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스테라: 더 걷고 싶어도 더 걸을 수 없는 곳. 순례자들은 대서양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순례길을 되돌아 본다.

 

 

<재미난 스페인 16편> 갈리시아

스페인의 땅끝마을 피스테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점은 갈리시아(Galicia) 지역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다. 약 800km의 순례길을 마친 순례자들은 비노(vino)잔을 기울이며 완주를 자축한다. 스페인에서는 와인을 비노라고 부른다. 이때 부지런한 순례자들은 다음 일정을 계획한다. 스페인의 서쪽 땅끝마을인 피스테라로 가는 사람도 있고,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가는 이들도 있다.

일단 서쪽으로 길을 잡아보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서쪽으로 약 90km를 가면 피스테라(Fisterra)가 나온다. 이곳을 스페인의 땅끝이라고 부르는데 순례길의 영향으로 다른 방위의 땅끝마을보다 훨씬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참고로 북쪽 땅끝은 바레스(Bares), 동쪽 땅끝은 크레우스(Creus), 남쪽 땅끝은 타리파(Tarifa)다. 피스테라와 바레스는 둘 다 갈리시아 지역에 속하고, 크레우스는 카탈루냐, 타리파는 안달루시아 지역에 속한다.

순례길 본선 구간인 800km를 걷고도 성이 차지 않은, 혹은 에너지가 넘치는 순례자들은 피스테라까지 3일을 더 걸어간다. 그조차도 부족한 순례자는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묵시아(Muxía)라는 어촌 마을까지 또 걷는다. 거의 900km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옛 로마인들은 이베리아반도 지역을 히스파니아(Hispania)라고 불렀는데 그중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세상의 끝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돌배에 실려 왔다. 이후 별들의 들판이라고 불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발견됐고, 그 자리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건립되니 유럽 각지에서 성지 순례를 오게 됐다. 이 스토리에 의거하면 피스테라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밑돌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 산티아고대성당

 

 

 

제자들이 돌배에 야고보의 시신을 실어 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석관을 말하는 듯싶다. 로마시대에는 돌로 만든 관, 즉 석관(石棺)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 먼 예루살렘 지역에서 그 험한 지브롤터 해협을 돌아 피스테라까지, 그들은 어떻게 올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돌로 만든 배가 물에 뜰 수 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에 호감을 느끼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이런 의문들이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성은 순례자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니까...

갈리시아는 이베리아반도 북서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독자적인 언어와 고유한 풍습을 가지고 있는 터라 일각에서는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서쪽과 북쪽은 바다에 접해 있고, 내륙은 산지로 이루어졌는데 전체적으로 척박하다. 비도 많이 내리고, 습하다. 갈리시아 지역의 순례길을 걸을 때 소나기를 엄청 많이 만났는데 그때마다 우비를 썼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그때 본 무지개들은 정말 예뻤다.

갈리시아는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고, 아직도 농업이나 축산이 중심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가난한 편이다. 갈리시아인들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고향을 떠나 유럽이나 남아메리카로 이주를 많이 했다. 가예고(gallego)는 ‘갈리시아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가예고=스페인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얼마나 많이 이주했으면 그런 도식이 생겼을까! 참고로 갈리시아의 이주민 후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켰던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있다.

 

 

 

* 묵시아: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갈리시아는 서쪽으로는 대서양, 위쪽으로는 비스케이만에 면해 있다. 지도에서 그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꽤 익숙한 윤곽선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들쑥날쑥한 해안선이 마치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를 보는 듯싶다. 얼핏 봤을 때 충남 태안과 서산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다.

갈리시아 지역과 우리나라 서해, 남해의 복잡한 해안선을 두고 리아스(rias)식 해안이라고 부른다. 리아스식 해안은 과거에 육지로 되어있던 부분이 지각운동으로 인해 가라앉거나 해수면이 상승하여 나타난 해안선이다. 산이나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온 형태니, 외형적으로 해안선이 들쑥날쑥하며 복잡하게 생겼다.

섬들도 많은데 과거 산의 정상부였던 부분만 바닷물 위로 남아 섬이 됐다. 해안선이 복잡하고, 아기자기하다 보니 빼어난 자연경관을 선사한다. 우리나라의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나 다도해상 국립공원을 생각해보시라!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이다.

이런 리아스식 해안의 어원이 갈리시아 지역에서 나왔다. 스페인어로 리아(ria)는 ‘강의 하구’를 말하는데 이런 복잡한 해안을 말할 때 쓰인다. 뒤에 ‘s’가 붙어 복수형이 되어 리아스로 칭한다. 참고로 노르웨이에서 볼 수 있는 피오르(fjord) 지형도 매우 복잡한 해안선을 나타낸다. 피오르는 빙하에 의해 형성된 지형으로 바닷물이 U자 형태로 내륙 깊숙이 들어온 형태를 보인다. 갈리시아에 대해 알아보다가 세계지리까지 공부하게 됐다. 어쩌면 이것도 또다른 재미다.

 

 

* 피스테라: 0km 표지석. 뒤쪽으로 등대가 보인다.

 

 

 

피스테라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겨울이라 그랬는지 순례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을도 듬성듬성 있었다. 그런 만큼 지형은 척박해 보였다.

갈리시아를 위시한 스페인의 북부지역은 711년, 북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했을 때도 미점령지로 남거나 그들의 지배를 비교적 짧게 받았다. 이슬람교도였던 무어인들에 맞서 그들은 718년, 아스투리아스(Asturias)왕국을 건립하여 가톨릭 국가 재건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게 된다. 이런 저항이 가능했던 밑바탕에는 북서부 지역의 험준함이 큰 몫을 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군은 아스투리아스 산맥의 험준한 지형을 잘 이용하여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 이슬람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사실 서북부 지역은 로마도 가장 늦게 점령한 곳이다. 지형은 험준하고, 기후는 변덕스러우니 딱히 점령할 매력을 느끼지 못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의 원주민들이 로마의 영역으로 넘어와서 약탈해대니 아예 근원을 도려내고자 점령을 하게 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글 중에는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잘못됐다.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이지 세상의 땅끝은 아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호카곶(Cabo de Roca)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유럽 대륙의 서쪽 끝으로 리스본과 가까워 한국인들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해안절벽이 우뚝 서 있고 대서양의 세찬 파도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호카곶이 바로 ‘세상의 끝’이다.

 

 

 

*호카곶: 포르투갈 리스본 인근에 있는 호카곶.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로마인들은 호카곶이 아닌 피스테라를 서쪽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 세상의 끝으로 첫 번재 순교자였던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들어왔고, 이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옮겨졌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일반적인 어촌 마을보다 피스테라로 들어온 것이 상징성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당시 사람들이 피스테라가 아닌 호카곶을 세상의 끝으로 생각했다면? 호카곶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밑돌 역할을 했을까? 이런 상상을 해봤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걷고 싶어도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그 앞에 대서양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기쁨 반, 아쉬움 반의 마음을 품고 땅끝 등대 아래로 향한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순례자들의 온 몸을 깨끗이 씻어주는 듯하다. 그 바람을 맞으며 무언가 다짐을 했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기에 순례에 사용했던 물품들을 등대 아래에 내려놓기도 한다. 신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예전에는 불에 태우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환경 문제 때문에 그런 모습은 보기 어렵다고 한다.

오래전 국토종단을 끝내고 해남 땅끝마을에 갔을 때다. 그때도 바람이 많이 불었다. 대서양 못지않은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 무언가 다짐을 했었다. 그렇게 땅끝마을들은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곳이다.

 

 

 

 

* 순례자: 갈리시아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서 우비를 썼다 벗었다를 자주해야 한다.

 

 

 

 

* 갈리시아지도

 

 

 

 

이번 화는 전편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이란 제목에서처럼, 필자는 통상적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산티아고’를 ‘지우개’로 지워버린 셈이 됐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작성한 건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필자는 여전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동경심이 있고, 기회가 닿는다면 계속 방문을 할 예정이다. 다른 순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길을 걸으며 많은 감흥을 얻었고, 큰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만큼 필자도 ‘산티아고 앓이’를 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이란 도발적인 글을 썼을까? 간단하다. 제대로 알고 가자는 의미에서 글을 썼다. 기왕 돈 들여, 시간 들여가는 길이라면 제대로 알고 가야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더 알찬 트레킹을 할 수 있을 테니까.

 

* 피스테라 가는길

●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피스테라(Fisterra)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서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스페인의 땅끝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의 시신은 나룻배에 실려 에스파냐 땅에 닿게 됐는데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피스테라였다고 한다.

많은 여행책자들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어쨌든 그런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에다 땅끝이라는 지정학적인 의미가 더해진 곳이기에 피스테라는 순례여행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도 그렇게 피스테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 피스테라로 가는 시작점은 산티아고 대성당이다. 대성당은 순례길의 종료점이기도 했지만 땅끝으로 가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을 보고 있자니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새삼스레 인생은 끝없는 여정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시작 할 때는 이게 언제 끝나나, 하고 막막해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마침표를 찍게 되고, 그러다 또 다른 시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예전 국내여행을 할 때도 그랬다. 시작할 때는 막막했지만 여행이 종료가 될 때는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미 다음 여행의 경로를 머릿속으로 그리곤 했었다.

 

                        * 피스테라 위치: 구글 지도 변형

●해양과 산맥이 공존하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

피스테라로 가는 길은 인적도 드물었지만 마을 자체도 듬성듬성 있었다. 조금은 척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개발이 덜 된 곳도 있었다.

피스테라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한 갈리시아 지방은 스페인의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데 서쪽으로는 대서양, 위쪽으로는 비스케이만에 둘러싸여 있다. 지형은 산지 형태를 띠고 있는데 험준한 산악지형이라기보다는 구릉형 산지가 층층이 쌓여있는 형태였다.

전편에도 언급했듯이 이 지역은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을 때도 그 침략의 사슬에서 벗어나 있던 곳이다.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온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은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고, 이에 서고트 왕국의 옛 귀족들은 반도의 서북부에서 아스투리아스(Asturias)를 건립하여 가톨릭 왕국의 재건에 나서게 된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서북부 지역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들어선다. 이곳은 첩첩산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산악지형을 띠고 있기에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했던 곳이다.

대서양에 가까워지는 만큼 기후변화가 더 심해졌다. 비가 더 심하게 오락가락했다. 우리나라 여름철 날씨도 변덕스럽지만 여기에 오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호랑이가 장가’를 갈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무지개도 무척이나 많이 볼 수 있다. 평생 본 무지개보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본 무지개가 훨씬 더 많았을 정도였다.

 

 

* 피스테라 표지판

 

● 피스테라와 야고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개 그곳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피스테라를 소개하는 일부 책자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스테라는 필자가 반복해서 기술한대로 스페인의 땅끝이지 유럽 대륙의 땅끝은 아니다.

정확히 유럽 대륙의 땅끝은 호카 곶(Cabo de Roca)이다. 호카 곶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깎아질 듯 서 있는 해안절벽이 일품인 곳이다.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말할 때 두 가지로 분류를 해서 말한다. 튀어나온 규모가 크면 ‘반도’가 되고, 작으면 ‘곶’이 된다. 유명한 포항의 호미곶을 연상하시면 될 것 같다. 북한 쪽에서는 장산곶이 유명하다.

피스테라에 대한 환상(?)을 한 가지 더 깨볼까 한다. 전편에 ‘야고보 성인은 이베리아반도에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서술했다. 그 서술을 따라가 보면, 야고보의 시신이 담긴 배가 예루살렘에서 피스테라까지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뻔한 당시의 항해 기술은 둘째 치고, 사역을 하지도 않은 곳에다 자신의 시신을 묻어 달라는 전도자는 없을 테니까.

 

 

*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그렇다면 피스테라가 왜 야고보와 연결이 됐을까? 아무래도 야고보의 존재를 더욱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스테라가 동원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로마인들은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끝에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도착하여 별들의 들판이라는 산티아고 콤프스텔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정리될 수 있겠다. 이런 전개 과정 자체가 여행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로마인들이 세상의 끝을 호카 곶으로 판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호카 곶과 야고보가 서로 연결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환상이 다 깨졌다고 해도 피스테라는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넘실대는 파도와 해안절벽들을 따라 가다보면 땅끝 등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모습은 일품 중에 일품이다. 이곳의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행한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것들을 불태우는 것이다. 실제로 등대 근처 곳곳에는 순례자들이 태운 신발과 옷가지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피스테라는 그런 장소였다. 무언가 의식을 행하거나 다짐을 하게 만드는 장소였다는 것이다. 마치 해남 땅 끝에 가면 무언가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필자도 대서양 바다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난생 처음 보는 대서양 앞에서 다짐을 한 말치고는 무척 소박한가? 그래도 상관없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도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허상과도 같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일들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괴롭게 되새기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억지로 끌어와서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 cee: 피스테라를 가기 전에 만나는 cee라는 항국 도시. 매력적이다.

●남북한 순례자들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면?

순례길은 화합의 길이었다. 지역감정으로 유명한 마드리드, 카탈로니아, 바스크 사람들이 서로 정답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스페인 내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앙숙이었던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발트3국) 청년들이 서로 의지를 하며 걷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었다. 도보여행을 하는데 국적이니 지역이니 하는 것들은 다 소용이 없을 테니까.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 그게 바로 순례길에 녹아 있는 정신일 것이다. 그런 정신들이 길 위에 뿌려지고, 뿌려지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사랑하는 것일테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북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순례길을 걷는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일일 될 것이다. 함께 격려하며 돕고, 먹을 것을 나누고... 힘들 때는 함께 아리랑도 부르고! 상상만으로도 참 흥미롭다.

 

 

 

* 피스테라 가는길





* 피스테라(fisterra): 스페인의 땅끝마을 피스테라의 초입. 항구마을.

☞ 지난 2019년 12월 17일부터 2020년 2월 11일까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및 유럽 여행을 행하고 왔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전년도에도 다녀왔으니 2년 연속 탐방을 한 셈입니다. 순례길 탐방이 종료된 이후에는 20대에 못해봤던 배낭여행을 행했답니다.

독일 - 오스트리아 -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 스위스 -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 위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알프스 산맥에는 못 갔지만 먼 발치에서나마 알프스 일대를 둘러보았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열심히 여행일지를 작성했습니다. 여행일지는 수첩(기자수첩 사이즈)에 작성했는데 그 내용들을 포스팅할 생각입니다. 여행일지를 온라인으로 옮겨 놓는거라 재밌는 포스팅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또한 디테일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한 개인의 여행기가 이 공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작은 기록이 올라가지만 그것 자체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한 개인의 역사로 이어질테니까요!




* 피스테라

* 2020년 1월 16일 목요일: 31일차 / 폭우가 쏟아짐

1.어제는 hostal forest라는 곳에서 1박을 했다. 25유로 호스텔이었는데 정확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방은 단독으로 사용했는데 화장실은 공용. 아스트로가(astroga)에서 묵었던 호스텔과 구조가 비슷했다. 할매 주인장이 리셉션도 하고 관리도 하는 그런 호스텔이었다. 뭐 시설은 우리나라 여인숙?ㅋ

2. hostal forest에서 오전 9시경에 체크아웃함. 바로 산티아고콤포스텔라 버스터미널로 갔다. 오전 10시발 피스테라(fisterra)행 버스를 타기 위해.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서쪽 땅끝마을이다.

3. 10시 버스인데 10시 4분에 출발하더라. 탑승 위치도 정확하지 않고. 그런데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피스테라까지 무려 3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10시에 출발한 버스가 12시 55분경에 도착한단다. 오전 9시 버스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는데 거기서 거기지. 산티아고콤포스텔라에서 피스테라까지는 직선거리로 100km도 안되는데 말야.

4.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던 날씨가 변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바람도 거세고.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까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는데 바다에서는 큰 파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몰아쳤지만 편하게 버스에 앉아 그 풍광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드넓은 대서양을 바라본 것이다.

5. 2014년에 이곳을 지날 때는 잠을 자서 그랬는지 차창밖 풍광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바라본 풍광은 정말 절경이었다. 울릉도로 생각나고 제주도도 생각이났다.

6. 이것도 전화위복이라고 오늘의 피스테라 버스여행은 망설였던게 사실이다. 억수같이 비도 많이 오고 하니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미 2014년에 피스테라를 갔으니까.

7. 오늘은 피스테라의 초입에서만 머물렀다.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초입에서만 놀아도 좋고 버스 차창 밖을 보는 대미도 좋았다. 특히 ezaro라는 동네는 매우 특이한 해안가 절벽을 지니고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려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을 정도였다.

8. 오후 3시 버스를 타고 6시경 산티아고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3시간이 걸렸다. albergue o fogar de teodomiro에 오후 7시 30분경에 입실함.





* 마드리드: 이날 거리축제가 있었다. 말들이 도심 대로변을 활보한다.

* 2020년 1월 17일 금요일: 32일차 / 맑음

1. 마드리드로 가기 위해 albergue o fogar de teodomiro에서 오전 9시경에 나옴.

2. 마드리드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를 18일에 타는터라 마드리드에서 1박을 하기로 함.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는 산티아고에서 예매를 했음.

3. 산티아고콤포스텔라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기차는 우리나라의 ITX급 정도의 기차였다. KTX는 아니고 새마을호보다 조금 더 빠른...

4. 중간에 오우렌세(ourense)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오우렌세는 어차피 한 번은 왔어야 하는 곳이었나보다. 정확히 기술하자면 saintago de compostela - ourense / ourense - madrid 이런 경로로 갔다. 오전 9시 50분경 출발, 마드리드 오후 3시경 도착.

5. 역시 마드리드는 정신이 없다. 대도시는 대도시였다. 아참 오는 기차에서 엄청 졸았다. 정말 오랜만에 기차에서 단잠을 잤다. 그동안 정말 많이 피곤했었나보다.

6. 마드리드에 온 김에 데카트론에 들러 우비, 신발, 접는가방, 잠바를 하나 샀다. 전부 합쳐 약 100유로. 한국이었으면 훨씬 비쌌을 것이다. 아참 감기약도 하나 샀다. 약 9유로 정도. 약값은 우리나라보다 좀 비싸다.

7. sol 광장 바로 인근에 있는 i love madrid hostal에 오후 5시경 입실함. 부킹 닷컴에는 12유로로 적혀있는데 15유로를 달라고 했음. 더 움직이기 귀찮아서 그냥 결제했음. 근데 바로 후회했음. 솔 광장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투숙객들이 많았음. 다음에는 솔 광장하고 좀 떨어진 곳으로 숙소를 잡아야 할 것 같음.




* 프랑크푸르트: 마인강의 야경.

* 2020년 1월 18일 토요일: 33일차 / 마드리드 비옴, 프랑크푸르트 비오다 갬

1. 오늘은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로 이동한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2터미널에서 독일 루프트한자 편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향함. 오후 1시 30분 비행기고 약 2시 30분 정도 비행한다.

2. 항공편 결제를 스마트폰으로 했는데 안내 메일에 이상한 내용이 적혀이었었다. 위탁수하물이 포함 안 됐다고, 수하물을 붙이려면 또 다른 결제가 필요하다고. 루프트한자가 라이언에서 같은 저가 항공사도 아닌데 위탁수하물이 포함이 안 된다? 이게 말이 되나?

3. 무려 200유로 가까운 돈을 주고 끊은 항공권인데... 위탁수하물로 또 돈을 내라고?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체크인과 동시에 내 배낭을 위탁수하물 컨베이어벨트에 던져놓았다. 직원은 자연스럽게 내 배낭에 화물스티커를 붙여주더라. 그리고 다음 손님을 받으려고 하더라. 그럼 돈 더 안 내기 작전은 성공한 것인가?

4. 확인하는 차원에서 직원에게 물어봤다. "Is my luggage free?" / "yes"

마치 당연한 걸 왜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ㅋ

5. 피곤해서 그랬나? 비행기에서도 엄청 잘 잤다. 내 옆에 있던 스페인 노부부도 함께 잘 잤다. 기차에서도 그렇게 맛나게 잘 잤는데 비행기에서도 잘 잤으니... 이제 내게 시차적응이란 말은 없는거다!

6.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오후 4시경에 도착해서 짐을 찾은 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frankfurt hauptbahnhof라고 불린다. 공항에서 멀지 않아서 좋았다. s9 노선을 타고 4정거장 정도 오니 중앙역이었다. 20분도 안 걸렸다.

7. 프랑크푸르트에는 마인강이 흐르고 있는데 그곳이 바라보이는 jugendherberge frankfurt -hausder jugend라는 긴 이름의 호스텔에 체크인했다. 부킹닷컴에는 22유로라고 적혀있었는데 25유로를 부르더라. 조식도 준다는데 그냥 25유로를 결제했다. 돈 값을 하긴 하더라. 시설이 꽤 괜찮았다. 라인강이 아닌 마인강의 야경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고. 오후 6시경 입실.




* 유로조형물: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럽 중앙은행이 있다. 그 앞쪽에 유로화 기념물이 있음. 유럽 여행 중에는 주머니에 유로화가 가득있으면 행복함. 그래서 저 조형물을 떼갈까 하는... 그런 생각이...ㅋ










* 피스테라 가는 길. 대서양에 접한 스페인의 한 어촌 마을. cee라는 곳이다.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가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 두 번째 이야기

 

 

 

이번 화는 전편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이란 제목에서처럼, 저는 통상적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산티아고지우개로 지워버린 셈이 됐으니까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작성한 건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조만간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탐방할 예정입니다. 다른 순례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 길을 걸으며 많은 감흥을 얻었고, 큰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만큼 저도 산티아고 앓이를 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산티아고 순례길에 산티아고가 없다면?’이란 도발적인 글을 썼을까요? 간단합니다. 제대로 알고 가자는 의미에서 글을 썼습니다. 기왕 돈 들여, 시간 들여가는 길이라면 제대로 알고 가야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 더 알찬 트레킹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 피스테라 가는 길. 조가비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물이다.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피스테라(Fisterra)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서쪽으로 약 9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스페인의 땅끝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의 시신은 나룻배에 실려 에스파냐 땅에 닿게 됐는데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피스테라였다고 합니다. 많은 여행책자들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지요.


어쨌든 그런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에다 땅끝이라는 지정학적인 의미가 더해진 곳이기에 피스테라는 순례여행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게 피스테라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피스테라로 가는 시작점은 산티아고 대성당입니다. 대성당은 순례길의 종료점이기도 했지만 땅끝으로 가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을 보고 있자니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실감나더군요. 새삼스레 인생은 끝없는 여정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시작 할 때는 이게 언제 끝나나, 하고 막막해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마침표를 찍게 되고, 그러다 또 다른 시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예전 국내여행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시작할 때는 막막했지만 여행이 종료가 될 때는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미 다음 여행의 경로를 머릿속으로 그리곤 했었지요.

    






* 산티아고 순례길.







 

해양과 산맥이 공존하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

 

피스테라로 가는 길은 인적도 드물었지만 마을 자체도 듬성듬성 있었습니다. 조금은 척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개발이 덜 된 곳도 있었습니다.


피스테라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속한 갈리시아 지방은 스페인의 북서부에 위치해 있는데 서쪽으로는 대서양, 위쪽으로는 비스케이만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형은 산지 형태를 띠고 있는데 험준한 산악지형이라기보다는 구릉형 산지가 층층이 쌓아 올려진 형태였습니다

 

전편에도 언급했듯이 이 지역은 이베리아반도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을 때도 그 침략의 사슬에서 벗어나 있던 곳입니다.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온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은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켰고, 이에 서고트 왕국의 옛 귀족들은 반도의 서북부에서 아스투리아스(Asturias)를 건립하여 가톨릭 왕국의 재건에 나서게 됩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서북부 지역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들어서게 됩니다. 이곳은 첩첩산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산악지형을 띠고 있기에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했습니다

 

대서양에 가까워지는 만큼 기후변화가 더 심해졌습니다. 비가 더 심하게 오락가락했습니다. 우리나라 여름철 날씨도 변덕스럽지만 여기에 오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더군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호랑이가 장가를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무지개도 무척이나 많이 봤답니다. 평생 본 무지개보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본 무지개가 훨씬 더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 피스테라. 큰 네모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작은 네모는 피스테라를 표시한다. 구글지도 변형.





 



피스테라와 야고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입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개 그곳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스테라를 소개하는 일부 책자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스테라는 제가 반복해서 기술한대로 스페인의 땅끝이지 유럽 대륙의 땅끝은 아닙니다.


정확히 유럽 대륙의 땅끝은 호카 곶(Cabo de Roca)입니다. 호카 곶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깎아질 듯 서 있는 해안절벽이 일품인 곳이지요.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말할 때 두 가지로 분류를 해서 말합니다. 튀어나온 규모가 크면 반도가 되고, 작으면 이 됩니다. 유명한 포항의 호미곶을 연상하시면 될 것 같네요. 북한 쪽에서는 장산곶이 유명하지요.







* 피스테라. 광활한 대서양이 펼쳐지는 곳. 가슴이 확 트이는 곳이다.








피스테라에 대한 환상(?)을 한 가지 더 깨볼까요. 저는 전편에 야고보 성인은 이베리아반도에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서술했습니다. 그 서술을 따라가 보면, 야고보의 시신이 담긴 배가 예루살렘에서 피스테라까지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허구일 가능성이 큽니다. 뻔한 당시의 항해 기술은 둘째 치고, 사역을 하지도 않은 곳에다 자신의 시신을 묻어 달라는 전도자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피스테라가 왜 야고보와 연결이 됐을까요? 아무래도 야고보의 존재를 더욱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스테라가 동원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인들은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끝에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도착하여 별들의 들판이라는 산티아고 콤프스텔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정리될 수 있겠지요. 이런 전개 과정 자체가 여행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로마인들이 세상의 끝을 호카 곶으로 판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럼 호카 곶과 야고보가 연결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환상이 다 깨졌다고 해도 피스테라는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곳입니다. 넘실대는 파도와 해안절벽들을 따라 가다보면 땅끝 등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모습은 일품 중에 일품입니다. 특히 이곳의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행합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것들을 불태우는 것이죠. 실제로 등대 근처 곳곳에는 순례자들이 태운 신발과 옷가지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피스테라는 그런 장소였습니다. 무언가 의식을 행하거나 다짐을 하게 만드는 장소였다는 것이죠. 마치 해남 땅 끝에 가면 무언가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요. 저도 대서양 바다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습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난생 처음 보는 대서양 앞에서 다짐을 한 말치고는 무척 소박한가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도 못한다고 하잖아요. 허상과도 같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일들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는 것이죠. 지나간 과거를 괴롭게 되새기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억지로 끌어와서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 피스테라 표지판


 




 

남북한 순례자들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면?

 

순례길은 화합의 길이었습니다. 지역감정으로 유명한 마드리드, 카탈로니아, 바스크 사람들이 서로 정답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 순례길이었습니다.


스페인 내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앙숙이었던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발트3) 청년들이 서로 의지를 하며 걷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었습니다. 도보여행을 하는데 국적이니 지역이니 하는 것들은 다 소용이 없을 테지요.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 그게 바로 순례길에 녹아 있는 정신일 겁니다. 그런 정신들이 길 위에 뿌려지고, 뿌려지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저도 짧게나마 일본인 친구들과 즐겁게 순례길을 걸었답니다. 니가타 출신이라는 처자는 저에게 한국말로 오빠라고 칭해주더군요.

 

나 아저씨인데...’

 

이 말을 표현할 방법은 없고, 기분은 좋고 하니, 저는 그들에게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춰줬습니다. 그들도 따라 추더군요. 아주 즐겁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북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순례길을 걷는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일일 것이겠지요. 함께 격려하고, 도우며 길벗을 하고... 힘들 때는 함께 아리랑도 부르고!

 

 



* 진정한 챔피언. 이 친구의 왼쪽 다리를 보라! 의족이다. 하지만 사진에도 나와 있듯이 그의 표정은 아주 밝다. 자신을 북부 빌바오 출신이라고 말한 이 친구는 자전거로 이베리아 반도를 투어하고 있다고 했다. 저런 청년들이 있기에 순례길이 아름다운 것이다. 순례길 곳곳에 뿌려진 선한 마음과 인간애가 산티아고 순례길로 더 많은 이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것이다.





 

대서양에 작은 다짐을 실어보내며

 

[22일간의 스페인 여행 8]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15.01.22 08:25 최종 업데이트 15.01.22 08:28
곽동운(artpunk)

 

 

 

 

 

 

 

 
▲ 피스테라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 바위 위에 철로 만든 신발상이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2014년 11월 12일, 여행 10일째.


이전 여행기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페인의 땅 끝 마을인 피스테라(Fisterra)의 길은 확실히 개발이 덜 된 느낌이었다. 황무지 같이 방치된 곳들도 있었고, 간간이 버려진 집들도 눈에 띄었다. 스페인의 농어촌도 도시로의 인구 유출이 심각해 보였다.

그렇게 개발도 안 됐고 인적도 드물다 보니,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중 인상적인 지형도 눈에 띄었다. 아침에 올베이로아(Olveiroa)에서 출발을 한 후, 1시간 정도 이동했을 때였다. 길 옆쪽으로 살라스 강(rio xallas)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는데 감입곡류 형태였다.

 

 

 


 
▲ 살라스 강 감입곡류형 하천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감입곡류는 하천이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감겨 나가는 것을 말한다. 감입곡류 일부 구간에서는 강물이 350도로 휘돌아 나가기도 한다. 그런 살라스 강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 예천의 회룡포가 생각났다. 사실 한반도 지형을 담은 서강과 회룡포를 만든 내성천에 비하면 살라스 강의 꾸불꾸불함은 새발의 피였다. 이렇게 남의 것을 바탕삼아 우리 것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해외 도보여행의 장점 중에 하나다. 


뱀처럼 휘감겨 흐르는 살라스 강처럼, 강은 있는 그대로 흐르게 해야 한다. 괜히 직선화를 한다, 보를 세운다 하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럼 강은 역습을 하게 된다. 지금의 4대강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360도 전체를 보는 도보여행

 


 
▲ 피스테라 스페인의 북서부, 갈리시아 지역. 피스테라, 묵시아(Muxia), 산티아고 콤푸스텔라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도보여행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걷고 또 걷다 보니 배터리가 방전되듯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수그려서 걸으니 정면만 응시했다. 시야가 무척이나 좁아진 것이다. 그날 여행수첩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도보여행은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사방 360도 전체를 보고 가는 것이다. 길을 가다 잠시 멈춰 서서 꽃과 나무를 감상하고, 시냇물 소리도 듣고, 바람도 느끼는 것이 진정한 도보여행이다."

 


여행수첩에는 "도보여행은 360도"라고 적어 놓았지만 정작 필드에서는 시야각이 겨우 45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자신이 적어 놓은 것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결국 목적지인 피스테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보여행의 마지막을 아주 화끈하게 불태운 듯싶었다. 발바닥이 불이 난 듯 아주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본 대서양에 발을 담가 열을 식히고 싶을 정도였다.

4년 전 행한 국토종단 여행도 무척 힘들었다. 해남 땅끝 마을을 방문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태풍을 만나고, 텐트가 망가지고... 하지만 결국에는 국토종단 여행을 무사히 종료 됐다. 그렇게 고생스러운 여정 때문이었는지 아직까지도 그 여행은 필자의 뇌리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피스테라 길을 포함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도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고 또한 많이 배운 여행이라서 그런지 여운이 아주 길게 갈 것 같다. 

 

 



피스테라와 야고보는 관련이 없다?

 

 


 
▲ 오레오 곡물 창고인 오레오. 습기와 설치류들을 피하기 위해 기둥을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기둥은 끝 마무리를 둥글게 했다. 기둥 마무리 부분이 둥그니 아무리 쥐들이 기둥을 타고 올라와도 끝 부분에서 떨어지고 만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피스테라는 스페인의 땅끝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도 대개 그곳을 유럽대륙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피스테라를 소개하는 일부 책자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피스테라는 필자가 반복해서 기술한 대로 스페인의 땅끝이지 유럽 대륙의 땅끝은 아니다.


정확히 유럽 대륙의 땅끝은 호카 곶(Cabo de Roca)이다. 호카 곶은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깎아질 듯한 해안절벽이 일품인 곳이다.

 

 



 
▲ 피스테라 스페인의 땅끝 피스테라에 선 필자.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피스테라에 대한 환상(?)을 한 가지 더 깨보자. 앞선 여행기 2편
(관련 기사 : "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다고?")에도 언급했듯이, 야고보 성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야고보의 시신이 담긴 배가 예루살렘에서 피스테라까지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의 항해 기술은 둘째 치고, 사역을 하지도 않은 곳에다 자신의 시신을 묻어 달라는 전도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스테라가 왜 야고보와 연결이 됐을까? 아무래도 야고보의 존재를 더욱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스테라가 동원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로마인들은 피스테라를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끝에서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도착하여 별들의 들판이라는 산티아고 콤프스텔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는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정리될 수 있다. 이런 전개 과정 자체가 여행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익사이팅'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 챔피언 이 스페인 사람은 피스테라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에게 큰 감흥을 주어서 이번 여행기에 사진을 올려본다. 이 분의 왼쪽 다리를 보시라. 의족이다. 저런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더 당당했다. 저 자전거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론 이베리아 반도 순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환상이 깨졌다고는 해도, 피스테라는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곳이다. 넘실대는 파도와 해안절벽들을 따라 가다보면 땅끝 등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모습은 일품 중에 일품이다. 특히 이곳의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피스테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행한다. 더 이상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것들을 산화 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등대 근처 곳곳에는 순례자들이 태운 신발과 옷가지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다.

피스테라는 그런 장소였다. 무언가 의식을 행하거나 다짐을 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마치 해남 땅 끝에 가면 무언가 마음을 다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필자도 대서양 바다를 보면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하루하루 잘 사는 것이 진정한 챔피언!'

 

 


 
▲ 유럽대륙을 자전거로 피스테라에서 만난 한국 여대생. 터키에서부터 스페인 피스테라까지 무려 5000km 넘는 거리를 단독으로 여행 했다고 한다. 앳된 얼굴이었지만 진짜 강철같은 에너지를 가진 청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전거로도 순례를 할 수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난생 처음 보는 대서양 앞에서 다짐을 한 말치고는 무척 소박한가? 그래도 상관없다.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도 못한다는 것이 평소 필자의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허상과도 같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일들을 척척해내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생각한다.


지나간 과거를 괴롭게 되새기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억지로 끌어와서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는 뜻이기 하다. 대신 너무 현실적으로 살지는 말자. 가능한 꿈은 얼마든지 꾸자!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도보여행은 끝이 났다. 도합 200km 정도를 걸었는데도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래서인지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작성해 송고할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당장 배낭을 꾸려서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허벅지를 쿡쿡 찌르며 꾹 참아야 했다. 그만큼 순례길은 필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남북한 순례자들이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

글을 마치기 전에 순례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본다.

순례길은 화합의 길이었다. 지역감정으로 유명한 마드리드, 카탈로니아, 바스크 사람들이 서로 정답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 순례길이었다. 스페인 내국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앙숙이었던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에스토니아(발트3국) 청년들이 서로 의지를 하며 걷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었다.

도보여행을 하는데 국적이니 지역이니 하는 것들은 다 소용이 없다. 순례자의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열심히 즐기며 도보여행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필자도 일본인 친구들과 짧게나마 즐겁게 걸었다. 니가타 출신이라는 처자는 필자에게 한국말로 '오빠'라고 칭해 주었다. 필자도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응답했다. 이런 것도 하나의 재미다.

산티아고 카미노에서 북한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순례길을 걷는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일일 것이다. '통일대박' 시대에 자연스러운 남북한의 인적교류가 이루어지는 거니까!

순례팀은 차량을 통해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바닷가 마을 묵시아(Muxía)로 이동을 했다. 묵시아도 풍광이 무척 아름다운 어촌 마을 중에 하나였다. 묵시아 여행을 끝으로 필자는 개인 배낭여행 형식으로 스페인 중부권 일대를 탐방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다.

 

 



 
▲ 묵시아 묵시아는 풍광이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