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스테라: 더 걷고 싶어도 더 걸을 수 없는 곳. 순례자들은 대서양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순례길을 되돌아 본다.

 

 

<재미난 스페인 16편> 갈리시아

스페인의 땅끝마을 피스테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점은 갈리시아(Galicia) 지역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다. 약 800km의 순례길을 마친 순례자들은 비노(vino)잔을 기울이며 완주를 자축한다. 스페인에서는 와인을 비노라고 부른다. 이때 부지런한 순례자들은 다음 일정을 계획한다. 스페인의 서쪽 땅끝마을인 피스테라로 가는 사람도 있고,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가는 이들도 있다.

일단 서쪽으로 길을 잡아보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서쪽으로 약 90km를 가면 피스테라(Fisterra)가 나온다. 이곳을 스페인의 땅끝이라고 부르는데 순례길의 영향으로 다른 방위의 땅끝마을보다 훨씬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참고로 북쪽 땅끝은 바레스(Bares), 동쪽 땅끝은 크레우스(Creus), 남쪽 땅끝은 타리파(Tarifa)다. 피스테라와 바레스는 둘 다 갈리시아 지역에 속하고, 크레우스는 카탈루냐, 타리파는 안달루시아 지역에 속한다.

순례길 본선 구간인 800km를 걷고도 성이 차지 않은, 혹은 에너지가 넘치는 순례자들은 피스테라까지 3일을 더 걸어간다. 그조차도 부족한 순례자는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묵시아(Muxía)라는 어촌 마을까지 또 걷는다. 거의 900km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옛 로마인들은 이베리아반도 지역을 히스파니아(Hispania)라고 불렀는데 그중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세상의 끝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돌배에 실려 왔다. 이후 별들의 들판이라고 불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발견됐고, 그 자리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건립되니 유럽 각지에서 성지 순례를 오게 됐다. 이 스토리에 의거하면 피스테라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밑돌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 산티아고대성당

 

 

 

제자들이 돌배에 야고보의 시신을 실어 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석관을 말하는 듯싶다. 로마시대에는 돌로 만든 관, 즉 석관(石棺)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 먼 예루살렘 지역에서 그 험한 지브롤터 해협을 돌아 피스테라까지, 그들은 어떻게 올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돌로 만든 배가 물에 뜰 수 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에 호감을 느끼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이런 의문들이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성은 순례자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니까...

갈리시아는 이베리아반도 북서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독자적인 언어와 고유한 풍습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일각에서는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서쪽과 북쪽은 바다에 접해 있고, 내륙은 산지로 이루어졌는데 전체적으로 척박하다. 비도 많이 내리고, 습하다. 갈리시아 지역의 순례길을 걸을 때 소나기를 엄청 많이 만났는데 그때마다 우비를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그때 본 무지개들은 정말 예뻤다.

갈리시아는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고, 아직도 농업이나 축산이 중심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가난한 편이다. 갈리시아인들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고향을 떠나 유럽이나 남아메리카로 이주를 많이 했다. 가예고(gallego)는 ‘갈리시아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가예고=스페인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얼마나 많이 이주했으면 그런 도식이 생겼을까! 참고로 갈리시아의 이주민 후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켰던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있다.

 

 

 

* 묵시아: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갈리시아는 서쪽으로는 대서양, 위쪽으로는 비스케이만에 면해 있다. 지도에서 그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꽤 익숙한 윤곽선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들쑥날쑥한 해안선이 마치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를 보는 듯싶다. 얼핏 봤을 때 충남 태안과 서산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다.

갈리시아 지역과 우리나라 서해, 남해의 복잡한 해안선을 두고 리아스(rias)식 해안이라고 부른다. 리아스식 해안은 과거에 육지로 되어있던 부분이 지각운동으로 인해 가라앉거나 해수면이 상승하여 나타난 해안선이다. 산이나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온 형태니, 외형적으로 해안선이 들쑥날쑥하며 복잡하게 생겼다.

섬들도 많은데 과거 산의 정상부였던 부분만 바닷물 위로 남아 섬이 됐다. 해안선이 복잡하고, 아기자기하다 보니 빼어난 자연경관을 선사한다. 우리나라의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나 다도해상 국립공원을 생각해보시라!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다.

이런 리아스식 해안의 어원이 갈리시아 지역에서 나왔다. 스페인어로 리아(ria)는 ‘강의 하구’를 말하는데 이런 복잡한 해안을 말할 때 쓰인다. 뒤에 ‘s’가 붙어 복수형이 되어 리아스로 칭한다. 참고로 노르웨이에서 볼 수 있는 피오르(fjord) 지형도 매우 복잡한 해안선을 나타낸다. 피오르는 빙하에 의해 형성된 지형으로 바닷물이 U자 형태로 내륙 깊숙이 들어온 형태를 보인다. 갈리시아에 대해 알아보다가 세계지리까지 공부하게 됐다. 어쩌면 이것도 또다른 재미다.

 

 

* 피스테라: 0km 표지석. 뒤쪽으로 등대가 보인다.

 

 

 

피스테라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겨울이라 그랬는지 순례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을도 듬성듬성 있었다. 그런 만큼 지형은 척박해 보였다.

갈리시아를 위시한 스페인의 북부지역은 711년,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했을 때도 미점령지로 남거나 그들의 지배를 비교적 짧게 받았다. 이슬람교도였던 무어인들에 맞서 그들은 718년, 아스투리아스(Asturias)왕국을 건립하여 가톨릭 국가 재건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게 된다. 이런 저항이 가능했던 밑바탕에는 북서부 지역의 험준함이 큰 몫을 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군은 아스투리아스 산맥의 험준한 지형을 잘 이용하여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 이슬람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사실 서북부 지역은 로마도 가장 늦게 점령한 곳이다. 지형은 험준하고, 기후는 변덕스러우니 딱히 점령할 매력을 느끼지 못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원주민들이 로마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약탈해대니 아예 근원을 도려내고자 점령을 하게 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글 중에는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잘못됐다.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이지 세상의 땅끝은 아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호카곶(Cabo de Roca)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유럽 대륙의 서쪽 끝으로 리스본과 가까워 한국인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해안절벽이 우뚝 서 있고 대서양의 세찬 파도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호카곶이 바로 ‘세상의 끝’이다.

 

 

 

*호카곶: 포르투갈 리스본 인근에 있는 호카곶.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로마인들은 호카곶이 아닌 피스테라를 서쪽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세상의 끝으로 첫 번재 순교자였던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들어왔고, 이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옮겨졌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일반적인 어촌 마을보다 피스테라로 들어온 것이 상징성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피스테라가 아닌 호카곶을 세상의 끝으로 생각했다면? 호카곶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밑돌 역할을 했을까? 이런 상상을 해봤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걷고 싶어도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그 앞에 대서양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기쁨 반, 아쉬움 반의 마음을 품고 땅끝 등대 아래로 향한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순례자들의 온 몸을 깨끗이 씻어주는 듯하다. 그 바람을 맞으며 무언가 다짐을 했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기에 순례에 사용했던 물품들을 등대 아래에 내려놓기도 한다. 신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예전에는 불에 태우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환경 문제 때문에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렵다고 한다.

오래전 국토종단을 끝내고 해남 땅끝마을에 갔을 때다. 그때도 바람이 많이 불었다. 대서양 못지않은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 무언가 다짐을 했었다. 그렇게 땅끝마을들은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곳이다.

 

 

 

 

* 순례자: 갈리시아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서 우비를 썼다 벗었다를 자주해야 한다.

 

 

 

 

* 갈리시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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