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비야대성당

 

 

 

<재미난 스페인 15편> 세비야

섞어찌개 같은 세비야

여행에도 궁합 같은 것이 있을까? 남여간의 사랑의 척도를 가늠하는 궁합이 여행지와 여행자간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괜히 이상하게 끌리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이 생기고, 신나는 일들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스페인에도 그렇게 궁합이 맞는 도시가 있었다. 어디? 안달루시아 지역의 세비야(Sevilla)다. 세비야가 속한 안달루시아 지역은 남쪽에 있어서 그런지 스페인의 남도라고 불릴만 한 곳이다.

세비야를 첫 방문했을 때는 새벽 시간이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편도 9시간 짜리 심야버스를 타고 세비야 아르마스 버스터미널에 하차했었다. 그때가 1월경이라 출발지였던 리스본은 좀 쌀쌀했었다. 언제 엄동설한이 닥칠지 모르는 1월 달, 그것도 초행길 어두운 새벽 시간에 도착이라니! 하지만 세비야는 세비야였다.

스페인의 남도라 그런지 동장군은 찾아볼 수 없었고 동네가 왠지 모르게 아늑하게 느껴졌다. 터미널 옆쪽에 강변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강은 과달키비르강(Guadalquivir)이었다.

과달키비르강은 길이가 657km에 달하는데 스페인에서 5번째로 긴 강이다. 안달루시아 동북쪽에 있는 하엔주에서 발원한 과달키비르강은 코르도바를 거쳐 세비야로 흐른 후 카디스에서 대서양으로 합수된다. 리스본을 거쳐가는 타호강, 포르투를 거쳐가는 두에르강과 달리 과달키비르강은 스페인에서만 흐른다.

 

 

 

* 과달키비르강: 사진 오른쪽에 황금의탑(Torre del Oro)이 보인다. 1220년대 만들어진 탑. 과달키비르강에 딱 붙어 있다. 강 주변을 감시하는 탑으로 이용됐다. 이후 행정사무소, 감옥, 해군사령부 등등... 꽤 다양하게 쓰였다. 탑의 둘레가 4각이나 8각이 아닌 12각이다. 과달키비르강은 안달루시아 지역을 동서로 흐르는 강으로 그 길이가 657km에 달한다. 세비야에서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코르도바가 나오고, 하류로 내려가면 카디스가 나온다. 과달키비르강은 카디스에서 대서양으로 합수된다. 스페인어로 oro는 황금이란 뜻이다.

 

 

 

세비야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과달키비르강에는 타르테소스(Tartessos)라는 고대 문명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타르테소스? 무척 낯선 이름이다. 타르테소스는 이베리아반도의 원주민들과 페니키아 문명, 그리스 문명이 결합하여 형성된 왕국이었다. 기원전인 BC12세기경에 건립됐는데 왕이 통치하는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이베리아반도 최초의 문명국가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700년대에 60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던 타르테소스는 기원전 500년경, 페니키아 문명을 뒤이은 카르타고 세력들에 의해서 사라졌다.

고고학적 발굴들이 진행되면서 타르테소스 왕국은 수면으로 올라왔지만 아직도 명징하게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은 아니다. 기록에 공백이 생긴다면 상상력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도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처자식을 죽인 대가로 12개의 과업을 수행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서쪽 바다에 떠 있는 에리페리아라는 섬에 가서 게리온의 소를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성공했을까? 헤라클레스는 천하장사가 아니던가! 그런데 게리온을 두고 타르테소스의 왕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헤라클레스가 세비야를 만들었다는 설화도 있다. 이게 가능할까? 그리스 로마신화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페니키아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헤라클레스와 세비야와는 관계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남겨두자. 그렇지만 세비야 사람들의 헤라클레스에 대한 사랑은 그것대로 존중해주고 싶다. 누가 뭐라고 하든 세비야 사람들은 헤라클레스가 자신들의 도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세비야 시청에는 헤라클레스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시청에서 트램이 운행되는 방면으로 가다 보면 머큐리 분수가 나온다. 그 옆쪽으로 공간이 좀 있는데 플라멩코 거리공연이 자주 펼쳐지곤 한다. 역시 세비야는 세비야였다. 플라멩코를 길거리 공연으로 관람할 수 있다니!

 

 

* 플라멩코: 플라멩코의 고장답게 세비야에서는 거리공연도 펼쳐진다. 뒤쪽에 머큐리 분수가 보인다.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듯 붉은색 플레어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플라멩코 춤을 추고 있었다. 열정을 불태우듯 그녀들의 몸짓은 더욱더 강렬해져 갔다. 그런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필자의 몸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허리를 흔들거리며 발을 굴렸다. 우리 사물놀이 판에 들어갔으면 어깨춤을 들썩였겠지만, 플라멩코를 보고 있었으니 하체가 먼저 반응하는 듯했다.

플라멩코(flamenco)가 출현한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민족의 용광로라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발자취를 남긴 곳이다. 타르테소스인들을 시작으로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유대인 등이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특히 페니키아, 그리스, 카르타고 같은 해양 세력들은 안달루시아의 긴 해안선을 따라 정착지를 만들어갔다. 이에 비해 이베리아반도 북쪽과 서쪽은 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이후로도 안달루시아에는 고트족과 이슬람족, 그리고 집시족들도 들어오게 된다. 플라멩코는 이런 안달루시아의 용광로 같은 문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플라멩코는 여러 문화가 융합되어 발현된 것이다. 안달루시아 음악에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가 녹아들었고, 거기에 가톨릭과 유대인들의 문화까지 더해지게 된다. 15세기 전후로 유입된 집시족들의 문화까지 가미가 되어 플라멩코라는 퍼즐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플라멩코는 춤, 노래, 연주로 구성된다. 노래와 연주는 음악으로 묶일 수 있으니, 크게 보면 춤과 음악으로 나눌 수 있다. 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이용하여 추는 터라 퍼포먼스가 상당히 강렬하다. 에너지 소모가 강한지 공연 틈틈이 바나나를 먹는 장면이 목격될 정도였다. 음악은 칸테(Cante)라 불리는 노래와 기타연주가 기본인데 그 외에도 퍼커션 같은 타악기도 흥을 살리는 데 이용된다.

‘아름다우면서도 한스럽다! 정열적인 충격이었다!’

이게 플라멩코에 대한 감상평이었는데 필자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어떤 수강생분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분도 필자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씀해주셨다.

 

 

* 세비야대성당: 트램길 옆 대성당

 

 

 

이제 트램 레일을 따라 세비야 성당으로 이동한다. 시청 서쪽에 누에바 광장이 있는데 이곳이 트램의 종점이다. 이곳에서 트램을 타고 세비야 광장으로 갈 수도 있지만 겨우 한 정거장 거리라 그냥 걸어갔다.

세비야대성당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가장 큰 성당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40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무려 100년이 훨씬 넘는 1528년에 완공이 됐는데 원래 자리에 있던 이슬람 모스크를 헐고 성당을 짓게 됐다.

국토회복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가톨릭 왕조 안에 사는 이슬람인들을 '무데하르(mudéjar)'라고 칭했고, 이들의 예술을 무데하르 양식이라고 불렀다. 세비야대성당의 동쪽편에는 무데하르 양식으로 만들어진 히랄다(giralda)라는 종탑이 있다. 이슬람 무어인들의 통치 시기에 모스크의 첨탑(minaret)으로 만들어졌다가 이후 성당의 종탑으로 변형된 것이다. 히랄다탑은 높이가 무려 105m에 달하는데 탑 최정상부에 풍향계를 든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히랄다(giralda)는 스페인어로 '바람개비' 혹은 '풍향계'를 뜻한다.

이제까지 거대한 용광로라는 시점으로 세비야 일대를 둘러봤다. 아침부터 사대문 일대를 분주히 오갔던 소설가 구보씨처럼 세비야의 구도심을 오갔는데도 빠진 탐방 포인트들이 많다. 그 점이 좀 아쉽다. 열심히 탐방을 했더니 배가 고프다. 무엇을 먹을까? 섞어찌개가 생각나네. 정확히는 잡탕찌개다. 필자도 여행에 도가 텄나 보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잡탕찌개를 끓이고 있으니...

옆에서 잡탕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때 세비야와 궁합이 맞는 이유가 생각났다. 세비야는 많은 것이 섞인 잡탕찌개 같은 매력이 있는 곳이다. 내 여행이 잡탕찌개인 것처럼...

 

 

 

* 하랄다탑: 키가 큰 히랄다(giralda)탑이 보인다. 무어인들의 통치 시기에 모스크의 첨탑(minaret)으로 만들어졌다가 이후 기독교인들이 세비야를 탈환한 후에 성당의 종탑으로 변형된다. 약 100미터 높이로 처음에는 르네상스식으로 만들어졌다 뾰족뾰족한 고딕 양식으로 변경된다. 탑 최정상부에 풍향계를 든 여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히랄다(giralda)는 스페인어로 '바람개비' 혹은 '풍향계'를 뜻한다.

 

 

 

* 타르테소스: 타르테소스의 세력권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표시했다. 지명은 편의상 현재의 명칭으로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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