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6월.

아직까지도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가 발생했던 2019년 12월 경, 필자는 유럽여행 중이었는데 코로나 발병 사태를 보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냥저냥 하다가 종료될 줄 알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문한 후, 유럽배낭 여행을 이어갔다. 가난뱅이 여행이었지만 무척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원하는 사진도 아주 많이 찍었다. 귀국이 가까워졌을 때는 상황이 좀 심각해졌지만 그래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귀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는 국내생활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느라 나름 부푼 꿈을 꾸기도 했었다.

 

‘올해는 역사트레킹을 더 많이 해봐야지. 작년에 세팅한 코스들이 많으니까 회원들하고 더 재미나게 트레킹을 할 수 있을 거야!’

정말? 아직까지 2020년도에는 역사트레킹을 한 번도 실시한 적이 없다. 언제 다시 제대로 실시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코로나가 이렇게 무서운 거다.

코로나 사태 이후 사람들은 거리를 두게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

이번 편에 언급할 <트레킹은 생각창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정확히는 ‘아름다운 거리’다. beautiful street가 아니라 beautiful distance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염병을 막기 위한 물리적 방편이라면 ‘아름다운 거리두기’는 사람과 사람과의 존중을 해치지 않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때였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동갑내기를 만나게 됐다. 답답한 수험생 시절이었느니 간간이 티타임이나 하면서 수험 정보나 나눌 셈이었다. 수험생과 수험생이 만나서 친해지면 좋은 결과보다 안 좋은 결과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냉정하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필자의 스타일은 그랬다. 딱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 하지만 그 동갑내기는 필자의 스타일과는 반대였다. 동갑이니까 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였다. 더군다나 답답한 수험생 시절에 만났으니 더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냥 친구도 아니고 진정한 친구.

딱 티타임 나누는 관계 VS 동갑이니까 진정한 친구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턱하고 가슴이 막힌다.

 

* 만안교

 

 

 

 

● 이제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이번 편부터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향한다. 이제까지 ‘역사트레킹 서울학개론’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역사트레킹 한국학개론’으로 확장된다. ‘한국학개론’이 되어서 그런가? 첫 번부터 제목이 거창하다. 정조대왕 역사트레킹!

본격적인 내용전개에 앞서, 흥미로운 질문 두 가지! 서울 인근에 경주 불국사보다 더 오래된 연혁을 가진 사찰이 있다면? 또 그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조대왕 시대에 축조한 돌다리가 있다면?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분명 이런 물음에 흥미를 느끼실 것이다.

불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찰은 삼성산에 있는 삼막사라는 사찰이고, 정조대왕 시대에 축조된 다리는 만안교라는 석교(石橋)다. 이 두 장소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여 이동할 수 있다. 또한 편리하게 전철을 타고 탐방을 할 수 있는데 수도권 전철 관악역에서 시작하여 관악역으로 종료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걷는 거리가 너무 많기에 다리가 아픈 분들은 중간에 시내버스를 타시라고 권한다.

본 코스를 <정조대왕 역사트레킹>이라고 네이밍을 했을 때 좀 망설였었다. 아무리 정조대왕의 흔적이 남은 곳을 탐방한다고 해도 코스 이름에 떡하니 정조대왕의 이름을 붙이다니!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써 봐도 그 이름보다 더 좋은 네이밍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그냥 <정조대왕 역사트레킹>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필자는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 코스도 가지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태종이방원 역사트레킹>도 소개할 예정이다. 어쨌든 왕의 이름을 떡하니 새겨 넣으니 해당 코스가 아주 강렬하게 느껴진다.

 

 

 

* 만안교: 만안교는 만들어진지 20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

● 화산 능행차와 만안교(萬安橋)

정조대왕 역사트레킹은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관악역 1번 출구에서부터 시작된다. 1번 출구에서 나와 안양역 방면으로 약 500미터 정도를 걸어가면 만안교를 만날 수 있다.

1795년 축조된 만안교는 정조대왕의 화산 능행차를 위해 만들어졌다.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1789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양주 영우원에서 수원 화산의 현륭원으로 이장을 한다. 그리고는 자주 참배에 나섰는데 이를 두고 ‘화산 능행차’라고 불렀다.

처음 능행차는 도성에서 동작나루를 거쳐 남태령을 넘는 길이었지만 이후 시흥과 안양을 거치는 길로 변경된다. 남태령 길이 협소하다는 지형적인 한계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다른 사정도 있었다. 과천 행차로에는 김상로와 그의 형 김약로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오화변(壬午禍變) 당시 영의정이었던 김상로는 사도세자 처벌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해원하기 위해 떠나는 능행차 길에 사도세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김상로 형제의 묘소를 지나는 것이 탐탁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임오화변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했던 사건을 말한다.

그래서 1794년 이후부터는 능행차 노선이 시흥과 안양 방면으로 변경된 것이다.

당시 왕의 행차 길에는 임시로 나무다리 등을 가설한 후, 행차가 끝난 뒤에는 철거 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이에 정조는 그런 번거로움을 피하고, 인근 주민들이 평상시에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하천을 넘을 수 있게 튼튼한 돌다리(石橋)를 건설하라고 왕명을 내린다.

석교의 축조에는 경기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 수원․개성․강화 유수까지 동원될 정도로 큰 공사였지만 공사 기간은 3개월 정도였다. 그렇게 왕명으로 지어진 돌다리는 길이가 31.2m, 넓이가 8m에 달하는 큰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왕의 뜻대로 인근 백성들도 안심하고 하천을 건널 수 있는 튼튼한 돌다리가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다리를 두고 정조대왕은 만년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로 만안교(萬安橋)라는 이름을 직접 작명하였다.

 

 

* 관악산: 삼성산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관악산.

 

● 백성들을 위해 튼튼한 돌다리를 축조한 정조대왕

 

한편 원래 만안교는 지금의 자리보다 남쪽으로 200m 지점인 삼성천 위에 축조됐지만 1980년 국도 확장 공사시에 지금의 삼막천 위로 옮겨지게 됐다. 이 다리가 놓여 있는 안양시 만안구의 명칭은 만안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만안교는 무지개교라 불리는 홍예교다. 조선 후기에 축조된 홍예교 중에서 가장 큰 다리로 모두 7개의 아치가 놓여 있다. 판석과 장대석을 서로 맞물려 축조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불린다.

필자는 처음 만안교를 탐방했을 때 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4대문 밖, 그것도 한강 이남에 이렇게 정교하고 거대한 아치형 석교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돌다리는 박물관에 갇혀 있는 죽은(?) 다리가 아니라 지금도 인근 주민들이 건너다니는 살아있는 ‘생활’ 다리였다는 점이다.

이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진두지휘하는 화산 능행차를 볼 수 없고, 다리 주위로는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정조대왕의 바람은 계속 이어지는 듯싶다. 인근 백성들이 ‘만년동안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하는, 그런 애민 정신 말이다. 돌다리를 넘으면서 필자는 트레킹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조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역사적인 다리를 걷고 있습니다. 200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까지 튼튼한 돌다리를 넘고 있는 거죠.”

트레킹팀은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을 곱씹으며 튼튼한 돌다리를 씩씩하게 걸어 다음 코스인 삼막사 계곡으로 향했다.

 

 

* 삼막사

● 울창한 숲길, 삼막계곡

정조대왕 역사트레킹은 삼막천을 따라 이동을 한다. 삼막천은 삼성산에서 발원된 작은 하천으로 그 상류 위쪽에는 삼막사가 터를 잡고 있고, 그 하류에는 현재 만안교가 놓여 있다. 만안교를 지난 삼막천은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안양천과 합수된다.

정조대왕 역사트레킹을 행할 때는 항상 여름경이었다. 그래서 땀방울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흘러내렸다. 그때 필자도 지쳐갔고, 팀원들도 지쳐갔다. 하지만 삼막계곡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이 솟구쳤다. 계곡을 끼고 있는 숲길로 들어선 것이다.

아무리 강한 직사광선이 내려찐다고 해도 숲속에 있으면 탈진할 일이 없다. 숲속이 강력한 ‘썬크림’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도 숲 속에 있으면 탈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원한 나무그늘에 있으면 원기가 회복된다. 이런 숲길을 걷는다면 한 여름 때양볕 아래에서도 트레킹을 마음껏 할 수 있을 듯싶었다. 1시간 정도 계곡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드디어 삼막사에 도착했다.

 

* 삼막사

● 불국사보다 더 오래된 삼막사

 

삼막사는 677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 의상, 윤필 3대사가 막(幕)을 치고 수행을 하다가 그 후에 절을 지으니, 그 절이 삼막사가 된 것이다. 삼성산의 명칭 유래도 마찬가지다. 원효, 의상, 윤필의 성인이 수도를 한 곳이라 하여 삼성산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삼성산은 관악산의 지산이다.

서두에서 필자는 삼막사가 불국사보다 더 오래된 연혁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개창 시기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통상적으로 불국사의 창건은 751년으로 잡는다. 그러면 삼막사가 불국사보다 무려 70년 정도 앞선 연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유서가 깊어서인지 삼막사에는 수많은 선승들이 머무르며 수도에 정진했다. 신라 말에 도선국사, 고려시대에는 나옹선사,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와 사명대사, 서산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 특히 조선왕조 개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무학대사는 삼막사에서 새로운 왕조에 대한 융성을 기원했다고 한다.

유명한 선승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는 건, 달리 말하면 삼막사가 좋은 기운을 품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멀리서 삼막사를 봤을 때, 기운이 사방으로 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삼막사는 정상부 능선 부근에 자리 잡고 있어, 그 곳에 올라서면 멀리 인천과 서해바다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데 그런 입지적 조건이 삼막사의 기운을 ‘쾌’하게 생성시키는 것 같았다. 이런 좋은 기운 때문인지 삼막사는 조선시대부터 남왈삼막(南曰三幕)으로 지칭됐다. 서울 남쪽의 수찰(首刹), 즉 우두머리 사찰이라는 뜻이다.

앞선 <진관사 역사트레킹>에서도 언급이 됐는데 삼막사는 진관사와 함께 서울을 지킨다. 다시 복습해본다. 남쪽 - 삼막사, 서쪽 - 진관사, 동쪽 - 불암사, 북쪽 - 승가사. 이를 두고 서울의 4대 명찰이라고 부른다.

삼막사에는 무학대사가 중수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1880년(고종 17년)에 지어진 명부전과 그 다음해 지어진 칠성각 등의 당우(堂宇)들이 배치되어 있다. 또 고려중기 시대에 건립된 3층 석탑과 조선 후기시대에 제작된 아미타삼존불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삼막사 아래에 있는 염불암 탐방을 끝으로 정조대왕 역사트레킹은 종료가 된다. 염불암은 안흥사라고도 불리는 사찰로 태조 왕건이 도승인 능정을 위해 936년에 창건한다. 936년이면 왕건이 후삼국 시대를 통일한 그 때이다. 염불암에는 600년 된 보리수가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 염불암

● 만안교 만큼의 아름다운 거리

 

동갑내기와의 갈등 때문에 필자는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을 접었다. 꽤 오랫동안 준비를 했었는데 타의에 의해 그만 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동갑내기와의 트러블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 녀석하고도 금이 갔다.

굳이 여기서 구질구질하게 아픈 기억을 언급하지 않겠다. 어쩌면 지금의 직업인 역사트레킹을 하라는 신의 계시로 그런 일이 발생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좀 속이 편하다. 그만큼 필자에게는 그때의 일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당시의 일을 좀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 그때 좀 더 현명하게 굴었어야 됐는데

- 좀 더 맺고 끊음을 잘 표현했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상대방의 영역이나 스타일을 존중하지 않고 팍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 하냐 이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악당도 아니니까 문제지.’

아름다운 거리(beautiful distance)를 유지하면 된다. 코로나 방지를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 유지, 서로간의 존중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면 된다.

그럼 그 아름다운 거리는 구체적으로 얼마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만안교 정도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떨어져 있지만 언제든지 다리를 건너면 만날 수 있는 그런 거리... 그런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면 진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정조대왕 역사트레킹

1. 코스: 만안교 ▶ 삼막사 초소 ▶ 삼막계곡 ▶ 삼막사 ▶ 염불암 ▶ 안양예술공원

2. 이동거리: 약 8km

3. 예상시간: 약 3시간 30분(쉬는 시간 포함)

4. IN: 수도권 전철 관악역 1번 출구 / OUT: 안양예술공원 ☞ 안양예술공원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관악역으로 이동함. 안양예술공원과 관악역은 버스로 5분 거리임.

*정조대왕 역사트레킹 지도: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지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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