울릉도의 동쪽 해안을 느긋하게 조망할 수 있다.

 

 

 

 

* 내수전 전망대: 내수전도 울릉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한 곳이다. 내가 탐방을 하러 간 날은 날씨는 맑은데 안개는 많이 낀 날이었다.

 

 

 

 

▲ 섬목-저동간의 여객선: 저동항으로 접안을 하러 가는 중이다. 그 배를 탔었기에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해상 정면에서 저동항 일대를 카메라로 담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까!

 

 

 

* 투구봉: 울릉도 서면에 있는 투구봉이다. 급경사를 자랑하는(?) 울릉도 지형을 잘 설명해주는 사진이다. 울릉도는 종상형 화산지형이라 이렇게 경사도가 급한 지형이 나타난다. 그나저나 정말 아름다운 풍광이 아닌가? 왼쪽 하단에 하얀색을 띈 터널이 있어 더욱더 이채로운 사진이라고 생각된다.

 

 

 

* 투구봉: 울릉도를 탐방할 때는 멀리 있는 풍광을 담을 수 있게 고배율 카메라를 휴대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이 사진도 좀 멀리에서 찍었다.

 

 

 

 

---> 전편에 이어서

 

 

 

 

#울릉도 vs 제주도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그래서 울릉도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듯 계속적으로 울릉도행 배편은 증편되고 있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활동에 의해 탄생된 섬이다. 하지만 두 섬의 지형적 특색은 다르게 나타난다. 제주도가 솥두껑 모양의 완만한 순상화산 지형이라면, 울릉도는 급격한 경사도를 나타내는 종상화산 지형이다. 제주도는 해안도로를 따라 올레길이 개설됐을 정도로 해안지형이 완만한 경사도 나타내지만 울릉도는 그렇지가 않다. 울릉도의 해안은 수직적인 해식애 지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해식애란 바닷물의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으로 인해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를 말한다.

 

그런 지형적 한계 때문에 아직까지 울릉도는 완전한 일주도로가 없다. 1963년부터 2001년까지 39.8km에 이르는 도로가 저동(울릉읍)-섬목(북면)까지 개설이 됐는데, 섬목-저동까지는 도로가 끊겼다. 울릉도 중앙에 성인봉(986m)이 있는데, 성인봉을 중심으로 1시 방향 지역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동리 -천부(북면 면소재지)간 4.75km 도로의 기공식이 2011년 12월에 거행됐고, 2016년에는 완전한 울릉도 일주도로가 개설될 예정이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듯 울릉도에는 둘레길이 있다. 하지만 경사도 완만성이나 접근성면에서 제주 올레길이 우위에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울릉도 둘레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서면 남양리에서 태하리까지 개설된 7km 구간은 섬 안쪽에 있는 태하령(496m)를 넘어가는 코스다. 저동-섬목 구간에 개설된 둘레길도 남양-태하 구간보다는 바닷가에 접하기는 하나 내수전과 정매화골등을 지나쳐야 하기에 산행코스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신 울릉도에는 '행남해안산책로'라는 해안도보길이 따로 개설돼 있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 팀이 탐방해 유명해진 길인데, 해안절벽에 나무데크를 설치해 바다 위를 걷는 느낌을 주는 멋진 길이다.

 

 

 

 

 

▲ 태하 해안산책길: 서면 태하 모노레일 인근에는 소라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타고 오르면 해안산책길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중앙에서 보듯 데크로 놓인 구간이 있는가 하면 바위투성이 길도 있다.

 

 

 

 

 * 울릉도 서면의 해안길

 

 

 

 

 

#오르락내리락, 울릉도는 내게 시시포스가 되길 '강요'했다

 

필자는 주로 울릉도 해안을 따라 이동을 했다. 울릉도는 역시 섬지역이라 해안을 따라 관광명소가 즐비했다. 예를 들어 서면 통구미 마을에 거북바위나 북면 석포리의 삼선암 등은 해안도로 바로 옆에 있어 힘들이지 않고 그 바위들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한편 울릉도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는 무척 힘든 곳이었다. 급격한 경사도로 인해 자전거를 끌고 가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철TB'인 블루야크(내 자전거의 애칭)에 무려 40kg 달하는 짐을 싣고,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그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오르락내리락은 반복하니, 마치 내 자신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가 된 것 같았다.

 

설악산의 한계령을 넘고, 그밖에 강원도의 험준한 고개들 줄줄이 넘어온 나였지만, 울릉도의 꾸불꾸불한 길에 그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서면 태하에서 북면 현포리로 넘어가는 항목령 부근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 험하기로 소문난 지리산 관통도로와 필적할 정도로 꾸불꾸불했기 때문이다. 지리산 관통도로야 해발고도가 높기라도 하지. 항목령은 겨우 300m밖에 안 되는 곳이었지만 내게 시시포스의 역할을 강요시켰던 것이다.

 

 

 

 

 

* 항목령: 항목령은 300고지 정도였으나 한계령을 빰칠 정도로 난코스였다. 저 곳을 오르려다 거의 탈질할 뻔했다.

 

 

 

 

* 항목령: 정말 꾸불꾸불한 길이다. 난 항목령에서 '시시포스'놀이를 해야 했다. 내가 무슨 그리스 신화를 쓰는 사람도 아닌데.

 

 

 

 

* 울릉도의 깔딱고개: 오르고 오르다보면 결국에는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난 의지의 한국인이다!ㅋ

 

 

 

 

 

* 울릉도의 갈매기들: 울릉도는 갈매기들의 천국이었다. 도도한 녀석들 같으니... 딱봐도 성격(?)이 있는 것 같다.

 

 

 

* 울릉도의 바위: 북면 송곳바위 앞쪽에 있는 코끼리 바위

 

 

 

 

 

* 북면의 해안길: 울릉도 해안길을 트래킹하려면 울릉읍이나 서면보다는 북면쪽 길이 훨씬 더 좋다.

북면쪽의 도로에는 인공터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좀 더 안전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

 

 

 

 

* 울릉도의 꽃: 북면 석포에서 한 컷. 무슨 꽃인지 잘 모르겠다. 누가 알려주셨으면...

 

 

 

* 울릉도의 바위: 촛대 바위인가?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미리미리 기록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 울릉도의 바위

 

 

 

 

 

▲ 내수전 가는 길: 저동항에서 내수전 가는 길이다.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면 바닷가 쪽으로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죽도를 볼 수 있고

내륙 쪽으로는 성인봉 일대를 바라볼 수 있다. 필자가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있어 원활한 관찰을 할 수 없었다.

 사진 중앙에 조그맣게 있는 섬은 죽도다.

 

 

 

▲ 울릉공설운동장: 서면에 있는 울릉공설운동장. 저렇게 멋진 곳에서 축구를 하면 나도 메시나 호나우두처럼 공을 잘 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 울릉공설운동장: 저 곳에서 축구를 한다면, 나도 호나우두나 메시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도 있을 듯....ㅋ

 

 

 

 

 

 

 

▲ 현포항이 바라다보이는 전망대 북면 현포항이 보이는 전망대다.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현포항 부근은 옛날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 울릉도의 해안도로 울릉도의 해안은 그 자체가 명품이다.

 

 

 

 

* 여행 10일차: 2012년 6월 23일


내가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을 때였다. 당시 여행일지를 살펴보니 오후 8시에 하선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배멀미로 구토를 여섯 번이나 해서 진이 다 빠졌지, 주위는 이미 어두워진데다 하룻밤 잘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지. 울릉도 섬 여행이고, 백두대간 여행이고 다 귀찮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여행을 ‘쫑 내고’고 서울로 복귀하고 싶었다. 그냥 편하게 안양천이랑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이쁜 여자’들이나 쳐다보면서 자전거나 탈 걸 무엇 하러 이고생을 사서 하는가? 그런 필자의 우울한 마음도 몰라주고 어떤 울릉도 아줌마가 이런 말을 외친다.


“어이, 자전거 끌고 가는 아저씨 민박 3만원.”


가뜩이나 울릉도에 와서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는데 그 호객행위 하는 아줌마의 말이 귀에 잘 들렸겠는가. 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텐트 있어요.”

 

 

 

# 울릉도의 첫 번째 베이스캠프 울릉한마음회관


텐트만 있었을 뿐이지, 캠핑 장소는 없었다. 조바심이 들었다. 아무리 필자가 노숙에 익숙하다고 해도 진이 빠진 상태에서 텐트 세팅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고민 끝에 도동항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읍 소재지인 도동항에 가면,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울릉도의 지형은 한계령 빰칠 정도로 험했다. 저동항에서 도동항으로 이동할 때는 저동재를 넘어야 했는데 이 고개의 경사도가 엄청 가파른 것이다. 배멀미의 여파로 정신은 혼미하고, 뱃속은 허하고, 저동재의 경사도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정말 울릉도와 나는 서로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

 

 

 

▲ 울릉한마음회관에 친 텐트 울릉도에 너무 늦게 입도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노숙을 할 판이었지만, 다행히 울릉한마음회관 앞마당에

저렇게 텐트를 칠 수 있었다.

 

 

▲ 저동항 울릉한마음회관에서 내려다 본 저동항. 울릉도에서 맞은 첫 아침 풍경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텐트 칠 곳을 찾았다.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곳 앞뜰에 팔각정이 있어 거기다 그냥 텐트를 쳤던 것이다. 더 이상 이동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텐트 세팅을 했던 것이다.

 

텐트를 치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바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다. 배멀미로 위액까지 쏟아낸 터라 내 뱃속이 음식물을 잘 소화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을 먹으면 제격이었기에 그 길로 다시 저동항 부근 편의점으로 가, 동원 야채죽을 하나 사 먹었다. 울릉도에 입도해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편의점 죽일 줄이야!

 

 

다음날.

 

육지에서 피로가 많이 쌓여서 그랬는지 잠은 잘 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울릉한마음회관이라는 관공서 앞에 야영지를 잡았지만 그럭저럭 하루를 잘 보낸 셈이었다. 텐트에서 나와 야영지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난 놀라운 풍광들을 보게 됐다. 내가 있던 울릉한마음회관은 저동재 중턱 부근에 있었는데 그 아래로 저동항 일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던 게 아닌가! 내 눈은 휘둥그레졌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비경을 품고 있기에 필자가 놀랄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 도동일대: 도동은 울릉도의 중심지이다. 군청과 읍사무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 도동항: 도동항 일대는 울릉도에서 가장 번성한 지역이다. 한편 야간에

내수전전망대에 오르면 도동항과 저동항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 독도사랑호: 사동항 인근에서 찍은 사진이다.

너무 원거리에 있는 배를 찍어서 그런지 선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독도사랑'이라는 로고가 있어 한 컷 찍어 봤다.

 

 

 

* 도동항의 갈매기들: 울릉도는 갈매기들의 천국이었다. 은근히 도도한 녀석들이다.

 

 

 

▲ 거북바위 서면 통구미 마을 부근에 있는 거북바위다. 형상이

 기묘하여 사진동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바위다.

 

 

 

 

▲ 거북바위와 내 자전거

 

 

 

 

 

 

▲ 울릉도 지도 포스팅의 이해 높이기를 위하여 지도를 가져와 봤다.

노란색 줄은 울릉도 일주도로를 뜻한다. 동북쪽 지역은

일주도로가 연결이 안 된 것을 지도상의 표시로도 알 수 있다.

 

 

 

 

 

 

* 울트라맨: 100KM를 달려야 하는 울트라마라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엄청난 거리를 완주하신 당신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 울트라 마라톤: 여성 참가자분은 물론 고령참가자 분들도 많았다.

 

 

 

 

 

 

"예! 100KM를 달린다고요?"

 

난 순간 큰소리를 내질렀다. 42.195킬로는커녕 10KM짜리 단축마라톤도 헥헥거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려 100Km를 뛰다니!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니 대회관계자분이 필자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라.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뜨릴 정도로, 바람이 매섭게 불었던 11월 10일 안양천 신정교 일대.

 

그날 신정교 일대에서는 무척 흥미로운 대회가 하나 개최되고 있었다. 이름하여 <2012 KUMF CUP 100Km 선수권대회 울트라마라톤>이다. 올해로 4회를 맞은 KUMF CUP 울트라 마라톤대회는 말그대로 초강력 울트라들만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였다. 왜? 100Km를 12시간 안에 뛰어야 하니까! 말이 100Km지, 그걸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이동할 수 있겠나? 자전거로 100Km를 이동하는 것도 무척 고되고 힘든 일인 것을 누구보다도 필자는 잘 알고 있었다. 여러차례 언급을 했듯이 필자는 무동력으로 5400Km를 이동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기록은 자전거여행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하루 최장이동거리가 100Km를 넘지 못했었다. 짐이 주렁주렁 달린 '무적 철TB'를 끌고 가서 그랬던 것이다.

 

자전거로 100Km를 이동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100Km를 뛰다니! 그러니 필자가 소리를 크게 지르며 과잉반응을 보일 수밖에!

울트라마라톤은 12시간 안에 100Km를 뛰어야 한다는 룰이 있다. 만약 주행시간이 12시간 이상이 걸리면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신 분은 7시간 39분에 100Km를 주파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70여명의 마라토너들이 안양천을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마라토너들의 연배가 상당히 있어 보였다. 관계자분의 말을 들어보니 이번 대회 최고령자는 72살이라고 하신다. 그러고보면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 또한 여성 마라토너들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남성 못지 않은 담대함을 보이며 마라톤을 하는 그분들이 정말 멋있었다. 이렇게 울트라마라톤에 참여를 하신 분들은 기존 마라톤 42.195Km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달려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다. 한편 울트라마라톤은 서구 유럽에서는 상당히 활성화 됐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리는 그들이 참 멋있었다! 그 힘든 주행을 하고서도 피니시 라인에 들어설 때는 한결같이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까지도 즐기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여러분들이 진정 울트라맨, 울트라걸들이다!!! 

 

 

 

 

 

http://www.kumf.org

 대한울트라 마라톤연맹 홈페이지

 

 

 

* 울트라마라톤 대회 본부석: 대회 시작은 오전 6시부터였다고 한다. 요즘은 오전 6시면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하지 않은가? 그때부터 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려 12시간 동안 대회가 진행됐다고 한다.

 

 

 

 

 

* 안양천: 2012년 울트라마라톤 대회는 안양천 신정교에서 개최되었다. 울트라마라톤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70여 명의 마라톤너들이 대회에

참여를 했다고 한다. 울트라마라톤을 바라보며 안양천의 운동공간적인 역할을 곱씹어 봤다. 이런 대회가 개최된다는 것 자체가 안양천의

공간적 역할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 울트라맨: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신 분들은 한결같이 여유가 있으셨다. 무려 100Km를 달렸는데도 끄떡 없으셨다.

저렇게 여유로운 포즈를 취하며 사진 촬영에 응하시지 않던가! 정말 저 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 울트라마라톤: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당신들은 진정한 챔피온입니다! 결승선을 앞두고 손을 번쩍 든 마라톤너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 무량사 극락적, 오층석탑, 석등: 귀중한 유물 세 개가 동시에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무척 이채롭다.

 

 

 

*부여의 단풍

 

 

 

 

---> 전편에 이어

 

 

# 대조사의 석조관음보살입상

 

 

장하리를 떠난 답사단은 임천면 대조사로 향했다.

대조사는 부여 천도를 위한 밑돌 역할을 해주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백제 성왕이 천도를 앞두고 직접 대조사의 창건을 명했다고 하는데, 사찰터를 지목한 사람은 유명한 백제의 고승 겸익이라고 한다. 겸익은 성왕의 명을 받고 인도로 직접 가서 범어를 배우고 돌아온 최초의 백제 승려였다. 성왕이 직접 창건을 명하고, 겸익이 그 사찰의 터를 지목하였던 만큼 사비시대의 대조사는 의리의리 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현재의 대조사는 어마어마한 사찰이 아니다. 대조사가 있는 임천면 성흥산에 올랐을 때의 첫 느낌은 ‘뭐야 왜 이렇게 작아’였다. 우리동네 관악산에 있는 사찰보다도 더 작은 대조사였다. 물론 사찰을, 물리적인 공간의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성왕과 겸익이 창건에 힘을 썼다면서?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하는데 신호탄과 같은 역할을 했다면서...

 

 

 

# 고려 초기 석불: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하지만 그런 ‘외소 콤플렉스’를 일거에 날려버릴 석불이 있었다. 바로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무려 10미터가 넘는 큰 키를 자랑하는 ‘거인’과도 같은 풍모였다. 얼핏 보면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인체비례로 따지면 4등신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얼굴은 어찌나 큰지 ‘얼큰이’ 같았다. 머리에 쓴 네모난 관도 매우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정교성보다는 투박함이, 조화미보다는 개성이 넘치는 석상이었다.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옆 동네 논산 관촉사에 있는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도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럼 왜 고려 사람들은 선이 굵으면서, 개성이 넘치는 이런 큰 석불을 제작했을까? 이전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사람들보다 정교성이나 세공 기술이 떨어져서 이런 식으로 석불을 제작을 했단 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의 기술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조사 석조관음보살입상은 당시 그 지역, 중부지방 일원의 민간신앙이 접목된 석불이었다. 마치 큰 장승을 세운 것처럼 석불을 조각했던 것이다. 마을의 수호와 안녕부터 개인적 기복까지 다 받아주는 수호신과 같은 ‘키다리 아저씨’를 제작했던 것이다. 삼국시대 귀족불교에서 출발한 불교문화가 통일신라를 거친 후 고려 초기 시대에 각 지역의 민간신앙과 어떤 식으로 접목이 되었는지 탐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약 18미터)보다 키가 작을지 모르지만 보물로 재정된 순번은 더 빠르다는 것이다. 대조사 석불이 보물 제217호이고, 관촉사 석불이 보물 제218호다.

 

대조사는 경내가 작지만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어 큰 사찰이 됐다. 10미터가 넘는, 그것도 천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꿋꿋이 성흥산 일대를 굽어보는 석불이 있는 사찰이 작다고 표현을 하면, 그거 큰 실례일 것이다. ‘대조사는 아담하기에 차분하게 경내를 둘러 볼 수 있어 좋았다. 큰 대조사 석불이 있어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바꿔서 표현할 수 있겠다.

 

 

 

 

* 대조사 석조관음보살입상: 멀리 아래쪽에서 찍어봤다.

 

 

 

* 대조사의 건물들과 석조관음보살입상: 대조사는 경내가 작은 사찰이었다. 하지만 석조관음보살입상이 있어 결코 작은 사찰이 아니었다.

 

 

 

 

 

 

이제 일행은 무량사로 향했다. 무량사는 외산면 만수산에 위치해 있다. 무량(無量)사의 뜻은 셀 수 없다는 뜻이다. 세월도, 돈도, 삶조차도 셀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곳 무량사에 들어서면 셀 수 없단다. 무량사를 탐방했을 때가 11월 3일이라 세상은 이미 늦가을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저 강원도 지역은 이미 단풍철이 지났다고 했다. 하지만 무량사는 늦가을의 정취가 남아 있었다. 올 가을은 단풍놀이다운 단풍놀이를 못하고 넘어가나 했더니 무량사에서 단풍을 제대로 구경했던 것이다. 문화재 관람과 단풍놀이를 동시에 즐겼던 셈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우리문화답사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문화 유적을 탐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대자연의 정취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이 만든 유물과 유적은 자연의 조화를 중시해 제작을 했다는 뜻이다.

 

 

 

# 방랑시인 김시습의 흔적이 곳곳에 베어든 천년 고찰 무량사

 

무량사는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세조에 의해 단종이 폐위된 사건을 보고 천재 시인 김시습은 세상을 등지고 정처 없이 유랑길에 나선다. 그렇게 유랑생활을 계속하다 말년에는 이곳 무량사에 머무르게 되고, 결국에는 병환으로 서거하게 된다. 그때가 그의 나이 59세였다.

 

이렇듯 무량사는 김시습과 관련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유명한 무량사 극락전의 편액을 김시습이 직접 썼다고 한다. 당시 극락전은 수리를 하고 있었는데, 마땅히 시주할 것이 없었던 김시습은 글씨로서 시주를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편액 글씨로서 재능 나눔을 했던 셈이다.

 

김시습의 유려한 서체가 빛나는 극락전은 외형도 참 웅장하다. 외부에서 보면 2층 기와집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1층이다. 위아래를 터버려서 하나의 층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극락전 내부에 모셔진 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도 키가 크다. 본존인 아미타불상이 무려 5.4미터라고 하는데 동양 최대 규모라고 한다. 극락전 외부가 크고 웅장한 만큼 내부의 삼존불상도 크고 화려했던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무량사는 2층 전각 구조를 가졌다. 극락전은 조선 중기 시대에 재건축되었는데 다층 구조를 가진 건축물은 충북 보은의 법주사 팔상전이 유명하다. 억불 정책에 의해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에서 크고 웅장한 다층 구조의 사찰 건축물이 들어섰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고 한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승병장들의 활약으로 인해 천대받던 불교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곡창지대에 있는 사찰들을 중심으로 큰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됐다고 한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 충북 보은 팔상전 등이 대표적이다.

 

 

 

# 무량사의 자랑: 무량사 오층 석탑

 

무량사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량사 오층석탑이다. 오층석탑은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층 한층 올라가지만 안정감을 잃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7미터 이상으로 쌓여 올린 탑은 고려 전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앞서 본 장하리 삼층석탑과는 좀 다른 인상이 느껴진다. 이런 장중하면서 안정감을 강조한 오층석탑이 무량사 극락전 앞에 서있다.

 

또 오층석탑 앞에서는 석등이 하나 서있다. 일명 무량사 석등이다. 이 역시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석등을 맨 앞으로 하여, 오층석탑과 극락전이 연이어 서있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조밀한 공간에 세 개나 있다는 건, 보는 이에게 새 배 이상의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답사는 외산면 반교마을과 홍산면 홍산관아 탐방으로 이어졌다. 반교마을은 돌담길이 잘 정비된 곳인데 현재 유홍준이 ‘휴휴당’이라는 집을 짓고 실제로 살고 있는 곳이다. 유홍준은 자신이 반교마을 청년회 회원이라고 힘주어 말해 답사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홍산관아는 옛 관아의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곳이다. 관아는 고을의 수령이 직무를 보던 곳으로 지금의 군청이나 읍사무소의 역할을 했다. 대신 조선시대 수령들은 사법권도 행사하고 있었기에 관아에는 자체적으로 감옥도 갖추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330여 곳에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후 관아들은 다 파괴되거나 원형을 잃게 된다. 그나마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한 관아가 바로 홍산현 관아라는 것이다.

 

홍산관아 탐방을 끝으로 하루 동안의 짧은 부여 답사여행이 끝이 났다. 좀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했다. 하긴 한 번 오고 다시 부여에 안 올 텐가?

 

이렇게 좋은 답사여행을 준비해주신 유홍준 선생님과 눌화출판사에 감사를 드린다. 유홍준 선생님은 우리나라 문화 답사의 붐을 일으킨 주범(?)으로서 앞으로도 더 많이 답사여행 가이드에 나서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책에 기술된 유적 앞에서 독자들을 위해 마이크를 든 저자 유홍준의 모습은 참 행복해보였으니까!

 

 

 

 

 

* 무량사 극락적, 오층석탑, 석등: 차례로 위치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무량사 극락전: 조선 중기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외부에서는 2층으로 보이나 사실은 천장이 높은 1층이다. 층간을 터버려서 내부는 1층으로 만든 것이다.

 

 

 

*무량사 오층석탑: 한 층, 한 층 올려진 모습이 안정감 드러낸다. 고려 초기 작품으로 백제와 통일신라 기법이 어우러진 석탑이라고 한다.

 왼쪽 하단에 있는 꼬맹이 녀석은 오층석탑이 좋은지 탑돌이를 하는 것 같다.

 

 

 

 

 

*홍산 관아 객사: 조선시대에는 전국 팔도에 330여 고을이 있었고, 그 고을마다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관아들은

거의 다 사라져 갔다. 홍산현 관아는 비교적 원형복원이 잘 된 곳이라고 한다.

 

 

 

 

 

* 홍산현 관아 객사: 조선시대 객사에는 임금과 궁궐을 상징하는 궐패가 안치되었다고 한다. 수령은 임금을 대신하여 고을을 다스리기에 그에 걸맞은 징표를 객사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객사는 수령이 근무하는 동헌보다 더 격이 높은 곳이라고 한다. 한편 동헌은 객사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헌이라고 불린다.

 

 

 

 

 

 

 

 

 

 

 

 

* 대조사석조관음보살입상과 답사객: 이 사진을 통해서도 대조사 석불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석불 뒤쪽으로 길이 있어 바로 옆에서 석불을 볼 수 있다. 또한 소나무가 석불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무척 이채롭다.

 

 

 

 

 

* 장하리 삼층석탑: 석탑 바로 옆이 민가라 그런지 마을아주머니가 탑 주변에서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 전편에서 계속

 

 

 

충청남도 부여는 백제의 3번째 수도였다. 일명 <개로왕 국서>라 불리는 문서로 인하여 고구려 장수왕에 의해 한성이 함락되고 백제왕이 죽는 참극이 일어났는데 그 때가 서기 475년, 개로왕 즉위 21년이었다. 국왕이 죽고, 수도가 함락된 백제는 허둥지둥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를 한다. 그때부터 웅진 백제시대라고 하는데, 웅진 시대는 서기 475년부터 538년까지 약 63년간 지속된다.

 

부여로의 천도는 26대 성왕 시기에 이루어진다. 성왕은 국호를 백제에서 남부여로 바꾸고 국가의 부흥을 도모하게 된다. 급기야 웅진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의 천도가 이루어지기까지 했다. 그 시기를 일컬어 사비시대라고 한다. 서기 538년부터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를 말하는데 약 122년에 걸쳐 사비시대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부흥을 위해 천도된 곳에서 백제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을 당해야 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백제가 멸망하고 난 후 부여는 그저 중앙권력에서 벗어난 변방에 불과했다. 그건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경주 -> 개경 -> 한양으로 중앙권력이 이동을 했지만 부여와 공주는 옛 백제 땅으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중앙에서 비켜난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현재의 부여와 공주는 문화유산 답사를 하기에 상당히 호조건에 있다. 호젓하게 문화유적 답사를 하고, 느긋하게 트래킹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데 역사의 현장도 ‘새옹지마’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부여의 단풍

 

 

 

* 유홍준: 무량사 경내에서 무량사의 연혁과 김시습에 대한 설명을 답사객들에게 하고 있다.

 

 

 

 

 

 

 

 

여행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국립부여박물관(정림사터) 집합 -> 장암면 장하리 삼층석탑 -> 임천면 대조사 -> 외산면 무량사 -> 반교마을 -> 홍산관아 -> 국립부여박물관 입구

 

오전 9시부터 진행된 답사는 오후 5시가 되서야 끝이 났다. 일명 '유구라'라고 불리는 유홍준 선생의 입담은 직설적이면서도 구수했다. 막힘이 없는 달변을 구사했고, 주제 전달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자연스럽게 청중의 집중을 이끌어 냈다면 그거 여행가이드로서 최고의 능력 아닌가? 이런 분이라면 여행의 주도권을 내놓아도 상관이 없지.

 

첫 도착지인 장하리 삼층석탑은 장하리 마을 언덕에 세워진 고려시대 석탑이다. 그 유명한 정림사지 오층 석탑의 '3층석탑' 버전으로 보이는 이 석탑의 축조 시기는 고려 전기라고 한다. 장하리 삼층석탑은 ‘늘씬함’을 드러내지만 정교함을 잊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비 백제시대 축조된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롤모델로 삼은 탑이지만 그냥 무턱대고 베끼지는 않은 듯싶었다. 백제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 초기의 탑 축조 기술이 서로 어우러져 장하리 삼층석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한편 옛날에는 삼층석탑 자리 옆에 한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한산사는 사라지고 삼층석탑만이 홀로 남아 웅장했을 옛 사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정림사 오층석탑도 마찬가지다. 현재 정림사도 절터만 남아 있고 오층석탑만이 웅장했을 정림사의 옛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고보면 사찰은 사라져도 석탑은 남아 있게 되는 것 같다. 돌은 그냥 남아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이스턴 섬의 이스턴 석상이나 영국의 스톤 헤지가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서있는 것처럼 말이다.

 

 

 

 

 

* 반교마을: 유홍준 선생의 반교마을 집의 이름은 '휴휴당'이다. 그 대문을 지키고 있는 백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얼핏보면 저 백소나무가 비실비실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런 나무들이 꿋꿋하게 오래간다고 한다. 자신의 응축된 에너지를 잘 간직하고 있다가 제때에 방출한다는 것이다. 오버하지도 않고, 건방을 떨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발산할 때는 발산을 하여 한뼘 한뼘 자신의 가지를 키운다고 한다. 괜히 자기 잘난 맛에 취해 자신의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 놓고 사멸해 가는 인간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나무인 것 같다. 인생은 한 방 인가? 그건 모르겠고. 최소한 나무의 인생에서 한 방은 무척 위험한 것이다.

 

 

 

* 부여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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