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11월 23일. 예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거창 양평동 석조여래입상을 보러갔다. 거창군 거창읍 양평마을에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실 경남 거창은 내게 친숙한 곳이다. 거창군 고제면에 거창 귀농학교가 있는데 그 귀농학교 교장선생님과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해 전에는 귀농학교에서 한동안 기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렇듯 거창에 많은 발걸음을 해왔지만 정작 문화재 답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양평동 석불도 전에 한 번 답사하려고 갔다가 정확한 위치를 몰라 되돌아 온 적이 있었다.

 

석불이 있는 양평마을은 거창 읍내에서 가깝다. 직선거리로 약 2~3km 정도 된다.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걸어서 약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나도 읍내에서 걸어서 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가려고 지도를 계속 주시하고 걸었다.

 

사진에서보듯 양평동 석불은 뛰어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아주 잘 표현된 얼굴 부분, 옷주름까지 신경 쓴 신체부분... 정교한 멋이 살아있는 디테일이 강한 석불이다. 밑받침인 대좌까지 합쳐 총 3.7미터에 이르는 석불은 통돌로 되어 있다.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니! 그것도 천 년도 훨씬 전인 신라 후기에 만들어졌다니!

 

사실 이 양평동 석불은 1970년대에 복원을 하였다. 그 전에는 하반신이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머리 위에 있는 천개도 같이 올렸다고 한다. 원래부터 천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실수에 의해 올려진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참고로 석불 머리 위에 얹혀진 둥근 모자 같은 걸 천개 혹은 보개라고도 부른다.

 

솜씨 좋은 석공이 만든 석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흐믓해진다. 섬세하게 잘 표현된, 거기에 보존 상태까지 좋은 석불을 보니 자연스럽게 합장을 하게 됐다. 더군다나 아주 가까이까지 가서 볼 수 있으니 그 감동이 두 배가 되더라. 마치 한 편의 완벽한 예술 작품을 보고 온 느낌이었다.

 

이렇듯 우리 문화재는 후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정말 눈이 호강한 날이었다.

 

 

 

 

 

 

 

 

 

 

 

 

 

 

 

 

 

 

 

* 농월정

 

 

 

 

*** 지난 11월 22일부터27일까지, 6일간 경상남도 서부권을 탐방했다. 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 디테일한 것보다는 스케치 정도 수준이다. 탐방 순서는 이렇다.

 

함양 ☞ 거창 ☞ 남해 ☞ 삼천포(사천).

 

 

경남 함양군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 트레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지리산 둘레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함양에는 지리산 둘레길말고도 '화림계곡 선비문화탐방로'라는 계곡트레킹을 할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 있다.

 

일명 선비문화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함양군 서하면부터 안의면까지 약 9km에 걸쳐 이어진 길이다. 총 연장이 총 9km면, 도보여행길 치고는 무척 짧은 편이다. 지난 10월 31일에 개통된 남파랑길을 보라. 총 연장이 무려 1470km라고 하니까.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를 논할 때, 흔히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여기서 '우 함양'을 '우 안의'로 바꿔도 될 만큼 안의 지역은 풍부한 선비문화를 창달했던 곳이다. 선비문화길이 있는 화림동(花林洞) 계곡은 용추계곡이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심진동(尋眞洞) 계곡, 거북바위로 유명한 원학동 계곡과 더불어 안의삼동(安義三洞)이라고 불렸다. 원학동, 화림동, 심진동이 안의 지방의 3대 계곡이라는 뜻이다.

 

안의는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으로, 면 단위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안의현이라 불리며 함양, 거창과 함께 그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한다.

 

주변에 큰 산들이 많은 이 일대는 예로부터 정자가 많기로 유명했다. 큰 산들이 뿜어내는 풍부한 유량과 평평한 너럭바위들은 풍류객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충분했을 것이다. 그때도 막걸리 잔부터 돌렸을까?ㅋ

 

사진에서 보이듯 화림동 계곡은 매우 완만하게 이루어져있다. 통상적으로 계곡이라하면 급경사와 급류가 떠오르는데 화림동 계곡은 평평한 모습이다. 그래서 선비문화길의 난이도는 '하'이다. 통상적인 계곡트레킹이 '중' 이상인 것을 생각해보시라. 큰 부담없이 계곡길을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일대는 정자가 많이 있다. 그래서 선비문화길은 정자를 따라 걷는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스는 이렇게 된다.

 

거연정 ☞ 동호정 ☞ 농월정

 

이렇게 하면 약 6km 정도다. 6km 정도로는 성이 안 찼다면, 3km를 더 걸어 안의면 버스터미널까지 가면 된다. 그래서 총 연장이 9km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의 6km를 추천한다.

 

 

 

 

 

* 거연정

 

 

 

 

 

* 거연정 자연석 주초

 

 

 

 

 

트레킹의 시작은 거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번에 갔을 때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거연정의 주춧돌이었다. 사진에서보듯 거연정은 계곡의 바위 위에 지어졌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지어지다보니 통상적인 주춧돌이 쓰일 수 없었을 것이다.

 

보통 건물의 주춧돌은 잘 다듬어져 있다. 하지만 '덤벙주초'라고 해서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주춧돌로 삼기도 했다. 그러면 주초가 나무기둥에 맞혀지는게 아니라 반대로 나무기둥이 주초에 맞혀지게 된다.

 

그런데 거연정의 주춧돌은 덤벙주초를 넘어 아예 울퉁불퉁한 계곡 바위다. 그러니 나무 기둥도 그에 맞춰 생김새가 아주 독특한 것이다. 전에는 잘 모르고 넘어간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가니 눈에 확 들어왔다.

 

동호정 앞에는 차일암이라고 불리는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다. 이 차일암은 하도 커서 100명이 동시에 앉을 수도 있다고 한다. 족구도 한 판 할 수 있을 거 같이 차일암이 크긴 크더라.

 

마지막으로 농월정을 탐방했다. 선비문화길의 하이라이트 같은 곳이 바로 농월정이다. 농월정 앞은 거대한 너럭바위들이 크게 펼쳐진 곳이다. 확 트인 곳에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흐르고 있고, 큰 너럭바위들까지 펼쳐져있으니 '음풍농월' 하기에 제격이 아니던가!

 

그랬던 농월정이었지만 2003년에 큰 아픔을 겪게 된다. 누군가 방화를 해서 농월정이 전소된 것이다. 아주 천벌을 받을 놈이지! 소중한 문화재를 왜 망가뜨리냐고!

 

지금 보는 농월정은 2015년 9월 16일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다시 지어졌을 때는 칠이 칠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화려하게 단청까지 칠해져있었다.

 

무리없이 계곡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인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로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끄적이다보니 다시 가고 싶네~^^

 

 

 

 

* 거연정

 

 

 

 

 

 

* 동호정

 

 

 

 

 

 

 

*화림동계곡

 

 

 

 

 

 

 

* 소나무숲: 농월정 가는 길

 

 

 

 

 

 

 

 

 

* 농월정

 

 

 

 

 

 

 

 

 

얼굴이 두껍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꾹 참고 써본다. 내가 추천하는 브런치북은 <트레킹은 생각창고>다. 그렇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내가 쓴 작품이다. 잘나도 내 작품, 못나도 내 작품이기에 염치불구하고 추천을 해본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사연이 많은 원고다. 이 원고의 오리지널 제목은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었다. 오리지널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이 원고는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행한 역사트레킹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트레킹은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라 트레킹을 행하며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아주 고급진 아웃도어 활동이다. 역사트레킹은 아웃도어에서 행해지는 터라 요즘 같이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시절에도 실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원고들에는 내 역사트레킹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있다. 처음 작성했던 원고가 2013년도였고, 브런치북으로 간행된 것이 2020년 6월이었으니 약 7년이란 시간동안 숙성이 된 원고라는 뜻이다.

 

 

 

 

 

 

 

7년 동안 자연 상태로 두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휘저었다. 서울과 경기, 그리고 에필로그인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총 20화로 엮었는데 재작성만 10번 이상을 한 꼭지도 있었다. 그렇듯 재작성도 만만치가 않았다. 글을 새로 한 편 쓰는 정도의 에너지가 들 필요했으니까. 그만큼 제대로 쓰고 싶었고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원고가 손이 많이 갔다는 건 외부적인 충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원고는 출간 제의를 3번이나 받았다. 하지만 3번 다 처참할 정도로 차였다. 그렇게 출간이 불발됐으니 이렇게 브런치북 공모전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번 공모전까지 떨어지면 도대체 몇 번을 차이는 거지?

 

- 우리출판사는 역사서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내용을 보강해주세요.

- 적어도 30꼭지는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분량으로는 부족합니다.

- 트레킹에 중점을 둔 실용서가 우리의 방향입니다. 맛집이나 주변관광지를 포함하는 건 당연하고요.

- 글 앞뒤에 있는 에세이 부분을 더 강조해주세요.

 

각기 다른 3곳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다보니 요구 멘트도 중구난방이었다. 거기에 휩쓸리듯 원고에 손을 댔던 것이다. 그러니 재작성을 10번 이상한 원고도 나오게 됐다. 제목도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에서 <트레킹은 생각창고>로 변경을 하게 됐다.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쓰고 고치고를 여러번 하다보니 웬만한 오탈자나 비문은 다 잡아냈다. 추가된 내용들도 원문글에 잘 녹였다. 시간이 갈수록 잘 숙성 된 듯싶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읽기만 하면 되는데...

 

10km짜리 역사트레킹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약 100km 이상을 탐방해야 한다. 한 번 갔던 길을 여러번 반복해서 가야한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길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또 가고, 또또 가야 하는 것이다.

 

<트레킹은 생각창고>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더 알찬 내용을 담기위해 눈을 비비며 글을 작성했었다. 역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만큼 교차검증을 철저히 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시간 이상 걸린 적도 있었다. 그만큼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못난 그림 솜씨로 지도도 그려 넣었을까! 이해도를 높이려고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만든 <트레킹은 생각창고>였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신통치가 않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게 글이 길어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설명식의 딱딱한 글이어서 그런가?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하지 않던가. 성적이 좋든 나쁘든 <트레킹은 생각창고>는 내게는 자식처럼 아주 소중한 존재다. 잘났든 못났든 어쨌든... 내 소중한 작품이다.

 

 

*** 브런치북을 소개하는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올 가을경에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여행플랫폼에 역사트레킹을 런칭했다. 3년 정도 5060세대들을 집중 타겟으로 트레킹을 진행했었는데 그것을 좀 탈피해보고자 그렇게 한 것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가족단위 참가자들이 많아 좀 놀랬다. 기존 수강생들은 대다수가 단독으로 참가를 하거나 친구끼리 참여를 했었기 때문이다. 마이리얼트립에서는 모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고, 일가족이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가족 단위로 트레킹을 행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좋았다.

 

오늘 마이리얼트립에서 인왕산 역사트레킹에 대한 리뷰 메일을 받았다. 내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문서 형식의 리뷰를 보니 좀 신기한 느낌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이런 방식의 리뷰는 흔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잘 보시라! 성적이 꽤 괜찮지 않나? 올 A+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도 못하고 성적도 꽝이었는데... 역사트레킹 때문에 좋은 성적표도 받아보네~^^

 

ps. 코로나 때문에 아주 버라이어티했던 2020년도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 저런 뜻하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니 기분은 좋다. 좋은 성적 받았으니 누가 표창장 안 주나...ㅋ

 

 

 

 

 

 

 

 

 

 

 

11월 21일 토요일.

 

좀 늦은 후기. 이날 서대문 독립공원에서는 <해방전후항일통일민주애국민간인학살 진혼제>라는

아주 긴 이름의 진혼제가 있었다. 무대는 옛 서대문 형무소의 사형장이 보이는 곳에 마련됐다.

 

내가 서대문 독립공원을 얼마나 많이 왔겠는가. 더군다나 사형장은 서대문 안산 역사트레킹을 진행할 때 가장 먼저 발걸음을 하는 곳이 아니던가. 트레킹을 할 때 왔던 곳을 진혼제 진행요원 자격으로 방문했으니 좀

어리둥절했다.

 

여기서 잠깐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다. 지난 5월 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이 통과됐다. 이를 근거로 올해 12월 10일에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할 예정이다.

 

2기라고? 그럼 1기가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 진실화해위원회 1기가 있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약 5년에 걸쳐 활동을 했었다. 이때 한국전쟁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강기훈 유서 조작 대필사건 등등... 현대사에 굵직한 사건들이 1기 위원회의 활동에 의해 밝혀졌다. 특히 유서 조작 대필사건은 2015년에 대법원에서 진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주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왜 다시 2기가 필요한 것일까? 원작보다 낫다는 2탄은 없다는데 말야. 결론적으로 말하면 1기 위원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아주 드라마틱했던 만큼 진실을 밝혀야 하는 억울한 사건들이 넘쳐난다는 뜻이다.

 

그 사건의 당사자들(유족)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상황을 복사기처럼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너무도 깊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의 시각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 매우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날 어쩌다 스태프로 참가를 해서 진혼제를 디테일하게 기록하지는 못했다. 기억에 남는 건 불교인권위원회 대표인 진관스님이 위령 독경을 설하신 거였다. 진관스님? 내가 진관사 역사트레킹을 대표 상품으로 내세워서 그랬는지... 진관 스님의 독경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든 역사트레킹을 내세우려는 내 모습...^^

 

진혼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무대는 아시아1인극제 한국대표인 한대수 선생의 진혼굿이었다. 가수 한대수가 아니라 연극인 한대수! 한대수 선생은 경남 거창에서 귀농학교도 운영하시는데... 나도 귀농학교에서 얼마간 기거를 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이번 진혼굿에 보조로 참가한 것은 다 한대수 선생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사실 진혼굿을 위해 시간 투자를 많이 했다. 전날인 금요일 오후에 남대문 꽃 도매시장에 가서 장미꽃 100송이를 샀다. 내 평생에 장미꽃 100송이를 살 줄이야! 그 장미꽃은 진혼굿의 소품으로 이용됐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한대수 선생은 장미꽃으로 자신의 몸을 때렸다. 일명 등짝 스매싱을 스스로에게 날린 것이다. 도매점에서 가시 제거를 해줬는데 그거 안 했으면...ㅋ

 

장미꽃이 100송이나 이용됐으니 확실히 인상적인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일부러 끝물에 갔더니 10송이에 5천원을 달라더라. 그러니 100송이는 5만원. 하지만 문제는 100송이를 한 아름 안고 남대문에서 안국역까지 걸어갔다는 거였다. 꽃다발을 안고 택시 타기도 뭐하고, 전철은 타면 오히려 돌아가고. 그래서 남대문에서 안국역까지 걸어갔다. 안국역에 있는 지인분의 사무실에 장미꽃을 보관하려고. 가뜩이나 왼쪽팔이 엘보우로 파스 신세를 지고 있는데 말야.

 

그 지인분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넋전과 피켓을 만들었다. 넋전은 넋을 담은 종이인형이다. 새벽까지 진혼제 준비를 하느라 정말 분주했다. 정말 오랜만에 새벽까지 행사 준비를 해봤다. 그러고보면 난 행사 체질인가?^^

 

수많은 애국민주 열사들이 피눈물을 흘렸던 서대문 형무소 울타리에 넋전을 걸어두니 좀 묘한 감정이 들더라. 뒤로는 인왕산이 보이니 더 그랬던 거 같다.

 

이제 더이상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PS. 장미꽃 이야기나 트레킹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좀 가볍게 한 것이 사실이다. 진혼제를 스케치하는 것보다 내 자신의 활동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작성한 글이니 감안을 하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진혼제를 희화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꼭 알아주시길~

 

 

 

 

일상을 확 바꿀 무언가가 일어났으면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무언가가 내 현실에서 확 일어났으면 했다. 큰 데미지를 입더라도 감수할 테니까 그런 일이 발생했으면 했다. 모 아니면 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처럼 말이다.

기적, 영적체험, 마법 등등... 어떤 식으로 표현해도 상관없다.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손가락질이 뻔했지만 그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것들에 더 관심이 커져갔던 게 사실이었다. 혹세무민한 미신을 동경한다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었다.

오죽했으면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나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귀신의 멱살을 잡고 다음주 로또 번호를 딸 생각이었지. 그런데 멱살 잡은 귀신이 나보다 더 멍청하면 어쩌지?^^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사고에 마음을 두었던 건 현실의 삶이 녹녹치 않아서였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현실 생활이 술술 잘 풀리고, 통장 잔고가 넉넉한 사람들이 뭐하러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것들을 동경하겠는가? 현재의 삶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데 뭐하러 혹세무민한 미신을 동경하겠는가? 로또 번호도 모르는 멍청한 귀신의 멱살을 잡고 흔드느니 자신의 자산 관리사와 글로벌 증시에 대해서 환담을 나누는 게 더 남는 장사지.

불혹이 훨씬 넘었음에도 철딱서니 없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스스로도 웃기기는 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현재의 삶은 점점 더 빈곤해졌고,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발생했으면 하는 생각은 늘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능력치를 한 번에 확 뛰어넘을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 잠재적 능력치를 확 발현시킬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이미 마법을 체험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체험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걸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이래서 사람이나 귀신이나 무식하면 안 된다니깐!

 

 

 

 

 

내가 체험한 마법은 숲길 걷기다. 숲길 걷기는 매우 손쉬운 활동이지만 내게는 큰 마법과도 같은 행위였던 것이다. 물론 한 번에 확 바뀌는 건 아니었고 역사트레킹처럼 느림보처럼 스며들었다. 역사트레킹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숲길의 매력에 빠졌었는데 예전에는 그 진가를 잘 몰랐던 것이다.

역사트레킹 코스를 세팅하면서 항상 숲길 비율에 신경을 썼었다. 아무래도 트레킹 참가자분들의 연령대가 높으니 숲길 걷기에 대한 갈망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리고 떠들썩한 것보다는 한적한 것이 좋으니 숲길로 세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인파에 밀리고 자동차 매연을 마셔가면서 걸을 거면 뭐하러 트레킹을 하시나.

 

그렇게 숲길을 우선해서 걸으니 참가자들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리딩을 하는 나도 좋았다. 이상하게 숲길을 걷고 오면 무언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업이 됐다. 숲길을 걷고 난 후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은 항상 방긋하게 웃고 있었다.

분명 내 삶은 녹녹치 않았다. 하지만 숲길에 다녀오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었던 것이다. 억지웃음이 아닌 생기가 있는 웃음이었다. 숲의 기운을 듬뿍 받은 그런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숲은 온갖 생명이 꿈틀대는 작은 우주이기에 그곳을 탐방하고 오면 생명의 기운이 내 몸 속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숲이 주는 이런 마법을 늦게나마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까지 괜히 엉뚱한 곳에서 멱살잡이나 하고 있었던 셈이다. 멱살 흔든다고 로또 번호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야.

 

숲에서 마법을 몸소 체험했으니 이제는 그 값을 조금이나마 하려고 한다. 복채를 낼 돈은 없으니 몸으로 해결할 것이다. 숲에 들어갈 때는 좀 더 신중하게 몸가짐을 할 생각이다. 숲을 더 아끼고 사랑할 생각이다.

숲의 정령들, 아니 한국이니까 한국식으로 하자. 산신령님의 진노를 사지 않게 숲에서는 경거망동 하지 않고 숲과 물아일체가 될 생각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산신령이라니! 혹세무민한 미신 같은 이야기를 설파한다고 욕을 해도 상관없다. 산신령이든 정령이든 숲을 지켜주는 존재는 내게는 너무나 소중할 뿐이니까.

 

 

 

 

 

 

 

 

 

 

 

 

 

11월 5일 목요일. 양평 역사트레킹 약식후기

 

고대하던 양평 트레킹을 행하는 날! 집을 나설 때는 꽤나 쌀쌀했는데 딱 트레킹을 행할 때가 되니 기온이 올랐다. 가을 트레킹을 하기에 트레킹하기 딱인 날씨였다. 처음 뵙는 분들도 오시고 해서 총 11명이 함께 걸었다. 이날 양평 역사트레킹도 벙개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벙개 치고는 많은 분들이 오셨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양평역 -> 양강섬 -> 양근성지 -> 김종환 노래비 -> 물소리길 -> 갈산공원 -> 수변길

 

양평 역사트레킹은 이런 형식으로 진행됐다. 양평 트레킹은 완경사임에도 볼거리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강을 끼고 걷는 길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코스는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있어 지루할만 하면 새로운 아이템이 나타나곤 했다.

 

섬에 입도(?)를 하기도 하고, 가톨릭 성지를 방문하고, 노래비에서 노래도 듣고, 출렁다리도 건너고... 이러니 지루한 면이 확실히 덜한 것이다.

 

기온이 봄날같이 올라 신나게 걸을 수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먹는 점심은 또 어떤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렇게 트레킹팀은 재미나게 가을 소풍을 행하고 왔다. 모든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함박 웃음이 피었다.

 

덕분에 나도 코에 제대로 바람 좀 넣고 왔다. 양평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유명한 용문산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남한강을 바라보면서 눈도 호강하고, 코도 호강했다.

 

한편 호사마다라고 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양평 트레킹을 위해 약 반 년 정도를 준비를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준비한 걸 다 쏟아내지 못했다. 자료도 진짜 많이 준비했는데 그걸 다 못 풀어냈다. 뭐 어쩔 수 없지. 다음에 풀어내야지.

 

코로나 때문에 무척이나 어수선했던 2020년도도 이제 11월이다. 곧 있으면 송년회 시즌이 다가온다. 그넘의 코로나 땜시 트레킹 다운 트레킹을 못해 본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뭐 벙개트레킹으로 일정 부분 벌충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2021년에는 다시 정상적으로 트레킹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보내기에는 이 순간들이 너무 아쉽다. 정형외과 신세를 질만큼 지난 몇년간 발에 땀나도록 답사를 다녔고, 이제 슬슬 그 결실을 맺으려고 하니까 '펑'하고 코로나가 터졌던 것이다.

 

돈을 못 버는 건 그렇다치고 제대로 악셀 한 번 밟아보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1년을 낭비하니 정말 아쉬울 수밖에!

 

그럼에도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트레킹에 대한 애착이 더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서울과 인근 지역에 걷기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이 고맙다. 내 두 다리로 그 곳들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맙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트레킹팀이 고맙다. 그렇게 트레킹을 하면서 '고맙다'라는 말들을 새겨볼 수 있어 고맙다.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난 야외 활동이 더 좋다. 아웃도어 활동을 통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발산하니까. 그렇게 좋은 기가 감도니 트레킹을 더 많이 사랑할 수밖에...!

 

그나저나 코로나에 때문에 방구석에만 있으면 정말 우울증 걸릴 거 같더라. 언택트 시대가 각 개인들의 정신 지수를 급격하게 떨어뜨린 것이다. 그게 정말 무서운 거다. 그럴수록 트레킹이 더 고맙다.

 

우리 함께 역사트레킹 하러 떠나요! 이 와중에도 광고 때리고 간다^^;

 

 

 

 

 

 

 

 

 

 

 

 

 

 

 

 

 

 

늦게 올리는 금선사 트레킹 약식후기...

 

10월 29일 목요일.

 

이날은 우여곡절 끝에 모임이 성립된 금선사 벙개트레킹을 행하는 날이었다.

어지어찌하여 최소 인원이 달성됐고 트레킹팀은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과천골 트레킹이 추석 전에 행해졌으니 거의 한 달만에 트레킹을 행한 셈이다.

그런데!!! 이날 1년 만에 얼굴을 내비친 분들도 계셨다. 한 달도 아닌 거의 일 년 만에 얼굴을 뵙다니!

 

그넘의 코로나 땜시... 여러가지로 참 불편합니다. 반가운 얼굴도 자주 못 보니...

하여간 자주 나오세요. 마스크 쓰고 안전수칙을 지키면 트레킹만큼 좋은 야외활동도 없으니까요!

 

트레킹팀은 메인 탐방지인 금선사를 향해갔다. 금선사는 무학대사가 창건한 서울 구기동에 있는 작은 사찰이다. 북한산의 남쪽 봉우리가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그런 멋진 곳이다.

금선사를 가기 위해서는 3,6호선 불광역에서 하차한 후 구기동행 시내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트레킹 전부터 금선사에 대해서 격찬을 했다. 그래서 트레킹팀도 큰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금선사의 단풍이 여물지 않았다. 이거 어쩌나~ 그리고 여름에는 콸콸콸 시원하게 흘렀던 계곡이 싹 말라있던 것이다. 되게 황량하더군. 트레킹팀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드렸던 것이다. 난 구라쟁이! ㅋㅋㅋ

 

금선사를 벗어나 점심을 먹었다. 맛난 것들을 많이 싸오셔서 덕분에 아주 잘 먹었다.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

 

이후 트레킹팀은 탕춘대능선을 따라 이동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가을 운치를 느꼈다. 금선사에서 못 느낀 가을 분위기를 탕춘대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느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북한산 자락길이었는데... 거기에 가보니 알록달록한 낙엽이 쫘악 깔려있었다. 누구는 그 낙엽을 하늘로 뿌리며 소녀 시대로 돌아갔다. ^^

 

그 단풍들이 너무 좋아서인지 집에 안 돌아가려고 하시더군. 그래서 제가 제발 집에 가시라고, 마을버스 바로 앞까지 안내해 드렸다. 그런데도 집에 안 가시려고 하더군. 혹시 지금도 집에 안 가시는 거 아니에요?ㅋ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금선사 트레킹은 무사히 종료가 됐다. 너무 신이 나서 집에 안 돌아가려고 하는 것만 빼놓고는 뭐...ㅋ

 

가을단풍이 뭐라고 사람들을 가출시키는지! 하긴 가출할만도 하죠. 그렇게 알록달록하고 예쁜데...

 

 

 

 

 


 

 

 

 

 

*** 아래는 금선사와 관련된 이야기:

https://brunch.co.kr/@historytrekking/213<= 전문을 보시려면 클릭

 

 

 

● 농산 스님이 정조의 아들?

 

1787년(정조11)에 수빈 박씨가 후궁으로 간택된다. 하지만 바로 순조를 낳지는 못했다. 왕위를 계승할 후손이 없었으니 정조는 얼마나 마음이 타들어갔겠는가. 그런 상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순조의 탄생과 관련하여 주술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용파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용파 스님은 당시 부과되는 부역이 너무 과하여 불교계가 피폐해지자 이를 타파하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셨다. 학수고대한 끝에 임금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정조였다. 대왕 앞에 나가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그 부역을 면하게 됐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걸렸다. 왕위를 이을 왕자를 낳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정조께서는 용파가 보통 승려가 아니었음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후사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문제가 해결됐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임금과의 거래의 산물이니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용파 스님은 이 일이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삼각산(북한산) 금선사에 있는 농산 스님을 찾아갔다. 자초지정을 들은 농산 스님은 금선사에 있는 목정굴에서, 용파 스님은 수락산에 있는 내원암에서 300일 관음기도를 올리게 된다.

 

드디어 300일이 되던 날이었다. 이날 수빈 박씨는 한 스님이 나타나 음력 6월 18일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때 금선사 목정굴에서 기도를 올리던 농산 스님이 가부좌를 튼 채로 열반에 들게 된다. 마침내 음력 6월 18일이 됐고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왕자 아기씨가 태어났다. 이를 두고 농산 스님이 환생을 하여 수빈 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 설화로 따지면 농산 스님이 정조대왕이 아들이 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어쨌든 왕위를 이을 왕자가 태어났고, 금선사에서는 매해 6월 18일에 순조의 탄신제를 올리고 있다. 더불어 금선사와 내원암은 정조 재위 기간에 크게 중창된다.

 

 

 

 

 

 

 

 

 

 

 

 

 

 

 

 

 

 

원고지 750매 짜리 트레킹 원고가 있습니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쉽지만 이번엔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작가님의 귀중한 원고를 발견하였고, 출판시장을 고려하여

원고를 어떠한 방향으로 기획하여 출간해볼까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보고

거듭 논의를 거쳤습니다만, 저희가 생각하는 출간의 방향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 에디터에게 받은 메일이다. 보다시피 내 원고는 퇴짜를 맞았다. 출판이 또 엎어진 것이다.

벌써 3번째다. 어차피 계약서도 안 쓴 처지라 뭐 크게 손해본 것은 없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사실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핸드폰 번호로 전화까지 했다. 이메일은 공개했지만 전화번호는 좀 숨겼었는데 그걸 찾아내서 전화를 해줬으니... 진도가 꽤 나갔던 셈이다.

담당 에디터는 트레킹 도서 발간에 강한 의지를 여러번 표명했었다. 그런 의지 표명이 좋았기에 일이 순탄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 꼬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간에 메인 담당자가 바뀌었는데... 그때부터 좀 감이 이상했다. 그냥 계속 나아가야지 왜 중간에 바뀌지? 그 바뀐 담당자와는 계속 메일로만 의견 교환을 했다. 그런데 메일로만 의견을 나누면 한계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전화도 병행을 하는데... 그 바뀐 담당자와는 전화 통화 한 번을 못해봤다.

내가 전화를 할 때는 받지를 않았다. 또한 전화를 주겠다는 시간에 전화를 주지 않았다. 해당 시각을 넘겼을 때 전화가 아닌 메일을 보냈다. 여기서부터 확 꼬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일처리를 이렇게 하나?'

일이 안 되려니 애먼되서 꼬이더라. 하여간 그렇게 엎어졌고 참 거시기했다. 더이상 이야기하면 좀 구질구질할 거 같아서 여기서 멈추겠다. 그런데 마음이 이런 건 어쩔 수가 없다.

- 오빠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ㅋ

예전에 개그 프로그램 중에 이런게 있었지. 괜히 김칫국부터 마셨던 거야...ㅋ

- 우리는 역사서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내용을 보강해주세요.

- 적어도 30꼭지는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분량으로는 부족합니다.

- 트레킹에 중점을 둔 실용서가 우리의 방향입니다. 맛집이나 주변관광지를 포함하는 건 당연하고요.

- 글 앞뒤로 에세이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을 조절해주세요.

이제까지 내 원고와 관련된 의견들이다. 뭐 다른 말로 하면 원고가 '까인' 이유다.

3개의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들은 의견들이라 일률적이지가 않다. 어디서는 역사에 방점, 어디서는

실용서로 만들겠다... 아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거지!

그냥 내 스타일을 유지할란다. 그게 서로한테 더 나을 거 같군.

글을 마치기 전에 광고나 해본다. 광고하면서 거시기한 마음을 달래본다.

현재 총 25편의 역사트레킹 글이 있다. 대충 200자 원고지 750매 정도의 역사트레킹 글이 있다는 뜻이다. 750매에 사진 붙이고, 지도 붙이고 하면... 트레킹 단행본이 뚝딱 나온다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 땜시 트레킹이 대세라는데... 혹시 역사트레킹 책에 관심있는 출판사 없수?

글의 퀄리티가 좋은지 나쁜지는 브런치에 직접 가서 확인할 수 있으니 가서 봐주시기라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트레킹은 생각창고> 는 산티아고 2편을 제외하고 16꼭지를 작성했어요. 200자 원고지 기준, 30~35매 정도로 작성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hinktrekking

<함께걷는역사트레킹>은 7꼭지입니다. 200자 원고지 기준, 30매 정도로 작성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withtrekking

한마디로 현재 역사트레킹 관련 글은 23편입니다. 산티아고 2편을 포함하면 총 25편이 됩니다. 바로 출판이 가능한 분량이지요. ^^

 

 

 

 

 

처음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을 시작했을 때 몇 가지 기획 의도가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1. 트레킹을 통해 서울의 명소를 탐방한다.

2. 서울에도 울창한 숲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곳에서 걷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3. 적절한 해설을 통해 해당 명소의 이해도를 높인다.

 

이외에도 만보 걷기를 유도하여 건강한 삶을 추구, 바쁜 도시인들에게 힐링 선사 등등...

이런 것들을 염두해두고 역사트레킹을 진행했었다. 그래서 해당 코스를 짤 때도 기획 의도에

맞추려고 무지 노력을 했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잘 될 때도 있었고, 안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니 1년간 위탁을 받아 공무원 강의도 진행했었다. 또한 까다로운 기업체 강의도 진행했었다. 그때는 나도 잘 나갔다. 강의료도 좀 짭짤했다...ㅋ

 

바로 얼마전 백사실계곡 역사트레킹을 진행했었다. <마이리얼트립>이라는 플랫폼에서 진행을 했었는데 엄마와 딸이 신청을 했다. <마이리얼트립>의 특징은 가족 단위 신청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진관사 역사트레킹에서도 3인 가족이 와서 알콩달콩하게 트레킹을 즐겼다.

 

그 백사실계곡 역사트레킹에 참가해주신 분이 장문의 후기를 남겨주셨다. 조목조목 여행 후기를 남기셨는데 참 잘 작성해주셨다. 한마디로 찰진 후기를 남겨주신 것이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역사트레킹의 기획 의도와 딱 합치되는 내용을 서술해주셨다는 것이다.

 

이런 후기도 피드백 받고 뿌듯하다. 후기는 리딩자를 춤추게한다.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칭찬해주고 있다...ㅋ

 

ps. 참가자들에게 후기 강요 안 했어요. 자발적으로 작성해주신 거에요~^^;

ps2. 10월 24일에 성북동 역사트레킹 가셨다 찰진 후기 작성해주실 분은 아래 링크 클릭클릭!

 

https://www.myrealtrip.com/offers/85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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