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천사성당(Church of Our Lady of the Angels)과 베르나드타워(Bernard So Tower): 성당과 타워는 인접해있지만 별개의 건물이다. 타워는 감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재미난 스페인 12편> 이비아

왜 프랑스 땅에 스페인 영토가 있어?

유럽을 여행할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고풍스러운 건축물도,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아니었다. 바로 국경 넘기였다.

필자에게 기존의 국경이란 절대 넘을 수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날카로운 철조망이 2단으로 쳐져 있고, 각종 감시장비가 빽빽이 운영되어 있던 곳. 긴장감, 살벌함, 매서움 등등... 이런 이미지가 뇌리에 박힐 수밖에 없었던 건, 필자가 군복무를 DMZ 부근에서 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철책선이 국경선이었고, 그 철책선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금지된 선이었다.

전날 피레네산맥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 안도라에서 1박을 했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 잠을 잤더니 얼굴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물론 아침에 거울을 봤을 때는 어김없이 오징어(?)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지만...

이번에 탐방할 곳은 이비아(Llivia)라는 곳이다. 리비아? 북아프리카에 있는? 아니다. 영어로 읽으면 ‘리비아’가 맞지만 스페인어로는 ‘이비아’로 발음한다. 안도라는 어찌어찌해서 이름을 들어본 분들이 있을 테지만 이비아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일 것이다. 이비아도 안도라처럼 피레네산맥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두 도시는 약 5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두 지역을 묶어서 탐방할 수도 있다.

 

 

 

* 이비아: 이비아성에서 바라본 모습. 하단 중앙에 천사성모 성당이 보인다.

 

 

 

그런데 그 낯선 이비아에는 뭐하러 갔는가? 이비아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갔다. ​이비아는 프랑스 영토 안에 있는 스페인 땅이다. 혹시 칼리닌그라드라는 지명을 들어보셨는가?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 동북쪽 국경과 면해 있는 곳으로 러시아의 고립 영토다. 바닷길을 제외하고,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 본토로 가려면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를 거쳐 가야 한다.

이렇듯 다른 나라에 둘러싸여서 본토와 외떨어진 영토를 고립 영토라고 부른다. 스페인에 둘러싸여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도 대표적인 고립 영토다. 또한 북아프리카 모로코 영토에 둘러싸인 세우타와 멜리야도 스페인의 고립 영토다.

그래도 칼리닌그라드와 지브롤터는 바다와 면해 있어 바닷길로 본토에 닿을 수 있다. 세우타와 멜리야도 마찬가지로 여객선을 타면 스페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비아는 무조건 프랑스 땅 2km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다. 이게 참 재밌는 게 어쨌든 국경을 넘는 거라 스마트폰 통신사가 달라진다.

사실 이비아는 필자 같은 뚜벅이 여행자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여행 초기에 배치해서 찾아갔다. ​먼저 안도라에서 스페인의 라세우두르젤(La Seu d'Urgell)로 갔고, 다시 프이그세르다(Puigcerdà)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익숙하지 않은 지명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두 도시의 이름을 발음하기가 버겁다. 차라리 ‘안도라’는 세글자로 떨어져서 발음하기가 편하기라도 하지... 이렇게 유명하지 않은 외국 답사지를 각인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런 어려움은 이 책을 쓰는 내내 필자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 천사성모성당: 중심거리에서 바라본 성당의 종탑

 

 

 

긴장을 풀고 찬찬히 살펴보자. 라세우두르젤은 안도라 편에서 언급이 됐었다. 안도라는 입헌공동군주제라는 독특한 형태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 대통령과 스페인의 우르헬 교구의 주교가 그 공동군주들이다. 그 우르헬 교구가 있는 도시가 바로 라세우두르젤이다. 프이그세르다는 프랑스 국경과 맞닿아 있는데 이비아로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제격인 곳이다.

안도라 -> 라세우두르젤 -> 프이그세르다 -> 프랑스영토(유흐 / 부흑-마담므) -> 이비아

복잡해 보이지만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았다. 총 이동 거리는 약 70km 정도이다. 스페인 영토인 프이그세르다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프랑스땅을 넘어 이비아로 갔다. 갈아탄 버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버스만한 크기였다. 그래도 나름 국경을 넘는 버스인데 아주 소박하고 정감 있어 보였다. 프이그세르다에서 이비아까지 프랑스 영토내에서 직선으로 도로가 연결되는데 그 도로를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동네가 부흑-마담므(Bourg-Madame)이고, 서쪽에 있는 동네가 유흐(Ur)이다.

이비아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세르다냐(Cerdaña)라는 지역을 알아야 한다. 스페인에 속한 이비아와 프이그세르다는 물론 프랑스령인 유흐와 부흑-마담므도 세르다냐에 속하기 때문이다. 세르다냐는 전체면적이 1,086㎢로 인천광역시(1,067㎢) 정도의 크기다. 지금은 남북이 갈려 있는데 남쪽은 스페인 영토로 바이샤 세르다냐(Baixa cerdanya)로 북쪽은 프랑스 영토로 알타 세르다냐(Alta cerdanya)로 불린다. 그 프랑스 세르다냐 지역 속에 스페인의 이비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종교전쟁이라고 불렸던, 30년 전쟁이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결됐음에도 스페인과 프랑스는 계속 전쟁을 이어갔다. 그러다 1659년, 피레네조약에 의해서 종전을 하게 됐는데 이때 스페인은 세르다냐 북부지역을 프랑스에 넘겨주게 된다. 협정을 통해 프랑스는 북쪽 세르다냐의 33개 마을을 획득하게 됐다. 하지만 이비아는 제외되는데 스페인측에서 이비아가 ‘마을(village)’이 아닌 ‘도시(town)’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 이비아성: 많은 부분이 폐허로 남아 있다.

 

 

 

피레네조약을 통해 프랑스가 얻은 영토를 생각해보면 이비아는 작은 규모였다. 챙긴 전리품이 두둑한데 굳이 타운 하나 때문에 전쟁을 이어나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해서 이비아는 스페인영토로 남게 됐다.

이비아는 부메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크기가 약 12.9㎢ 정도로 서울의 금천구(13㎢)와 비슷한 규모다. 인구는 2023년 기준으로 약 1,500명 정도에 달한다. 행정구역은 카탈루냐 지역, 지로나 주에 속한다.

사실 이비아는 로마시대부터 그 중요성이 부각된 곳이었다. 이름도 이곳에 주둔했던 로마의 장군인 율리아 리비카(Julia Lybica)에서 따온 것이다. 이비아는 한때 세르다냐의 도읍지 역할을 했다.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중심가를 지나니 언덕을 향해 자리잡은 천사성모 성당이 보였다. 이 성당은 16세기에 완성됐는데 도시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채가 당당했다. 성당의 입구에는 베르나드타워라는 탑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탑이 있어 성당의 외형이 더 다채로워 보였다.

이비아 탐방의 정점인 이비아성(castell de Llivia)에 올라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비아성은 상당 부분 파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상부에 올라서니 주위 풍광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 로마시대부터 오랫동안 왜 이곳이 요충지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 이비아: 평원을 피레네의 고봉들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분명 피레네 산맥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 일대는 큰 평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피레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널찍한 공간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피레네의 고봉들이 평원을 숨겨놓고 있는 형상이었다. 평원과 고봉들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꽤나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그런 굉장한 풍광들이 이슬비와 함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약간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DMZ에서 보초를 설 때였다. 어둠이 거치고 여명이 밝아올 무렵, 철책선 건너편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소총에 힘을 꽉 쥐고, 초소를 나와 철책선 너머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침투조인가? 아니었다. 멧돼지들이었다. 한 마리가 아니라 가족단위였다. 먹이를 찾아 철조망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중에는 고라니들도 보였다. 말 그대로 DMZ은 야생동물들의 천국이었다. 야생동물들은 자유롭게 DMZ 일대를 누비는데 왜 인간들은 날카로운 철책선으로 금을 그어 서로를 분리시키는가?

국경 같지도 않은 국경을 마을버스로 넘으며 필자의 20대 시절을 되돌아봤다. 프랑스에 있는 스페인 고립영토 이비아에서.

 

 

*이비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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